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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렌치의 生殖理論에 대한 密敎的 再解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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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EP Original Article 精 神 分 析 :第 16 卷 第 2 號 2 0 0 5

J Korean Psychoanalytic Society Vol. 16, No. 2, Page 182~193, 2 0 0 5

페렌치의 生殖理論에 대한 密敎的 再解釋

李 炳 郁

*

Tantric Reinterpretation on Ferenczi ’s Theory of Genitality

Byung-Wook Lee, M.D.*

머 리 말

인간은 자궁에서 나와 무덤에 이르기까지 근원적인 불안 과 갈등의 심연 속을 헤매며 살다 간다. 그리고 항상 영원한 안식처를 찾아 방황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인간의 조건이 라고까지 운위되는 심리적 불안은 인류의 탄생이래 한 번도 속시원한 해결을 보지 못한 인간만이 지닌 독특한 현상일지 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이 왔던 근원으로 되돌아 가고자 하는 줄기찬 욕망과 바램은 한 번도 포기되어 본 적 이 없다. 인간이 지닌 기억력의 한계는 자신의 최초 기억에 서조차 희미하고 불분명해진 윤곽 속에서나마 잃어버린 자신 의 근원을 찾아보고자 하는 노력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어 왔다. 그래서 자신의 젖먹던 시절의 기억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인간이 그 이전의 단계인 자신의 전생의 기억에 그토 록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자신의 기억상실로 인하 여 잃어버린 근원과의 영원한 단절을 몹시 두려워하기 때문 일지도 모른다.

모든 인간은 바다를 동경한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을 낳아 준 모태를 동경한다. 자궁으로 다시 돌아가고픈 소망은 창세 기의 낙원추방에서 상징적으로 암시된다. 밀튼의 [실락원]과 그 이후의 [복락원]은 타락한 인간이 자신이 살던 축복된 땅, 에덴 동산에서 어떻게 추방되었으며 그리고 이후에 어떻게 해야 다시 낙원으로 복귀할 수 있는지 그 과정에 대한 장대 한 파노라마를 노래한 것이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낙원인 자 궁에서 강제로 추방되어 이 세상에 나왔으며 그후 고달픈 삶 을 헤쳐 나가면서도 한시라도 그 자궁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꿈을 버려본 적이 없다. 생물학은 우리에게 인간의 기원이 바다였음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모태의 양수는 그 성분이

바다의 성분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도 밝혀졌다. 치료과정의 모든 주사제 중에서 가장 안전한 제제는 생리적 식염수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여름이면 만사를 제쳐놓고 바 다로 달려가 맨몸을 그 속에 담그는지도 모른다. 바다를 보 면 온갖 시름을 다 떨쳐버릴 수 있는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리고 그 속에 풍덩 뛰어들어 죽고 싶은 충동은 왜 느끼는가.

이 모든 수수께끼에 대하여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애썼지만 그들의 노력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였 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바다가 사람을 퇴행시킨다는 사실에 있다. 바다는 왜 우리를 퇴행시키는가.

Ferenczi(1968)는 그러한 노력에 일조했던 극히 드문 학 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저서 [탈라사]를 통하 여 인간 성행위 및 생식에 관한 정신분석적 안목을 개체발 생 및 계통발생론적 관점과 통합시키고자 하는 시도를 보여 준 바 있다. 그러나 그의 견해는 기존 학계로부터 비과학적 이라는 이유로 철저히 무시되었고 두 번 다시 그를 거론하는 사람마저도 없었다. 우선 저자는 진위 여부를 떠나 페렌치의 창의적인 발상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성급한 마음으로 그 어떤 해답을 구한다기 보다는 해답에 이르는 다양한 길의 한 부분을 제시한 것으로 보이는 페렌치의 시도를 밀교적 관점 에서 재조명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페렌치의 바다

탈라사는 바다라는 뜻의 희랍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탈라 사는 그리스 신화에서 태고적 바다의 여신을 가리키며, 아프 로디테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신화속의 탈라사 여신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지중해를 인격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천문학 에서는 해왕성의 한 위성을 탈라사라고 명명했다. 그런데 페 렌치는 무슨 이유로 자신의 저서에 바다라는 제목을 붙였을 까. 그 이유는 탈라사의 내용에 들어가 보면 곧 알 수 있다.

생식의 바다는 전인미답의 세계이며 아무도 정확한 실상을

*翰林大學校 醫科大學 精神科學敎室

Department of Psychiatry, Hallym University, College of Me- dicine, Seou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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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는 비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석가모니는 인생을

고해에 비유했다. 끝없는 고뇌의 바다라는 의미에서 부친 말 이다. 그러나 페렌치는 인간 생식의 비밀이 바다에 연유하 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일생을 통하여 일관되게 모 성적 존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그는 분명 모성 지향적인 인 물이었음에 틀림없다. 바다에 대한 그의 관심과 집착은 결국 어머니를 상징하는 작은 바다, 다시 말해서 자궁을 향한 그 의 집념을 나타낸다. 페렌치는 성의 영역을 넘어선 원초적인 세계, 자궁의 세계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한 관심은 오토 랑크의 출생외상 개념조차 뛰어넘는 것이었다. 태내의 세상 은 가장 근원적인 모자 합일의 상태로서 불교에서 말하는 무 아지경과 일맥 상통하는 경지이기도 하다. 물론 페렌치는 불 교나 밀교의 심오하고 정교한 교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 였지만 그가 집요하게 파고든 인간 생식의 비밀은 결국 성을 통한 열반과 득도의 경지를 추구했던 밀교적 메시지와 서로 상통하는 측면들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일단 주목을 끈다.

산도르 페렌치는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 재 미있는 점은 동양에 기원을 둔 훈족의 후예들이 세운 나라 헝가리에서는 우리와 똑같은 형태로 이름을 부른다는 사실 이다. 따라서 헝가리인들은 산도르 페렌치라 하지 않고 페렌 치 산도르라고 부른다. 하여튼 페렌치는 제 1 차 세계대전에 군의관으로 종군하면서 바다라는 뜻의 생식이론 [탈라사]를 구상했다. 소위 생분석(bioanalysis)을 주창한 그의 학설은 단지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철저 히 외면당하면서 진지한 검토조차 제대로 한 번 시도되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조두영(1998)의 보고에 의하면 최근에 와서 페렌치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고 새로운 재평가 작업 이 일어나고는 있다지만 그러한 작업을 주도해야 할 헝가리 그룹 자체의 미미한 활동과 열악한 조건으로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 있는 듯 하다. [바다]는 1923년 에 출간되었지만 영어로는 거의 반세기가 지난 1968년에 와서야 최초로 번역되었다. 그만큼 페렌치에 대한 관심이 적 었다는 증거다. Ferenczi(1968)는 책의 서두에서 자신이 [탈라사]를 쓰게 된 동기를 밝히는 가운데 1914년 가을 징 집되어 의무중대장으로 복무하면서 여가를 이용하여 프로이 트의 [성에 관한 세 개의 단편]을 번역하고 있었는데 여기 서 상당한 영감을 받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인간 성행위의 발 생학적 기원을 추적하면서 점차 개체 및 계통발생학이론의 관점을 정리하고 때마침 그를 방문한 프로이트에게 이러한 내용을 귀띔하였으며 그후 1919년 프로이트와 동료들의 소 모임에서 이같은 내용을 보고함으로써 책자로 낼 것을 독려 받았으나 처음에는 몹시 망설였다고 한다. 왜냐하면 당시로 서는 성행위에 관한 노골적인 언급이 금지된 상황이었고 또

한 방법론적으로도 지나친 논리의 비약 때문에 자신의 과 학적 양심에도 일단의 죄책감이 들기도 하여 주저한 것이다.

그러나 방법론 상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그는 과감하게 출판 을 결정하였다.

