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일_2019.12.10 심사기간_2020.01.01-14 게재확정일_2020.02.07
폭력의 집단화와 주체성의 회복 – 연구자의 작품을 중심으로 –
Collectiveness of Violence and Regaining of Self-identity - focused on researcher works -
김미소_경북대학교 교육대학원 / 이정은(교신저자)_경북대학교 미술학과 교수
Kim, Mi So_The master's course in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 Lee, Jung Eun(Corresponding author)_Department of Fine Art, College of music and Visual Arts,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차례 1. 서론
1.1. 연구 필요성 및 목적 1.2. 연구 방법
2. 집단적 폭력성의 구조와 심리적 작용
2.1. 르네 지라르(René Girard)의 폭력의 메커니즘
2.2.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대중성과 행위의 회복
3. 해체와 복원을 통한 주체성 회복 3.1. 집단화와 주체성의 회복 3.1.1. 전염과 전이
3.1.2. 주체적 행위 3.2. 시각적 충돌과 복원 3.2.1. 색채 이미지 3.2.2. 신체의 해체와 변주
4. 결론
참고문헌
폭력의 집단화와 주체성의 회복 – 연구자의 작품을 중심으로 –
Collectiveness of Violence and Regaining of Self-identity - focused on researcher works -
김미소_경북대학교 교육대학원 / 이정은(교신저자)_경북대학교 미술학과 교수
Kim, Mi So_The master's course in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 Lee, Jung Eun(Corresponding author)_Department of Fine Art, College of music and Visual Arts,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요약 본 논문은 비폭력적인 사회를 위한 주체성과 공동체성을 주제로 한 연구자의 작품의 의미와 표현방법을 분석한
것이다.
현재의 다원적 시각과 대중사회의 도래는 오늘날 우리에게 새로운 개인성과 공동체성을 요구한다. 집단에서의 개인은 사고나 행위의 전염성으로 인해 판단력의 상실과 획일화를 겪는다. 이는 주체성을 잃게 하고, 무비판적 으로 집단의 가치나 타인의 의견에 동조, 모방하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폭력적 행위에 가담하게 한다. 공동체 내부에서 폭력이 모방되는 작용원리인 지라르의 폭력의 메커니즘을 알아보고, 개인이 사회에 대응하기 어렵게 만드는 심리적 작용으로 한나 아렌트의 ‘행위의 무능(inability to action)’, 그 무능함에서 비롯되는 ‘악의 평범 성(banality of evil)’을 고찰하였다. 그리고 행위와 공감능력의 회복을 그들의 대안으로 모색하였다.
이러한 이론을 기반으로 ‘폭력의 집단화’와 ‘주체성의 회복’이라는 연구자의 작품의 의미와 시각화 과정을 연구 하였다. 연구자는 주체성의 회복이 필요함을 주장하며 ‘적관(適觀)’, 즉 바로보기를 통해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자 신의 주체성을 회복할 것을 작품을 통해 제언한다. 색채 이미지의 대비는 집단에 속하면서 충돌을 일으키고, 자 신을 잃어가는 개인을 상징한다. 고유색의 부분 사용은 그 산만한 충돌에서 부분적인 독립감을 부여하며 개인이 지니는 가능성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형태면에서는 해체, 변주과정을 통해 주체의 상실과 회복의 가능성을 동시에 표현하고자 하였다. 본 논문을 통해 주체성 회복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강조하고, 추후의 작업에 반영될 다양한 시각적 방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This paper is an analysis of the meaning and expression of the work of myself on the subject of self-reliance and community for a nonviolent society.
The current pluralistic perspective and the advent of mass society demand new individuality and community from us today. Individuals in groups suffer from loss of judgement and uniformity due to the infectious nature of accidents or acts. This causes people to lose self-reliance, and unconsciously sympathize with and imitate the values of the group or the opinions of others, and engage in violent acts without their knowledge. As the first step of building the structure of my thesis, I examine the French philosopher, Rene Girard’s concept of the violence mechanism that has a mimetic contagion in a society. Also, I examine the German-American philosopher, Hannah Arendt’s theory of the ‘inability to action’ that urges the ‘banality of evil’ as one’s psychological adaptation to the mass society. By analyzing her theory of politics and ethics, I try to find a way of recovering our Restore of action and empathic ability.
With the basis of the study described above, this paper explores the subject matter of my artwork concerning ‘the collectiveness of violence’ and ‘regaining self-identity’, and examines the process of visualizing it. Looking at it directly with my critical viewpoint, I strongly propose the need to recover self-identity. The contrast of color images symbolizes individuals who are in a group, causing conflicts and losing themselves. Partial use of original color is intended to give the person a sense of independence from the collisions and to represent the potential of an individual. I express the loss of self-identity and the possibility of regaining it by placing deconstructing the forms in my painting. Through my thesis, I emphasize the need and the possibility to regain self-identity and try to find various ways of visualizing them for my future work.
중심어
폭력의 집단화 폭력의 메커니즘 행위의 회복 공동체성 주체성
ABSTRACT Keyword
Collectiveness of violence Mechanism of violence Regaining of action Community spirit Self-identity
1. 서론
1.1. 연구 필요성 및 목적
오늘날의 우리사회는 기존의 체제나 관습을 낱낱이 들추어내고 고발하기에 바쁘다. 탈근대 시기부터 현재까지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는 다원주의는 근대에 이르러 부각된 ‘개인’이 라는 개념에서 주체성을 자각하게 만들었다. 근대에서의 개인은 전근대와는 다른 독립된 개념 으로 등장하는 쾌거를 거두었지만,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 즉 공동체의 유형 또한 그에 걸맞게 변화해 개인화를 상쇄시키는 역할을 했기에 집단이 우선시 되는 구조에서 존재할 수밖 에 없었다. 그러나 견고한 듯 보였던 근대의 사회체제는 인간 이성의 완전성에 대한 부인으로 집단성을 잃었다. 이후 탈근대 사회를 시작으로 인간이 이뤄놓은 공동체적 질서와 진리는 중심 을 벗어나 주변부와 소수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러한 탈 중심화는 곧 개인이 원자화되어 집단을 형성, 해체하는 대중사회의 도래와 함께 개인의 주체성 확립과 정치, 사회적 참여를 확장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개인은 매체와 집단 유형의 변화에 힘입어 비로소 전체사회에 참가할 수 있는 정치적인 역할을 기능하게 된 것이다. 각자의 직업적 영역이나 장르에서 그들 의 목소리를 내기도 하고 지극히 사적인 영역으로 분류되었던 문제들이 공적인 영역으로 넘나 들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토록 다양한 가치관과 문화, 소수와 다수, 개인성과 집단성이 맞물려
‘불확실성의 사회’라 불리는 오늘은 평화로우면서도 소란하다.
문제는 이 사회의 소란 속에 있는 여태 감춰져있던 폭력의 전형들이다. 개인이 집단속에 살아 가며 발생하는 폭력과 억압의 방출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다량의 과제를 던져주었다. 인간은 표면적으로 폭력보다 평화를 지향하는 존재이지만 그 평화가 있기까지 무수한 폭력이 토양이 되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다름에서 오는 배척심리부터 집단의 안정과 유지를 위한 희생, 혹은 사상적 폭력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러 한 폭력이 행해질 수 있었던 데에는 강력한 집단성에 따른 권위적 질서와 대중적 개인들의 복종과 동조가 있었다. 본격적인 다원사회의 도래와 변화한 개인, 집단의 유형은 우리사회가 이전과는 다른 보다 성숙한 개인성과 공동체적 성향을 띄어야 하는 의제로 인식된다. 그런 면에서 연구자의 작품을 통해 ‘폭력의 집단화’와 ‘주체성 회복’이라는 주제로 연구를 진행한 다. 예술가로서 연구자의 작품이 이 사회의 필요에 부합한 작가적 요소를 갖출 수 있도록 이론을 강화하고 작품속의 조형적 요소를 분석하여 사회적 변혁에 한 발짝 다가가는 시도를 모색하고자 한다.
