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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발과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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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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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구**

목 차 1. 서론

2. 자연화된 불교: 1인칭 의식의 연기 3. 체험주의: 창발적 자연주의의 등장 4. 체험주의와 불교: 인격동일성의 문제 5. 결론

<국문초록>

붓다의 연기설은 ‘의존하여 의존하여 의존하여 의존하여 함께 의존하여 함께 나타난다’라는 연기의 어원적 의미에서 볼 수 함께 함께 함께 나타난다나타난다나타난다나타난다 있듯이, 어떤 실체나 본질을 상정하지 않는다. 특히 불교는 형이상학적 자아와 같 은 제일원인이나 원리를 전제하지 않고서 개인의 정체성을 경험의 축적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눈이 본 대상을 먼저 감각 지각하고 개념적 분석을 하는 과정에서 안식 그 자체는 “비구들이여 ‘보는 자’는 생길 때 온 곳이 없고, 사 라질 때 가는 곳이 없다.”고 밝힌 바와 같이 우리의 의식 현상을 작용으로서만 인 정할 뿐이다. 다만 1인칭 의식이 전제된 채로 감각정보에 대해 파악하는 과정이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세계와 감각능력의 상호작용을 거쳐 1인칭 의식이 존 재론적 정당성을 갖는다.

이 글에서는 현전하는 1인칭 의식의 발생 과정과 형이상학적 주체에 대한 요청 없이도 인격동일성을 유지하는 문제를 초기불교의 ‘촉연기’를 통해 살펴보았다. 더불 어 체험주의의 창발 개념을 통해 공간적 경험으로부터 정서적 사회적 이해의 확장 과정으로서 이성의 신체화를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우리의 신체적인 경험으로부터

* 이 논문은 2016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16S1A5A2A02925898)

** 전남대학교 철학과 시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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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활동이 창발한다는 체험주의의 주장과 불교의 촉연기설 모두 무아성을 설명함 으로써 전통적 본질주의 이론을 거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체험주 의 창발과 불교의 촉연기는 철학적 과업으로서 본질주의적 초월과 가치론적 회의를 넘어서 제3지대로서 우리 경험에 관한 포괄적 해명을 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이는 인격동일성에 관한 체험주의와 불교의 입장을 통해 검토하였다.

주제어 : 오온, 연기, 창발, 체험주의, 체화된 인지

1. 서론

이 논문의 목적은 불교가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다른 지식체계들과 양립가능한지 검토하는 일이다. 이는 곧 다른 철학과 마찬가지로 불교 전통이 지금 우리에게 유용한 지식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 밝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영미권에서 등장한 체험주의(experientialism)의 시각과 불교를 비교할 것이 다. 특히 체험주의가 수용한 ‘창발’(emergent) 개념과 불교의 근본 가르침인

‘연기’(緣起 : pratītyasamutpāda) 개념을 비교할 것이다. 연구자가 창발과 연 기 개념을 비교하려는 까닭은 두 개념이 불교와 체험주의의 철학적 입장을 구성하면서 인식과 경험에 관한 포괄적 해명을 가능하게 한다고 보기 때문이 다. 사실 연기와 창발은 상호성에 입각해 전통적인 ‘원인-결과 인과율’(cause- effect casuality)에 근거한 세계 이해방식의 문제점들을 극복하면서, 초월적 실체를 설정하지 않고서도 현상의 발생 원리를 설명할 수 있는 기제다. 따라 서 두 개념은 형이상학적 자아와 실체적 이성 개념을 거부하면서 정신현상의 생물학적 뿌리를 밝힌다는 점에서 오온(五蘊 : pañca-skandha)설과 신체화 된 인지(embodied cognition) 이론의 밑거름이 된다.

물론 연구자는 선행 연구를 통해 불교가 이해한 중생의 괴로움의 원인으로 서 ‘분별’(分別, vikalpa)의 양상과 이를 ‘의미만들기’(meaning making)로 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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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한 인지언어학의 관점을 상호 비교하였다. 그 과정에서 연구자는 논의를 확장하기 위해 반드시 불교와 체험주의의 원형적 사유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현전하는 1인칭 의식의 발생 과정과 형이 상학적 주체에 대한 요청 없이도 인격 동일성을 유지하고 자기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는지 불교의 ‘촉연기’(觸緣起 : (P)phassa-paccayā)를 통해 살펴 보려고 한다. 더불어 창발의 계보학적 흐름을 추적하여 실용주의에서 체험주 의로 이어지는 영미 철학의 사조를 파악할 것이다. 이는 체험주의의 창발 개념을 통해 공간적 경험으로부터 정서적 사회적 이해의 확장 과정으로 이성 의 신체화를 살펴보는 것이지만, 불교의 촉연기설이 지향한 철학적 입장을 찾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체험주의의 창발과 불교의 촉연기설 이 본질주의적 초월과 가치론적 회의를 넘어서 제3지대로서 우리 경험에 관한 포괄적 해명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격동일성’(personal identity)에 관한 체험주의와 불교의 입장을 검토할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체험주의가 객관주의/상대주의 구도를 풀어갈 계기를 우리의 신체적인 경험으로부터 사유활동이 창발하는 과정을 통해 찾았듯 이 본질주의 전통으로서 아트만 이론을 무아성을 통해 거부하면서도 연기 설을 통해 상대주의의 탈출구를 보여준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2. 자연화된 불교 : 1인칭 의식의 연기

우리는 물리적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로서 의식을 뇌와의 관련성 속에 서 파악하는 신경과학과 심리철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사조에 따라 불교 역시 신경과학과 새로운 대화를 모색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불교는 삶에 대한 무수한 탐구를 통해 행복이 단지 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한 다. 이는 신경 상관물로서 의식에 대한 입장인 NCC(Neuronal Correlates of Consciousness)에 대한 불교의 인식론적 관점에서 드러난다. NCC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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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따르면 뇌 속에서 화학적 작용의 변화로 우리의 지각과 감각 따위의 여러 주관적 경험이 이루어진다. 반면 불교는 비물리적인 의식의 생물학적 속성으 로서 메타 의식을 제안한다. 즉 불교의 주장과 신경과학의 연구는 접점과 함께 불일치 역시 드러나고 있다. 다만 현재까지의 결과를 토대로 지금 우리 에게 불교가 제시하는 의미가 무엇이고 미래에는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될지에 대해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불교가 우리에게 유용한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는지 검토할 때이다.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며 접근한 플래나간(O. Flanagan)에 따르면 자연철학으로서 불교를 특징짓는 입장은 “불교가 개념적으로나 동기적으 로 경험주의적 인식론자가 되는 것, 자아이론을 포함한 모든 사물들의 무상 성에 대한 형이상학적 성찰을 얻는 것, 그리고 훌륭한 인간 곧 풍요롭고 행 복하게 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1) 플래나간이 보여준 탐구는 무상성에 대 한 성찰로부터 얻어진 지혜를 갖추고 덕으로서 자애와 연민을 개발하면서 알아차림 명상의 실천으로 구성된 삶을 살 때, 붓다적 에우다니모니아에 부 합하는 풍요로운 인간으로 가는 길에 대한 것이다. 다시 말해 붓다적 에우 다니모니아에 부합하는 인간의 유형이란 대승불교에서 모든 사람이 고통 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원하며,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을 믿음으로써 모든 인 간이 공유하는 인간성에 토대해 자애와 연민을 개발하도록 권하는 윤리적 언명을 실천하는 자다. 이는 개인적 행복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염원하 여 다르마의 길을 가는 보살의 삶이기도 하다.2)

1) 오웬 플래나간, 뺷보살의 뇌뺸, 박병기․이슬비 역, 씨아이알, 2013, p.13 : 플래나간이 시 도하는 자연화된 불교란 자연주의(naturalism)의 입장인 “초자연적인 것에 대하여 어떠 한 언급도 하지 말라(Just say no supernatural)”라는 주장을 따라 윤회와 정토사상과 같은 입장들을 배제하고도 남는 불교교리는 무엇인가를 탐구한 결과다. 아마도 이런 전제를 따라 불교의 자연화를 추구한다면 불교의 인식론과 윤리학이 될 것이다.

