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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the Modern History and the Problematic issues of Built-in Furniture in Korea - from the mid 1930's to mid 1990'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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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 론1)

1.1. 연구배경 및 목적

인간 문명의 발전과 수납의 역사는 함께 진행되 어 왔다. 그리하여 물질문화의 발달 아래 각 사회 의 수납공간과 수납 가구 역시 그 형태와 기능이 다양해졌다. 특히 주거공간에서의 수납은 사적 재 산들을 저장⋅관리할 수 있는 기능뿐 아니라 일상 생활을 쾌적하게 영위하기 위한 중요한 화두였다.

2017년 6월 13일 접수; 2017년 7월 20일 수정; 2017년 7월 24일 게재확정

교신저자 : 김 민 수 ([email protected])

한국의 전통적 주거공간에는 골방, 웃방(머릿방), 도장(곳간), 고방(庫房), 광, 반침(半寢), 벽장(壁欌) 과 같이 건물의 구조와 관련된 수장공간과 장(欌), (籠), 궤(櫃), 반닫이 등과 같은 여러 수납 가구 들이 있다. 이러한 수납용 공간 및 가구들은 의식 주가 점차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여러 논의를 통해 변화의 과정을 거쳐 왔다. 한국은 전통가옥에서 현 대식 주택인 아파트까지 가히 주거 혁명이라 불릴 만한 커다란 변화들을 짧은 시간에 겪어왔으며 이 러한 변화에 적응하며 새로운 삶의 모습들이 나타 났다.

이 연구는 근대 이후 한국의 주거형태의 추이에

1서울대학교 디자인역사문화전공, 2서울대학교 디자인학부

A Study on the Modern History and the Problematic issues of Built-in Furniture in Korea

- from the mid 1930’s to mid 1990’s -

Hyesung Kang

1

, Minsoo Kim

†,2

1Department of Design History and Culture, Seoul National University, Seoul 08826, Korea

2Division of Design, Seoul National University, Seoul 08826, Korea  

Abstract: The development of human civilization has been accompanied by a corresponding de- velopment of storage facilities. In particular, the storage of residential spaces not only performs the storage management function for personal property but also is considered an important pre- requisite for a comfortable life. While examining the history of the transformation of built-in furniture, this study emphasizes the social and cultural implications of Korean residences.

Therefore, We attempt to uncover the Korean characteristics that can be discovered in the transformation of storage furniture according to the changes that occurred in Korean residential forms following the modern era and to question the problematic issues of the built-in furniture in Korea.

Keywords: storage, built-in furniture, design, industrialization, apart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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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른 수납 가구의 변화 속에서 발견되는 한국적 특성과 그것의 주거 문화사적 의미를 밝히고 이에 따른 여러 현안을 논의하고자 한다. 붙박이장은 현 대 한국인의 일상에 비교적 최근에서야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전통 주거의 반침 및 벽장과 같은 수장공간과 수납 가구 중 가 장 중요하게 여겨온 장(欌)이 현재의 붙박이 가구 의 개념과 연결되는 지점을 이해하는 것은 한국인 의 일상생활과 주거 문화의 특성에 직결되는 핵심 적 문제이다. 따라서 이 연구는 전통적 수납방식이 변화 과정을 거쳐 현재에 정착되기까지 그 흐름을

‘붙박이 가구’를 중심으로 고찰하고 그에 따른 주 요 문제와 과제를 분석하고자 한다.

1.2. 연구범위 및 방법

연구의 시기적 범위는 주거 근대화가 구체적으 로 논의 및 실행된 1930년대부터 환경부가 공동주 택 붙박이장 공간확보를 권장함으로써 현대적 붙 박이장의 모습으로 자리 잡는 1990년대 후반까지 로 한정한다. 연구의 방법은 일간지 및 잡지와 같 1차 자료를 중심으로 활용하였으며 이는 붙박 이 가구의 변천사라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순차적 서술이 신문기사의 매체적 특성과 부합하는 부분 이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산업화 시기의 도래 이후 붙박이장이라는 용어 가 1960년대에 출현하였고 1970년대 중반부터 수 장 공간 및 수납 가구에 대한 여러 연구가 발표되 기 시작했다. 연구를 진행하며 이러한 전통공간과 가구, 주거실태, 한국의 수납 및 수장 공간에 관한 다수의 문헌 자료 역시 참조하였다. 연구의 대상으

로는 미시적 관점에서 주거문화의 일상적인 부분 을 구성하는 물질적 소재인 붙박이가구를 주목하 고 그 변천 과정을 통해 본 배경과 쟁점을 조명하 고자 한다.

