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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화의 개괄적 이해와 다층적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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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화의 개괄적 이해와 다층적 해석

1) 신화시대와 신화적 세계관

신화(神話)의 글자 그대로의 뜻은 신(神)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신화는 단순히 신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아니다. 신화는 우주의 기원, 인류의 탄생, 신과 영웅의 업적 등 신화를 향유하는 집단이 신성하다고 믿는 이야기이다. 신성하다는 것은 범접 불가능할 정도로 절대 적 권위를 가지며 함부로 훼손할 수 없다는 뜻이다. 즉, 신화는 예사 이야기들과 구별되는 절대적 권위를 지닌 이야기이다.

신화가 신성한 이야기라고 해서 신화의 정체가 다 해명된 것은 아니다. 신성성은 신화의 여러 성격 가운데 대표적인 속성일 뿐이다. 신화는 시작에 대한 태초의 이야기이다. 즉, 비 롯됨에 대한 이야기이다. 따라서 인간과 천지만물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용이하지 않던 당대인들의 의식이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신화는 옛날 사람들의 세계인식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철학과 밀접한 연관 성을 지닌다. 그리고 신화는 신앙의 이야기라는 사실에서 종교적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 다. 종교 없는 신화는 있어도 신화 없는 종교는 없듯이 종교는 신화를 필수적으로 요구한 다. 그러면서도 신화는 역사적 사실 그 자체가 아니며, 물론 고스란히 종교나 철학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신화는 원시인의 문학적 상상력에 의해 허구적으로 지어진 것이다. 자연히 신화는 문학의 중요한 갈래이다. 심지어 문학의 가장 원초적 갈래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러므로 신화는 역 사와 종교와 철학과 문학이 더불어 있는 복합적인 문화 현상이다. 이러한 문화적 복합성 때 문에 민속학과 문화인류학에서도 신화를 주목하는 것이다.

신화는 그저 옛날에 만들어낸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아니다. 신화에는 만물의 생성이치와 인류의 과거 경험, 신화집단의 사고방식 등이 담겨있다. 조동일은 이러한 신화의 성격을 자 아와 세계가 대결하면서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가져 신화적 질서를 이루는 것이라 지적하였 고, 신화의 귀결은 신화적 질서이며, 신화는 신화적 질서를 보여주기 위한 이야기라고 주장 하였다.1) 즉, 신화는 향유집단이 세계와 자신들이 분리되지 않고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갈 등 없는 이상적 세계를 이룰 수 있다는 신화적 세계관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신화에 대한 이와 같은 견해는 신화적 세계관에 대한 선험적 이해가 전제된 것이다. 인간 의 인지 발달 단계에서 고대인들은 애초에 ‘나와 너’가 분리되지 않은 동질적 세계를 선험 적으로 인식하였고, 이제는 도달할 수 없는 잃어버린 완결된 세계를 끊임없이 동경하고 있 다는 것이다.2) 이러한 주장은 현재의 우리를 기준으로 신화적 세계관을 역으로 추적한 것 으로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그러나 신화에 대한 선험적 이해는 실증적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과연 잃어버 린 완결된 세계가 존재하느냐 하는 것이다. 일본의 종교학자 나카자와 신이치는 신화에 대 한 인식론적 접근과 달리 인류학의 기능적 관점에서 신화의 기원을 구석기 시대로 잡고 있 다. 구석기 시대를 거쳐 신석기 시대(약 1만년전)에 접어드는 사이 인류의 모든 영역에서 조직화라는 것이 이루어졌으며, 그로 인해 인류 최초의 신화가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주장한 다.3) 나카자와 신이치는 신화의 기원을 라스꼬 동굴 벽화 등 고고학적 유물을 자료로 하여

1) 조동일, 『한국소설의 이론』, 지식산업사, 1977, 106~112쪽 참조.

2) 게오르그 루카치(반성완 역), 『소설의 이론』, 심설당, 1985, 34~36쪽 참조.

