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는 지난 4년간 국가유공자 의 명예로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과 함께 국민 호국보훈 정신 함양, 유엔 참전국과의 보훈외교 강화 등을 위 해 총력을 기울였다.
국가보훈처는 ‘명예로운 보훈’ 5년차 인 올해 이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존경 받는 국가유공자, 예우 받는 국가유공자 의 위상을 정립하고, 국가보훈을 대한민 국의 소중한 가치로 정립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할 방침이다.
국가유공자 보상과 예우
지난 4년간 추진해온 ‘명예로운 보훈 4년’의 성과를 정리하면 첫 손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국가유공자의 희생과 공헌 에 상응하는 보상과 예우의 확대이다.
국가유공자에 대한 보상금과 수당은
‘각종 사회지표 플러스 알파’ 수준으로 지속 인상해왔다. 올해도 보상금 단가를 물가인상률 보다 높은 3.5%를 적용했다.
참전명예수당의 경우 2013년 이후 5년 연속 인상해, 2013년 15만 원이던 수당 은 올해 22만원으로 5년 만에 46.7%가 인상됐다.
국가유공자의 건강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의료·복지 지원도 지속적으로 확대 했다.
중앙보훈병원의 경우 진료와 연구기 능이 융합된 의료기관으로 확충해, 병상
수를 2012년 983병상에서 2014년 1,400 병상으로 늘렸다. 이에 따라 진료인원도 2012년 139만1,000명 수준에서 2015년 163만4,000명으로 늘어났다.
중앙보훈병원 내에 주요질환자 연구 를 위한 보훈의학연구소를 건립했고 지 방병원의 전문진료센터를 지속적으로 육성하면서 전문재활의료도 확대했다.
인천과 경기 서부지역 국가유공자를 위 한 국가보훈인천병원 건립(’18년 완공) 도 추진되고 있다.
이외에도 남양주요양원을 개원했으며, 재가복지 서비스 지원을 확충해 독거·복 합질환 등 국가유공자에게는 주 1~3회의 가사·간병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국립묘지 안장 수요에 대처하기 위해 2015년 4월 국립산청호국원을 개원했으 며, 괴산호국원과 제주국립묘지 건립, 대전현충원과 임실호국원 묘역 확충사 업도 정상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독립운동가 발굴을 위해서는 전문사 료발굴분석단을 운영하면서 발굴과 포 상업무를 전담토록 했으며, 최근 5년간 연 4만 명씩 총 20만 명의 독립운동 참여 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6·25참전 미등록 유공자 발굴사업 을 통해 그간 미등록자 27만 명에 대해 신 상확인을 추진한 결과 6,227명의 국가유 공자를 발굴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국민 호국정신의 함양
국가보훈처는 국민호국정신 함양을 통해 국민통합을 이뤄간다는 계획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나라사랑교육을 본격 실시했다.
지난해에는 천안함 피격과 제2연평해
전, 연평도 포격도발 등 북한의 도발을 상기하는 범국민적 안보결의의 날로 매 년 3월 넷째 금요일을 정부기념일인 ‘서 해수호의 날’로 제정했다.
2015년부터 시작한 6·25전쟁 호국영 웅 선양사업에도 역량을 기울여 지역별, 학교별, 전투별 호국영웅 명비와 조형물 을 적극 건립해 나가고 있다.
2013년에는 정전협정 60주년을 계기 로 국내 생존 6·25전쟁 참전유공자 18만 여 명에게 호국영웅기장을 수여해 참전 유공자에 대한 정부차원의 존경과 관심 을 표명, 참전유공자들에게 커다란 반향 을 얻기도 했다.
이와 함께 유엔평화기념관, 낙동강호 국평화공원, 경북독립운동기념관 등의 건립을 지원했으며, 독립기념관 등 독립 과 호국 관련 시설의 활성화로 국민 나 라사랑정신과 호국정신 함양 제고에 큰 역할을 했다.
보훈외교, 국가 위상 제고
유엔군 참전 및 정전 60주년 기념행사 실시를 계기로 7월 27일을 ‘유엔군 참전 의 날’로 법제화 해 정부차원의 기념행 사로 위상을 높여 거행하고 있다.
매년 11월 11일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열리는 턴투워드 부산 행사도 유엔 참전 용사 국제추모식으로 활성화해 유엔 전몰 용사를 추모하는 국제행사로 정착시켰다.
이외에도 유엔 참전용사에 대한 정부 차원의 의전과 예우를 확대해, 참전용사 공적 발굴을 통한 정부포상 수여(’14년 부터), 유엔 참전용사 재방한 초청행사 확대, 참전용사의 사후 유엔기념공원 안 장시 정부차원의 유해봉환과 안장식 지
원 등을 시행했다.
특히 지난해는 대한민국의 발전된 보 훈정책을 수출하는 원년이 되기도 했다.
‘한·앙골라 보훈정책 협력MOU’를 체결 해 우리나라의 선진 보훈제도와 제대군 인 정책 경험을 전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고, 이어 한·알제리 보훈협력을 위한 정책협의도 계속해 다양한 분야에 서의 협력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제대군인 일자리 확보
일자리 5만개 확보를 추진해온 정책이 차질 없이 수행돼 목표 대비 94.4%의 실 적을 기록했으며, 올해로 5만개의 일자리 채우기 목표가 완수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위해 보훈처는 1사1제대군인 채 용을 추진하는 한편 정부 협업을 통한 원 스톱 지원체계를 구축했다.
경기남부와 창원지역에 제대군인지원 센터를 추가 개설했으며 천안, 구미, 동 두천, 춘천, 순천 5개 지역 고용복지플러 스센터에 제대군인 상담창구를 개설해 취·창업 상담과 지원을 충실히 수행토록 했다.
2017년 2월 1일 수요일 (월간) 국가보훈처 ☎1577-0606
유공자 명예로운 삶 지원, 공헌 상응한 예우 확대
명예로운 보훈 4년 성과 호국정신 함양 추진 보훈외교 정착· 확대
3 정책
새해 달라지는 제도·혜택 4 5 기획
비군사적 대비 추진방향
9 교육강좌
2·8독립선언과 3·1운동의 의의 11아름다운 인생
임실 옥정호 / 임실호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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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는 국내 독립유 공자 묘소 중 국립묘지 밖에 위치한 묘소(산재 묘소) 중 후 손 있는 묘소에 대한 전수실태 조사를 올해까지 마무리 하고 확인된 묘소에 대해서는 유족 과의 협의를 거쳐 국립묘지 이 장 또는 현지 단장을 추진키로 했다.
지난 2015년부터 총 1만 666
기의 국내 산재묘소 중 후손 있 는 묘소 4,321기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보훈처는 올해 1,718기 에 대한 조사를 완료하고 후손 없는 묘소 6,345기에 대해서는 전수조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한편 지난 2016년 1,603기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재가 확인된 묘소는 1,165기, 소재가 확인되지 않는 묘소는 438기였으며, 소재가 확인된 묘 소 중 국립묘지 이장 희망은
113기, 현지 단장 희망은 81기 로 나타났다.
국립묘지 이장이나 현지 단 장을 희망하는 묘소에 대해서 는 올해 중 유족과 협의를 거쳐 순차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국가보훈처는 국내 독립유공 자 실태조사가 완료되면 조사 결과를 토대로 산재묘소 종합 관리계획을 수립해 독립유공자 산재묘소를 체계적으로 관리해 나갈 예정이다.
올해 상반기 개청될 경기동 부보훈지청과 충남동부보훈지 청의 관할구역이 확정됐다.
국가보훈처는 지난해 하반기 부터 지역 국가유공자와 보훈 단체의 의견을 수렴한데 이어, 지난 달 말 행정자치부 등과의 협의를 거쳐 2개 신설지청의 관 할구역을 확정했다.
확정안에 따르면 신설 경기 동부보훈지청은 성남시, 하남 시, 광주시, 용인시, 안성시, 이천시, 여주시 등 7개 기초자 치단체를 관할구역으로 하게
됐다.
이에 따라 기존 경기남부 관 할이었던 성남시 등 7개 지역은 경기동부보훈지청에서 보훈행 정 서비스를 받게 된다.
신설 충남동부보훈지청은 세 종특별자치시, 충남 천안시, 공 주시, 아산시 등 4개 자치단체 를 관할구역으로 하게 된다.
이들 자치단체는 아산시가
충남서부보 훈 지 청 , 세 종특별자치 시 등 3개 시 는 대전지방 보훈청 관할 이었다.
관할이 바 뀐 지 역 의 국가유공자 는 의 료 ·대 부 ·주 택 ·취 업 지원 등 각종 복지지원과 상이등급 등 각종 등록 관련 지원을 받게되 며, 지청은 국가유공자 단체와 복지시설, 관내 현충시설 관리, 이동보훈복지팀 운영, 보훈행사
와 기념사업 등의 업무를 함께 처리하게 된다.