2. 붙박이 가구의 시대적 변천

2.1. 일제강점기의 반침과 벽장

1920-30년대는 식민지 조선의 일부 계층에서 주 택개량 운동이 전개되던 시기였다. 1930년대 조선 에서 주로 쓰였던 대표적 수납 가구 및 수장 공간 은 이불장, 양복장과 다락, 반침, 광 등이 있었는데 이 중에서도 반침 개량에 대한 신문기사들이 유독 눈에 띈다. 30년대 중반에서 후반까지 반침의 필요 성을 역설하고 재래식 반침을 개량해서 편리하게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글들이 종종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1936년 5월 5일자 동아일보 기사는 근래 조선 집 안방에 다락 하나밖에 정리할 곳이 없어 방에 이것저것 늘어놓고 살게 되었고, 다락과 머릿장(單 層欌)에 이불을 올려 사용하기 매우 불편한 점을 들고 있다. 이에 기존의 반침이 선반이 없어 정리 효율성이 떨어지므로 이를 고안한 개조안을 각각 A, B, C안으로 제시하고 있다(Fig. 1). A반침은 삼단 구조로 맨 아랫단엔 서랍을 만들고 맨 윗단 엔 여름 모기장 등 사용빈도 수가 낮은 계절 용품 들을 넣고 중간엔 매일 사용하는 이불을 쉽게 넣 을 수 있는 구조로 구상하였다. 삼단 구조로 선반 을 넣은 B반침의 특이점은 고리짝을 사용하여 물 건을 수납할 수 있도록 한 점으로 현대의 선반장

Fig. 1. Suggestion for Improvement of the Closet, A, B, C. 1936.5.5. Dong-A Il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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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수납 바구니 조합의 수납방식으로 보인다. C반 침은 양복장을 구매하기보다 반침을 사용하여 양 복장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역시 삼 단구조에 중간에 옷을 걸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세 가지 종류의 제시안은 반침이 그 성질과 용도에 따라 수납의 기능이 분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 는 사례이다. 세 가지 종류의 반침은 각각 따로 소 개되고 있으며 이는 반침의 크기가 작았던 당시의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한옥 구조에 따라 설계된 반침은 보통 2자 5치에서 3자를 넘지 않았 다. 각 기능에 맞는 가구를 구매하기보다 기존의 벽장을 이용하여 수납의 기능을 강화한 점은 소비 를 줄이고 공간을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 것은 재래식 반침이 가진 단점들을 좀 더 편리하 게 사용하기 위한 개선 과정으로도 볼 수 있으며 이 시기에 일종의 현대식 붙박이장의 기초가 되는 구조들이 반침에 적용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반침 개량안이 그 당시 지어지 던 개량한옥에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30년대의 반침 개량안 A안, B안, C안 은 각각 현대의 이불장, 선반장, 옷장과의 유사성 이 인식되며 후일 현대 주택의 벽체 크기에 조절 되는 조합형 붙박이장으로 진화하게 된다.

이후 1938년 12월 3일자 동아일보에 옛날 조선 식 반침은 폭이 좁고 통으로 되어 있어 위쪽 공간 활용이 어렵고 일본식 반침은 가운데에 한 단만 있어서 거북하니 설합(서랍)과 단을 만들어 편리하 게 사용하자는 언급을 마지막으로 반침에 대한 기 사는 한동안 등장하지 않는다.

한편 반침과는 다른 종류의 수납공간으로 쓰였 ‘벽장’이라는 용어는 한식 가옥이 쇠퇴하면서 점차 반침과 혼동되어 사용되었다. 이후 반침이라 는 용어 역시 붙박이장이라는 용어로 점차 대체되 거나 혼용되어 드문드문 쓰이다가 1998년 2월 9일 자 매일경제 기사에서 출현한 것을 마지막으로 신 문 지상에서 사라졌다.

