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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학교 BK21+ 글로컬 역사문화 전문인력 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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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방사 연구의 한 방법으로서 로컬리티 연구

차철욱(부산대)

<목차>

Ⅰ. 머리말

Ⅱ. 지방(사)와 로컬(역사)

Ⅲ. 지역정체성과 로컬리티

Ⅳ. 역사시간과 로컬시간

Ⅴ. 지방사와 로컬연구의 대상으로서 마을

Ⅵ. 맺음말

Ⅰ. 머리말

그동안 국민국가에 포섭당하면서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던 지방은 글로벌화에 의해 그 위상 이 두 가지 가능성으로 나타났다. 하나는 초국가적 자본과 문화의 위세에 눌려 로컬이 파편화 되고 거기에 흡수될 가능성이 있고, 다른 하나는 국가 중심적 패러다임에 의해 가려져 왔던 로컬리티를 재발견하고, 지방이 능동적으로 세계화를 주도할 가능성이다.1) 그동안 사회과학에 서 연구대상으로 하던 로컬리티를 인문학에서 가져 온 이유는 인간의 삶터인 로컬에 대한 관 심 때문이다.

‘로컬리티 인문학’이라는 주제를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지방사 연구에 천착하고 있던 필자 로서는 두 과제를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가 고민거리였다. 이를 위해서는 로컬, 로컬리티, 지방 /지역 등 다양한 개념을 정리하지 않으면 어려운 여정이 될 것으로 생각되었다. 로컬리티 연 구를 목적으로 한 역사학자로서 필자는 지방사 연구의 다양한 방법이나 연구대상 등에 대한 고민은 필수였다. 새로운 방법론을 모색하기 위해 정리해 본 글이 「지방성 연구의 이론적 검 토-지방사 연구를 중심으로-」(인문과학연구, 21, 2009)였다. 로컬리티=지방성으로 이해하고, 연구 대상으로 삼는 지방의 ‘다양한 지방성’ 탐색이 지방사 연구의 목표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이 연구가 이후 나의 로컬리티 연구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가에 대해 반성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수년이 지나 다시 ‘지방사 연구의 한 방법으로서 로컬리티 연구’를 고민하게 된 것은 로컬 리티를 연구하는 역사학자의 의무감 같은 것이다. 로컬리티 연구를 위해서도, 지방사 연구를 위해서도 두 연구 사이의 관계를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동안 로컬리티 연구는 다양한 성과 가 축적되고, 논의도 좀 더 풍부해졌다. 과거의 성과에 대해 다시 읽어보면서 비판적 글쓰기 를 해 보려고 생각한다.

그동안 필자는 로컬리티 개념을 인문지리학에서 강조하는 ‘장소성’ 즉 장소애착으로 이해하 고 연구하였다. 이를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소재로 한국전쟁 당시 부산에 정착한 피란민들 을 선정하였다. 국가의 폭력에 의해 강제로 자신의 삶터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피란민들의 생 활에서 그들의 장소성 획득이 어떻게 가능했는가를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특정 공간(소규모 마을)과 피란민들의 관계, 피란민들과 피란민들, 아니면 타인들과의 관계를 주로 분석하였다.

1)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2007), 「로컬리티의 인문학(아젠다)」,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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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피란민들이 생활한 공간과 그 속의 구성원들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이 과정에 서 인문지리학, 구술사 등 인접 분과학문들을 지방사 연구에 활용할 수 있었다는 점은 지금도 개인적으로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피란민들이 모여 사는 마을의 전체사, 마을 의 정체성을 찾으려는데 관심이 집중하면서 너무나 많은 피란민들 이야기를 놓치는 오류도 발 생했다.2)

본고는 그동안 지방사 연구에서 연구대상으로 삼는 지역/지방과 관련한 단위에서부터 논의 를 시작해 보려고 한다. 논자들의 용어선택은 본인의 몫이지만 현재 논의 중인 단위들의 개념 을 로컬이라는 차원에서 새롭게 이해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지방사 연구의 지향점인 ‘정체성’

논의와 관련해 이와 유사한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는 ‘로컬리티’ 개념의 이해방식과 연결해 현 재 지방사 연구가 지향해야 할 논의를 좀 더 풍부하게 만들어 보려고 한다. 그리고 로컬리티 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인 시간을 역사연구에서의 시간과 비교하고, 역사연구에서도 시간을 어떻게 고민해야 할지를 검토한다. 마지막으로 마을연구를 사례로 로컬연구의 가능성을 검토 하고, 그동안 진행되었던 연구가 지닌 문제점을 자기비판 형식으로 검토하려고 한다.

Ⅱ. 지방(사)와 로컬(역사)

1990년을 전후 해 지방사 연구가 새로운 역사학계의 연구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이것은 단 순한 연구대상의 확장만이 아니라, 지방의 시선에서 역사쓰기라는 점에서 기존의 국가 중심 역사서술에 대한 하나의 저항이었다.

이런 현상은 지방에서 역사연구를 하던 전문연구자들의 생산과 관련 있다. 지방에서의 생활 과 체험이 시선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한편으로는 양산되는 지방 연구자들의 생존방식의 모 색과도 관련 있었다. 가시적인 형태로 다양한 학술행사나 연구단체들이 구성되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지방사 연구와 관련해서 가장 영향력을 끼친 사건은 1998년 ‘역사문화학회’의 창 립이었다. 이 학회는 “우리 역사·문화에 대한 연구는 중앙 무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대단히 다양하고 복잡다기하며 생동감 넘치는 우리 역사·문화의 현장들이 무시되어”3)왔다고, 국가사 중심의 역사연구에 반기를 들었다. 역사문화학회는 학술지 지방사와 지방문화 창간 호와 2호의 특집을 지방사연구, 지방문화 연구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이론적인 시도를 하였다. 이 학회의 지방사 연구와 관련한 영향력은 학술지 창간호가 2쇄를 출판했다는 점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역사문화학회의 지방사 연구를 위한 노력은 학술지 간행과 몇 차례 심포지엄에 머물지 않았 다. 2008년 출판한 지방사연구입문(민속원, 2008)은 2년간의 노력 끝에 연구자들에게 읽혀 지게 되었다. 이 책은 지방사의 이론적 검토, 지방사 연구대상, 연구방법 등을 담고 있어, 지 방사 연구를 위한 최초의 체계적인 입문서라 할 수 있다.