국가보훈처는 지난달 말 신 설 보훈지청의 임시청사도 확 정했다. 경기도 용인에 들어설 경기동부보훈지청은 용인시 기 흥구 마북동 한국전력기술 사 옥을 임차해 입주키로 했다.
충남 천안에 들어서게 되는 충남동부보훈지청은 천안시 동 남구 원성동의 한국농어촌공사 천안지사 사옥을 청사로 임차 했다. 신설 청사는 개청 준비를 거쳐 3월 중 개청식을 갖고 본 격 업무에 들어가게 된다.
국가보훈처는 신설 지청의 원활한 행정서비스를 위해 향 후 경기동부지청은 자체 청사 건립을 추진하고, 충남동부지 청은 오는 2020년 입주예정인 천안복합청사 입주를 추진키로 했다.
발행일 2017년 2월 1일 발행처 국가보훈처 발행인 박승춘 대표전화(정책·민원·상담) 1577-0606 편집·배포 044)868-0745·6
(우)30113세종특별자치시 도움4로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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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963년 9월 19일 홈페이지 www.narasarang.kr
용인 천안에 청사도 확정 3월 중 본격 업무 개시
제861호 2017년 2월 1일 수요일 (월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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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국립묘지 밖 묘소, 이전·단장 지원한다
실태조사 종합관리 추진
경기동부·충남동부 신설지청 관할구역 확정
국가보훈처는 설 명절을 맞아 지난달 19일부터 26일까지 일주 일간 생활이 어려운 재가복지대 상자 보훈가족 위문과 사회복지 시설 봉사활동을 펼쳤다.
박승춘 처장은 지난달 24일 공주 산성시장을 방문해 과일, 육류 등 제수용품을 구입하며 상인들을 격려하고, 시장 상인 과의 대화를 통해 전통시장과 교류·협력방안을 논의했다.
최완근 차장은 23일 서울 은 평구에 거주하는 6·25참전유공 자를 방문해 온누리상품권 등
위문품을 전달하고 존경과 감 사의 뜻을 전했다.
전국 25개 보훈관서도 설을 맞아 지(방)청장과 직원들이 고 령·독거 국가유공자를 직접 위 문하고 각종 후원품 전달, 떡국 나눔행사 등을 실시했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2007년 재가복지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추진한 이래 총 11만 2,000여 명 에게 가사·간병 등 복지서비스 를 제공했다. 또한 2015년부터 는 복권기금 지원을 받아 거동 이 불편한 독거·노인성복합질 환 참전유공자에게 보훈섬김이 서비스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따뜻한 명절 이웃과 함께
보훈처, 설 맞이 위문
지난달 7일 타계한 독립유공 자 박기은 지사의 유해가 25일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2 묘역 남편 이원하 지사 묘소에 합장됐다.
이날 안장된 박기은 지사는 남편 이원하 지사와 함께 광복
군으로 활동한 부부 독립유공 자다. 1944년 중국 하남성 귀덕 지역에서 광복군 지하공작원으 로 활동하며 일본군에서 탈영 한 한국인 등을 안전지대로 호 송했다.
1945년 3월 이후 광복군 제3
지대 본부에서 간호교육 등 제 반과정을 이수하고 구호대장으 로 조국독립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박기은 지사는 1990년 남편과 함께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으며, 남편 이원하 지사가 1980년 작고한 후 미국으로 건 너가 자녀들과 거주하다 1월 7 일 타계했다.
박기은 지사, 대전현충원 안장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24일 오후 설 명절을 맞아 공주시 공주산성시장 을 방문해 상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제85주년 이봉창 의사 의거 기념식’이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지난달 8일 거행됐다.
이날 기념식은 독립운동 관 련 단체 대표와 광복회원, 시민, 학생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가
운데 약사보고, 기념사, 헌화 순 으로 진행됐다.
이봉창 의사(1901.8.10~1932.
10.10)는 1931년 12월 한인애국 단에 가입한 후 동경으로 건너 가 1932년 동경 경시청 앞에서
일왕을 향해 폭탄을 투척했지 만 폭살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 의사는 같은 해 사형을 언도받 고 순국했다.
비록 일왕 폭살에는 실패했 지만 그의 의거는 독립운동 전 선에 새로운 활력이 됐고, 민족 의 자존과 독립의지를 만천하 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85주년 이봉창 의사 의거 기념식
2017년 2월 1일 수요일 (월간) 제861호 3
정책
보상금 3.5% 인상 참전명예수당 2만 원 인상 국가유공자와 유가족, 보훈 보상대상자에게 지급되는 보상 금 단가가 지난해보다 3.5% 인 상됐다.
참전명예수당 역시 전년 대 비 2만 원 인상된 22만 원, 무공영예수당 또한 전년 대비 2만 원 인상된 28만~30만 원으로 책정됐다. 고엽제 수당도 전년대비 3.5% 인상됐다.
또한, 올해부터 는 호국보훈지킴 이통장을 이용해 보훈급여금을 받을 경우 액수와 상관없 이 타 기관이 압류할 수 없어 예금주의 보상금 등 이 보호된다.
2개 지청 신설
올해 경기동부보훈지청(용 인)과 충남동부보훈지청(천안) 신설로 전국 지청이 21개로 늘 어난다. 경기동부보훈지청은 성남, 광주, 하남, 용인시 등을 담당하고 충남동부보훈지청은 천안, 아산, 세종, 공주시 등을 담당하게 된다.
신설되는 2개 보훈지청 지역 은 각각 수도권과 충남지역의 인구유입이 크게 늘면서 민원 서비스 수요가 급증한 곳이다.
국가보훈처는 이번 지청 신설 을 통해 보훈행정서비스의 향 상은 물론 전 국민을 향한 보훈 정책의 효율적 집행에도 힘쓸 예정이다.
현충시설 관리 강화
체계적 현충시설 관리를 위
해 현충시설법 제정을 추진하 고 현충시설 개보수 지원 금액 을 인상한다. 올해부터 개보수 가 필요한 총사업비 1억 원 미 만의 현충시설은 5,000만 원 이 내에서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신규 지정 현충시설의 안내
판을 설치하거나 기존 현충시 설의 낡고 훼손된 안내판을 재 설치하는 경우 250만 원 이내에 서 지원받을 수 있다. 외국어 번 역을 위해 추가비용이 발생하 는 경우 50만 원 내에서 추가 지 원한다.
독립유공자 후손 정착 지원 영주귀국 독립유공자 후손이 국내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영주귀국자의 주거지원 등 국내 정착지원 방안을 모색한다.
초기 지역적응 강화를 위해 사회통합프로그램과 지역 복지 관 등을 활용하고 지역사회, 병 의원, 유관기관과 복지 네트워 크 구축도 추진한다.
기념관 관리 운영 강화 국가 관리대상 기념관의 선
정과 지원·관리기준을 마련해 기념관 관리 주체의 재정여건, 역사적 가치, 관람 인원 등을 고 려해 국가로 이관해 체계적으 로 운영한다.
이에 따라 올해 7월 개관하는 독도의용수비대 기념관의 소유 권을 국가로 이관해 관리하게 된다.
국가유공자 사망 시 예우 국가유공자 사망 시 영구용 태극기, 근조기 증정 등을 통해 고인의 공훈을 기리고 유족의 자긍심을 고취한다.
국가유공자 중 국립묘지에 안장하지 않고 개별묘소에 묘 비를 제작할 경우 1기당 40만 원 범위에서 실비를 지원한다.
묘비 설치 후 3년 이내에 해당 보훈관서로 신청하면 된다.
독립유공자 묘소 단장을 위 해서는 기당 200만 원 범위에서 실비를 지원한다. 국립묘지 이 장을 희망하는 독립유공자 묘 소는 기당 30만 원의 이장비를 지원한다. 또한, 독립유공자 유 족에게 제수비와 가계지원비를 5만 원 씩 인상해 각각 30만 원, 40만 원을 지원한다.
재해위로금 지급 기준 및 절 차 개선
재해위로금 지급 제한 규정 을 완화해 부주의 등으로 인한 화재의 경우에도 재해위로금을 지급한다. 다만 고의로 인한 피 해에 대해서는 재해위로금 지 급이 제한된다.
아파트 연립 등 공동주택의 화재에 대한 지급기준을 별도 로 마련해 20만 원에서 최대 50 만 원이 지급되던 제해 위로금 을 50만 원에서 최대 100만 원 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소규모 기타 재산 피해에 대한 재해 위 로금도 30만 원으로 인상했다.