2.2. 해방 이후의 장롱 문화

반침은 1957년 4월 8일자 경향신문에 실내 장 식에 대한 건축가 김중업의 글로 다시 그 존재를 드러낸다. 이 기사는 한국의 방을 큰돈 들이지 않 고 개량할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을 제안하는데 그 중 첫 번째가 방마다 반침(closet)을 만들어 부피가 큰 가구들을 방에 놓아두지 않으면서 절약할 방법 을 꼽고 있다. 이처럼 해방 이후의 주택개량 문제 에 있어서도 빠지지 않고 지속해서 등장하는 부분 이 바로 반침에 대한 언급이다. 대한가정학회나 건 축학회 등에서 발표하는 연구나 좌담회에서도 주 택개량 사항에 중요 항목으로 반침이 항상 포함되 어 있었다. 한국 전쟁 후 열악한 주거환경 속에서 대표적 외국의 원조인 운크라(UNKRA) 자금으로 지어진 양식 주택의 현관 및 방들에 붙박이장이 마련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Fig. 2). 그러나 당 시 지어지던 많은 주택들은 반침을 고려하지 않고 지어진 집 장사 집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도 가 구점에서 구매하는 옷장이나 이불장 양복장 같은 가구들보다 반침의 사용을 권장하고 있는 기사들 을 볼 수 있다. 잘 지어진 주택에는 주택 크기에

Fig. 2. Choseon Housing Administration’s UNKRA Housing P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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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수납 비율이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 강조되 기도 하였다. 이는 일반 주택뿐 아니라 당시 지어 지기 시작하던 아파트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1962 년 근대식 아파트로 큰 화제를 모았던 마포아파트 에도 침실에 반침을 설치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 ‘붙박이장’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출현하기 시작한다. 그 직전에 ‘고정식 가구’라는 표현도 등장하는데 고정식 가구는 문자 그대로 주택에 고정되어 설비되는 개념의 가구를 의미하며 이는 붙박이 가구의 원의미에 좀 더 가 까운 것이다(Fig. 3). 본래 붙박이 가구의 기본적 의미는 건축적 개념과 관계된 것으로 건물 구조에 서 처음 설계될 때 고려되어 건물 벽체를 최대한 활용하며 건축공간과의 조화를 이루는 ‘고정식 가 구’이다. 반면 이동식 가구는 기성품으로 구매할 수 있는 제품으로서의 가구를 지칭하였다. 이후 고 정식 가구는 붙박이 가구라는 표현으로 주로 사용 되었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이동식 가구 의 대비 개념은 자연스레 붙박이 가구라는 용어로 자리 잡게 된다.

1960년대는 주택 대다수가 재래 한옥 주택, 개 량 한옥, 한양 절충식 주택, 일본식 주택, 문화주택 과 같은 양식 주택, 후생주택, ICA 주택(민영주택) 등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었을 뿐 아니라 아파트 시대의 서막이 열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60년대부 터는 사치품으로 여겨지던 포마이카 가구가 인기 를 끌게 되며 중반 이후 급속히 대중화된다. 그러 나 1966년 4월 8일자 매일경제나 1969년 3월 10 일자 경향신문 기사를 보면 주택 내부에는 포마이 카 장이나 티크 장보다 오히려 붙박이로 된 가구 를 권장하고 있다. 특히 1968년 9월 24일자 매일

. 그러나 지속해서 붙박이장에 대한 편리함과 실 용성 및 설치를 강조하는 기사가 출현함에도 여전 히 붙박이장 설치는 활성화되지 않았고 장롱은 혼 수에서 제외될 수 없는 중요한 품목이었다.

1970년대는 다수의 재래식 한옥이 국민주택으 로 개량되었으며 아파트와 단독주택의 장점을 결 합한 연립주택이 많이 보급된 시기이기도 하다. 그 러나 이러한 공영주택의 단점들은 여전히 개량할 구석이 많이 남아있었기에 주택 개량에 관한 기사 는 지속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특히 주택개량에 있 어 불필요하고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가구를 줄이 고 붙박이장으로 대체하는 것이 사치를 줄이는 것 으로 생각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1973년 6월 개정 하여 발효된 가정의례준칙을 토대로 보건사회부에 서 새마을부녀회와 여러 여성단체를 통하여 대중 을 계몽하려던 정부의 의도가 크게 작용한 것이다.