[바다]의 내용은 독자에 따라서는 심한 모욕감이나 수치 심, 적대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자신의 내면에서 왜 그런 감정이 불러일으켜지는지 한 번 생각해 보 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인간의 성은 흔히들 신비롭 다고들 한다. 그러나 그러한 신비감은 달리 표현하자면 그 만큼 인간이 자신들의 성에 대하여 무지하다는 것을 인정하 는 셈이 된다. 모르는 세계는 누구에게나 신비로운 법이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이처럼 두려움 반, 호기심 반, 이중적 인 자세를 견지해온 인간의 모순된 태도를 뛰어넘어 오랜 역 사의 그늘 속에 안주해온 성의 실체를 벗겨내려 하다가 혹 독한 비난을 뒤집어쓰게 되었다. 그에 대한 비난은 결국 여 론의 지지를 받고 인기를 얻게 되는 지름길이기도 하였다.

많은 인물들이 세인들의 평판에 신경을 쓰며 프로이트 곁을 떠났다. 브로이어, 융, 아들러 등이 떠나고 하르트만, 크리스, 브렌너, 에릭슨 등은 자아의 성장에 전적으로 매달려 스승 의 리비도설을 희석시킴으로써 대중의 화살을 피할 수 있었 다. 성의 극단까지 치달은 빌헬름 라이히는 사회에서 철저히 매장 당했다. 프로이트의 계승자임을 자처한 라캉마저 자아 를 공격하고 욕망을 강조하면서도 형이상학과 수학의 세계 로 도피하였다. 오로지 프로이트만이 끝까지 성에 대한 미련 을 버리지 못하고 집착했던 인물로 기억된다. 인간은 아직까 지도 자신들의 성에 대해 직면하기를 두려워하고 있으며 반 대로 성에 대한 진실을 회피하기 위하여 성에 몰입하기도 한다.

사정과 배뇨

종(種)의 번식은 교합과 사정, 그리고 수정을 통해 이루어

진다. 그리고 자연은 교합을 통한 극치감을 제공함으로써 보

상을 주지만 그것은 잔혹하리만치 매우 짧은 순간에 불과하

다. 더욱이 동물의 세계에서는 일정한 발정기에만 교접이 이

루어지도록 제한을 둠으로써 무제한의 종의 번식을 방지했

다. 인간은 물론 예외적으로 발정기의 제약에서 벗어났지만

사정과 수정에 의해 종을 번식하는 법칙에서는 예외가 아니

다. 그런데 인간은 자연이 준 이러한 능력에 다양한 이상반

응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특이한 존재라 할 수 있다. 성

기능장애는 남녀를 불문하고 인간만이 지닌 매우 특이한 현

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문명화된 사회일수록 더욱 두드러

진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성은 인간의 경우에 단순한 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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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현상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증명되었다. 프로이트 가 인간의 정신발달과정에 성을 개입시킨 이유가 여기에 있 는 것이다. 그는 매우 중요한 발견을 했으면서도 그것 때문 에 격렬한 사회적 반발에 부딪쳐야 했다. 그만큼 당시의 사 회적 분위기는 자신들의 성에 대한 직면을 손쉽게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고루한 상태에 젖어 있었다. 인간의 뿌리는 자연과 맞닿아 있지만 루소의 권유처럼 그렇게 손쉽게 자연 으로 돌아갈 수 없는 지점까지 오고 말았다. 그 이유는 인 간이 정신과 리비도의 결합체라는 매우 특이한 형태로 발전 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한 토대 위에서 남성들은 조루와 발기 불능, 사정불능, 그리고 여성들은 불감증과 불임증 등 특이 한 형태의 성기능장애에 시달려온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장 애의 상당 부분은 심리적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이 입 증되고 있다.

Abraham(1924)은 조루증의 원인을 발달상의 뇨도성애 (urethral erotism)에서 찾았다. 이들 환자들의 특징은 자신 의 오줌과 정액에 똑같이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며 이는 말하자면 모든 유기체의 배설물에 대해서 무가치한 것 으로 간주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페렌 치가 경험한 많은 증례들에서는 단지 자신들의 정액을 지나 치게 아끼려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엄밀히 말해서 이들 상 당수는 사정불능 환자였다고 하였다. 즉 그들은 발기와 삽 입은 가능한데 사정만을 못하였다는 것이다. 이들 환자들의 무의식에서는 성교를 배변행위와 같은 것으로 여기는 경향 을 보였는데, 예를 들면 여성의 질을 양변기로, 정액은 대변 과 등가물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아동기에 배설 습관의 엄격한 통제에 반발한 경우가 많았던 사람들로서 성 행위 자체도 자기의지의 표현으로 보기 때문에 배우자가 성 교를 원할 때는 발기불능 상태로 되며 월경 등의 이유로 정 상적인 성행위가 불가능한 경우에만 발기가 되는 것이다. 즉 청개구리처럼 꼭 반대로 행동한다. 만약 배우자가 그들의 뜻 에 반대할 경우에는 갑자기 적개심이나 분노발작을 터뜨리 거나 혹은 아주 냉담해진다. 즉 이들에게서는 성행위와 항 문기의 밀접한 연관성을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고 실 제 임상에서도 발기불능 환자를 위한 특별한 항문기법이 있 는 것으로 봐서 상당한 개연성을 갖는다고 하였다. 특히 많 은 남자들이 성행위를 하기 전에 대변을 보고 싶은 충동을 갖는데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성적인 감정의 억제가 분석을 통하여 해결되면서 심한 신경성 소화기장애도 사라지기도 한 다는 것이다. Ferenczi(1950)는 다양한 임상 사례들의 경 험을 토대로 조루뿐 아니라 발기불능증 및 동성애, 자위 행 위, 외설적 언어 사용 등, 광범위한 성적 주제에 대하여 논

의한 바 있지만 그는 특히 사정행위에 관련된 심리적 기원 에 강한 관심을 보였다.

페렌치는 추론하기를 정상적인 사정에서는 항문과 뇨도의 신경계가 서로 협동적인 조화를 이루는 것이 필수적인데 반 하여, 조루에서는 뇨도계의 성분이, 그리고 사정지연에서는 항문계의 성분이 독자적으로 관여한다는 것이다. 동양의 전 통적인 양생법에는 정력 강화를 위한 항문 오무리기 훈련법 이 전해져 오는데 이러한 관점에서 상당히 설득력 있는 방 법으로 간주된다. 또한 아이들의 장난스런 놀이에서 보듯이 누가 더 멀리 오줌을 눌 수 있는가 시합을 하는 경우에도 자신의 성기가 얼마나 힘이 더 센가를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 로 배뇨능력을 이용하는 것이다. 마찰 과정에서는 괄약근의 활동이 특히 중요한데 이 과정 동안에 쌀 것이냐 참을 것이 냐의 사이에 중단없는 투쟁이 일어나게 되며 이러한 중첩 된 신경작용이 마찰과정에서의 앞으로 들이밀고 뒤로 당기 는 동작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즉 뚫어버리겠다는 관통은 사 정의 경향과, 빼내려는 철회는 억제상황으로 되돌아가려는 것을 의미한다. 유추하여 말한다면 사정의 곤란에 관여하는 신경병리학적 기전은 일종의 성기적 말더듬과 같다는 것이 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동물들의 성행위에서 이러한 진입과 철회의 성기적 말더듬 현상이 관찰된다는 데 있는 것이다. 그 렇다면 인간과 동물의 성행위에 있어서 목적론적 차이와 방 법론적 유사성에서 오는 혼란을 어떻게 수습하느냐 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모자 합일이나 자궁회 귀의 무의식적 욕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전혀 없다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어떻게 보면 동물들도 한계는 있지만 어 느 정도의 자아 성장을 겪는다고 볼 수도 있다. 다만 우리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우리말로 아기의 오줌을 누일 때면 [쉬]라고 하며 똥을 누