양로·양육 지원 대상 확대 보훈대상자의 안정적인 노 후 지원 등을 위해 양로·양육 지원대상이 확대된다. 양로지 원은 5·18유공자법, 특수임무 유공자법, 고엽제법, 참전유공 자법 적용 대상자까지, 양육지 원은 5·18유공자법, 특수임무 유공자법 적용 대상자까지 받 을 수 있다.
지원신청의 경우 그동안 관 할(지)청에 신청해 왔으나 앞으 로는 신청인이 보훈원(수원시 소재 양로시설)으로 직접 신청 하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위탁병원 지정기준 개선 위탁병원 지정 심사 대상 기 준이 강화되고 객관화된다. 위 탁병원 선정 시 심의위원회를 개최하고 보훈병원장의 적격 성 심사를 거쳐 보훈(지)청장이 지정심사결과 등을 객관화해 선정한다. 또한, 올해부터는 위 탁병원으로 선정된 후 계약이 해지된 모든 의료기관은 지정 심사대상에서 원칙적으로 제 외된다.
위탁병원 진료내용 확인 시 스템 운영을 통해 적정진료를 시행하고 진료내용을 실시간 수준으로 파악해 위탁병원에 적정 진료를 유도하는 등 국가 유공자 건강관리를 강화한다.
보훈장학금 선발기준 완화 보훈(가족)장학금 선발은 우 선순위에서 소득분위가 삭제되 는 등 선발 폭이 넓어졌다. 신청
대상자는 대학원에 재학 중인 교육지원대상자로서 국가유공 자, 고엽제후유의증환자(수당 대상자), 5·18민주유공자, 특수 임무유공자, 전몰·순직자의 배 우자 중 직전 학기 성적이 90점 이상이면 된다. 특수학교에 재 학 중인 교육지원대상자와 6·25 전몰군경자녀의 자녀로서 대학 에 재학 중인 자도 포함된다.
학기당 지급액은 대학원과 특수학교의 경우 각각 115만 원, 30만 원이며, 6·25전몰군경 자녀 장학의 경우 일반대 90만 원, 전문대 70만 원의 장학금이 지급된다.
주택 우선 공급 기준 완화 주택공급과 관련해 영구임대 주택 입주 소득 기준이 전년도 도 시 근 로 자 월 평 균 소 득 의 70%수준으로 대폭 완화되고, 퇴거기준(월평균소득의 105%) 과 자산기준이 신설되었다.
생활안정대부의 경우 장애인 용 차량구입자금 지원액이 기 존 600만 원에서 1,000만 원으 로 인상되었다.
보훈단체 복지지원
지방 보훈회관 건립사업 지원 으로 호국·선양활동, 나눔·봉사 활동, 여가활동 공간을 제공한다.
상이군경복지회관 또한 실태 점검을 통해 환경개선을 추진 한다. 노후화 정도, 시급성을 고 려해 개보수를 추진하고 일부 노후 리프트 버스도 교체한다.
나라사랑 강사 증원
올해부터는 나라사랑교육 전문강사진을 대폭 확대한다.
다양한 분야의 유능한 강사 확 보를 위해 공개모집을 실시하 고, 선발된 강사진을 대상으로
‘나라사랑 강사 양성 아카데미’
를 운영해 강의 역량을 강 화시킨다.
또한 ‘나라사랑 교육 평가단’의 민간위원을 증 원 해 평 가 단 의 강의 현장 평가를 확대 실 시 해 지 속 적인 피드백으 로 수준 높은 강의 를 보장한다.
나라사랑 연수교육 확대 국민의 호국보훈정신 함양을 위해 나라사랑 연수교육을 확 대한다. 16개 과정으로 운영 중 이던 연수교육에 3개 과정을 신 설해 대상별 맞춤형 나라사랑 교육을 시행한다. 신설되는 교 육은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보 훈문화교실’과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1일 보훈교실’
이다.
이외에도 현장 탐방 프로그 램인 ‘나라사랑 현장을 가다’를 운영하는 등 ‘강의-토론-체험’
의 종합형 나라사랑 연수교육 을 시행한다.
보상금 3.5% 인상…현충시설 개보수, 양로 지원 확대
새해 달라지는 제도, 혜택
국가보훈처는 새해 정책의 중심을 국가유공자의 건강하고 안락한 노 후생활 보장과 국민 호국보훈정신 함양 등에 두기로 했다. ‘명예로운 보 훈’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보훈처는 각종 제도를 정비하고 보완 해 국가유공자 중심의 행정을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보상금 인상, 의료 서비스 개선, 복지시설 확충, 나라사랑 교육 확대 등 올해 국가유공자를 위해 마련된 제도를 알아본다.
명예로운 보훈 성공 위한 제도 정비 의료서비스·복지시설 등 대폭 확충
제861호 2017년 2월 1일 수요일 (월간)
4
기획
비군사적 대비 업무란
우리나라는 4대 강국으로 둘러싸인 지 정학적 위치에다 북한의 직접적인 군사 적 위협에 노출돼 있어 안보가 큰 위협 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우리 사회 는 다양한 사회적 갈등과 분열이 중첩되 면서 큰 진통을 겪고 있는 게 오늘의 현 실이다.
국가안보를 군사적·비군사적 위협으 로부터 국가를 지켜내는 것이라고 할 때, 갈수록 분화하는 사회와 다양화해 가는 가치관을 감안하면 국민 전체가 주 체가 되는 비군사적 대비 업무는 더욱 그 중요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군사적 대비와 비군사적 대비를 자세 히 살펴보면 이것은 보다 명확히 알 수 있다. 즉 군사적 대비란 직접적인 군사력 을 운영하면서 영토와 국민을 지키는 것 이다. 이에 비해 비군사적 대비란 물리력 을 제외한 정치·외교를 비롯해 경제·사 회·문화·국민의식 등 모든 분야에서 갖 춘 총체적 대응능력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를 지난 60년간 지켜 온 핵심의 하나인 한미동맹과 그 핵심 내용인 한미연합방위체계 측면에서도 확인된다. 한미연합방위태세를 직접 ‘활 용’하는 것은 당연히 군사적 대비이다.
그러나 그것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 은 ‘비군사적 대비’의 영역이다. 전시상 황이 아니라 유사시를 대비하고 있는 우
리 상황에서는 그만큼 비군사적 대비를 통해 동맹과 연합방위태세를 더욱 튼튼 하게 하고 국민적 안보의식을 강화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수많은 전쟁들이 눈에 보이는 전투력과 물리력 못지않게 정신 적 전력이 더욱 중요했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올해의 호국보훈 환경
미국의 새 정부 출범을 비롯해, 한중 한일 간의 현안을 둘러싼 미묘한 갈등 양상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국내 정치적 변수까지 생기면서 우리는 전에 없는 혼란을 겪고 있다.
이 와중에 북한은 신년사를 통해 대륙 간 탄도미사일 시험발사가 마감단계에 있음을 밝히면서 미국에 대해 대북 적대 시 정책 포기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북 한은 금년을 ‘자주통일의 대 통로를 여 는 해’로 언급하며 ‘미군철수 통한 적화 통일’이라는 대남전략의 야욕을 다시 드 러내고 있는 상황이다.
안보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실에도 불 구하고 우리 사회는 냉엄한 국제상황과 안보현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지 적하고 있다. 이러한 비군사적 대비에 대 한 인식 부족은 국민통합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주요 국정과제의 수행에 걸 림돌로 작용할 우려가 크다는 분석이다.
그간의 노력과 실적
국가보훈처는 나라사랑 정부 총괄부 처로 이미 지난 4년간 360만 명, 6년간 500만 명에 대해 나라사랑 교육을 실시 했다. 이러한 교육은 국민의 나라사랑 정신과 한미동맹 인식 제고에 큰 기여를 했다.
지난해 국가보훈처가 실시한 나라사 랑 의식조사에 따르면 ‘한미동맹이 국 가안보에 도움이 된다’는 대답이 72.2%
에 이르고, ‘안보의식을 높이기 위해서 체계적인 호국정신 함양교육이 필요하 다’는 대답도 77.9%에 이르는 것으로 나 타났다. 이는 우리 국민의 국가안보와 한미동맹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획기 적으로 개선됐음을 보여주는 사례인 것 이다.
국가보훈처는 그 동안 전 국민을 대상 으로 한 나라사랑교육 외에 ‘서해수호의 날’을 정부기념일로 제정하면서 북한 도 발을 상기하고, 호국영웅 명비 건립, 호 국영웅 명칭 부여, 지역별 호국보훈퍼레 이드 등의 다양한 행사를 통해 국민호국 정신 제고를 위해 노력해 왔다.
이와 함께 호국보훈 정신 함양을 위한 제도적 기반도 꾸준히 구축해 왔다. 중 앙과 지방의 나라사랑교육 예산의 안정 적 편성기반을 마련했다. 통합방위법 시 행령을 개정해 지방 보훈관서장이 통합 방위협의회 위원으로 참석토록 했으며, 중앙과 지역단위 보훈 안보단체와의 업 무협조 시스템도 강화했다.