필자가 역사문화학회의 지방사 연구 업적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먼저 지방사 연구의 필요 성과 개념정리가 이후 지방사 연구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활발 하게 진행된 지방사 연구, 특히 지방지 편찬 사업으로 연구성과가 축적될 때,4) 역사문화학회

2) 피란민 연구에서 피란민들의 정착에만 관심을 가지다 보니, 정작 그들이 지니고 있는 전쟁에 대한 트 라우마, 이별, 가족, 젠더 등 다소 개인적이고 정착이라는 주제에서 부수적으로 이해된 소재들에 대한 관심은 적었다.

3) 역사문화학회(1988), 「창간사」, 지방사와 지방문화1, 5쪽.

4) 허홍범(2003), 「지역사 연구와 지방지 편찬-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역사와 현실48, 한국역사연구 회, 이영호(2010), 「지방사에서 지역사로-인천을 사례로 하여-」, 한국학연구23, 인하대 한국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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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성과가 중요한 길잡이가 되었다. 이러한 연구성과는 역으로 위 학회에서 정리된 지방/지역 의 개념, 지방사/지역사 연구의 지향점에 대한 논의를 좀 더 풍부하게 하는 디딤돌 역할을 하 였다.

지방사/지역사라는 명칭 문제는 지방/지역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려있다. 대체로 두 용 어를 생산해서 호명하는 주체가 중요시 되고 있다. 고석규의 정의에 따르면 ‘지방은 중앙에 맞선말로서...지방은 중앙에 종속된 개념으로, 반면에 지역은 그 자체 독립된 개념’으로 이해 한다. 그래서 지방은 국가 내에 존재하고, 지역은 국가의 경계를 벗어날 수 있다고 이해하였 다.5) 이후 연구자들의 지방/지역 이해 방식은 고석규의 논의에서 출발하고 있다. 지방사/지역 사 중 어느 용어를 사용할 것인가는 논자들에 따라 다르다. 고석규를 비롯해 지방(사) 용어를 사용하는 논자들은 지방이 한국의 한 부분이라는 점, 그래서 지방사가 한국사의 영역에 포함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반면 지역(사) 용어를 사용하는 논자들은 지방이 중앙에 종속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지역단위의 독자성을 드러내기 위해,6) 또 지방은 전근대 중앙에서 헤게모니 를 합법화하기 위해 만든 ‘타자’이기 때문에, 이를 해체하기 위한 실천 담론으로,7) 그리고 지 방이라는 용어는 국가가 만든 일국적 행정적 의미로서 오늘날처럼 과거 지방으로 호명되었던 역사적 경험이 다양한 공간들을 합쳐 광역화되는 곳에서는 단일한 지방정체성으로 설명하기 곤란하기 때문에 생활공간으로서의 의미에서,8) 지방(사)가 한국(사)의 관점에서 지역을 이해하 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국사를 넘어서는 역사를 상상하기 위해서,9) 등 여러 가지 근거를 두고 있다. 지방을 사용하는 학자는 지방이 지니는 위계적인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반대로 지역을 사용하는 학자는 지방이 지니는 종속적 의미에 대한 ‘거부반응’과 지역이 함의하는 수 평적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위에서 진행되는 논쟁은 용어만 다를 뿐 지방/지역의 이해방식은 거의 동일하다. 이 러한 이유는 현실에 근거한 논쟁이라기보다 개념을 둘러싼 담론 수준에서만 논의되고 있기 때 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는 실제로 어떤 힘들이 작동하고 있는가. 위계적인 질서가 지 방에만 작동하고, 지역이라 불리는 곳에는 작동하지 않는가, 수평적인 힘들은 지방에는 작동 하지 않고, 지역에만 작동한다는 말인가? 이런 용어상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 로컬리티 연구단 에서는 ‘로컬(local)’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게 되었다. 로컬의 단위, 즉 스케일은 전체와 관련하 여 상대적 개념으로 부분(국지), 작다라는 의미로 설정하였다. 로컬은 절대적으로 규정된 스케 일이 아니라 전체와 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대타적 개념이다.10) 따라서 ‘로컬’이라는 용어는 삶 의 터라는 근원적인 대자적 속성(장소성)에서 출발해, 전체를 이루는 일부분으로서의 국지(지 역)적 속성과 중심에 대비되는 주변부(지방)적 속성이라는 대타적 의미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개념이다.11) 이처럼 지방/지역을 로컬로 이해해 볼 때 우리가 생활하는 ‘여기’는 장소성(삶

소, 윤택림(2012), 「지방지(地方誌)와 구술사: 경기남부 지방지를 중심으로」, 구술사연구3-2, 한국구 술사학회.

5) 역사문화학회 엮음(2008), 지방사연구입문, (서울:민속원), 14~15쪽.

6) 허홍범, 같은 논문, 108쪽.

7) 이훈상(2001), 「미시사와 多聲性의 글쓰기」, 지역사 연구의 이론과 실제(한국사론 32), 국사편찬위 원회, 72~76쪽.

8) 이영호, 위의 논문, 298쪽.

9) 허영란, 위의 논몬, 36쪽.

10) 본 연구단의 출발 당시에 로컬은 지방의 의미가 강하였다. 본 아젠다의 문제의식이 중앙과 지방의 위계관계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구 진행과정에서 수평적이고 가치중립적인 의미인 지역을 여기에 포함시켰다(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2011), 「로컬, 로컬리티 개념정리」).

11) 이상봉(2010), 「지역과 지방, 로컬과 글로벌」, 황해문화 69, 새얼문화재단,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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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 국지성(지역성), 위계성(지방성)이 동시에 작동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지방은 원천적으로 주어진 공간이 아니고 시대와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구성되고 생 산된다.12) 지방은 단위가 고정되지 않으며 폐쇄된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체적 인 지방사 연구자들은 특정 지방의 독자성을 확인할 수 있는 전체사 서술을 지향하고 있다.

