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토의 지리학적 개념 분석
이민부*·박승규**
Geographical Concept Analysis of ‘Pungto’(Natural feature)
Minboo Lee* · Seungkyu Park**
* 한국교원대학교 지리교육과 교수(Professor, Department of Geogrpahy Education,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Educa- tion), [email protected]
**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Associate Professor, Department of Social Studies Education, Chuncheon National University of Education),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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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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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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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본 연구는 풍토 사용 문헌에 대한 서지학적 분석이다. 일상적으로 사용되어 온 풍토라는 은유적이고 다의 적인 개념을 지리학적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풍토의 개념적 기원은 지역과 장소에 대한 인간과 자연의 통합적 특 성에서 출발하였다. 풍토는 인간의 정체성 형성, 지역의 특성 구축, 정치적 의미체계, 지역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제, 나아가 예술의 토대로서 다양한 방면에 걸쳐 우리 삶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풍토에 대한 개념적 의미와 유형에 대한 논의를 통해 풍토는 오랜 시간에 걸쳐 우리 삶에 영향을 주는 지리적 요 소이며, 동시에 일상생활의 역사지리임을 확인하였다. 본 연구는 차후 풍토에 대한 지리학적 연구를 위한 출발 점이 될 것으로 본다.
주요어 : 풍토의 개념, 풍토 개념의 기원, 풍토의 서지학적 분석, 풍토 사례 분석, 풍토의 지리학적 특성
Abstract : This study aims to understand geographically the metaphorical and polysemous concepts of
‘Pungto(meaning the natural feature in the region)’, which have been daily used, mainly by the bibliographi- cal analysis. The study presents that the origin of concepts of the’ Pungto’ should be regarded as integrative characteristics of nature and humanity in the region and place. The case analyse demonstrates that the hu- man identity, regional characteristics, political application, curious attention to region and foundation of art in the particular region and place. Therefore, this study suggests that the concept of ‘Pungto’ means geo- graphical characteristics of human life in long time and the historical records in the region and place. This analysis expects the opportunity of starting point in geographical studies about ‘Pungto’
Key Words : concept of ‘Pungto’, origin of ‘Pungto’ concept, bibliography of ‘Pungto’, case study of ‘Pungto’, geographical characteristics of ‘Pungto’
1. 서론: 풍토의 지리적 요소
지리학의 학문 풍토는 아마도 지리학계의 연구적 환경을 의미할 것이다. 이 때 환경은 지리를 공부하
는 사람들 삶 전반에 영향을 주는 포괄적이고 종합적 인 요소를 지칭할 것이다. 풍토처럼 우리가 일상적으 로 사용하는 일상적 개념은 언어외적인 것을 언어적 인 요소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형성된다(이병훈 외 역, 2013).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과정에서 체득되고
통용되는 개념인 것이다.
아르키타스(Archytas)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장소 안에 있다’고 말한다(박성관 역, 2016). 인 간이 어딘가에서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종류의 공간 이나 장소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르키타 스의 원리는 인간이 공간적이고 장소적인 삶을 살고 있는 존재임을 천명한다. 또한 장소나 공간이 갖고 있 는 포괄적인 속성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인정한다.
풍토는 이런 공간이나 장소가 갖고 있는 특성을 통 칭해서 사용하는 일상적 개념이다. 따라서 지리학으 로서의 풍토만을 주장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풍토가 우리 삶과 지리학과의 관련성을 설명할 때에 중요한 요소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베르크(A. Berque) 는 ‘지리학에는 존재론이 없고, 존재론에는 지리학이 없다’고 한다(김웅권, 역, 2007). 인간 존재를 설명할 때, 지리학의 역할이 미미했음을 주장하지만, 아르키 타스의 원리를 상기한다면, 지리학에 내재하는 인간 존재에 대한 관심은 오래되었다. 아르키타스가 말하 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이 장소에 있다고 했을 때, 장소가 갖고 있는 풍토가 인간에게 영향을 주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물론 일본과 중국의 건축, 조경, 토목 분야 등에서 흔히 쓰이는 표현이 있다. ‘경관 10년, 풍경 100년, 풍토 1,000년’ 이라는 말이다(강내희, 2016).
경관이나 풍속에 비해 풍토는 보다 오랜 시간 동안 우 리 삶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이같은 풍토에 대한 표현은 아날학파가 언급하는 장기지속의 역사와 별 반 다르지 않다. 오랜 동안에 인간 삶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다른 나라,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역 사를 형성에 영향을 주는 것이 장기지속의 역사이며, 위의 표현대로 한다면, 그것이 풍토이기 때문이다. 프 랑스 아날학파(Annales School)에서는 장기지속의 역사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지리적인 요소라 말한 다. 인간 삶의 토대로서 지리적인 요소를 지칭하고 있 기 때문에 그것 역시도 위의 표현대로 한다면, 풍토라 명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풍토라는 일상적 개념은 지리학에서 사용하는 많은 과학적 개념을 포섭한다. 어쩌면 지리
의 다른 이름이 풍토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개념적 으로도 풍토가 지리적 요소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 음은 풍토의 기원적 의미를 ‘클리마(Klima)’나 ‘오이 코스(Oikos)’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풍토는 기본적으로 기후를 중심으로 하는 자연적인 요소와 인간 삶과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서로 다른 삶 의 차이를 가져오고, 서로 다른 역사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풍토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했을 때, 그런 차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풍토의 주된 속성이 기후의 차 이임을 풍토의 기원적 의미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다(김연옥, 1985).
기원전 5세기에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는 『공 기, 물, 장소에 관하여(Peri Aerōn, hydatōn, topōn)』
라는 저서를 통해 인간의 질병과 기질에 영향을 주는 풍토가 기후적인 요소임을 밝히고 있다(여인석 외 역, 2011). 히포크라테스의 생각은 이후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 헤르더(J. G. von Herder), 몽테스키외 (Montesquieu) 등에게 전달되면서 서양 풍토론의 토 대를 형성한다. 그럼에도 풍토에 대한 논의는 한국의 지리학에서는 낯설다. 풍토를 단일주제로 하는 연구 자체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풍토가 갖는 다차원적이 고, 다의적인 의미가 풍토를 무엇으로 정의하는데 어 려움을 주기 때문이다(이민부, 2011).
현대 지리학에서 풍토에 대한 논의를 처음으로 전 개한 학자는 이지호(1962)이다. 그는 ‘한국의 풍토 와 생활양식’이라는 논문에서 풍토를 ‘특정 기후와 지 형을 가진 토지’로 규정하고, 풍수나 자연지리를 거 의 같은 개념으로 인식한다. 풍토론은 동서양에서 모 두 발달해왔으며 인간의 문화와 정치, 경제에 결부되 어 해석되어 왔다고도 본다. 그는 서양의 히포크라테 스와 몽테스키외, 헤르더 등은 풍토를 국민성과 국가, 그리고 민족과 일치시키는 과격함을 보이고 있으며, 결국 이러한 풍토론은 후일 라첼의 환경결정론으로 이어졌다고 보았다. 한국의 지형과 기후를 풍토의 근 간으로 보고, 풍토와 생활양식에서 의식주, 농업양식, 자연재해, 촌락입지와 연계하여 설명한다. 촌락입지 에서는 기존의 풍수론의 입장에서 설명하고 풍토적 인 입장을 잘 고려해야 함을 주장한다.
김연옥(1985)은 『한국의 기후와 문화』라는 저서에
서 가장 한국적인 풍토는 풍수, 혹은 풍수지리로 보고 있다. 김일곤(1991)은 대한지리학회보에 ‘풍토의 기 후학적 해석’이라는 글에서 풍토는 중국에서 발생한 것으로 토지의 상태 곧 기후, 지질 등으로 설명한다.
