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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스의 『화폐와 신용의 이론』이 현대 거시경제학에 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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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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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스의 『화폐와 신용의 이론』이 현대 거시경제학에 주는 의미

김이석 자유기업원 초빙연구위원

『화폐와 신용의 이론』Theory of Money and Creidt은 Human Action1)으로 저명한 루 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가 경제학자들 가운데 최초로 화폐의 수요와 공급에 주 관적 한계효용이론을 성공적으로 적용한 저술이다. 당시 최고의 경제학자들조차도 한계효용이 론은 상품의 교환에만 적용될 뿐, 화폐문제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점 에서 이 책의 출판은 당시 경제학계에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비록 화폐문제에 대한 미제스의 생각도 고정된 것이 아니어서 『화폐와 신용의 이론』과 『인간행동』 사이에도 일정한 정도 변화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2) 그러나 미제스처럼 일관되게 화폐가 시장의 자생적 산물이며, 이 에 대한 간섭이 경기변동에 따른 자원의 낭비를 가져올 수 있음을 일관되게 제시한 학자도 드 물다.

이 글의 목적은 미제스의 저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화폐와 신용의 이론』의 의 미를 소개하는 데 있다. 화폐와 신용의 이론은 1912년 독일어로 발표되었으며 미제스에게 국 제적인 명성을 안겨주었다. 미제스가 1934년 영어번역본의 서문에서 말한 것처럼 “화폐금융정 책이 관련된 질문들이 취하는 구체적인 겉모습은 매달, 매년 변한다. 그러나 이런 변화 속에 서도 우리로 하여금 이 질문들을 다룰 수 있게 해주는 이론적 도구는 변화하지 않는다.” 현재 우리는 미국발 국제금융위기, 남(南)유럽발 재정위기로 화폐금융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이론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미제스의 『화폐와 신용의 이론』의 가치는 바로 우리로 하여 금 “우발적인 잔가지들을 쳐내고 당면한 문제들의 진정한 중요성을 인식하도록 해 주는 데 있 다.”

이 글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우선 1절에서 미제스가 주관적 한계효용이론을 화폐문제에 성공적으로 적용한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다룰 것이다. 거시경제학자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오류들을 제시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미제스의 화폐이론이 현대경제학, 특히 거시경제학에 주는 의미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미제스가 제시한 불균등한(uneven) 물가상승의 과정 등 미제스의 이론 중 비교적 잘 이해되지 못하고 있는 부분들을 소개할 것이다.

2절에서는 미제스가 이 책에서 제시한 경기변동이론의 구조를 다룬다. 미제스는 화폐 (money proper)와 화폐에 대한 권리(청구권, titles to money)를 구분하였다. 신용창출을 통 해 화폐에 대한 청구권이 화폐에 비해 지나치게 많아지는 것이 가능할 때, 어떤 문제가 발생 하는지를 설명할 것이다. 이는 그의 이론을 약간은 도식화할 위험이 없지 않지만, 그의 화폐 이론의 구조를 살피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

3절에서는 현재 오스트리아학파 내부에서 전개되고 있는 화폐이론 분야에서의 발전에 대해 언급할 것이다. 특히 어떤 수량의 화폐공급도 최적이라는 미제스와 로스버드의 이론에 대한 최근의 도전을 소개할 것이다. 아울러 현행 불환지폐-부분지급준비 제도의 대안 오스트리아학

1) 이 책은 최근 『인간행동』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민경국·박종운 공역, 2011. 지만지.

2)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 Nikolay Gertchev, “Dehomogenizing Mises’s Monetary Theory,” Journal of Libertarian Studies 18, no. 3 (Summer 2004) pp. 5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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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의 연구에서는 세계수준의 불환지폐와 세계를 상대로 한 중앙은행을 그 대안으로 보지 않는 다는 점에서는 일치하지만, 100%의 지불준비-금본위제를 지지하는 금본위제학파가 중앙은행 이 없는 상태에서의 자유은행업을 지지하는 자유은행업 학파와 논쟁 중이다. 이 논쟁의 핵심 쟁점 중의 하나가, 상품생산이 증가하는 경제에서 디플레이션에 관한 관점의 차이인데 이에 대해 설명할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금본위제는 전용덕교수가, 자유은행업은 안재욱교수가 대표적인 해설자이자 지지자로 볼 수 있다.

1. 화폐 수요-공급에 적용된 방법론적 개인주의

미제스는 『화폐와 신용의 이론』의 곳곳에서 그의 스승인 뵘바베르크를 비롯해, 슘페터, 피셔, 비저, 크나프 등 기라성 같은 학자들의 다양한 오류들을 지적하는 등 많은 기여를 하였다.3) 그러나 경제학설사적 의미를 가지는 중대한 기여는 크게 보아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 다. 첫째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전체주의적 방법론”에 머물러 있던 화폐이론에 방법론적 개인 주의를 적용하여 주관적 효용에 기초한 개인의 선택으로부터 화폐현상들을 성공적으로 설명한 점, 둘째 오스트리아학파의 경기변동론의 기본구조를 마련한 점이 그것이다.

우선 첫 번째 기여에 대해 로스바드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일반적인 ‘미시’이론은 개별 행동의 분석에 기초해 있었으나, 화폐이론은 여전히, 개별 선 택과는 동떨어지게도 총량변수들로 분석되고 있어서 “전체주의적인 방법론”을 벗어나지 못하 고 있었다. 그래서 미시와 거시 분야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던 것이다. 모든 다른 경제현상 들은 개별 행동으로부터 출현하는 것으로 설명되는 반면, 화폐의 공급은 시장에 외부적으로 주어지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공급은 ‘물가 수준’이라는 추상적 개념에 기계적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취급되었다. 여기에서 사라져버린 것은 ‘미시’분야를 밝혀주었던 개별 선택에 기초한 분석이었다. 두 분야는 완전히 별개로, 그리고 완전히 다른 기초 위에서 분석되고 있었다. 이 책은 미시이론에 화폐분야를 통합시키는 훌륭한 업적, 즉 일반경제분석의 개인주의적 기초 위 에 화폐이론을 구축하는 업적을 해내었다.”

1912년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이룩한 미제스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현재 다수의 경제 학자들은 이에 대해 잘 모르고 있을 뿐 아니라 현대의 경제학은 여전히 한편으로는 방법론적 개인주의와 한계효용을 중심으로 구축된 미시경제학,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와는 전혀 다 른 방식으로 총량변수를 중심으로 서술되는 거시경제학이 어색하게 동거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런 불편한 동거의 주요한 이유는 방법론에 철저하지 못한 현대의 경제학에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불확실성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는 화폐문제는 현대 주류 미시경제학의 틀에서는 잘 다루어지기 어렵다는 점도 중요한 하나의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개인이 미래 특정 시점에 얼마나 화폐가 필요할지에 대해 전혀 불확실성이 존재하지

3) 그 외 파틴킨의 화폐수요 이론과 미제스의 이론이 “미래지향적 예상”과 관련해서 어떻게 다르고 또 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할 것인지에 관한 흥미로운 논의로는 살레르노와 살레르노가 인용하고 있는 다음 논문을 참고. Salerno, Money, Sound and Uns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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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는다면, 수익이 발생하는 채권이 아니라 현금을 보유해야할 이유는 사라진다. 그래서 일반 적으로 불확실성을 전제하지 않는 미시경제학의 틀은 화폐를 다루기가 쉽지 않다. 인간의 행 동은 시간(real time)의 경과 속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으며 그런 시간의 경과는 인간의 행 동이 피할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서 이루어짐을 뜻한다. 이처럼 인간의 행동이 직면한 시간경 과라는 제약 등이 지닌 의미를 충분히 검토한 상태에서 개인들의 행동들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나타나는 시장현상을 분석한 것이 바로 미제스의 대작 Human Action이다. 그래서 이 책은 기본적으로 경제질서에 관한 책이어서 미시경제학적이지만 화폐를 자연스럽게 다루고 있다.

