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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의 미(美)’와 그로테스크 -조엘-피터 위트킨(Joel-Peter Witkin)의 작품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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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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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투고일_2021.02.10. 심사기간_2021.03.01-14. 게재확정일_2021.03.15. DOI https://doi.org/10.47294/KSBDA.22.2.32. ‘불쾌의 미(美)’와 그로테스크 -조엘-피터 위트킨(Joel-Peter Witkin)의 작품 세계‘Beauty of Displeasure’ and Grotesque -the oeuvre of Joel-Peter Witkin이재걸, 중앙대학교 대학원 예술학과 Lee, Jae Geol_Graduate School of Art Science, Chung-Ang University. 차례. 1. 서론 2. ‘시체’의 논리: 낭만주의, 그로테스크, 위트킨 3. 혹독한 결합 4. 자연의 총체성으로서의 추(醜)와 그로테스크 5. 결론 및 제언 References. 기초조형학연구 22권 2호 (통권104호). 455.

(2) ‘불쾌의 미(美)’와 그로테스크 -조엘-피터 위트킨(Joel-Peter Witkin)의 작품 세계‘Beauty of Displeasure’ and Grotesque -the oeuvre of Joel-Peter Witkin이재걸, 중앙대학교 대학원 예술학과 Lee, Jae Geol_Graduate School of Art Science, Chung-Ang University. 요약. 조엘-피터 위트킨(Joel-Peter Witkin)의 사진은 불쾌의 경험을 주요 표현 동력으로 삼아 인간의 가 혹한 현실에 대한 입체적인 사유를 일으킨다. 흥미로운 점은 다양한 범주의 신화적 사건들과 미술사의. 중심어 조엘 피터 위트킨 그로테스크 포스트모던 낭만주의 불쾌의 미 에로티시즘. 걸작들에 대한 그의 패러디(Parody)가 이상성욕과 냉소적 악의로 가득 찬 연금술사의 창조물들로 보 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창조물들이 인간을 현실 이전의 세계, 즉 병들고 고통스러운 현실 이전의 종 교적 초월성으로 이끌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편, 그가 세심하게 고안한 몽환적 미장센은 삶과 죽음의 강력한 알레고리를 작동시키며 인간의 본성이 이중적임을 보여주는데, 이때 표출되는 그로테스크는 다분히 양가적이다. 이에 본 연구는 위트킨 예술이 지닌 국제적 명성과 미학적 위상에 비해 상대적으 로 부족한 국내 연구 실정을 환기하면서 위트킨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그의 작품이 언캐니한 그 로테스크와 카니발(carnival)적인 그로테스크를 혼합하는 특별한 재현 방식을 취하고 있음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연구의 방법도 이 두 가지 경향의 그로테스크가 위트킨의 작품 안에서 어떠한 미학적 절차를 거치며 불쾌와 매력이 뒤섞인 ‘역설의 미’를 발산하는지를 현대 그로테스크 이론의 양 대 산맥인 볼프강 카이저(Wolfgang Kayser)와 미하일 바흐친(Mikhail Bakhtin)의 이론을 중심으로 검증하는 것이다. 결국 본 연구는 위트킨의 예술이 기형인이나 자웅동체인에 대한 신화적 환상과 억압 적인 에로티시즘, 나아가 시체의 혹독한 현실까지 드러내는 근본적인 이유를 규명하는 시도라는 점에 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ABSTRACT. Joel-Peter Witkin's photographs which adopt an experience of displeasure as the main motivation for expression, provoke diversified thoughts on the harsh reality of being human. Here is an. Keywords Joel-Peter Witkin grotesque. interesting point: In parodying the mythological events covering the various categories and masterpieces from art history, what appears before us are creations by an alchemist who has been captured and burdened by paraphilia and sarcastic malice. However, such creations. ultimately direct humans to a world prior to the reality, that is, the religious transcendence prior postmodern romanticism to the diseased and agonizing reality. On the other hand, the surreal mise-en-scène he has beauty of displeasure attentively invented reveals how ambivalent human nature is while triggering an allegory for life eroticism and death. The grotesque disclosed in this way is noticeably equivocal. Thus, this study intends to propose the need to perform research on Witkin by drawing attention to the insufficient expanse of domestic studies as to his art compared to its international reputation and aesthetic status, and discover how his photographs employ a specific way for representation, which is a mixture of the uncanny grotesque and the carnival grotesque. The study method is to demonstrate how these two types of grotesque emit an unpleasant but fascinating “paradoxical 이 논문은 2019년 대한민국. beauty” centered on the thoughts of Wolfgang Kayser and Mikhail Bakhtin, the two prominent.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figures in the theory of the modern grotesque. Ultimately the significance of this study lies in its. 인문사회분야 신진연구자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19S1A5A8035172). attempt to investigate the fundamental reasons as to why his works disclose mythological fantasies related to deformed humans and hermaphrodites, oppressive eroticism, and furthermore the bitter reality of dead bodies.. 456.

(3) 1. 서론 인간의 근원적 고통을 미학화 하려는 현대예술가들 중에서 조엘-피터 위트킨(Joel-Peter Witkin, 1939- , 미국)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의 사진은 혐오감과 음란성을 주요 표현 동력으로 삼으면서 사진사(寫眞史)뿐만 아니라 현대미술사에서도 많은 논란을 일으켜 왔다. 첫눈에도 그의 사진은 ‘죽음 충동’(Thanatos)에 몰두하고, 신체적 아웃사이더들, 예컨대 트렌 스젠더(transgender), 자웅동체인(hermaphrodite), 기형인, 나아가 실제 시체(cadaver)까지 ‘과시적으로’ 보여주면서 극단적인 불쾌감을 드러낸다. 하지만 우리는 위트킨의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비단 비뚤어진 성적(性的) 탐닉이나 삶의 혹독한 리얼리티에 집중하는 것에 그치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위트킨의 작품이 흥미로운 까닭은 무엇보다도 고통과 불행을 대하는 관음증적, 몽환적 시선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종교적 승 화’(religious sublimation) 방식을 아름다움을 표상하려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에 일치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면서 작품에 기묘한 유물론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위트 킨은 종교가 가진 초월성을 철저히 경험적 태도로 재생산하는데, 위트킨의 ‘종교 행위’는 상징 으로 충만한 종교적 구원에 관해 읽고 경험하면서 생긴 두려움과 안도가 혼합된 상태로 출현한 다(Lee, J. G., 2016, p.249). 