풍토에 대한 인식이 미각적이고 감각적인 것에 반영 되었다고 본다. 가장 최근에는 전종한 등(2008)이 지 은 『인문지리학의 시선』에서 와쓰지 데쓰로(和辻哲 郞)의 저서를 토대로 풍토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 같은 선행연구들에서 주목하는 풍토는 주로 자연적 인 요소에 치중해 있다. 자연적인 요소가 인간 삶에 결정론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는 주장은 풍토가 갖 고 있는 다차원적인 측면을 보여주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본 연구는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시작하여 풍토라 는 일상적 개념을 과학적 개념으로 재조명하려 한다.
우선은 서지학적으로 풍토에 대한 기존의 논의를 살 펴보고자 한다. 지리학을 비롯한 주변 학문에서 다루 어졌던 풍토라는 용어에 대한 용례를 중심으로 풍토 가 갖고 있는 다양한 의미체계에 대해 가능한 한 실체 를 구성해보고자 한다. 풍토의 개념적 기원을 살펴봄 으로써 풍토가 갖고 있는 다원적 의미체계를 제시하 고자 한다. 나아가 풍토를 이용하고 있는 다양한 사례 를 찾아보고, 이를 토대로 풍토의 유형화를 시도하면 서 풍토가 지리학에서 갖고 있는 의미에 대해 설명하 고자 한다. 분석 대상은 풍토 용어가 언급되거나 풍토 와 연관이 있다고 판단되는 다양한 학문 영역의 문헌 을 대상으로 하면서, 이를 지리학적인 측면에서 분석 을 시도한다.
2. 풍토의 기원과 개념적 정의
풍토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제시하기는 어렵다. 그 럼에도 풍토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학자들의 논의를 정리하면, 풍토는 주로 기후적인 요소와 관련을 맺고 있고, 넓게는 자연지리적인 측면을 의미하는 용어로 도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풍토를 규정 할 수는 없다. 풍토라는 용어가 갖고 있는 의미의 스
펙트럼은 훨씬 더 넓기 때문이다. 풍토가 갖고 있는 다의적이고 은유적인 요소를 넘어 보다 분명하게 의 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풍토의 기원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풍토의 기원은 크게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김연옥, 1985). 하나는 독일어의 ‘klima’, 프 랑스의 ‘climat’라는 단어에서 기원하는 풍토의 의미 이다. 이때 풍토는 주로 자연적인 측면에 초점을 둔 다. 특히, 기후적인 요소에 의한 영향을 강조한다. 동 양권에서 말하는 풍토의 ‘풍(風)’은 바람이며, 바람은 이동하는 기류로서 습기(濕氣)와 온도(에너지)를 전 달해주므로 그 자체로 기후를 의미한다. ‘토(土)’는 땅 을 말하며, 땅은 토양을 의미하고, 그 위에서 자라는 식생과 땅을 의지하는 하천 등 모든 지형 요소를 포 괄한다. 결국, 땅은 기후, 지형, 식생, 토양 등을 포함 하는 자연적인 요소들의 결합체이다. 풍토를 영어로 번역하는 경우, 주로 ‘natural feature’로서 구체적이 고 가시적인 느낌을 주고 있는데, 이런 번역의 기원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기후적인 요소를 중심으로 하는 자연적인 측면에 강조점을 둔 번역인 것이다(김유혁, 1995).
다른 하나는 자연과 생물의 연계인 ‘oikos’에서 풍 토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oikos는 인간의 거주지, 인간이 사는 땅을 의미하며 근대이후 발달한 생태학 (ecology)의 어원이다. 이때 생태학은 인간의 일부가 되어 있는 자연을 인간 형성의 내적 조직으로 보고 있 다(김연옥, 1985). 이런 측면의 풍토 개념은 풍토가 단지 자연적이고 기후적인 요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풍토는 인간의 생활양식 전반에 큰 영향을 미 치고 있다는 생각의 기저를 형성한다. 우리가 일상적 개념으로 풍토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조금 더 가 까운 기원인 셈이다. 이처럼 풍토를 바라보는 관점은 포괄적이면서도 다의적인 측면이 있어 어느 하나의 정의로 수렴하는 것이 어렵다. 나아가 풍토는 앞에서 보았듯이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요소가 많아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제공한다는 원초적인 특성을 지닌다.
이같은 두 가지의 개념적 기원을 토대로, 풍토에 대 해 학자들이 제시하고 있는 정의를 살펴보자. 김연옥 (1985)은 ‘풍토는 지형(地形)과 기후(氣候), 그리고
그 영향을 받은 식생(植生)과 토양(土壤)과 같은, 긴 세월에 걸친 자연환경의 영향과 그에 따른 인간의 적 응과 그 결과물인 인문환경(人文環境) 모두를 의미한 다.’(김연옥, 1985)고 했다. 이런 의미를 담고 있는 우 리의 일상적 개념은 풍수(風水), 풍경(風景), 풍치(風 致), 풍광(風光), 풍기(風氣), 풍성(風聲) 풍습(風習), 풍속(風俗), 풍약(風約), 풍물(風物), 풍해(風害), 풍 화(風化), 풍백(風伯), 풍사(風師), 풍덕(風德) 등 다 양하다. 자연환경에 의한 인간의 적응 혹은 인간의 반 응을 의미하는 용어들이 연계되거나 파생되어 회자 되고 있는 것이다.
풍토와 관련된 이같은 용어는 역사시대에 농업이 산업의 기본인 바 비교적 일정하고 안정적인 지형 (土)보다는 하루와 계절과 연도에 따라 수시로 변화 하는 기후(風)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 여준다. 홍수와 가뭄과 같은 재해는 농업과 생업에 직접적이고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김연 옥, 1985). 풍토는 이러한 풍(風) 계열의 용어들을 거 의 모두 포괄하면서 자연적인 측면만을 의미하는 것 으로 이해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하지만, 풍토 는 이러한 요소들을 모두 가지면서 추상성도 내포하 고 있어 자연적인 측면으로만 국한하는 것은 풍토의 의미를 너무 좁게 이해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김연 옥 교수가 가장 한국적인 풍토는 풍수, 혹은 풍수지리 로 보고 있는 것 역시도 이런 관점과 무관하지 않다.
풍수는 자연과 인문, 문화와 심리를 아우르고 있는 측 면이 크기 때문이다. 나아가, 김연옥은 일본학자들 의 풍토론을 인용하면서(千葉德爾, 1979; 木內信藏, 1977) 풍토의 의미는 결국 자연과 인간의 대립이 아 닌 결합의 개념과 서양에서의 생태적 개념일 수 있음 을 인정한다.