아무튼 미제스가 『화폐와 신용의 이론』을 통해 이룩한 업적은 지대하였지만 그의 스승 “뵘 바베르크는 『화폐와 신용이론』이 출간된 후 곧 사망하였으며, 정통 뵘바베르키언들은 그들의 과거 패러다임에 갇혀 미제스가 화폐와 경기변동의 이론 분야에서 이룩한 새로운 이론적 해결 을 수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제스는 그 자신의 신(新)오스트리아학파 혹은 미제스학파를 설 립하는 몹시 힘든 일에 나서야 했다.”(로스버드, 서문). 방법론적으로 동떨어진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이 동거하고 있는 현재에 있어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런 사정이 바로 오늘날에도 미제스의 이 책이 중요한 하나의 이유이다.4)

이런 미제스의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의 통합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우리를 이는 총량변수 등에 매몰될 때 빠지기 쉬운 오류들로부터 구해주기 때문이다. 사실 시장경제의 작 동원리를 잘 이해하기 위한 아주 훌륭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왜 사유재산이 철폐된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작동할 수 없었는지에 대해 면밀하게 다루어보는 것이다. 사실 이 방법은 시장경 제의 작동원리를 직접 연구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으며, 시장경제의 작동원리에 무엇 이 중요한지를 파악하는 데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미제시안들의 관점에서 현재 거시경제학자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들을 언급함으로써 미제스의 분석틀이 가지는 강점들을 부 각시키고자 한다.

우선 미제스는 여러 재화들의 가격들을 종합하는 “물가수준”(price level)이라는 개념을 거 부한다. 가격들이 있고 교환의 상대적인 비율들이 있을 뿐, 이를 하나로 종합하는 물가수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 화폐의 구매력이란 각 재화들에 대해 그 재화의 가격의 역수를 의미할 뿐이다. 말하자면 구매력이란 그에게 실선 상의 한 점이 아니라 하나의 벡터이 다. 개인들의 구매 바구니가 다르면 동일한 화폐공급의 증가라 하더라도 재화들마다 서로 다 른 가격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고 따라서 각자에게는 느껴지는 구매력의 변화 정도는 서로 다 르다. 그래서 미제스로서는 구매력 측정치를 만들어내려는 시도는 개인적 차원의 추정을 하는 경우에만 의미를 가질 뿐이다. 그것을 객관적 과학성을 근거로 경제전체에 강요할 근거는 전 혀 없다. 그는 카셀(Gustav Cassel)에 앞서 구매력 패러티 이론을 개척한 인물이지만, 카셀과 는 달리 물가수준의 역수를 구매력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또한 가격들이 각 지역에서 같아진 다고 했을 때 지역과 관련된 사람들의 선호가 있음을 간과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뉴욕의 커 피와 브라질의 커피는 같은 물리적 성질의 커피라고 하더라도 서로 다른 지역에 위치해 있어 서로 다른 재화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브라질의 커피에 운송이라는 생산수단이 가해지면 뉴욕의 커피가 된다고 볼 수 있고 그래서 서로 다른 가격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 다.5) 다만 화폐의 경우, 청산소의 설치, 전신환의 발달 등에 따라 지역에 따른 선호의 차이는 4) 미제스의 『화폐와 신용의 이론』이 지니는 의미와 기여에 대한 더 자세한 논의에 대해서는 Hulsman, Ludwig von Mises: The Last Knight of Liberalism, 그리고 Salerno, Money: Sound and Unsound 2장, Rothbard, Essential von Mises 등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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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무시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보았다.6)

개인들의 화폐에 대한 주관적 한계효용의 적용은 이렇게 진행된다. 일단 특정 금광에서 금 이 종전보다 더 생산되고 이것이 주조를 통해 금화로 시장에 공급되었다고 해보자. (혹은 이 금이 보관되고 정확하게 그 금의 중량에 해당하는 작은 중량 단위의 여러 청구서들이 발행되 었다고 해보자.) 그 금광업자는 그 청구서들로 그가 구매하고자 하는 재화들을 살 것이고 종 전보다 더 많은 화폐를 가지게 된 판매자는 이 증가된 화폐를 소비하거나, 저축하거나 아니면 그가 보유하고 있는 화폐재고를 늘린다. 아마도 현대적인 언어로 표현하자면, 그는 소비에 쓰 인 1원, 저축에 쓰인 1원, 화폐재고를 늘리는 데 쓰인 1원이 주는 한계효용이 같아지는 수준 으로 소비, 저축, 화폐재고를 조정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혹은 전부의 화폐가 다시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간다.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미제스는 재화의 수요에서와 마찬가지로 일정 시점에서의 스톡에 대한 수요나 공급으로서 화폐수요, 그리고 화폐공급을 파악하고 있다는 점 이다. 그래서 유통속도와 같은 개념을 도입하지 않으며, 놀고 있는 화폐(idle money) 혹은 화 폐의 퇴장(hoarding)과 같은 개념도 없다. 화폐는 특정 시점에 언제나 누구인가의 보유일 뿐 이며 개인들이 화폐를 보유하기로 결정하면 그것은 화폐의 구매에 나서는 화폐의 수량이 줄 것이라는 의미이며 여기에 나서는 다른 이들의 구매력이 높아짐을 의미할 뿐이다.

얼마의 화폐를 보유할 것인지 결정하는 데 있어, 화폐는 다른 재화들과는 다른 성격을 지닌 다. 다른 재화의 경우 직접 소비할 것이므로 그 재화로부터의 얻는 효용의 정도를 감안해서 결정할 수 있지만, 화폐의 경우에는 화폐의 용도가 궁극적으로는 이를 다른 재화와 교환하는 데 있으므로 화폐의 구매력을 전제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 이와 관련, 파틴킨(Don Patinkin)의 경우 특정 구매력이 주어질 때 얼마나 화폐를 수요할지 그 계획들을 각 개인에 대해 모으고, 각 개인에 대한 수요를 집계한 것이 특정 구매력 아래 그 사회의 화폐에 대한 총수요가 되며, 각 구매력의 수준에 상응하는 개인들의 화폐수요 집계치를 이은 곡선이 그 사 회의 화폐에 대한 총수요곡선이 된다고 이론화하였다.

화폐를 가까운 장래에 재화와 교환하고자 하는 목적인 경우에는 물론이고, 불확실성에 대비 하기 위해 예비적으로 수요하는 경우에도 결국은 구매력에 대한 예상을 전제하지 않는 한 얼 마나 화폐를 수요할지 결정할 수 없다. 그런데 화폐의 구매력은 결국 얼마나 공급된 화폐 중 에서 얼마가 화폐로 보유되고 얼마의 화폐가 특정 재화들과 교환하기 위해 시장에 나와 그 재 화들의 시장가격들이 결정되느냐에 영향을 주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화폐의 공급량이 일정한 경우에도 화폐의 구매력을 모르면 화폐에 대한 수요가 확정될 수 없고, 화폐의 수요가 확정되 지 않으면 화폐의 구매력이 결정될 수 없다. 왈라스식 상호결정(mutual determination)의 체 계 아래에서는 이런 문제는 연립방정식의 수와 독립변수의 수를 헤아려 각 변수들의 값이 결 정될 수 있는지 아닌지를 따지는 문제가 된다. 그래서 상호동시결정의 문제는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미제스의 오스트리아학파의 인과-발생적(causal-genetic) 방법론 아래에서는 화폐의 구매력과 화폐에 대한 수요가 이런 식으로 결정될 수는 없기 때문에 이를 오스트리아 학파의 순환문제(circuity problem)이라고 불렸다.

미제스는 이를 회귀정리(regression theorem)으로 풀었다. 회귀정리는 오늘 화폐에 대한 5) 그래서 각 지역의 커피 값을 조사해서 구매력 패러티 이론이 맞는지 실증해보려는 시도는 올바르지

않다.