설명하고 있다. 나카자와 신이치의 연구는 신화를 객관적 대상으로 파악하여 기원과 발생, 전파를 실증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의의를 가지지만, 신화의 성격과 기원에 대한 인류 정 신사적 측면을 간과하고 있다.

신화와 신화적 세계관에 대한 실증적이고 기능적인 논의도 필요하겠지만, 신화를 인간 정 신의 원형과 인식의 발달과정에서 살피는 것이 신화가 가지는 문화적 가치를 이해하는데 보 다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엘리아데의 신화와 신화적 시간에 대한 아래 인용문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신화는 신성한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원초의 때(primordial time)에 시원의 신화적인 때에 생겼던 일들 을 말하고 있다. 말을 바꾸면, 신화는 초자연적 존재의 행위를 통하여 우주라는 모든 실재를 말하는 것이거나 하나의 섬, 식물, 특정한 인간행동, 제도와 같은 부분적인 실재이거나, 그 실재가 어떻게 하여 존재하게 되었는 지를 말하고 있다.4)

엘리아데는 인간은 신화를 통해서 신화시대라는 원초적 시간을 상정하고 인간과 신, 사물 들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존재를 어디서 찾을 것인지 답을 구하려고 한다 는 것이다. 이렇게 신화가 전승집단에 의해 함께 창조되고 전승되던 시대를 신화시대라 설 정할 수 있다.

신화시대는 인류 문화 초기에 보편적으로 드러나는 총체적인 문화를 하나의 시대로 범주 화한 것인데, 이것은 초월적인 가치가 인간에 의해 갈등 없이 수용될 수 있었던 시대를 말 한다. 이 시대의 문학적 텍스트들은 제의(祭儀)를 통하여 신화적 상징을 전승하는 성격을 가진다. 신화적 상징은 세계라는 객관과 민족이라는 주관을 연결해주는 것으로 각 민족은 신화를 통해 독특한 세계관을 형성한다. 이러한 세계관은 켐벨의 주장대로 인간과 자연을 조화시켜 인간이 우주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게 하는 힘을 가진 사고체계5)라 할 수 있다.

신화시대의 자연의 재난은 당시의 인간이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이 알 수 없는 영역을 주재하는 존재를 그들은 하늘로 인식하였다. 자연의 변화를 주재하는 존재인 하늘 [天]에 대한 외경심과 신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서 하늘을 신적 존재로 대상화시키게 된 것이다.

이러한 종교적 사고는 통치권력이 하늘로부터 비롯된다는 천본주의(天本主義) 사고방식을 낳게 한다. 그래서 통치자는 권력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자신의 혈통을 신성불가침한 하늘로부터 온 것이라 주장하게 된다. 성스러운 신의 혈통을 통한 정통성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다른 부족보다 우월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신화에는 이러한 당시의 사유체계가 신화적 상징을 통하여 드러난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서 신화는 향유집단이 신성하다고 믿는 이야기이며, 인간이 신과 자신 의 기원에 대해 던지는 질문이면서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이해 방식이라는 것을 확인 하였다. 특히 신화는 세계에 대한 질문과 해석의 방식이 상징을 통해 제시되기 때문에 인간 정신의 원형을 탐구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인간에게 결여된 완결된 세계에 대한 동경과 추구가 나타나기 때문에 신화 자체에 인류의 문화적 보편성이 내장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3) 나카자와 신이치(김옥희 역),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 동아시아, 2003, 17~18쪽 참조.

4) 마르시아 엘리아데(이은봉 역), 『신화와 현실』,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1985, 14쪽.