정장호(1982)는 풍토를 “지역에 따라 서로 다는 특 색을 지닌 환경으로서의 자연으로, 자연과 인간의 생 활이 혼연일체가 된 특유의 토지의 성질”로 정의한 다. 김유혁(1995)은 풍토를 지리학과 같은 의미로 사 용한다. 풍토를 자연풍토, 인문풍토로 나누고, 지역풍 토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문화형태를 풍토로 설명 한다. 풍토를 정식의 학문 분류나 개념으로 보면서 지 리학과 동일시하고 있는 것이다. 전택수(2007)는 향
토문화를 논하면서 자연지리, 자연환경, 인문환경, 향 토역사, 문화유산, 정신문화 등을 포함하는 장소성으 로 풍토를 정의한다. 장소성이나 지역성은 보편적인 물질적 속성 외에도 비물질적이고 비가시적인 정신 적 속성까지 포함해야 파악할 수 있다. 최영준(2013) 에 따르면 장소나 지역의 특성을 담보하는 물질적 속 성은 원초적인 자연의 속성을 반영하고 있지만, 정신 적 속성은 장기간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떤 법칙에 의해 공간적인 특성이 세속적인 형태로 가시화된다 는 것이다. 동양권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되어온 풍토 도 이러한 의미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조경학자들도 풍토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김명수·
이동근, 2004). 이들은 응용생태학의 한 형태로서 일 본인 경관공학자 니노하라 오사무가 제안한 ‘개발생 태학’을 서술하면서 도시와 촌락의 개발에서도 풍토 의 영향력에 주목한다. 특히, 우리의 전통적인 촌락 이 지형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적응되어 내려온 자 연 환경적 취락’이라는 관점은 지리학에서 말하는 인 문지리적 관점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들도 풍토는 어 떤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풍습과 생활 방 식에 미묘하게 드러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셈이 다. 나아가, 풍토심리학(geopsychology)에서는 풍 토를 ‘감각’, ‘상상력’, ‘감정’, ‘행복감’ 등 자연적인 요 소를 배제한 체 인간의 심리현상과 결합하여 복잡하 게 구현된다고 본다. 독일에서 발달한 풍토심리학은 풍토가 개인과 지역에 미치는 인간의 심리현상과 인 간 행동에 대해 분석한다(동아대백과사전, 1983). 따 라서 풍토심리학은 바로 지리심리학(geographical psychology)이라 할 수 있다
와쓰지는 『풍토와 인간』에서 ‘풍토는 인간과 자연 의 존재에 영향을 미치는 기후, 기상, 지질, 토질, 지 형, 경관, 세균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정의한다(박 건주 역, 1994). 그에게 있어 풍토는 단지 자연적인 요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삶 전반에 영 향을 미치는 총체적 요소로서의 풍토인 것이다. 그는 이같은 풍토의 유형을 세가지, 즉 ‘몬순형’, ‘사막형’,
‘목장형’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전종한 외, 2008). 장 혁주는 와쓰지의 이같은 풍토 유형에 영향을 받아 우 리나라를 풍토에 따라 구분한다. 북부지역을 고려적
으로, 중남부지역을 다시 동서로 나누어 ‘백제적’ 성 격과 ‘신라적’ 성격으로 구분한다. 그는 자신이 체험 한 조선의 풍토, 즉 기후와 지형 등을 예로 들어가며 풍토에 따른 조선 사회의 갈등을 자신의 작품에 그려 냈음을 각 작품의 제목을 들어가며 설명한다(윤미란, 2010). 하지만, 이같은 와쓰지의 풍토론은 자연지리 적인 조건이 어떻게 인문경관과 생활양식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지나치게 단순화했다는 비판을 받 고 있다(심정보 역, 2010). 전 지구적으로 풍토적 지 역을 몬순형, 사막형, 목장형 등으로 나눈 것과 일본 인론과 비교하면서 중국인론과 인도인론은 식민주의 적 상상력의 계략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풍토(風土)는 용어 자체로만 보면, 바람과 토 양이다. 기후와 지형을 나타내주는 용어로 시작한 풍 토는 여러 분야와 결합되면서 보다 넓은 의미체계를 형성해간다. 지형과 기후와 같은 자연환경의 영향으 로 형성된 인문환경까지도 포섭한다. 어떤 지역의 지 역성(regionality)을 파악할 수 있는 기본적인 토대라 는 인식도 더 해진다. 더 나아가면 풍토는 각각의 지 역이나 국가가 갖고 있는 미의식의 토대가 된다. 인간 삶의 저변을 형성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근원적인 요 소로서 풍토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다원적인 의미체계를 갖고 있는 풍토에 대 한 학자들의 정의를 정리하면 하나의 전제와 네 가지 의 개념적 특성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의 전제는 풍 토가 자연적 특성, 특히 기후와 지형적인 특성을 전제 하고 있다는 점이다. 풍토는 인간성이나, 인간의 기질 이나 생활에 영향을 주는 또 다른 자연인 것이다. 말 하자면 풍토는 인간 삶을 자연에 적응한 생활, 습관, 풍습 등으로 인식하는 지역의 문화까지도 포함한다.
그렇기에 풍토가 갖고 있는 자연적인 속성은 풍토의 개념을 이해하는 하나의 전제로 삼는 것이 충분히 타 당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전제를 토대로 본 연구에 서는 풍토의 개념을 대략 다섯가지로 나누었다. 첫째, 풍토는 그 지역에서 장기지속의 시간에 걸쳐 형성되 어 온 그 지역만의 독특한 문화와 역사를 형성할 수 있는 토대이다. 즉 자연적인 요소와 인문적인 요소로 분리할 수 없는 총체적인 의미체계이다. 둘째, 풍토는 은유적이고 추상적인 측면이 있어 다양한 해석의 여
지를 제공한다. 기후를 비롯한 자연적인 측면이나, 생 태적인 측면을 언급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현실 에서 사용되는 풍토를 간단히 정의하기는 어렵다. 셋 째, 풍토는 포괄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우 리 삶과 관련된 다양한 요소들 모두가 풍토를 구성하 기 때문이다. 넷째, 풍토가 때로는 지역이나 마을의 사회적 폐쇄성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김일철, 1998). 즉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어떤 지역의 지역민 들이 공유하고 있는 ‘감성의 구조(structure of feel- ing)’를 담보해 줄 수 있는 추상성을 갖는다는 것이 다. 풍토를 장소성이나 지역성으로 정의하는 것도 어 느 정도는 지역에 대한 폐쇄성의 인식을 전제하고 있 는 셈이다.
3. 풍토의 유형화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풍토는 폭넓은 개념적 스펙 트럼을 갖고 있다. 풍토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서는 풍토를 반영하고 있는 다양한 사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 같은 용례를 통해 풍토의 의미가 조금 더 명료해질 수 있으며, 지리적 관련성을 깊고 폭넓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 연구에서는 풍토 연구 흐름을 대략 다섯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는 총체 적 환경으로서의 풍토이다. 이것은 풍토의 육체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간 이해의 출발점으로서의 풍토 를 의미한다. 둘째는 지역이해의 토대로서의 풍토이 다. 개별 지역이 갖고 있는 지역성이나 장소성의 출발 점이자 종착점이 풍토라는 견해이다. 셋째는 정치적 의미체로서의 풍토이다. 예를들어 ‘풍토부동론’은 조 선과 중국에 대한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대 한 논의의 출발점일 뿐 아니라, 당시의 정치적 풍토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넷째는 인간 호기심 을 충족물로서의 풍토이다. 다양한 곳을 여행하면서 작성한 여행기와 각 지역의 지리지를 포괄하는 유형 이다. 서로 다른 생활 풍경의 차이가 풍토에서 비롯되 었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다섯째는 예술의 토대로서 의 풍토이다. 풍토를 다양한 예술의 형태를 가능하게
한 토대로서 인식하는 관점이다. 이 같은 각각의 관점 에 대해 보다 세밀하게 분석해보자.
1) 총체적 환경으로서의 풍토
헤르더에 의하면 풍토는 자연사와 인류사를 연결 하는 핵심 개념이다(이종찬, 2016). 그의 역사철학에 서 풍토가 갖고 있는 위치는 많은 학자들이 생각해왔 던 것 그 이상이었다. 그는 ‘풍토의 차이는 인간 정신 이 혁명적으로 전개되는 데 영향을 미쳐왔다’고 본다 (Herder, 1800, 이종찬, 2016에서 재인용). 헤르더 이전에 풍토론에 대해 체계적으로 논의했었던 히포 크라테스(Hippocrates)가 주로 자연적인 요소가 인 간의 질병과 기질에 미치는 영향을 서술하고 있다고 한다면(여인석 외 역, 2011), 헤르더는 사람의 감각, 상상력, 생활방식, 감정, 행복 등도 풍토적이라 주장 한다(Herder, 1800, 이종찬, 2016에서 재인용). 이같 은 헤르더의 역사철학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역사 는 풍토적이며 풍토는 역사적 풍토이다’라는 것이다 (박건주 역, 1994).