필자가 이해하는 로컬의 구성방식을 참고로 하면 지방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필자는 로컬 구성방식을 들뢰즈가 제안한 전체와 부분의 논리로 접근한다. 들뢰즈는 인간의 신체를 예를 들고 있다. 인간의 신체는 다양한 분자(장기)로 구성되며, 이 분자들 사이의 상호 작용에 의해 전체로서의 신체가 구성됨을 설명하였다.13) 분자들의 상호작용은 분자 내에 포함 된 속성인 ‘변용의 능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다시 정리하면 분자인 개체는 내적인 능력에 의 해 상호작용의 과정을 거쳐 전체를 구성한다. 이 논리를 로컬에 적용시키면, 로컬은 개체의 상호작용에 의해 구성되고, 이 로컬은 다시 전체를 구성하는 하나의 개체가 된다. 이런 점에 서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으로서 로컬은 다양한 개체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구성되며, 부분으로 서 로컬은 또다시 상호작용을 통해 전체를 구성한다. 그리고 로컬은 그 내재적 속성에 의해 다른 개체들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 다.14) 개체의 내재적 속성인 변용의 능력은 절대적으로 규정된 본질이나 규범에 따라 움직이 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움직이며 새로운 개체를 구성한다. 그래서 이 과정에서 변용의 능력 은 상호작용 과정에서 得이 되는 관계를 가질 수도 있지만, 害가 되는 관계도 가질 수 있 다.15) 이를 로컬의 현실로 가져 오면 로컬에서 진행되는 상호작용은 개체들 사이의 수평적 관 계를 만들어 낼 수도 있지만, 국가나, 자본이 로컬을 강제하는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즉 개체 의 내재적 가치를 파괴하는 관계도 만들어 낸다.

이처럼 로컬, 즉 지방/지역은 이 보다 상위의 단위를 구성하는 하나의 개체이기도 하지만 그 내부에도 다양한 개체가 존재한다. 개체란 인간, 자연물, 커뮤니티 등 다양할 수 있다. 우 리가 로컬을 다양하다고 하는 것은 개체의 다양성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부산이라는 로컬을 상 정할 때, 로컬 개체 혹은 구성원은 필자인 나, 나의 가족, 나의 직장 등 나와 관련해서만도 다 양한 개체가 존재하며 층위 또한 다양하다. 이런 이유로 부산시 정책과 관련해 제안을 한다고 할 때 나와 관련한 개체를 비롯한 다양한 개체의 입장에서 나오는 반응은 다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로컬의 다양성과 다층성은 개체의 다양성, 다층성에 연유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런데 근대의 논리는 로컬의 내적 가치를 유지하기보다, 국가나 자본의 논리를 로컬에 강요함 으로써, 전체가 부분을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인식하지 않고 위계적 혹은 단절적인 관계로 만 들었다. 지방/지역을 로컬로의 인식 전환은 전체에 대비되는 부분, 그 내부의 다양한 개체의 존재로 인한 다양성과 다층성, 개체들의 상호작용,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에 관심을 가지게 한다. 지방/지역 연구의 확장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Ⅲ. 지역정체성과 로컬리티

그러면 지방사 연구는 무엇을 지향하는가? 역사문화학회는 지방사를 세 가지로 정의하였다.

12) 유철인 외(2004), 인류학과 지방의 역사(서울:아카넷), 22쪽.

13) 질 들뢰즈 지음, 박기순 옮김(1999), 스피노자의 철학(서울:민음사), 182~183쪽.

14) 차철욱(2016), 「1970-80년대 농촌근대화와 로컬시간의 재구성-창평일기 분석을 중심으로-」, 지 방사와 지방문화 19-2, 역사문화학회, 264~265쪽.

15) 조현수(2015), 「들뢰즈의 ‘존재론적-윤리학’: 들뢰즈의 ‘정동의 윤리학’과 그 존재론적 근거로서의

‘존재의 일의성’」, 동서철학연구 78, 한국동서철학회, 581~5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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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화된 전국사’ ‘본래의 지방사’ ‘관계적 관점’으로서의 지방사로 구분하고 있다.16) 이 가운 데 대부분의 지방사 연구자들은 ‘본래의 지방사’ ‘전체사로서의 지방사’를 지향하고 있다. 이 것은 영국 레스트학파 핀버그가 규정한 ‘지방공동체의 기원, 성장, 쇠퇴 그리고 몰락’을 서술 하는 학문으로 정의한 데 연유한다. 핀버그가 생각한 지방은 ‘상대적으로 자족적인 사회 지리 적 단위’였다.17) 레스트학파가 생각한 지방사는 독자적인 단위인 지방의 공동체 역사였다. 이 의 영향을 받은 지방사 연구자들은 ‘지방공동체의 정치구조, 사회구조, 인구변동, 경제발전, 문화가치의 변화 등 다각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전체사’18) ‘통합된 총체를 구성하는 독립된 지역의 역사’,19) 지역 단위적 독자성을 드러내는 역사,20) 주민들이 정체성과 연대의식을 공유 하는 역사21) 등 다양하게 전체사를 규정짓는다. 이를 정리하면 전체사로서 지방사는 지역정체 성 연구와 연결되고 있다. 알게 모르게 역사학자들은 보편화를 추구하는데 익숙하다. 전체사 의 지향이 자칫 획일적인 논리를 찾으려는 수고로운 작업을 할 우려가 있다.

최근 정체성 논의는 동일성으로 정의되는 고전적인 의미와 달리 주관성, 역동성, 다양성, 가 변성을 바탕으로 구성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렇지만 지역정체성연구는 공동체를 구성 하는 개체들이 무엇이 같은가에 관심을 가지지, 무엇이 다른가에는 관심이 없다.22) 그 결과 끊임없이 차이를 포섭하면서 동일화를 추구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동일화 과정에서 연구 의 주제로 부상되지 못하고 사라져 가는 것들이 적지 않다.