일 때는 [응가]라고 한다. 아기가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하면

[옹알이]한다고 한다. 영어로는 [쉬]를 [피이(pee)]라고 한

다. 또한 임산부가 출산할 때 산부인과의사들은 흔히 아랫

배에 힘을 주라고 독려하는 경우에 똥을 누라는 요구를 많

이 한다. 항문 에로티즘과 구강 에로티즘의 결합이 임상적으

로 나타나는 예가 바로 똥을 먹는 식분증(食糞症, copropha-

gia)인데 항문적 상실의 고통을 구강적 섭취의 쾌락을 통하

여 보상하려는 투쟁이다. 프로이트 역시 에로티즘의 이동을

설명하면서 클리토리스에서 질(膣)로의 에로티즘 이동, 그리

고 젖꼭지와 콧구멍으로의 발기성향 이동, 성적 흥분을 억제

하는 처녀들에서 얼굴에 홍조를 띄는 경향(머리의 발기) 등

을 예로 들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페렌치가 말하는 사정행

위란 뇨도-항문적 통합 현상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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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와 전희

성교시 가장 보편적인 행위는 입맞춤, 빨기, 물어뜯기, 깨 물기, 쓰다듬기, 끌어안기, 핥기, 삽입, 마찰, 흔들기, 냄새맡 기, 신음하기 등 일 것이다.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지는 이 러한 일련의 행위와 동작들은 철저한 의식의 지배하에 이루 어지는 이성적 행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양상을 보인다. Fe- renczi(1925)는 분석적 관점에서 이들 행태를 누구보다 철 저하게 파고 들었던 사람이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왜 전희 를 하는가. 전희적 행동을 통하여 인간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 는가. 페렌치는 모든 전희적 행위들을 모태로 돌아가기 위한 유아적 퇴행으로 간주했다. 전희에서 보이는 행동양식들은 우 리 모두가 유아기에 보였던 방식들을 퇴행적으로 반복하는 것이며, 그 최종적인 목적은 직접적인 성기 삽입으로 여실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삽입 직후 느끼는 죄책감 때문 에 즉시 성기를 후진시키는 것이며 그러한 전진과 후퇴를 반 복함으로써 자신의 욕구와 갈등을 표출하는 것이라고 하였 다. 따라서 인간의 성교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불가피한 심리 적 결과라는 것이다. 동물들은 성기 삽입과 동시에 사정하 기 마련이다. 수 초만에 일은 마무리되고 종의 번식은 보존 된다. 그러나 유아기의 심리적 잔재에 얽매인 인간은 종의 번 식만을 목적으로 하는 동물과 달리 모태로의 회귀를 상징하 는 성적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자신들의 또다른 심리적 목표 를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은 어떤 수단으로 자궁에 진입하는가. 여성 은 자신의 신체적 공간 내부로 남성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신 의 일부가 된 남근과 동일시하고 그것과의 일체감을 공유하 면서 근친상간적 소망을 달성하는 동시에 남근으로 채워진 자신의 내적 공간을 통하여 모성과의 이별로 인한 잠재된 정 서적 공허감을 달래려 한다고 볼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여 성은 자궁으로 진입하는 것이 아니라 남근으로 채워지고 충 만된 자신의 내적 공간을 통하여 상징적인 모태 경험을 대 리 반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한 내적 공허감이 강한 여 성들일수록 더욱 강렬하고 공격적인 성행위를 요구하기 쉽 다. 특히 경계성 경향이 높은 여성들은 격렬한 성행위가 종 료된 이후 자신의 신체에서 빠져나가는 남근 자체에 대하 여 강한 거절감과 이별불안을 느끼고 남근에 대해 강한 혐 오감과 적대감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그러한 경우, 전형적 인 히스테리 여성에서 보이는 남근 선망보다는 오히려 그보 다 원초적인 부분 대상으로서의 유방 선망에서 기인한 강한 적대감 및 배신감의 성격을 띈다는 점에서 구분될 수 있다.

또는 합일에 대한 강한 욕구의 좌절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인간의 분비물은 대개의 경우 비릿한 냄새를 풍긴다. 그것 은 바다의 비린내와 비슷하다. 땀, 침, 때, 피, 정액 등의 분 비물에서 풍기는 냄새에 대하여 인간은 매우 양가적이다. 겉 으로는 혐오감을 표시하면서도 은밀히 그 냄새를 즐긴다. 중 국의 오랜 전통이었던 전족은 여자가 귀하던 시절에 멀리 달 아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고안해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성행위 전에 남성들이 그 전족을 풀면서 여성의 발냄새를 통하여 상당히 강력한 성적인 흥분과 자극 을 느끼도록 했다는 주장들이 있어왔다. 무심코 코딱지를 후 비거나 발가락 사이의 때를 말아 한 두 번 냄새를 맡고 내버 리는 습관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장면이다. 인간은 비 릿하면서도 고린내 나는 그 냄새를 사랑하고 즐기기 때문이 다. 사실 알고보면 정액의 냄새는 밤꽃 향기와 똑같다. 은행 나무의 지독한 냄새도 마찬가지다. 이성이 흘리는 타액이나 체취, 땀냄새에 성적인 흥분을 느끼는 것은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다. 매우 도착적인 사람은 피비린내를 통해서도 격렬한 흥분을 느낀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많은 여성들이 오징어를 그렇게 좋아하는 이유도 비릿한 바다 및 분비물 냄새와 흡 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성적인 대용물로는 매우 안성마춤 이다. 바다 내음에 흠뻑 취해 황홀감에 빠지는 모습은 흔히 목격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페렌치는 이 모든 행위를 우리의 근원적 고향인 바다와 자궁을 지향하는 욕구의 표현으로 본 것이다.

자궁으로의 회귀

오늘날의 생물학적 지식은 인류의 기원이 바다임을 밝히

고 있다. 동시에 인간이 탄생하기 전에 몸담고 있는 태내의

조건이 바다의 상태와 흡사하다는 점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와같은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기 훨씬 이전인 20세기

초엽에 헝가리의 정신분석학자 산도르 페렌치는 이미 이와

비슷한 혁신적인 생식이론을 내세움으로써 허황된 비과학적

내용이라는 비웃음만 산 채 기존 학계로부터 철저히 외면당

하는 수모를 겪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주저 [탈라사]를 통

하여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성본능과 그것의 표출행태를 탐

색하고 결국 인류의 기원이 모태와 흡사한 바다로부터 비롯

된 것이라는 당시로서는 대단히 과감한 추론적 가설을 세웠

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생분석(bioanalysis)이라고 불렀지

만 기존 학계뿐 아니라 정신분석학계에서마저도 전혀 받아들

여지지 않았다. 그 주된 이유는 비과학적이기 때문이라는 것

이었다. 오늘날 정신분석 자체가 기존 의학계로부터 비과학

적이라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역

사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자궁 회귀에 대한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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렬한 욕망의 존재를 강조한 인물은 페렌치뿐 아니라 중요 한 대상관계이론가 중의 한 사람이었던 Guntrip도 포함된 다. Guntrip(1969)은 출생 이전의 기억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자궁으로 회귀하고 싶은 강한 욕망이 존재함을 인정하면서 그러한 욕망은 실제와 상상속의 대상으 로부터 철수하여 도피하고자 하는 정신역동의 결과로 보았다.

따라서 자신을 돌봐주고 지지해주는 환경으로부터 도피하 고자 하는 유아의 환상은 결국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 장이다. 그에 의하면 이러한 도피적인 퇴행은 대상 없는 상 태를 추구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는 왜 젖가슴에 대한 환 상보다 자궁에 대한 환상이 더욱 중요하며 동시에 그러한 퇴 행적 환상이 흥분성 대상을 추구하지 않고 대상 없는 상태 를 추구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변을 제시하지 않았다.