다른 측면에서 와쓰지(1932)는 풍토는 ‘육체적’이 라 주장한다. 즉, 인간이 거주하고 있는 풍토와 인간 의 존재를 불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데카르트(Des- cartes)가 말하는 인간의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어 있 다는 것은 사실 풍토의 육체성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 하기 힘들다. 내가 ‘지금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을 ‘지 금 거기’에 있는 사람과 정신적으로 공유하는 것이 가 능할까?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어 있다고 한다면, 가 능하겠지만, 사실 인간 삶은 그렇지 않다. 인간의 정 신과 육체는 늘 같은 시간과 공간을 소비한다. 그런 시간과 공간에서 자신의 존재를 구성해간다. 그렇기 에 풍토의 육체성은 인간 존재의 차이를 가능하게 하 는 총체적 환경으로서의 풍토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베르크는 ‘지리학에 존재론이 없고, 존재론에 지리 학이 없다’(김주경 역, 2001)고 주장했다. 그는 와쓰 지(和辻哲郞)의 입장과 유사하게 인간이 어떤 존재인 지를 알 수 있는 길이 지리학에 열려있음을 주장한다.
즉, 인간이 발을 딛고 있는 공간의 차이가 존재의 차 이를 가져올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총체적 환경
으로서 풍토가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한 다는 것이다.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인간 이해를 넘어 직관적이고 총체적인 인간에 대한 이해에 지리학이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추상적인 논의 수준을 넘 어 공간속에 존재하는 구체성을 담보로 하는 인간 존 재에 대한 논의의 시작을 말한다.
‘총체적 환경으로서 풍토’는 자연적인 요소와 인문 적인 요소의 결합을 의미한다. 어떤 공간이나 지역을 점유하고 있는 인간 삶의 모습을 이해하는 인식의 토 대인 셈이다. 헤르더가 인류사와 자연사를 결합하고 자 한 것 역시도 풍토가 인간의 정신문화 유산을 생산 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풍토를 총체 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지리적 공간으로서의 지역 을 개념적 공간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자연적으로 주어진 환경결정론적인 공간에 대한 지 역이해를 벗어나, 다른 지역과의 관계속에서 지역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지역적 의미를 말하는 것 이다(이종찬, 2016).
풍토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은 단지 서양의 역사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역사 에도 다수 존재해 왔다. 19세기에 우하영은 『천일록』
에서 농업 이외에도 관직제, 병제, 과거제, 진정(賑 政), 인재 등용, 풍속 교화, 균역법(均役法) 등 참으 로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정호 훈, 2014). 이 모든 주제를 관통하는 근본적인 사상은 그의 ‘지리적 인간론’이다. 지리적 인간론이란 인간을 지리와 연관하여 이해하는 시각이다. 각각의 지역에 거주하는 인간의 성품이 그 지역의 풍토에 영향을 받 는다고 보았다. 지역을 형성하고 있는 총체적 요소로 서의 풍토가 인간의 이해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음 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김혁, 2013).
그는 또한, 그 지역의 풍토에 따라 배출되는 사람 들의 성향이나 사회구조 등의 차이가 있다는 관점에 서 지역문화를 토대로 팔도론을 전개하고 있다(김혁, 2013). 경기도에서 사대부의 생계는 오직 벼슬살이에 달려있을 뿐이다. 사족이 일단 관록을 잃으면 알거지 가 되어 자칫 여항의 평민만도 못한 생활을 할 수도 있다고 한다. 반면에, 경상도의 민속은 질박하고 검소 하며 부지런하며 중후하여 실질에 힘쓰며 화려하고
사치한 것이 적다. 경상도의 풍속은 그 집안에 일컬을 만한 현저한 조상이 있다면 비록 누세토록 집안이 기 울어 벼슬하는 사람이 없더라도 그를 쉽게 모욕할 수 없다고 말한다.
성호 이익은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그 산수를 보아서 풍기(風氣)의 모이고 흩어짐을 알 수 있다.…
풍성(風聲)과 기습(氣習)이 모여서 흩어지지 않으니 옛 풍속이 아직도 온존되어 있고…’(박승규, 2005)라 는 글에서 자연환경에 적응한 문화적 규약을 보여주 고 있다. 풍약(風約)은 동약(洞約)과 함께 조선시대 마을에서의 좋은 풍속을 진작시키기 위한 향약의 일 종이다(최홍규, 2001). 나아가, 이러한 풍약은 인간 생활과 생활 심리에 미치는 지리적인 조건(風水)과 그에 대응하거나 적응한 인간의 노력, 적응의 결과로 서의 자연적 혹은 인문적 모습(風景 혹은 風物), 적응 의 결과로의 인간의 습성(風俗), 지속적인 자연의 영 향에 의한 변화(風化) 등을 말한다. 이들 모두 연계되 어 있다.
2) 지역이해의 토대로서 풍토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풍토’에 관한 기록은 모두 188차례이다. 태종에서부터 마지막 임금 순종까지 거 의 모든 왕조실록에 등장한다. 태종실록의 예를 보면
‘…전라도 해변이 제주(濟州)의 풍토와 비슷하고 또 바다를 연한 곳에 넓은 땅이 많으니, 제주의 말 가운 데에서 … 방목하여 번식하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 니까?”(태종실록 23권, 태종 12년 2월 6일). ‘풍토(風 土)가 같지 않으므로, 심는 곡식도 본래 스스로 의토 (宜土)가 다르고, 갈고 심는 절후(節侯)도 또한 빠르 고 늦음이 있습니다’(태종실록 27권, 태종 14년 2월 1 일). 풍토가 고쳐지지 않는다면 후세에 반드시 사정 (私情)을 끼고 착한 사람을 모함하고 밖으로 공의(公 義)를 칭탁하고…(태종실록 28권, 태종 14년 7월 13 일).
이처럼 조선시대에 풍토는 객관적이고, 상식적인 표현으로 사용되어 왔다. 풍토는 긍정적인 의미로 지 형, 기후, 토양 등 자연지리적인 조건으로 보았고, 풍 토의 차이에 따른 농업, 산물의 차이 등을 언급하고
있다. 지역의 인문적, 문화적인 특성으로도 지적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사용된 풍토는 특정 지역에 대한 매 우 사실적인 측면에서 논의가 주를 이루고 있어, 풍토 가 우리 삶의 전반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중요한 개념 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서유구는 『임원경제지』에서 ‘경계가 달라지면 지 세가 현격한 차이가 난다. 그래서 그 사이에 생산되는 물품의 성질은 곳곳마다 다르다. 그것은 무엇 때문인 가? 바람이 땅위로 불 때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이 있고, 토양의 성질에 알맞은 바는 기(氣)의 변화로 말 미암는다. 이 때문에 멀고 가까운 곳, 이쪽과 저쪽 사 이에 풍토의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라는 중국 요순시 대의 일화를 전한다. 나아가, 『서경』 「우공」편을 살펴 보면, ‘기주는 그 흙이 희고 부드러우며, 그 농지의 등 급은 중중이다. 연구는 그 흙이 검고 걸차며, 그 농지 의 등급은 상하이다. 청주는 그 흙이 희고 걸차며, 그 농지의 등급은 상하이다. 서주는 그 흙이 붉고 차지고 걸차며, 그 농지의 등급은 상중이다. 옹주는 그 흙이 누렇고 부드러우며 그 농지의 등급은 상상이다’라는 표현을 이용하면서 농사를 지을 때 토질의 차이에 따 라 알맞은 땅을 이용해서 백성들에게 가르쳐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정명현·김정기 역주, 2016).