제롬 코탱(Jérôme Cottin)도 위트킨의 예술을 “일종의 포스트모 던 가톨릭 예술(L'Art d'un Catholique Postmoderne)”이라고 칭하면서 가톨릭 예술의 전통적 사유 체계 안에서의 “신앙심의 확인(L'affirmation de la foi)”과는 분명한 차별성을 지닌다고 설명한다(Cottin. J., 2012, p.39). 코탱은 위트킨의 예술이 각기 다른 맥락에서 과거의 도상을 재발견하고, 기독교적 믿음과 신화에 담긴 이야기와 이미지를 복잡하게 차용함으로써 포스트 모던 성향을 띄고 있음을 확인한다. 이를 위해서 위트킨은 19세기 낭만주의자들이 그랬듯이, <Figure 1> Man with. 삶과 종교와 창작을 분리하지 않는 대담한 표현력과 소외된 자들의 욕망과 고통을 서양문화의. Dog-Mexico, Witkin, J.. 근간을 이루는 다양한 상징들, 나아가 미술사와 문학사의 유산에 연결하여 일종의 ‘구원(救援). P.(1990), Gelatin Silver. 의 패러디(parody)’를 구축한다. 그리고 이 패러디는 신화적 공간의 위대함과 현실적 공간의. Print, artnet.. 초라함, 도덕적 명령과 자유의지 사이에서 입체적인 사유를 일으키게 된다(Figure 1). 이러한 평가를 바탕으로 생각해 볼 때, 그의 예술이 조형적인 측면에서나 정신적인 측면에서 그로테스크(grotesque)를 표방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로테스크가 지닌 형이하학적 차별성, 그 리고 인간의 정신을 통찰하려는 형이상학적 자질이 위트킨 예술의 핵심을 그대로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로테스크는 괴상하고 조악한 것 혹은 인간이나 사물을 비이성적으로 뒤틀어 묘사한 괴기미(怪奇美)에 가깝다. 그로테스크는 자연 현상은 물론, 후기 구석기 시대의 비너스상에서부터 문명 발달의 시기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발견 되는 하나의 미적 유형이며, 주로 과장되고 하이브리드적인 장식 패턴, 우스꽝스럽거나 괴물적 인 형상성 등을 통해서 나타났다. 그러나 ‘그로테스크’라는 용어는 르네상스(Renaissance)에 이르러서야 정립되기 시작하였는데, 로마 대화재(AD 64년) 이후에 지어졌다가 역사에서 자취 를 감췄던 <황금 궁전(Domus Aurea, 64-68년경)>이 15세기 말에 우연히 발견되면서였다. 황금 궁전의 내부는 훗날 그로테스크로 이름 붙여질 파격적인 장식 모티프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 모티프들은 이성적 사고를 지향했던 르네상스인들에게 부조리 자체였을 것이다. 그로테스 크는 그렇게 ‘그로타(grotta: 이탈리아어로 동굴)’의 음산한 분위기에서 나오는 기괴한 조형성 과 연관되며 이름을 갖게 되었다. 당시 그로테스크는 다빈치와 라파엘로 같은 몇몇 르네상스 천재들에 의해 긍정적으로 파악되기도 했으나, 보통은 부정적인 상상의 산물로 여겨지게 된다. 물론 시대가 지남에 따라 그로테스크의 본성에 풍부하고 긍정적인 설명을 가능케 하는 요소들 이 많이 담겨 있음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본격적인 그로테스크 연구는 19세기 낭만주의를 거친 후 여러 산발적인 이론적 접근에 이어 20세기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시작되는데, 누구보다도 그로테스크 이론의 양대 산맥인 볼프강 카이저(Wolfgang Kayser, 1906-1960)와 미하일 바흐친(Mikhail Bakhtin, 1895-1975)의 공로가 크다. 카이저가 말하는 ‘섬뜩하고 생경한 세계’로서의 그로테스크와 바흐친이 말하는 ‘민중적이고 카니발(Carnival, 사육제, 謝肉祭) 세계’로서의 그로테스크는 그로테스크를 단순 기초조형학연구 22권 2호 (통권104호). 457.

(4) 히 조악한 모티프나 비이성적인 도상(圖像) 정도로 파악하는 일반적인 입장에 경종을 울리고, 미술사와 미학사는 물론, 인류문화학과 정신분석학, 나아가 철학의 주제로까지 확장한다. 이에 본 연구는 위트킨이 위의 두 가지 경향을 모두 강하게 내포한 그로테스크 미학을 전개하고 있음에 주목하여 그의 사진이 발산하는 불쾌(不快)의 동기와 목적을 새로운 관점에서 고찰하 고자 한다. 또한 위트킨의 국제적, 미술사적 위상과 비교해 여전히 부족한 국내의 위트킨 연구 를 환기하는 한편, 혐오와 죽음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예술 제재(題材)로 삼는 그의 작품 들을 긍정적인 비평의 시점에서 재고(再考)해 보고자 한다.. 2. ‘시체’의 논리: 낭만주의, 그로테스크, 위트킨 숭고(sublime)와 그로테스크는 흔히 이념적 지향성에서 크게 차별되며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 라고 이해되어 왔다. 하늘/땅, 미/추, 선/악 등과 마찬가지로 숭고와 그로테스크는 이분법적으로 상대편에 있는 개념들이다. 하지만 여기에 반론을 제기하며 숭고와 그로테스크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 불완전한 기초 위에서 위태롭게 건립되어 있음을 지적하는 예술가나 지식인들 은 항상 존재했었다. 예를 들어, 독일의 철학자 카를 로젠크란츠(Karl Rosenkranz, 18051879)는 숭고함의 진정한 반대는 추나 그로테스크가 아니고 하물며 코믹도 아닌 ‘유쾌함’이라 고 말한다. 그는 미 자체와 숭고함이 부정적인 미인 추와 갖는 대립과, 숭고미가 유쾌미의 귀엽 고 장식적인 형태와 갖는 실제적인 대립은 미의 이념 속에서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Rosenkranz, K., 1853/2010, p.81). 프랑스대혁명 이후에 유럽에서 급격히 성장했던 신고전 주의와 낭만주의의 차이 중 하나도 바로 이 두 개념을 서로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멀리 떼어 놓을 것인지, 아니면 같은 곳에 혼재 시켜 파악할 것인 지였다. 일찍이 빅토르 위고 (Victor-Marie Hugo, 1802-1885)는 󰡔크롬웰 서문󰡕(Préface de Cromwell, 1827)을 통해 낭만주의 강령을 선언함에 있어서 숭고와 그로테스크를 미와 추, 빛과 어둠, 우스꽝스러운 것과 두려운 것, 선함과 악함 등과 같이 이분법적으로 반대편에 있는 개념들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결합할 것을 주장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예술과 자연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감을 없애고, 동일 한 이념 안에서 화해하는 계기를 창출하려 했다. 기독교는 시(la poésie)를 진실(la vérité)로 인도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대(moderne)의 뮤즈(Muse)는 한눈에 더 큰 그림을 보게 될 것이다. 그녀는 창조에서 있어서 모든 것이 인간적으로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아름다움 옆에는 추한 것이 있고, 우아한 것 옆에는 기형적인 것이, 숭고의 이면에는 그로테스크가, 선은 악과 함께, 빛은 그림자 와 함께 있다고 느낄 것이다. [...] 그녀는 자연(la nature)처럼 행동하면서, 자신의 창조물에 간섭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그림자를 빛으로, 그로테스크를 숭고로, 달리 말해서, 몸을 영혼으로, 짐승 같은 것(la bête)을 정신(l'esprit)으 로 혼동하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종교의 출발점은 항상 시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Hugo, V., 2009, p.21). 여기서 위고는 시는 본래 기독교에서 태어났지만, 현대적(moderne) 시는 곧 드라마(drame; 극, 劇)라고 말한다. 위고가 말하는 드라마는 시와 다르게 지극히 ‘현실적인 것’(le réel)이었으 며, 이 현실적이라는 것은 마치 “우리의 삶과 창조 안에서”(dans la vie et dans la création) 그러하듯이 숭고와 그로테스크가 매우 자유로운 방식으로 결합한다는 사실로부터 성립된다 (Hugo, V., 2009, p.39). 이러한 기독교와 드라마의 관계는 위고에게 장르의 혼합을 논리적으 로 설명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는 드라마가 기독교가 가르쳐 준 인간성의 이중성, 나아가 삶의 모순을 모두 포괄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중성을 사는 인간은 ‘숭고한 것’과 ‘그로테 스크한 것’ 모두를 지닌 존재이므로 희극과 비극 장르처럼 구분하는 것은 그에게 무의미해 보였 다. 위고가 확신한 숭고와 그로테스크의 결합은 자연의 원리에 어긋나지 않는 예술표현의 문제 였다. 당연하겠지만, 당시의 고전주의자들 눈에 이 ‘자유’는 예술적으로 혹은 도덕적으로 무책 임한 방종으로 비쳤을 것이다. 그러나 낭만주의는 자연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예술 속에서 도 존재해야 한다고 믿었다. 끔찍한 사건으로부터도 미지의 세계에 대한 숭고를 경험할 수 있으 며, 고귀한 자연으로부터도 기괴함이나 혐오를 느낄 수 있듯이 말이다. 낭만주의는 그렇게 상반 458.