2) Ibid., pp.269-276 참조. 플래나간이 ‘덕’(virture)과 행복의 관점에서 불교의 자연주의를 고찰하면서 보여준 불교 덕 윤리의 지평은 불교도와 불교국가를 넘어서 철학으로서 불 교의 가능성을 담보한다. 다만 이 논의가 불교의 역사성과 지역성을 모두 담보하려는 점에서 세밀한 접근이 떨어지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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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학이 탐구하는 개인의 의식과 불교 윤리학이 추구하는 인간 행복 사이에는 자연과학적 접근과 성찰이라는 방법적 차이가 있다. 이는 신경과 학이 f-MRI와 같은 장비를 이용해 인간 의식을 객관화하려 한다면, 불교 윤리학은 1인칭 시점에서 인식주관을 관찰하는 차이다. 따라서 이 둘은 우 리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려한다는 점에서 같은 공유지반을 갖는다. 특히 불교 윤리학은 한 개인의 가치판단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 삶의 전 과정을 관통하는 개체적 특징을 신과의 관계나 우연적인 상황으로부터 찾지 않는다는 점에서 개인을 정의하는 방식이 인도 전통철학과 출발이 다 르다. 이는 인격동일성(personal identity)을 확보하기 위해 인도 절대론 철 학자들이 제시한 아트만(ātman) 이론에 대한 불교의 비판적 입장이 될 것 이다. 불교의 아트만 비판은 현상적 의식의 배후에 항구불변하는 인식주체 즉 형이상학적 실체관념에 대한 것이다. 이 비판은 아트만 없는 인식론을 설명해야 하는 것으로 현상하는 의식의 발생 과정에 대한 논의가 된다. 따 라서 첫째, 1인칭 의식의 출현을 설명해야 한다. 다음으로 형이상학적 실체 관념이 없어도 인격동일성 문제를 담보해야하는 것이다.3) 다시 말해 ‘아트 만 없는 자아관’이란 우리 의식의 기원에 관한 논의이면서 경험의 포괄적 해명에 버금가는 이론이어야 한다.

아트만 없는 자아관 곧 불교의 무아(無我 : anātman)설은 존재론과 가치 론의 측면에서 철학적 의미를 함축해야 한다. 그 함축이란 존재론의 측면에 서는 객관주의 형이상학(objectivist metaphysics)을 거부하는 것이며, 가치 론의 측면에서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것이다. 객관주의 형이상학이란 세계 안에서 스스로의 본유적 혹은 내재적 본성을 드러내는 사물이나 인격을 전

3) 불교의 무아설에 관한 최근의 논의로는 불교학연구회가 2018년 추계학술대회에서 다룬

‘자아와 무아 오해와 진실’이다. 「실천적 무아와 형이상학적 무아」라는 주제로 발표한 임승택은 무아와 윤회 논쟁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후 기존의 연구가 형이상학적 무아에 매몰되면서 무아설의 실천적 의미가 퇴색했다고 지적한다. 필자 역시 무아설은 실체성을 담보하지 않으면서 경험적으로 확인되는 자신에 대한 해명을 함축하고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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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함으로써 닫힌 체계의 성격을 갖는다. 이러한 닫힌 체계의 속성은 우리가 세계 안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가치를 발견하는 방식으로 고정된 도덕 법칙이나 질서를 획득하도록 유도한다. 특히 도덕적 탐구를 할 때조차도 실 제적인 숙고나 반성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게 된다. 이에 대한 비판은 기원 전 6-7세기 무렵 베다의 권위와 바라문교의 전통에 비판적 시각을 가진 일 군의 사상가들의 등장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사상가들은 아트만이나 우주 의 궁극적 실재로서 브라흐만(Brāhman)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도덕적 가 치나 법칙, 인간행위의 결과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으며 우연론을 주장한 다. 이러한 전통은 유물론자, 즉 짜르바까(Cāravāka)라고 불리는 학파에 의 해 심화되고 체계화된다.4) 따라서 객관주의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은 불교 이외에 짜르바카도 진행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인간의 노력을 부정하고, 도 덕적이며 정신적인 영역에서도 인과성을 부정한 가치론적 허무주의로 전 락한다. 따라서 객관주의 형이상학으로서 아트만류의 이론을 반대하더라도 짜르바까와 같이 가치론적 허무주의가 될 수 있다.

결국 불교가 아트만류의 객관주의 형이상학을 비판하지만 짜르바까와 같 은 가치론적 허무주의로 전락하지 않기 위한 대안 이론을 제안하는지 들여다 보아야 한다. 이는 자연세계에 대한 우리의 감각적 경험과정을 살펴보면서 현전하는 1인칭 의식의 발생 과정을 들여다보아야 알 수 있다. 1인칭 의식의 발생은 감각적 지각과 인식의 과정을 설명하는 맥락에서 등장한다. 특히 이 논의는 SN 35, 23(sabba-sutta :뺷잡아함 319경뺸)에서 인식 주관과 객관에 관한 논의를 통해 자연세계와 인식하는 자의 관계를 설정하면서 시작하는 것으로 보인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일체인가? 눈과 형색,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감촉, 의와 법, 이를 일러 일체라 한다.5)

4) S. C. 차르테지․D. M. 다타, 뺷학파로 보는 인도사상뺸, 김형준 역, 예문서원, 1999, pp.93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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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눈, 귀, 코, 혀, 몸, 의(眼耳鼻舌身意) 여섯 가지는 내입처(內入 處)로 보는 나 ‘자아’이고, 형색, 소리, 냄새, 맛, 감촉, 법(色聲香味觸法) 여섯 가지는 외입처(外入處)로 보이는 ‘자연세계’이다. 우리는 우리의 감각능력으 로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체험하고, 그리고 사유하는 신체적 조건 을 통해 그 대상들로서 사물, 소리, 향기, 맛, 신체적 접촉, 그리고 사유의 대상을 자연세계로 인식한다.6) 이는 우리가 자연세계를 물리적 세계로서 감각적으로 지향하는 구조다. 이러한 이원적 구조에서 우리의 인식능력이 자연세계와 상호작용을 통해 자연세계를 더욱 섬세하고 정밀하게 분별하는 과정으로 나아간다. 아함과 니까야에는 이러한 인식능력이 정밀하게 되는 양상을 십팔계설로 제시한다.7)이중표에 따르면 십팔계는 자연세계를 형태 나 소리 등을 통해 인지한다고 생각하는 망념(외입처)과 이를 지각하는 자아 가 있다는 망념(내입처)을 가지고 육식이 연기하여 나타난 의식구조다. 이 경우 십팔계의 구조에서 대상을 경험하는 것을 촉(觸 : phassa)이라고 부르

5) SN Ⅳ, p.15 : Kiñca bhikkhave sabbaṃ: cakkhuñceva rūpā ca sotañca saddā ca ghānañca gandhā ca jivhā ca rasā ca kāyo ca phoṭṭhabbā ca mano ca dhammā ca idaṃ vuccati bhikkhave sabbaṃ.