국가보훈처는 어려운 여건 아래 추진 된 지난 수 년 간의 이러한 실적이 향후 비군사적 대비 업무의 추진에 큰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추진 방향과 계획
국가보훈은 기본적으로 나라사랑 정
신을 통해 국가정체성을 함양하는 핵심 적 기제의 하나로, 국민통합에 기여하고 국가안보 능력을 극대화하는 중요한 비 군사적 대비의 하나이다. 여기에서 나라 사랑교육은 국가를 위해 희생하거나 공 헌한 사람들의 숭고한 정신과 이들의 공 훈, 대한민국의 안보 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긍 심과 나라사랑 정신을 고양시키는 역할 을 한다.
이렇게 본다면 결국 국가보훈처가 방 향으로 잡은 비군사적 대비의 핵심은 나 라사랑 교육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나 라사랑 교육을 통한 안보의식의 제고와 거기에 기반한 튼튼한 안보역량은 다른 통합적 안보 대비 시스템과 하나가 돼 비군사적 대비의 힘으로 완성된다 할 것 이다.
이에 따라 국가보훈처는 우선 국가보 훈위원회 민간위원을 중심로 비군사적 대비 논의를 활발히 진행하면서 한미동 맹 강화와 호국보훈정신 제고 방안을 마 련할 계획이다. 여기서는 비군사적 대비 를 안보의 중요한 정책으로 추진하는 방 안과 함께, 정치권과 국민 각계각층의 갈 등과 대립 해소방안 등을 집중 논의하게 된다.
이와 함께 보훈처는 비군사적 대비 업 무로 업무역량을 모아 △ 나라사랑교육 총괄부서로서의 역할 강화 △ 보훈 안보 단체와의 협업 지속 강화 △ 전국 지방 관서의 대국민 소통 업무를 중심으로 한 비군사적대비 업무 추진 △ 지자체, 지 역 통합방위협의회를 통한 비군사적 대 비 업무 추진 △ 호국보훈교육 진흥법 제정 등의 정책도 함께 적극 추진할 계 획이다.
국가보훈처는 궁극적으로 비군사적 대비 업무가 한미동맹을 튼튼히 하고, 이를 통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국정의 핵심 과제로 자리 잡도록 한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나라사랑교육과 애국심 함양이 중요한 핵심 과제라고 보고, 비군사적 대비 업 무와 관련한 국민적 공감을 이뤄가기 위 한 노력도 함께 기울여 나가기로 했다.
나라사랑교육 호국정신 함양에 최선 한미동맹 강화 등 국민공감 이룰 것
비군사적 대비 추진 방향
국가보훈처는 지난달 4일 새해 업무보고를 통해 나라사랑교육 등 비군사적 대비 업무를 강 화하겠다고 밝혔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환경의 변화와 국내적인 불확정성이 증폭되고 있 는 가운데 흔들림 없는 비군사적 대비 업무 추진을 통해 국가 위기상황 극복에 기여하겠다 는 의지인 셈이다. 국가보훈처가 추진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비군사적 대비 업무 의 개념과 내용, 추진방향 등을 알아본다.
국 가 보 훈 처 가 지난 달 2017 년 새해 업무보 고를 하였다. 이 날 업무보고 가 운데 특기할 만 한 사실은 국가 안보정책의 핵 심은 ‘비군사적 대비’를 통한 안 보위기 극복이 라고 밝히면서 “북한의 변화 유도 및 핵 개발 저지에 미흡하고 한미연합방위태 세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는 것은 ‘비군 사적 대비’의 인식부족에서 오는 안보위 기 상황”이라고 진단한 것이다.
사실 북한이 한미동맹의 해체를 겨냥 하여 핵·미사일 위협을 가시화하고 있 는 상황에서 우리가 한미연합방위태세 로 철저히 대비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북 한의 변화 유도 및 핵개발 저지에 미흡 하고 심지어 한미연합방위태세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는 것은 ‘비군사적 대비’
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부족에 따른 것 이라 볼 수 있다.
사회 전 분야의 총체적 대응능력 그러면 ‘비군사적 대비’의 개념은 무 엇인가? ‘군사적 대비’가 외부의 적에 맞 선 군대의 직접적인 물리적 대응능력을 말한다면, ‘비군사적 대비’란 외부의 적 을 대응함에 있어서 이러한 ‘군사적 대 비’ 활동을 제외한 국가안보 대응능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외부 위협에 대한 정치·외교, 경제, 사
회, 문화, 심리, 환경, 자원, 교육, 역사 등 제 분야에서의 총체적 대응능력이다.
그렇다면 ‘비군사적 대비’ 역량이란 레이 클라인(Ray S. Cline)이 말했듯이
‘무형국력(無形國力)’ 또는 조지프 나이 (Joseph Samuel Nye, Jr.)가 말하는 소 프트파워(Soft Power)와 일맥상통한 개 념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편, 국가보훈처 업무보고에서 ‘비군 사적 대비’와 관련하여 한미동맹의 핵심 인 한미연합방위태세를 특별히 강조했 는데, 그 이유는 한미연합방위태세에 있 어서 물리력을 직접 활용하는 것은 ‘군 사적 대비’에 해당하는 것이겠지만, 이 를 유지·강화하는 것은 외부의 적인 북 한군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며 전쟁을 억 지하는 효과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비군 사적 대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기 때 문이다.
실제로 한미동맹은 1953년 10월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체결 된 이후 오늘에 이 르기까지 한반도에서 전쟁재발을 억지 해 왔다는 측면에서 매우 성공적인 동맹 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더욱이 한미 동맹은 튼튼한 안보장치로서 국방비 절 약을 통해 경제발전 비용 투자를 가능케 했고 외국자본의 투자 환경을 보장함으 로써 대한민국을 세계의 최빈국 중의 하 나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 부국이 되게 하는 든든한 후견 역할을 했다.
두말할 필요 없이 국가안보의 주 기능 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있 다는 점에서 정부는 외부의 적에 대한 군 사적 대비뿐만 아니라, 평상시 국가안보 의 중요한 한 축인 ‘비군사적 대비’에도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바로 이 점에 서 우리나라가 북한에 의해 상시적으로 안보 위협을 받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국가보훈처가 2017년 업무보고를 통 해 ‘비군사적 대비’ 업무를 강화하겠다고 자처하고 나선 것은 국가안보를 위하여 매우 적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남남갈등 극복하는 국민통합의 기제 주지하다시피 외부의 적과의 대결은 군사적 대결과 비군사적(이념적) 대결 로 나눌 수 있는데, 지금까지 군사적 대 비는 국방부가 담당해 왔으나, 이념 대 비와 같은 비군사적 대결을 담당하는 주 관 정부부처는 불명확했다. 남북이 이념 과 체제를 달리하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도 북한이 반미자주 화, 한미동맹 해체, 반정부 투쟁 등을 집 요하게 되뇌는 대남 선전선동과 ‘민족해 방 민주주의 혁명 과업’ 수행을 목표로
하고 있는 통일전선전술을 집요하게 추 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동안 ‘비군사적 대비’를 위한 전담 정부부처가 불분명했 다는 사실은 남북한 간 비정규전에 있어 서 거의 무방비상태로 손을 놓고 있었다 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북한의 의도에 따라 쉽게 ‘남남갈등’에 휘둘리는 것은 이 같은 사실을 잘 입증 하고 있다고 하겠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이념갈 등은 진영논리로 구조화되어 북한, 미 국, 통일 등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인하 여 국론분열을 일으키며 ‘남남갈등’으로 비화하기 일쑤인데, 이는 우리의 국민통 합을 저해하며 국가안보를 심각하게 해 칠 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우려하지 않 을 수 없는 일이다.
세계사가 증명하고 있듯이 군사적 대 비에 필수적인 물리적 힘의 비축은 국가 안보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나 전쟁 수행에 있어서 눈에 보이는 물리력 이 강하다고 해서 반드시 승리가 보장되 는 것은 아니다. 외부의 적과의 대결에 서는 눈에 보이는 물리력 못지않게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전력과 같은 ‘비군사적 대비’ 역량이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20세기 역사에 있어서, 우리 와 같이 분단국이었던 서독은 국민통합 을 훌륭히 이루어냄과 동시에 정치권이 단결하는 등 비군사적 대비 역량 강화를 통해 나토군을 유지하는 가운데 동독을 변화시킴으로써 군사적 대결 없이 분단 45년 만에 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
반면에 자유베트남은 북베트남에 비해 압도적인 군사력을 보유하고서도 비군 사적 대비 역량의 부족으로 북베트남의 선전선동과 통일전선전술에 농락당하 고 미군 철수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함으 로써 북베트남에 의해 흡수통일 되고 말 았다.