1.2. 연구 방법
본 논문은 연구자의 작품인 Pathos연작을 중심으로 폭력의 집단화 경향과 그 속의 개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폭력의 집단화 이면에는 인간의 욕망에 내재된 모방성이 있다.’ 이러한 전제 하에 집단에 속해있는 개인, 욕망의 주체에 관한 고찰이 필요하다 여긴다.
따라서 본 연구의 2장에서는 폭력의 집단화에 대한 이론적 고찰을 선행할 것이다. 1절 에서는 욕망의 발생을 시작으로 그것이 공격성을 지나 집단적 폭력성을 띄는 구조를 분석했던 르네 지라르(René Girard)의 폭력의 메커니즘을 볼 것이다. 지라르의 이론은 신화, 성서를 인용하 고 있기 때문에 다소 전문적인 객관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면을 띄고 있으나 그의 메커니즘은 집단적 폭력성을 구조적으로 분석해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2절에서는 개인의 심리적 작용 을 분석하기 위해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 개념을 토대 로 상황적인 악과 이를 있게 하는 대중성, 행위의 무능을 볼 것이다.
3장에서는 연구자의 작품을 중점적으로 분석하고자한다. 1절 ‘전염과 전이’에서는 사회 - 집 단에서의 단일화과정, 폭력성의 전염을 다룬다. ‘주체적 행위’에서는 르네 지라르, 아렌트, 짐 바르도, 그리고 본 연구자의 주체성의 회복과 폭력성 완화에 대한 대안을 정리할 것이다. 2절
‘시각적 충돌과 복원’에서는 ‘폭력의 집단화’와 ‘주체성의 회복’을 어떻게 시각화 하였는가를 색과 형을 나누어 볼 것이다.
2. 집단적 폭력성의 구조와 심리적 작용 2.1. 르네 지라르(René Girard)의 폭력의 메커니즘
사회는 개인이라는 원자가 기능하며 형태를 유지한다. 또한 개인이 기능적 역할을 하게 되는 기원은 그들의 욕망에 있다. 이렇듯 플라톤 이래 철학에서 인간의 욕망은 세계를 이야기하기 이전에 전제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이 욕망에 대해 연구하는 이유는 욕망의 해방이자 인간 주체의 해방을 위한 것이다. 그렇기에 욕망의 주체가 누구인가 역시 중요한 논제로 자리 잡았 다. 르네 지라르(René Girard)의 이론의 바탕에는 ‘인간이 무언가를 욕망하는 행위의 기원에 는 타인의 욕망이 있다.’는 전제가 있다. ‘타자’에 기인한 욕망, 즉 욕망의 모방성이 그의 이론의 초석이다. 이는 욕망이 폭력의 메커니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주요한 원인이 된다.
우선 그가 이야기하는 모방의 작용을 ‘삼각형 욕망’을 통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왼쪽 <표 1>에서 나타내듯 스스로는 ‘모방의 주체’이며, 욕망하는 존재는 ‘모방 대상’, 그 대상을 욕망하 게 하는 타인은 ‘모방의 매개자(모델)’로서 이들은 삼각형의 구조를 보이고 있다. 모방의 매개 자로 인해 주체로부터 모방 대상을 원하는 욕망이 일어난다. 자신이 욕망하는 대상은 자신이 갖고 있지 않으나 타인은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라르 역시 전통적인 욕망에 대한 시선과 같이 ‘결핍’에서 욕망이 일어난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결핍과 타자 로부터 발생하는 이 욕망이 왜 공격성으로 발현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모방욕망은 매개자와의 거리에 따라 ‘외적 매개’와 ‘내적 매개’로 나누어진다.1) 외적매개는 모방 주체와 모방의 매개자의 정신적 거리가 멀기에 단순히 따라하는 모방이나 우상화에 그친 다면 내적매개는 그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모방의 매개자와의 ‘동일시’현상이 심해진다. 이 경우 매개자와 모방주체는 서로가 서로의 모방의 매개자가 된다. 이로써 둘은 경쟁자의 형태를 띠게 되고 이 대립과 경쟁구도는 심화되어 비로소 ‘공격성’을 갖게 된다. 지라르는 이를 ‘짝패 (double)’2)라고 명명했다. 짝패 속에서 각 모방의 주체들은 매개자의 욕망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여 곧 매개자의 상태가 되려한다. 그 과정에서 매개자에 보다 가까워지거나 손쉽게 능가 하기 위해 상대를 끌어내리거나 훼손하게 되는데 둘은 거울과 같은 상태이므로 결과적으로 주체인 본인이 훼손되는 결과를 맞게 된다. 이러한 매개자에 대한 집착과 공격성은 지라르의 언어로 이야기 하자면 나쁜 상호성으로 인한 ‘부정 모방’이다.
이러한 부정모방은 폭력적 갈등을 심화시키고 무수한 상호경쟁 상태를 만들게 된다. 또한 상호 경쟁에서의 폭력은 곧 보복으로 이어지며 집단은 상호보복의 상태에 빠진다. 하나의 주체가 하나의 욕망만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짝패는 양자의 문제가 아닌 집단의 문제가 된다. 그러 나 이러한 상태의 집단은 과도한 경쟁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형태를 유지할 수 없다. 이것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적 작용을 지라르는 ‘희생양 제의’라고 명명했다. 모방욕망이 무질서를 발 생시키는 폭력이었다면 희생양 제의는 집단의 질서와 안정을 위한 폭력이라고 볼 수 있다.
집단은 위기를 잠재우기 위해 그들의 폭력성을 대체할 또 다른 폭력을 필요로 한다. 이 대체폭 력을 떠 앉는 것이 ‘희생양(pharmakos)’3), 즉 인간 제물이다. 희생양은 모든 예외적인 인물들 로 신체적, 사회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 즉, 당대의 사회에서 등한시되는 약자이자 복수를 해줄 이가 없기에 상호보복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인물이다. 집단의 동의에 의해 희생양이 소멸하고 나면 이들에게 안정이 찾아온다. 그리고 또 다른 위기가 왔을 때 이 사이클을 반복하 게 된다. 이로써 집단의 안녕이 유지되는 것이다. 위와 같은 희생양 메커니즘은 일종의 사이클 을 발생시키며 위기-전체폭력(대체폭력)-희생양의 소멸-안정4)으로 이어진다.
이 전형을 지라르의 저서『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Je vois satan tomber comme l’eclair』중 ‘(티아나의)아폴로니우스의 기적’이라는 신화에 대입해 보겠다. 첫 번째 단계는 ‘위기’로 페스트의 발생으로 도시가 혼란에 빠진다. 이때 (티아나의)아폴로니우스가
1) René Girard,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파주: 한길사, 2001), pp. 49~50.
2) René Girard, 박무호 옮김, 『폭력과 성스러움 La violence et le sacré(1973)』, 민음사, 2000, pp. 236~228.
