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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과01: 그리스 자연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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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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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글

(1)

에피소드 과학철학

첫째 주: 고대의 기술발전과

그리스 자연철학의 출현

(2)

불의 발견-구석기 시대

인류가 진화하며 현재와 같은 문명을 만들기 까지 수없이 많은 세월과 지혜의 축적이 필요 했지만, 불을 발견해서 이용했다는 것은 우리 문명의 발전 초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인간은 구석기 시대(250만년

전~12,000년전) 부터 불을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불을 사용하기 전 인간의 노동은 돌, 나무, 동물의 뼈를 단순히 이용하는 물리적

노동뿐이었다. 그러나 불을 이용하면서부터 인간의 노동은 화학적 기술을 포함하는

노동으로 변화되었다

(3)

불의 발견-문명의 발전에 끼친 영향

불을 난방에 사용하면서부터 따뜻한 지방 뿐 아니라 추운 지방에서도 살 수 있게 되어

거주지역 이 넓어졌고, 불을 이용하여 음식물을 요리하고 건조시키고 저장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생활 능력도 더욱 확대되었다. 또한 점토(結土) 를 불로 구워 토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4)

불의 발견-금속기 시대와 그 이후 (선택)

온도가 높은 화로에서 금속을 녹여 여러 기구를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석기 시대에서 금속기

시대로 넘어가게 되었고, 이때 불의 주 용도인 난방 , 조리, 조명의 기술이 분화하여 산업적

이용이 시작됐다. 중세 사회에서는 불을 무기로 이용한 군사기술이 발달하였고, 근대 사회에

이르러서는 중기기관의 발명으로 불이 가진

열에너지를 여러 종류의 기계를 움직이게 하는 역학적 에너지로 바꾸어 사용함으로써

산업혁명까지 달성하게 했다.

(5)

금속의 발견-신석기 시대

인류가 금속을 사용하기 시작한 때는 신석기 시대(B.C. 9500경에 시작)라고 알려져 있다.

당시 돌을 자르거나 쪼개거나 갈아서 사용할

줄만 알던 인간에게 처음 나타난 금속은 마술과 같았다. 돌과 달리 금속은 구부러지기도 하고 모양이 변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금속을

두들겨서 납작한 판으로 만들 수 있었고, 독특한 무늬를 가진 모양으로 오릴 수도 있었다.

(6)

금속의 발견-원소 금속: 금, 은, 구리

인간 앞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금속들은

자연계에서 원소 상태로 있어서 비교적 발견이 쉬웠던 금, 은, 구리였다. 이 놀라운 재료들로

특별하게 만들어진 것들은 장식품이 되었고, 이 장식품들은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되었다.

물음: 화학에서 말하는 원소(element)란 무엇인가? 혼합물(mixed substance) 또는 화합물(composite substance)와는 어떻게 다른가?

(7)

금속의 발견-합금: 청동

B.C 3000년 경 인간이 처음으로 두종류 이상의 금속을 녹여서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새로운

금속이 청동이었다. 청동은 주석과 구리의

합금이다.* 주석은 전체 질량의 11 ~ 16% 정도 이며, 구리에 비해 재질이 단단하였다. 청동으로 만든 제품은 대부분 상위 계급의 무기와 장신구 였고, 생산도구로는 널리 쓰이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합금은 두 금속이 분자수준에서 결합한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혼합물일 뿐

화합물은 아니다. 특히 청동은 균일혼합물이다.

(8)

금속의 발견-철

금과 은, 구리에 비해 인류가 철을 사용하기까지 (B.C. 2000년 경 히타이트) 시간이 많이 걸렸다.

철은 자연에서 원소상태로 발견되지 않았고, 또한 철광석에서 철을 뽑아내는데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철이

탄소를 얼마만큼 포함하느냐에 따라 철의 성질, 즉 강도가 달라지므로 원하는 철을 얻기

위해서는 (제련)기술 축적이 필요하였다. 철제 농기구를 이용한 농경 방식의 변화는 농산물의 생산력을 증가시켜 사회 구조의 변혁을

이루었다.