Izumi(2000)는 미케네 문명과 스톤 헨지에서부터 중세 영국 왕실의 정원 구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많은 서양회화에 나 타난 미궁 도안에 관한 연구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특징적 양 상으로 항상 중심으로 향한다는 점, 어느 길로 갈 것인지 선 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는 점, 그리 고 항상 되돌아 나올 수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하였는데 그러 한 특징이 미로와 다른 점이라고 하였다. 또한 그러한 미궁 의 특징적 도안이 중국, 일본, 한국 등지에서는 발견되지 않 는다는 사실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였는데 예외적으로 티베트 불교의 만다라 구도에서는 그러한 미궁의 흔적을 찾을 수 있 다고 하였다. 이처럼 일관된 모습으로 이어진 미궁의 특징적 구도 양상은 다름아닌 어머니의 자궁을 지향하는 잠재된 인 간 심성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것일 수 있다.

모든 강물은 흐른다. 눈물도 흐르고 심지어 바다조차도 흐 른다. 물은 인간 생존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자원이다. 인 류의 모든 문명은 물가에서 발생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 시들도 물가에 터를 잡는다. 물은 풍요를 가져오며 갈증을 해소해준다. 물을 보면 인간은 아늑함을 느끼며 심리적으로 퇴행하기 쉽다. 인간은 자궁에서 나왔다. 모태는 양수로 채 워져 있다. 태아는 양수라는 물 속에서 호흡한다. 인류의 기 원도 물에서 나왔다. 인간은 물에 대하여 근원적인 향수 같 은 것을 지니고 있다. 노자는 만물의 도는 물과 같다고 하 였다. 이처럼 물은 모태와 더불어 만물의 기원을 나타내는 상 징이기도 하다. 그래서 풍수지리에서도 죽고난 후 묻힐 묘자 리를 따질 때도 山水를 살폈다. 물의 흐름이 그만큼 중요했 기 때문이다.

물의 상징적 의미에 대하여 많은 논의들이 있어 왔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상징은 모태를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희로애락 등 모든 감정은 물의 형태로 표현된 다. 인간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눈물을 흘린다. 불안하고 긴

장하면 땀을 흘린다. 배고플 때는 침을 흘리며 성적으로 흥 분시에도 분비물을 흘린다. 마음이 초조해지면 소변을 자주 본다.

이 모든 것이 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에서 가장 원초 적인 물은 모태 속의 양수라 하겠다. 모든 태아들은 양수 안 에 떠 있다. 모든 강은 바다로 흐른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유태계 작가 엘리 위젤의 책 제목이다. 그렇다 모 든 강은 바다로 흐르기에 바다는 실로 광대무변하다. 인간은 예로부터 바다를 정복하고 산을 정복한다는 표현을 써왔지 만 산과 바다가 보기에 인간은 미물에 가까운 존재에 불과 하다. 국자로 바닷물을 퍼내듯이 무모한 행동을 벌이는 것이 인간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인간은 깊은 사유를 통하 여 우주를 포용하는 안목과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능력도 지니고 있다. 바다는 깊고 두려우며 신비로운 존재다. 동시 에 모든 것을 껴안고 포옹하며 먹을 것을 무제한으로 공급 하는 세계이다. 하늘은 푸르지만 바닷속은 칠흑처럼 어둡다.

오늘날에 이르러 인간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달나 라에까지 다녀올 만큼 과학이 발달했다지만 실제 우리 발밑 에 놓인 바닷속 만큼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바다는 여 전히 미지의 알 수 없는 세계이다.

정신분석의 영역에서 오토 랑크는 출생외상에 그리고 페

렌치는 자궁에 집착함으로써 오이디푸스 갈등에 집착한 프로

이트에게서 멀리 벗어났다. 종교의 영역에서도 탄트라 불교

는 예외적으로 성과 자궁에 집착함으로써 정통 교리를 크게

벗어났다. [티베트 사자의 서]는 환생시 자신에 가장 적합

한 자궁을 선택하는 방법까지 일러주고 있을만큼 자궁에 대

한 강한 집착을 보여준다. 일본의 분석가 고자와 헤이사쿠

(古澤平作)는 모친살해욕과 관련된 아자세 콤플렉스를 주장

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오꼬노기(小此木 1999)는 아이가 태

어나기 이전에 간직된 어머니의 영아살해욕구의 차원에서 이

해하였다. 이러한 이론이 나오게된 심리적 배경도 알고보면

전생 및 환생의 개념과 깊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독특한

동양적 사유의 산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李炳郁(2000)은

이에 대한 반론으로 모친살해욕은 대상관계이론의 차원에서

충분히 설명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과학적으로 검증

되기 어려운 전생의 개념을 끌어들인 점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나타내 보이긴 했으나, 그만큼 자궁을 매개로한 전생

과 환생의 개념은 동양적 사고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다고 할

수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환생의 개념은 밀교적인 경향

이 매우 짙다. 물론 윤회라는 불교적 정통개념에 입각한 내

용이지만 이와는 달리 기독교의 부활은 자궁을 매개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불교에서 말하는 환생과 전혀 다른 개념이

다.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성과 자궁의 존재를 처음부터 배제

(6)

李 炳 郁

187

시켰다. 동정녀 마리아에 대한 숭배는 바로 그 기점이 된다.

따라서 중세 기독교는 금욕을 적극 권장하고 찬미하였으나 이 에 대해 반기를 든 것은 다름아닌 마르틴 루터였다. 그러나 불교에서도 이와 같은 금욕주의에 대해 강력한 반발을 보인 집단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밀교가 그러했다.

성과 탄트라

모든 종교에서 성은 가장 신비롭고 두려운 존재였으며 고 대인들은 성을 중요한 종교의식의 하나로 간주했다. 특히 고 대 인도인들의 가장 중요한 경전에 속하는 [우파니샤드]에 서도 남녀간의 성관계를 일종의 종교적 의식처럼 다루고 있 음을 알 수 있다. Parrinder(1993)는 그러한 오랜 전통이 힌두 탄트라의 발생과 무관치 않음을 강조한다. 고대 원시부 족사회에서 볼 수 있었던 난교의식은 기독교, 이슬람교 등의 고등종교가 정착되면서 서서히 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 러나 불교는 금욕적인 정통불교에 대한 반동으로 탄트라 불 교가 나타나 고대 인도의 난교적 경향이 다시 부활하는 계 기를 맞게 되었지만 그 생명은 오래 가지 못하고 말았다. 탄 트라 불교는 성적 교합에 의한 비밀의식으로 인하여 밀교라 불리우게 된 것이며 그 때문에 엄격한 신분제도를 고수했던 힌두사회로부터 그리고 특히 이슬람문화가 지배했던 시절에 더욱 강력한 사회적 지탄을 받아 매우 금욕적인 정통불교 마저 덩달아 인도대륙에서 일찍 몰락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밀교의 기원은 힌두 탄트라에 서 찾을 수 있다. 힌두교에서는 절대자로서의 신의 존재를 양성적 원리로 설명한다. 즉 남성적 원리로서의 시바신과 여 성원리로서의 샥티신이 존재하는데 이는 서로 불가분의 양 면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시바는 순수와 완전 을 의미하는 로고스인 반면에 샥티는 변화와 창조를 의미 하는 에로스인 셈이다. 따라서 탄트라 수행자가 추구하는 궁 극적 목표는 자신의 내재된 샥티를 통해서 시바와 결합하는 일이다(Mookerjee 1982). 이는 결국 남성적 존재와 여성적 변화의 신비스런 교합을 뜻하기 때문에 샥티로 대변되는 성 력은 성불의 중요한 매개자로 작용한다고 믿은 것이다. 결국 정통불교에서 성불을 가로막는 것으로 엄격히 규제하는 신 구의(身口意)에 대한 삼업(三業)도 밀교에 와서는 오히려 성 불에 이르는 비밀이 담겨있다 하여 삼밀(三密)로 불리우며 깨달음을 위한 수행의 중심이 되었다. 다시 말해서 의밀(意 密)은 만다라의 시현(示顯)으로, 구밀(口密)은 만트라(眞言) 의 진동음으로, 그리고 신밀(身密)은 마이투나(性的 交合)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밀교사상은 대승불교에도 스며 들어 한국에까지 전파되었으며 [옴마니반메훔] 등의 진언이

나 연꽃 모양의 단청, 금강저(金剛杵) 등의 불교용구는 밀 교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교적 배 경과 충돌하면서 서서히 그 흔적만 남고 소멸되고 말았다.