물자절약 운동의 일환으로 소비생활 합리화 추진 위원회가 구성되고 소비생활 합리화 경진대회가 개최되는 한편 대중에게는 각종 신문과 잡지에 일 상생활에서의 소비 절약 방법이 선도된다. 연장 선 상에서 당시 여성들에게 부여된 ‘알뜰한 주부’라는 칭호는 살림을 잘하는 능력 있는 여성으로 묘사되 며 검소함은 여성이 가져야 할 최고의 미덕이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집을 지을 때 붙박이장 을 설치하는 것이 적극적으로 권장된다.

1970년대 초반부터는 혼수 품목으로 여겨지던 티크나 자개 장식 장롱, 찬장 응접세트 등에서 점 차 소형화, 미니화되는 가구 구매 추세가 나타난 . 또한, 좁은 방을 독식하는 대형가구들이 굳이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서 고려해 보자는 의견이 대 거 출현하게 된다. 가구의 소형화는 조립식 가구와 붙박이장의 구입과 설치를 자연스레 활성화하는

1959.6.20. Dong-A Il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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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러한 사 회적 분위기를 가속하게 되는 강력한 견인요소는 새로운 주택 건설의 형태로 급속도로 보급되기 시 작한 아파트 건설이었다. 새로 신축되는 아파트에 는 붙박이 가구가 설치되기 시작하였고 아파트에 입주한 사람들의 실내 장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 다. 이는 창고의 기능을 겸했던 지하실, 다락방 같 은 기능을 일부 가졌던 주택보다 물건을 수납할 수 있는 공간 설계가 상대적으로 많이 부족한 아 파트의 사공간(死空間)을 붙박이장 등 수납공간으 로 설계하여 수납의 어려움을 해소하려는 움직임 으로 연결되었다. 당시 가정에서 많이 이용되었던 라디에이터를 가리기 위한 나무커버 제작시 양옆 의 빈공간까지 붙박이장으로 설계하여 공간을 활 용하여 물건을 수납하거나 장식물을 진열함으로써 인테리어 효과를 얻는 새로운 사례가 소개되기도 하였다(Fig. 4).

1970년대 출현하는 ‘아파트 가구’는 곧이어 1980년대 아파트 건설 붐과 함께 보편화한다. 이 러한 ‘아파트 가구’는 아파트 주택내부에 설치되는 가구로서 거실장, 신발장, 장식장, 부엌가구, 실내

창고 등에 쓰이는 붙박이 및 이동 가구의 개념을 포함한다.

초기의 아파트 가구는 거실 장을 중심으로 유행 을 탄 것으로 보인다. 60년대에 소파와 함께 응접세 트로 판매되던 장식장이 70년대부터는 아파트 가구 의 주인공으로 전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Fig.

5). 1981년 2월 16일자 매일경제 기사는 1972년 11 월 삼익주택의 서울 용산구 이촌동 소재 렉스 맨션 이 아파트 가구로서 거실장을 설치하여 분양한 첫 예로 소개하고 있다. 이 기사만으로 분양시 거실장 을 설치 판매한 아파트의 효시를 렉스 맨션이라 확 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70년대 초반부터 견본주 택을 가지고 분양되는 중산층 및 고급 아파트 도면 들은 거실장이 설치되기 시작해 점차 보편화 되는 현상을 보여준다(Fig. 6). 60년대 시민아파트 및 주 택에 거주자가 거실장을 설치한 다수의 사례가 발 견되었고, 그러한 소비자 수요가 70년대 아파트 시 장에 반영되었을 거라 추론된다(Fig. 7).

Fig. 4. Cupboard for Radiator. 1986.1.17. Kyunghyang Shinmun.

Fig. 5. Midopa Furniture. 1964.4. Yeowon (left).

Apartment Furniture. 1971.12.3. Dong-A Ilbo (right).

Fig. 6. Samik Hangang Tower Mansion. 1972.

12.04. Dong-A Ilbo.

Fig. 7. Cheongwoon Civic Apartments. 1971.2.2.