여기에 대해 허영란은 지방이나 지역이 단일한 틀로 설명하기에는 내부가 너무 다층적이고, 지역간의 다양성이 존재하는 혼성적 공간이기 때문에, 지방민들이 삶을 영위하면서 구성하는 장소성 연구를 주장하였다.23) 한편 차철욱은 지방성 연구를 강조하였다. 지방성을 다양성, 역 동성, 장소성 등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해하였다. 하지만 지방성을 다른 지방과 구별되는 고 유성 혹은 차별성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은 한계이다.24)

그동안 지방사 연구는 지방 전체사 서술을 통해 단일한 역사의식을 만들어 내려는 획일적인 노력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체성, 장소성, 지방성을 발견하려는 시도들이 진행되었다. 기존과 다른 시도들이 다양한 지방의 현실을 반영한 연구들이어서 의미있는 작업이기는 하지만, 여전 히 지방민들이 공유하는 동일한 의미를 만들어 내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여기에 포섭되지 못하 는 개체들에 주목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특히 최근에는 행정구역의 인위적인 개편으로 지 역이 지닌 역사성이 무시되는 경향이 강하고, 자본에 의한 신도시의 개발, 전통적인 마을들의 재개발로 인한 파괴 등으로 역사에 기반한 공유의식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지방사 서술을 통해 과거보다 현재의 삶을 기록함으로써, 미래에 새로운 공유기억을 만 들 수 있는 도구로 삼으려고 하는 노력들은 의미있다고 생각된다.25)

16) 역사문화학회, 지방사연구입문, 19~21쪽.

17) 강성호(2004), 「포스트 모던 역사학과 지방사」, 전남사학23, 전남사학회, 257쪽.

18) 정진영(2000), 「영남지역 지방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 한국지방사연구의 현황과 과제(서울: 경인 문화사), 154쪽.

19) 역사문화학회, 지방사연구입문, 20쪽.

20) 허홍범, 앞의 논문, 111쪽.

21) 이영호, 앞의 논문, 300쪽.

22) 임병조(2009), 지역정체성과 제도화(서울: 한울), 46~48쪽. 최근의 지역정체성 논의는 고정되고 변화되지 않는 것으로 보지 않지만, 여전히 차이를 포함하면서 동일화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개념이 다.

23) 허영란, 앞의 논문, 64쪽.

24) 차철욱(2009), 「지방성 연구의 이론적 검토-지방사 연구를 중심으로-」, 인문과학연구 21,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 203쪽.

25) 최근 경기도 지방을 시작으로 지방지 편찬사업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인구증가로 신도시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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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재의 지방사연구는 지방이 국가와의 위계적인 관계, 수평적인 관계를 포함하고 있 다고 전제하고 있지만, 전자와 관련해서는 국가에 의한 포섭과정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 리고 후자의 지역정체성 혹은 장소성 연구는 그 내용 찾기에만 머물러 있다. 한걸음 더 나아 가 국가에 의한 포섭, 지역정체성과 장소성 구성 과정이나 그것이 역으로 지방 사람들이 삶의 방식을 재구성하는 방식에 대한 논의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지방사 연구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한정할 것인가에 명확한 대답을 할 수는 없으나, 실천적인 대응방안에 대한 고민을 지방사 연 구에 포함시킴으로서 연구의 지평을 확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로컬리티 연구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고민을 포함하고 있다. 로컬리티 연구는 기본적으로 새로운 이론을 정리하면서도, 이를 토대로한 사회적 실천과 결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아젠다에서는 로컬리티를 포괄적이고 다층적인 맥락에서 “공간적 지리적으로 국가의 중심성 과 대비되는 새로운 분석단위로서 일정한 장소에서 시공을 가로질러 출현하는 다양한 사회적 현상과 세계관의 총체”로 규정하였다.26) 이 개념규정으로는 로컬리티를 너무 위계적으로 이해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2011년 논의를 거쳐 새롭게 정의하였다. “로컬리티란 일차적으로 로컬이 지닌 가치 혹은 속성을 의미한다...로컬리티는 인간들의 다양한 관계성의 총체이며, 매 우 유동적이고 중층적이며, 권력적이기도 하면서 가치지향적이다.”27)

로컬리티 연구의 과정에서 로컬리티의 생성, 발현과 관련해 좀 더 깊이 있는 연구들이 생산 되었다. 차윤정은 아젠다에서 제시한 로컬리티 개념인 ‘로컬이 지닌 속성’에 천착해, 속성이 단순히 고유한 성질이 아니라, ‘부단히 변화하는 로컬의 다양한 운동성의 총합’으로 이해하면 서 로컬 속성을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것을 강조한다. 우선 하나는 로컬 자체가 지닌 속성 으로 인간의 인지여부와 상관없이 존재하는 것과 밖으로 드러남으로써 인식될 수 있는 것으로 구분한다. 그래서 전자를 잠재적 로컬리티, 후자를 발현되는 로컬리티로 규정짓는다. 로컬리티 란 이 양자의 총합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잠재적 로컬리티는 특정 국면 즉 특정 장 소와 시간, 사회구조, 인간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다양한 양상으로 발현된다. 잠재된 로컬리티 는 발현된 로컬리티를 통해 모습을 드러내고, 계열화에 의해 의미를 갖는다. 두 가지 로컬리 티는 항상 ‘지금 여기’에 공존하면서 잠재된 로컬리티는 발현된 로컬리티에 영향을 주고, 발현 된 로컬리티는 또다시 잠재된 로컬리티로 저장되는 반복적인 과정을 밟게 된다. 로컬리티 생 성의 반복 과정은 동일한 원본의 반복(복사)가 아니라 차이를 지니는 독립된 개체로서 로컬리 티를 만들어 낸다고 이해했다.28)

로컬리티는 로컬의 속성으로 로컬을 움직이는 운동성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것은 앞서 로 컬을 설명할 때 로컬이 전체를 구성하기 위해 상호작용하도록 하는 ‘변용의 능력’과 통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규정지은 로컬리티에 대해 류지석은 기층적 요소, 위계적 요소, 인식적 요소29) 등으 로 유형화 할 것을 제안했다. 기층적 요소란 로컬리티가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물리적

이 많아진 상태에서 전통에 기반한 정체성 찾기를 위한 지방지 편찬은 어려운 현실이다. 하지만 지방 지 편찬사업은 단순히 과거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기반으로 미래를 기획한다는 것도 의미있는 작업으로 보인다(윤택림, 앞의 논문, 205쪽).

26)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2007), 「로컬리티의 인문학(아젠다)」, 1쪽.