한국도 서독과 같이 주도적으로 평화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비군사적 대 비’ 역량 강화로 한미동맹을 튼튼히 유 지하는 가운데 북한을 변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우리 사 회가 이념적 진영 논리에 갇혀 사사건건 대립과 갈등으로 치닫는다면 비군사적 대결에서 실패함으로써 한국 주도의 통 일은커녕 북한에 의해 흡수되는 적화통 일의 날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오늘의 안보 현실과 관련하여 우리가 ‘비군사적 대비’ 차원에서 가장 우선시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 그것 은 바로 나라사랑교육이라고 할 수 있 겠다. 나라사랑교육은 나라사랑 정신 함양으로 국가정체성을 강화하고 나아
가 국민통합에 기여하는 훌륭한 기제에 해당한다. 아울러 나라사랑교육은 그 내용이 호국정신 고취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국가의 내적 안보 강화 와 밀접한 ‘비군사적 대비’ 역량 강화에 이바지한다.
나라사랑교육 획기적 강화 필요하다 지난해 국가보훈처 나라사랑 의식지 수(전국 만 15세 이상 남녀 1,000명 대상 전화설문조사)에 따르면, 71.4%의 응답 자가 우리나라 안보상황이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77.9%
의 응답자가 안보의식 제고를 위해서는 체계적인 ‘호국정신 함양교육이 필요하 다’고 답했다. 참고로 2015년에는 각각 50.9%, 75.3%를 기록했다. 이처럼 국민 의 안보의식이 크게 고취되고 호국정신 함양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제고 되고 있다는 사실은 ‘비군사적 대비’ 향 상을 위한 안보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공 감대가 커지고 있다는 증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7년도 국가보 훈처 나라사랑교육 예산은 50억 원으로 서 지난해에 80억 원에 비해 큰 폭으로 줄었다. 이는 대한민국의 안보현실을 미 루어 볼 때, 크게 역행하는 일이요, 그만 큼 ‘비군사적 대비’에 허술할 수밖에 없 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변국으로부터 심한 안보 위협을 받 고 있는 이스라엘의 경우, 2015년도에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나라사랑교 육 예산 규모는 30억 셰켈(8,977억 원)에 달했다. 이스라엘 인구가 한국의 16%
정도에 불과한 841만 명이라는 점을 감 안한다면 나라사랑교육 예산이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이스라엘이 국가안보와 관련 하여 ‘비군사적 대비’를 얼마나 중시하 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라 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경우 사회적 갈등의 심화는 국 가안보의 약화는 물론, 천문학적 갈등 비용마저 초래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 소가 2015년에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10년도의 경우, 사회적 갈등으로 인 해 직·간접적으로 발생한 경제적 비용 이 최소 82조원에서 최대 246조 원에 이 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사회적 갈등의 심화는 국가안보 약화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일 뿐만 아니라, 엄 청난 갈등비용을 지불해야하는 상황을 수반하고 만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나라사랑교육 강화를 통해 사회적 갈 등을 최소화하며 대한민국을 굳건한 반 석 위에 세우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시 급한 일이다.
2017년 2월 1일 수요일 (월간) 제861호 5
기획
기고 - 비군사적 대비의 중요성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무형의 국력’ 강화
“나라사랑교육은
국가정체성을 강화하고 국민통합에 기여하는 훌륭한 기제에 해당한다.
아울러 나라사랑교육은 국가의 내적 안보 강화와 밀접한 ‘비군사적 대비’
역량 강화에 이바지한다.”
오일환
한양대 아태지역 연구센터 교수
제861호 2017년 2월 1일 수요일 (월간)
6
단체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회장 이중열) 재난구조단이 지 난 12월 20일부터 1박 2일간 충 남 보령 청소년수련관에서 산 악구조교육을 실시했다.
산악인명 구조를 위한 이번
교육은 120여 명의 회원이 참여 해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대 한산악구조협회 강사들로부터 매듭, 응급처치 이론·실기, 로 프 등·하강, 산악안전 확보지점 파악 등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다.
특임자회 재난구조단은 앞으 로 지속적 산악 인명구조교육 과 훈련을 통해 수상구조뿐만 아니라 산악사고까지 대처해 국민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전 문구조단의 모습을 갖출 예정 이다.
특임, 재난구조단 산악구조 훈련
대한민국상이군경회(회장 김덕남)가 운영하는 보훈복지 문화대학이 올해로 6년째를 맞으면서 국가유공자와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제고하는 대 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아 가 고 있다.
지난 2012년 3월 첫 입학식 을 연 보훈복지문화대학은 안 보·교양, 정보·생활, 건강·여 가학부를 통해 다양한 교육과 함께 동아리 활동, 학생회 활 동 등의 참여를 통해 친목과 소통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전국 16개 지 역캠퍼스에서 1,300여 명의 학 생이 참여해 지금까지 4,742명 의 학생들이 졸업장을 수여받 았다. 이들은 주 1회 2시간 씩
평균 83시간 교육을 받고, 연 간 60학점을 이수하면서 졸업 장을 받았다.
해를 거듭하면서 점차 교육 내용도 다양해졌다. 서예, 사 진, 노래 등의 교양 강좌와 전 산정보, 노후설계 등의 생활 강좌, 노인건강, 생활체육 등 여가 강좌 등이 포함됐다. 특 히 안보전문교육자, 아동한자 지도사, 동화구연지도자 과정 을 운영하면서 이제는 노인 일 자리 창출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현재 보훈복지문화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은 상이군경이 대부분(70%)이며 타 보훈단체 15%, 지역주민 10%, 상이군경 가족 5% 정도로 구성돼 있다.
연령대로 보면 60대가 44%로 가장 많고 70대 32%, 81세 이 상도 18%나 된다.
지난 2014년부터는 매년 가
을 보훈복지문화대학에서 갈 고닦은 실력을 바탕으로 창작 예술제를 개최하고 있다. 재학 생, 졸업생이 함께 공연과 예 술작품을 출품해 결과물을 공 유하는 축제 한마당이다. 출품 되는 작품의 수준도 해마다 높 아져 상이군경회 안팎에서 이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가 크게 높아지고 있다.
특히 작년에 이어 올해도 문
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 교육진흥원의 지원 사업에 선 정돼 보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 을 수 있게 됐다.
각 지역 캠퍼스에서 지원을 희망하는 프로그램을 선정하 면 전문 강사, 부대비용 등을 지원하는 형식인데, 지난 2015 년 8개 지역캠퍼스에서 시범 운영을 시작으로 작년부터 전 국 16개 캠퍼스에서 각 1개 프
로그램 씩 16개 수업을 지원받 고 있다.
상이군경회는 “보훈복지문 화대학을 통해 회원 상호간 친 목도모와 소속감을 형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교 양프로그램을 개설해 복지문 화 생활의 장을 마련함으로써 국가유공상이자의 사회 적응 력을 높이는 데도 크게 도움이 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국가유공자·지역주민 함께하는 복지 프로그램 ‘정착’
상군 보훈복지문화대학 6년째 다양한 프로그램
보훈단체장 신년하례회가 지난달 20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렸다. 이날 신년하례회에는 13개 보훈단체 단체장과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등 20여 명이 참석해 새해인사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국가보훈처는 새해 보훈업 무 방향과 정책을 설명하고 ‘명예로운 보훈’의 성공적 마무리에 대한 지 원을 당부했다.
4·19혁명공로자회(회장 유인 학) 전 고문 김성재 씨가 공로자 회의 복지와 예우관계 개선을 위한 기금으로 써달라며 1억 원 을 기부했다.
김 전 고문은 공로자회의 고
문직을 맡으면서 보조금 이외 에 수익사업이나 별도의 수익 이 전혀 없어 회원이 사망했을 때조차 회장단의 후원금으로 조의금과 조화 등을 준비할 정 도로 재정상황이 열악한 공로
자회를 안타깝게 여겨 기부를 결정했다. 김 전 고문은 그동안 사회복지 법인을 통해 기초생 활보호자 등에게 꾸준히 기부 금을 전달하는 등 평소에도 이 웃사랑을 실천해왔다.
4·19공로자회, 김성재 전 고문 1억 원 기부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회 장 최해근)가 6·25전몰군경자녀 의 대학 재학 자녀를 대상으로 보훈가족 장학금을 지급한다.
신청 대상자는 일반대, 산업 대, 전문대, 교육대, 기술대에 재학 중이고, 1953년 7월 27일 이전 및 ‘참전유공자예우에 관
한 법률’ 별표에 따른 전투 기간 에 전사하거나 순직한 6·25전몰 군경의 손·자녀로 직전 학기 평 균 성적이 만점의 70% 이상(신 입생은 성적 기준 제외)인 학생 중 선발한다. 올해부터 소득분 위에 의한 신청자격 기준은 폐 지됐다.