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밀교의 수행에 있어서 만 다라는 매우 중요한 도구요, 수단이다. 만다라의 내용은 주 로 연꽃과 불상이다. 밀교적 관법을 수행하는 수도자들은 만 다라에 그려진 연꽃이나 불상에 정신을 집중하여 응시함으로 서 깨달음을 얻고자 하였다. 연꽃은 여성 성기를 상징하는데 인도에서는 요니라고 부른다. 부처님의 불상도 대개의 경우 연꽃 받침대위에 올라앉아 정좌하고 계신 모습이다. 이는 여 성 성기를 올라타고 앉은 자세로 해탈의 경지에 오르신 모 습이다. 수많은 수행자들이 쉬지 않고 연꽃을 응시하며 어떤 상념에 이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여성 성 기를 머리 속에 그리며 불타오르는 성적 욕구를 성스러운 욕구로 변환시키는 노력을 부단히 추구하고 반복했을 가능 성은 대단히 높다. 다시 말해서 세속적 남녀 접합의 과정을 차원 높은 정신적 합일의 경지로 승화시키면서 정신적 희열 또는 심리적 오르가슴 상태를 경험하였을 것이다. 이는 단 순한 추론이 아니다. 인도를 현지 방문까지 하며 밀교를 연 구한 釋智賢 스님(1978)도 이미 오래 전에 성을 통한 밀교 적 해탈의 경지를 설파한 바 있다. 목탁은 보리수나무를 깎 아 만든다. 목탁을 두드리며 나무아미타불 또는 관세음보살 을 부르는 것을 염불한다고 한다. 염불을 마치면 구멍속에 끼워 놓는다. 불상은 대개의 경우 연꽃 받침대 위에 모셔있 다. 성적인 상징의 배제는 불교가 인도대륙에서 밀려나고 대 승불교 및 선불교로 이행되어 가면서 더욱 가속화 되었다.

더욱이 유식론의 영향으로 불교는 더욱 정교화된 형이상학 으로 발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밀교적 전통이나 영향력이 거 의 이루어지지 못하였는데 그 이유는 고려의 멸망 이후 조 선왕조가 추진한 억불(抑佛)정책과 숭유(崇儒)사상 때문이 었다. 실제로 고려말은 불교의 타락이 극심했던 게 사실이며 이에 대한 반동으로 조선시대는 특히 유교적 전통을 따르고 강조했던 것이다. 밀교, 즉 탄트라불교와 정통불교의 가장 근 본적인 차이점은 성에 대한 태도 및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정통불교가 금욕적인 수행법을 통하여 출가와 독신생활을

추구한데 반하여 밀교적 가르침은 성을 찬미하고 긍정하며

더 나아가 성을 열반의 도구로 이용하기를 적극 권장하는 입

장을 보였다. 성에 관한 한 양자의 태도는 전혀 상반되고 대

립적인 입장을 보였다는 점이 주목할만 하다. 유명한 힌두

사원의 노골적인 성애 묘사의 부조(浮彫)상들 앞에서 사람

들은 경탄을 금치 못하는데 신성한 사원과 적나라한 성애의

장면은 묘한 대조를 보이며 성스러움과 성애적인 측면의 신

비로운 조화에 전율하게 만든다. O’ Flaherty(1981)는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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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렌치의 生殖理論에 대한 密敎的 再解釋

188

신화에서 보이는 다양한 성적 은유와 상징성에 대하여 연구 하면서 종교적 상징으로서의 양성적 존재가 갖는 의미를 반 혼돈과 친혼돈, 이성에 대한 요구와 두려움 사이의 갈등, 남 신에 대한 여신의 탄트라적 승리 등의 차원에서 해석하고, 특히 밀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남성 본위의 지배 형식을 전 도시킨다는 측면 이외에, 밀교 의식에 기저에 깔려 있는 핵 심적인 메시지는 인간의 잠재의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라고 하였다. 고대 인도인의 성에 대한 관심과 지식은 실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정교하고 치밀하다고 볼 수 있다. 가 장 오랜 역사와 권위를 지녀온 성전(性典)으로 인정받고 있 는 [카마수트라]는 바로 고대 인도인들의 성지식을 여과없 이 보여주는 대표적인 증거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Vat- syayana 2003). 오히려 성에 대해 유례없이 개방된 사회 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이같은 고대인의 성전을 통하여 지 식을 전수받는다는 사실이 매우 역설적인 현상이기는 하지 만 그러나 과거 인도인의 밀교 의식에서 보여준 성에 대한 태도를 우리 자신이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만다라는 밀교의 종교적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의 도 구로서 사용되어져 왔다. 밀교적 관행에서 특히 만다라는 관 법(灌法)과 더불어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만다라는 시 각적 훈련을 위해 필요한 도구이다. 불교 수행에서 만다라의 효용가치는 그 현란한 만다라의 구도에 시선을 집중하고 적 극적인 명상을 하는 것인데 일종의 행동요법에서 시행되는 적극적 상상(active imagination)과 일맥 상통한다. 만다라 의 구도를 응시하는 명상자는 어떤 상태에 몰입하는가. 관법 과 염불은 어떻게 다른가. 관법은 부처상을 집중적으로 응 시하며 명상하는 것이고, 염불은 부처를 생각하는 것이다. 견 불은 부처를 직접 보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자신의 불성을 깨닫고 스스로 성불하는 것이 그들의 최종적 인 목표가 되는 것이다.

만다라의 구조는 원방각을 토대로 하고 있다. 圓은 처음과 끝이 없다. 영원한 맞물림 또는 끝없는 합일의 모습이다. 方 은 정사각형이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대칭의 관계이다. 角 은 삼각형의 구도로 한 정점에서 접촉과 합일의 모습을 나 타낸다. 釋智賢(1978)에 의하면 사각형 구도의 의미는 일반 적인 두 남녀의 만남을 뜻한다. 각자의 사고와 감정이 서로 마주하고 있다. 이러한 만남에는 본질적인 접촉이나 교류가 결여되어 있는 모습이다. 삼각형 구도의 의미는 하나의 정 점을 통하여 두 남녀가 합일에 이르는 만남이다. 그러나 그 합일은 순간적으로 해체될 운명에 있다. 영속성이 결여되어 있는 모습이다. 원의 의미는 합일의 상태가 끝없이 지속되는 만남이다. 이러한 합일의 상태는 종말이 없다. 만다라의 주

된 색조는 붉은 빛이다. 적색은 상당히 자극적인 빛깔이다.

붉은 빛은 인간을 흥분시킨다. 라마사원은 의도적으로 붉은 빛깔 일색이다. 승복도 벽이나 기둥색도 붉은 색을 칠한다.

봄의 축제 때는 죽은 동물의 시체를 갈라 내장을 드러내어 붉은 피를 직접 보여주기도 한다. 붉은 피 역시 사람을 흥 분시킨다. 색채심리에서 빛깔의 상징은 인간의 잠재적인 욕 구를 자극한다. 티베트 사자의 서를 보면 중음의 세계에서 죽은 자를 인도하는 다양한 색채의 광선을 일러주고 있다.

그리고 어떤 빛의 인도에 이끌려 가느냐에 따라 환생의 여부 가 결정되는 것으로 설명한다.

