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한민국의 대북정책이 전략적인 고려보다는 정치적인 고려를 더 중 시하는 방향으로 전환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든다. 국가마다 대외정 책이라는 분야가 있으며 대외정책이란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이익, 즉 국가이 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들로 구성된다. 국가이익(National Interest)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안보(Security)다. 개인으로 말하자 면 건강이다. 개인에게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 수 없듯 국가에게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안보다. 그 다음으로 국가들은 힘(Power), 번영 (Prosperity), 명예(Prestige)를 추구한다. 대외정책은 국가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며, 그 중에서도 제1목표가 국가안보이기 때문에 ‘대외정책 혹은 국가안보에 여야가 있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대외정책은 정치적 논쟁 의 영역이나 정치적 득실 계산의 영역, 포퓰리즘의 영역이 되어서는 안된다 는 뜻이다. 대외정책은 정치의 영역이 아니라 전략의 영역이다.
우리나라의 대외정책 중에서 가장 비중이 큰 분야는 대북정책이다. 대북정 책은 가장 중요한 국가이익인 국가안보 문제가 걸려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대북정책이 국가안보의 영역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북한의 궁극적 목표가 한 반도를 자신의 주도하에 통일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궁극적 목표는 현재 존재하는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체제를 소멸시키고 ‘한반도 전체를 주 체사상화’하는 것이다. 결국 북한의 대전략 목표는 대한민국의 소멸을 통해 서 비로소 이루어 질 수 있는 일이다.
햇볕정책은 지극히 낭만적인 관점에서 접근한 것
대한민국의 대북정책은 바로 이 같은 엄중한 전제 위에서 출발해야 한다.
대한민국 역대 정부들은 물론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 2011-09-02
대북정책은 전략적 영역이다
이춘근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들을 강구해 왔다. 북한에 대해 강한 입장을 견지한 적도 있었고 좋게 말하 면 유화적, 나쁘게 말하면 굴종적인 태도를 보인 적도 있었다. 특히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존재했던 1999년부터 2007년까지 대한민국의 대북정책은 유 화정책으로 일관했다. 유화정책은 상대방과 대결구도를 견지하는 대신 상대 방의 요구를 어느 정도 들어주고 회유하는 방법을 통해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전제한다. 국제정치사상 유화정책의 대명사로 알려진 체임벌린 영국 수상은 히틀러의 체코 침공 야욕을 들어줌으로써 더 큰 참화를 막을 수 있 을 것이라고 생각, 히틀러와 뮌헨에서 협정을 맺었다. 의기양양하게 돌아온 그는 영국 국민들에게 히틀러와의 합의문을 들어 보이면서 ‘이것이 바로 이 시대의 평화’라고 주장했다. 처칠의 주장처럼 히틀러의 야욕을 그 때 강력하 게 저지했다면 1939년 가을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과 참혹한 2차 세계 대전 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국제정치를 지극히 낭만적인 관점에서 접근했던 햇볕정책은 그 목표를 전 혀 달성하지 못했다. 햇볕정책은 오히려 국제 공산주의의 총체적 몰락 이후 붕괴의 운명에 처한 북한을 회생케 하는데 기여했다. 노무현 정부는 ‘아무리 퍼줘도 남는 장사’라며 북한을 지원했지만 북한의 국가전략에 추호의 변화도 없었다.
북한의 군사도발은 한국의 대북정책보다는 북한 내부 상황에 따라 발생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책 때문에 요즈음 북한이 빈번하 게 도발한다고 알고 있지만 햇볕정책 기간 동안에도 북한의 대남 무력 도발 횟수가 줄어든 적은 없었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 당시 북한의 대남 군사도발 횟수는 휴전 이후 58년(1953-2010)간 연평균 도발 횟수인 3.8을 훨씬 넘 어서는 4.6에 이르렀었다. 북한은 주민들에게 보낸 식량을 군용으로 전용했 고, 우리가 지원한 현금을 통해 핵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우리가 제공한 민 수용 SUV 차량들인 갤로퍼와 레토나는 북한군 군용 차량으로 사용되고 있 다. 북한의 내남 도발 횟수는 한국의 대북정책에 따라 달라지기 보다는 오히 려 북한 내부 상황의 변화에 따라 늘기도 하고 줄기도 하는 것이다. 북한정 권의 권력 계승기, 북한 정권의 정통성에 문제가 생기는 시기에 북한의 대남 군사 도발은 상대적으로 빈번하게 발생했다.
10년간의 햇볕정책이 효과가 없음을 알게 된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행동 에 변화를 주지 못하는 조건 없는 지원은 곤란하다는 원칙을 견지했고 그
결과 대북정책에 큰 변화가 있게 되었다. 북한은 대한민국 정부의 행태가 자 신의 의도대로 되지 않자, 극단적인 언어로 이명박 정부를 비방했다. 대통령 을 역도라고 부르고 마음에 들지 않는 대한민국의 대외정책 담당 관료들을
‘경인 4적’(2010년은 경인년) 운운하며 비판했다. 통일부 장관과 국방부 장 관의 소신 있는 대북정책과 안보정책에 대해 북한은 인신모독적인 비방과 암살을 위협하기도 했다. 북한은 대한민국을 향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장관들의 교체까지 주장했다.
대한민국 여당의 대표와 통일부 장관 사이에 대북정책에 대해 견해가 대 립되고 있다는 보도가 심심치 않게 나왔고, 여당이 장관 교체를 요구하고 있 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장관의 소신 있고 원칙 있는 태도 때문에 남북관계가 진전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에 여당도 동조했다는 의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장관이 교체되었다.
북한정권의 궁극적인 목표는 대한민국의 소멸이 전제
우리의 대북정책이 원칙을 견지해야 할 수밖에 없고, 정치적인 것이 아니 라 전략적인 것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상대 해야 하는 북한 정권의 궁극적인 목표가 대한민국과의 공존이 아니라 대한 민국의 소멸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이다. 북한은 단기적, 전술적 차원에서 한 국과 공존하기도 한다. 그러나 북한은 통일을 위해서는 무력의 사용도 가능 하다고 믿고 있다.
우리는 통일의 주역은 당연히 대한민국이 될 것이고 시간은 대한민국 편 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북한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김정일은 “남 조선 인민들은 전쟁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총알 한방이면 다 도망간다. 식량 과 기름이 부족하지만 휴전선만 넘으면 남조선에 식량과 기름이 많이 있다.
이것을 사용하면 쉽게 남조선을 먹을 수 있다.”고 말한 적도 있다. 이 말은 호언(豪言)이라기보다는 전략론의 최고 고전 손자병법이 가르쳐주는 진리에 의거한 것이다. 손자는 유능한 장수는 ‘적의 쌀을 얻어 아군을 배불리고 적 의 물자로 전쟁 한다’(孫子兵法 제2편 作戰篇, 取用於國 因糧於敵 故軍食可 足也)고 가르쳐 주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대한민국 국민 50명이 북한의 도발에 의해 목숨을 잃었 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보복하지 않았다. 보복은 커녕 지원 할 테니 그 전제
로서 사과를 해달라고 요구했을 뿐이다. 북한은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발 뺌을 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 국민 50명의 목숨을 앗아간데 대한 아무런 사과도 받지 않은 채 남북 대화와 지원을 시작한다면 그것은 북한에게 천안함 격침 사건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일이요, 북한이 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주장해온 대한민국 일부 국민들의 의혹에 동조하는 일이 며, 가장 전략적이어야 할 대북정책에 가장 비전략적으로 접근하는 일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