5) 조지 켐벨(이진구 역), 『신의 가면 1』, 까치, 2003, 15~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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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화와 제의

신화는 제의(祭儀)의 형태로 반복 재현된다. 제의는 신의 근본을 되새기고 신격을 예찬해 야 하기 위해 신성한 시간과 공간을 반복 재현하는 의식이다. 신화는 제의를 통해 신성성을 유지하면서 계승되기 때문에 '제의의 구술적 상관물'이라고도 한다. 말을 바꾸면 ‘제의를 말 로 한 것이 신화’라는 것이다. 따라서 신화를 구연하는 것이 제의의 주술적 목적을 달성하 는 중요한 의식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러한 증거를 확인해 볼 수 있는 현장이 굿판이다. 굿판에서는 아직도 무당들에 의하여 신화가 무가(巫歌)의 형식으로 널리 전승되고 있다. 굿판에서 신화를 노래하고 춤을 춤으로 써 제의적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는 것이다. 창세신화를 비롯하여 바리데기, 당금아기 같은 무속신화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무속에서 신화를 본풀이라고 일컫는 까닭도 신의 근본을 풀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굿판 에서 노래되는 무속신화를 흔히 본풀이라고 하거나 ‘서사무가’라고 하는 것도 신화는 본디 부터 본풀이의 성격을 지니며 노래 형식의 무가로 전승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주몽신화 를 노래한 이규보의 동명왕 전승이 노래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는 사실이나, 이성계의 朝鮮 건국을 서사적으로 읊은 용비어천가가 노래 형식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이 신화의 이러한 본 디 형식을 보여 준다. 이들 본풀이 형식의 노래들은 영웅서사시라는 점에서 사실상 무가와 같은 양식을 이루며 같은 구실을 담당한다. 건국시조들의 영웅다운 삶을 노래함으로써, 왕 조를 튼튼하게 하려는 주술적 의도가 갈무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화의 서사적 양식과 내용은 문학적 창조성을 지니며, 제의의 현장에서 일정한 목적을 위해 구연되었다는 점에서 신화가 주술적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3) 神話와 이데올로기

신화는 그 자체로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민족이라는 주관적 가치와 결합할 때 이 데올로기적 성향을 드러낼 수도 있다. 현재 우리는 민족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민족은 근대 국민국가의 수립을 위해 강조한 개념으로 실상 실체적이지 않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을 고대로부터 존재해 온 원초적인 실재로 인정하지 않고, 근대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생겨난 특정한 문화적 조형물로 파악한다. 그는 민족을 특정한 시기에 사람들의 경험을 통 해서 구성되고 의미가 부여된 상상의 공동체로 규정한다.6) 이러한 상상의 공동체를 역사적 실체로 만들기 위해서 신화를 통해 단일한 기원과 공동체의식을 수립하고, 신화의 상징 세 계를 실재하는 역사로 전치하는 것이다.

신화의 역사화가 이루어질 경우 신화의 신성성이 위험요소로 작용한다. 신화의 신성성을 배타적으로 수용하면 민족우월주의의 함정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7) 역사적으로 신화의 신성성이 민족주의와 결합하면서 배타적인 민족 우월주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하는 사례는 너 무나 많다. 우선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서구중심주의와 이스라엘의 시오니즘, 일본의

6) 베테딕드 앤더슨(윤형숙 역), 상상의 공동체-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성찰, 나남, 2002, 1~293쪽.

7) 조동일이 신화의 사고방식을 고대자기중심주의라고 지적한 것은 신화 향유집단이 신화의 신성성 때문에 다른 집단에 대해 배타적인 우월감을 가진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라 할 수 있다.(조동일,

『한국문학통사』4판 1권, 지식산업사, 2005, 65~69쪽.)

천황을 중심으로 한 만세일계,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 등이 그것이다.