좌도밀교의 의식은 오늘날에 이르러 집단혼음 정도의 난

잡한 포르노 차원에서 이해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본

래의 취지는 그런 것이 아니었음에 틀림없다. 불교의 역사

에서 가장 수치스런 오점으로 남는다고 주장되는 부분은 바

로 좌도밀교가 보였던 의식절차였다. 그리고 이러한 점이 밀

교의 몰락을 자초하는 결과를 낳게된 것도 사실이다. 성을

통한 해탈의 추구는 남녀 교합을 위한 상대를 선정하는 일

부터 시작된다. 물론 그 전제 조건은 상당한 경지에까지 이

른 수도자여야 했다.“옴마니 반메 훔” 이라는 성스러운 주

문을 외우며 영적 오르가슴을 얻고자 했던 밀교의식은 시대

가 변하면서 점차 집단적 난교와 혼음상태로 전락해가기 시

작했다. 그것은 성스러운 종교적 의식을 빙자하여 가장 세속

적인 성적 욕구 충족을 추구하려는 대중을 속이고 기만하는

고도의 위장된 기만적 술책이 되고만 것이다. 아무리 중생들

이 어리석다고는 해도 해탈을 가장한 성적인 난장판이 어떻

다는 것은 너무도 뻔한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Feuerstein(1998)처럼 밀교적 수행을 직접 받아본 사람은

밀교의 포르노적 난잡성을 비판하는 이러한 주장이 전적으로

오해에 기초한 것임을 강변하지만, 그러나 그가 말하는 밀교

는 현재까지 존속되고 있는 티베트 불교를 의미하는 것이

기 때문에 상당 기간 동안 분명한 역사적 사실로 존재했던

성적 비밀의식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밀교의 몰

락과 최후는 불가피한 결과였다. 단지 그 정신만은 오랜 세

월 외부세계와 철저히 차단되었던 티베트에 계승되어 겨우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불교는 그 발원지

인 인도 대륙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되었다. 처음

에는 민중들의 삶 속에 파고들었으나 차츰 대중들은 불교에

등을 돌리게 되고 말았다. 그 주된 이유는 잘못된 방향으로

흐른 밀교 탓이다. 집단 난교적 행태로 변질된 종교적 타락

상에 놀라고 상처받은 민중들은 자연히 불교에서 멀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좌도밀교 말기에는 근친상간적 난교까지 권

장하는 극단적인 주장도 나오게 됨으로써 인도대중들은 완

전히 불교를 기피하게 되었다. 상당한 성적 해방을 구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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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炳 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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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그들의 주장은 지나친 것

이었으며 인간 내면의 무의식적 욕구와 환상을 현실에서 실 현하려는 무모한 도전이기도 했다. 그와 같은 실현은 자아와 초자아 기능이 전면적으로 붕괴된 인간만이 성취할 수 있는 성질의 것으로 가장 극단적 형태의 행동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목표와 수단은 프로이트의‘이드가 있던 곳 에 자아가 있게 한다’ 는 분석 목표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 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밀교를 인간의 환상과 두려움, 그 리고 소망충족의 혼합적 산물로 간주한 Urban(2003)의 관 점은 매우 시사적이다. 그는 영적인 구도와 성적 쾌락의 결 합이 상당히 이율배반적인 구도이기는 하지만 외형적인 기 묘함을 일단 무시하고 그 이면에 놓인 근본적인 철학을 이해 한다면 밀교적 이상을 받아들이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 라고 하였다. 프로이트는 성을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점에서 사회적 지탄을 받아왔으며 따라서 오늘날 정신분석이론의 중심적인 역할을 떠맡고 있는 자아심리학에서는 과거처럼 더 이상 성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추세에 있다. 프 랑스의 저명한 분석가 Green(2002)은 그러한 탈성화 현상 에 반발하여 프로이트의 성에 대한 관심을 현대에 와서 다 시 복원시키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근 원적인 욕망 가운데 하나인 성에 대한 회피는 현대 정신분석 의 가장 큰 오류 중에 하나가 될 것이라고 하면서 에로스의 문제야말로 정신분석이 정면으로 마주치고 해결해야 할 과 제에 속한다고 주장하였다. 프랑스의 작가 Odier(1997)는 본인이 직접 인도를 방문하여 체험했던 여성 구루와의 성적 및 영적 합일의 경험에 대해 고백하고 있지만, 반면에 개인 적 호기심과 신비주의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에서 접근했다 가 환멸과 실망감에 젖어 강한 의구심을 표시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특히 영적 스승인 구루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에 강한 반발심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철저한 개인주의 사회에서 성장한 서구인들일수록 더욱 극복하기 어려운 부 분이 아닐까 한다(Butterfield 1994).

환생과 윤회는 불교의 핵심적인 메시지가 되어왔다. 특히 티베트인들은 탄트라불교 또는 라마교의 본산지로서 그들의 역대 지도자였던 달라이 라마의 존재는 환생의 확실한 증거 라는 믿음을 지녀왔다. 사람이 죽으면 일단 중음의 세계에 머 물다 환생처를 찾아 떠돌게 된다는 믿음은 결국 죽음을 맞 이한 자를 사후의 좋은 세계로 인도하기 위한 의식과 신앙 으로 정착하게 되었는 바, [티베트 사자의 서]는 그러한 신 앙을 결집시킨 가장 기본적인 지침서가 되고 있다. 융은 [티 베트 사자의 서] 독일어 번역본에 장문의 서문을 남겼는데 이 는 탄트라의식 및 티베트 불교에 대한 그의 지대한 관심을 반영한다. 사후세계에 대한 안내서라고 할 수 있는 이 기록

은 죽음 이후에 경험하는 모습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는데 가 장 특징적인 점은 다양한 빛깔들의 후광을 업고 여러 부처들 이 차례로 나타나 죽은 자를 인도한다는 사실이다. 죽은 자 들은 생전의 업보에 따라 자기만의 선호도에 따라 특정한 빛 깔에 매력을 느끼고 자연스레 이끌리게 마련인데 잘못된 빛 을 따라가면 결국 좋은 세상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다시 이 고통스러운 세상으로 환생하여 자신도 모르게 어떤 여인의 자궁속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설 명은 정자와 난자의 결합에 의한 잉태 과정을 이해하지 못 한 고대인들의 사유방식이기는 하나 삶과 죽음에 관한 의문 과 수수께끼에 사로잡힌 사람들로서 당연히 제시될 수 있는 해답이기도 하였다.

밀교적 해석

밀교의 기원은 고대 인도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불교사상과 기묘한 결합을 통하여 특히 후기밀교에 이르러 극도의 반도덕적, 비윤리적 극단으로 치닫게 됨으로 서 탄트라불교는 자멸의 길을 걷고야 말았다. 출가와 금욕을 강조한 정통 불교에서 벗어나 극단적인 성의 찬미와 해방을 외치며 단순한 성적 오르가슴이 아니라 우주적 합일의 오르 가슴을 깨달음의 지름길로 추구했던 탄트라불교는 결국 대중 적 호응을 얻지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밀교 의 화두는 어디까지나 性이다. 금욕을 주장하는 정통불교에 맞서 탄트라불교는 극단적인 성 해방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방법론적인 차이를 떠나 불교가 지향하는 근본적인 목표가 윤회의 악순환적 고리에서 벗어나 해탈과 열반에 이르는 것 이라면 종교적 차원뿐 아니라 심리적 차원에서의 접근이 요 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 자체가 심리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성을 초월하기 위한 수 단으로 성을 적극 이용하려 했던 밀교적 수행 방식은 따라서 매우 역설적이다. 페어필드 대학의 종교학 교수인 Davidson (2003)은 탄트라 운동의 기원을 탐색하면서 이슬람 문명 권의 침입으로 인한 중세 인도사회가 맞이했던 문화적 충격 과 변혁의 결과로 받아들였는데 특히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 변화가 탄트라 운동의 발생에 기여했음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엄격한 카스트제도에 의한 것이든 코란의 계율에 의