최창조의 경우에는 풍수를 근거로 ‘전라도의 풍토 성’에 대해 말한다(최창조, 1996). 전라도는 비교적 기후의 변화가 덜한 편이며 이것이 이 땅의 풍토를 특 징짓는다고 말한다. 변화가 심하지 않은 이 땅의 풍토 가 전라도의 유장한 문화의 바탕 구실을 했다는 것이 다. 반면에, 전라도가 갖고 있는 한풀이의 역사와 문 화가 온화한 기후와 풍요로운 토양의 풍토를 갖고 있 는 이곳에서 반복되고 있는 것에 아쉬움을 토로한다.
또한, 전라도가 갖고 있는 풍류의 역사 역시도 그 고 장이 갖고 있는 야(野)의, 즉 누적된 자연환경적 영향 이라는 풍토 속에서 자라난 문화라는 것이다.
이처럼 풍토는 단지 과거의 역사에서만 지역의 특 성을 이해하는 요소는 아니었다. 근대의 역사속에서 도 풍토는 여러 지역의 자연과 인문환경적 특성을 설 명하는 총체적인 용어로서 역할을 한다. 명제적으로 인과관계를 설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직관적 이고, 총체적인 측면에서 풍토는 지역의 특성을 설명
할 수 있는 의미체계를 갖고 있다는 생각의 여운이 크 다. 풍토를 매개로 추상적이고 은유적으로 지역에 대 한 이해를 통해 소통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 서 풍토는 지역의 특성을 설명해주는 토대로서, 직관 적 의미를 담고 있는 일상적 개념으로서 오늘날에도 우리 삶에서 숨 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 런 것이 가능한 것은 풍토라는 용어가 갖고 있는 언어 외적인 요소를 포괄하고 있으면서 은유적으로 담아 낼 수 있는 용어의 힘이라고 한다.
3) 정치적 의미체로서 풍토
15세기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와 중국을 구별하 기 위한 노력이 활발해진다. 아마도 세종대의 『훈민 정음』 창시나 『향약집성방』의 저술 등이 그런 인식의 결과물일 것이다. 이런 결과물을 내놓게 된 근본적인 인식은 조선의 풍토가 중국과 다르기 때문에 문자도 약도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 땅에 살고 있는 사 람들에게는 조선의 풍토에 적합한 문자가 있어야 하 며, 조선 사람들을 잘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있어야 한 다는 것이다. 이것은 중화사상에 대한 찬반양상으로 까지 확대된다. 조선만의 문자와 약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중국의 중화사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과 다르 지 않기 때문이다.
세종 11년에 편찬된 『농사직설』(1429년)의 서문에 는 “以五方風土不同 樹藝之法 各有其宜(오방의 풍 토가 갖지 아니하여 곡식을 심고 가꾸는 법이 각지 적 합한 바가 있다)”라고 적혀있다. 세종 15년에 편찬된
『향약집성방』(1433년) 서문에는 “盖百里不同俗 千 里不同風 草木之生 各有所宜 人之食飮嗜欲 赤有 所習(백리가 떨어지면 풍속이 다르고 천리가 떨어지 면 풍토가 달라, 초목의 성장에는 지역에 따른 적합한 바가 있고 사람의 음식 기호에도 또한 습성이 있다)”
고 했다. 『훈민정음』서문에서도 “사방의 풍토가 각 지역마다 구별되니 소리의 기운(聲氣) 또한 지역에 따라 다르다”는 문구가 등장할 정도로 이 시기에 풍 토에 대한 언급은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그리고 이 시 기의 풍토는 우리의 주체성을 드러내주는 중요한 인 식소였던 것이다(배우성, 2012).
이같은 풍토에 대한 언급은 추후 ‘풍토부동론(風 土不同論)’ 논쟁으로 발전한다. 이것은 우리의 풍토 가 중국과 다르기 때문에 우리나라만의 독자성과 주 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인식의 근간이 된다. 우리의 풍토가 중국과 다르기 때문에 우리만의 고유한 주체 성을 형성해야 한다는 인식이 전제되었던 것이다. 이 것은 중화의 틀을 넘어,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 자적인 문화를 만들고자 했었던 사람들의 노력이었 다. ‘문화로서의 중화’를 넘어 ‘지리적 중화’를 주장하 였던 셈이다(배우성, 2012).
하지만, 사대부들의 주장은 달랐다. 최만리 등은 중 국에서 벗어나는 것은 이적(夷狄)의 문제라고 경고한 다(배우성, 2012). 그들은 과연 우리가 중국과 풍토가 다르다고 한다면, 우리만의 고유한 풍토가 무엇인지 를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과 구별되는 우리만 의 풍토를 갖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중국으로부터 벗 어나려는 것은 무모하다는 것이다. 중국이 우리에게 준 ‘자위성교(自爲聲敎)’1)의 예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다.
풍토부동론은 조선은 ‘중국과는 풍토와 지리적 위 상이 다르면서도 중화 문명의 유일한 계승자인 소중 화 국가로 보는 인식’으로 이어졌다. 풍토부동론에 대 한 다양한 입장에서 중화주의를 내세워 세종의 훈민 정음 창제를 반대하기도 하고,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 나 우리나라만의 글자와 문자를 가져야 한다는 훈민 정음 창제의 정당성을 부여한 것 역시도 풍토부동론 이었다(배우성, 2014).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풍토론 은 단지 인간 삶과 역사나 문화를 설명하는 틀을 넘어 정치적인 논쟁의 토대를 형성하기도 한다. 중국의 영 향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자 했었던 우리 조상들 인식의 출발점이 바로 우리만 의 풍토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하지 만, 다른 측면에서는 오히려 풍토부동론이 우리의 중 화사상을 강화하는 측면이 있다는 인식도 있다. 우리 가 진짜로 중국으로 벗어나고자 했었던 것이 아니라, 중화사상이라는 커다란 틀을 존중하면서 우리만의 풍토에 대한 인식을 만들고자 했었기 때문이라는 것 이다(문중양, 2012).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조선시대에도 풍토는 한양
과 지방을 구별하는 정치적 용어로 이용되기도 한다.
왕조실록에 기술된 풍토에 대한 서술은 대부분 특정 지역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에 근거한다. 하지만, 풍토 라는 용어는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거나, 외진 곳 의 자연지리적인 특징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양도성이나 규모가 큰 읍성의 경우에는 풍토라는 말 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이것은 철저한 중앙중심의 정치지리의 단면을 보여준다. 또한, 지방과 한양이라 는 이분법적인 공간 인식이 풍토라는 용어를 통해 확 인할 수 있다.