(5) 되는 것들의 합일과 조화를 추구하면서 예외적인 것들은 그것들을 통일시켜주는 규칙을 찾을 수 있고, 자연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예술 속에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하게 된다. 미(美)의 이상적 상태를 위해 선택적으로 구분한 이 ‘상대어들’을 낭만주의가 통합한 것은 –그렇다고 이 상대어들의 개념을 뒤섞어 혼동하는 것은 아니다- 이념의 성장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예술 형태를 기획하여 세계를 더욱 큰 비전 안에서 조망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19세기의 지적 풍토를 떠올려 볼 때, 낭만주의가 20세기 중후반에나 등장하게 될 해체주 <Figure 2> Study of Two. Severed Heads, Géricault. T.(1818), Oil on Canvas, wikimedia.. 의(Deconstructionism)의 원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위고가 탄생시킨 반고전적인 인물들, 예를 들어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 1862)의 장발장(Jean Valjean)이나 󰡔노트르담 드 파리󰡕 (Notre-Dame de Paris, 1831)의 콰지모도(Quasimodo)가 보여주는 변덕스러운 성품만 보더 라도 이분법적 경계는 꽤나 명확했었는데, 다만 인물들은 한 가지의 속성으로만 고정되지 않고 훌륭함과 저열함 혹은 용기와 졸렬함을 모두 가진 ‘상반되는 것들의 조화물’로 묘사될 뿐이었 다. 위고는 이 인물들을 통해서 인간을 지극히 현실적인 측면에서 불완전하고 복잡한 존재로 바라보면서 이상적이고 합리적인 균형에만 집중하려는 고전주의적 인간상을 고발하였다. 그래 서 낭만주의는 고전주의와는 전혀 다른 존재론적 사유를 펼치게 되면서 죽음(시체)의 이미지 를 생명(신체)의 이미지와 동등한 권위를 지닌 것으로까지 다룰 수 있었다(Figure 2, 3).. <Figure 3> Anatomical. Pieces, Géricault. T.(1819),. 주지하는바, 시체는 죽음의 강력한 주장으로서, 인간의 가장 소외되고 낯선 상태이다. 기계적인 것이 생명을 얻음으로써 생경해진다면, 인간적인 것은 생명을 박탈당함으로써 생경해진다. Oil on Canvas, arthur.. (“The mechanical object is alienated by being brought to life, the human being by being deprived of it.” Kayser, W., 1981, p.183). 위트킨에게도 시체라는 사건은 “자연 의 가장 비밀스러운 힘과 접촉함으로써 설명하 기 힘든 어려운 영향력을 발휘하는”(Kayser, W., 1981, p.106) 순간이었으며, 가장 충격적 인 방식으로 그로테스크를 만나는 경험이었을 것이다(Figure 4). 그리고 이 심각하게 직관적 인 죽음의 풍경은 우리를 더욱 비밀스러운 바 니타스(vanitas)로 이끈다. 시체를 있는 그대로 응시한다는 것, 시체를 일 <Figure 4> Poet: from a Collection of Relics and. 종의 미적 패티시(fetish)로 취하한다는 것은. Ornaments–Berlin, Witkin, J. P.(1986), Gelatin Silver. <시체 공시소 연작>(The Morgue Series,. Print,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1992, Figure 5)로 대중에게 충격을 안긴 안드. 레 세라노(Andres Serrano, 1950- )의 말처럼 “우리 모두가 언젠가 처하게 될 죽음의 냉엄한 그러나 비밀스러운 현실에 대한 발견의 과정”(Blume, A. & Serrano, A., 1993, p.38)이자, 그 속에서 “인간성과 영혼의 여전한 현존”(Choi, J. C., 2014, p.96; Heartney, E. 1997)을 떠올리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위트킨의 사진은 네크로필리아(necrophilia; 시간증(屍姦 症))의 분열적 징후를 굳이 부정하지 않더라도 시체에 대한 즉물적인 경험을 ‘순수한 것’으로 <Figure 5> The Morgue,. 표상할 수 있었다.. Serrano. A.(1992),. 시체를 직접 마주하며 죽음의 적나라한 현실을 포착했던 예술가는 비단 위트킨뿐만은 아니다.. Cibachrome Photographs,. 다빈치가 그러했고, 렘브란트와 제리코는 물론, 위에 언급한 세라노도 그러했다. 그러나 위트킨. andresserrano.. 만큼 ‘조형적 관심’과 ‘신비주의적 관점’을 가지고 시체에 접근한 예술가는 없었다. 위트킨에게 가장 생경한 리얼리티의 표상인 주검은 연금술적인 정물(靜物)로 혹은 패러디(parody)의 대상 으로 나아가면서 그 의미가 급격하게 해체되는 과정을 겪는다. 결국, 극단적인 도덕적 무관심과 압도적인 그로테스크는 시체를 ‘미적 대상’으로 전환하면서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게 된다 (Figure 6). 이와 같은 측면에서 이분법적 요소들을 통합하려는 낭만주의적 취향으로부터 규범 의 아노미(anomie)를 건설하는 위트킨은 포스트모던 낭만주의자 혹은 해체주의적 낭만주의자 기초조형학연구 22권 2호 (통권104호). 459.