뺷잡아함 319경뺸 뺷大正藏뺸 2, p.91a :

“소위 ‘一切’라고 하는데 ‘일체’는 무엇인가? 일체라는 것은 12입처이다. 안색이성비향 설미촉의법(眼色耳聲鼻香舌味身觸意法)을 일러 일체라고 한다.”

所謂一切者 云何名一切 佛告婆羅門 一切者 謂十二入處眼色耳聲鼻香舌味身觸 意法 是名一切。

6) 뺷大正藏뺸 2 : p.18a. 유사한 구절이 DN II 63에서 발견된다(Schmithausen 1987 : n. 238 참조).

7) 이중표, 뺷붓다의 철학뺸, 불광출판사, 2018, 233~243면 참조: 뺷잡아함 452경뺸은 십팔계 의 구조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뺷잡아함 452경뺸 뺷大正藏뺸 2, 118a.

“갖가지 계를 인연하여 갖가지 촉이 생기고, 갖가지 촉을 인연하여 갖가지 느낌이 생 기며, 갖가지 인연이 있어서 인식이 생긴다. 어떤 것이 갖가지 계인가. 이른바 열여덟 가지 계로서 눈의 계, 색의 계, 안식계(眼識界) …… 내지 의계, 법계, 의식계(意識界)이 니 이것을 갖가지 계라 한다.”

緣種種界生種種觸 緣種種觸生種種受 緣種種受生種種愛。 云何種種界? 謂十八 界眼界色界眼識界 乃至意界法界意識界是名種種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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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여기서 괴로움과 즐거움이 발생한다.8)

시감각과 형상을 조건으로 안식이 생겨난다. 세 가지가 화합하여 촉이, 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생겨난다. 이것이 괴로움의 발생이다.9)

십팔계란 자연세계를 구성하는 경험들로 생각되는 형색, 소리, 냄새, 맛, 감촉, 법계와 자신의 신체를 구성하는 경험으로 생각되는 눈, 귀, 코, 혀, 몸, 의계들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눈을 통해 시각정보를 수용했을 때, 이를 바라보는 주관적 의식이 인식주체로 간주되는 경험의 축적으로서 안식계 (眼識界)부터 분석/종합판단 하는 사유의 과정을 인식주체로 간주하여 이 를 축적하는 의식계(意識界)를 구성한다. 십팔계는 이렇게 여섯 가지 외입 처와 내입처를 인연으로 감각정보를 의식의 대상으로 삼을 때, 관련 정보를 해석하는 인식이 발생하면서 나타나는 경험의 종합적 축적과정으로 초기 불교의 경험에 대한 포괄적 해명을 위한 개념으로 보인다.

이상의 설명을 따라가면 인식주관으로서 의식이 자연세계를 대상화하는 것은 보편적 현상으로 우리 스스로 인식주체를 고려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이러한 인식주관은 인식객관과 상호작용으로 경험을 축적하면서 인식객관 을 각양각색의 존재의 세계로 차별화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이는 경험 축적의 과정이지만, 우리의 1인칭 의식 출현에 관한 상황을 묘사하는 논의 는 아니다. 오히려 1인칭 의식의 발생론적 순서를 보자면, MN 18. 꿀 덩어 리 경(Madhupiṇḍikasutta)에서 소개하는 ‘촉’의 발생을 살펴보아야 한다.10)

8) 이중표, 「근본불교에서 일체의 의미」, 뺷한국교수불자연합학회지뺸 18호, 116~117면 참조.

9) SN Ⅳ, p.86 : Cakkhuñca paṭicca rūpe vuppajjati cakkhuviññāṇaṃ, tiṇṇaṃ saṅgati phasso, phassapaccayā vedanā, vedanā paccayā taṇhā, ayaṃ dukkhassa samudayo.

10) 촉연기에 관련한 니까야의 논의로는 ‘브라흐마잘라 숫타’ Brahmajāla Sutta와 ‘빠싸디 카 숫타’Pāsādika Sutta가 있다. 두 경에서는 모순 대립하는 형이상학적 쟁론이 생길 수밖에 없는 우리의 인식 구조를 육촉연기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아함에서도 촉연기에 관한 논의를 다룬다.

뺷잡아함 306경뺸 뺷大正藏뺸 2, 87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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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자들이여, 시감각과 형상을 조건으로 안식(眼識)이 생겨난다. 세 가지의 부딪 힘이 촉(觸)이다. 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 느끼는 것을 인식한다(sañjānāti).

인식하는 그것을 사유한다(vitakketi). 사유하는 그것을 희론한다. 희론하는 까닭 에 그 사람에게 희론(papañca)에 의한 인식과 관념이 생겨난다.11)

먼저 시감각(眼)은 감각기관으로서 시각능력을 의미하고, 형상(色)은 자 연세계에 속하는 존재 일반에 관한 것으로서 감각기관이 지각하는 대상이 다. 지각대상으로서 자연세계와 건강한 시각능력이 상호작용하여 대상을 분별하는 안식(眼識)이 생긴다. 즉 우리가 봄으로써 생긴 의식이 안식이고, 들음으로써 생긴 의식이 이식(耳識)이며, 냄새 맡음으로써 생긴 의식이 비 식이고, 맛봄으로써 생긴 의식이 설식(舌識)이다. 그리고 만져봄으로써 생 긴 의식이 신식(身識)이고 생각함으로써 생긴 의식이 의식(意識)이다. 따 라서 인식이란 일반적인 오감에 생각을 더한 여섯 기능을 통해 시작한다.12) 이 맥락에서 인식은 감각기관을 사용함으로써 획득하는 것이지, 어떠한 신 성한 원천으로부터 오는 것이 절대 아니다. 여기에서 주의해서 보아야할 것 은 우리에게 현전하고 있는 현상적 의식은 자연세계와 시각능력의 상호작 용에 따라 연기한다는 사실이다. 비록 안식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시각정보

“두 가지 사태(二法)가 있나니 무엇이 그 두 가지인가? … 시감각(眼)과 형상(色)이 두 가지 사태이다. … 시감각과 형상을 인연하여 안식(眼識)이 생기고, 이들 셋이 화합 한 것이 촉(觸)이다. 시감각과 형상을 조건으로 안식이 생긴다. 이 세 가지 사태의 화합 이 촉이다. 촉과 함께 느낌(受)와 상념(想)과 의도(思)가 일어난다.”

有二法。 何等為二 眼色為二 …… 眼色緣生眼識 三事和合觸 觸俱生受想思。

11) MNⅠ, pp.111-112. Cakkhuñcāvuso paṭicca rūpe ca uppajjati cakkhuviññāṇaṃ. Tiṇṇaṃ saṅgati phasso. Phassapaccayā vedanā. Yaṃ vedeti, taṃ sañjānāti. Yaṃ sañjānāti taṃ vitakketi. Yaṃ vitakketi taṃ papañceti. Yaṃ papañceti tato nidānaṃ purisaṃ papañcasaññāsaṅkhā samudācaranti

12) 뺷잡아함 335경뺸 뺷大正藏뺸 2, 92c:

“시감각(眼)이 생길 때 오는 곳이 없고 소멸할 때 가는 곳이 없다. 이와 같이 시감각은 진실이 아니지만 생겨나고 생겨났다가는 소멸하는 것으로 업보는 있지만 작자는 없다.”