국가유공자의 전공사상 시기 가 6·25전쟁이 아니거나 재학
중인 학교의 학칙에서 정한 수 업연한 초과자, 당해 학기에 본 인이 납부한 수업료가 없는 경 우는 신청서를 접수할 수 없다.
올해 1학기 장학금 신청서는 3월 2일부터 15일까지 신청서와 구비서류를 갖춰 전몰군경 유족 회 시·도지부 사무실로 제출하 면 된다. 문의, 전몰군경유족회 (02-782-2046) 또는 시·도지부.
6·25전몰군경 손자녀 장학생 신청 접수
유족회
지난해 5월 보훈복지문화대학 전남캠퍼스에서 요가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왼쪽) 지난해 11월 15~16일 수원 보훈교육연구원에서 개최된 보훈창작예술제에 방문한 관람객들이 전시된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오른쪽)
김 병 익 재일학도 의용군동 지회장이 지난달 19 일 별세했 다. 향년 87세.<사진>
장례는 21일 오전 재일학도 의용군동지회장으로 치러졌다.
1930년 경북 영덕에서 태어 난 고인은 일본 도호쿠(동북)대 학 법률학과에 재학 중이던
1950년 9월 맥아더 사령부 극동 군 소속으로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했고, 1952년 미 제3사단 308특무대로 배속돼 6·25전쟁 이 끝난 1955년까지 같은 곳에 서 근무했다.
이 후 공 직 생 활 등 을 거 쳐 2007년 4월 제16대 재일학도의 용군동지회장에 당선돼 9년 10 개월 여간 재일학도의용군동지 회를 위해 봉사해 왔다.
유족으로는 2남1녀가 있다.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 김병익 회장 별세
지난 2014년 11월 설립된 한 국보훈복지의료공단(이사장 김 옥이) 보훈의학연구소가 중앙 보훈병원의 연구기능을 강화하 고 병원의 전체적인 수준을 향 상시키는 역할에 박차를 가하 고 있다.
보훈의학연구소는 중앙보훈 병원의 연구 기능 강화와 함께 고엽제, PTSD, 보장구 등 국가
유공자 특성에 맞는 임상연구와 국책 연구수행을 위해 설립된 보훈병원 최초의 상설 연구소.
올해로 3년차를 맞는 연구소 는 독자 건물의 건립도 본격 추 진하면서 보훈병원을 ‘상급종합 병원’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힘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현재 보훈의학연구소는 고엽 제연구팀, 임상의학연구팀, 뇌 의학연구팀, 보장구연구팀으로 꾸려져 20여명의 전문 의료진 들이 활발히 연구 활동을 수행 하고 있다.
지난 2016년에는 ‘월남전 참 전군인들의 외상후스트레스장 애 및 정신 건강’ 등 24건의 연 구를 수행했으며, 올해도 내부 과제 평가를 거쳐 ‘차세대 염기 서열 분석을 이용한 뇌혈관질 환 원인유전자 발굴’ 등 29건의 과제를 선정했다.
공단은 앞으로 바이오 재활, 유전체의학 분야에서 해외 선 진 의학연구소 벤치마킹을 통 해 보훈의료 적용분야를 적극 발굴하고, 임상시험센터와 인 체유래물은행 신설을 추진해
국가유공자 질환별 맞춤형 연 구결과를 임상에 적용함과 동 시에 만성 질환 등에 대한 최신 치료를 선도한다는 계획을 세 워두고 있다.
한편 중앙보훈병원은 지난 12월 16일 보훈의학연구소의
연구 산실이 될 연구소 건물 기 공식을 가졌다.
보훈의학연구소는 중앙보훈 병원 보장구센터 앞 자리에 전 체면적 6,578㎡, 지하 2층, 지상 5층 규모로 건립하고 있다. 2018 년 3월 완공 예정이다.
2017년 2월 1일 수요일 (월간) 제861호 7
뉴스
호국영웅기장을 받은 재미 과학자 이중희 씨가 기장을 받 은 감회와 미국에 살고 있는 참전용사까지 잊지 않고 기억 해준 대한민국 정부와 국가보 훈처에 감사하는 편지를 보내 화제가 되고 있다.
이중희 씨는 지난달 6일자 조선일보 칼럼을 통해 미국에 서 예상치도 못했던 호국영웅 기장을 전달받고 “뜻밖의 일이 라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이제 라도 나를 알아주는구나’하는 생각에 쏟아지는 뜨거운 눈물 을 참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칼럼에서 “대한민국 국가보훈처장이 로스엔젤레
스(LA) 총영사관을 통해 보내 온 것이다. 뜯어보니 ‘국가보 훈영웅' 증서와 감사 편지, 그 리고 목에 거는 큰 훈장이 있 었다”며 감동의 순간을 전했 다. 국가보훈처가 수여한 것은
‘호국영웅기장’과 ‘호국영웅기 장증’, 그리고 보훈처장 명의 의 감사편지였다.
기장을 받은 순간 그는 6·25 당시의 처절했던 기억을 다시 떠올렸다.
“6·25전쟁이 터졌을 때 나는 10대 학생이었다. 징병 의무는 없었지만 나라를 구하겠다고 나이를 두 살이나 속여 올려서 입대했다. 그 후 이른바 '소모 품 소위'로 보병 수도사단 최
전방에서 매일 죽고 죽이고 뺏 고 뺏기는 전투를 거듭했다. 적 에게 포위돼 밤새 전투하고 나 니 산 전체가 아군과 적군 시체 로 뒤덮이기도 했다. 주먹밥을 들고 뛰어오던 병사가 죽어 며 칠씩 먹을 것이 없을 때는 풀이 고 나무뿌리고 아무것이나 뜯 어 먹으며 견뎌냈다. 몇 개월씩 이렇게 전투하다 보면 남은 것 이라곤 다 찢어진 피투성이 군 복, 적탄에 맞아 구멍 뚫린 철 모, 상처투성이인 몸, 몇 발 안 남은 총알, 그리고 가슴에 걸 린 수류탄 하나가 전부였다.”
죽을 고비를 넘겼던 순간들 도 자세히 적었다. 전쟁의 피 내음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그는 전쟁이 끝나고 제대하 면서 받은 ‘광목 한 마’와, 국영 기업체에서 병역기피자 채용
에 대해 비판하다 파면된 사연 등을 전하며 그간의 섭섭함도 함께 토로했다.
이 씨는 글을 마무리하며
“전쟁이 끝나고 63년이나 흘렀 지만 지금이라도 나에게 ‘국가 보훈영웅'이라는 칭호를 준 한 국 정부가 진심으로 고맙다.
오늘의 정부는 옛날과 다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 전쟁에서 나처럼 어린 나이에 자원입대해 고생 한 이 가운데 몇 명이나 살아 남았을까” 궁금해 하며 안타까 운 마음을 남겼다. 그러면서
“한국군뿐 아니라, 세계 16개 국에서 우리나라를 위해 참전 한 장병들에게 마음에서 우러 나는 경의를 표해줄 것”을 건 의하기도 했다. 그의 건의처럼 국가보훈처는 2010년부터 유 엔참전용사 재방한 사업을 추 진해 3만여 명의 유엔참전용 사와 가족들을 초청해 감사와 위로의 행사를 갖고 있다.
미국 호국영웅이 보낸
‘감사의 편지’ 화제
재미과학자 이중희 씨의 칼럼과 국가보훈처로 보내온 편지.
호남지역에 처음 건립되는 순천호국기념관이 2019년 6월 개관을 목표로 차질없이 추진 되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지난 2015년 호 국 관련 기념관이 일부 지역에 편중돼 국민의 접근성이 낮은 것을 고려, 호남지역에 호국기 념관을 개관해 지역균형을 도 모하고자 국비 192억 원을 들여
‘순천호국기념관’을 건립키로 했다.
이 같은 계획에 맞춰 순천시 도 기존의 보훈회관을 새로 건 립하고 순천시 현충탑을 이전 해 호국기념관과 함께 ‘순천시 호국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전남 순천시 연향동 ‘순천시 호국공원’ 내 자리 잡게 될 순 천호국기념관은 지난 2015년 예산안이 통과돼 타당성 조사 와 함께 용지 확보를 마쳤고
현재 건축 및 전시설계를 진 행 중이다.
공사는 올해 8월에 착공해 2019년 건축·전시공사를 끝내 고 2019년 6월 개관할 예정이다.