3) 고대 그리스어로 속죄양, 희생양이라 해석되며, 전염병이나 기근이 닥쳤을 때 처형하는 인간 제물을 뜻한다.
4) René Girard, 김진식 옮김,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Je vois satan tomber comme l’eclair(1999)』, 문학과 지성사, 2004, pp.47-50
모방 주체
모방 대상 모방
매개자
<표 1> 르네 지라르의 삼각형 욕망
① 위기
② 대체 폭력
③ 희생양
소멸
④ 안정
<표 2> 르네지라르의 희생양메 커니즘
등장해 도시를 치유하겠다며 거지에게 돌을 던지도록 한다. 이것이 스캔들5)의 발생이다. 사람 들은 돌을 던지기를 주저하지만 첫 번째 돌이 거지를 향하자 연이어 돌팔매질을 시작한다.
이 첫 번째의 돌로부터 폭력의 모방이 시작되었다. 즉, 두 번째 단계인 ‘대체폭력’이 시작된 것이다. 그들은 계속된 투석(投石)으로 상처 입은 거지가 마지막 힘을 짜내어 군중을 노려보자 그 거지가 악령이었음을 확인하며 제의를 마친다. 이것이 세 번째 단계인 ‘희생양의 소멸’이다.
이 과정에서 그들이 얻는 카타르시스는 네 번째 단계인 안정기, 즉 순화의 의미를 가진다.6) 이러한 폭력의 메커니즘은 희생자를 대상으로 그들의 위기를 전가하며 집단의 일체감을 부여 하는 작용이다. 지라르는 이와 같은 작용으로 문명이 탄생하고 그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본다. <예시 1> 신학철의 <한국근대사-관동대지진>에서 보이듯 이러한 집단적 만행은 역 사 속 에서도 빈번히 발발해왔다. 관동대지진으로 사회가 혼란에 빠지자 배척대상인 한국인을 문제의 근원으로 삼아 학살을 거행했던 사건 역시 대체폭력의 유형이다. 이러한 폭력의 전형은 현대의 집단경향에서도 여전히 볼 수 있다.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차이를 가진 것들을 배제, 배척하며 돈독해지는 집단현상으로, 하나의 희생양을 향해 비난과 질책을 가하는 공동체적 폭력이다. 이를테면 네트워크상에서 이뤄지는 물 타기 식의 정치활동, 집단 따돌림, 혐오의 확산 등 현재 사회적 문제로 거론되는 폭력적인 행태들이 이와 같다. 이러한 지점에서 폭력의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것은 집단적 폭력의 양산에 대항할 수 있는 분석적 안목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희생양’에 대한 정의는 약자와 소수에 대한 폭력과도 연계해 볼 수 있다 는 점에서 현 시대적 문제의식에 부합하다. 이와 같은 폭력의 집단화, 대중화 경향은 다음절에 서 한나 아렌트가 언급한 ‘악의 평범성’으로 현실적 의제로서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
2.2.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대중성과 행위의 회복
인간은 도덕과 윤리를 통해 인간다운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인류의 시작부터 꾸준히 논해왔다.
그 논의를 통해 인간은 모든 생명체 중 가장 강력하고 존엄 받을 가치가 있는 것으로 자리매김 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간이 이룩한 사회가 악(폭력)을 지향한다면 도덕적 윤리를 갖춘 원자는 사회의 악에 대항할 수 있는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악의 평범성 (banality of evil)’은 개인이 사회의 악에 대항하기 어려움을 전제하고 있다. 그녀의 저서『예 루살렘의 아이히만(Eichmann in Jerusalem :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에서 나치전 범 아돌프 아이히만(Karl Adolf Eichmann)의 재판과정을 통해 ‘악의 평범성’이라는 명제가 등장한다. 그녀는 ‘악’이 인간의 특질에 의한 것이 아니라 ‘악’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무능함과 그 무능함을 양산하는 상황에 의해 평범하게 행해질 수 있는 것이라 보았다. 이러한 시선에서 아이히만은 그의 악마적 성격 때문이 아닌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고력 결여’로 인해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이라고 정의한다.7) 그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힘 있는 자의 논리와 자신의 목적성에 부합하는 복종을 보였을 뿐, 자신의 행위를 악하다고 인식하지 않았다. 아렌트는 그의 행위를 정치적 무능력과 도덕적 무능력에 의한 악이라 정의했다.
그렇다면 아렌트가 이야기 하는 아이히만의 정치적 무능력과 도덕적 무능력은 무엇인가. 그녀 의 정치적 분석은『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에서 등장하는 행위 개념으로 부터 시작된다. 인간은 행위로써 자신을 드러내며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 세계를 넓혀 가는 것이 다.8) 이는 그녀가 이야기하는 공적영역, 즉 정치적 영역에서의 행위를 뜻한다. 이러한 행위는 말과 사유로서 관철된다. 사유는 타인을 전제한 보편적 관점을 가질 수 있는 것으로 공존과 존중에 기반을 둔 정치적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말은 타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 받으며 자신의 현상성을 확보하는 수단이다. 아이히만은 국가에 대한 복종으로 말하기의 무능
5) René Girard, 김진식 옮김,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Je vois satan tomber comme l’eclair(1999)』, 문학과 지성사, 2004, pp. 30~41. 희생양을 고발하는 자의 등장을 의미한다.
6) 앞의 책, 2004, pp.47-50.
7) Hannah Arendt, 김선욱 옮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Eichmann in Jerusalem :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 한길사, 2006, pp.391-392.
8) Hannah Arendt, 이진우 옮김, 『인간의 조건 The Human condition』, 한길사, 2017 p.264.
<예시 1> 신학철(1943~), <한 국 근 대 사 - 관 동 대 지 진 > , 121.5x200cm oil on canvas, 2012
신학철은 그의 한국근대사 연 작에서 관동대지진, 즉 한국인 학살의 충격적 만행을 기록했 다. 그는 작품으로 한국근대사 속의 부조리나 아이러니한 현 상을 전달한다.
(inability to speak)과 사유하기의 무능(inability to think) 즉, 타인의 입장을 전제한 행위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였다.9) 이와 같이 정치적 능력을 파괴당한 사람은 판단력과 소통이 부재 하기에 악에 대한 어떠한 깨우침 없이 무비판적으로 악을 행할 수 있게 된다.
위와 같은 대상은 대중의 특성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José Ortega y Gasse)는 저서『대중의 봉기 La rebelión de las masas』에서 현대 사회의 대중의 출현을 하나 의 재앙으로 표현하고 있다. 대중의 주요특징은 고립으로 인한 정상적 사회관계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과 사적영역의 풍요만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대중은 동일성의 범주 안으로 모든 것을 획일화 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 아렌트 역시 그녀의 저서『전체주의의 기원(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에서 개인의 완전한 원자화로 인해 정상적 사회관계가 결여 된 것을 대중의 특징이라고 보며, 평준화와 순응주의가 대중성에서 야기됨을 문제시한 다.10) <예시 2> 앙소르의 <Self-Portrait with Masks>에서 역시 당시 사회에서 대중의 출현과 더불어 문제시 되었던 인간의 이중성과 소란에 대해 풍자하고 있다. 이와 같은 대 중적 특징을 적절히 보완하고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그녀가 말하는 행위의 회복인 것이다.