(9)

바퀴의 발명-그 이전

원시 시대에 인류는 어디를 가든지 걸어 다닐 수밖에 없었다. 하루에 걸을 수 있는 왕복

거리는 고작 25 -30km에 불과했고, 운반할 수 있는 짐은 대략 40kg이었다. 그러다가 B.C

5000년 무렵부터 인간은 운반용 동물을 기르기 시작하였다. 동물을 이용하면서 이전보다 약

3배 많은 짐을 운반할 수

있게되었다. 그 다음으로 인간은 나무로 만든 썰매를 두 마리의 소에 연결하여 1,300kg

이상의 짐을 끌어 옮길 수가 있었다.

(10)

바퀴의 발명-문명 발전에 끼친 영향

B.C 3500년 경 수메르인에 의해 바퀴 달린

수레가 발명되어 라인강에서 유프라테스강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사용되었고, 매우 빠르게 북서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인간이 이동하고

물건을 운반하는데 쓰이는 탈것, 즉 차(車)는

인간의 진보와 함께 해왔다. 차의 속도는 사회의 속도를 말하고 , 차의 발전은 그 사회의 발전을 의미한다. 따라서 차의 진보를 촉진한 바퀴

(wheel)의 발명은 불의 사용과 함께 인류역사에 있어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중요한 발명 중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11)

그리스 자연철학-이성으로 자연탐구

그리스 시대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연의 다양한 현상들은 변덕스러운 인간의 마음을 가진 신에 의해 일어나는 일들이었다. 그러나 최초의

자연철학자들은 보이는 것 모두를 사유대상으로 삼았다. 그들은 경험과 상식을 기준으로 우주를 생각했고, 사물의 근원을 생각했으며, 물체의 운동에 대해 생각했다. 신의 변덕과는 별도로 있는,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는 자연현상에 내재된 원리를 생각했다. 자연현상의 원인을 합리적인 이성으로 찾고자 했다.

(12)

그리스 자연철학-탈레스

그리스 자연철학은 B.C 6 ~7세기 경 그리스와 에게 해를 사이에 둔 이오니아의 밀레토스에서 시작되었다. 이오니아 밀레토스의 최초의

자연철학자로 불리우는 탈레스는 “이 세상 만물의 근원이 되는 물질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처음으로 하고, 그 답을 ‘물’ 이라

주장했다. 이는 아마도 그가 메소포타미아의 신화와 에게해를 왕래하며 생계를 유지했던 자신이 처한 환경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밀레토스의 무역상인이었다.)

(13)

그리스 자연철학-아낙시만드로스

탈레스를 이은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 B.C. 611~547년 경)는 우주의 형성은 신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물질 자신의 운동에 의한다고 주장하였고, 만물의 근원은 물과 같이 일정하게 규정된 것이 아니라 규정되지 않은 ‘무한한 것 (to apeiron)’이라 하였다.

물음: 왜 아낙시만드로스는 자연의 궁극적 원리를 물이 아니라 무한한 것으로 바꿔 생각했을까?

(14)

그리스 자연철학-아낙시메네스

아낙시메네스(Anaximenes, B. C. 546 ~ 525 년 경)는 우주 만물의 근원이 되는 물질을 ‘공기’라 생각했다. 공기의 압축에 따른 밀도 증가와

팽창에 따른 밀도 감소가 갖가지 다양함을 가진 자연계를 만들어 낸다고 생각했다.

물음: 탈레스의 물 -> 아낙시만드로스의 무한한 것 -> 아낙시메네스의 공기. 여기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사유의 흐름은 무엇이며, 어떤 동기에서 기인한 것일까?

(15)

그리스 자연철학-헤라클레이토스

이오니아 학파와는 다른, 그러나 이들과 같은 고민을 했던 에페소스의 헤라클레이토스

(Herakleitos, B. C 540 ~ 480년 경)는 만물의 근원이 되는 물질을 항상 변화하며 타고 있는

‘불’ 이라고 보았다. 자연에 영원한 것은 없으며, 자연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활동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변하지 않고

동일성/단일성 (identity/singularity)을 유지하는 존재자는 없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이런 생각은 근본적으로 경험에 의존한 것이었다.