27)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2011), 「로컬, 로컬리티 개념 정리」

28) 차윤정(2015), 「비동일성의 관점에서 본 로컬리티와 표상」, 한국민족문화 57, 부산대 한국민족문화 연구소, 344~354쪽.

29) 인식적 측면의 로컬리티 유형은 로컬리티에 내재된 인간 존재성의 본질적 가치의 측면과 관련있는 것으로 다원성, 소수성, 타자성 등의 포스트모던적 가치와 연결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가치가 지방사 연구와 관련성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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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공간/장소와 연결되어 있다. 삶의 터전인 공간은 인간과 관계를 맺으면서 로컬리티를 생성 한다고 보았다. ‘로컬다움’, 지역성, 장소성이나 장소정체성은 이와 관련한 로컬리티의 한 유 형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위계적 요소는 로컬리티를 로컬 내부의 관계만으로 구성되지 않고, 외부와의 다양한 관계들 속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자본주의와 국민국가의 등장으 로 중앙의 중심화 동일화 논리가 강화되는 과정에서 로컬은 국가 혹은 중앙과 위계적인 관계 속에 위치하였다. 이러한 관계 형성 과정에서 로컬은 포섭되기도 하지만, 변용되거나 저항의 힘들을 만들어 낸다.30) 위계적인 관계에 의해 생성되는 대표적인 가치로는 주변성, 탈중심성 등이다. 그런데 기층적인 요소와 위계적인 요소는 구별될 수 없다. 유형화의 필요 때문에 논 리적으로만 구분한 것이다. 로컬리티의 기층적 요소인 장소성과 결합된 주변성, 탈중심성의 가치는 로컬이라는 구체적인 삶의 장소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로컬의 질서가 국가나 자본의 동 일화 노력에 균열을 가하고 포섭되지 않으면서 차이와 다양성을 만들어 내는 역동성 혹은 로 컬의 가능성으로 설명될 수 있다.

따라서 이렇게 정의되고 유형화되는 로컬리티에 근거해 지방사를 볼 때 장소를 매개로 한 장소애착, 장소성은 그 자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와의 관계, 즉 국가나 글로벌 자 본과의 관계에서 생성되는 탈중심성의 가치와 결합하고 있다. 이렇게 구성되고, 변화하는 로 컬리티는 로컬의 가치로서, 로컬을 로컬답게 만드는 에너지(운동성)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리 고 로컬리티는 드러나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잠재되어 있는 것도 있다. 잠재된 가치는 지금 가치있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가치없는 것이 아니다. 로컬리티 연구는 여기에도 관심 을 가진다. 그래서 그동안의 지방사 연구가 장소(정체)성의 생성과정, 위계화의 현상 분석에만 머물렀다면 로컬리티연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과정에서 생성되는 지방의 힘을 찾고, 이 힘이 역으로 로컬 구성원들의 삶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지에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지방의 전체사 연구에서 누락된 당장 중요시 되지 못하는 가치에도 항상 주목한다. 이 과정은 지방사 연구의 지평을 확장하는데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Ⅳ. 역사시간과 로컬시간

그렇다면 로컬리티를 구성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로컬리티인문학연구단은 이것을 연구의 편 의를 위해 인위적으로 구분하였다. 사유, 시간, 문화, 공간, 표상 등이다. 로컬리티의 구성요소 들은 로컬리티가 드러나는 대상이기도 하지만 로컬리티를 생성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특히 르 페브르가 공간과 시간을 사회적 생산물로 보고, 시간이 공간을 생산하는 에너지로 이해한 것 처럼31) 시간은 로컬리티 구성의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그러면 역사연구에서 시간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역사연구에서 시간은 변화 그 자체인가 아니면 변화를 주도하거나 매개하는 요소인가. 역사연구자로서 시간에 관심을 가진 대표적인 연구자는 페르낭 브로델이었다. 그는 지중해와 그 주변지역을 연구하면서 역사적인 변화를 시 간흐름과 관련하여 장기, 중기, 단기로 구분하였다. 즉 변화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순환을 근거 로 한 것이다. 여기서 브로델은 구조를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오래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건축의 골격과 같은 것으로 정의를 내렸다.32) 그래서 장기 지속적인 것으로는 자연지리적 환

30) 류지석(2009), 「로컬리톨로지를 위한 시론」, 로컬리티, 인문학의 새로운 지평(서울: 혜안), 26~28 쪽.

31) 르페브르 저 양영란 옮김(2011), 공간의 생산(서울: 에코리브르), 155쪽.

32) 김응종(2006), 페르낭 브로델-지중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서울: 살림), 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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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처럼 오랜 시간동안 변화하지 않는 구조의 순환시간(구조사), 중기는 집단 및 집단 형성의 역사로 경제, 국가, 사회, 문명 등이 순환하는데 걸리는 시간(국면사), 당대인들이 체험하는 즉 사건과 같은 것처럼 짧은 시간 내에 반복되는 시간(사건사)으로 구분하였다. 브로델은 철저히 이러한 세 가지 요소 가운데서도 장기지속적인 구조가 가장 심층에서 중기와 단기의 구조를 통제하는 기능을 한다고 보았다. 바다-조류-파도의 구분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 에서 그는 구조를 능동적인 행위의 주체로 본 것이다.33) 브로델이 언급하는 시간지속이란 시 간 자체의 물리적 지속을 설명하기 위한 용어가 아니라, 연구자가 어떤 사물이나 사항의 특성 이 지속되는 시간을 기준으로 나누어 설명하기 위한 시간 길이, 즉 사물의 특성이 지속된 시 간의 단위와 폭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34) 구조란 하나의 순환주기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 구조에서의 시간은 동일하게 취급된다. 장기구조사는 지방사연구에도 도입되고 있다. 지방사 연구가 지방의 전체사를 지향했기 때문에, 이를 위한 시간은 장기사적인 탐구가 필요하다는 점이 강조되어 왔다.35) 역사연구는 장기사를 전제로 국면사와 사건사가 논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역사연구자들은 보통 시간을 ○○시대, ○○세기, ○○왕대 등과 같이 시기구분으로 이해하 고 있다. 이것은 브로델의 말을 빌리면 어떤 특징이 지속되는데 걸리는 시간, ‘순환주기’에 따 른 구분이다. 역사연구자들마다 연구의 목적이 과거의 사실을 복원하는 작업이든, 현재적인 시각에서 과거를 소환하기 위한 목적이든 관계없이 연구 대상 시대의 역사상을 복원하려는 노 력은 구조사적인 시각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브로델이 일정한 구조 내 순환주기 동안에는 시간이 변화없이 지속된다고 해서 상대적으로 단기적인 주기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 지만 역사연구자들은 단기순환이나 사건사를 대체로 장기시간/구조사에 종속시켜 해석하였다.