그녀의 도덕적 분석으로는 공감능력의 결여를 들 수 있다. 아이히만의 경우 사유와 말하기의 무능으로 이미 타인의 입장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파괴당한 상태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과정을 거쳐 공감능력이 파괴되는 것인가. 핍립 짐바르도(Pillip George Zimbardo)는
『Lucifer Effect』에서 그의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Stanford Prison experiment)’을 통해 복 종, 동조, 권위의 관계를 정의하고 있다. 이들 셋은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에서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이었던 청년들이 교도소라는 공간의 수감자와 교도관이라는 역할을 통해 비도덕적 행 위를 하게 한 심리적 작용이다. 우선 ‘동조’는 정보의 필요와 규범적 필요(받아들여지기를 바 라는 욕구)에 의해 발생한다.11) 인간 개인, 즉 원자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들이 부여받은 의무를 행하며 개인보존과 함께 공동체의 기능을 유지한다. 이 과정에서 개인은 사회적 규범, 가치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통제, 조율하게 된다. 이는 동조의 행위로서 사회, 공동체에 강력한
‘권위’를 부여한다. 그 시작이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욕구에 있었기에 사회의 권위에 대한 대항은 개인에게 자신의 욕구를 부정하는 것으로 절대 행하기 어려운 것이 되는 것이다. ‘복종’
에 대해서는 밀그램(Stanley Milgram)의 복종실험12)을 통해 복종이 일어나는 두 가지 원인을 제시했다. 하나는 실험실이라는 특정 공간에서 피험자가 실험자와의 관계를 통해 형성한 구속 요인이며, 다른 하나는 피험자내부의 순응적 변화이다. 실험실에서의 힘의 논리에 따라 피험자 는 실험자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복종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고통을 가하는 피험자역시 고통을 느낀다는 것을 특이점으로 들었는데, 실험자의 잔혹한 명령과 자신 의 보편적 도덕법칙의 괴리로 괴로워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실험의 말로에 60%이상의 피험자가 최고치의 전기 충격을 가했다는 것에서 괴로움이 복종의 과정을 거치면서 가혹행위 를 할 수 있게 함을 알 수 있었다.13) 이러한 가혹행위의 이전에는 대상에 대한 ‘비인간화’14)의 과정이 있다. 타인을 무가치한 존재로 정의하며 자신의 복종과 잘못된 행위를 정당화 하는 것이다. 앞선 지라르의 '희생양 제의'에서 희생양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은 모방으로 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스캔들’의 발생으로 희생양에 대한 비인간화를 거쳤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나치의 선전물 역시 그들의 대량학살을 자국민들에게 정당화하기 위한 것으로 대상에 대한 비인간화 작용이었다. 이에 대해 짐바르도는 “나쁜 시스템은 나쁜 상황을 낳고, 나쁜 상황은 나쁜 사과를 낳고, 나쁜 사과는 나쁜 행동을 낳는다.”15) 라고 이야기 한다. 즉 지극히 평범하고
9) Hannah Arendt, 김선욱 옮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Eichmann in Jerusalem :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 한길사, 2006, p.106
10) 백승현, 「대중에서 정치적 인간으로」, 경희대학교 대학원 학위논문 2008, (Gasset, 『대중의 반역』 2005, 재인용) 11) Pillip George Zimbardo, 임지원, 이충호 옮김, 『Lucifer Effect』, 웅진지식하우스, 2007, p415
12) 밀그램(Stanley Milgram)의 복종실험은 피험자가 실험자의 명령에 따라 다른 피험자에게 전기충격을 통해 고통을 가하는 것으로 한정된 공간에서 권위자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이다.
13) 앞의 책, pp.415-422 14) 앞의 책, P,356
<예시 2> James Ensor Self-Portrait with Masks 80 x 120 cm
Oil on canvas 1899 앙소르(1860-1949)는 자신이 속한 부르주아 사회의 타락과 부패상을 비판하고, 동시대의 인간들의 이중적 내면 성찰에 주력했다. 그리고 이러한 군중 들을 괴물, 해골, 마스크 증의 도상을 통해 풍자적으로 형상 화 했다. 앙소르 본인 역시 그 이중적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작품에 등장하며 자신을 타자 화하여 주체를 부정하는 동시 에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며 현 상을 제시해냈다.
도덕적인 인간일지라도 그들 삶의 전반을 형성하는 시스템이 악을 권장한다면 개인은 심리적 작용의 일환으로 나쁜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이히만은 국가라는 시스템에 대한 복종과 소속감을 위한 동조로 인해 정치적 행위와 도덕적 감수성의 파괴로 악을 행하게 된 것이다. 아이히만과 같이 전체주의의 상황에 놓여있지 않더라도 공동세계에 대한 관심이 없는 대중적 성향과 무리 짓기에 의한 동조, 복종의 행위는 ‘무세계성’16)으로 결집된 동시대의 공동 체와 결부되는 지점들이 있다. 이와 같은 작용으로 인해 우리는 아주 평범하게 폭력을 행하고, 평범한 사람들로 부터 폭력을 겪게 되는 것이다.
아렌트와 짐바르도는 공통적으로 강력한 집단 아래에서의 개인의 연약함과 다수의 가치에 휩 쓸리는 주체 없는 집단적 폭력성의 위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아렌트는 앞서 말한 대로 정치적 행위(말, 사유)와 도덕적 감수성 회복에서 해결책을 찾는다. 짐바르도의 경우 조금 더 세분화된 전략을 제시하는데 그 핵심을 ‘3S’ 라고 명명하고, 악한 상황에 맞서는 전략 이라고 일컫는다. 3S는 ‘자기인식(Self-awareness), 상황적 감수성(Situational sensibility), 거리의 지혜(Street smart)’ 이다. 17) 이러한 전략을 보다 쉽게 실천할 수 있도록 그는 단계적 프로그램을 제시하는데 그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그의 전략에서 주요한 지점은 개인의 자기 확보와 확신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비판적 사고를 통해 자기를 회복함과 동시에 행위에 책임을 갖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3. 해체와 복원을 통한 주체성 회복
본 장은 연구자의 작품을 통해 위와 같은 폭력의 전형과 심리적 작용에 대해 비폭력적인 집단 성의 확립 및 주체성의 회복을 위한 대안을 담는다. 이는 현 사회의 필요에 부합한 작가적 역할을 해내기 위하여 작품이론을 강화하고 적합한 조형요소로 예술적 실천을 하기 위한 연구 이다. 개인과 집단, 사회를 나누어 제작 된 작품의 특성상 군집단위가 큰 작품으로 시작해 점차적으로 좁혀 나가며 개인의 주체성에 대한 작품을 보는 순서로 제시하겠다. 3장 1절은 표현 의미, 2절은 조형요소를 중점적으로 분석할 것이다.
3.1. 집단화와 주체성의 회복 3.1.1. 전염과 전이
지라르는 그의 저서에서 단일로 존재하던 모방들이 희생양을 통해 하나의 스캔들로 묶이는 현상을 ‘모방의 회오리’라고 정의 했다. “모방과 희생양 메커니즘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 만장일 치적 집단 살해에 가담시킨다. 이때 우리는 이런 가담을 눈치 채지 못하는데 그럴수록 더 잘 속게 된다. (중략)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가 어떤 폭력과도 무관하다고 생각하고 그러므로 순결 하다고 생각한다.”19) 이는 집단속에서 행한 폭력의 행위에 개인이 어떠한 판단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는 현상을 적절히 묘사하고 있다.