(16)

그리스 자연철학-파르메니데스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 B.C 515 ~4451년 경)는 최초의 형이상학자라 부를 만하다. 그

이전의 자연철학자들은 경험을 토대로 우주의 근본원리를 찾으려 했지만, 파르메니데스는 순수한 사유를 통해서 다음 우주론이 맞다고 결론내렸기 때문이다:

(i) 다자(여러 개의 존재자들)가 있다는 것은 허상이며 오직 크고 둥근 일자만이 존재한다.

(ii) 변화가 있어난다는 것 역시 허상이며 존재는 불변한다. 물음: 파르메니데스는 왜 이러한

반직관적인 주장을 받아들인 것일까?

(17)

그리스 자연철학-변화와 다수, 불변과 단일성

이후 자연철학자들은 경험에 바탕해 변화를 강조하고 단일성을 부정한 헤라클레이토스와,

순수한 사유에 의거해 세계의 불변성과 단일성을 강조한 파르메니데스의 사유들을 종합하려 했다.

이들에 의하면: 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계의 외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밑바탕에 있는 불변성과 양립가능하고, 이 불변자에 대해서 우리는 영원한 지식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은 경험과 사유를 조화시켜 자연을 탐구하려는

태도를 낳았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쉽지 않았다.

(18)

그리스 자연철학-엠페도클레스

엠페도클레스는 만물의 근본원리를 불 , 물, 공기 , 흙이라고 보고, 이 물질들이 사랑과 증오에 의해 결합하고 분리하여 자연계의 다양성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했다.

물음: 엠페도클레스가 제시한 만물의 근본원리는 몇 가지인가? 탈레스나

아낙시만드로스가 제시한 근본원리들의 수에 비해서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19)

그리스 자연철학-아낙사고라스

아낙사고라스는 무수한 종자로 만물의 근본을 생각했다. 즉 엠페도클레스의 네 가지

원소만으로 자연계의 다양성을 설명하기에는 불충분하다고 생각해서 질적으로 서로 다른 수많은 씨들(spermata)을 생각하였다. 이러한 씨들은 혼돈의 상태로 놓여 있는데, 순수한 지성 (nous) 에 의해 결합 또는 분리하여 다양한

자연계를 만들어 낸다고 하였다.

(20)

그리스 자연철학-데모크리투스

물질의 운동을 일으키는 외적인 요인으로 엠페도클레스는 '사랑’과 ‘증오’를,

아낙사고라스는 ‘지성(nous)’을 생각하였다.

이러한 지적 전통을 종합한 사람이 ‘웃는 철학자’

로 알려진 원자론자 데모크리토스 (Demokritos , B.C 460 - 370년 경)이다. 그에 의하면 변화는

원자들 간의 충돌, 즉 결합과 분리에 의해서 설명된다.

물음: 엠페도클레스나 아낙사고라스의 변화에 대한 설명과 데모크리투스의 그것은 어떻게 다른가?

(21)

고대 기하학-이집트와 바빌로니아

고고학자들이 해독한 고대 이집트 기록에

의하면, 이집트인들은 기원전 2000년 경부터 원시적인 수의 개념과 삼각형, 피라미드 같은 기하학적 개념들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지금은 피타고라스 정리라고 알려진 직각삼각형 에 관한 이론을 알고 건축에 응용하고 있었다.

즉 인류 최초의 수학이론은 피타고라스 정리 였다. 이들 뿐 아니라 메소포타미아의

바빌로니아 사람들도 발달된 수학을 사용하고, 플림프톤 322로 알려진 점토판에 남겼다.

(22)

고대 기하학-탈레스

수학적 주제에 대한 최초의 논리적 사유는

밀레토스의 탈레스에게서 나타났다. 그에 의해 다음 기하학 정리가 증명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1. 모든 직각은 같다.

2.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2직각이다.

3. 이등변삼각형의 두 밑각은 같다.

4. 반원에 내접하는 삼각형의 한 각은 직각이다.

물음: 4는 3와 평행선의 엇각에 대한 사실

(설명이 필요)로부터 따라나온다. 왜 그럴까?