Dong-A Il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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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위한 수단으로 아파트 특판 산업의 성장과 함께 점차 확대된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삼익, 리바트, 선퍼니쳐, 보르네오, 동서, 그로리아, 상일, 우아미 등과 같은 큰 기업들이 가구 분야에 진출하 여 브랜드화되고 소비자들은 아파트 생활에 맞는 여러 대량생산 제품들을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1980년대에도 여전히 장롱 문화는 그 기세를 굽 힐 줄을 몰랐다. 장롱사용이 기능적인 부분 이상으 로 실내 장식적인 부분에 큰 의미가 있었던 것은 이 시기 중장년층 이상에서 자개장이 크게 유행했 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1982년과 1988년의 아 파트 수납공간에 대한 연구는 안방(제1침실)에 붙 박이장을 원하지 않는 주부가 많은데 그 이유가 혼례용 가구로 마련된 장롱을 놓아두기 위해서라 고 밝힌다(곽 1983). 그러나 익숙한 관습과 혼수 문화도 한몫했겠지만 붙박이장이 안정적으로 주거 에 정착되지 못했기 때문에 장롱문화가 지속된 것 은 분명해 보인다. 80년대 붙박이장 보급률이 여전 히 높지 못한 데다 아파트에 설치된 붙박이장이 부실하게 제작되어 아예 없애거나 다시 개조하는 경우가 많았다(이, 박 1987). 결국 80년대에는 붙 박이장이 장롱을 대체하여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주택에 뿌리내리지 못했다. 1979년 보건사회부는 신축주택에 고정가구를 설치를 장려하기 위해 주 택건설 기준에 관한 규칙을 신설하게 하는 정책을 발표한다. 그러나 곧이어 발표된 ‘표준 혼수모형’

에 옷장이 포함되어 있어 이것이 근시안적 정책임 을 스스로 드러내며 혼란을 주었다. 이후 출판협회 나 여성건축가협회에서 붙박이 가구 설치를 건의 하는 일련의 시도들이 있었다. 그러나 환경부가 신 축 공동주택 붙박이장 공간확보 의무화를 법제화 시키려 한 것은 1998년 11월이 되어서였고 결국

3. 1990년대 이후의 한국식 붙박이 가구

3.1. 한국식 붙박이 가구의 형성 과정

1990년대는 비로소 붙박이장에 대한 소비자 수 요와 기업의 대응에 따른 관련 기사가 매우 증가 하는 시기이다. 아파트나 연립주택에서 보다 공간 을 잘 활용하기 위해 베란다, 다용도실, 현관, 욕실 등과 같은 공간에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선반을 제작하여 여러 물건을 보관할 수 있게 하려는 팁 들이 대거 출현하는 것은 아파트 평면이 가진 한 계에 대한 거주자들의 적응으로 볼 수 있다. 초기 에 아파트 거주자들이 직면한 수납난(難)에 대한 점진적 적응의 수준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아파트 거주자들에게는 목수에게 필요한 수납 가구를 주 문 시공하거나 혹은 DIY로 직접 간단히 제작하는 정도였다.

1987년 10월에 주택업체 ‘청구’에서 처음 선보 인 이후 다수 주택업체에서 활용한 주택 모니터제 도는 아파트 문화의 확산에 따른 소비자의 적극적 인 아파트 적응화와 기업의 마케팅 목표가 잘 맞 아떨어진 사례로서 아파트 거주자들의 불편사항들 을 아파트 상품 설계에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붙 박이장 내부 구성을 소비자 의견에 귀 기울여 선 반 높이를 조절하거나 옷걸이 봉 설치 위치를 조 정한 것이 그것이다. 1993년부터 주택공사가 아파 트 분양에서는 처음으로 주공아파트에서 안방 붙 박이장, 접을 수 있는 식탁, 다용도 선반, 세탁기 위 선반 등에 선택사양제를 적용한 것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소형아파트에서 수납에 대 한 부분을 고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Fig. 8). 그러 나 이러한 자투리 공간에 대한 활용과 수납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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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비자 요구에의 대응은 업체 간 판매 차별화 에 따른 경쟁과 더불어 붙박이장 설치의 대형화와 고급화를 불러왔다. 이것은 중대형 평수와 고급 아 파트에 드레스 룸과 같은 여분의 수납공간을 설계 하는 것이 보편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선택사양 제는 80년대 거실 붙박이 장식장이 도태된 것과 비슷한 이유로 활성화되지 못했다. 70년대 초반 아 파트 거실장이 처음 고급 단독주택과 맨션에 설치 된 이래로 붙박이장 설치의 확대는 주로 중대형 평수의 주택 고급화를 지향하는 수단으로 발전하 였다. 결국 선택사양제는 실효성을 의심받았고 오 히려 분양가를 상승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 나 한국의 대표적 주거양식이 된 아파트와 그 거 주자들의 증가는 90년대 중후반 붙박이 가구 시장 의 새로운 수요를 만든다.