지금까지 팔레스타인 문제의 원인이 되고 있는 시오니즘의 경우 구약에 기록된 ‘젖과 꿀 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실제 역사로 인식하여 발생한 것이다. 시오니즘은 디아스포라 상황 의 유대인들이 고대 예루살렘 중심부의 시온이라는 약속된 땅으로 귀환하여 유대인의 민족 국가를 이루려고 한 민족주의 운동이다. 그러나 시오니즘이 본격화한 1차 세계대전 이후 시 온에 해당하는 지역은 팔레스타인이 2000년간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팔 레스타인인들이 버젓이 살고 있는 땅을 비어 있는 황무지라고 주장하며 이주하였다.

팔레스타인이란 땅은 ‘신의 약속’으로 대변되는 유대인들의 신화적 선민의식과 ‘문명화의 사명’으로 위장한 유럽의 제국주의적 욕망이 맞아떨어지는 곳이었다. 이들에게 팔레스타인 은 ‘선택된 민족’의 발길을 기다리는 ‘빈 공간’이자 ‘선진 문명’의 이식을 요구하는 ‘미개척 지’였다. 시오니스트들에게 팔레스타인은 ‘영광스럽고 경이로운 과거’의 노스탤지어와 ‘무한 한 가능성을 지닌 미래’의 판타지가 만나는 곳이다. 이 황량하고 낙후된 이교도의 땅이 ‘젖 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바뀌는 것이야말로 이들에게는 신의 ‘섭리’이며 ‘기적’이 아 닐 수 없다.8)

시오니즘은 이스라엘에게는 구약의 신화가 현재의 역사로 실현된 것이지만 원주민인 팔레 스타인의 입장에서 시오니즘은 허구적인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구약에 서술된 이스라엘 민족의 ‘타락-고통-구원’의 역사는 그들의 문제일 뿐이다. 유대인의 귀환은 이스 라엘에게는 해방일지 몰라도 팔레스타인 입장에서는 강탈인 것이다.

시오니즘과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신화가 특정 집단의 이데올로기로 사용된다면 그 결과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화를 신화로서 이해하고 수용해야 한다 는 것이다. 신화에서 상징을 통해 재현되는 인간 정신의 원형과 보편적 가치에 주목하고, 신화적 상상력을 계승하여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시야를 확장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 지 않고 신화와 역사의 혼동하고, 지리적 영역에 신화를 매몰시키면 특정 주체의 이데올로 기에 신화가 종속되고 마는 것이다.

오늘날 같이 문화적 교류가 빈번해지고, 다양한 문화가 혼종되는 시대에 민족주의에 기반 한 신화 이해는 통합과 연대라는 문화적 다양성에 부합하지 못한다. 특히 한국사회는 단일 민족주의와 순혈주의에 대한 집착이 존재한다. 역사 발전과정에서 민족주의가 필요할 때도 있었겠지만, 변화하는 시대를 맞이하여 주체와 타자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단일민족주의의 폐해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신화에 대한 해 석과 새로운 가치를 규명하는 작업이 요청된다. 즉, 다문화시대를 맞이하여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함정에서 벗어나 신화의 보편성을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4) 신화의 다층적 해석과 상상력

최근 학계에서는 신화 비교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동아시아 신화 비교를 통해 한국 신화의 보편성을 탐구하고, 한국 신화의 비어 있는 부분을 유추하기도 한다. 이러한 학계의 진전된 논의와 달리 교육 현장에서 신화 논의는 제자리걸음이다. 현재 신화 교육은 열린 교육보다는 오히려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배타적 민족교육의 관성이 여전히 계속되고

8) 이경원, 「오리엔탈리즘, 시오니즘, 테러리즘: 에드워드 사이드의 팔레스타인 문제」, 『비평과 이 론』11-1, 한국비평이론학회, 2006, 8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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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실정이다.9) 이와 같은 편중된 신화 교육의 영향으로 신화에 대한 민족주의적 이해가 더욱 고착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라는 동질성 못지않게 ‘다름’이라 는 다양성에 주목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연대와 통합의 관점에서의 신화 해석과 타 자를 배려한 신화 해석이 필요하다.