6) 이에 관해서는 살레르노의 Money: Sound and Unsound 2장, “Mises’s Monetary Theory in Light of Modern Monetary Theory”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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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는 어제의 화폐의 구매력을 근거로 정해지며, 어제의 화폐의 구매력은 다시 그 전날의 화 폐의 구매력에 의해 정해지며, 최종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 화폐가 화폐로서의 기능을 멈 추고 상품으로서 거래되던 시점에 이른다는 설명을 말한다. 상품으로서의 기능에 이르면서 상 호의존의 순환 고리가 끊긴다. 오스트리아학파의 비조 멩거는 물물교환으로부터 시장성이 높 은 재화가 화폐로 선별되는 역사적 과정을 제시한 바 있는데, 미제스는 멩거의 이 역사적 설 명을 논리적으로 체계화시킨 셈이다. 미제스는 인간행동(Human Action)에서 인간행동이 언 제나 미래지향적(forward looking)임을, 즉 특정 행동이 가져다줄 미래에 대한 예상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화폐를 미래에 예상되는 구매력이 아니라 과거의 구매력을 근거로 하였다는 비판, 그리고 그런 점에서 오히려 파틴킨의 이론이 우월하 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반대로 파틴킨의 특정 구매력 아래에서의 화폐수요 도출 자체가 이미 화폐구매력을 전제하고 있으므로 미제스 식의 회귀정리가 빠진 파틴킨의 이론이 미제스의 이 론에 비해 열악하다는 주장도 있다.

아무튼 이런 판단은 결국 어떤 설명에 만족할 것인가와 관련된 문제로 왈라스식의 상호결 정의 세계에 만족하는 사람은 파틴킨을 우월하다고 볼 것이고 인과적인 설명이 없으면 진정한 설명이 아니라는 관점에서는 미제스가 우월하다고 볼 것이다.7) 오스트리안의 입장은 인과-발 생적(causal-genetic) 설명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파틴킨 식으로 이자율이 얼마일 때 얼마를 대부자금을 얼마나 공급할 것인지 혹은 수요할 것인지를 모든 사람들에 대해 조사해서 대부시 장의 이자율의 높이가 결정되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해서, 왜 대부시장에 이자라는 현상이 발 생하는지 그 설명이 되었다고 보지 않는다. 시간선호현상이 제시되어야 비로소 그 현상이 설 명되었다고 본다.

미시경제학적인 기초 안에서 화폐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상대가격, 생산구조의 변화, 각 경 제주체들의 서로 다른 이자율 아래에서의 현재와 미래 시점 간의 현재 소비와 미래 소비(저 축)의 배분과 화폐 보유의 배분 등을 감안하고 이것이 생산자들간, 소비자들간, 그리고 소비자 들과 생산자들간에 일관될 때까지 조정이 이루어질 것을 감안한다는 뜻이다. 힉스(Robert Higgs)는 주류 거시경제학자들이 흔히 저지르기 쉬운 여섯 가지의 오류를 지적한 바 있다. 첫 째, 총량화(aggregation)의 오류, 둘째, 상대가격(relative price) 무시의 오류, 셋째, 이자율을 단순히 화폐에 대한 임대로 보는 오류, 넷째, 자본과 그 구조에 대한 변화를 보지 않으려는 오류, 다섯째, 과오투자와 화폐주입에 관한 오류, 여섯째, 체제불확실성(regime uncertainty) 에 관한 오류가 바로 그것이다.8)

우리가 미제스처럼 화폐문제를 한계효용과 개인주의적 방법론에 기초해서 다루게 되면, 그 런 오류를 범하지 않게 될 것이다. 총량화와 상대가격에 관한 오류는, 거시경제학에서 방법론 적 개인주의를 실천하지 못함으로 인해 빚어지는 것이다. 거시경제학의 총량변수에 익숙해지

7) 파틴킨의 이론화가 우월하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Lawrence Moss, “Monetary Theory of Ludwig von Mises,” in his The Economic Theory of Ludwig von Mises, A Critical Appraisal 참고.

왈라시언의 입장에서 파틴킨보다 미제스의 이론화가 우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아래 살레노의 논문 에 인용된 Edward의 책을 참고. 이들을 종합적으로 아우르면서 원인-발생적 이론을 우월하게 보는 입장으로는 살레르노의 다음 논문을 참고. Salerno, “Mises’s Monetary Theory in Light of Modern Monetary Theory,” in his Money: Sound and Unsound 2장.

8)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고, Robert Higgs, “Six Fundamental Errors of the Current Orthodoxy,” Mises Daily: Monday, May 0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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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되면 총고용의 수준을 문제 삼게 될 뿐, 그 고용의 구성이나 지속가능성 상대적 품질 등을 감안하지 않게 되기 쉽다. 총투자 수준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게 되면, 과오투자라는 개념 자 체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어떤 분석가가 경제전체의 생산방식을 요약하는 총생산함수를 가정 하고 나면, 그에게는 상대가격의 변화로 인해 빚어지는 생산구조나 자본구조의 변화 등은 눈 에 들어올 수가 없다. 총생산량만 중요할 뿐 예를 들어 너무 많은 집이 지어졌는지 여부는 아 예 관심사 밖으로 밀려난다.9) 단기적으로 자본을 고정하고 자본의 변화를 경제성장의 문제라 고 정의하면서 관심주제를 경기변동에만 한정시키면 그에게는 총생산수준, 총 고용수준의 변 화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자본의 문제는 그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래서 총량변수에 관심 을 고정하고, 존재하지도 않는 경제의 생산방식을 축약해서 표현하는 총생산함수를 가정하고 자본스톡이 단기적으로 고정되어 있다고 보고 경제성장을 장기에 변화하는 자본의 증가를 연 구하는 것으로 분류해버리고 나면, 화폐현상은 자본구조에 변화를 줄 수 없게 되며 경기변동 은 단순히 고용의 증감의 문제로 변화되고 만다.

2. 오스트리아학파 경기변동론의 기본구조의 마련

미제스는 화폐를 상품화폐(원래 혹은 좁은 의미의 화폐)와 이에 대한 청구권(넓은 의미의 화 폐)으로 구분함으로써, 신용팽창(청구권의 과다발행)이 몰고 올 문제들을 분석할 기초를 마련 하였다. 고전적 화폐수량설, 즉 화폐공급의 증가는 비례적인 물가의 상승을 가져온다는 생각 에 머물던 화폐문제에 대한 생각에 그는 획기적인 새로운 발상의 전환을 가하였다. 신용팽창 이 이루어지면, 비록 소비자들의 시간선호가 변하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즉, 자연이자율 이 변하지 않았지만) 대부시장에서 시장이자율은 하락한다. 대부시장에서 자금의 공급이 늘어 났기 때문이다. 이자율의 변화는 기업들이 어떤 프로젝트에 더 많은 투자를 할지에 영향을 미 친다. 당연히 어떤 프로젝트가 선택되느냐에 따라 구매되는 기계나 도구도 달라지고, 어떤 기 계나 도구를 선택할지에 대해서도 영향을 미친다. 구매할지에 대해 영향을 미친다. 시장이자 율의 하락은 “위험을 부담하는” 비용을 낮추고10) 이자율에 민감한 사업 분야들에 대한 투자수 요를 늘린다. 장기간에 걸친 사업, 집중적인 자본투자가 필요한 사업들이 이에 해당한다. 자본 재에 대한 수요를 늘림으로써, 자본재 가격을 상승시키고 이에 따라 상대가격들이 변화한다.

상대가격의 변화는 자본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시장이자율을 그런 신용팽창이 없었 더라면 사람들의 시간선호를 반영하는 자연이자율에 머물렀을 수준보다 더 낮춤으로써 지속될 수 없는 잘못된 투자(mal-investment)가 이루어지게 함으로써 왜곡된 생산구조를 초래한다.

인위적인 신용팽창에 의한 투자들이 지속될 수 없는 잘못된 투자인 까닭은 소비-저축자들이 저축하고자 하는 정도와 투자자들이 낮은 이자율에 미래에도 가용한 것으로 판단하는 자원의 정도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소비-저축자들의 선호에 부합하지 않는 자본구조- 9) 거실 안에 코끼리가 돌아다녀도 사람들이 다른 데 집중하면 그것이 돌아다니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박성현, 『망치로 정치하기』에서 재인용.

