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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 은 글 긴 생 각
숲, 가까이에서 즐기기
주도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장흥 편백나무 우드랜드... 듣기만 해도 싱그럽기 그지없는 말 들이다. 실상 이런 싱그러움과는 거리가 먼 빌딩숲에서 삶의 태반을 보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는 아련한 향수 같은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들 주말이다 휴가다 없는 시간을 짜내서는 복잡한 빌딩숲과 자동차의 홍수를 헤치고 열심 히들 천국을 찾아 떠난다. 아마 그곳이 천국같이 느껴지는 이유는 이런 지옥 같은 상황들을 감내하고 찾 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런 일상탈출이 아닌 이상, 우리는 싱그러움을 느낄 수가 없는 것일까? 의외로 우리 주변에 잠깐의 휴식을 가질 곳들이 많은데도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역시 가까이에 있는 것들은 쉽게 보이 지 않기 마련이다.
나는 가로수 길을 좋아한다. 머리 위로 크게 우거진 가로수든 키가 작은 관목으로 이뤄진 화단이든 도 로를 따라 조성된 가로수 길이라면 어디든 좋다. 비록 옆에 바싹 붙어 달리는 차들이 조금은 거슬리지만 가끔씩은 일부러 시간을 내서 가로수를 따라 한 블록씩 걷기도 한다. 길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있는 가로 수는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종류도 다양하여 계절마다 다른 즐거움을 준다.
봄에는 흐드러지게 핀 벚꽃나무 길에서 눈처럼 날리는 꽃들을 만끽할 수 있고, 느티나무 가지마다 새 로 돋아나는 색색의 연둣빛 새순은 봄을 실감하게 해준다. 담장을 덮은 노란 개나리와 하얗고 작지만 진 한 향기가 나는 꽃을 피우는 쥐똥나무를 보면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여름이 무르익을 무렵 회화나무의 하얀 꽃은 멀리서도 눈에 띄는데 마치 안개꽃과 푸른 잎을 섞어 꾸 며둔 꽃다발 같아 보인다. 게다가 바닥 가득히 떨어지는 꽃을 밟는 기분도 가로수를 따라 걷는 길에서 느끼는 기쁨 중 하나다. 잎이 넓고 키가 큰 백합나무들은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어 더운 여름산책을 상쾌하게 한다.
가을에는 온 천지를 노랗게 물들이는 은행잎들이 하늘뿐 아니라 바닥까지 가득 메워 밟을 때마다 그 알싸한 향기로 향수를 자극한다. 그리고 운치 넘치는 가을빛으로 물드는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를 보 면서 학창시절에 배운 시를 떠올리며 옛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헐벗고 앙상한 가로수를 보면 마음이 추워지다가도, 눈 덮인 겨울에만 볼 수 있는 가지마다 피어나는 눈꽃으로 마음을 달랠 수 있다. 이렇게 길을 걷다 마주치는 모든 것들이 다양한 풍경들을 자아낸다. 이 모든 기쁨이 바로 집 앞, 내 삶과 매우 가까이에 있는 것이다.
결국은 어느 곳에서 무엇을 보든 마음의 문제다. 사방으로 펼쳐진 수목이 가득한 숲 한가운데서도 마 음이 어지럽다면 즐거움을 얻지 못할 것이고, 가까운 가로수 길에서도 한가로이 걸으며 좋아하는 음악이 라도 듣는다면 가느다란 오솔길을 걷는 기분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김은희 |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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