일반적으로 지방사 연구나 국가사 연구나 별 차이 없이 시간 탐색은 구조, 국면, 사건이라 는 시간의 관계에서 ‘변화’에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그동안 역사연구에서 시간은 연구자가 만 들어 낸 구조적인 시간에 주목하였다. 그래서 개인/개체의 시간에 그다지 중요한 의미를 부여 하지 못했다.

서양의 근대역사학 연구방법론의 흐름이 전체사를 지향하는 구조사의 기획에 반발하면서 역 사를 만드는 주체로 인간을 내세우려는 노력을 진행되었다. 구조주의 역사학에서 “인간은 장 기지속적인 구조에 갇혀 있는 수인(囚人)”에 지나지 않았다.36) 이러한 흐름 속에서 문화를 매 개로 인간과 역사의 관계를 세밀하게 묘사하기 위해 등장한 연구방법론이 신문화사연구이 다.37) 한국 역사학계에서도 근대주의와 민족주의라는 거대담론에 사로잡혀있던 역사학계에서 1990년대 중반부터 일상사와 미시사, 구술사 등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38) 그동안 역사연 구의 자료로 인정받지 못한 상징, 표상, 기억, 구술 등은 기존의 구조사 연구에서 객체에 지나 지 않았던 인간을 역사의 능동적 주체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신문화사 연구에서 시간

33) 이정옥(1987), 「브로델의사회사-시간과공간의 변증법에 입각한 전체사」, 사회와 역사 6, 한국사회 사학회, 127쪽.

34) 김경기(1991), 「페르낭 브로델의 역사서술-장기지속의 개념을 중심으로」, 전북대 사학과 석사논문, 27쪽.

35) 정근식 외(2003), 구림연구-마을공동체의 구조와 변동(서울: 경인문화사), 13쪽.

36) 김응종, 페르낭 브로델-지중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26쪽.

37) 김기봉(2002), 「포스트모던 시대에서 역사란 무엇인가」, 포스트모더니즘과 역사학(서울: 푸른역사), 27쪽.

38) 허영란(2010), 「문화연구의 비판적 성찰: 한국 근대사 연구의 ‘문화사적 전환’: 역사 대중화, 식민지 근대성, 경험세계의 역사화」, 민족문화연구제53호,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한국사학계에서 신문화 사연구가 진행되어온 경과에 대해 잘 정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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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인간 경험의 다양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즉 개인 시간의 다양성이 제기되었다. 베르그손 에 따르면 동일한 외부적인 시간 속에서 인간이 활동하더라도 개인적으로 체험된 시간은 서로 다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39) 개인 시간 경험의 다양성은 앞서 언급한 로컬, 즉 부분-개체의 다양성에 연유한다. 경험과 체험은 시간의 반복에 의해 가능해진다. 습관, 익숙함은 경험(체 험)적인 시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이처럼 개인/개체에 시간이 있음이 강조 되고 있다.

개체의 시간이 어떻게 구성되는가를 르페브르의 논리를 이용해 살펴본다. 그는 모든 개체는 고유의 리듬을 가지며, 항상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준안정’의 평형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고 했다.40) 르페브르는 리듬을 시간의 하나로 생각했고,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시간으로 이 해했다. 개체 즉 부분의 시간은 서로의 상호작용을 통해 전체의 시간으로서 자격을 획득한다.

이러한 시간(리듬)은 시간의 반복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설명했다. 그가 설명하는 반복은 자연현상에 근거한 순환적인 반복과 인간의 반복적인 활동인 선형적인 반복의 종합으로 이해 한다. 그러나 반복은 끊임없이 새롭고 차이가 있는 반복이지, 동일한 반복은 아니다. 반복은 인간의 삶에 습관과 익숙함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시간은 생산자의 에너지로 작동하는 것이 다. 르페브르가 정리한 개체의 시간을 로컬의 시간으로 전환해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로컬 시간이란 ‘로컬의 고유한 리듬 혹은 시간’으로 정의한다. 로컬리티 연구에서는 역사연구와 달 리 시간을 로컬리티를 구성하는 한 요소, 로컬을 움직이는 에너지로 규정짓는다.

로컬에는 다양한 시간이 존재한다. 로컬리티 정리에서 언급한 것처럼 로컬 구성원들이 장소 를 매개로 만들어 내는 고유한 시간이 존재하기도 하고, 국가와 (글로벌)자본이 로컬을 포섭하 기 위한 전략으로 시간정치를 시도하기도 한다. 지방의 포섭과 관련한 역사연구는 국가의 정 책에만 관심을 가진다. 예를 들어 1970년대 유행한 새마을운동은 대표적인 국가의 지방 포섭 정책이었다. 국가의 정책이 농민들이 수용한 방식만 두고, 성공이냐 실패냐를 규정짓는다. 시 간연구에서는 로컬시간과 국가시간의 경합으로 설명한다. 당시 농촌 농민들의 시간은 대체로 자연원리에 근거한 농업시간이었다. 벼농사와 보리농사를 기본으로, 화폐소득을 위한 부업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 특히 1960년대를 지나면서 농촌에는 근대화를 위한 욕망이 증대하였다.