10) 인위적으로 낮은 이자율이 유도하는 것은 그 사업이 실제 최종재화를 생산하는 데 더 긴 기간을 요 구하는 프로젝트에 투자하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동시에 같은 기간을 요하더라도 더 위 험한 투자를 감당하려는 것일 수 있다. 투자 기간과 위험의 정도는 다르며 위험의 정도와 관련된 저 이자율의 의미는 오스트리아학파에서 최근 강조되고 있다. 이에 관해서는 참고문헌의 Rizzo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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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구조가 인위적인 이자율로 인해 야기되었다. 그래서 신용팽창으로 인해 겉보기에는 경제 가 활기를 띠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잘못된 투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만들 진 착각이며, 결국 그 착각을 현실로 되돌리는, 잘못된 투자의 청산과정이 경기침체의 시기에 일어난다. 그는 이 책에서 이처럼 뵘바베르크의 이자율이론과 자본이론, 그리고 빅셀의 자연 이자율과 시장이자율의 괴리를 결합함으로써 오스트리아학파의 경기변동론이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기본구조를 제시하였다.

오스트리아학파의 경기변동론은 흔히 과잉투자설로 잘못 소개되고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동시다발적 과오투자(mal-investment)설이다. 미제스 이후 하이에크는 그의 저서 『가격과 생 산』(Prices and Production)에서 미제스의 경기변동론의 토대 위에서 개인들의 계획들이 이 시간간 어떻게 조정될 수 있는지의 조정문제라는 관점에서 이를 다루었다. 그는 소위 하이에 키안 삼각형을 제시하였는데, 이것이 오스트리아학파 경기변동론 발전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 다고 한다. 로빈스의 초대로 LSE에서 강의를 하던 하이에크는 LSE에서 칼도어, 힉스 등 영민 한 제자들을 두었고 미제스의 이 책이 독일어에서 영역된 것도 로빈스 등 LSE의 경제학자들 의 오스트리아학파 경기변동이론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었지만, 케인즈가 일반이론을 쓰고 난 이후 대부분의 학자들은 케인지언으로 돌아섰는데11) 이것은 미제스의 이론을 반박함 으로써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저 무시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이런 부분에 대한 자세한 이야 기는 어쩌면 경제학설사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문제일 수 있지만 우리의 주된 관심사와는 거리 가 있기 때문에 생략한다.

다만 2001년 개리슨(Roger Garrison)이 미제스, 하이에크, 로빈스 등 여러 명의 학자들에 흩어져 있는 오스트리아학파 경기변동론에 관한 생각들을 집대성해서 현대의 거시경제학자들 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시간과 화폐(Time and Money)』를 저술하였음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그는 상대가격, 이자율, 과오투자 등의 개념을 잘 유지하면서 동시에 파생수요 (derived demand) 개념을 도입하여 인위적으로 낮아진 이자율 아래에서 붐이 만들어지고, 이자율이 낮을수록 더 유리해지는 자본재부문에서의 소득 증가가 소비를 자극함으로써, 붐의 시기에 소비재와 자본재 산업이 동시에 비대해질 수 있는 경우를 설명하기도 하였다. 미제스 나 하이에크의 원래 설명은 소비자들의 시간선호에 벗어나게 자본재 부문에 지나친 투자와 소 비재 부문에 과소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자본재는 소비자들의 선호에 비해 너무 많고, 소비재 가 모자라는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낮은 이자율은 소위 부의 효과를 가져와 저축보다는 소비를 더 부추김으로써 소비자들의 선호와 생산구조의 괴리의 폭을 증가시킨다.)

그런데 개리슨은 정보적 마찰로 인해 유휴상태인 자원의 가동, 기존 자본재의 (재확충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소비—즉 자본소비, 중간재 산업 부문의 축소 등에 따라 이들의 원래의 설명 이 제시하는 것에 비해 자본재와 소비재 양부문의 겉보기의 붐이 궁극적으로 붕괴되기 이전 상당히 더 오래 지속될 수도 있음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신용팽창으로 개별경제주체들의 시간 선호와 괴리된 시장이자율이 장기간 지속될 때, 그리고 자본재 부문 등에 지속될 수 없지만 상당 기간 소득의 증대가 빚어지고 이것이 소비를 유발시킬 때, 자원을 두고 자본재 부문과 소비재 부문이 “결투를 벌이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고(strife between production structures) 어느 방향으로 특정 경제가 더 쏠리게 될지는 그 경제의 경제여건에 달려 있게 된다.

11) 이 과정에 대한 설명 중 하나가 힉스(J. R. Hicks)가 쓴 “하이에크 스토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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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공급의 증가가 비례적인 물가의 상승을 가져온다는 화폐수량설의 아주 기본적인 메시 지에 대해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동의한다. 경제학자들이 이에 더해 이것이 소위 실물경제에 어떤 장기적 변화를 초래하는지 여부, 즉 화폐의 중립성을 검토한 적은 있지만, 미제스처럼 경기변동의 과정이 발생할 수 있음을 설명한 학자는 없었다. 그는 빅셀의 자연이자율과 시장 이자율의 괴리를 뵘바베르크의 자본이론, 시간선호이론에 접목함으로써, 미국의 대공황뿐만 아니라, 90년대 일본의 장기불황, 그리고 현재 미국에서 벌어진 서브프라임 사태로 촉발된 국 제금융위기를 설명하는 하나의 틀을 제공해 주었다.12)

화폐 공급의 증대가 물가를 화폐공급의 증가에 비례적으로 증가시킬 뿐이라는 고전적 화폐 수량설은 해외의 금을 되도록 국내에 축적하는 것을 경제정책의 중심적 목표로 삼는 중상주의 를 비판하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국부는 금과 같은 화폐가 아니라 시민들이 소비하는 재화에 달려 있으며 금을 국내에 축적해보아야 국내물가만 증대한다면, 중상주의 사상의 오류는 명백 해진다. 스미스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금본위제를 공격하기도 했었다. (금 생산에 드는 노동 력을 다른 데 사용한다면 더 이득이 아닌가?) 사실 이런 고전적 화폐수량설은 어떤 화폐공급 량이든 화폐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생각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폐공급량이 지금의 절반으로 줄더라도 가격들이 그만큼 비례적으로 낮아진다면 화폐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화폐도 다른 재화와 마찬가지로 일반 적 교환수단이며 이로부터 파생되는 자산의 축적수단, 미래에 대한 예비적 대비수단 등으로서 의 기능을 수행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보면, 단순히 어떤 수량의 화폐량도 최적이라는 논 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아무튼 이와 관련해서는 나중에 오스트리아학파의 화폐와 관련된 이론 의 전개 부분에서 좀 더 다룰 것이다.