이같은 인식이 가능한 것은 중심에 거주하는 사람 들은 세상의 중심이기에 자신들의 풍토에 대해 관심 가질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반면에, 주변에 거주하 는 사람은 늘 중심을 동경한다. 반대로 중심에 거주하 는 사람들은 자신의 호기심으로 인해 주변에 거주하 는 사람들의 삶에 관심 갖는다. 그런 호기심의 발로가 풍토를 이용해 주변 지역을 탐색하게 하고, 기록을 남 긴다. 히포크라테스의 『공기, 물, 장소에 관하여』라는 책이 갖고 있는 의미 역시도 그리스 주변국들이 어떤 풍토적 조건을 갖고 있으며, 그들이 어떤 기질과 질병 을 갖고 있는지를 서술하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 다. 그런 측면에서 풍토는 지역을 이해하는 총체적인 요소이긴 하지만, 차별과 배제를 묵시적으로 담고 있 는 정치적인 의미체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4) 지역 관심 표현으로서의 풍토
지리학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을 충 족시켜준다. 내가 가보지 못한 공간이나 지역에 대한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하고, 낯선 곳에 거주 하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관심갖게 한다. 그런 호기 심을 충족시키는 데 중요한 개념적 도구로 사용된 것 이 풍토라는 생각이 든다.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 지역을 찾아가지만, 왜 그와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에는 어려움을 느낀다. 그런 어려 움을 해소해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 풍토라 는 일상적 개념인 것이다. 자연적인 요소와 인문적인 요소를 포섭해서 인간 삶과의 관련성을 설명하는 데 풍토만한 개념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많은 선비들이 여러 곳으로 유람을 떠난 다. 선비들이 기록한 다수의 여행기와 산행기가 남 아있는데, 그 가운데 김정(金淨, 1486-1521)의 『제 주풍토록(濟州風土錄)』이 대표적이다(최철 편역, 1983). 이 책은 기묘사회에 연루되어 제주로 유배되 어 생활하면서 제주에 대한 지리와 풍속을 담아 기술 한 것이다. 제주도의 기후, 가옥, 풍속, 생활, 동식물, 취락, 지형, 산물, 삼림, 수원(水源) 등 자연지리와 인 문지리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풍토라는 제목으로 담 고 있다. 이 책은 조선시대 발간된 다른 기행문과는 달리 매우 상세한 지리적인 내용을 기술하고 있어 제 주의 역사지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어왔다(최철 편역, 1983). 조선후기 선비 이형상이 정밀하게 기록 한 18세기에 편찬된 제주 지리지인 『남환박물(南宦 博物)』에도 『제주풍토록』을 인용하고 있을 정도이다 (이형상·이상규·오창명 역주, 2009).
우하영(禹夏永, 1741-1812)의 『건도 부산천풍토 관액(建都 附山川風土關扼)』은 학술적인 저술에 ‘풍 토’가 들어 있는 사례이다(최홍규, 2001). 향토 사학 자 최홍규(2001)에 따르면 이 책은 농업지리서로 경 기를 비롯해 관북, 관서, 해서, 관동, 영남, 호남, 탐라 등 각 지역의 농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지리적인 기술 을 담고 있다. 여기서 산천은 지형을 의미하는 것이 며, 풍토는 기후에 대한 언급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 다. 특정 지역의 자연지리적인 특성인 지형과 기후를 바탕으로 농업을 비롯한 산업의 특성을 지역 답사를 통하여 기술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이러한 풍토에 대한 다수의 언급에도 불구하고 『세종실록지리지』나 『동국여지승람』 등에 서는 항목이나 설명에 풍토라는 용어가 없다. 『세종 실록지리지』에서의 자연지리 항목은 산천(山川)과 풍기한난(風氣寒暖) 정도이다. 이를 유추하면 풍토 는 지역의 지리나 문화에 있어 보다 폭넓게 사용되는 보다 인문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중앙 정부의 관찬 지리지에서는 구체적이고도 실질 적인 내용 중심이 주제가 되며 은유적이고, 포괄적인 풍토라는 주제나 항목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던 것으 로 보인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이같은 지 리지에 풍토가 붙지 않은 것은 언어의 정치학이 내재
되어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나 『동국여지승람』 등 중앙 정부에서 관찬한 지리지 들은 중앙정부 중심의 통치를 위한 것으로 행정, 재 정, 지역 경제, 인구와 성씨 중심의 구체적인 수치와 함께 기록하는 요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서인 원, 2002).
신복룡은 『한말 외국인 기록』이라는 시리즈로 한 국을 방문한 외국인이 바라본 한국의 지리, 지역, 풍 습, 사건 등을 기록한 견문록, 지리지, 역사서 등을 번 역하여 소개하고 있다. 영국의 여성 지리학자 비숍 (I. L. Bishop)여사의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도 있 고, 『조선의 풍물지』(W. R. Carles, 1999)와 『서울 풍 물지』(G. W. Gilmore, 2006)가 있다. 풍물지 외에도 그의 번역서 제목들 가운데는 ‘견문기’, ‘조선’, ‘나라’,
‘비망록’, ‘동물지’, ‘표류기’, ‘탐사기’ 등 지리와 관련 된 용어들이 붙어 있다. 특히 『조선의 풍물지』는 한국 의 자연과 인문 지리적인 조건과 모습, 생활 모습 등 을 설명하고 관련된 그림까지 싣고 있다. 여기서 풍물 지는 지리지이면서 생활지이다. 자연적인 배경과 관 련하여 인문환경에서의 주민들의 삶의 구조를 조사 하여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정확성과 정밀성에는 문 제가 있지만, 그들로서는 다니기 힘든 지역의 풍토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담겨 있다고 본다.
고고인류학자 이청규(2000)는 지역문화에 대한 고 고학적 연구에서 문헌기록으로서의 ‘풍토록(風土錄)’
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한 예로 400년 전 제주도 의 역사, 지리, 풍속, 물산, 기후 등을 살피고 있는 김 상헌(金尙憲)의 『남사록(南槎錄)』을 들고 있다. 그 의 저술은 풍토에 영향을 받은 지역의 문화와 생활상 을 기록하고 있는 지역지(地域誌)의 성격을 갖고 있 기 때문이다. 인류학자 전경수(1997)는 ‘생태민속지’
를 주장하면서, 지역의 민속은 ‘문화와 환경의 공진화 (coevolution)라고 설명한다. 풍토의 의미와 근접한 설명으로 여겨진다.
일본의 경우에도 이같은 다른 지역에 대한 호기심 은 여러 권의 지리지를 남기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 가운데 중세 때 최고(最古)의 역사지리서인 『풍토기 (風土記)』(강용자 역, 2008)는 일본의 역사서 『고사 기(古事記, 고지키)』와 『일본서기(日本書紀)』와 함
께 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지리지이다. 일본에서 전하 는 3대 역사 기록물로서 지리와 풍토에 대한 기술이 매우 많다. 강용자에 의하면 『풍토기』는 ‘기후와 지역 에 대한 기록’이며 일본 최초의 지방 지리서이다. 이 책에는 행정, 산물, 토지, 지명 유래, 전래되는 이야기 와 특이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풍토기』는 중앙집 권을 위해 편찬한 것이며, 일본 최초의 통치(행정)를 위한 지방 지리지이다(강용자, 2008). 일본에서 『풍 토기』는 곧 지리지(地理誌)이면서 생활지(生活誌)였 던 것이다. 이것은 조선시대의 관찬 지리지 편찬과 같 은 이치로 볼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도 일본은 우리나라의 여러 지역을 대상으로 그들만의 방식으로 많은 지리지를 저술을 했다. 풍토기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는 지리지로 『춘천 풍토기(春川風土記)』가 있다. 이 책은 1935년 조선 일일신문의 기자였던 일본인 고노 반세이(河野萬世) 가 저술한 것으로 조선일일신문 강원지사에서 출판 한 것이다. 일본인들의 자연에 대한 기록을 풍토로 명 명하는 것에 대해 익숙함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 다. 춘천풍토기는 강원도내에 거주하는 일본인이 가 장 많았던 춘천지역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있었던 일 본 사람들을 위해 그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춘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장래의 일을 기록하고 있다(최승 순, 2007).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지리지라는 용어 대신에 풍토기(風土記)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 에 춘천지리지가 아니라, 춘천풍토기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조선에 대한 특이한 지역자 료로서 1935년 발간된 市山盛雄 編의 ‘朝鮮風土歌 集’이 있다. 이것은 일본의 고유한 가요 방식인 단카 (短歌)로 이루어진 조선에 대한 지리지라 할 수 있다 (구인모, 2006). 조선의 민둥산과 맑은 하늘을 대비하 면서 조선에 대한 비하적 풍경 묘사를 하고 있다(구 인모, 2006). 이 가요집에서 일본은 조선에 대해 풍토 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바, 내지 일본이 아닌 식 민지로서의 외지의 자연과 풍습 등 지리를 기술한다 는 통치적 정치색을 다수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 다(김보현, 2014). 중국의 경우에도 낯선 세계에 대 한 호기심을 책으로 남긴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13세기에 주달관이 지은 『진랍풍토기(眞臘風土記)』
를 들 수 있다. 이 책은 중국 원나라의 사절을 수행하 여 진랍(현 캄보디아)을(를) 방문했던 주달관의 기록 이다. 약 1년여의 체류기간 동안 캄보디아의 건축, 종 교, 교역, 의복, 농경, 문자, 촌락 등 40여 가지의 주제 로 나누어 캄보디아 사람들의 생활상을 상세하게 다 루고 있다. 마르코 폴로(Marco Polo)의 견문록에 견 주 될 만큼 뛰어난 지리지로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이 책이 갖는 장점은 캄보디아라는 하나의 나라를 상 세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후세의 지리학자들에 게 캄보디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서의 가치 를 갖고 있다(최병욱 역, 2016).