(6) 로 평가될 여지를 남긴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시체를 대하는 낭만주의적 급진성의 동기를 이해 하기 위해서 그의 삶 안에 발생했던 고통과 죽음의 경험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위트킨이 처음으로 시체를 목격한 것은 6세 때였다. 어린 위트킨은 가족과 함께 교회로 가는 길에 우연히 차량 3대가 연쇄 충돌사고를 일으키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때 위트킨은 전복 된 차에서 무엇인가가 자기 발밑으로 굴러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여자아이의 머리이었다. 죽음을 이해하지 못했던 어린 위트킨은 여자아이의 얼굴에 다가가 말을 건네려 했으나 어른들 에 의해 저지당했다. 바로 그때 ‘잘린 머리’와 ‘금기’가 위트킨의 가슴 속에 선명히 각인되었으 며, 훗날 위트킨은 자신은 사진기라는 기계를 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여자아이의 얼굴’을 들고 있는 것이라고 회고하기도 한다(Parry, E., 2008, p.7). 또한, 젊은 시절의 위트킨은 베트 남에서 종군사진사로 일한 적이 있었는데, 수없이 많은 전쟁사망자의 시신을 촬영했던 경험으 로 인해 죽음에 관한 생각 자체가 특별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위트킨은 일란성 쌍둥이 형제이며 현재 화가로 활동하는 제롬 (Jerome Witkin)을 포함해 여자아이와 함께 세쌍둥이로 태어났었다. 그러나 이 세 번째 여 자아이는 죽었고, 이 사실은 위트킨을 평생 괴 롭혔다. 그는 자신의 노트에 다음과 같이 쓰면 서 시체(특히 태아나 유아의 시체)를 작품에 사용하는 것은 잃어버린 여동생에 대한 ‘상징 <Figure 6> Face of a Woman, Witkin, J. P.(2004),. 적 보상’임을 밝힌다.. Gelatin Silver Print, artnet.. 그 자궁 속의 세계에서, 그 어두운 양수의 세계에서 나와 제롬은 / 별들 사이를 가르고 들려오던 그 외침을 들었을까 / 그녀를 가둔 공간을 찢고 / 우리의 양수를 휘젓던 그 손을 보았을까(Parry, E., 2001/2003, p.11). 죽은 자들을 위령하는 상징적 보상으로서의 위트킨의 ‘시체 작업’은 “잔인한 면은 예술이 행하 는 비판적 자각의 일부”(Adorno, T., 1970/2014, p.89)라는 아도르노(Theodor Adorno, 1903-1969)의 말을 상기시킨다. 그래서 그의 그로테스크는 단순히 기괴한 시각적 효과에 국 한되지 않는다. 그에게 그로테스크는 무엇보다도 하나의 ‘구조’(structure)이며, ‘생경한 세 계’(Kayser, W., 1981, p.184)로서, 우리의 추방했던 불편한 진실과 마주할 것을 요구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로테스크가 동화의 세계와 같이 우리의 외부에 있는 낯선 세계가 아니라 는 것이다. 그로테스크는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익숙하고 편안했던 것들이 갑자기 낯설고 섬뜩 하게 다가오는 세계로서, 인간의 세계가 어떠한 계기를 통해 급진적인 변화를 겪은 상태, 즉 ‘뒤집힌 세계’를 보여준다(“THE GROTESQUE IS ESTRANGED WORLD. [...] It is our world which has to be transformed.” Kayser, W., 1981, p.184) 위트킨의 사진에서 ‘초상-정물’이 하나의 주술적 아우라(aura)를 획득하고, 인간의 몸이 ‘신체’에서 ‘시체’로 급작스럽게 그 존재 론적 위상을 달리한 것처럼 말이다.. 3. 혹독한 결합 위트킨은 위대한 사진가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는데, 도시와 인간의 어두운 일면을 필름에 담았던 위지(Arthur “Weegee” Fellig, 1899-1968) 그리고 성적 소수자, 기형인, 성장장애인 등 신체적으로 남다른 사람들을 모델로 삼길 선호했던 아버스(Diane Arbus, 1923-1971)로부 터 사진의 소재와 주제 그리고 음울하지만 신비로운 미적 분위기 등에 관해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다(Figure 7, 8). 또한 위트킨은 잔더(August Sander), 다게르(Daguerre), 한스 벨머 (Hans Bellmer), 펜튼(Fenton), 르 그레이(Le Gray), 가드너(Gardner), 스티글리츠 (Stieglitz), 에반스(Walker Evans), 케르테스(André Kertész), 수덱(Josef Sudek), 칼라한 (Harry Callahan) 등도 언급하며 이 모든 사진작가의 작품세계가 자신의 예술에 큰 영향을 460.

(7) 주었음을 강조한다(Rutberg, J., 2014, p.69). 특히 위트킨은 1971년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아버스의 사진으로부터 외모적으로 특별함을 지닌 사람들을 일상의 영역 안에서 어떻게 포 착할 것인가에 관해 배웠다. 그들을 일상의 평 범함 속에 반영하려는 아버스의 의도는 특수 한 신체적 조건이나 성정체성을 가진 자들의. <Figure 7> My Man. 소외를 마주하려는 인간적 고민에 기인한 것. Weegee.(1941), MoMA.. 이었고, 위트킨도 이에 공감했다. 그러나 허구 로 구축된 세계에서 거칠고 모호한 패러디로 이러한 인물들을 다루는 위트킨의 예술적 태 도는 아버스나 종종 비견되는 다른 작가들과 근본적인 차이점을 보인다. 패러디 외에도 위 트킨의 사진의 차별성은 많은 부분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두 가지 정도만 논해보자면 다음 <Figure 9> Abundance–Prague, Witkin, J. P.(1997), <Figure 8> Two Women. Gelatin Silver Print, artnet.. 먼저 그의 사진은 매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굉장히 ‘회화적’이다. 위트킨은 필름 네거티브. with Hats, Arbus, D.(1970), artnet.. 과 같다.. 와 프린트를 긁어서 수많은 상처를 내고, 화학약품을 통해 부식시키는 등 그만의 개성 있는 제작 방식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작업을 추가함으로써 그의 사진은 마치 화가의 개성적인 붓질과 질감이 살아있는 느낌을 주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색된 듯한 효과도 유도한 다. 위트킨에게 이 ’회화성‘은 사진의 대상이 작품 주제와 더욱더 은밀하게 교감할 수 있는 통로 였다. 화려하게 장식된 시체의 일부라든지 도발적인 포즈의 기형인이나 양성구유자들이 지닌 신체는 이러한 회화적 처리를 통해 사진 매체가 전달하는 현실성을 덜어내고 숭배의 대상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1997년에 제작된 <풍요의 여신(Abundance-Prague)>(Figure 9)에서 위트킨은 모델을 마치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처럼 견고한 구도 안에서 배치하고, 바로크 미술의 초월적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강렬한 명암 대비를 활용한다거나 배경에 ’붓질‘의 우연한 자국으로 작가 의 행위와 시간의 흐름을 의도적으로 삽입하는 등, 화면의 구성 그리고 촬영과 현상에 이르는 사진의 전 공정이 회화의 그것처럼 보이게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19세기의 사진인화술인 다게 레오타입(Daguerreotype)을 연상시키는 그의 사진은 사진적 리얼리티와 작가의 개입이 분명 한 회화성을 교묘하게 결합하면서 기술적 복제 매체인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원본성과 유일성 (aura)을 강하게 발산한다. 또한, 그의 사진은 정서적인 면에서 ‘기만적 에 로티시즘(eroticism)’을 띠고 있다. 보통 사랑 을 성(性)의 감정적 측면이라고 본다면, 에로 티시즘은 성의 감각적 측면이라고 볼 수 있다. 에로티시즘은 넓은 의미에서 그것을 환기하거 나 상상하는 감각적 욕구를 말하는데 에로티시 즘의 재현은 곧 ‘성적 환상-이미지’로 이해된 다(Lee, K. R., 2018, p.154). 반면, 포르노그 <Figure 10> Peace and War, Rubens, P. P.(1629-1639),. Oil on Canvas, wikimedia.. 래피(pornography)는 문화적 차이를 결여한 채 성행위에 대한 관음증적 도발이나 육욕의 만족에 집중하며 성행위 욕구 이상 개인적인. 상상과 환상을 부여하지 않는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1915-1980)도 󰡔밝은 방󰡕(La Chambre claire, 1980)에서 “포르노적 이미지에는 푼크툼이 없다. 기껏해야 그것은 나를 즐겁 기초조형학연구 22권 2호 (통권104호). 461.