농민들의 개인적인 일상이 여기에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국가는 일정한 기간 동안 일정한 사 업을 달성하도록 하는 ‘성과주의’에 집중했다. 국가의 정책에는 반드시 시간이 정해져 있었 다.41) 특히 새마을운동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농민들의 시간과 국가의 시간 사이의 충돌이 잦 았다. 농민들은 자신의 농업경영이 최우선이었다. 따라서 농번기에 새마을운동을 위한 동원이 있을 때는 제대로 참여하지 않았다.42) 철저히 개인적인 시간이 우선하였다. 물론 이 시대 로 컬시간이 모든 국가시간을 밀어낸 것만은 아니었다. 포섭되기도 하고, 변형되기도 하는 양상 을 보인다. 마을공동체가 튼튼한 마을의 경우, 이 운동을 주도하면서 마을 내부의 시간을 조 율하면서 진행하기도 하였다. 국가의 동일화 정책이 로컬에서 반드시 동일하게 드러나지 않는 다는 점은 해당 로컬 구성원들이 만들어내는 시간과 관련해 검토하면 확인 가능하다. 시간의

39) 소광희(2001), 시간의 철학적 성찰(서울: 문예출판사), 200~201쪽.

40) 소광희, 같은 책, 215쪽.

41) 물론 새마을운동과 관련해 국가가 만들어낸 시간은 더 다양하였다. 대표적으로 새벽 시간에 울려퍼 지는 ‘새마을노래’, 각종 동원은 대표적이다.

42) 충청남도 당진군 삼화2리 새마을사업의 ‘추진기록부’를 보면, 매일 담당자가 참여자들의 동태를 기록 하고 있다. 이 기록부에는 농번기, 장례식 등 마을 전통관습 등이 인력동원에 지장을 주는 요인임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사업 추진 주체가 관공서인지 마을주민인지는 사업 성과를 달성하는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당진군 삼화2리, 「추진기록부」 1972-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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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에서 지방사 연구를 진행할 경우, 지방 내부, 지방과 외부의 관계를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Ⅴ. 지방사와 로컬연구의 대상으로서 마을

1) 지방사 연구로서 마을 연구의 필요성

최근 들어 마을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글로벌 시대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 마을을 단위로 하는 실천적 운동도 활발하다. 한국현대사에서 마을연구는 한국전쟁 양민학살 연구와 새마을운동 연구에서 본격화되고 있다. 그동안 국가사와 지방사연구는 자료 문제가 중요하였다. 특히 공공기관이 생산한 문헌자료를 활용한 연구방법에 익숙해져 있었다.

2000년을 전후해 인류학을 비롯한 신문화사 연구방법의 도입은 역사학 연구에서 자료의 경계 를 허무는 역할을 하였다. 대표적으로 구술사연구의 확산은 그동안 기록을 남기지 못한 자들 의 역사쓰기에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구술사 연구의 확산은 역사쓰기의 주체와 시선을 바 꾸어 놓았다. 마을연구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관심 대상의 하나였다.

우선 마을 연구자들의 마을에 대한 정의를 보자. 위성남은 마을을 특정의 공간적 규정에 의 해 구성원들이 만들어 내는 공통의 문화와 생활경제, 나아가 마을 사람들의 관계망이 형성되 어 있는 단위로 파악하였다.43) 정근식 등은 마을은 지역사회의 가장 기초를 이루는 것...생산 의 장을 공유하면서 사회적 상호작용과 역사적 경험, 기억을 공유하는 단위로, 역사적 경험의 전승공동체라고 하였다.44) 전자는 특정 공간 내의 관계망을, 후자는 공유경험의 전승공동체라 하여 강조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또한 후자는 공유기억을 전제로 한 마을의 개념으로 받아들 일 수도 있다. 최근 신도시의 경우, 지방지 제작과 같은 방식으로 공유경험을 통해 마을을 만 들기도 한다. 정리해 보면 물리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한 관계망과 공유경험이 마을을 개념짓 는 중요한 요소로 생각된다.

이러한 개념적 특성은 로컬리티 연구에서 마을을 보는 관점과 통한다. ‘로컬로서 마을’이란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으로서의 의미를 강조한다. 부분으로서 마을은 끊임없이 다른 마을과 상 호작용을 하면서 상위의 단위를 만들어 간다. 연구자들이 발견한 마을은 폐쇄적인 소우주가 아니다. 특히 경제권, 통혼권, 문화권 등에 대한 언급은 특정 마을이 고립되어 존재하지 않고 끊임없이 내외부가 소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근거이다.45) 그리고 마을 내부에서도 다양한 개 체들이 마을의 고유성과 다양성을 만들어 간다. 로컬 연구에서 마을 연구는 이 부분에 관심을 가진다. 그래서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이라는 의미로서 마을을 로컬로 이해하려는 것이다. 마 을 내부의 개체들이란 어느 농촌마을을 예를 들면 마을 농지와 관련한 영농회, 작목반, 임야 와 관련한 상록계, 구경계, 청년회, 개발계, 부락회의, 소주계, 대종계, 사종계 등 문중조직 등 다양하였다.46) 이 개체들은 마을 내 구성원뿐만 아니라 자연물, 전통조직 등을 매개로 하고 있다. 이들 개체는 고유한 활동을 통해 마을 내 다른 개체들과 상호소통하면서 마을의 장소정 체성을 만들어 간다. 한편 이 마을(개체)의 다른 마을과의 상호작용을 보면 5일장, 행정기관 방문, 다른 마을 사람들의 喪門, 결혼 축하, 병문안, 친목계, 문중활동 등을 확인할 수 있 다.47) 마을 내부의 개체(문중조직, 친목계)가 타 마을로 확대된 사례도 있고, 화폐 수입을 위

43) 위성남(2014), 「‘마을’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마을로 간 인문학(김영선, 이경란 엮음)(서울: 당대), 75~76쪽.

44) 정근식 외, 구림연구-마을공동체의 구조와 변동, 17쪽.

45) 문화권에 대한 연구로는 박성용 외(2011), 경북지역 옹기의 문화지도(서울: 민속원) 참조.