5) 예술무대로서의 풍토
미의식을 다룸에 있어서도 풍토론은 커다란 영향 을 준다. 문학평론가 김윤식(1984)은 이효석의 작품 을 분석하면서 그의 미의식은 지리적이라 주장한다.
김윤식은 역사에서는 아무런 미의식도 발견할 수 없 다고 말한다. 미의식을 찾기 위해서는 역사보다는 ‘지 리’쪽이 더 적합하다고 본다. 이효석의 미의식 역시도 역사보다는 지리가 더 크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 다. 그러면서 그는 이효석이 갖고 있는 지리는 풍토의 다른 이름이라 말한다. 이효석이 자신의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다양한 미의식의 저변에는 각 지역 의 풍토에 대한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효 석은 서양 것에 비해 부족하지만, 이 땅에서 미의식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이 땅의 풍토를 통해서만이 가능하 다고 보았다(김윤식, 1984). 이효석은 발자크(H. de Balzac)와 같은 위대한 예술가의 탄생을 기원하는 것 자체가 우리와 같은 풍토에서는 극난한 일이라 말한 다. 우리가 갖고 있는 풍토를 차버리지 않고서는 그와 같은 위대한 예술가의 탄생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다(이효석문학재단 역음, 2016).
나아가 이효석은 우리 일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것 역시도 우리의 삶의 토대인 풍토와 지리에 대한 인식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생활의 미 를 말할 때에 반드시 그곳의 문명과 자본주의를 가리 키는 것이 아니다. 일상적인 아름다움의 원형이 아름
다운지를 말하는 것이며,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아 름다움의 원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그것을 잃어 버리고 있지 않는지에 대해 물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 의 풍토가 갖고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을 토대로 우리의 미를 왕성하게 배양하고 제조하여 독창적인 예술품들의 등장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도 잊지 않았 다(이효석문학재단 역음, 2016).
김승옥의 『무진기행(霧津紀行)』을 보면, 주인공이 고향 가는 버스 속에서 그 지역 승객들이 나누는 대화 를 듣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바다가 가까이 있으니 항구로 발전할 수도 있을 텐데요?”
“....그럴 조건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수심이 얕은데다가 그런 얕은 바다를 몇 백리나 밖으로 나가야만 비로소...바다다운 바다가 나오는 곳이 니까요.”
“그럼 역시 농촌이군요.”
“그렇지만 이렇다 할 평야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 그 오륙 만이 되는 인구가 어떻게들 살아가 나요?”
“그러니까 그럭저럭이라는 말이...”
“...그렇지만 한 고장에 명산물 하나쯤은 있어야 지.”
여기서 승객들은 그 지역의 지리적인 조건을 이야 기하며 어떠한 지리적인 여건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 가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물론 이같은 대화 속에서 지역의 구체적인 특성에 대한 내용없이 단지 이 지역 의 답답함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고 있지만, 이 부분 은 앞으로 전개될 사건과 그 사건의 배경이 되는 것이 이같은 풍토임을 암시한다. 작가는 안개를 이용해 음 울한 듯, 비하하듯 부정적으로 이 지역의 이미지를 그 려낸다. 작가는 안개의 이름으로 이 지역에서 발생하 는 음울한 사건이 풍토와 무관하지 않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김광섭은 시 ‘성북동 비둘기로’로 잘 알려진 시인이 다. 그런 그가 ‘고민의 풍토지’라는 시를 발표했다(김 광섭, 2005). ‘…불안한 나라의 예기…/…아침 바람
에 하늘을 갈고/저녁 안개에 길을 더듬어/향토가 부 르는 소리에 돌아왔다./…그대 이 상처 난 한줌 흙에/
세계의 한 섬 흙과 바꾸지 못할 눈물이 있음을 알았 으니/… 김광섭 시인은 ‘불안한 나라의 상처 난 한줌’
에서 슬픔의 고민을 느끼지만 그래도 고향 특유의 ‘바 람과 안개’가 있는 풍토를 ‘세계의 한 섬 흙과 바꾸지 못할 눈물’로 표현한다. 여기서 풍토는 고향의 익숙 한 기후와 토양을 말하면서 고향의 정서로 문화적 풍 토로도 읽힌다. 또한, 풍토는 인간성이 풍부한 자연이 며,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자연이라는 인식도 발견할 수 있다.
조형미술학자 김영기도 미술과 풍토와의 관계에 대해 언급한다(김영기, 1991). ‘풍토에 담긴 조형의 식’에 대한 논의에서, 풍토를 ‘한 민족이 지금까지 살 아온 기후, 지형, 생태, 토양, 식생을 포괄하는 개념이 며, 이 땅에 살고 있는 한 가장 거대한 지각대상’으로 본다. 조형미술을 위한 분석 방법의 하나로 풍토를 언 급하면서 구체적이고도 학술적인 측면에서 지형학, 기후학, 풍수지리설을 사례로 들고 있다. 지리적 경관 론의 변천과정을 설명하면서 그런 경관의 변천 과정 과 미술에 담겨있는 미의식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음 을 주장한다. 풍토의 분석과 적용을 통하여 조형미술 의 심미성을 이해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미술 큐레이터 강효연(2011)은 미술도록집 『삶과 풍토』에서 풍토는 ‘장소성’을 내포하고 그 지역의 문 화와 역사, 기후 등 복합적인 요소를 통해 형성한다고 하였다. 그런 풍토는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는 문화적 인 정서로서 사회적 풍토라고도 말한다. 미술은 이러 한 풍토를 담아내는 그릇으로 작가들의 풍토에 대한 인식이 작품에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술평론가 오광수(2011)는 예술의 풍토를 논하면서 ‘자연지리, 인간생활, 정신적 풍토’의 결합물로 보고자 한다. 경 관미학이나 환경미학은 이같은 풍토적 요소가 미술 에 미치는 영향을 조금 더 학문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분야라고 볼 수 있다. 미술 작품이 갖고 있는 풍토적 인 요소가 미술의 출발점이자 해석의 귀결점임을 암 시하는 것이다(김민환, 1999).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소설도 이같은 미 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그가 지은 『설국(雪國)』(서기
원 역, 1991)을 보자. “무위도식하는 그는 자연과의 보호색을 찾는 마음 때문인지 객지에선 그 고장의 인 정과 풍습에 본능적으로 민감했다. …(중략)… 소박 한 풍경 속에서 곧 한가로운 기분을 …(중략)… 이곳 은 눈 고장에서도 가장 살기가 좋은 마을 중의 하나라 는 것.” 이 글을 통해 주인공이 자신이 방문한 지역의 풍토를 살피고, 그런 풍토에 자신을 적응하기 위해 노 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온천장으로 요양을 왔으며, 비교적 오래 동안 이곳에 머물기 위해 적응하거나 완전한 요양을 위해 지역의 풍토에 자신을 맡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동일 것이 다. 야스나리는 눈이 많이 오는 지역(雪國으로 표현) 에 대한 지리적인 특성을 나열함으로써 이 지역이 갖 고 있는 풍토를 기술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4. 결론: 풍토의 지리적 의미
풍토는 느낌으로 충분히 인식을 한다고 해도, 정확 한 개념에 대한 설명은 쉽지 않다. 풍토는 지역의 고 유성, 지역에 대한 미묘한 느낌 등을 말한다. 풍토는 지역의 배경, 기저, 기층, 잠재적 특성을 의미한다. 다 른 지역과 구별되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특성을 갖 기도 한다. 그 지역만의 느낌의 구조를 담고 있기 때 문이다. 그렇기에 풍토는 어떤 지역이 갖고 있는 그 지역의 사람들의 삶과 역사, 사회 구조의 근간을 이루 는 지리적 배경 혹은 조건 등을 의미한다고 본다.