15) 앞의 책, p.635
16) Hannah Arendt, 이진우 옮김, 『인간의 조건 The Human condition』, 한길사, 2017 pp.124-127 17) Pillip George Zimbardo, 임지원, 이충호 옮김, 『Lucifer Effect』, 웅진지식하우스, 2007, p.637 18) 앞의 책, p.642
19) René Girard, 김진식 옮김,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Je vois satan tomber comme l’eclair(1999)』, 문학 과 지성사, 2004,, p.60
① 실수를 인정하기 ② 비판적 사고하기 ③ 자신의 결정과 행동에 책임지기
④ 개성을 주장하기 ⑤ 정당한 권위는 존중, 부당한 권위는 반항하기
⑥ 집단에 속하되 독립성을 소중히 하기 ⑦ 틀을 감시하기 ⑧ 균형적 시간관 갖기
⑨ 안보를 위해 자유를 희생하지 않기 ⑩ 부당한 시스템에 반대하기18)
<표 4> 짐바르도의 악한 상황에 맞서는 프로그램 Pillip George Zimbardo, 『Lucifer Effect』p.637 참고
이러한 광경을 연구자의 작품 <모방>(2019) 에서는 거대한 덩어리들의 움직임으로 표현하 고 있다. 폭력이 작용하고 있는 사회를 시각화한 것으로 특수성이 없는 다수가 충돌과 폭력의 에너지를 발산하며 하나의 개체가 된 듯 보이도록 하였다. 완전하지 않은 분절된 인체를 반복 적으로 나열하며 각기 다른 개체가 그 고유성을 지키지 못하고 다른 개체를 모방하거나 영향을 받음으로서 연결되는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모방과 같은 상태 이전의 집단의 단일화는 작품 <전염과 전이>(2019)에서 볼 수 있다. 여기 에서는 일정한 사상에 전체가 얼마나 빠르고 쉽게 전염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전염 은 병의 전염이나 타인의 영향으로 인해 일련의 사상이나 행동이 물드는 것과 같이 본체의 의사와는 관련 없는 타의적 현상을 의미한다. 반면에 전이는 프로이트의 ‘전이(transference )’20)와 같은 맥락으로서 무의식적이거나 자발적인 현상을 의미한다. 양극단으로 보이는 타의 적인 전염과 자발적인 전이가 함께 집단의 단일화 작용을 있게 했다는 점을 내포하는 것이다.
사회에 타협하여 살아가야하는 개인의 삶과 절대적인 모방성은 타의적인 영향이 강하다고 보 일 수 있는 문제지만 현실을 비판적으로 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은 자발적인 경향으로 해석될 여지를 두고 있다. 획일적 사고로의 결집과 권력(다수의 동조)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은 개인의 의지의 유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에 대해 짐바르도는 ‘익명성과 탈개인화’, ‘인지부조 화와 정당화’로 인해 개인이 제도적 상황에 흡수된다고 정의한 바 있다. 익명성은 좀 더 쉽게 반사회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유도하며 탈개인화는 폭력성에 불을 붙인다. 이러한 폭력적 작용은 인지부조화를 낳는데 그들의 신념이 행동과 부조화되기 때문이다. 이 부조화의 괴리가 클수록 개인은 극단적 변화를 맞게 된다. 그것은 자신의 부조화된 행동에 이유를 붙이는 것으 로 정당화로 이어진다.21) 이와 같은 과정으로 제도에서의 개인은 부조리나 잘못됨을 알더라도 자신의 사회적 승인에 대한 요구만을 만족시키며 폭력을 양산해내는데 일조하게 되는 것이다.
<전염과 전이>(2019)에서 하나의 두상은 개체, 그들을 잇는 의식은 개인의 사회화를 의미한 다. 맑은 액체가 그들을 투과하는 단계는 사회적 동조와 합의를 뜻하는 것이다. 이후, 일정 색의 액체가 투입되는 단계는 일종의 사상이나 타인의 욕망이 투여됨을 의미한다. 이것은 빠르 게 하나에서 둘, 둘에서 모두를 잠식한다. 그리고 한참동안 이 액체는 전체를 통과한다. 결과적 으로 그 욕망, 사상의 투입은 누구로부터 기인한 것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이렇듯 집단의 가치 에 함몰되기 쉬운 연약하면서도 빠른 욕망의 전염성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20) 프로이트의 ‘전이’는 대상관계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타인과 맺었던 관계에서 파생되는 경험, 기억들이 무의식으로 잠재되어 있다 가 일정시기 후에 맺는 관계에 까지 적용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21) Pillip George Zimbardo, 임지원, 이충호 옮김, 『Lucifer Effect』, 웅진지식하우스, 2007, p.351-352
<그림 1> 모방 160x910cm oil on canvas 2019
<그림 2> 전염과 전이 mixed media 2019 <그림 2> 의 과정 부분
다음은 사회 이전의 집단의 형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셋 이상의 인간이 결합되면 집단이 된다. 모든 문제는 집단의 형성에서 부터 나타나고, 또한 집단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22) 개인 은 거대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지만 대부분 그 사회의 전체를 인식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들 개인의 가까이에 있는 사회 이전의 집단이 그들의 전체사회를 의미하는 경향이 강하다. 작품
<과정과 방식>(2019)에서는 이러한 집단기의 과정에서 개인이 겪을 수 있는 현상을 조명하 고 있다. 다음의 세 가지 분류는 주된 집단 심리에 대한 정의이다.
① 가치의 합의는 동일성의 원리로 무리를 짓는 행위이다. 집단의 성립과 유지에 주요한 초기 단계로 동일한 목적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여 집단을 이룬다. 대중은 완전히 원자화된 개인이 지만 같은 목적이나 취향을 가지는 사람들과 함께 집단을 형성하며 살아간다. 그 집단 안에서 자신의 가치나 사상을 승인받으며 얻어지는 소속감이 그의 삶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작품 속에서는 둥글게 군집을 이루며 무리가 되어가는 군상으로 가치의 합의를 나타낸다.
② 가치추구는 그들이 합의한 가치를 보다 열렬히 추구하는 행위이다. 이것은 집단을 보다 강력하게 만들며, 더 큰 집단이 될 수 있는 발판이 된다. 여기에서 부터 개인은 집단의 사상이 나 규율에 얽매이게 된다. 그들 집단의 가치에 반하는 행동을 하거나 거부하면 집단으로 부터 퇴출되는 위기에 봉착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이 그러한 위험에는 노출되고 싶어 하지 않는 다. 이것은 소속되고자 하는 욕망에 의한 것으로 이렇게 유지되는 집단은 잘못된 가치를 집단 구성원들이 모두 안고 가야하는 위험을 기꺼이 감내해야만 한다. 작품 속에서는 한 방향을 지향하는 듯 상단에 반복적인 손을 배치하는 것으로 추구를 나타내었다.
③ 배척 혹은 대립은 집단의 분열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더 견고한 집단을 만들 수 있는 초석적 단계가 되기도 한다. 가치추구의 단계에서 퇴출되면 공동의 배척대상이 되며 기존집단을 견고 하게 만들어주는 희생양이 된다. 혹은 다른 가치를 지닌 원자들이 복수성을 얻으면서 대립되는 위치에 서기도 한다. 이 경우 집단은 분열되거나 소멸된다. 작품 속에서는 서로를 밀어내는 듯 접촉하고 있는 군상으로 해당 의미를 시각화 하였다.
공통적으로 집단을 이루는 각 개체들의 몸짓과 배치를 통해 성격을 들어내고 있다고 정리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집단의 형성과 유지의 단계는 연구자의 성찰과 문헌연구에 따른 것이다.