미제스는 화폐를 화폐와 화폐에 대한 청구권으로 구분하였는데, 이런 분류는 화폐에 대한 청구권이 화폐에 비해 더 많이 팽창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들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현 재 우리는 독점적 발권력을 지닌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불환지폐, 그리고 상업은행들의 (요구 불)예금에 대해 부분지불준비를 하고 나머지는 대출을 하게 허용함으로써 일반적인 교환수단 인 화폐가 팽창할 수 있는 그런 화폐제도 아래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화폐라고 하면 일단 불 환지폐를 떠올린다. 그러나 화폐개혁을 하는 경우 국가가 종이쪽지에 얼마의 돈이라고 쓴 새 로운 불환화폐를 사람들로 하여금 강제로 받아들이게 만들 수 없으며 이 새로운 불환지폐를 과거에 존재하던 불환지폐와 어떤 교환비율로 교환되는지 보장해 줄 때 비로소 이것이 유통될 수 있다. 그렇다면 종전의 그 불환지폐는 왜 사람들에게 수용되었을까? 결국 이를 따져보면 태환이 보장되던 시절의 상품화폐가 그 불환지폐를 수용하게 된 근본원인임을 알 수 있다. 예 를 들어 달러가 국제결제의 수단이 되는 이유는 달러와 금의 태환이 이루어지던 시절에 대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물물교환은 욕망의 일치가 이중적으로 확보되고 또 합의된 교환비율도 물건을 적 당하게 나눌 수 있는 비율일 때에 한하므로 극도로 불편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재화 를 시장성이 높은 교환수단과 교환한 다음 이를 자신이 원하는 재화로 교환하는 것이 훨씬 교 역 대상을 찾기가 용이함을 발견하였다. 이처럼 가장 시장성이 높아 일반적인 교환수단으로 선택된 것이 상품화폐이다. 상품화폐의 출현은 그 상품화폐를 단위로 한 경제계산을 용이하게 12) 미제스의 경기변동론의 관점에서 저술된 책들로는 1920년대말에 시작된 미국의 대공황에 관해서는, Rothbard, America’s Great Depression; Robbins, xxxx를 참고하고 일본의 장기불황에 대해서는 Powell, 그리고 최근의 미국발 국제금융위기에 대해서는, Woods, Jr., Meltdown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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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으로써 문명의 출현을 가능하게 만들었다.13) 1971년 닉슨의 달러의 금태환 정지 선언으로 브레튼우즈체제가 무너지기 전까지 세계는 비록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상품화폐체제인 금(환) 본위제14) 아래에 있었다. 이렇게 본다면 상품화폐와 연계되지 않은 불환지폐의 역사는 인류의 화폐사용에서 찰나에 가까운 40여년에 불과하다. 그 이전 수천 년 동안 인류는 금속화폐본위 제도 아래 있었다.

미제스에게 화폐는 기본적으로 상품화폐이다. 그의 회귀정리(regression theorem)는 오스 트리아학파의 순환논리라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도입되었지만, 그것은 동시에 화폐가 국가 나 법의 제정에 의해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자생적으로 등장했음을 논리적으로 보여 준다. 사실 이 점도 미제스의 중요한 기여 가운데 하나이다. 물론 국가는 예를 들어 금의 함 량을 낮춘 금화를 발행해서 이 금화를 종전 금화와 동일한 비율로 교환을 강제하는 법을 제정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그 규정대로 하기보다는 중량이 제대로 된 금화, 즉 양화를 감추거나 해외로 유출하고 국내시장에서는 악화만을 유통시킨다. 미제스는 소위 양 화가 악화를 구축하는 그레샴의 법칙이 정부의 가격규제로 인해 발생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 다.

미제스는 상품화폐를 지칭하기 위해 좁은 의미의 혹은 본래적 의미의 화폐 등의 용어를 사 용하였다. 상품화폐로서의 금에 대한 청구권은 정확하게 금의 공급량만큼만 발행된다면 이는 상품화폐에 대한 완벽한 대용물(money substitute)이다. 그러나 금에 대한 청구권이 그 이상 발행된다면 이는 신용수단(fiduciary media)을 발행한 것이 된다. 똑같은 외양을 갖추고 있으 므로 어느 분량이 화폐대용물이고 나머지가 신용수단인지 확정할 수 없고, 모든 화폐대용물은 화폐대용물이 더 보태어진 만큼 화폐구매력을 상실한 셈이다. 포도주에 물을 탔기에 물을 따 로 분리해 낼 수는 없지만 물이 들어간 것은 확실하다. 브레튼우즈 체제에서 달러는 금의 일 정량에 대한 청구권을 나타내는 화폐대용물이었으나 보유하고 있는 금보다 더 많이 이 청구권 을 발행하는 순간 달러는 일정 부분 신용수단이 된 것이다. 은행의 요구불예금의 경우에도 이 에 대한 청구권들이 정확하게 실제 예금만큼 발행될 수 있으며, 그런 경우 그 청구권은 화폐 대용물로 화폐와 다름없다. 그러나 이 예금에 대해 예금액보다 더 많은 청구권이 발행되는 순 간 더 많은 청구권은 위의 비유에서 포도주에 탄 물과 같은 기능을 하며 이 예금에 대한 청구 권들은 모두 일정 정도 신용수단이 된다. 이 대출자가 이 청구권으로 지불을 하고 이를 받은 사람이 그것을 자기의 거래은행에 요구불예금의 형태로 넣어두면 이를 바탕으로 다시 신용수 단이 창출되는 과정이 진행된다. 이렇게 은행권(예금에 대한 청구권)이 신용을 창출하는 정도 는 각 은행이 발행하는 은행권이 서로 청산되지 않고 계속 유통될 수 있는 정도에 달려 있다.

동일청산소를 이용하는 회원은행들이 서로의 은행권(수표)의 청산을 미루고 타행의 청구권을 마치 자신이 발행한 청구권처럼 취급할수록 신용창출의 정도는 커진다. 은행권의 발권을 중앙 은행이 독점하고 중앙은행이 은행의 은행으로서 최종대부자 기능을 하는 경우에는 중앙은행이 신용수단을 많이 발행하더라도(즉, 상품화폐를 초과하는 은행권을 발권하더라도) 은행들이 예 금을 통해 신용창출을 할 수 있는 정도는 청산소들이 서로 경쟁하며 발권이 독점되지 않은 경 우에 비해 더 크다.

13) 이에 대해서는 로스버드(전용덕 역), 정부는 우리 화폐에 무슨 일을 하였는가? 참고.

14) 금본위제 아래에서 모든 국가의 화폐는 하나이다. 각국의 화폐단위는 금의 중량을 나타낼 뿐이다.

그래서 금본위제를 금과 각국의 화폐의 교환비율을 고정하는 제도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에 관해서는 로스버드(전용덕 역), 정부가 우리 화폐에 무슨 일을 해왔는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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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은행들은 사람들이 특정 기간 저축하고자 하는 돈을 받아들여 이를 빌려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대출해주는 자금 중개기능(financial intermediation)을 하는 동시에, 신용창 출의 기능을 함께 수행하고 있다. 자금중개기능에서는 일반적 교환매개물(지불수단)로 사용될 수 있는 화폐의 수량(money stock)은 늘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은행들은 고객들이 한꺼번에 돈을 찾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가정 아래, 고객들이 맡겨둔 요구불예금 가운데 일정비율을 빌려준다. (그런데 고객들은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다는 기대 아래 은행에 요구불예금을 한 다.) 요구불 예금의 대출자금으로의 전용은 사실 은행들이 극도의 만기불일치 행위임을 알면 서 그런 불일치를 일으키는 거래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은행의 신용창출 기능이다. 물론 중 앙은행의 최종대부자 기능과 예금보험공사 등의 예금자보험 등이 예금자들로 하여금 은행쇄도 (bank-run)를 할 유인을 줄이지만, 다른 한편 이런 제도들은 은행들의 고위험-고수익을 추구 하도록 부추긴다. 은행들의 신용창출은 경제 내 경제주체들이 자신이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하 는 지불수단의 공급량을 늘린다. 부분지급준비제도 아래 통화량은 급격하게 팽창한다. 이 팽 창된 신용수단들이 대부시장으로 들어가 대부자금시장의 시장이자율을 낮추게 되는데 이로 인 해 인위적인 붐이 만들어지고 뒤이은 경기침체가 나타나는 경기변동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미제스의 경기변동론이다.15)

과거 통화학파와 은행학파가 서로 경쟁할 때, 통화학파는 은행의 신용창출에 대해 부정적이 었던 데 반해 은행학파는 은행이 시장의 신용에 대한 수요에 대해 신용창출을 통해 탄력적으 로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논쟁에서 통화학파가 승리하여 영국에 서 통화학파의 사상에 의거한 필의 은행법 개혁(Peel’s Act)이 행해졌다. 그러나 당시 통화학 파는 은행권이 정화(正貨)에 대한 청구권 이상의 신용수단을 창출하는 방편이 될 수 있음을 알았지만 예금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간과하였다. 그래서 필의 은행법은 영국에서 은행권에 대해서는 엄격한 지불준비를 요구했으나 예금에 대해서는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은행예금을 통한 신용의 팽창을 막을 수 없었다. 미제스의 기여 가운데 하나는 양 학파들의 정확한 이론들을 조합해서 요구불예금도 은행권과 마찬가지로 통화로서 기능하며, 신용창출이 경기변동을 불러옴으로써 신용창출이 경제에 해악을 미칠 수 있음을 지적했다는 데 있다.16)