1996년 1월 9일자 동아일보는 붙박이장 전문 시공업체들에 대한 소개와 함께 좁은 공간을 최대 한 활용할 수 있는 붙박이장에 대한 수요가 높아 지고 있음을 조명한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소 비자들이 붙박이장을 설치하는 데 있어 주문 가구 전문 업체나 인테리어 사무실 등에 의뢰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점차 보급형 붙박이장 들이 개발되어 기존에 자당 40만-50만 원에 시공 되던 붙박이장의 절반 가격에 구매 가능한 상품도 출시되기 시작한다. 시스템 가구와 붙박이 시장에 대한 소비자 수요에 대응하여 대형가구 업체 역시 주문 가구 시장, 좀 더 구체적으로는 이동식 붙박 이 가구(빌트인 가구)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부엌 가구 전문업체였던 한샘은 이러한 조류에 맞춰 1997년에 인테리어 사업부를 출범하였다. 90년대

중반은 아파트 내장재 선택사양이 모든 아파트로 확대되면서 인테리어 시장 특수로 여러 가구업체 가 종합 인테리어 사업부를 발족하기 시작한 기점 이다. 이후 가구회사들이 빌트인 전담팀을 만들고 주문 가구를 기성상품으로 판매하기 위한 상품개 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빌트인 시장은 크게 확대된 . 그러나 이러한 가구 업체들에서 판매되는 붙박 이 수납장은 건축물 신축 시 설치된 가구들이 아 닌 필요하면 분해하여 재시공할 수 있도록 설계되 었고 판매 시 이 점은 한국 소비자들에게 큰 장점 으로 부각되었다. 후일 가구 시장에서 붙박이장은 이동식 옷장의 수요를 크게 넘어서게 되었지만 엄 밀한 의미에서 한국의 붙박이장은 붙박이장의 모 습을 한 이동식 장의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 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붙박이 가구 가 가리키는 원의미의 붙박이장과 기성 제품으로 서의 이동식 붙박이장의 개념이 일반 소비자들에 게 혼용되어 사용되기에 이른다.

3.2. 한국식 붙박이 가구의 배경과 현안

‘한국식 붙박이 가구’가 형성되는 배경과 원인은 복합적이다. 1989년 5월 12일자 한겨레신문은 이 원인을 붙박이장을 설치하지 못하는 것이 ‘남이 쓰 던 것을 꺼리고 내 집, 내 농을 선호하는 것’이라 고 단순히 설명하지만 완전히 납득하기에 무리가 있다. 오히려 한국 소비자들이 ‘이동식 붙박이 옷 ’을 선택하게 되는 과정은 한국 주택시장이 가진 한계와 크게 관련이 있으리라 추론된다. 1970년대 이사 풍경이 담긴 1970년 6월 23일자 동아일보는 이사 시 집에 있는 물건들을 모두 싣고 가는 관습

Fig. 8. Korea National Housing Corporation. Ju-Gong Apartments. 1993.2.18. Maeil Kyung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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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리나라 주택이 붙박이 가구로 되어 있지 않 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사 때마다 장롱을 옮 기며 장롱이 상하고 곤돌라로 달아 올리는 불편을 해소해야 한다’는 1981년 4월 16일자 동아일보와 같은 유의 기사가 지속해서 등장할만큼 이러한 이 사 풍습은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그리고 점 차적으로 아예 기존의 가구는 버리고 이사 간 아 파트에 맞춰 가구를 재구매하는 신풍속도가 펼쳐 졌다.