한 것이든지 간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의 권리가 심

한 제약을 받아오고 있다는 점에서는 그다지 큰 차이가 없

다고 본다면 탄트라 운동의 발생 동기를 그러한 사회적 변

화의 결과에서 찾는다는 주장이 별다른 설득력을 지니지 못

할 것 같다. 오히려 오랜 기간 성적인 착취의 대상이 되었던

당시의 여성들 입장에서는 성적 해방을 드높이 외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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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렌치의 生殖理論에 대한 密敎的 再解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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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쳐졌을 수도 있는 탄트라 운동이 상당한 매력과 구원의 대 상으로 인식되었을 가능성이 더욱 높다고 볼 수 있다. 오늘 날의 개방된 성문화시대를 살아가는 서구의 현대여성들에게 탄트라 운동의 메시지가 특히 매력을 이끌고 있는 이유도 같 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밀교적 수행의 차원에서 권장되었던 남녀 교합의 비밀의식은 전적으로 영 적 진화 및 해탈을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분석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모든 분별지를 넘어선 무아지 경 상태의 해탈은 유아적 황홀감과 전지전능 상태를 경험하 는 단계 혹은 그 이전의 보다 완벽한 합일의 상태인 태내 조 건과 유사한 단계에 도달했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페 렌치가 유추했던 자궁 회귀의 심리는 결국 불교가 지향하고 자 했던 해탈의 목표와 일치하는 것일 수 있다. 더욱이 그가 말한 성행위의 상징적 의미가 모태로 향한 무의식적 고태적 바램의 행동화라고 한다면 탄트라 밀교가 추구하고자 했던 성적 합일과 영적 오르가슴을 통한 해탈의 경지는 페렌치의 추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다만 일반적 의미의 성행 위와 밀교에서 주장하는 성적 합일의 형태가 다소 기술적인 양상에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성을 통한 합일화의 추구라 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Kernberg(1995)가 보는 견 해는 좀 다르다. 그는 자기로부터 타인과의 열정적인 성적 합일의 상태로 초월하고자 하는 시도는 일종의 죽음에 대한 도전이요,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유한성에서 벗어나고픈 욕 구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밀교적 관점에서 보면 남녀 교합의 오묘한 비밀은 득도와 해탈을 위해 미리 마련된 자연과 우주의 신비스런 법칙이라 는 것이다. 모든 삼라만상에 불성이 간직되어 있음은 동물 이나 무생물에게조차 해탈의 기회가 주어짐을 의미하기 때 문이다. 현대 서구인들에게 티베트 불교의 전수자로서 가장 잘 알려진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Trungpa(2002)에 의하 면, 탄트라의 가르침은 어디까지나 에너지의 움직임에 전적 으로 기초한 것임을 설명하면서 끊임없이 진행하는 불멸의 에너지로서의 法身(dharma body), 즉 위대한 기쁨을 가져 다주는 에너지이면서 모든 공간에 두루 퍼져있는 그리고 아 무데도 안주하지 않는 불멸의 실체가 존재한다는 것이며, 수 행을 통하여 모든 분별심과 이원성을 탈피하고 지금 그리고 여기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법열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탄트라의 근본 목적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모 든 집착을 버리고 니르바나의 에너지와 일체가 되는 상태가 진정한 열반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탄트라 수행자들이 추구했던 모든 분별지 이전의 상태란 다름아닌 모자 합일의 단계, 다시 말해서 모태안의 세계 및 엄마 품에 안겨 젖을 빨며 몰아지경에 빠져 있던 공생적 단

계에 이르는 기간으로 다시 돌아감을 의미한다. 그와 같은 상태는 남녀 교합의 과정에 경험하는 몰아적 황홀상태 및 성적 극치감의 상태라는 현실적 체험을 통하여 강력한 유 추를 불러 일으켰음직 하다. 현실감을 상실하지 않은 상태 에서 원초적 황홀경을 재체험한다는 사실은 매우 역설적인 상황이긴 하지만 퇴행적 명상 수단을 제외하고는 현실적으 로 가능한 방법을 찾지 못했던 당대인들은 오랜 기간의 수도 생활이나 고행을 통한 명상 수도 등의 방법들에 대하여 회 의적인 결론에 도달한 입장에서 그야말로 즉각적인 해탈을 추구한 나머지 점수가 아닌 돈오적 방법론을 선택하게 되었 을 것이다. 또한 그러한 수단은 자신들의 물리치기 어려웠던 성적 욕망을 적절히 해소시켜주는데 있어서 논리적 합리성 을 충족시켜주는 역할도 담당했을 것으로 본다. 마치 금욕적 수도생활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성직자의 성생활을 현실적으 로 보장하는데 성공했던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과 같은 숨 은 동기를 탄트라 운동 역시 그 이면에 간직하고 있었을지 도 모른다.

만다라의 성적 상징과 의미는 매우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원, 방, 각을 중심 구도로 이루어진 만다라는 수행자의 적극

적인 관법에 의존한다. 만다라의 구조를 오래 응시하면 일

종의 환각상태와 같은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데 다채롭고 화

려한 색채로 정교하게 꾸며진 만다라의 그림은 마치 아이

들이 즐겨 갖고 노는 만화경이나 환각상태를 시각적으로 표

현한 뮤직 비디오의 물결치는 화면과도 비슷한 효과를 나타

낸다. 수행자는 마약이나 환각제를 복용하지 않고도 단순한

응시만으로도 그에 버금가는 황홀경을 체험하게 되는데 원

은 동굴, 여성의 성기, 여성적인 원만함과 곡선, 부드러움,

젖가슴, 엉덩이 등을 연상시킨다. 방은 대립적 구도의 현실

세계, 이승을 의미한다. 각은 원안에 박혀있는 남성의 성기

이다. 대개의 경우 만다라는 방의 구도 속에 원이 자리잡고

그 원안에 각이 자리잡고 있는 수가 많다. 이처럼 근원적 성

과 상징물, 욕구 등을 연상시키고 퇴행시키는 원, 방, 각의

겹쳐진 도형을 응시하면서 수행자는 시종일관 그 도형 속에

새겨진 부처의 상을 생각해야 되는 것인데 그처럼 힘든 일

도 없을 것 같다. 알기 쉽게 말하면 만다라는 금욕적인 생

활에 젖은 수행자의 잠재된 성적 욕망을 부분적으로 방출시

켜주고 달래주는 그림책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도 볼 수 있

다. 꿈의 해석에서 프로이트는 상자가 의미하는 성적 상징에

대하여 언급한 바 있다. 원의 도형은 상징적 의미에서 모든

구멍을 의미한다. 원을 뚫어지게 응시함은 구멍 속으로 들

어가고 싶은 무의식적 욕구를 나타낸다. 원불교의 상징은 원

이다. 불상이 아니라 원의 도형이 유일한 상징이다. 인도의

상징적 기호 역시 둥근 수레바퀴로 끝없이 변화하는 삼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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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炳 郁

191

상과 윤회를 나타낸다. 영국 대상관계이론의 효시라 할 수

있는 Fairbairn(1954)에 의하면 인간이 보이는 가장 깊은 퇴행적 행위 자체도 내적 대상들과의 강력한 관계에서 비롯 된 것으로 보았다. 다시 말해서 자가성애(autoeroticism)에 서 보이는 성기에 대한 관심도 대상을 상징한다고 본 것이 다. 그리고 이러한 대상관계는 이후에 맞이하는 오이디푸스 단계에서도 부모와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다. 성 적 합일을 통하여 잃었던 대상과의 관계를 복원시키려는 시 도로 이해한다면 상징적으로 공생적 단계에서 분리 불가능 한 상태의 모습을 띄고 있는 모자 합일의 경지를 추구한다 는 밀교적 이상이 나름대로의 당위성을 갖는 것이기는 하지 만 문제는 방법론적으로 어떻게 그러한 단계에 도달하는 것 이냐 하는 것이 되겠다.

Freud(1924)는 열반원리(Nirvana principle)에 대해 말 한 바 있지만, 불교사상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그로서는 심 오한 내적 성찰에 입각한 불교적 해탈사상에는 관심이 없었 고 오히려 리비도 가설에 입각한 쾌락원리의 차원에서 그 렇게 명명한 것뿐이었다. 반면에 칼 융은 동양사상 및 종교 에 경도한 인물이었다. 그는 티베트 사자의 서를 위시하여 7 개의 황금꽃 등의 안내서 및 번역서에 장문의 서문을 붙일 만큼 남다른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융은 신비주의적 관심 정도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임상에 적용하여 실천에 옮 겼다. 만다라에 대한 융의 관심은 환자에게 직접 만다라를 그리게 함으로써 환자의 무의식을 알아내고자 하였다. 만다 라에서 그는 일종의 치유기능을 발견한 것이다(Jung 1973).