眼生時無有來處 滅時無有去處 如是眼不實而生 生已盡滅 有業報而無作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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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분석할 수 있는 인식능력으로서 1인칭 의식의 출현을 보여준다.13)다시 말해 1인칭 의식의 능력은 제6의식이라는 별명을 통해 분석/종합판단 할 수 있는 능력을 특징화한 셈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감각정보를 분석할 수 있는 다섯 가지의 인식능력이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는 의식의 다양한 양상 가운데 지각에 대한 분별능력을 구분하는 방식일 뿐이다. 즉 인식주체 가 인식능력을 보유하고 그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 지각행위가 인식능력을 발현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는 앞서 아트만 비판의 일환이 면서 현전하는 1인칭 의식의 발생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우리 자신이 아트만을 전제하지 않고도 현전하는 1인칭 의식의 발현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현전하는 1인칭 의식의 실체성 여부와 물리적 환원 가능성 여부를 물어야 한다. 특히 우리는 연기라고 알려진 개념의 일반적 의미가 어떤 것도 독자적 인 개체성 즉 실체성을 갖지 않는다는 언명에 다름 아님을 알고 있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 이것이 발생하면 저것이 발생한다. 이것이 없으 면 저것이 없다.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이 소멸한다.”14)

연기 곧 차연성(idapaccayatā)으로서의 그 의미가 확장되어 존재 의식 현 상에 관한 분석을 넘어 존재 일반에까지 적용가능하며, 의존적 관계를 통해 실체성을 배제한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15)결국 1인칭 의식 현상 역시

13) R. 곰브리치, 뺷곰브리치의 불교강의뺸, 송남주 역, 불광출판사, 2018 pp.282-283.

14) SN. II. p.28, p.65, p.70, p.95 등: imasmiṃ sati idaṃ hoti, imass uppada idaṃ uppajjati.

Imasmim asati idam na hoti, Imassa nirodhā idaṃ nirujjhati.

15) 다만 연기에 대한 크게 두 가지 해석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다른 용례를 볼 필요가 있다.

촉연기를 포함하는 연기설은 전통적으로 차연성으로 정의한다. 또한 연기 지분(支分)들 의 상호성을 보여주는 경전적 전거로서 SN Ⅱ. 113이 있다. 여기에서는 꼿띠따(Koṭṭhita) 와 사리뿌뜨라(Śāriputra)의 토론을 통해 식과 명색의 관계를 갈대단의 비유로 보여준다.

인과의 요소들을 순서대로 열거하지 않고 명색은 식을 조건으로 하여 발생한다고 말한 후에, 거꾸로 선회하여 다른 한편으로는 식이 명색을 조건으로 하여 발생한다고 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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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실체성으로서 아트만 없는 의식이다.

3. 체험주의 : 창발적 자연주의의 등장

창발적 속성에 관한 사유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의 뺷형이상학뺸에서 부터 시작되었다.16)아리스토텔레스는 다양한 사태의 원인을 질료인과 형상 인의 관계로 설명하면서 ‘전체(형상)는 부분(질료)의 합보다 크다’고 생각한 다. 다만 그는 가능태로서 질료와 현실태로서 형상이 최종적인 단계에서 동일 한 것으로 보았으며, 가능태에서 현실태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운동 이외에 다른 원인을 구하지 않으려 한다.17)창발적 속성에 관한 사유방식이 직접적 으로 우리의 피부에 와 닿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랜 시간이 경과하여 20세기에 와서 선형적 원인-결과 인과율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의 특징을 ‘창발현 상’으로 정의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특히 창발은 1920년대와 30년대 생물학ㆍ 심리학ㆍ사회학 등을 중심으로 한 진화론자들의 주된 주장으로, 기본적인 물리-화학적 과정이 어떤 복잡한 단계에 도달하면 완전히 새로운 특성(정신 적 속성)이 나타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는 ‘전체는 전체는 전체는 전체는 부분의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로 부분의 부분의 부분의 합보다 합보다 합보다 합보다 크다크다크다크다 요약되며, 구성 요소들이 집합을 구성할 때, 구성요소 단계에서 보이지 않던

있다. 연기 지분 속에서 명색과 식의 상호관계가 크게 강조되고 있는 데, 이는 의식의 존재론적 실체성을 배제하면서 가치론적 우월성조차 거부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조건은 12지의 맥락에서 식을 존재론적 생기의 측면에서 다루는 것이다. 여기서는 식을 6식으로서 설명하지 않고, 현재세의 첫 찰나로서 과거세와 현재세를 연결시키는 결과로 서 간주한다. 이때 식은 모태에 들어간 것으로서 ‘상속 속에서 생겨난 식’, 즉 相續識 (pratisandhi-vijňāna)이다. 이 논의는 12지의 맥락에서 식을 존재론적 생기를 다루다보 니 아비다르마 불교 시대에 다양한 해석이 등장한다. 여기에서는 12연기에 관한 논의는 논외로 한다.

16) http://classics.mit.edu/Aristotle/metaphysics.8.viii.html "… the totality is not, as it were, a mere heap, but the whole is something besides the parts …", i.e., the the the the whole the whole whole whole whole is

is is

is greater greater greater greater than than than than the the the the sum sum sum sum of of of of the the the the partspartspartsparts is greater than the sum of the parts.

17) Aristotle, Metaphysics, 김진성 역, 이제이북스, 2007, 1045a 8-1045b 2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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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현상이 집단에서 나타난다. 이런 점에서 창발현상은 전체적인 의도를 가지고 세세하게 조직된 현상이 아니다. 창발현상의 직접적인 사례를 들면 물은 구성요소인 산소와 수소에 없는 액체성이 창발하고, 암모니아는 구성요 소인 질소와 수소에 없는 자극적 냄새가 창발한다. 또한 전체의 속성은 부분 들의 속성의 선형적 총화라는 ‘환원주의’(reductionism)를 거부한다.18)

특히 서구철학사에서 창발 개념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자연주의적 형이 상학자인 듀이(J. Dewey)로부터다. 듀이에게서 창발 개념은 경험이 자연으 로부터 등장하므로 자연과 연속적이며 동시에 경험은 자연의 범위 안에 포 함된다는 ‘연속성’(continuity)을 표현하면서 나타난다. 이 연속성의 원리에 따르면 경험은 자연적인 것으로부터 관념적인 것이 발생하는 환원할 수 없 는 선형성을 내포하고 있다.

자연주의적이라는 용어는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여기에서 사용된 그 말은 한 편으로는 탐구작용과 생물학적 물리적 작용 사이에 연속성의 훼손이 없다는 것 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연속성’은 이성적 작용들이 유기적 활동으로부터 성장하지만 창발하는 그것과 동일성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다.19)

따라서 듀이가 생각한 창발은 ‘연속성’이다. 연속성은 덜 복잡한 자연 형 태와 더 고등하고 더 복잡한 형태를 연결해주는 일련의 과정이다. 새로운 성질과 기능의 창발에는 선행하는 형태와 기능 사이에 완전한 단절이 없다.

다시 말해 이전의 형태와 새로운 형태 사이에 밀접한 연관이 있다. 다만 듀 이 당시에는 경험과 자연,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의 연속하는 관계를 연속성의 원리로 설명하지만 정신이 몸의 활동으로부터 창발하는 방식을

18) 윤영수ㆍ채승병, 뺷복잡계 개론뺸, 삼성경제연구소, 2005, 91~96면 참조. 스티브 존슨, 뺷이머전스뺸, 김한영 역, 김영사, 2004 참조: 현재 창발은 철학, 복잡계(complexity system) 이론, 과학, 예술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채용한 개념이다.