특히 건국신화 해석의 경우 연대와 통합의 관점이 요청된다. 건국신화는 건국 시조의 신 성성과 국가의 정당성이 강조되는 신화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건국신화는 다양한 종족의 경쟁과 통합의 서사이기 도 하다. 단군신화에서 ‘환인-환웅-단군’으로 이어지는 혈통의 신성성을 강조할 경우 이 신 화적 계보와 포함되지 못하는 타자에 대해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 이보다는 환웅, 곰, 호랑 이의 화합과 연대에 초점을 맞춘다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먼저 단군신화가 단일종족의 신화라는 좁은 범주가 아니라 고대의 제국형성과 소멸과정을 담은 보편적인 가치를 지향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단군은 이미 존재하고 있던 곰족, 호족 과 함께 보편과 인간을 지향하는 다종족 사회인 고대 조선제국을 건국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오히려 단군신화를 한민족 혹은 단일민족의 건국신화로 보는 시각은 단군신화가 종족 복합사회의 성격을 가진 제국의 신화라는 사실을 간과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단군조선에 대한 기억을 해체하며 조선의 영역과 범위를 축소하는 왜소한 접근이다.10)

단군신화를 다종족 사회로 보는 관점을 취하면 환웅과 웅녀의 결합에 대한 풍부한 해석이 가능하다. 환웅과 웅녀의 결합은 천부지모(天父地母)의 신성혼의 성격을 가진다. 기존에 이 과정에서 웅녀의 ‘사람되기’에 주목하여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질서에 여성 시조신화가 편입 되면서 웅녀의 신화를 잃어버렸다고 해석하였다.11) 이 논리는 대모신 중심의 시조신화가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건국신화로 재편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탁월한 주장이다. 그러나 신화 의 발전과정에 주목하여 신화의 두 주인공인 환웅과 웅녀의 주체적 의지를 간과한 것이 아 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웅녀는 혼인해서 같이 살 사람이 없으므로 날마다 단수(壇樹) 밑에서 아기 갖기를 축원했다. 환웅이 잠시 변 하여 혼인했더니 이내 잉태해서 아들을 낳았다.12)

환웅과 웅녀의 결합과정을 보면 먼저 곰과 호랑이가 환웅에게 사람되기를 원한다. 웅녀가 삼칠일의 금기를 이겨내고 사람이 되자 신단수에서 아이 갖기를 빈다. 웅녀는 새로운 세계 와 통합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버리는 희생과 고통의 과정을 겪는 것이다. 웅녀의 자기희생 과 간절한 노력의 대가로 환웅은 잠시 인간으로 변하여 웅녀와 결혼한다.13) 이 부분에서 환웅이 인간으로 변한다는 대목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환웅 역시 자신의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 아니라 변신을 통해 웅녀와 결합한 것이다. 환웅과 웅녀의 결합은 타자 가 주체에 일방적으로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와 타자 모두 기존의 자기정체성을 변화시

9) 서상필, 「신화를 통한 다문화 교육 방안-동아시아 건국신화를 중심으로」, 영남대 석사학위논문, 2008, 2쪽.

10) 양민종, 『바이칼의 게세르 신화』, 솔, 2008, 32쪽.

11) 조현설, 「웅녀․유화 신화의 행방과 사회적 차별의 체계」, 『구비문학연구』 9, 한국구비문학회 1999, 6~7쪽.