전체면적 4,726m², 지상 3층 규모로 지어지는 순천호국기념 관은 전시장과 다목적 강당, 세 미나실 등을 갖추고 호남지역 을 대표하는 기념관으로서 애 국정신을 함양하는 교육의 장 으로 활용하게 된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지난 해 3월 9일 보훈처에서 조충훈 순천시장과 가진 업무 협약식 에서 “순천시에 호국기념관을 건립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사업이며 호국공원이 순천 시
민들은 물론 인근에 있는 순천 만 국가정원 등을 방문하는 관 광객들에게 안락한 휴식처를 제공하면서 호국정신함양의 성 지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 라고 말했다.
호남지역 첫 ‘순천호국기념관’ 건립 박차
중앙보훈병원 내 2018년 3월 완공 예정인 보훈의학연구소 조감도.
“연구기능 강화·상급의료기관 성장 지원”
29개 연구과제 수행 연구소 건물 내년 준공
“모국서 보내온 호국영웅기장에 뜨거운 눈물”
2019년 6월 개관을 앞두고 있는 호남지역 첫 호국기념관 조감도.
2019년 6월 개관 목표
제861호 2017년 2월 1일 수요일 (월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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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호국정신
지평리 전투는 1951년 2월, 중공군 공 세시 미2사단 23연대전투단과 이에 배속 된 프랑스 대대 및 국군1유격중대가 원 주 북방의 지평리에서 중공군 3개 사단 규모의 집중공격을 막아내고 승리를 가 져온 성공적인 방어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미23연대와 프랑스대대, 국군1유격중대는 좌우 인접부대가 중공 군의 공격에 밀려 철수하게 됨에 따라 사면 포위에 놓이게 됐다.
하지만 미8군으로부터 지평리를 고수 하라는 명령을 받고 전면 방어태세로 전 환해 완전 고립된 상태에서 중공군의 파 상공격을 2월 13일부터 16일까지 4일 동 안 치열한 백병전까지 벌이며 막아냈다.
그 후 미5기병연대가 후방에서 중공군 의 포위망을 뚫고 들어감으로써 그들의 집요한 공격을 차단하고, 중공군 2월 공 세를 저지하고 반격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인해전술 앞세운 중공군과 격전 중공군은 2월 공세를 앞두고 중부전선 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지평리에 눈독을 들였다. 지평리는 중부전선의 미9군단 과 10군단을 연결할 뿐만 아니라 서울- 양평-홍천-횡성-여주를 연결하는 교통 의 요지였다. 그래서 이곳을 적에게 빼 앗기게 되면 서부전선의 국군과 유엔군 측방이 크게 위협을 받게 됐다. 그러나 미8군이 지평리를 확보하게 되면 미1군 단 및 9군단과 대치하고 있는 중공군을 포위할 수 있는 전략적 이점이 있었다.
양측이 모두 지평리를 확보하려고 한 까 닭이 여기에 있었다. 그러다보니 치열한 전투가 불가피했다.
전략적 요충지인 지평리를 미2사단 23 연대가 1951년 2월 3일부터 방어하게 됐 다. 미23연대에는 프랑스대대를 비롯해 국군1유격중대, 미378포병대대, 미503 포병대대 B포대, 미82대공포대대 B포 대, 미2공병대대 B중대로 구성됐고, 총 병력은 5,600명이었다.
하지만 중공군이 지평리를 공격할 때 미10군단 주력은 이미 횡성에서 철수했 기 때문에 미23연대는 고립된 상태였다.
연대장 프리먼 대령은 여주로 철수할 것 을 건의했으나, 미8군사령관 리지웨이 장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지평리를 잘 선정된 전투장으로 보 고, 이곳으로 중공군을 최대한 끌어들여 유엔군의 막강한 화력으로 격멸한다는 방침을 세워두고 있었다.
지평리에서도 중공군은 인해전술로 공격했다. 공격 첫날인 1951년 2월 13일
밤, 3개 사단 규모의 중공군이 막대한 포 병화력에 의한 공격준비사격을 실시한 후, 늘 그랬듯이 야밤에 음산스럽기 짝 이 없는 피리와 나팔을 불어대며 미23연 대의 정면으로 공격해 들어왔다.
이에 미23연대는 사전에 매설한 지뢰 와 철조망, 그리고 포병화력으로 막아냈 으나 중공군의 끊임없는 공격에 하나씩 무너져 갔다. 그것은 마치 파도가 계속 해안으로 밀려오듯 공격하는 인해전술 을 앞세운 제파식 공격 때문이었다.
중공군의 공격으로 방어진지가 무너 지면 역습을 통해 이를 막아냈다. 프랑 스군의 방어지역에도 중공군이 몰려왔 다. 중공군은 새벽 2시에 피리와 나팔을 불면서 공격해 왔다.
몽클라 중령이 지휘하는 프랑스군은 중공군 나팔 소리에 맞불작전으로 나섰 다. 소리에는 소리로 대응했다. 프랑스 군은 수동식 사이렌을 요란스럽게 울리 며 중공군의 기세를 꺾어 놓았다.
그럼에도 중공군이 진지로 몰려들며 육박전이 불가피해지자 프랑스군은 철 모를 벗어던지고 ‘프랑스 혁명 때의 시 민군’처럼 빨간 수건을 머리에 동여매고 총검과 개머리판으로 몰려드는 중공군 을 찌르거나 때려 눕혔다. 치열한 전투 끝에 프랑스군은 수적 우세를 앞세워 밀 려드는 중공군을 격퇴했다. 한국정부는 그 전공을 높이 평가해 프랑스군에 대통 령 부대표창을 수여했다.
중공군의 집요한 공격으로 전투는 점 점 치열해졌다. 미8군사령관 리지웨이 장군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공 군의 공격 둘째 날인 2월 14일 전투는 절 정에 이르게 된다. 자칫 방어진지가 뚫 릴지도 모를 위급한 상황이었다.
리지웨이 사령관은 미5기병연대를 주 축으로 한 크롬베즈 특수임무부대를 긴 급 편성한 후 지평리에 투입했으나, 중 공군의 완강한 저지로 연결작전은 쉽지 않았다. 그만큼 중공군의 공세는 대단했 다.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던지 프리먼 연대장의 지휘소 천막에까지 중공군 박 격포탄이 떨어졌다. 연대정보장교인 슈 메이커 소령이 전사했고, 프리먼 연대장 과 장교들이 중상을 입었다.
이때 프리먼은 운이 좋았다. 중공군 포탄이 떨어지기 전에 천막 안의 침대 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평 소와 달리 반대로 누워 있었다. 그런데 머리 부분에 둔 왼쪽 종아리에 파편이 박혔다. 평소처럼 머리를 그쪽으로 두 었더라면 머리에 파편을 맞고 즉사했을 것이다.
크롬베즈 특수임무부대는 중공군의 3 일째 공격날인 15일에야 겨우 미23연대 와 연결했지만 중공군은 쉽사리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미군의 증원으로 차츰 상황이 불리하게 전개되자 겹겹이 포위하고 있 던 중공군도 어쩔 수 없이 퇴각하지 않 을 수 없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피를 말 리는 혈투가 있었다. 미 증원이전 전황 이 어렵게 됐을 때 프리먼 연대장은 마 지막 남은 예비중대까지 투입시켜가며 최후를 생각했다. 이른바 결전이었다.
끝끝내 승리 지켜낸 전투
이때는 미군도 프랑스군도 한국군도
‘악’에 바쳐 있었다. 어느 순간 그들도 중공군과 똑같이 함성을 지르고, 수류탄 을 던지고, 총검으로 찌르며 맞섰다. 놀 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런 기세에 중공 군이 당황했다. 이때를 놓칠세라 미군·
프랑스군·한국군은 합심해 공격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그제서야 중공군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뒤로 주춤주춤 물러 났다.
미23연대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중공 군을 추격해 나갔다. 악천후임에도 불구 하고 미군·프랑스군·한국군은 도망가는 중공군을 추격하며 전과를 확대했다. 이 때 프리먼 연대장은 부상을 입었음에도 후송을 거부하며 부하들과 함께 싸우며 승리를 쟁취했다.
전투가 끝난 후 미군진지 주변에는 중 공군의 시체 2,000여구가 쌓여 있었다.
중공군은 이 전투에서 4,946명의 피해를 입었고, 미군은 전사 52명·부상 259명·
실종 42명의 피해를 입었다. 더 없이 값 진 승리였다.
지평리 전투의 승리에는 연대장 프리 먼 대령과 프랑스군 대대장으로 참전한 몽클라 중령의 뛰어난 리더십, 그리고 이들과 함께 싸운 미군·프랑스군·한국 군 장병들의 활약이 컸다.