풍토의 개념과 의미는 존재하지만 그 포괄성과 은 유성, 모호성으로 인하여 지리학자에 의한 풍토 자체 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거의 없었다. 다만, 지리학 자들이 지역의 역사문화, 풍수지리, 지역기후와 지역 지형 등의 연구에서 풍토의 의미를 설명하고 유추하 게 하는 연구를 수행하였다. 하지만, 풍토에 대한 명 확한 개념적 기원과 특성에 대한 설명이나 논의는 충 분하지 않으나 이러한 논의 과정을 통해 풍토가 갖고 있는 지리적 의미를 조금 더 선명하게 드러내고자 하 였다.
이러한 인식상의 문제 의식에서 본 연구를 시작하
였다. 풍토라는 일상적 개념이 갖고 있는 다양한 의미 의 차원을 보여주기 위해 풍토가 갖고 있는 은유적이 고, 총체적인 개념적 틀을 조금은 분석적으로 접근하 고자 하였다. 다양한 서지학적인 자료를 통해 풍토를 이용하는 학자들의 견해를 살펴보았고, 그를 통해 풍 토의 의미체계를 재구성하려 하였다. 또한, 풍토가 우 리 삶에 미치는 다양한 영향력의 유형을 구분해 보았 다. 그럼에도 아직도 풍토에 대한 논의는 출발점에 서 있다. 하지만, 풍토에 대한 논의를 서지학적으로 정리 하고 그것을 통해 개념의 기원을 살피고, 다양한 유형 의 풍토 연구를 정리한 것은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본 연구에서 서지학적으로 풍토에 대한 분석을 통 해 추론할 수 있는 것은 많은 학자나 사람들이 풍토 가 마치 환경결정론의 다른 이름인 것처럼 사용하고 있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통념적으로 말하는(F.
Ratzel)의 환경결정론을 넘어 숙명론적인 환경인식을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떤 풍토에 처해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고유한 풍토에 의한 숙명적인 지배 를 받고 있다고 여긴다. 인간과 자연환경의 유기적인 관계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풍토가 인간 삶에, 인간의 역사에 일방적이거나 직접 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는 것 이다.
풍토가 갖고 있는 이 같은 측면을 보다 정확히 논 리적으로 파악하는데 지리학의 역할이 중요하다. 풍 토라는 측면이 갖고 있는 인문적인 측면에 대한 논 의가 요구되지만, 풍토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자연 적인 측면에 많이 경사됨으로써 환경결정론적인 인 식을 갖게 되었다. 그렇기에 인문적인 측면에서 풍토 를 규정하고, 그것을 통해 우리의 삶에 대해 연구하는 지리적 연구가 요구된다. 각 지역이 갖고 있는 느낌 의 구조를 설명하기 위한 지역지리적인 연구가 풍토 에 대한 환경결정론적인 시각을 희석시키는 데 기여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의 예술과 공간과의 관계 또 한 풍토의 인문적인 속성을 드러내줄 수 있을 거라 생 각한다.
지역의 풍토는 지역의 지리와 밀접하다. 인간이 존 재한다는 것은 장소 안에 어딘가에 있다는 것이고, 공
간속에 모든 것이 존재하고, 모든 것 속에 공간이 존 재한다고 생각하는 지리학자들의 관점이 유효하다 면, 풍토는 지리적 현상을 설명하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지리라는 학문이 갖고 있는 통섭적 측면 을 가장 잘 보여주는 개념이 풍토일 수 있기 때문이 다. 은유적이고 다의적인 측면이 오히려 지금의 시대 정신을 잘 반영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명확하고 분석적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풍토가 갖고 있는 설 명력이 높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런 과 정에서 우리가 전제해야 할 것은 풍토가 인간 삶에 일 방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고, 인간 삶이 풍토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풍토가 갖고 있었던 은유적이고 다의적인 개념적 차원을 지리적인 관점에서 인식하고 바라보고자 하 는 것은 통념적인 풍토에 대한 인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풍토가 갖고 있는 지 리적인 의미를 다시금 부활시켜보자는 것이다. 인간 과 자연의 유기적인 관계를 통해 우리 삶의 모습을 설 명하였던 지리학의 모습이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하 고 있었으며, 오늘날에도 그런 전통이 이어지고 있음 을 확인하려는 노력인 것이다.
풍토는 지역과 지역속에 존재하는 인간의 삶을 설 명하는 중요한 개념이기에 풍토가 갖고 있는 다의적 인 차원을 하나의 용어로 환원하기에는 어려움이 있 다. 풍토가 갖고 있는 진부함은 오히려 우리가 풍토를 새롭게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진부하기 때문 에 소거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고루함이나 진 부함이 나타나게 된 원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것 을 통해 우리는 더 근원적인 현상에 주목하게 된다.
풍토 연구는 지리학의 역사 속에 존재해 왔지만 학 술적으로 발굴되지 않는 개념으로 지리학의 주요한 연구 주제의 하나라고 본다. 우리의 일상 속에 고유하 게 존재해온 지리적 용어를 학문적 개념으로 접근하 고,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 땅에 적합한 지리적 용어 를 발굴하고 찾아내야 한다는 논리의 한 사례가 본 연 구이다. 본 연구는 그런 과정을 통해 지리학의 외연을 확장하고,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삶에 대한 지리학적 설명력을 높이는 하나의 사례가 되고자한다. 또한, 본 연구를 기점으로 문헌적, 서지학적 연구에서 출발하
지만 이후에 풍토와 연관된 역사지리와 지역지리, 그 리고 지리인식론에 대한 연구들이 나오길 기대한다.
주
1) 자위성교에서 ‘성교’란 『서경』의 우서 우공편에 등장하는 용어로 성인의 교화가 바람소리 멀리 들리듯이 사해까지 미친다는 의미이다. 이말은 곧 중국 황제의 직접통치가 미 치지 못하는 이적의 구역에서 성인의 교화를 스스로 수용 해 펼친다는 의미이다. 자위성교는 이미 고려 말 1383년 (우왕 9년)에 명나라 홍무제가 ‘스스로 성교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라는 칙명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조선조에 들어서도 홍무제는 1392년에 우리 중국의 망상은 역대의 친자들이 서로 전하고 지켜 잃지 않았다. 고려는 산과 바다 가 가로막힌 피처의 동이로서 우리 중국이 통치할 바가 아 니다. …(중략)… 스스로 성교하도록 하라’는 메시지를 내 리기도 했다(문중양,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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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투고일 2017. 6. 30 수정일 2017. 8. 10 최종접수일 2017. 8.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