12) 熊女者, 無與爲婚, 故每於壇樹下, 呪願有孕, 雄乃假化而婚之, 孕生子, 號曰, 壇君王儉.(『三國遺 事』, 紀異 제1, 古朝鮮 王儉朝鮮)

13) 이 부분의 원문은 ‘假化而婚之’인데 假를 ‘거짓으로’라고 해석하기도 하고 ‘잠시’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맥 상 ‘거짓으로 변한다’보다는 ‘잠시 변한다’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키면서 새로운 연대와 통합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14)

환웅과 웅녀의 결합은 단순한 물리적 병존이 아니라 화학적 결합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 에 환웅도 웅녀도 아닌 그 둘의 자식인 단군이 조선을 건국하는 것이다. 그 누구에게 중심 축이 있는 것이 아니라 둘의 정체성을 이어받은 다음 세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진정한 통합 이라는 것이다. 이 해석은 환웅-웅녀의 위계적 질서를 해체하여 주체와 타자의 새로운 연 대 방식을 모색하는 것으로 다양한 민족․인종과 연대하여 새로운 국가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인식의 전환이 될 수 있을 것이다.15)

신화 해석에 있어서 연대와 통합의 관점과 더불어 주류 신화에서 소외된 타자를 중심으로 하는 신화 해석이 요청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교과서에는 신화 교육이 단군신화를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을 뿐 다양한 신화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이는 신화가 민족정체성 교육 에 주로 활용되고 있을 뿐 신화에 나타난 보편적 가치와 문화적 다양성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배질서에서 소외된 타자의 신화에 주목해야 한다. 여 기서 타자의 신화란 지배질서를 기준으로 주체가 아닌 타자의 삶을 이야기한 것으로 주류 신화에서 소외된 신화를 말한다. 우리의 경우는 남성 건국주체 중심의 건국신화에서 소외된 여신(女神) 중심의 무속신화를 주목해야 한다.16) 바리공주, 당금아기, 자청비 등 무속신화 에 등장하는 여신의 복원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질서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주체와 타자의 화해와 공존을 지향할 수 있게 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무속신화인 바리공주의 경우 바리공주의 희생과 자기부정을 통한 통합 과 화합의 서사가 나타난다. 바리공주는 죽은 이를 저승으로 천도(遷度)하는 새남굿의 세 번째 제차(祭次)인 말미에서 연행되는 무속신화17)로 바리공주의 버려짐과 서천서역국으로 의 탐색, 무조신으로 좌정되는 과정이 주된 내용이다.

바리공주의 아버지인 오귀대왕은 상중에 결혼하지 말라는 신탁을 어기고 결혼한다. 이에 대한 벌로 그는 후사를 이을 아들을 낳지 못하고 딸만 여섯을 내리 낳는다. 마지막으로 일 곱 번째 자식을 가졌을 때 아들을 기대하지만 역시 딸을 낳는다. 바리공주는 낳자마자 딸이 라는 이유로 아버지인 오귀대왕에 의하여 버림을 받는다. 그러나 바리공주는 아버지가 병이 들어 죽음에 이르자 열 달 뱃속에 들어앉았던 은공이 고마워 자원하여 서천서역국으로 약을 구하러 간다.

14) 물론 환웅과 웅녀 중 누구의 희생과 노력이 더 절실하게 요청되었는지를 묻는다면 당연히 웅녀일 것이다. 단군신화에는 분명 웅녀가 기원하고 환웅이 베푸는 권력 관계가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여 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다문화적 관점에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탐색해 보자는 것이다.

15) 이러한 신화의 해석은 다양한 민족․인종이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다문화시대에 대단히 적합한 것 이다. 신화를 통해 다문화현상이라는 추상적인 담론을 이해하기 쉬운 구체적인 이야기로 드러낼 수 있고, 이야기를 통해 다문화사회의 문제를 함축적으로 제시하고 전형적으로 구체화할 수 있기 때문 이다.(이명현, 「다문화시대 이물교혼담의 해석과 스토리텔링의 방향」, 『우리문학연구』33집, 우리 문학회, 2011, 148쪽.)

16) 주체와 타자의 관계를 세계사적 질서로 확장할 경우 타자의 신화는 서구 중심 신화에 의해 타자 화된 아시아 및 제3세계 신화까지 범주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논의는 차후 연구의 과제로 삼기로 하고 여기서는 한국 신화만을 대상으로 주체와 타자의 관계를 살펴보기로 한다.

