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국토 제454호(2019. 8)
박세훈 | 국토연구원 글로벌개발협력센터 소장([email protected])
한국경제는
어떻게 성장하였나?
세상이 생각보다 빨리 변하지 않는다고 불평하기도 하 지만 너무 빨리 변해서 놀라기도 한다. 내가 대학에 들 어갈 때인 30여 년 전에는 당시와 같은 입시경쟁은 얼 마 지나지 않아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입시경쟁이 사라지긴커녕 오히려 더 심해졌으니 지난 30년 동안 하나도 변하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내 전공인 도시계 획과 도시개발 분야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1980년대 말이 개발시대의 정점이었다면 이제 도시계획의 패러 다임이 완전히 바뀌어 도시재생과 문화자산 보전이 중 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내가 석박사 과정 중에는 해외 의 도시계획 이론과 경험을 공부하는 데 대부분의 시 간을 보냈지만, 요즘 나는 우리의 도시정책 경험을 해 외 국가들과 공유하는, 국제개발협력이라는 것을 주로 하고 있다. 한 국가의 경제발전 경험이 내 개인적인 커 리어에 이렇게 반영되어 있는 것을 생각하면 놀랍기만 하다. 그것도 단지 한 세대 동안에.
조 스터드웰이 쓴 「아시아의 힘(How Asia Works)」
은 경제 성장에 관심을 가진 모든 전문가와 학생들 이 읽어 볼 만한 책이다. 특히 필자와 같이 국토 · 도 시분야에서 개발협력에 참여하고 있는 분들에게 권
하고 싶다. 국토 · 도시분야의 전문가들은 해당 분야 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개발협력에 어떠 한 의미를 갖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보통 우 리가 했던 경험들을–예를 들어 신도시 개발–반복적 으로 전달하곤 하는데, 많은 정책들이 그러하듯, 그것 이 수원국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수용되는지는 전 혀 다른 이야기이다. 수많은 지식공유 사업이 진행되 고 있지만, 과연 우리의 경험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인 가 의심스럽다. 한국의 도시개발 경험은 경제사회 발 전이라는 보다 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고 그것도 1960~1980년대의 특수한 시대적 여건 속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아시아의 힘」은 이러한 작업을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이 책이 갖는 미덕은 기존의 이념적 접근방식을 벗 어나서 실용적, 실천적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 이다. 동아시아의 경제 성장을 다룬 책들은 수없이 많 지만 이론적, 이념적 지향에 치우친 것들이 대부분이 다. 예를 들어 한국의 경제 성장을 설명할 때에도 주류 경제학계에서는 시장 개방과 대외지향적 정책을 성공 요인으로 꼽는 반면에 정치경제학적 접근은 정부의 시 연구자의 서가 15
아시아의 힘
(원서명: How Asia Works) 저 자: Joe Studwell 역 자: 김태훈 출 판: 프롬북스
71 장지배능력을 중요하게 평가한다. 「아시아의 힘」은 기
존의 이념적 지향을 벗어나서 정부의 어떠한 정책이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그 실용적 처방을 논의의 대상 으로 한다. 저자는, 아시아 지역에서 오랜 동안 기자 로서 활동한 경험을 살려, 동아시아의 산업현장을 누 비면서 정부 정책이 현장에 어떠한 차이를 가져왔는지 설명한다.
동북아시아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성장을 달 성할 수 있었던 실용적 처방은 무엇인가? 「아시아의 힘」은 세 가지 요소를 든다. 토지 개혁, 제조업과 수출 규율, 그리고 금융부문 통제가 그것이다. 성공적인 산 업화를 성취했던 일본, 한국, 대만은 공통적으로–부 분적인 차이는 있지만–산업화 초기 토지 개혁을 통하 여 농업생산성을 끌어 올렸고, 수출지향적 제조업을 육성하였으며, 금융이 생산적인 부문(특히 제조업)에 활용될 수 있도록 금융억압 정책을 취했다. 독자는 이 세 가지 정책이 어떻게 동북아시아 국가의 경제 성장 에 기여했는지, 그리고 이에 실패한 국가들이 어떻게 뒤처지게 되었는지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물론 이 세 가지 처방은 국제사회가 합의한 일반적 인 처방과는 차이가 있다. 발전경제학의 여러 이론들 은 여전히 정부의 역할보다는 시장의 역할을 중요하게 평가한다. 또한 세계은행을 비롯한 국제기구들의 입장 도 다를 것이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논란에도 불구하 고, 저자가 되풀이하여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실제 경제 발전을 성취한 국가들의 경험은 이러하다는 것이 다. 만약 우리가 역사로부터 무언가 배울 수 있다면 저 자의 지적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저자가 한국인은 아니지만 한국에 대한 묘사도 생생 하다. 특히 한국과 말레이시아가 어떻게 일본의 제철 기술을 다르게 수용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매우 인상적 이다. 한국의 포항제철은 일본의 신기술을 받아들이면
서도 일부러 자동화기술이 아닌 수동기술을 배우도록 하였다. 그리고 일본 기술의 적정성을 유럽의 기술자 들에게 감독하도록 하였다. 이를 통해 한국의 기술자 들은 최적의 기술을 몸에 익혀 내재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말레이시아는 최첨단 자동화기술을 그대로 수입하면서 기술을 습득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 다. 오히려 일본이 말레이시아를 대상으로 신기술을 테스트할 기회를 제공하고 말았다. 이 에피소드는 지 식과 기술의 습득에 있어서 주체적 수용의 노력이 얼 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한국의 경제 성장은 세계사적으로 매우 독특한 경험 이다. 우리 자신이 경험한 일이어서 객관적으로 바라 보기 쉽지 않다. 한편에서는 한국 경험을 지나치게 과 대평가하여 우리가 아무런 사회적 갈등이 없이 필요 한 때에 필요한 정책을 추진해서 의도했던 결과를 얻 은 것처럼 상황을 묘사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의 경제적 성취가 국제정치의 부산물이었을 뿐 개발시대 의 진실은 오히려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동원에 있음 을 강조한다. 문제는 이러한 접근만으로는 ‘발전을 위 해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고전적인 물음에 답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점에 있어서 「아시아의 힘」
은 매우 호소력이 있는 책이다. 균형적이며 합리적이 고 실용적이다. 이 분야에 관심 있는 모든 분들에게 권 하고 싶다.
연구자의 서가 16회 예고
하성규 주택관리연구원장이 다음 호 필자로 나섭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