19) John Dewey, Logic : The Theory of Inquiry : The Later Works, 1925-1953, Vol. 12.

ed. Jo Ann Boydston, Southern Illinois University Press, Carbondale, Ⅲ., 1991,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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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설명하진 못했다.20)

이후 창발 개념은 2세대 인지과학자들에게도 주요한 철학적 개념으로 기 능하였다. 특히 바렐라(F. Varela)와 톰슨(E. Thompson)은 ‘창출행위이론’

(enactivism)을 제시한다. 톰슨에 따르면 우리의 정신 현상이란 ‘신체화된 마음’(embodied mind)으로 인식주체 없는 인식 행위다.21)그들의 창출행위 이론 역시 창발 개념을 수용하였으며 이에 바탕하여 우리의 기억과 지각된 내용을 대조하고 분석한다. 이를 통해 정확한 인식을 구성하는 전 과정에 통합의 기능을 수행하는 상위의 인식 기능이 있다고 간주한다. 이때 각각의 뉴런들은 하나씩 따로 떼어 생각하면 미미한 것이지만, 두뇌활동의 총체적 인 패턴으로 분명히 참여하고 있다. 이 점에서 시각 대상 또는 시각 정보 파악의 기본적 기재는 ‘뉴런들의 조화적 협력체의 총합적 상태’의 창발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인지란 단순한 구성단위들의 연결망에서 통일된 전체 상 태가 창발되는 것이며, 인지활동은 각각의 구성단위들의 작동을 규정하는 국부적인 규칙이나 구성단위들 사이의 연결 강도를 조정하는 규칙에 의해 서 가능하게 된다.22)

20) S. M. 에임즈, 뺷실용주의뺸, 조성술ㆍ노양진 역, 전남대학교출판부, 1999, pp.55-56 참조:

연속성 이외에 ‘상호작용’(transaction)이 창발의 또 다른 특징이다. 예를 들어 씨앗이 식물이 되는 과정을 발달(development) 또는 성장(growth)이라고 한다. 이때 식물에 나타난 새로운 구조들은 환경과의 새로운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다. 이러한 관점을 듀이 의 경험에 적용하면 인간은 생물학적 본능을 문화적 경험으로 변형시킬 수 있으며, 자연 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더 새롭고 더 복잡하고 더 높은 층위의 환원 할 수 없는 경험의 내용을 갖게 된다.

21) 에반 톰슨, 뺷생명 속의 마음뺸, 박인성 역, 도서출판 b, 2016, pp.37-40 참조.

22) 프란시스코 바렐라 외, 뺷몸의 인지과학뺸, 석봉래 역, 김영사, 2016, pp.166-175 참조:

안토니오 다마지오, 뺷스피노자의 뇌뺸, 임지원 역, 사이언스, 2007, 참조. 특히 현대 인지과 학은 인지 활동에 의해 구성된 마음에 대한 실험을 통해 연구 가설들을 검사한다. 연구 가설에 따르면 사람들은 지각ㆍ사고ㆍ판단ㆍ행위를 하는 동안 정보를 처리하는 각 부분 의 체계를 가지고 있고, 정보처리 체계에서 각 부분들은 전체의 복잡한 구조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대표적 가설로서 몸과 뇌는 서로 합쳐져 생명체를 이루며, 화학적-신경적 경로를 통해 완전하게 상호작용한다. 또한 뇌의 활동은 일차적으로 생물의 신체 내부의 기능을 조율하고, 생명체와 외부 환경의 물리적-사회적 측면간의 상호작용을 조절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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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체험주의를 표방하는 레이코프(G. Lakoff)와 존슨(M. Johnson)은 듀이의 연속성의 원리를 수용하여 경험이 신체로부터 발생하여 사유로 확 장하는 방식을 해명한다.23)이 해명에는 과거 듀이가 몸의 활동을 통한 마 음의 창발을 마치 도토리가 자라 떡갈나무가 되는 것과 같은 비유로밖에 설명할 수 없었던 상황과 달리 경험과학적 성과에 의존할 수 있는 새로운 상황을 전제한다.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에게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사물들을 경험하도록 해주 는 것은 바로 우리의 숨은 개념적 기제들, 예를 들어 영상도식, 은유, 다른 신체 화된 상상적 구조 등을 비롯한 기제들이다. 달리 말하면 우리의 인지적 무의식 은 개념화할 때 뿐만 아니라 우리가 경험하는 바로서의 우리의 세계를 창조할 때도 또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은 중요한 경험적인 발 견이었으며, 이 현상이 정말로 얼마나 광범위한지를 발견하는 것도 미래의 연구 에 똑같이 중요한 영역이다.24)

레이코프와 존슨은 마음을 세계와 상호 작용하는 몸에 대한 관계를 통해 이해한다. 체험주의는 신체화된 인지 이론을 토대로 신경 구조화된 색채 개 념’(color concepts), ‘기본층위 범주’(basic-level categories), 그리고 ‘공간관 계 개념’(spatial relation concepts)을 통해, 개념이 외적인 실재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감각운동계의 일부이거나 그 운동계를 이용하는 신경구 조라는 점을 설명하였다.25)철학적으로 감각운동계에 의한 이성 또는 마음의 신체화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사용하는 개념들과 우리의 사고 능력은 우리의 두뇌, 몸, 그리고 신체적 상호작용의 본질에 의해 형성된다는

써 생물의 생명활동을 돕는다.

23) G. Lakoff, Women, Fire, and Dangerous Things,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7),

ⅹⅴ. 레이코프는 이 책에서부터 자신들의 새로운 견해를 체험주의(experientialism)로 부른다.

24) G. 레이코프 & M. 존슨, 뺷몸의 철학뺸, 임지룡 외 역, 박이정, 2005, p.737.

25) Ibid., pp.82-8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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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에서 신체화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즉 몸과 분리되어 있는 마음은 없으며, 몸 또는 두뇌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사고도 없다.26)

체험주의가 주장하듯이 우리가 사용하는 개념들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식과 잘 합치할 수 있는지 들여다보아야 한다. 즉 우리의 정서 적 사회적 영역의 경험이 공간에 대한 감각운동을 통해서 얻어진 경험을 토대로 추상화된 사유 활동도 이해 가능한지 묻는 것이다. 공간에 대한 감 각운동으로 획득한 의미는 정서적 사회적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마음의 신 체화가 이루어지는 배경이다. 신체화의 한 사례로서 체험주의가 주장하는 공간적 개념으로서 ‘안’in이 획득한 은유적(metaphorical) 개념을 살펴보자.

Harry is in the kitchen. 해리는 부엌 안에 있다.

Harry is in the Elks. 해리는 엘크스에 가입되어 있다.

Harry is in love. 해리는 사랑에 빠져있다.