이는 1980년대 이후 아파트가 주거의 개념보다 부동산으로서 투자 가치의 성격이 강조됨에 따라 소위 아파트를 ‘갈아타는’ 현상이 심화되었기 때문 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머물렀다 가는 ‘경유 주택’

에 굳이 투자를 하지 않으려는 심리적인 이유가 존재한다. 게다가 기존의 터를 허물고 첨단 시설을 탑재하여 말끔하게 새로 지어진 아파트와 오랜 시 간 함께한 손때 묻은 가구를 조합하는 것이 일반 소비자들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신규로 분양되 는 아파트에 설치되어 있는 빌트인 가구와 마감재 에 어울리는 모던한 인테리어를 위하여 가구 패키 지 소비문화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도 부분적으로 는 이런 연유에서다. 혼수가구는 따로 사는 것보다 패키지로 구입하는 것이 더 저렴할 뿐 아니라 신 혼집의 전체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마케팅을 구 사하는 업체들의 판매 전략은 성공적이었다(Fig.

9). 이러한 경향은 급속한 사회변동과 경제발전으 로 인한 물질문화의 팽창에 따른 문화지체현상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의 주택에 붙박이 문화가 오랜 시간 보편화

택 입주자격은 세대주가 월평균 소득이 전년도 도 시근로자 평균소득 이하인 무주택 서민이라는 조 건을 충족해야만 한다. 그 양과 질에 있어 한국의 임대주택이 함의하는 빈곤함은 현재까지도 사회적 계층 불평등 심화 문제를 조장하고 있다. 반면 네 덜란드, 덴마크, 독일, 스웨덴 등에서 적용하고 있 ‘다원적 임대주택’은 국민 누구라도 원하기만 한다면 입주가 가능하다. 부동산이 재산 증식의 일 반적 수단이 되지 않으면서 임대주택의 공급량과 그 질에서도 굳이 집을 살 필요를 못 느낄 수준이 라면 집을 소유하려는 욕망은 크게 줄어들게 된다.

한국의 특수한 주거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한 연구는 한국만의 독특한 임대 방식인 전세제도가 짧은 계약 기간 설정과 주택소유자의 일방적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전세 거주자의 주거 안 정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제도라 주장한다(신 2011).

원칙적으로 세입자는 퇴거 시 주택을 들어왔을 때 의 상태로 원상복구 해야만 하기 때문에 임대주택 에 주인의 동의 없이 벽체 손상을 유발할 수 있는 붙박이 가구류를 설치하기 어렵다. 또한, 전세제도 를 통해 얻는 목돈이 다시 한국의 부동산 투기 비 율을 높이면서 실거주 목적으로 주택을 구입하기 보다 차익을 얻기 위한 투자 수단으로써 활용되는 것도 양질의 붙박이 가구 설치를 가로막는 장애 요인이라 추정된다. 이러한 한국의 특수한 아파트 문화와 주거 자본주의가 가져온 잦은 이사는 2000 년대 이후 녹다운 방식의 조립식 붙박이장과 더불 어 대형 가구 유통 브랜드 회사의 발전을 담보해 주었다. 전세 시장의 활성화와 잦은 이사로 인해 붙박이장이나 옷장보다 행거를 선호하는 모습도 요즘 많이 관찰되는 추세이다.

기성품의 특성을 가진 한국식 붙박이 가구는 다

Fig. 9. Samik Furniture’s Wedding Package. 1995.

4.19. Dong-A Ilbo.

(9)

양한 형태의 주택에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 문제 를 제기한다. 가구회사에서는 제품개발 과정의 초 기 단계부터 제품을 획일화시켜서 팔기 쉬운 아파 트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1991년도 10월 8일자 조선일보의 동서가구 광고는 아파트에 살고 있는 고객을 대상으로 한 광고 카피로 규격화되지 못한 사람들에게 일종의 소외감과 모방심리를 심어주고 있다(Fig. 10). 이는 천고가 낮은 지어진지 오래된 아파트, 다세대, 연립 주택과 같은 빌라, 일반 단독 주택 혹은 고급주택의 유형에서 주로 보이는 평균 이상의 천고를 가지는 주택 거주자들을 소외시키 고 시장 생태계에서 제품을 획일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식 붙박이 가구의 제품 규격화 및 표준화 논의는 기업 생산

변화에 따라 진화해 가는 붙박이 가구의 형태와 현안들을 고찰하고자 했다.