집단의 생성과 유지, 분열 혹은 소멸 같은 단계를 연구하는 것은 그 안의 원자들의 작용을 볼 수 있는 단초가 된다. 그렇기에 계속적인 연구를 통해 세분화될 필요가 있다고 보여 진다.
정리하자면, 본 장에서의 <모방>(2019)은 전체사회의 전염상태를, <전염과 전이>(2019) 는 획일화의 과정을, <과정과 방식>(2019)은 전체사회 이전의 집단을 형성, 유지, 소멸하는 단계를 나타내고 있다. 이를 통해 2절 ‘주체적 행위’에서는 주체성에 집중한 Pathos 연작을
22) 짐바르도 역시 ‘한 개인의 반대는 착각, 두 사람의 반대는 감응성 정신병, 그러나 셋 부터는 함부로 하기 어려운 힘.’ 이라 이야 기하며 부당한 시스템에 대한 반대를 타인과의 결속으로 실현해야함을 이야기 한 바 있다.
단계 ① 가치의 합의 ② 가치 추구 ③ 배척 혹은 대립
<그림 3> 과정과 방식1 162.2x130.3cm oil on canvas 2019
<그림4> 과정과 방식3 162.2x130.3cm oil on canvas 2019
<그림 5> 과정과 방식2 162.2x130.3cm oil on canvas 2019
<표 3> 미소, 집단 심리의 세 단계
중심으로 학자들과 본 연구자의 대안을 정리하도록 할 것이다.
3.1.2. 주체적 행위
앞선 논지에서 개인은 결코 집단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욕망이론을 펼친 학자들은 변혁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주체를 다루었다. 그들 모두가 욕망이론으로서 찾고자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욕망의 해방’이자 ‘주체성의 회복’이다. 같은 맥락으로 폭력에 관한 이 론을 전개하는 이유는 메커니즘 분석을 통한 폭력의 완화, 즉 예방책을 마련하려는 것이다.
본 연구자 역시 본 절에서 폭력적 구조를 타계하고 변혁을 모색하는 방안을 제언하려한다.
가장 앞서 보았던 지라르는 공동체성의 회복에서 대안을 찾는다. 그의 저서『나는 사탄이 번개 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Je vois satan tomber comme l’eclair』에서 ‘진정한 초월성’이라 하여, 그는 공동체 전체가 폭력적 모방에 빠져 있다는 것을 직시하는 데에서 치유책을 제시한 다. ‘십자가의 승리’23)를 예로 들어 부끄러운 폭력적 기원을 폭로하라는 것인데 이는 곧 폭력 을 양산하는 모방적 태도를 공동체가 직시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겠다.
아렌트와 짐바르도의 경우 주체성을 회복해야하는 주체, 즉 개인에서 해결책을 강구한다. 이는 오늘날의 우리가 보다 강력한 집단적 통제로 부터 자유로우며 스스로의 행동 기저에 관해 주체 의 역능이 비대해진 사회구조를 안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연구자의 작품 ‘Pathos’연작 에서도 이러한 자기(自己)로서의 회복에 대한 고찰을 이야기한다. Pathos는 아리스토텔레스 의 설득을 위한 기술에서 Ethos, Logos와 함께 등장한 요소로 감정적으로 호소하여 상대의 마음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으로 정의된다. Logos와 달리 Pathos 에는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원칙이나 논리를 왜곡시키고 굴절시키는 인간 본성 속 다양한 측면들이 포함된다.24) 연구자는 Pathos를 일종의 에너지로 정의되는 행위를 이끄는 욕망의 분출 으로 사용하고 있다. 연구자 의 작가노트에서는 이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충돌과 폭력의 역사로 점철된 세계, 그 속에서 소모되는 격한 에너지 ‘Pathos’를 시각적으로 구현한다.”25) 즉, Pathos 는 개개인의 행위 이전의 본성이자 주체적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판단력과 공감을 일으키는 주요한 요소인 것이다.
작품 <Pathos>(2019)연작은 욕망의 주체, 자아를 나타낸다. 자화상 으로 보이는 각 개체들의 온전한 대상성을 파괴시키며 혼돈에 빠진 주 체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들은 모방의 사정권에서 주체를 잃어버리고 타자라는 매개로서 존재하는 불완전한 개인을 상징한다. 앞선 사회와 집단의 모방적 양상과 전염성은 Pathos 자화상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것으로 매듭지어진다. <과정과 방식>(2019)중 세 번째 단계인
‘배척 혹은 대립’에서 집단은 분열되기도 하고 더 견고해진다고 하였 다. 이 과정에서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 ‘적관(適觀)’이다. 적관은 연구 자의 작품에서 집단의 변화를 있게 하는 단초이자 주체성 회복을 위한 대안을 의미한다. 사전적인 정의로는 ‘확실히 본다.’ 는 것으로 현상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함의하는 것으로 사용하였다. Pathos 시리즈 이전 단계인 Violence 시리즈의 작업노트에서 ‘이 견고한 사회성은 개인의 시각을 가리고, 혐오를 학습시킨다. (중략) 현상을 적관하라. 누구나 가해자 일 수 있고, 가해 자였을 수 있으며, 가해자가 될 수 있다.’26)라는 문장을 통해 이러한 견해를 피력해왔다. 일정 사건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와 확실하지 않은 사견들에 휩쓸려 본질을 보지 못하는 현상 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은 것이다. 이는 아렌트가 이야기하는 ‘대중’으로서의 개인들과 같이
23) 지라르에 의하면 십자가에 예수가 못 박힌 집단의 ‘제의’가 곧 예수의 권능을 천하에 드러내는 역할을 한 것으로 그들의 권능이 자신의 붕괴를 막기 위해 선택한 폭력의 집단화를 세상에 알리게 된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는 ‘십자가가 승리했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24) 송인희, 「포스트모던시대의 파토스」, 수사학 제15집, 2011, p.189 25) MISO, artist statement, 2019
26) MISO, artist statement, 2016
<그림 6> Pathos 12 116.8x80.3cm oil on canvas 2019
판단력의 부재로 인해 보편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태도로 부터 오는 것이다. 또한 악에 대한 지극히 관념적인 이해로 ‘개인적 무취약성의 착각’27)을 통해 자신을 그 사건과 분리하여 보는 것으로 피상적인 이해만을 고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시각은 악을 본질적이며 대상의 내부에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선량한 다수는 폭력을 낳는 조건을 창조, 유지, 방관했다는 책임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28) 즉, 악이 발생한 상황적, 전체적 고려를 간과하 고 특정된 ‘누구’에게서 원인을 찾으며 악을 타자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사건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지나친 혹은 가벼운 상황분석을 통해 가해자를 두둔하는 모양새를 보이는 행태로 2차 가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우리 중 누구도 악과 떨어져 있지 않다. 관계는 필연적으로 폭력을 동반하고, 폭력에 대해 직시하고 함의되는 문제점에 대해 사고하지 않으면 그 악은 결국 자신을 잠식하게 될 것이다.