(8) 게 할 뿐이다(뿐만 아니라 곧바로 싫증이 난다).”(Barthes, R., 1980/2007, p.75)라는 표현으 로 에로티시즘과 포르노그래피를 분명히 구분한다. 바르트는 주체-관객의 관점에서 포르노가 사진의 학습과 정보 영역인 스투디움(Studium)으로 설명될 때 응시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에로 티시즘은 푼크툼(Punctum)이라고 보았다. 이처럼 응시자로 하여금 자신의 상상으로 장면을 재구성하게 하는 에로티시즘은 직접적인 성적 자극인 포르노와 분명히 구별된다(Lee, K. R, 2018, pp.157-158). 위트킨 사진의 에로티시즘도 보통의 에로티시즘처럼 어떤 문학적 상상이나 성적 환상을 일으 키기는 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감상자들이 그 환상에 접근하기란 절대 쉽지 않다. 도착적 (perversive) 포르노그래피와 뒤섞여 등장하는 이 불쾌한 에로티시즘은 에로티시즘에 대한 일 종의 블랙 유머로까지 보인다. 남는 건 일반적인 관점에서 공감하기 힘든 신화적 비전과 통증에 대한 직접적인 지각뿐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 세계 전반에 걸쳐 깔린 퇴폐적인 에로티시즘은 역사적인 에로티시즘에 대한 하나의 눈속임이며 명백한 반란으로 볼 수 있다.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의 작품 <평화와 전쟁(Peace and War)>(Figure 10)과 위트킨의 <아무르(Amour)>(Figure 11)를 비교해 보자. 루벤스는 아기로 분한 부(富)의 신 플루토스 (Plutus)에게 넘칠 만큼 많은 젖을 먹이는 평화의 여신 에이레네(Eirene; 로마신화의 Pax)를 통해서 전쟁의 공포와 대비되는 평화의 축복 을 알레고리로 표현하고 있다. 루벤스는 자연 의 탄생과 발달을 관능적 에로티시즘과 결합 하면서 평화가 가져올 풍요와 희망을 더욱 증 폭시키고 있다. 이에 반해 위트킨 작품의 수유 장면은 생명의 전달이나 풍요에 대한 기원이 아니라 악마적 주술행위 혹은 수유와 사정(射 精) 행위에 관한 병적 페티시즘(fetishism)으 로 보인다. 나아가 보통의 ‘포르노-다게레오 타입’(Lee, K. R, 2018, p.159, Figure 12)의. <Figure 12> Author. unknown(1855),. 관음(꽤淫) 욕망과도 그 욕망의 대상성에 있. Daguerreotype, Lee, K. R.. 어서 크게 차별된다. 위트킨의 예술을 누구보 다도 잘 이해하고 유지니아 패리(Eugenia <Figure 11> Amour-New Mexico, Witkin, J. P.(1987),. Gelatin Silver Print, artnet.. Parry)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위트킨은 화가 티치아노가 누드로 영적인 사람을 표현했다는 사실을 알고 흥미로워했다. 두 개의 양 머리로 된 이 악마 같은 ‘티베트’ 가면은 ‘사정거리 밖’의 사랑을 의미한다. 위트킨에 의하면 이 사진은 헛되이 낭비되는 에너지를 말하는 것으로, 사정된 정액과 죽은 원숭이에게 뿌려지는 엄마의 젖으로 표현되어 있다. 진정한 사랑은 모델의 팔에 작법성의 표지처럼 둘려 있는 티치아노의 누드화에 의해 암시되고 있는 것 같다. 그 외의 모든 것들은 기만을 의미한다 (Parry, E., 2001/2003, p.64). 티치아노(Tiziano Vecellio, 1488년경-1576)의 누드화와는 정반대로 대상에 투사되지 못하 는 성적 욕망과 잉태의 기쁨을 비난하는 듯한 이 수유 행위에는 선과 악의 방대한 목록들이 만들어 내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이 긴장감은 이 목록들 사이의 어딘가, 말하 자면 은폐되었던 것들의 역사 안 어딘가에서 존재의 ‘비천한 풍요’를 우리에게 가르치려 한다. 그래서 위트킨의 작품을 관통하는 불쾌하고 모호한 정서는 인간의 본성이 이중적임을 드러내 는 계기이다. 금기의 영역을 떠돌다가 삶과 죽음의 알레고리를 작동시키는 이 정서는 우리의 오래된 죄의식의 원천도 인간의 이중성으로부터 비롯한 것임을 강하게 환기한다. 리쾨르 (Ricoeur, P., 1960/2017, pp.232-233)가 지적하듯이, 인간의 본성이 이처럼 이중적이라는 것, 다시 말해서 인간은 원래 선하며 악 역시 뿌리가 깊다는 이 모호성은 “신의 금지 명령”에서 도 명백히 드러나며, 거기서부터 역사의 모든 우연성도 생겨나게 된다. 462.

(9) 위트킨은 이렇듯 거대 담론 위에서 신체 문제를 다루기에 대상을 정체성 측면에서 포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Biroleau, A., 2012, p.19). 위트킨이 자주 활용하는 가면도 자신의 존재를 감추면서 숨겨져 있던 본능을 분출하기에 적합한 소품이었다. 그리스인들도 가면을 통해서 익 명의 혹은 가상의 현실을 만끽했을 것이며,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자신이 제거되는 것”을 느꼈 을 것이다(Kim, S. W., 2019, p.369). 위트킨 작품에서 에로티시즘은 디오니소스 극장의 가면 과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 이 특별한 에로티시즘은 모델들이 혹독한 현실로부터 자신을 제거할 수 있게 도우며 문학과 신화의 주인공으로 거듭날 수 있게 해 준다. 앞서 언급했듯이, 위트킨에 게 소외된 신체성은 무엇보다도 죽은 자들과 존재론적 아웃사이더들에 대한 일종의 ‘상징적 보상’이다. 이 보상에는 개인의 기형이나 죽음에 대한 관찰보다는 기형과 죽음을 규정하는 역사 적 서사에 대한 공격이 담겨 있다. 중요한 점은, 위트킨이 창조한 에로티시즘은 이 보상의 강도 를 극대화하고 있으며, 작품 속 인물들을 탐미주의(耽美主義)의 대상으로 승화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탐미주의는 “생명체의 표현이 고통의 표현인 것과 마찬가지”(Adorno, T., 1970/2014, p.179)로 삶과 죽음의 가혹한 변증법적 투쟁에 의해 탄생한 것이다.. 4. 자연의 총체성으로서의 추(醜)와 그로테스크 추(醜)의 잠재성에 관해 놀라운 통찰을 지녔던 로젠크란츠(Karl Rosenkranz (1805-1879)는 그러나 19세기의 이분법적 사유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는 추를 자연의 절대성과 조화에 반대되는 것으로 파악하면서 추(醜)가 즐거움을 생산할 수 있다는 ‘모순’이 가능하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단 두 가지의 조건만 내세운다. 첫째는 ‘건강한 방식’으 로서, 한 예술작품의 총체성에서 상대적 필연성에 의해 합리화되면서 미(美)의 대립작용에 의 해서 지양되는 경우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즐거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추가 아니라 함께 나타나는 ‘쓰레기’를 스스로 극복하는 미이다(Rosenkranz, K., 1853/2010, p.72). 로젠크란츠 에게 미는 충만함이자 ‘승리’이며, 추는 결핍이자 ‘패배’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둘째는 ‘병적인 방식’인데, 어떤 시대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타락한 이유로 진실하지만 단순하게 표상되는 미를 파악할 힘이 없어서 여전히 예술에서 ‘뻔뻔한 부패의 자극적인 것’만을 즐기려는 경우이다. 그런 시대(병적인 방식으로 추가 생산되는 시대)는 모순을 내용으로 삼는 혼합 감정을 사랑한다. 둔해진 신경을 자극하 기 위해서 가장 극단적인 전대미문의 것, 불일치한 것, 어긋나는 것이 뒤섞인다. 