이런 은행의 신용창출에 대한 견해는 경제학자들마다 조금씩 다르다. “예금자들이 현금처럼 쓸 수 있다고 생각해서 맡겼지만 이들이 실제로 찾아가지 않았다면 은행이 이를 마치 저축인 듯이 다루어 대출해 주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다리 를 건설할 때 모든 사람들이 그 다리 위에 올라와 있는 상태를 가정해서 너무 튼튼하게 지을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 그 중심 논리이다. 요구불예금에 대해 약간의 이자를 지급했으므 로, 요구불예금은 예금자들이 마음대로 찾을 수 있는 돈이 아니라 은행에 빌려준 은행의 돈이 라는 주장도 있다. 이에 비해 “은행에 예치한 돈은 은행에 ‘빌려준’ 것이 아니라 맡긴 것이므 로 이를 허락 없이 과다하게 대출해주는 것은 일종의 절도에 해당한다.”는 견해도 있다. 언제

15) 흥미롭게도 이런 은행의 자금중개기능(financial intermediation) 기능에 비해 신용창출 기능을 중 시하고 이것이 경제에 유익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이렇게 반문하기도 한다. “은행이 복덕방 역 할만 하란 말이냐?” 그 대답은 은행의 어떤 기능이 어떤 경제적 효과를 가져 오느냐에 달려있다. 자 금을 수익이 나는 곳으로 잘 중개하는 기능이 복덕방 기능이라면 이것은 명백하게 관련된 사람들의 효용을 증가시키는 서비스이다. 그래서 은행은 복덕방 역할을 잘 해야 한다. 그러나 신용창출 기능은 이처럼 그 경제적 효과에 대해 논란을 벌여야 할 부분들이 존재한다. 은행학파, 통화학파, 미제스와 현대 학자들의 이 문제에 대한 연구들을 조사하고 스스로 검토하여 결론을 내리기 바란다. 현재까지 의 검토로는 나는 미제스의 견해, 특히 그의 저서 『인간행동』에 나타난 견해를 지지하고 있다.

16) 여기에 대해서는 살레르노, 로스버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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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지 요구하면 지불해주겠다는 약속을 어긴 행위라는 것이다.17)

이 주장들에 대한 정확한 정리는 결국 법적, 윤리적 측면에서 부분지급지불준비제도나 불환 지폐 체제에 대한 비판을 논외로 하고 경제학적인 개별 경제주체들의 계획들의 조정(plan coordination)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소비자들의 소비-저축-화폐보유 간의 선택에 대한 실제 선호가 은행들의 대출 행태와 서로 부합하는지 여부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에 있다. 만약 이 것들이 서로 부합하지 않으면 경제적 문제를 야기한다. 소비자들과 투자자들 등 경제주체들의 계획들이 서로 부합하지 않게 되면, 결국 소비자들의 선호와 괴리가 있는 투자들이 발생할 것 이다. 소비자들은 화폐 수요의 한 방편으로 요구불예금에 예치를 했는데 비해, 은행이나 투자 자들은 이를 저축하거나 은행에 빌려준 것으로 판단해서 이를 투자하는 경우 그런 계획들의 조정 실패(plan discoordination)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미제스의 은행의 신용창출에 대한 견해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우선 화 폐와 신용의 이론에서 그가 견지하는 입장은 은행들이 고객확보를 위해 경쟁하는 자유은행업 아래에서는 은행의 신용창출 기능은 크게 제약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최종대부기능을 가진 중앙은행이 등장하여 각 은행들이 신용을 동시에 증대하더라도 자신의 고객을 잃을 염려 가 크게 줄어드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면, 중앙은행이 존재하지 않는 자유은행업 아래에서 각 은행이 신용을 창출할 수 있는 범위는 크게 제약되지 않을 수 없다고 보았다. 그 래서 신용창출을 통한 광의의 화폐공급의 증대는 상품화폐의 생산에 들어가는 각종 비용을 절 약해주는 측면이 있고, 자유은행업 아래에서는 그 신용창조의 정도가 제약되므로 특별히 문제 될 것은 없다고 보는 것 같다. (이에 대해 살레르노는 건전한 화폐의 생산에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며, 이를 부정하려고 하는 생각이 문제라고 보았다.) 생산성의 향상으로 상품생산 이 증대되는 환경에서 은행의 신용창출은 일정한 정도까지 순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는 것 같 다. 그러나 그의 이런 신용창조에 대한 초기 견해는 그의 후기 저작인 『인간행동』으로 오면서 상대적으로 더 부정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18)

그런 그의 입장은 바로 신용창출이 과도하게 될 경우에 대한 강력한 경계였다. 화폐공급량 이 늘어난다고 그 경제 내의 부가 더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며, 오히려 신용팽창이 앞 에서 언급한 경기변동의 문제를 야기해서 과오투자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신용창출을 강력하 게 방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회에서 발생하는 신용공급에 대한 수요를 모두 수용 해야 한다는 은행학파의 소위 “탄력적” 신용공급 주장에 미제스는 반대하였다. 은행학파는 진 성어음주의(real bills doctrine)를 내세워 기업들의 진성어음은 모두 은행에서 신용수단의 추 가적 공급을 통해 모두 할인을 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상품화폐에 근거하지 않은 청구 권의 추가적 발행은 기업들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진성어음의 경우에는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이 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민간이 저축하고자 하는 자원의 정도와 기업에 투자될 수 있는 자원의 정도가 점점 더 큰 괴리를 나타낼 수 있음을 간과하였다.

미제스가 궁극적으로는 상품화폐에 기초한 금본위제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이유도 결국 금 의 생산에 들어가는 비용을 몰라서가 아니라 금본위제 아래에서는 바로 이런 괴리를 발생시키 는 신용팽창이 어려울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화폐공급의 증대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강할

17) 이와 관련해서 화폐의 생산을 윤리적인 관점으로 분석한 것으로는 Hulsmann, Ethics of Money Production이 있다.

18) 이에 대해서는 Gertchev, “Mises Dehomonized”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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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정부가 조세가 아니라 인플레를 통한 재원마련의 유혹을 받을 때, 금과 같은 상품화폐의 경우 정부로서도 그 공급을 쉽게 늘리지 못한다. 그러나 금과 같은 상품화폐를 담보로 삼지 않은 청구권들, 즉 신용수단의 발행은 얼마든지 가능하며, 더구나 불환지폐 체제가 되면 중앙 은행으로 하여금 국채를 인수하게 함으로써 얼마든지 재원을 조달할 수 있게 된다. 이의 공급 을 쉽게 늘릴 수 있고 이에 따라 경기변동의 과정 등 자원의 낭비와 이에 따른 사람들의 고통 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미제스의 화폐와 신용의 이론에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의 하나는 일반적 교환수단으 로서의 화폐를 (원래의) 상품화폐와 그 청구권으로 분류함으로써, 그 청구권(혹은 파생된 청구 권)이 좁은 의미의 상품화폐에 비해 더 많아질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시장이자율의 변 화, 상대가격의 변화, 자본구조 혹은 생산구조의 변화, 그런 자본구조가 소비자들의 선호에 부 합하는지 여부 등을 고려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단순히 화폐의 포괄범위의 정도를 문제 삼는 현재의 M1, M2와 같은 분류로는 이런 문제의 존재 자체를 파악하기도 어 렵다. 더 나아가 미제스의 분류와 신용수단(fiduciary media)라는 개념의 도입은 불환지폐의 발행이나 부분지급준비제도 아래에서 나타날 수 있는 윤리적 문제들, 그리고 예금이 누구의 소유인가에 대한 법적 분쟁 등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19) M1 혹은 M2 와 같은 분류가 이런 부분에 특별한 영감을 줄 수 없음은 자명하다.