연구자는 적관을 통해 자신의 사상에 대한 시각을 가다듬고, 비판적 사고를 해야 함을 제언한 다. 이러한 사고과정은 곧 주체적 행위를 가능하게 한다. 타인이나 집단의 사고와 말에 휩쓸려 주체 없이 폭력을 양산하는 태도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 대중적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현상에 대해 방관하거나 잘못된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도피처(익명성, 탈개인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이 행위 이전에 위와 같은 사고과정을 통해 주체성을 회복하면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갖기 때문에 현상에 대해 무비판적인 수용은 물론 주체 없는 혐오, 폭력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 이는 곧 타자의 관점에서 사고하고, 배려할 수 있는 도덕적 감수 성의 획득으로 이어진다. 나와 타자의 동질성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바로 볼 줄 아는 개인이 집단이 되면 그 집단은 사고의 긴장 안에서 집단의 문제점을 도출해내고, 재정립하며 폭력의 전염을 막을 수 있다. 이것은 지라르가 이야기하는 공동체성 회복으로 귀결 된다. 즉, 각각의 주체의 회복이 선행되면 공동체는 그에 맞게 또 다른 집단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3.2. 시각적 충돌과 복원
본 절에서는 위와 같은 작업의 이론이 조형에서 어떻게 시각화되었는가에 대해 중점적으로 분석, 정리 할 것이다. 작품을 이루는 형과 색을 각 항으로 나누어 보도록 하겠다.
3.2.1. 색채 이미지
작품의 색채 표현에서는 색의 대비효과와 전형적인 ‘살’을 표현할 수 있는 색상을 감하였다는 것이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첫째로 색의 대비효과에서는 색이 갖는 조형적인 이미지가 상반되 는 색채를 밀접하게 배치함으로 얻어지는 인상에 목적을 두고 있다. 욕망의 분출을 의미하는 Pathos 라는 에너지는 역동적인 움직임을 띄어야 하며 정제되지 않은 날것들(주체들의 욕망) 이 뒤섞이는 현상을 보여주어야 한다. 색채는 인간의 의식과 무관하게 감정에 영향을 준다.
색에 대한 관념은 주관적일 수 있으나 공통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은 어는 정도 공통된 색채 감정을 갖고 있다.29) 이러한 색채감정은 이미지를 받아들일 때 형태, 상황 등과 함께 복합적인 요소로 작용하여 보는 이의 판단에 상이한 감각을 제공한다. 연구자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색상은 먼셀(Munsell)의 100색상환30)을 기준으로 원색을 고려했을 때 붉은 계열(1R)/푸른 계열10B, 보라 계열5P/노랑 계열8Y으로 정리할 수 있다. 각 색상의 이미지를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보라는 대체적으로 신비하고 우아한 이미지를 노랑은 명쾌함과 환희의 이미지를 뜻하며 그들 색상이 대비되는 만큼 색채 이미지 역시 대비를 이룬다. 파랑은 이상과 냉정을 빨강은 정열과 흥분을 색채 이미지로 갖으며 이 역시 반대되는 성향의 이미지로서 대표적이다. 이러한 색채이미지의 대치는 절대로 섞일 수 없을 것 같은 요인들이 혼재되고 충돌을 일으키며 발산하 는 에너지를 표현하기 위함이다. 또한, 다원성을 중요시하고 획일적 사고와 집단의 전염성을
27) Pillip George Zimbardo, 임지원, 이충호 옮김, 『Lucifer Effect』, 웅진지식하우스, 2007 p.635 28) 앞의 책, P.28
29) 조현주 외, 『쉽게 이해하는 색채학』, 시그마프레스, 2006 p83 30) 앞의 팩 p.30
경고하는 작품의 의미에 맞게 색상에도 다채로운 변화를 줌으로서 다양성과 균형을 갖고자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전형적인 ‘살’의 색상을 감하는 것은 이질적인 감정을 불러일 으키기 위한 장치라고 볼 수 있다. 살을 표현하는 색상과 신체의 만남 은 단순히 작품을 인간의 육체를 표현한 것으로 읽어내는 단조로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Pathos의 표현은 인간 육체에 있지 않다. 육체는 실체로서 관계하지만 그 안의 에너지와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이러한 이유로 Pathos 시리즈에 등장하는 모든 인간들은 그 들의 고유색에서 벗어나 있다. 전체화면은 대체적으로 색상과 붓의 결 에 따라 시선이 흐르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그림7>에서 보이듯 일면 부분적인 살색의 묘사가 있다. 이는 본연의 색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주체의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무한한 시각 적 충돌 으로 얻는 산만한 발산에서 부분적인 안정감, 독립감을 부여하 며 결과적으로 작품의 이론에서 주창하는 회복을 의미함과 동시에 작품자체의 조화를 위한 것이다.
3.2.2. 신체의 해체와 변주
연구자의 작품에서는 공통적으로 인간의 신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신체는 대상세계와의 교접을 수행하는 감각 기관이며 실존의 증거이다. 쇼펜하우어가 육체와 내면을 동일한 실재의 두 측면으로 보았듯 신체를 통해 개인은 자신의 욕망을 직접적으로 자각하게 된다. 신체의 사용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하나는 예술가인 본인의 신체를 통해 지각한 대상세계에 대한 물음이 곧 예술품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으로서 겪는 폭력과 관계의 일면을 자각하는 것이 곧 신체이며, 그들의 주체를 대변할 수 있는 시각적 상징물 또한 신체라 는 점이다. 그렇기에 연구자의 작품을 이루는 인간의 폭력성과 관계는 옷가지나 다른 시각물질 로 대변되지 않고 신체로 구현된다.
회화작품에서는 이러한 신체를 해체와 변주를 통해 드러낸다. 가장 먼저 이미지가 해체되는데 모델이 사라지는 것으로 특정한 누군가가 아닌 보편적인 인간을 상징하는 것이다. <과정과 방식>(2019)을 비롯하여 군상의 형태를 띠는 작품들은 여러 사람이 겹쳐져 군상인지 한 사람 의 연속적 행위인지 불분명하게 제시되고 있다. 몰아치는 회오리 속에서 그 누구로도 제시되지 않는 신체들은 자아의 부재 즉, 주체의 상실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완전히 지워지거나 섞이 지 않는 것은 주체의 회복의 가능성 또한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앞선 고유색의 파괴와 부분적인 살색의 묘사로 본 색상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주체의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과 마찬가 지로 읽힐 수 있다. 즉 집단적 가치에 순응하여 섞이고 싶어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본연의 형태로 분리되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다. 게슈탈트(Gestalt) 이론에서 정의하는 것과 같이 인간 의 시각은 균형이 깨어지는 것을 경험하면 상실된 균형을 찾으려 한다. 의도적인 해체는 궁극 적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원상태의 결과물을 유추하게 하는 기능이 있다. 즉 군중을 화면에
연상 이미지 상징적 이미지
보라 난꽃, 정신병원, 포도 등 성스러움, 성복, 죽음, 순교 등
노랑 개나리, 희망, 병아리 등 태양, 영웅, 사랑, 불변 등
파랑 물, 하늘, 바다, 여름 등 보수, 내향성, 믿음, 차가움 등
빨강 불, 피, 빛, 태양 등 활력, 풍요, 피, 전쟁, 정열 등
<표 5> Pathos 시리즈에 사용된 색상 계열에 따른 색채 이미지 조현주 외, 『쉽게 이해하는 색채학』, pp89-90 참고
<그림 7> Pathos 8 116.8x91.0cm oil on canvas 2019
서 수 없이 분절화 시키고 섞어내며 주체 없 는 현상을 직시하기를 바라면서도 보는 이가 그 완전한 형태를 찾고, 발견하는 행위를 주 체를 찾아가는 과정의 일환으로 여기며 이러 한 표현을 택하였다.