시각적인 관심은 융이 실제로 경험한 신비적 체험에서 비롯 되었다. 따라서 융은 만다라 그림, 불교의 관법, 적극적 상 상, 더 나아가 탄트라적 비밀의식으로까지 나아갔다. 일부다 처제를 지지했던 융이 특히 난교적 특성이 강했던 밀교에 이 끌린 것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만다라에 대한 융의 관심과 임상적용에 힘입어 근자에는 서양에서 미 술요법의 일환으로 만다라요법이라는 것도 개발되어 시행하 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Kellog(1977)는 회화요법에 서 응용되는 만다라의 색상과 도형의 상징적 의미에 대하 여, 그리고 Fincher(1991)는 만다라를 이용한 치료적 작업 을 통하여 어떻게 자기 표현이 가능해지고 더 나아가 통찰 적 수준에까지 이르게 되는지 여부에 대하여 논한 바 있지 만, 그러나 서구인들의 호기심에서 비롯된 만다라요법은 밀 교 본래의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

인간의 성을 바라보는 밀교적 시각은 매우 긍정적임을 알 수 있다. 극단적인 금욕주의로 나아간 정통불교와는 달리 탄 트라 수행자들은 오히려 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더 나아 가 성적 희열을 통한 영적 진화 또는 열반의 상태를 지향했

다는 점에서 가히 혁명적인 도전을 가한 것이라 할 수 있 다. 그들이 추구한 최종적인 목적은 물론 영적인 초월 및 희 열의 상태였겠지만 유아적 희열 상태를 기억하지 못하는 당 시의 성인들 입장에서는 그와 유사한 황홀경을 체험할 수 있는 유일한 경로가 성적 극치감이나 환각물질을 통한 경 험에서 영감을 얻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심층 깊은 곳에 자 리잡은 모자 합일에 대한 무의식적 욕구는 시대적 간격을 뛰 어넘는 보편적 심리상태라고 보았을 때, 남녀 합일에 의한 성적 극치감의 경험은 그들로 하여금 매우 강력한 유추 현 상을 유도했을 것이며, 보다 정교한 우주적 차원의 일체감 으로 자신들의 사유를 극대화시켜 나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성의 존재야말로 고금을 통하여 가장 신비로운 현상이요 아 직까지도 그 실체가 불분명한 수수께끼라고 본다면 자신의 삶의 기원과 목적에 대해 끝없는 회의에 가득찬 질문을 던 져야만 했던 고대인들로서는 신비스런 성을 통하여 그러한 삶의 모호성에서 과감한 탈피를 시도했음직도 하다. 그러한 필사적인 시도는 엄마와의 분리 시기에 강한 좌절과 불안을 경험한 경계성 환자들이 보이는 역설적인 행동, 다시 말해서 이성과의 성적 합일을 통한 만족 추구와 분리에 의한 강한 좌절과 거부감을 끝없이 반복하는 무의식적 동기에 견줄 수 있겠다. 그들은 모호성을 견디지 못하여 극단적인 자해행위 를 통해서라도 자신이 살아 움직이며 숨쉬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불교의 이상은 우리의 삶이 덧 없는 것이며 근본적으로는 삶의 실체가 공(空)이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Bion이 말한 기억과 욕망이 끊긴 자리에 비견될 수 있으며, Lacan이 말한 주체 의 자리, 즉 생각이 끊긴 그 틈새에 나의 진정한 주체가 자 리잡고 있다고 말한 내용과도 흡사하다. 다만 정통불교는 그 러한 이상에 도달하는데 있어서 성이 커다란 장애물이 된다 는 입장이었지만 밀교 수행자들은 반대로 성이 가장 유효한 수단이 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결국 불교적 이상이든 정신 분석적 이상이든 간에 신경증적 상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근본적인 치유책을 도모했다는 점에서 전혀 상이한 차원의 방법론적 시도임에도 불구하고 불교와 정신분석은 동일한 목 적을 추구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李炳郁 2002).

인간의 성행위가 보여주는 일거수 일투족에 대해서 정교한

분석적 주석을 가한 페렌치의 주장은 어찌보면 매우 황당무

계한 이론으로 비쳐지기 쉽다. 그러나 불교의 역사에서 한

시대를 장식했던 밀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일맥상통하는 측

면도 없지 않다는 점에서 일고의 가치는 있다고 본다. 모든

이론은 과감한 추론과 가정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반복적인

관찰에 의한 증거 수집에 실패하게 되면 그 가설은 과학적인

이론으로 인증받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페렌치의 주장은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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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렌치의 生殖理論에 대한 密敎的 再解釋

192

학적 이론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종교적 가설에 가깝다 고 하겠다. 마치 불교의 윤회설 및 유식론, 기독교의 창조설 뿐만 아니라 융의 원형론, 프로이트의 유아성욕설 등이 과 학적으로 검증되기 어려운 것처럼 인간의 정신적 현상에 대 한 자연과학적 탐색은 어찌보면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른 다. 그러나 그러한 불가능에 도전한 이론가들의 도전정신은 과학적 인증 유무를 떠나 우리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대목 이기도 하다.

맺 음 말

페렌치의 생식이론은 유전학적 또는 발생학적 진위 여부 를 떠나 시종일관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주제, 즉 모태 로의 회귀를 중심으로 전개된 추론적 과정이기도 하다. 모태 를 상징하는 바다의 이미지는 그래서 페렌치에게 매우 중요 한 모티브를 제공한 정신적 표상이 되었다. 인간이 보이는 모 든 성행위 역시 그에게는 모태로 복귀하고자 하는 욕망의 몸부림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수천년 전부터 불교의 사 라진 일파 중의 하나였던 탄트라 밀교에서는 성적 합일을 통 하여 열반의 세계로 진입하려는 매우 도발적이고도 실험적 인 주장을 내세웠다. 그들은 집단적인 혼음과 영적인 오르가 슴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고자 한 것이다. 외견상으로만 본다 면 매우 위험하고 반도덕적인 사상이지만 무의식적 관점에 서 본다면 모태로의 복귀 및 어머니와의 합일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욕구의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수단과 방 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모태로 복귀하고자 하는 인간의 열 망이 얼마나 끈질기고 강력한 것인가를 입증해주는 부분이 기도 하다. 그러한 무의식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밀교 수 행자들은 매우 정교한 합리화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세간에 일고있던 따가운 비판을 피해 나가고자 했지만 결국에는 자 신들의 매우 극단적인 주장으로 인하여 자멸을 초래하고 말 았다. 아무리 깨달음을 위한 것이라지만 인륜을 파괴시켜가 면서까지 열반에 도달하면 과연 무슨 득이 있다는 것인지 생 각해 볼 대목이다. 윤회와 업보는 고도의 사변적인 산물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페렌치의 생식이론을 입증할 수 없는 것 처럼 현실적으로 증명하기 불가능한 부분으로 남는다. 그것 은 영생과 부활을 주장하는 기독교의 교리처럼 믿음에 관 련되는 부분이지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부분이 결코 아 니다. 따라서 페렌치의 주장은 과학의 범주를 넘어서 종교 의 영역으로까지 진입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매우 떨어지 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리적 차원에 서 본다면 과학과 종교를 연결시켜주는 접점을 이룰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의 주장을 일언지하에 매도할 수만도 없다.

수천년의 오랜 세월을 두고 전승된 불교적 메시지는 탄트라 수행자들과 같은 극단적인 방향을 취하지는 않았지만 그러 나 그 근간을 이루는 부분에서는 페렌치의 주장과 상당히 일 치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융과 페렌치는 서 로 상통하는 측면이 있으며 그 때문에 페렌치의 존재는 정 통 분석학계보다 융 학파의 관심을 더욱 끄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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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