3. 오스트리아학파 내부의 화폐이론 분야에서의 발전

현재 오스트리아학파에서 화폐거시분야는 가장 왕성하게 이론이 전개되고 있는 분야 중 하 나이다. 최근의 국제금융위기로 이를 이해하고자 하는 이론적 틀을 찾는 과정에서 미제스에서 출발한 오스트리아학파의 경기변동론이 크게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미제스의 이론은 방 법론적 개인주의에서 출발하다보니 그 이론적 토대가 여타 총량변수를 설명변수로 삼는 모델 들에 비해 훨씬 더 풍부하고 예리한 길잡이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일단 가정 먼저 이 분야에서 이루어진 성취의 하나는 미제스와 그를 이어받은 로스버드가 여러 곳에서 적정통화량은 어느 수준이건 상관이 없다는 관점에 대한 수정이다. 미제스와 로 스버드를 지지하는 살레노는 그의 스승인 미제스와 로스버드의 입장을 이들이 비교-정태적으 로 언급한 것으로 이해한다. 즉, 다른 것들은 모두 동일한 데 비해 단지 통화량만 다른 두 경 제를 비교할 때, 서로 다른 수량의 화폐가 공급되더라도 가격들이 정확하게 비례한다면 둘 다 잘 작동할 수 있음을 언급한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역시 미제스의 제자이자 거의 모든 분야에서 로스버드의 입장을 견지하는 블록 (Walter Block)과 바넷(Barnett II) 두 사람은 살레노가 이해하는 것과는 다르게 실제로 미제 스나 로스버드가 화폐의 공급량은 경제전체의 후생에 상관이 없다는 언급을 하고 있는 부분을 적시하면서 강제가 없는 자발적 교환상태인 시장에서 화폐공급량이 증가했다면, 이는 사람들

19) 이에 대해서는 Rothbard의 Mysteries of Banking 등의 저서들과 Hulsmann의 Ethics of Money Production 등을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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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효용을 증가시킨 것임을 보여주었다. 일단 상품화폐가 일반적 교환의 수단이 되는 순간, 일반적 교환수단의 기능, 그리고 이로부터 파생된 기능들에 대한 수요가 발생한다. 따라서 마 치 여타 다른 재화들, 예를 들어 꽃의 경우 누가 꽃의 공급을 늘렸고 이를 다른 누가 더 수요 했다면 꽃으로부터 얻는 효용이 존재하는 한, 추가적인 꽃의 공급이 거래를 한 사람들의 효용 의 증가와 상관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누군가 자발적으로 금화의 구매력이 상승 하자 금장식품을 녹여 금화로 만들어 이를 공급하였고, 누군가가 이를 자발적으로 수요했다 면, 이는 두 사람 모두에게 득이 되는 거래가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20)

다음으로 오스트리아학파 내부에서 현재 진행 중인 논쟁은 현행 불환지폐체제에 대한 대안 의 모색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하이에크가 명시적으로 화폐의 국가독점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부터21) 오스트리아학파 내부에서는 자유은행업 학파와 금본위제 학파가 내부 경쟁을 벌이고 있다. 자유은행업 학파는 금본위제와 같은 상품화폐를 바탕에 두고 경쟁을 하는 은행들이 자 유롭게 신용수단을 발행할 수 있는 자유은행업을 제안하고 있다. 셀진(Selgin), 화이트(White) 등이 이 학파에 속한다. 이에 비해 100% 지불준비를 하는, 즉 신용수단(fiduciary media)의 발행 자체가 없는 상태의 금본위제도를 지지하는 금본위학파가 있다. 여기에는 로스버드, 살 레르노, 휼스먼, 바구스(Bagus) 등이 속하고 있다. 이들 간에는 이미 수차례에 걸쳐 논쟁을 펼쳤다. 아마도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설득할 수 있게 될 때가 있다면, 이는 오스트리아 학파가 아닌 다른 사람들도 그 쪽으로 설득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므로 불환지폐의 대안도 어느 정도 실현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이런 일치된 견해에 도달하기 위해 건너야할 강들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강은 디플레이션 문제에 대한 공통된 인식의 확보이다. 지금 현재로서는 생산성의 증가로 재화들의 생산은 늘어나지만 상품화폐의 공급이 상품생산의 증가 속도만큼 증가하지 않는 경우, 재화들 의 일반적인 가격하락 현상을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 널리 퍼져있다. 성장률과 같은 정도로 불환지폐의 공급을 중앙은행이 증가시켜야 한다는 프리드먼의 통화준칙을 주장하는 통화학파 도 디플레이션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통화학파는 물론이고 오스트리아학파 안에서도 자유은 행업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디플레이션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이다.22)

금본위 상품화폐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생산성 증가에 따라 상품들의 가격이 하락한다면, 이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보유하는 화폐의 구매력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것은 이 들이 경제성장의 혜택을 누리는 길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를 통해 채무자들의 부담이 늘어나 는 것도 인플레이션 아래에서 채무자의 부담이 줄어드는 것과 반대방향으로의 변화가 일어나 는 것일 뿐 인플레이션의 경우 나타날 수 있는 금조항(gold clause)과 대조되는 조항들이 채 무계약에 포함될 수 있으므로 특별히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본다. 다만 디플레이션에 의해서 도 기업가들의 경제계산에 일정한 정도의 혼란이 올 수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별로 명확한 20) 보다 자세한 내용은 그들의 논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그 논문은 매우 드물게 보는 논리가 명확하면

서 깔끔한 우수한 것이므로 읽어보기를 권한다. Willidam Barnett II and Walter Block, “On the Optimum Quantity of Money,” Quarterly Journal of Austrian Economics, Vol 7. No. 1, Spring 2004, pp. 39-52.

21) 하이에크는 Denationalization of Money 등 화폐의 국가독점에 의문을 품고 이를 경쟁적으로 만들 었을 때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이점들을 강조해왔다. 아무튼 그는 은행들이 불환지폐의 발행에 대한 자유로운 경쟁이 가능한 자유은행업의 지지자이다. 로스버드는 하이에크의 제안에 대해 그렇게 할 경 우 기존의 독점적 화폐공급자인 은행이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된다는 점을 미제스의 회귀정리를 원용 하여 설명하고 따라서 하이에크의 제안은 별로 유효한 제안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22) 이에 대한 논의로는 Hulsmann, Deflation and Liberty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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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이 존재하는 것 같지는 않다.23) 아무튼 실제 금본위제 아래에서 200여 년간 재화들의 가 격은 안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다음으로 건너야 할 강(江)은 명목화폐들(token coins)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이다. 과거 의 주화는 원래 무게나 모양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수단으로 시작되었으나 곧 주화가치를 저상 시키는 행위들(coin debasement)이 발생하였다. 그래서 함량 미달 은화들이 만들어졌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명목화폐들(token coins)은 작은 거래에서 편리했으므로 여전히 계속해 서 사람들의 선택을 받았다. 그래서 자유은행업 학파는 100% 지불준비제도 아래였다면 이런 명목화폐들이 기여했던 기능들이 없어져서 좋지 않은 것이 아니냐고 금본위제 학파에 대해 반 문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유은행업 학파는 금본위제 학파에게 “왜 진화가 아니라 과거로의 퇴 화를 선택하려고 하느냐?”고 묻고 있다. 물론 금본위제 학파는 자유은행업 학파가 금본위제야 말로 건전화폐를 회복하는 길이므로 이것을 퇴화로 보는 데 강력하게 반발한다.

4. 결론

원래 결론은 앞에서 전개한 논의들을 요약하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앞에서 논 의된 것을 요약하는 지루한 일을 하는 대신, 우선 미제스의 화폐와 신용의 이론이 현대 거시 경제학에서 핵심쟁점으로 떠오르는 거시불안정성 문제에 주는 의미를 제시해보고자 한다. 미 제스의 화폐와 신용의 이론은 현재 이슈인 최근의 국제금융위기와 같은 “거시경제의 불안정 성”의 근본원인을 찾고 이를 방지해줄 대안을 모색하는 데 총량적 모델이 줄 수 없는 기능인 유능한 길잡이가 되어 줄 수 있다. 최근 달러의 약화와 위안화의 국제결제통화로의 등장을 예 측하는 전문가들이 많지만, 이런 변화로 거시경제적 불안정성이 감소하는지 여부에 대한 논의 는 하지 않는다. 미제스의 이론은 그렇게 되지 않음을 말해주고 있다.