정신의 분열은 추에서 풀을 뜯어 먹는 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정신에는 추가 그의 부정적 상태의 이상처럼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짐승 같은 마음과 검투사의 유희, 욕정 어린 흥분, 캐리커처, 감각적으로 마음을 이완시키는 멜로디, 엄청난 편곡, 문학에서는 똥과 피의 문학이 그런 시대에 속한다(Rosenkranz, K., 1853/2010, p.72). 로젠크란츠는 추가 단지 미에 대한 부정으로 생겨난다는 생각에 기초하여, 추에 대한 학문적 기술이 논리적 주요 논거를 오로지 미라는 실제적 이념에서만 빼내 올 수 있다는 점을 망각해서 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Rosenkranz, K., 1853/2010, p.190). 동시에 그는 ‘추’의 가장 큰 특징 으로 몰형식(沒形式)과 무정형(無定型)을 거론하면서 형태 없음, 혼돈, 부정확성, 기형화의 형태파괴 등이 미의 실질적인 대립요소라고 말한다. 이러한 견해는 미의 이항대립으로서의 추 에 관해 예리하게 통찰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현대적 입장에서 볼 때, 미의 무결점성이나 완전성에 위배되는 추라는 확신은 여러 가지 문제를 파생시킨다. 특히, 그로테스크에 관한 우리 의 확장된 이해를 견주어 볼 땐 더욱더 그러하다. 역시 19세기를 살았던 위고도 로젠크란츠와 마찬가지로 추를 미의 대립항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위고는 “미는 하나의 유형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추는 무수히 많은 유형을 가지고 있다.”(“Le beau n’a qu’un type ; le laid en. a mille.” Hugo, V., 2009, p.30)라고 강조하면서, 특히 추의 일원인 그로테스크는 “모든 우스꽝 스러움, 모든 기형성, 그리고 모든 추함을 취하게 된다.”(Hugo, V., 2009, pp.29-30)고 말한 다. 위고는 추와 그로테스크를 자연의 결핍으로 보는 로젠크란츠와 달리 그것들을 자연의 속성 으로 이해하고 있다. 󰡔크롬웰 서문󰡕의 핵심이 현대적 드라마(drame)란 미와 추, 숭고와 그로테 기초조형학연구 22권 2호 (통권104호). 463.

(10) 스크, 비극과 희극의 역사적 괴리감을 없애고 그것들을 모두 하나의 공간에 담아내는 예술이란 점을 기억해보자. 질서와 조화에 대한 정형성으로만 가능한 미의 실체는 전혀 현실적이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다양한 생성의 세계인 자연의 원리에 위배되는 것이다. 추의 감각적 일원이며 동시에 모든 형태의 추를 소유할 수 있는 그로테스크가 제공하는 정서와 이미지들로부터 우리 가 향유할 수 있는 미적 삶은 그래서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다(Hugo, V., 2009, p.24). 위고의 입장에서 추(그로테스크)는 오히려 ‘미(숭고)의 변질’이 아니라 ‘미(숭고)의 총체성’이며, 추라 는 자연으로부터 미가 이념적으로, 그로테스크라는 사건으로부터 숭고가 제한적으로 추출된 것일 뿐이다. 쾌와 불쾌의 조건에 의지하는 미와 숭고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매번 다르게 출현 한다는 점을 함께 고려해 보아도, 위고가 말하는 추와 미, 숭고와 그로테스크의 관계는 의미론 적으로 상반된 위치에 놓임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는 혹은 자연의 입장에서는 서로 교차하 고 서로 포함하는 관계에 가깝다. 키치(kitsch)의 추함이 누군가에겐 아름다움으로 다가오고, 장미꽃의 아름다운 자태 안에 체세포분열의 그로테스크한 광경이 숨어있는 것처럼 말이다. <Figure 13> Woman with. 한편, 카이저에게 그로테스크는 미나 숭고와 대립하고 있기보다는 그 모든 것들이 존립하고. the Head of Roses, Dali,. 있는 ‘현실’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로테스크는 있을 법하지 않은 것들을 창안하고, 이질. S.(1935), Oil on Wood, salvador-dali.. 적인 것들을 끼워 맞춰 병치시키며, 기존의 세계를 전복한다. 카이저는 꿈과 프로이트의 이론에 큰 관심을 가졌던 달리(Salvador Dalí, 1904-1989)의 작품을 예를 들며, 그로테스크는 초현실 적인 전율, 왜곡되고 뒤틀리고 분해되었으며, 구역질나고 혐오스러운 형상이 의도적으로 ‘사진 처럼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서 감상자가 그림 앞에 오래 서 있기도 힘들게 만든다고 설명한 다.(Kayser, W., 1981, p.171, Figure 13, 14) 여기서 카이저는 그로테스크를 프로이트의 언캐 니(uncanny)와 개념적으로 유사한 것으로 파악하는데, 그는 “갑자기, 순간적으로, 급격하게, 위협적으로, 종말론적(apocalyptic), 심연(abyss)으로부터” 등의 표현을 자주 사용하면서 그로 테스크의 출현이 의식(consciousness)의 배후인 동시에 원인이며, 의식의 절대적 위협인 거대 한 무의식(unconsciousness) 공간으로부터 비롯함을 암시한다. 따라서 그로테스크가 만드는. <Figure14> Leda-Los. Angeles, Witkin, J.. 의식(현실)의 붕괴는 “미지의 ‘무엇(es)’을 구체화한 것”(Kayser, W., 1981, p.171)이며, 그로. P.(1987), Gelatin Silver. 테스크의 창작은 “(현)세계에 깃들어 있는 악마적인 측면을 불러내고 그것을 정복하는. Print, artnet.. 일”(Kayser, W., 1981, p.185)로서, 의식의 세계와 의식하지는 못하나 존재하는 진정한 세계 (무의식) 간에 첨예한 갈등이 있음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해결될 수 없는 갈등을 통해서 무의식이라는 ‘정신의 자연’은 망각으로부터 자신을 구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로테스크에 대한 바흐친의 생각은 어떠한가? 로젠크란츠와는 확연히 다르게 이 분법적 논리에 의존하지 않는 바흐친은 그로 테스크를 역사로부터 단절된 하나의 사건으로 보지 않고 우주의 원리나 ‘민중’의 문화적 유 산 안에서 긍정한다. 여기서 ‘민중’은 모호한 집단성으로 표방되는데 보통은 개별화된 광대 나 바보, 악당 등의 부정적인 모습으로 찌그러 <Figure 15> The Birth of Venus,, Botticelli, S.(1485),. Tempera on Canvas, wikimedia. 진다. 이렇게 불명료한 의미역에 놓여 있기에 바흐친의 민중 개념은 통상적인 학문의 언표 들, 즉 인민이나 대중, 계급 등으로만은 분석. 되지 않는다(Choi, J. S., 2019, p.259). 또한, 그에게 그로테스크는 모든 축제와 카니발의 중심 이미지로서 민중 스스로 구축한 통일성을 띠고 있는데, 이 통일성은 정적인 성격의 단일성이 아니라 역사적인 영속성 안에서 느껴지는 통일성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어떠한 경건함도 없 는 독특한 축제의 성격, 진지함으로부터의 해방, 평등과 자유, 친밀함의 분위기, 외설스러움의 철학적인 성격, 어릿광대의 대관과 탈관, 유쾌한 카니발의 전쟁과 전투들, 패러디된 논쟁들, 칼싸움과 출산 행위의 연결, 목청 높여 외치는 저주들”(Bakhtin, M., 1965/2001, p.369)이 가 득하다(Figure 15, 16). 이 과정에서 그로테스크는 미와 동일한 공간에서 다투거나 대립할 464.