2장에서는 1920-30년대의 전통공간에서 반침과 벽장에 대한 개량의 필요성으로 야기된 초기 근대 화 과정과 해방 이후의 전개 과정을 살펴보았다.

근대 주택개량 운동의 일환으로 진행된 개량 과정 을 통해 당시 지식인 계층 및 일반 대중이 일식 반 침과의 차이점을 찾으면서 조선 반침의 정체성을 찾아 나가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다. 이는 당시 제시된 개량안과 유사성을 가진 현대 붙박이장이 완전한 서구적 산물이 아닌 전통 계승 및 발전을 거치는 과도기적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반침이란 용어는 점차 소멸하지만 건축 설계 시 벽체에 설치되는 원 개념의 붙박이장으로서 그 존재가 계승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대량생산되어 제품의 형식으로 판매되는 이동식 붙박이(고정, 빌트인) 가구 역시 붙박이장으로 불리며 혼용된다.

1960년대를 지나면서 붙박이장이라는 용어가 고착화되며 산업화 시기 아파트 가구로서 그 입지 를 넓혀 나가게 된다. 그러나 혼수에 대한 관습적 장롱 문화가 그 위력을 잃게 되기까지 수십 년의 시간이 걸렸다. 한국이 근대식 주택에 붙박이 문화 를 오래도록 정착시키지 못한 원인은 인습적 요인 뿐 아니라 한국의 임대 주택 현실, 정부 정책, 가 구 산업 및 관련 업계의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3장에서는 1990년대 들어 증가하는 붙박이 시 장에 대한 수요에 따른 한국식 붙박이장인 이동식 붙박이 가구(빌트인 가구)가 탄생하게 된 배경과 원인을 고찰한다. 전통 주거 공간에서 잃어버린 반 , 벽장, 광, 다락과 같은 공간들은 새로운 근대식 주거공간인 아파트에 맞춰 진화되었으며 그 결과

Fig. 10. Dongseo Furniture’s APT Furniture. 1991.

10.8. Chosun Ilbo.

(10)

지게 하였다. 이제는 아파트 분양 시 대부분의 안 방에 드레스룸이 구성되며 실마다 붙박이장이 매 립된 곳이 많으며 작은 공간으로 상대적으로 소홀 했던 현관과 다용도실에는 다목적 수납 붙박이장, 주방에는 기본 수납장에서 나아가 팬트리 공간에 수납 가구를 설치하고 있다. 욕실에는 기존의 간편 한 것에서 좀 더 진화한 수납장이 적용된다. 더 나 아가 실별로 수납공간이 확대되고 그 기능이 강화 되고 있을 뿐 아니라 전이공간에도 여러 방식으로 수납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제 반세기의 연륜을 가진 아파트 관련 산업은 특화된 수납공간의 세분 화와 차별화로 주택 구매자를 매혹한다. 붙박이장 의 확산과 더불어 조립식 가구, 이동식 가구 등의 수요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또한, 1인 가구, 소형아파트, 이사가 잦은 오피스텔, 원룸, 땅콩 주 택과 같은 다양한 주택형태에 알맞은 다양한 가구 수요가 중저가 해외 가구 브랜드들의 국내 유입과 함께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기존의 아파트 중심 의 제품 개발에서 벗어난 본질적인 기업의 고민의 필요한 시점이다. 점차 혼수 패키지나 가구에 불필 요한 소비를 줄이고 좀 더 경쟁력 있는 상품을 선 택하려는 젊은 소비자층의 실천이 반영되고 있다.

치솟아 오른 부동산 가격으로 인해 소유하지 못할 바에는 현재의 거주에서 즐거움을 찾으려는 달관 세대의 출현도 가구 및 인테리어 시장에 영향을

지속 가능성에 대한 문제는 향후 주거문화의 중요 한 쟁점이며 이와 관련한 이론과 실무에 대한 학 계와 산업계의 관심이 필연적이다.

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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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3일 매일 경제, 임대주택 다시 보기 ⑧해외 공공임대주택 유형 및 재원 조달 구조 http://m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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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

Fig. 4. Cupboard for Radiator. 1986.1.17. Kyunghyang Shinmun.

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