공간적 사회적 정서적 영역의 경험에서 어느 것도 다른 것보다 경험적 우위성을 지는 것은 아니지만 개념적 구조화의 과정은 차이가 난다. 먼저 첫 번째 문장의 in은 공간적 경험으로부터 직접 창발하는 ‘창발적 개념’이 다. 두 번째 문장은 ‘사회적 집단은 그릇’ 은유의 실례로 사회적 집단의 개 념을 공간화를 통해 다루도록 해준다. 즉 하나의 창발적 개념 in과 사회적 집단과 정서적 상태를 정의하는 은유적 개념을 갖는다.27)

사실 객관주의 표상이론은 우리의 감각 인상과 개념을 전혀 다른 두 가지 사물이라고 생각해왔다. 이 관점에 따르면 감각은 외부 세계가 우리의 감각기 관에 영향을 미칠 때 발생하는 지각적 소여인데 반해, 개념은 우리의 감각을 통해 무엇이 주어지는지 인식하도록 마음이 제공하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26) Ibid., p.389.

27) G. 레이코프 & M. 존슨, 뺷삶으로서의 은유뺸, 노양진․나익주 역, 서광사, 2004, pp.99 -10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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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대 감각 인상, 마음 대 몸이라는 이원론을 갖게 된다.28)반면에 체험주의 는 유기체-환경 상호작용을 통해 개념체계의 형성과정으로서 신체화된 인지 이론을 제안한다. 이 이론을 통해 체험주의는 개념적 사유와 지각작용이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며, 개념이 외적인 실제를 반영하는 것도 아니라는 입장을 취한다. 이를 통해 객관주의 표상이론이 토대한 개념 대 감각 인상, 마음 대 몸이 대응하는 이원론을 거부할 수 있었다. 이는 개념의 기호적 기능을 신체와 정신을 가진 사용주체가 환경 세계와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획득 한 전달 수단으로 파악하였기에 가능하다.29)체험주의는 한쪽에서 객관주의 를 거부한다면 다른 한쪽에서는 상대주의를 극복하려고 한다. 주관주의는 모든 경험은 자연적 구조를 갖지 않는다는 가정에 따라 의미와 진리에 대한 자연적인 외적 제약이 있을 수 없다는 기본적 가정에 의거한다. 즉 개인에게 있어서의 의미란 나에게 중요성(significance)을 갖는가의 문제로 본다. 이 문제에 대한 반론으로 체험주의는 의미가 항상 어떻게 한 개인에게 있어서 의미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다시 말해 개인에게 있어서의 의미가 가능할 수 있는 중요성을 갖는다는 뜻은 체험적 게슈탈트를 통해 구성한 내적 정합성 의 체계에서 이루어지는 이해(understanding)의 과정이다.30)

체험주의는 객관주의/상대주의 구도를 풀어갈 계기를 우리의 신체적인 경 험으로부터 사유활동이 창발하는 과정을 해명하면서 제3의 지대를 모색한다.

그들이 모색하려는 제3지대는 진리와 사실적 지식에 대한 객관주의의 관심인 우리의 물리적 문화적 환경 안에서 성공적인 활동에 대해 관심을 갖지만 근본적인 논점에 있어서 다르다. 즉 진리는 항상 이해에 상대적이며, 이 이해 는 비보편적인 개념체계에 근거한다. 다만 객관성은 여전히 가능하지만 지식 의 문제이든 가치의 문제이든, 객관성은 여전히 개념체계와 문화적 가치체계

28) G. 레이코프 & M. 존슨, 뺷몸의 철학뺸, pp.149-155 참조.

29) 김현구, 「분별에 관한 인지언어학적 접근」, 뺷불교학보뺸, 불교문화연구원, 2015년 7월, 116~117면.

30) 뺷삶으로서의 은유뺸, 273~275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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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상대적이다. 더불어 절대적 진리에 대한 객관주의의 집착이나 상상력은 전적으로 무제약적이라는 주관주의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개인에 게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설명한다.31)

체험주의의 주된 주장은 객관주의/상대주의 구도에서 만들어진 장막을 걷 어내고 우리 경험에 대한 구체적 해명을 통해 드러난다. 이들의 해명은 자연 주의적 경향과 맞닿아 있다. 카로(Caro)와 맥아더(Macarthur)는 자연주의를 모든 초자연적인 실재나 사건, 능력을 거부하는 입장으로 과학적 자연주의 (scientific naturalism)와 개방적 자연주의(liberal naturalism)로 구분한다.

그들이 구분한 개방적 자연주의는 듀이가 창발을 통해 상위적 질서의 발생을 설명하면서 그 하위의 지반으로 환원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입장에 해당한 다.32)레이코프와 존슨은 신체적/물리적 층위의 경험은 은유, 환유, 심적 영 상, 원형효과 등의 기제를 통해 정신적/추상적 층위의 경험으로 확장한다고 주장한다. 이 확장은 상상적(imaginative)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비법칙적 이며, 산술적 환원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함축한다. 노양진은 이러한 체험주의 를 창발적 자연주의(emergentistic naturalism)라고 부른다.33)

4. 체험주의와 불교 : 인격동일성의 문제

이제 우리는 인간이 독립적인 선험적 정체성을 지니고, 나아가 자신과 거리 를 갖는 선택들을 추구하는 모종의 고정된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통해 전통적 객관주의가 이상화한 사유를 거부한다. 대신 우리는 지속적인 반성과 행위의 과정 속에서 정체성을 창발하고, 또 그 정체성이 지속적으로 변형되는

31) Ibid., pp.274-277 참조.

32) Mario de Caro & David Macarthur, “Introduction : Science, Naturalism, and the Problem of Normativity,” in Mario de Caro & David Macarthur, eds., Naturalism and Normativity(New York :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0), p.3.

33) 노양진, 뺷철학적 사유의 갈래뺸, 서광사, 2018, 213~214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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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 속의 존재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우리의 행위는 우리가 누구인가를 표현 하며, 그것은 또한 동시에 우리 자신을 변형시킬 수 있다. 체험주의에 따르면, 우리는 ‘과정적 자아’(self-in-process)이며, 그러한 자아는 지속적으로 그 정 체성을 탐색하며, 동시에 스스로 무엇이 될 것인지에 대한 상상적 이상들에 부합하게 자신을 형성하려고 하는 자아다.34)우리의 낱낱의 경험은 그 자체 로 의미 축적의 과정이며, 기억을 통해 그 내용들을 보존한다. 그러한 점에서 우리는 항상 새로운 경험을 분석하고 종합하는 주체이며, 신체라는 공간적 점유물을 통해 그 정체성을 유지한다. 이러한 경험 축적의 메카니즘이 타인과 의 의사소통의 과정에서 의미 파악의 주요한 배경이 된다. 즉 자신이 의미화 하는 방식과 유사하게 타인도 의미화할 것이라는 상대적 이해는 폐쇄된 개인 의 자기 확장 방식이다. 또한 자기 확장의 과정은 지적, 미적, 사회적, 영적 그리고 도덕적 자기화의 과정으로서 복잡한 적응 과정을 거쳐 품성의 발달과 타인과의 관계 확장 그리고 각자의 삶의 의미와 평안의 가능성을 실현해가는 건설적 해결 능력을 요청한다. 체험주의는 이 건설적 해결 능력이 도덕적 숙고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며 우리의 도덕성은 결국 경험의 모든 측면에 편재 해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주장에 따르면 본질적인 합리적 본성을 가진 개별적인 형이상학적 실재로서 객관주의적 자아는 없다.35)

초기불교도 개인의 정체성을 감각에서부터 사유로 이어지는 일련의 심리 적 흐름을 통해 우리의 개체성을 확인하는 입장이다.36)다시 말해 자연세계 와 교류하는 인식의 주관성이란 자신의 동일성을 확보하고 구조화하면서

34) 마크 존슨, 뺷도덕적 상상력뺸, 노양진 역, 서광사, 2008, pp.306-308 참조.