(11) 일이 없으며, 외부(지배 논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다. 바흐친의 그로테스크는 인 류의 역사 이전부터 존재해 온 오래된 유토피 아이며, 멈추지 않고 끝없이 갱신(更新)되는 자연과 우주의 이미지이다. 위트킨이 창조하는 그로테스크의 전반적인 분 위기는 카이저가 말하는 음산하고 ‘차가운’ 것 이다. 그러나 위트킨의 이미지 안에 숨어있는 퇴행적이고 해로운 힘은 어리석음과 웃음의 전 능성(全能性)을 공격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힘은 죽은 자들과 아웃사이더들에 빛을 비추며 풍요와 생성의 세계로 복귀시킨다. 이때 위트 <Figure 16> Gods of Earth and Heaven-Los Angeles,. 킨의 그로테스크는 일종의 ‘뜨거운’ 성질의 것. Witkin, J. P.(1998), Gelatin Silver Print, artnet.. 으로서 민중에겐 긍정적인 것이며, 축제의 관. 용과 광장 언어의 예찬과 욕설이 넘치는 디오니소스적 실천을 가능케 한다. 바흐친이 강조하는바, 긍정으로서의 그로테스크는 “모든 기존성(旣存性)과 기결성(旣決性)에 적대적인”(Bakhtin, M., 1965/2001, p.21) 형태로 공동체와 개인의 해방을 지지한다. (......) 그래서 카니발 언어의 모든 형식과 상징들은 변화와 갱신에 대해, 지배적인 진리와 권위에 대해 유쾌한 상대성 (相對性)의 의식(意識)에 젖어 있는 것이다. 독특한 <거꾸로〔逆듭性, à l’envers〕>, <반대로>, <뒤집은> 논리, 위와 아래(바퀴처럼), 앞모습과 뒷모습이 끊임없이 자리를 바꾸는 논리, 그리고 패러디와 풍자적 개작, 격하(格下), 모독, 익살스러운 대관(戴冠), 탈관(奪冠)과 같은 다양한 형식들이 그것의 특징이 된다. 민중문화의 제2의 삶, 제2의 세계는 <뒤집은 세계>처럼, 일상적인 즉 카니발 외적인 생활에 대한 패러디처럼 세워진다(Bakhtin, M., 1965/2001, p.34). <JOEL-PETER WITKIN, ENFER OU CIEL(조엘-피터 위트킨, 지옥 또는 천국)> 展의 책 임 큐레이터였던 안느 비롤로(Anne Biroleau)는 “모든 인간과 모든 시간 안에는 두 가지 동시 적인 청원(postulations)이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에게 또 다른 하나는 사탄에게 향해있다. 신 혹은 정신성에의 기원은 높은 곳으로 오르고자 하는 욕망이고, 사탄 혹은 동물성에의 기원은 밑으로 내려옴으로써 얻어지는 환희이다.”(Baudelaire, C., 1887/1968, p.1277; Biroleau, A., 2012, p.16)라는 보들레르의 시 「Mon coeur mis à nu」(벌거벗은 내 마음, 1887)를 인용하면 서 위트킨 사진을 설명한다. 실제로 그의 사진에 동시적으로 나타나는 이 ‘오름과 내려옴’은 두 가지 성질의 그로테스크가 보여주는 복잡한 감정의 교차로 인해 이미지로 실현될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예술은 보들레르의 시처럼 때로는 황홀하고 때로는 고통스럽다. 혐오와 영광이 신비롭게 뒤집힌 감각, 저주와 축복의 근친성, 육체적 기형이 육체적 완벽성으로 거듭나는 신화 적 체험, 도덕에 관용을 요구하며 신과의 대화를 창출하는 종교적 초월성.., 위트킨 작품에 담긴 이중성은 고통과 환희가 어지럽게 혼재되고 파편화된 세계를 표상한다. 어쩌면 이 세계야말로 우리의 선택 이전부터 존재해 왔으며, 우리가 불편하다고 해서 법칙을 바꾸거나 하지 않는 자연 의 가장 원초적인 상태일 것이다.. 5. 결론 및 제언 삶과 사색에 있어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위트킨의 예술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본성이 신성 (Le Divin)과 맺고 있는 복잡한 관계로부터 태어난다(“Mon travail s’appuie sur la nature de. l’homme et son rapport au Divin.” Witkin, J. P., (in Enfer ou Ciel), 2012, p.62). 위트킨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자신이 좋아하는 동물로 야만스럽게 재현함으로써 우리의 망각을 두려움으 로 바꿔 놓고, ‘전적인 타자’의 ‘초월적 신비’를 성공적으로 불러낸다(Parry, E., 2001/2003, 기초조형학연구 22권 2호 (통권104호). 465.

(12) p.8). 그래서 위트킨은 자신의 예술이 윤리의 역사나 이성의 권력 안에서 평가되는 것을 거 부하고 세계의 다양성과 총체성을 보존하는 ‘창조의 위대한 예술가’(Le grand Artiste de la Creation)로부터 심판받기를 원한다(Witkin, J. P., (in Enfer ou Ciel), 2012, p.61). 1990년에 위트킨은 머리와 몸통만 있으며 스 페인 영화에 무당으로 출연한 경력이 있는 한 남자를 알게 되었고, 그를 설득하여 모델로 세 우기 위해 멕시코시티로 갔다. 위트킨은 가시 관 두 개를 사서 폭풍우가 몰아치는 어느 날 벌 판으로 그를 데리고 갔다. 사진의 배경에는 양 <Figure 17> Satiro-Mexico, Witkin, J. P.(1990), Gelatin. Silver Print, artnet.. 치기에게 돈을 주어 양들을 풀어 목가적이고 신화적 분위기를 조성하였고, 가시관 두 개는 남자의 어깨에 팔 대신 걸치게 해 주었다. (Figure 17). 반인반수인 사티로스로 분하게 된 남자는 어떤 표정을 지을지 위트킨에게 물었 다. 위트킨은 “자신을 사람의 모습이 되기를 원하는 신이라고 상상하시지요.”(Parry, E., 2001/2003, p.72)라고 짧게 답했다. 위트킨은 이 남자의 현실이 아닌 존재의 어떤 상태를 표현 하려 했고, 이 사진은 “한 사람의 남자가 신과의 대화를 창출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를 둘러싼 시각적인 전기(傳記)”(Celant, G., 1995, p.10; Kim, T. W., 2007, p.106)가 되었다. 위트킨은 그리스도의 신비한 육체는 바로 ‘우리’라고 말하면서 “별보다, 지구보다, 달보다 더 영광스러운 우리, 그저 사는 것이 아니라, 찬란하게 살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Parry, E., 2001/2003, p.8)라고 묻는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가능한 모든 삶이 담긴 씨앗들을 받으 며, 인간은 성장하면서 열매를 맺을 씨앗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흐친이 강조하 듯이 인간은 자신 안에서 이 씨앗을 기르고 육성하면서 사물도 될 수 있고 동물도 될 수 있으며, 천사가 될 수 있고 하느님의 아들도 될 수 있다(Bakhtin, M., 1965/2001, p.563). 그렇게 팔과 다리는 없지만 사티로스(악당)가 되어 신의 세계에 진입하는 이 남자의 그로테스크한 존재감 은 인간의 선과 악의 경계를 지우며 니체적 초인으로 나아간다. 선과 악의 통념에 도전한다는 악당의 기능이야말로 우리의 관심사다. 감히 반박할 여지도 없이 절대적인 것으로서 온존하는 규범과 규칙, 질서의 경계선을 돌파하는 것, 문화와 법의 한도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움이 악당의 기능이다, 이렇게 가치 척도에 대한 전복을 꾀한다는 의미에서 악당의 자유는 니체적 초인과 비견될 만하다. 그래서 사회적 범죄 자나 히틀러와 스탈린 같은 역사적 독재자와 악당을 섣불리 동일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자기비판이 없는, 사회적 통념과 규정에 갇힌 악당은 진정한 자유의 고지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Choi, J. S., 2019, p.285). 위트킨의 사진을 통해 자유로운 감각으로 현현하는 육신들은 자연의 정신 속으로 회귀한다. 새롭게 거듭난 이 존재들은 인간의 불행을 규정하지도, 즐기지도 않는다. 삶과 죽음이 동일한 자연의 원리를 따르듯이, 우리가 평범하다고 부르는 것들과 동일한 미적 절차를 부여받았을 뿐이다. 이들은 아름다움의 탐닉에 있어서 도덕적이고 규정적인 것들에 철저히 무관심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들을 끝없이 상기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그렇게 위트킨이 보여주는 ‘불쾌 의 미’ 혹은 ‘미의 잠재적 상태’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점검하게 하는 힘을 갖추게 된다. 오랜 시간에 걸쳐 위트킨은 수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며 아름다움의 새로운 버전을 제시하고 있다. 아무리 예술사에 정통한 감상자일지라도 그것은 분명히 불쾌한 경험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시도가 유물론적 존재들을 ‘죽은 표본’에서 건져 내어 신비와 경이의 세계로 되돌 려 놓음으로써 삶의 비극적 의미를 캐묻는 우리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고 있음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466.