이를 위해 작품속의 인물들은 해체와 동시에 일종의 변주도 갖는다. <그림 1>의 부분에서 는 운동감을 부여하기 위해 찍어낸 듯 같은 부위의 신체가 연속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 러한 반복적 덧댐은 <예시 3>에서 볼 수 있 듯 약동감과 속도감을 평면에 구현하는 미래주의 회화에서 등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용되었다. 이미 해체되었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화면에 구성하며 전체는 역동(力動)하는 운동감을 갖는다. 이와 같 은 변주로 인해 해체된 이미지가 집단에 휩쓸리거나 본연의 형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둥의 움직임을 띄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은 주체만을 이야기하는 Pathos연작에서 더욱 확실히 시각화되어진다.
Pathos연작은 <그림9>와 같이 자화상으로, 비교적 분명한 인물을 대상으로 제작되었다. 화면에 하나의 인물을 배치하여 주체성을 복 원하는 과정을 보다 집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인물의 근육이나 머 릿결을 따라 반복적인 붓질을 하며 이미지를 덧대거나 지워내는 방 식으로 전체에 가능성으로의 움직임을 부여하고 있다.
위와 같은 회화에서의 변주를 설치작품 에서도 볼 수 있다. <전염과 전이>(2019)에서는 계속 적인 에너지, 혹은 사상이 집단으로 전염, 전이되는 장면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고무관 (u)을 사용했다. 각각의 두상을 둘러싼 고무관을 통해 액체가 흐르고, 이내 순환하는 식의 운동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고무관은 신체의 구성 물질로서 모방적인 것들을 운송하고, 그것 이 전염이나 전이되는 현상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내부를 흐르는 수용성 잉크와 물은 섞이고 나면 분리될 수 없는 같은 성질의 것으로 치명적이고, 절대적인 모방성을 의미한다.
연구자의 작품에서 색채와 형태의 조형을 정리하자면, 색채의 충돌로 에너지를 시각화 하고 있으며 부분적인 묘사와 변주로 주체성의 회복으로의 가능성을 이야기 하고 있다. 본 연구자의 이론에서 함의하는 주체성의 상실과 회복의 가능성은 절망과 희망, 양 측면 동시적으로 표현하 고 있다. 그러나 그 회복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전체에 흐름을 부여하며 보는 이의 시각을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4. 결론
불확실성의 사회의 다양화는 가속되고 담론은 계속해서 형성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보다 주체적인 개인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가능성과 필요성을 지니고 있다. 본 연구자는 집단으 로서의 역사에서 발생한 소수에 대한 폭력과 배척을 앞으로의 다원사회에서 지양되어야할 과 제로 보고 작품연구를 진행하였다.
2장의 1절에서는 폭력의 집단화 작용의 원리인 르네 지라르(René Girard)의 폭력의 메커니즘 을 살펴보았다. ‘모방 욕망’으로 인해 주체가 타인을 모방하며 ‘짝패’가 형성되고, 짝패의 양가 성에서 공격성이 표출됨을 확인하였다. 그것이 집단 안에서 무수한 상호경쟁과 상호보복을 만들어내기에 ‘희생양 제의’로 집단의 안정을 꾀한다는 것이 집단적 폭력의 메커니즘이었다.
2절에서는 개인이 사회에 대항하기 힘들게 하는 심리적 작용을 분석하기 위해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의 ‘행위의 무능’과 그로 인한 ‘악의 평범성’을 살펴보았다. 이와 함께 필립 짐바르도(Pillip George Zimbardo)의 동조, 권위, 복종의 관계와 그것의 근원을 정리하며 체제
<예시 3> 움베르토 보초니 (Umberto Boccioni
1882~1916) <Charge of the leacher> 32x50cm oil on canvas. 1915
미래주의 화파들의 공통적 특 징은 동적인 것을 정적인 평면 에 담는다는 것이다. 같은 움직 임이 반복적으로 표현되는데 보초니의 경우 복수적인 상황 을 표현했다는 데에서 연구자 의 변주와 동일한 의미를 갖는 다.
<그림 1>의 부분
모방 160x910cm oil on canvas 2019 부분
<그림 8> Pathos 11 116.8x80.3cm oil on canvas 2019
안에서의 개인의 판단력 약화의 원인을 보았다. 개인의 사유와 말하기의 무능은 공감의 무능으 로 이어지고, 동조나 복종을 통해 무비판적으로 악한 행위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아렌트 와 짐 바르도는 공통적으로 상황적인 악, 그리고 개인의 비판적사고와 자기의 회복을 대안으로 주장 하고 있었다.
3장에서는 연구자의 작품을 통해서 주체성의 회복을 위한 대안을 찾아보았다. 1절의 1항에서 는 집단과 사회에 대한 작품을 분석하였다. 집단과 사회의 단일화 작용을 작품<전염과 전 이>(2019)를 통해 시각화하며, 사회적 구조와 개인의 의지부족이 단일화 작용의 단초라 정의 했다. 집단이 형성되는 단계를 <과정과 방식>(2019)에서 가치의 합의 - 가치 추구 - 배척 혹은 대립 세 가지로 제시하였다. 이와 같은 집단의 형성과 유지의 단계를 연구하는 것은 그 안의 원자들의 작용을 볼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음으로 계속적인 연구를 통해 세분화할 필요 가 있다고 보여 진다. 1절 2항 ‘주체성의 회복’ 에서는 연구자의 대안을 정리했다. 연구자는 적관適觀), 즉 자신의 사상이나 행위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통해 현상을 바로 볼 것을 제언하 였다. 이러한 사고과정은 자신의 행위에 책임감을 부여하며 잘못에 대한 정당화를 방지하여 도덕적 감수성을 회복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과정에서의 주체성 회복은 그에 맞는 공동체성을 띄며 결과적으로 지라르와 아렌트, 짐바르도의 대안을 종합적으로 포함 할 수 있다. 다만, 적관의 방법에 대한 추후의 연구가 필요할 것이라 사료된다.
3장 2절에서는 연구자의 작품에서 조형요소를 분석했다. 색채분석에서는 각기 다른 에너지가 집단에서 관계하며 발생하는 충돌을 표현하기 위해 색채 이미지의 대비를 사용함을 우선으로 보았다. 그리고 고유색의 부분 사용은 연구자의 작품에서 표현하고자하는 주체성 회복으로의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이었다. 형태분석에서는 신체의 사용, 해체와 변주를 특징적 요소로 제시 했다. 신체는 실존의 증거이자 대상세계를 인식하는 주체이므로 작품에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신체의 해체는 주체성의 상실을 표현하는 것이고, 변주는 회복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색채와 형태의 조합은 현상제시와 변혁의 가능성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이와 같은 작품으로 개개인이 그들의 공동체 사회를 바로보고, 무비판적으로 폭력을 양산하지 않기를 바라는 연구 자의 바람을 담은 것이다.
이로써 본 연구는 사회의 전반에 존재하는 폭력의 메커니즘을 분석, 작품으로 제시하며 폭력성 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현상의 적시를 통한 주체성, 공동체성 회복으로 제언했다. 집단의 획일화에 동조하지 않는 진정한 정치적 인간으로 개인이 바로 설 수 있는 가능성과 그 중요성 을 조명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자는 작품의 목적인 비폭력적인 집단성과 개인성의 확립 및 시각적 표현방법을 연구하는 것으로 향후 작품에서 보다 깊이 있는 시각과 함께 다양한 표현을 구사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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