35) Ibid., p.328.

36) 이러한 지속적 심리적 흐름을 후대 유식학파는 상속(相續, saṁtāna)에 관한 개념으로 표현한다. 상속에 관한 사유는 뺷구사론뺸에서부터 기원하지만 전통적으로 아비달마 불교가

‘찰나’(kṣaṇa)라는 최소 시간 동안 우리의 의식이 지속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무아성만 을 확보했다면, 바수반두의 경우 개체의 의식 활동들이 단락적인 사건이라는 관점에서 무아성을 견지하면서도 상속이라는 개념을 통해 의식 연속성이라는 입장에서 개체의 동일 성을 확보한다. 이러한 사유의 이면에는 인식주체를 전제하지 않고 신체적 활동의 결과 인식이라는 주관성이 자신의 총체적 경험의 여력으로 성립한다는 것을 적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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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된 경험의 여집합과의 관계 안에서 정립할 수 있다. 여기에서 인식의 주관성이란 개인 서사(narrative)의 총합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의미화하는 여정이므로 체험주의가 주장하듯이 과정의 연속인 셈이다.

체험주의는 형이상학적 주체를 거부한 이후 인격동일성을 갖춘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방식으로 도덕적 주체성에 대한 탐구를 시도한다. 즉 자 연세계를 파악하고 분석하여 경험 내용의 사실 여부를 물을 때, 우리 의식 의 주체적 역할에 대해 형이상학적 지위를 부여할 순 없더라도 윤리적 책 임주체로서의 설정이 요청된다. 또한 이 도덕적 주체는 ‘도덕적 숙고’가 개 인의 서사들에 의해 구조화되는 방식을 이해함으로써 더욱 분명히 밝힐 수 있다.37)왜냐하면 우리는 당면한 현재 안에서 우리의 상황을 좀 더 의미 있 고 통제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혼란과 불투명성을 제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수단으로 도덕적 이상, 모범적인 사례, 신화, 역사의식 등을 사용한다. 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가능한 최선의 것 을 추구하기 위해서 더 나은 것이 무엇인지를 추론한다는 의미다. 우리는 고정된 도덕 규칙, 즉 사람들이 축적한 지혜들을 단순히 따르는 것이 아니 라 그것을 도덕적 숙고의 과정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도덕적 추론 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다.38)

체험주의에 따르면 우리의 정체성은 시간 속에서 점진적으로 창발하여 다양한 단계를 거쳐 발전하는 도덕적 주체로서 물리적 대인관계적 문화적 상호작용 과정의 창발적 구조다.39)과거의 이론은 체험주의 견해와는 다르 게 탈시간화를 통해 항구적 관점의 도덕성 이론을 추구하였다. 체험주의는 인간은 시간적 존재이며 서사적 존재40)라는 관점에서 도덕적 숙고 또는 지 성적인 도덕적 결단을 위해 필요한 인지적 배경을 설명한다. 정의(justice)

37) 마크 존슨, op. cit., p.313.

38) Ibid., pp.364-369.

39) Ibid., p.332.

40) Ibid., p.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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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예로 들면, 어린이들은 정의라는 개념을 추상적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공정하거나 불공정한 분배에 대한 경험의 원형적 상황들을 통해 배운다. 이 경우 정의의 원형적 상황이란 처칠랜드(P. Churchland)가 제안한 어린이들 이 사회적 상황에서 습득하는 금지와 권장을 위해 사회가 일반적으로 반응 하고 그들에게 반응하도록 기대하는 방식들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어린이 들은 다양한 방식들을 인식하는 법을 배운다. 이러한 원형적 상황들이 구체 적 상황의 감정적 측면을 수반하기 때문에 우리 행위의 동기가 된다. 또한 그 원형들은 유연하기 때문에 그 의미를 변화시키는 일련의 상상적 비법칙 적 확장을 거친다. 특히 특정한 원형의 의미나 핵심은 부분적으로 그 원형 을 포괄하는 다양한 서사적 맥락에 의존하게 될 것이며, 더불어 개인의 경 험 안에서 원형이 비롯되는 방식에 있어서나 현재 전개되는 방식에 있어서 서사적 맥락에 의존한다.41)

우리는 어떻게 행위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상황들을 매순간 직면하며, 우 리의 행위란 선택의 결과들이다. 다시 말해 행위 그 자체가 가치 판단의 연 장이다. 체험주의는 가치 판단의 상황에서 상상적이며 비법칙적인 차원의 은유가 작동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2절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이 은유는 보편적인 신체적 체험적 구조인 원천영역과 이를 근거로 정의와 같은 추상 적 개념을 이해하는 우리의 개념 확장 방식이다. 결국 우리의 감각운동계가 우리의 개념들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우리가 사용 하는 개념들은 외부의 객관적인 실재의 직접적 반영일 수 없다. 우리의 삶 을 규정해주는 은유들, 또 다른 사람들의 삶을 규정해 주는 은유들에 대한 그러한 지식은 우리의 도덕적 주장에 대한 겸양과 도덕적으로 가능한 삶의 방식의 다양성에 대한 인식을 산출한다.42)

마찬가지로 불교의 윤리적 언명은 개인적 행복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염원하여 다르마의 길을 가는 보살의 삶으로 확장한다. 다만 개인적 행복으

41) Ibid., pp.380-383.

42) G. 레이코프 & M. 존슨, 뺷삶으로서의 은유뺸, pp.82-84 : 389.

(21)

로만 국한해야 타인 또는 자연세계와 상호소통의 과정에서 만들어져가는 개인의 역사가 도덕적 숙고의 과정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개인의 역사는 형이상학적 자아관념 없는 우리의 신체라는 공간에서 1인칭 의식의 출현이 후 지속되는 선택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의미 축적을 통해 개인 서사를 이어가는 자신을 인격동일체로 불러야 한다.

초기불교의 경우 개인 서사 과정에서 일회적 경험을 ‘촉연기’를 통해 섬 세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때의 경험이란 감각적 지각으로 출발해 반드시 감 각자료와 더불어 인식적 대응이라는 세 가지 사태를 통해 내면화하는 과정 이다. 사실 촉연기의 역할은 ‘외적인 사건이 신체 내적인 양상으로 촉발되 어 가는 질적인 변화’를 맡는다. 특히 촉연기는 연기설에 관한 다양한 논의 가운데 자연 세계로부터 유입된 감각자료를 해석하는 인식 내 최초 사건으 로, 우리는 감각자료를 해석할 일단의 배경인 십팔계를 통해 정서적으로 반 응한다. 즉 우리의 인식 안에서 경험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최초의 사건으 로 촉연기가 세 가지 사태의 상호작용의 결과라는 사실을 주지하고 있다.