(13) References Adorno, T. (1970/2014). Asthetische Theorie (H, S. Y. Trans.). Moonji. Bakhtin, M. (1965/2001). Творчество Франсуа Рабле и народная культура средневековья и. Ренессанса (Lee, D. H. & Choi, K. Y. Trans). Acanet. Barthes, R. (1980/2007). La Chambre claire (Kim, U. K. Trans.). Dongmunseon. Baudelaire, C. (1968). Oeuvres complètes. Gallimard. (Original work published 1277). Biroleau, A. (Ed.). (2012). Joel-Peter Witkin. Enfer ou Ciel. La Martinière. Blume, A. & Serrano, A. (1993, April). Andres Serrano. BOMB 43. 36-41. Choi, J. C. (2014). Photographing the dead and the abject, the symptom of the real, and photography’s psychological momentums: on Andres Serrano’s The Morgue. Journal of. Contemporary Art Studies, 18(2), 95-143. Choi, J. S. (2019). The Cultural Politics of People and Grotesque : Mikhail Bakhtin and the Thought. of Becoming. Greenbee. Heartney, E. (1997, February). Postmodern Heretics. Art in America 85(2). https://andresserrano.org/images/series/the_morgue/Rat_Poison_Suicide@0,3x.jpg. https://arthur.io/img/art/0000017344afd098f/theodore-gericault/anatomical-pieces/large/theodoregericault—anatomical-pieces.jpg. https://s3.amazonaws.com/assets.saam.media/files/styles/x_large/s3/files/images/1989/SAAM-198 9.1_1.jpg?itok=oAPKFoRG.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6/64/Peter_Paul_Rubens_%281577-1640%29_ Peace_and_War_%281629%29.jpg.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7/79/Th%C3%A9odore_G%C3%A9ricault_-_T%C3 %AAtes_coup%C3%A9es.jpg.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0/0b/Sandro_Botticelli_-_La_nascita_di_ Venere_-_Google_Art_Project_-_edited.jpg/1200px-Sandro_Botticelli_-_La_nascita_di_Venere_-_ Google_Art_Project_-_edited.jpg. http://www.artnet.com/WebServices/images/ll00166lldvV0GFgJUM42CfDrCWvaHBOcBSeD/joel-pet er-witkin-amour,-new-mexico.jpg. http://www.artnet.com/WebServices/images/ll00178lld87EJFgCZECfDrCWvaHBOcCJmE/joel-peter-witk in-face-of-a-woman,-marseilles.jpg. http://www.artnet.com/WebServices/images/ll00249lld7NbJFgETeR3CfDrCWvaHBOcKSuF/joel-pete r-witkin-leda,-los-angeles.jpg. http://www.artnet.com/WebServices/images/ll127982lldoGbJFgpFeR3CfDrCWvaHBOcOnqF/diane-a rbus-untitled-(1).jpg. http://www.artnet.com/WebServices/images/ll1137475llgoKfDrCWBHBAD/joel-peter-witkin-abun dance,-prague.jpg. http://www.artnet.com/WebServices/images/ll1138243llgoKfDrCWQFHPKAD/joel-peter-witkin-go ds-of-earth-and-heaven,-la.jpg. http://www.artnet.com/WebServices/images/ll1138898llgoKfDrCWvaHBOAD/joel-peter-witkin-sati ro,-mexico.jpg http://www.artnet.com/WebServices/images/ll1557559llgoKfDrCWvaHBOAD/joel-peter-witkin-manwith-dog,-mexico-city.jpg. https://www.moma.org/media/W1siZiIsIjIwODE4MyJdLFsicCIsImNvbnZlcnQiLCItcXVhbGl0eSA5MCAtcm VzaXplIDIwMDB4MjAwMFx1MDAzZSJdXQ.jpg?sha=4b82a21100f98362. https://www.salvador-dali.org/media/upload/cataleg_pintura/MITJA/0411.jpg. http://www.artnet.com/WebServices/images/ll1138898llgoKfDrCWvaHBOAD/joel-peter-witkin-sati ro,-mexico.jpg. Hugo, V. (2009). Préface de Cromwell. Larousse. (Original work published 1936). Kayser, W. (1957/1981). The Grotesque in Art and Litterature (Weisstein, W. Trans). Columbia University Press. 기초조형학연구 22권 2호 (통권104호). 467.

(14) Kim, S. W. (2019). A Study on the Grotestesk and the Nietzsche's ‘Tragedy’ in Victor Hugo. Journal. of Digital Convergence, 17(2), 363-371. Kim, T. W. (2007). A study of visual paradox expressed in Joel Peter Winkin's photographic portraits,. The Society of Modern Photography & Video, 10, 101-117. Lee, J. G. (2016). A Study on Joel-Peter Witkin`s `Portraiture-Still life Photography` : Focused on Mythology, Symbols and Parody. Journal of the Association of Western Art History, 45, 243-267. Lee, K. R. (2018). Representation of Sexual Fantasy Appearing in the Modern Photograph Art. Korean. Bulletin of Art History, 50, 153-178. Parry, E. (2001/2003). Joel-Peter Witkin (Kim, W. R. Trans.). Youlhwadang. Parry, E. (2008). Joel-Peter Witkin. Thames & Hudson. Ricoeur, P. (1960/2017). La Symbolique du Mal (Yang, M. S. Trans.). Moonji. Rosenkranz, K. (1853/2010). Aesthetik des Hässlichen (Cho, K. S. Trans.). Nanam. Rutberg, J. (Ed.). (2014). Twin Visions: Jerome Witkin & Joel-Peter Witkin.. Jack Rutberg Fine Arts INC.. 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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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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