아울러 현재 유로존의 실험이 진행되고 있지만, 유로화는 이미 여러 가지 문제를 노정하고 있다. 유로화 문제에 대해서도 미제스의 이론은 좋은 길잡이가 되고 있다. 이미 오스트리아학 라의 이론에 입각해서 유로화의 위기 현상을 설명하는 책이 집필되었다.24) 세계적 수준의 불 환지폐가 실현될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설사 그것이 가능하더라도 세계수준의 불환지폐는 거 시불안정성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것이 미제스의 이론이 제시하는 안내이다. 결국은 어떤 형태로든 은행업에 시장규율이 살아있게 만들든지, 금본위제와 같은 상품화폐에 기초한 화폐 제도를 통해 정치가 화폐에 간섭하는 길이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길이 근본적 수준에서 마련되 지 않는 한, 거시경제 불안정성에 따른 최근의 국제금융위기와 유사한 위기는 언제든지 반복 될 수 있다.

다음으로, 미제스는 서로 거래를 하고 있는 두 나라의 경우, 어느 한 나라의 화폐는 이미 다른 나라의 화폐로도 사용되고 있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자본의 이동이 비교적 자유로워진 현대의 세계에서 우리는 이미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발행한 다양한 불환지폐들을 사용하고 있 23) 휼스먼(Hulsmann)은 디플레이션 문제가 핵심적 쟁점이라는 점에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디플레

이션을 감당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의 “Deflation and Liberty” 참고.

24) Bagus, The Tragedy of the Euro, Mises Institute, 2011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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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셈이다. 앞의 두 나라에 각각의 중앙은행이 있다고 할 때, 각국의 경제주체들은 하나의 중 앙은행이 아니라 두 중앙은행들로부터 이들이 내리는 화폐정책의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에 있 다. 미국의 연준이나 ECB의 정책이, 자본이동이 통제되던 시절에 여타 각국의 중앙은행이 내 린 정책만큼이나 그 나라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다. 통화정책을 이야기할 때 이 점을 반드 시 감안하여야 한다. 특정국가의 신용의 팽창은 그 나라의 중앙은행이 아닌 외국의 중앙은행, 미국의 연준이나 ECB 등의 정책으로부터 기인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총량 변수에 집중할 때 빚어지는 문제들에 대해 언급하였다. 어떤 총량의 크기 가 같더라도 그 총량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느냐에 따라 그 경제적 의미가 달라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총량변수에만 집중함으로써 이런 문제를 간과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개인주의에 입각한 미제스의 화폐경제학은 이런 유형의 오류로부터 우리를 방어해 줄 뿐 아니라 앞에서 보았듯이 경기변동의 과정과 같은 현상이 신용팽창으로부터 어떻게 야기될 수 있는지 보여 준 다.

아울러 미제스의 방법론적 개인주의는 각종 인덱스 수치들이 지닌 근본적 약점에 대해 눈 을 뜨게 한다. 예를 들어 흔히 전문가들에 의한 화폐의 구매력 변화의 측정을 객관적이며 과 학적으로 치부할 가능성이 높지만, 미제스는 이렇게 지적한다. 가장 관심 있는 품목들의 가격 변화에 주목하는 평범한 가정주부들이 내리는 화폐의 구매력 변화의 추정이 지닌 과학성,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화폐와 관련된 물가지수 등도 결국 재화들의 다양성과 상대가격의 변화 를 재화묶음을 만들어내어 이를 마치 하나의 재화인 듯 다루려는 노력의 산물에 불과하다. 그 런 것들이 특정 가정주부가 가진 관심의 범위 안에서 개인적 추정을 위한 기초는 될 수 있지 만, 이것이 경제전체를 위한 정책의 과학적 논거로서는 사용될 수 없다. 사람들마다 구매하는 바구니와 바구니에 담기는 재화들의 종류는 실로 다양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화폐공급의 증가가 헬리콥터 머니처럼 혹은 가브리엘 대천사 모형처럼 모든 사람 들의 지갑에 어느 날 밤 종전에 비해 화폐가 두 배로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화폐공급이 경제 의 특정인들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점차 퍼져가는 형식을 취한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화폐 를 상대적으로 먼저 획득하는 사람들은 가격들이 올라가기 전의 가격으로 그들이 수요하는 물 건들을 구매할 수 있는 반면, 새로이 창출된 화폐를 가장 늦게 수요하는 사람들은 이미 대부 분의 가격들이 올라간 상태에서 화폐를 획득하므로 실질소득에 있어 오히려 피해를 본다. 그 런 점에서 물가상승은 일률적이지 않고 재화들에 따라 시간적으로도 시차를 가진다. 그래서 통상적인 화폐공급의 증가에 따른 부의 재분배 인식, 즉 물가상승으로 인한 화폐의 구매력에 따라 채무자들의 실질적 부담이 완화되어 채권자들로부터 채무자에게로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 진다는 인식에 비해 오스트리아학파의 인플레이션에 따른 부의 재분배 인식은 훨씬 더 광범위 하다. 채무자와 채권자뿐 아니라 전 개인들에 대해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은행들이 새로이 창출된 화폐를 누구에게 먼저 배분하느냐에 따라서도 부의 재분배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은행들이 기(旣)대출 고객들의 실패는 자신들의 부채로 귀결되므로 이들의 성공을 위해 다른 조건이 같다면, 신규고객보다는 이들에게 먼저 대출해줄 수 있다. 만약 은행들이 그렇게 행동한다면, 다른 조건들이 동일할 때 은행들의 신용창출이 가능해질수록 이 은행과 새롭게 대출을 받아야 할 입장인 신생기업들은 기존의 기업들이 신생기업들에 비해 유리하 다.)

다섯째, 발권기관인 중앙은행으로부터의 대출이라는 인플레이션을 통한 정부 재정의 조달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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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정부재원은 원칙적으로 세금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특별히 전쟁과 같은 긴급한 상황으로 인해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그 국채는 민간이 인 수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중앙은행이 이를 인수하면(혹은 상업은행이 인수하고 이를 중앙은 행이 다시 인수하면) 소위 본원통화(high powered money)가 추가적으로 발생하여 통화승수 만큼 신용이 팽창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자원낭비적 경기변동의 과정이 동반될 수 있기 때문 이다.

미제스의 화폐와 신용의 역사는 100년 전에 독일어로 쓰였다. 이를 2010년 한글로 번역한 역자로서 최소한 이 정도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미제스의 이 책과 로스버드 등의 저술들 은 미제스나 로스버드와 견해를 달리하는 경우에도 화폐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연구 해야 할 책들 가운데 하나이다. 미제스의 책은 지금도 대공황, 일본의 장기침체, 미국의 S&L 사태, 미국발 국제금융위기나 유로화의 위기와 같은 현상들을 이해하는 훌륭한 도구로 활용되 어 로스버드, 포웰, 개리슨, 토머스 우즈 주니어, 바구스 등 미제스의 후학들이 이 현상들에 대해 설득력이 높은 훌륭한 책들을 집필하고 있다.

참고문헌

Bagus, The Tragedy of the Euro, Mises Institute 2011.

Robert Higgs, “Six Fundamental Errors of the Current Orthodoxy,” Mises Daily: Monday, May 02, 2011

Salerno, Money, Sound and Unsound, 2nd ed. Mises Institute.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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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econlib.org/library/NPDBooks/Moss/mslLvM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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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yek, Prices and Production (1931) available at http://mises.org/books/pricesproduction.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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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olay Gertchev, “Dehomogenizing Mises’s Monetary Theory,” Journal of Libertarian Studies 18, no. 3 (Summer 2004) pp. 5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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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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