이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자연세계(감각자료)와 감각기관, 그리고 분석/

종합판단 하는 인식 능력의 상호작용이다. 이 세 가지 조건의 협업을 통해 우리가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자연세계로부터 기원한 감각정보를 수용하고 해석할 수 있는 반복된 경험의 총체인 십팔계가 우리 인식활동의 배경이라 는 점이다. 즉 경험으로 포괄할 수 있는 인식활동은 지속적인 피드백의 과 정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감각적 지각을 통해 유입된 감각자료가 지금까지 한번도 수용한 적이 없던 정보일지라도 우리는 십팔계를 통해 축적한 경험 정보들을 통해 의미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오직 우리의 성찰과 관조 를 통해 반성해볼 수 있는데, 촉연기에 대한 인식적 대상화보다 촉연기 이 후 발생한 느낌을 대상화할 수 있다. 촉을 조건으로 발생한 느낌은 괴롭다 는 느낌, 즐겁다는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느낌은 반드시 선호와 혐오라는 갈애의 조건이 되며, 연속하는 의욕작용을 통해 우리의 신체활동으로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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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 연기 이후의 의식의 흐름은 전통적인 오온설에서 제시하는 수, 상, 행, 식의 순차적 전개 과정에서 볼 수 있다. 인식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 온인 색에 해당하는 감각기관과 그 대상이 요구되며 지각한 연후에 좋거나 나쁘거나 혹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느낌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내용에 대해 이름을 붙여야(상) 식별할 수 있다.43)전통적으로 대상에 대한 지각은 식의 역할이며, 반면 심은 의식의 모든 상태로 알려져 있는데 마음과 유사한 또는 정신적 요인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44)다만 오온설의 식(분별 작용)은 촉연기를 가능하게 하는 경험적 조건으로서 인식능력과 동일한 지는 분명하지 않다. 대신 오온설에서 식은 분별작용과 같은 기억에 대한 회고, 개념적 추론, 혹은 자신을 대상으로 반성하는 메타인지와 같은 상위의 기능을 담보해야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메타인지 능력을 고려한다면 오온설의 분별작용은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탐구하는 성찰의 영역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십팔계에서 제시하는 자연세계와 시각능력의 상호작용의 결과 나타나는 시각 인식능력이 반복적인 경험을 축적한 이래로, 시감각 정보 에 대한 회고, 대비, 분석과 같은 기능적 특징이 나타나는 것은 우리가 자신을 대상으로 성찰하는 상위 층위의 메타인지 덕분이다. 또한 이 메타인지 능력을 형이상학적 주체로 설정하지 않아야 한다. 이 메타인지 덕분에 우리는 회고, 대비, 분석을 통해 과거의 경험을 다시 체험하거나 반성할 수 있으며, 새로 마주하게 될 사건에 대비하고 더 낳은 가치 판단을 숙고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궁극적으로 더 낳은 가치를 지향하며 자신을 재구조화함으로써 끊임 없이 자기변형을 도모할 수 있는 존재다. 결국 자신을 구조화하는 과정이란 뺷잡아함 335경뺸에서 ‘업보는 있으나 작자는 없다’고 제시한 바와 같이 현재

43) R. 곰브리치, op. cit., pp.283-284.

44) Lambert Schmithausen, Alayavijñāna : On the Origin and Early Development of a Central Concept of Yogācāra Philosophy (2 vols.). (Tokyo : The International Institute for Buddhist Studies, Studia Philologica Buddhica, Monograph Series, IV a and IV b, 1987),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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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마음은 지각활동을 산물로 형이상학적 주체 없는 개인 역사의 총합이 면서 윤리적 책임주체다.45)이런 점에서 우리는 체험주의의 제안처럼 끊임없 이 도덕적 숙고 즉 가치 선택을 시도하고 있으며, 우리의 인격동일성은 자기 구조화의 연장선 안에서 확인할 수 있다.

5. 결론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현재의 나를 항상 ‘동일한’ 사람(person)으로 지각 한다. 따라서 우리가 경험적으로도 불변하는 나를 경험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신의 인격(personality)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반면 타인과 구 별되는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을 충족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생각하 려면 좀 더 숙고해야 한다. 다시 말해 내가 나의 자의식을 의심할 순 없지 만, 나를 증명해야 하는 경우 자의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전통적으로 불 교는 아트만류의 형이상학적 자아관념과 제일원인을 전제하지 않고서도, 우리의 심리적 상황을 변화하면서 단절 없는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었다.

특히 1인칭 의식이 전제된 채로 감각정보에 대해 파악하는 과정이 우선하 는 것이 아니라, 자연세계와 감각능력의 상호작용을 조건으로 1인칭 의식 이 순차적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이 글에서는 현전하는 1인칭 의식의 발생 과정과 형이상학적 자아관념에 대한 요청 없는 인격동일성의 가능성을 촉연기설을 통해 살펴보았다. 더불어 창발의 계보학적 흐름을 추적하여 실용주의에서 체험주의로 이어지는 영미 철학의 사조를 파악하였다. 이는 체험주의의 창발 개념을 통해 공간적 경험으 로부터 정서적 사회적 이해의 확장 과정으로 이성의 신체화를 살펴보는 것이 었지만, 불교의 촉연기설이 지향한 철학적 입장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

마지막으로 체험주의의 창발과 불교의 촉연기설이 본질주의적 초월과 가치

45) 이중표, 뺷붓다의 철학뺸, 315~317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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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적 회의를 넘어서 제 3지대로서 우리 경험에 관한 포괄적 해명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격동일성’에 관한 체험주의와 불교의 입장을 검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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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Emergent and The Dependent Co-arsing

46)Kim, Hyun-gu*

The main aim of this study is to compare the dependent co-arsing (緣起: pratītyasamutpāda) theory which is representative Buddhist thought as the fundamental wisdom with the concept of emergent is suggested by Experientialism which is quite related to the field of cognitive linguistics and British and America philosophy. This is a new trial between Buddhism and Experientialism for convergence. In this study, it could possibly be seen a ground of both philosophical perspectives that are embodied cognition based on an emergent thought and the five-aggregations (pañca-skandha) rely on dependent co-arising theory so that it would reveal the similarity of them in terms commonality. The reason why for me to explore between dependent co-arsing(緣起: pratītyasamutpāda) theory and the concept of emergent is that these two concepts are the original theories that established the core view of Buddhism and Experientialism.

I already tried to examine for ‘Different Manifestations’(vikalpa) of Buddhistic concept in the view of the semantics of cognitive linguistics.

That led to the physical roots of the abstract concepts as the main claims of the cognitive linguistics and the Buddhist Madhyamaka regards the different manifestations as the cause of the sufferings, and that the cognitive linguistics approach to the different manifestations as meaning- making.

Since Buddhism characterized the main cause of the sufferings as the delusion(avidyā) and the afflictions(kleṡa). It seemed that the methodology of the cognitive linguistics is the modern understanding of the afflictions in that the cognitive linguists approach to the hypothetical of the language as the base of the human thought. The Buddhism pursuits of the liberation

* Chonnam National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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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moving the afflictions. The cognitive linguistics explores the language as the essence of the human thought. In other words, the Madhyamaka defines the different manifestations as a characteristic of the afflictions and pays attention to the negativity of the different manifestations. However, the cognitive linguistics accepts the different manifestations for the personality of the human species. The cognitive linguistics treats the different manifestations as the ‘differentiation’ of the signification and studies the specific aspects of the neural function obtained and developed in the process of the evolution and the socialization in that the perspective of the meaning-making. consequently, I feel need to delve into the expanded argument, for the sake of comparing between the concept of five-aggregation in Buddhism and the embodied cognition in Experientialism. Therefore, I believe that the genealogical approaching of two concepts will be the starting point for the convergence research of Buddhism and Experientialism.

Key Words : Emergent, Dependent Arising, Embodied Cognition, Experientialism, Five–

aggregate

<필자소개>

이름 : 김현구

소속 : 전남대학교 철학과 전자우편 : samatta@hanmail.net

논문투고일 : 2019년 01월 10일 심사완료일 : 2019년 02월 01일 게재확정일 : 2019년 02월 14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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