(23)

고대 기하학-피타고라스 (철학적 측면)

피타고라스의 추종자들 당시의 자연철학자들과 다른 매우 독창적인 사고로 만물의 근본을

논했다. 당시의 자연철학자들은 만물의 근본을 물, 불, 공기, 흙 등과 같은 물질에서 찾았다.

그러나 피타고라스는 만물의 근본은

(비물질적인) 수(number)라고 주장했다. 그 수는 1 , 2 , 3 , 4와 같은 자연수였고, 이 수들을

기하학에서의 점과 대응시켰다.

(24)

고대 기하학-피타고라스 (종교적 측면)

피타고라스는 수들이 신의 속성을 가졌다고 믿었기 때문에 수들을 신과 동등하게 여겼다.

우주를 수학적 조화로 가득 찬 커다란 악기라고 보았고, 음악은 수의 조화를 나타내는 또 다른 표현이 되었다.

또한 그는 수에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성격들이 있다고 믿었다. 인간의 영흔조차 우주의 한

부분으로서 수의 또 다른 형태라고 보았다.

(25)

고대 기하학-피타고라스 정리

피타고라스 정리:

직각삼각형의

빗변의 제곱(c2)은 다른 두 변들을

각각 제곱한 것의 합(a2+b2)과 같다.

물음: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26)

고대 기하학-무리수의 발견

또 한가지는 무리수(irrational number)의

발견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에게 심각한 고민을 안겨주었다. 두 변의 길이가 1미터인 직각 삼각형의 경우 그 빗변의 길이를

미터법으로 잰 것은 유리수(rational number;

자연수를 분자와 분모로 하는 분수)가 아니다.

이 발견은 당시까지 합리적인 수로서 자연수 또는 자연수를 통해서 규정되는 분수만을

생각했던 피타고라스 학피를 놀라게 했다.

그들은 무리수를 발견한 사실을 비밀로 하였다.

(27)

데모크리토스-고대 원자론

원자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어 ‘atomos(쪼갤 수 없는)’ 에서 유래한다. 고대 원자론의 창시자는 레우키포스(Leucippos , B.C 440년 경)였으나, 그것을 확립한 이는 아테네의 데모크리토스

(Demokritos, B.C 460-370년 경)이다.

(28)

데모크리토스-원자들과 진공

그는 눈에 보이지 않으며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작은 입자들, 즉 원자들이 결합하고 분리하여 자연계의 다양한 현상을 만든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위치한 장소로서 빈 공간, 즉 진공 (kenon)을 생각했다. 이 진공 속에서 무수한 원자들이 소용돌이치고 부딪치고 결합하여 중심에서 물과 흙, 바깥쪽에서 공기와 불이

생겼다고 봤다. (물음: 엠페도클레스?) 생명체도 원자의 결합체인 흙과 태양열과 바람에 의해

나왔고, 영혼도 원자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다.

(29)

데모크리투스-사유와 경험의 통일

또한 원자는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경험이

아니라 사유에 의해서 파악된다. 사유에 의해 원자의 형태, 크기, 배열, 위치 등을 알 수 있고, 경험에 의해 단맛, 쓴맛, 따뜻함, 차가움 , 색

등을 알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 둘은

구별되어지지만, 사유에 의해 우리가 경험한 바가 설명된다. 사유와 경험의 통일

(=헤라클리토스와 파르메니데스 사상의 조화로운 합일)은 이러한 형태로

데모크리토스에 의해 결실을 맺었다.

(30)

데모크리토스-후대에 끼친 영향

데모크리토스의 원자설은 신의 존재나 의지와 상관없이 원자들의 기계적 운동으로 우주가 진행된다는 무신론적 유물론이었다.

이런 원자론은 “물체의 운동은 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작위적이다” 라는 주장을 했던 후대 철학자 에피쿠로스(Epicurus, B. C 341 ~ 270년 경)에 의해서 받아들여졌다.

고대 원자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진공은 없다”라는 이론에 묻혀 있다가 거의 2천년이 지난 근대에 이르러 부활된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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