17) 새남굿은 죽은 혼을 저승으로 편히 보내주는 死靈祭이다. 새남굿은 死者를 중심으로 한 저승 중 심적인 성격을 가지기보다는 산자를 중심으로 한 이승중심적인 성격을 지닌다. 굿의 현장에서 발견 할 수 있는 이승 중심적인 세계관은 이승을 중심으로 죽은 이들과 함께 하는 ‘한풀이’에서 볼 수 있다. 죽음이라는 갑작스러운 사건 때문에 이승의 삶을 통해 맺은 관계를 해결하지 못하고 떠난 망 자와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함께 참여하여 죽음에 대한 원한과 삶의 한스러움을 이승의 굿판에서 풀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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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고생을 겪으며 저승으로 간 바리공주는 신선과 십대왕의 도움으로 간신히 서천서역에 도착하지만, 무장승을 만나서 물 긷고 나무하고 일곱 아들 낳아주고서야 온 가족과 함께 이 승으로 나온다. 바리공주가 이승에 돌아오는데, 아버지의 상여를 만난다. 바리공주는 꽃과 약수로 아버지를 살려낸다. 아버지가 은혜를 갚으려 하지만, 지상의 부귀영화를 포기하고 자청하여 망자(亡者)를 천도하는 만신이 된다.

바리공주는 버려짐과 저승으로의 여행이라는 두 번의 자기부정을 통하여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이 두 번의 자기부정 과정은 바리공주에게 일방적 으로 부여된 희생이라는 것이다. 바리공주는 공주에서 버려진 아이로, 이승의 존재에서 저 승을 떠도는 여행자로 기존의 자기 존재를 부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바리공주의 희생이 무엇 때문에 요구되는 것인가에 주목하여 보면, 바리공주의 희생을 요 구하는 주체를 만나게 된다. 그것은 곧 남성들만의 권력질서, 수직적 위계를 유지하기 위한 힘이다. 아들을 낳아야 왕위를 이어줄 수 있는데, 딸로, 그것도 정성을 가장 많이 들였음에 도 낳게 된 것이 바로 바리공주였던 데서 희생을 바쳐야하는 비극이 발생한 것이다. 즉 바 리공주의 희생은 남성을 중심으로 한 수직적 권력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했던 셈이 다.18)

그러나 바리공주는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린 비극적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희생을 선택하여 자신에게 고난을 강요한 아버지를 용서하고 진정한 화합과 통합을 이룬다. 바리공주는 남성 중심적 질서에 편입되지 못한 타자이지만 자기부정과 희생을 통해 무조신으로서 새로운 질 서를 구축하는 주체로 전환한다. 이것은 주체를 중심으로 타자를 통합하는 남성중심의 건국 신화와 변별되는 지점이다.

바리공주에서 타자가 주체화되는 과정은 타자와 주체의 관계가 해체되는 과정이다. 바리 공주는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용서하고, 아버지로 상징되는 남성 중심 질서를 회복하기 위 해 저승에 약수를 구하러 간다. 이것은 표면적으로 보면 바리공주가 주체의 질서를 유지하 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 같지만, 바리공주의 자기부정과 희생으로 인해 주체와 타자의 관계가 역전되고 새로운 정체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무속신화를 살펴보면 지배질서를 전복하는 다양한 인물과 그들의 목소리 를 들을 수 있다. 바리공주, 당금아기, 자청비 등이 여신으로 좌정하는 과정은 포용과 화해 를 통한 새로운 연대인 것이다. 다문화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주체를 중심으로 한 단 일한 통일체가 아니라 다양한 구성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며 서로 공존하는 연대이다. 우 리는 신화를 통해서 바로 이러한 다문화적 가치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주체와 타자의 조화로운 공존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18) 최원오, 「구비문학과 다문화주의」, 『구비문학연구』26, 한국구비문학회, 2008, 19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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