특히 몽클라 중령은 제1·2차 세계대전 에 참전한 프랑스의 3성 장군 출신의 노 장이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몽클라 장군은 대대 규모를 파견하는 프랑스군을 지휘 하기 위해 중령 계급장을 달고 한국전선 에 뛰어들었다. 드골 대통령과 프랑스 쌩시르(Saint-Cyr) 육군사관학교 동기 생인 몽클라 중령은 대대 규모의 프랑스 군을 지휘하면서 그 용맹함을 발휘하여 프랑스군이 나폴레옹의 후예임을 각인 시켜 줬다.
프랑스군에 몽클라 중령이 있었다면, 미군에는 23연대장 프리먼 대령이 있었 다. 프리먼 대령도 전투 중 부상을 입고 도 후송을 거부하며 끝까지 전투를 지 휘하는 투혼을 발휘함으로써 미군의 명 예를 드높였다.
프리먼 연대장 개인적으로도 지평리 전투의 승리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 하지 못했다는 그 동안의 핸디캡을 떨 쳐버리고, 4성 장군으로 진출할 발판을 구축했다.
프리먼 연대장이 부상을 입게 되자 직 속상관인 알먼드 미10군단장은 프리먼 연대장을 교체하려고 했다. 이에 프리 먼은 “제가 우리 부대원들을 이끌고 이 곳으로 왔으니 마무리도 제 손으로 직 접 하겠습니다”라며 곤경에 빠져있는 부대를 끝까지 지휘했다. 그리고 전투 가 끝나자 비로소 상처를 치료했다.
지평리 전투는 중공군 개입 후 유엔군 이 거둔 첫 승리였다. 승리의 중심에는 프리먼 연대장과 장군출신의 몽클라 대 대장, 그리고 미군·프랑스군·한국군 장 병들의 감투정신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그들 모두는 ‘지평리 전투의 진정한 전 쟁영웅’들이었다.
지평리 전투에 참여한 유엔군의 전투 장면.
남정옥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 연구위원, 문학박사
중공군 개입 후 첫 승리…한·미·프 장병들 혁혁한 전공
6·25전투현장과 호국 영웅들 ③ 지평리 전투와 영웅들
2017년 2월 1일 수요일 (월간) 제861호 9
이 시대의 호국정신
3·1운동의 배경과 신한청년당의 활동 올해는 3·1운동 98주년이 되는 해이 다. 3·1운동은 일제의 강고한 식민통치 에 저항하며 한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얻 기 위해 만세를 외쳤던 역사적 사건이다.
1910년 일제에 강제 병합된 한민족은 무단 통치하에서 큰 고통을 당했다. 국외 로 망명한 애국지사들은 주권을 회복하 기 위해 줄기차게 투쟁했다. 그러나 제1 차 세계대전에서 승전국이 된 일제의 국 제적 지위는 더욱 상승했다. 승전국들은 전후처리와 군비축소 및 국제평화를 논 의하기 위해 1919년 1월부터 파리에서 강화회의를 개최했다. 이때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14개 조항의 원칙을 제시하는 데, 그 핵심은 민족자결주의였다.
중국 상하이로 망명한 독립운동가들 은 1918년 8월 20일 신한청년당을 결성 하고 파리 강화회의를 대비했다. 신한청 년당 의장 여운형은 김규식을 파리에 대 표로 파견해 파리위원부를 설치했다. 파 리위원부는 강화회의에 독립공고서를 제출하고 각국 대표단과 접촉하며 한국 을 지원토록 호소했다.
신한청년당은 국내와 일본, 만주 길림 과 러시아 연해주의 한인사회에도 특파 원을 보내 파리강화회의 대표 파견 소식 을 전하고 파리강화회의가 열리고 있는 동안 독립만세 시위를 일으켜 전 세계에 한국민의 독립의지를 천명하고 한국독 립의 기회로 삼을 것을 역설했다.
2·8독립운동과 선언문에 나타난 독 립정신
당시 재일 유학생들도 파리강화회의 에서 민족자결주의 원칙이 관철돼 일제 의 폭압으로부터 해방될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확신했다. 1918년 12월 29일 도 쿄 유학생 학우회 주최로 송년회가 열리 고 이튿날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는 동서연합 웅변대회가 개최됐다.
이때 모인 400~500명의 학생들은 조 국광복운동에 목숨을 바치기로 결의하 고 독립운동의 방안에 대해 토론했다.
마침내 김도연, 최팔용, 서춘, 백관수, 이 종근, 송계백, 김상덕, 전영택, 윤창석, 최근우 등을 실행위원으로 선출(후일 전 영택이 신병으로 사퇴하고 이광수와 김 철수가 추가됨)하고 극비리에 조선청년 독립단을 결성했다.
이들은 백관수의 자취집에 모여 1주일 동안 밤을 새며 독립선언서와 결의문을 국문, 일문, 영문 등으로 등사하고 민족 대회소집청원서를 인쇄했다. 1919년 2 월 8일 오전 10시, 도쿄 중심의 조선기
독교청년회관에서 학우회 임원 선거를 명목으로 유학생대회를 열었다. 여기에 도쿄 유학생 거의 전부인 600여 명이 참 가했다.
이 자리에서 유학생대회는 조선청년 독립단대회로 명칭을 바꾸고 역사적인 2·8독립선언식을 거행했다. 시위행진도 계획했으나 급파된 도쿄 경시청의 경찰 대가 대회장을 포위, 진입해 독립선언식 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독립선언서 서명 자와 그밖에 20여 명이 체포 구금돼 도 쿄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았다. 그들은 재 판정에서 독립선언의 정당성을 당당히 주장했다.
2·8독립선언의 서두는 ‘조선청년독립 단은 아 2천만 민족을 대표하야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득한 세계만국의 전(前) 에 독립을 기성(期成)하기를 선언하노 라’라고 시작한다. 장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은 세계 최고 민족의 하나로 주권을 잃어본 적이 없
는데, 이제 일본가 기만 적인 방법으로 강제 병 합한 사실과 우리 민족 에 자행한 만행을 비판 했다. 그리고 일본이 한 국을 군국주의 방식으로 계속 지배하려든다면 그 것이 동양평화를 해치는 화근이 될 것이며 한민 족은 독립을 위한 투쟁 을 벌일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3·1운동의 전파와 역 사적 의의
2·8독립선언은 한국의 젊은 유학생들이 적의 수도 한복판에서 한민족 의 독립 대의(大義)를 선 언하고 독립만세를 외쳐 거족적 항쟁인 3·1운동 을 촉발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2·8독립선언의 영향으 로 국내에서는 천도교와 기독교, 불교 혁신세력 이 33인 민족대표를 구성 하고 1919년 3월 1일 오 후 2시 서울 인사동 태화 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 독했다. 학생과 시민들 도 탑골공원에 모여 독 립선언서를 낭독한 후에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
에 나섰다.
3월 5일 서울역 앞에서는 1만여 명의 학생 시민이 모여 제2차 대규모 시위운 동을 벌였다. 3월 중순 이후 시위운동은 서울과 도시에서 지방 읍면지역으로 확 산됐다.
3·1운동은 한국의 민족운동과 독립운 동뿐 아니라 한국민의 근대적 시대의식 과 역사정신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만세시위를 통해 다수의 민중은 나라의 주인임을 자각하고 국권을 회복해야 한 다는 투철한 애국의식을 갖게 됐다.
3·1운동은 만주 등의 해외거주 한인사 회로 확산되며 이를 계기로 만주와 러시 아 연해주에서 조직된 독립군 부대가 통 합을 이뤄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부대 로 편제됐고 일제와의 독립전쟁을 선포 하고 무장 항일투쟁을 수행했다. 중국, 러시아, 미주 등지에 거주하는 국외 한 인사회는 3·1정신을 한민족 정신의 자산 으로 삼았다.
또한 3·1운동은 한민족에게 주체적인 독립 쟁취의 자신감을 줬고 독립운동 참
여 계층의 확대로 한민족의 독립역량은 큰 비약을 가져왔다. 특히 여성들이 민 족독립에 대한 열망과 국민으로서의 의 무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3·1운동에 참여 해 새로운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했다.
3·1운동은 일제에 의해 열등하고 미개 한 민족으로 악선전된 한국민이 자유와 정의를 위해 죽음도 불사하고 투쟁함으 로써 독립할 수 있는 자격이 충분히 있 음을 전 세계민에 입증했다.
반면 평화적 시위를 폭력 진압한 일제 는 만세시위자들에게 야만적인 태형을 가해 일본 제국주의의 잔악성을 스스로 세계에 폭로했다.
3·1운동 이후 끈임없이 전개된 한국민 의 항일투쟁은 국제사회에 한국인의 자 유와 독립에의 열망과 의지를 각인시켰 다. 또한 세계 피압박 민족에게 인류의 자유와 독립해방에 대한 자극과 용기를 주었다.
이명화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수석연구위원
한국인의 자유와 독립 향한 열망과 의지 세계에 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