46) 이 사례는 1950-70년대 부산시 북구 화명동에 위치한 대천마을의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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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경제활동과 인간관계가 외부 마을과의 주요한 관계임을 알 수 있다. 외부 마을과의 관계는 역으로 마을 내부의 장소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한편 마을은 다른 마을과의 관계가 위 사례처럼 수평적이지만은 않다. 끊임없이 로컬을 포 섭하려는 국가나 자본의 동일화 논리는 역사적인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상존하고 있다. 그 리고 마을 구성원들의 욕망도 국가나 자본의 논리와 결합하기도 한다. 특히 신자유주의 이후 국가와 결합한 글로벌 자본의 마을 포섭은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방자 치단체의 관광사업과 재개발사업은 이러한 전략의 대표사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을에는 이러한 동일화 전략이 일방적으로 관철되지 않는다. 마을은 국가(글로벌자본)와의 힘의 역학 관계에 따라 포섭, 저항, 조정이 끊임없이 이루어지며, 차이와 다양성으로 동일화와 중심화로 부터 벗어나려는 역동성이 있는 공간이다.48) 이러한 역동성을 로컬리티 연구에서는 위계적 로 컬리티라고 한다. 이러한 관계를 시간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이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만들어내는 시간은 국가와 글로벌 자본의 시간과 상호작용을 통해 포섭되거나 변 용되기도 하지만, 이들 시간에 대응해 자신의 시간을 유지하기도 한다.

이처럼 지방 혹은 로컬로서 마을은 나약하고 교활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보유한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이 공간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이유는 단위의 크기와 연구방법의 변화 때문이다. ‘작은 단위’인 마을연구는 보다 큰 단위 연구의 한 과정이기도 하지만, 작은 단위를 통해 전체를 조망하려는 전략이다.49) 게다가 마을은 구성원들의 다양한 삶의 양상이 잘 드러날 뿐만 아니라 그 삶의 맥락을 살피기에 용이하다는 점 때문에 질적연구에도 유익한 단위가 되고 있다. 그래서 마을연구는 로컬리티 연구와 지방사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마을연구는 방법론에서부터 차이를 보인다. 마을연구는 소규모 단위여서 그동안 역사연구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마을에는 역사연구에 필요한 연구자료가 풍부하게 남아있지 않았기 때 문이다. 특히 공공기관은 마을과 관련한 자료를 제대로 남겨두지 않았다. 그래서 마을연구는 마을 내부 자료나 마을 사람들의 구술자료, 생활자료를 활용하지 않으면 연구를 할 수 없 다.50) 이 때문에 마을 연구는 연구과정에서 분석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외부보다 마을 현장으 로 옮겨오게 한다.

한편 마을연구는 그동안 역사연구에서 제외되고, 역사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했던 마을과 그 구성원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는 실천적인 활동이다. 연구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상 생활 자료들이 중요한 자료로 인정받고, 역사의 주인공에서 배제되었던 마을 사람들의 삶(기억)이 역사로 서술되고 있다. 특히 최근 많이 활용되는 구술사 연구 방법은 개인과 집단 기억의 상 흔을 치유하는 출발이 되고 있다.51) 이처럼 마을 연구는 마을과 개인의 삶에 대한 가치를 발 견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2) 마을연구의 함정

역사연구자로서 마을연구는 연구의 의의와 글로벌화의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지 않을 수 없 다. 1990년대 지방자치제의 시작은 지방사 연구의 붐을 일으켰다. 그동안 국가사의 일부로 취

47) 이 내용은 대천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윤희수 어른의 일기 내용이다. 따라서 일기 필자 개인의 사 례를 보편화해 보려고 한다.

48) 차윤정(2016), 「로컬 서사를 통해 본 차이의 가능성」한국학연구 14,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397쪽.

49) 정근식 외, 구림연구-마을공동체의 구조와 변동, 13쪽.

50) 마을에서 생산된 자료인 동계자료, 생활자료, 일기자료 등을 활용한 마을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51) 김호연, 엄찬호(2010), 「구술사(oral history)를 활용한 인문치료의 모색: 기억, 트라우마, 그리고 역 사치료」, 인문과학연구24,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 3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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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되었던 지방사 연구에 주목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는 역사연구란 또다시 국가사처럼 획일화의 논리에 포섭될 수 있는 함 정이 도사리고 있었다. 글로벌화의 흐름에 편승하는 지방자치정부의 전략에 역사연구자 또한 일정한 공범자인 셈이다. 이 때문에 어디서 무엇을 연구하느냐 보다 누가 주도하느냐도 중요 한 문제이다.

필자가 마을연구를 처음 시작한 곳은 부산시 서구 아미동 산29번지 일대였다. 이곳은 일본 인 공동묘지였다. 1907년 부산시 중구 복병산에 위치했던 왜관시대의 일본인 무덤을 옮겨왔 다. 그리고 1928년 화장장이 설치되었다. 지형상으로 경사가 가파르고, 바람이 많이 닿아 사 람이 살기에는 부적합한 죽은 자의 공간이었다. 이곳에 한국전쟁기 부산으로 이주한 피란민들 이 들어와 살면서 무덤은 주거지로 변하였다. 마을에는 지금도 무덤과 관련된 비석이나 부속 재료들이 남아있고, 마을 사람들의 경험에도 무덤 관련 기억은 생생하다. 기모노 입은 귀신담 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도심 속에 마을 형성사가 특이하다는 사실 때문에 연구자의 관심을 끌었다. 필자는 언어학 과 도시공학을 전공하는 연구자와 공동연구를 수행했다. 역사, 문화, 공간이라는 거창한 융복 합(?) 연구였다. 이 연구성과는 「아미동 산동네의 형성과 문화변화」(문화역사지리22-1, 2010)로 발표되었고, 이후 부산구술사연구회가 집필한 離鄕과 경계의 땅 부산의 아미동 아미 동 사람들(보성인쇄, 2011)로 출판되었다. 연구는 이 무렵 부산시 도심 재생사업인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에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는 의미가 더해 한국연구재단이 선정한 ‘2011년 연구 재단 우수연구성과’에 선정되는 수확을 거뒀다. 정부지원 연구프로젝트가 순수 학문의 영역으 로만 머물지 않고 현실 정책에 반영되었다는 평가는 당시 연구재단의 지원 목적에 부합하는 결과물이었다.

위 연구는 도시 속의 마을들이 얼마나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가, 그동안 부산도시사에서 한번도 관심이 되지 못한 공간과 기존의 역사연구에서 누락되었던 사람들이 역사의 주체로 드 러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녔다. 그런데 정작 이 마을 사람들은 남의 무덤에 산다는 죄책감으로 서로를 무시하였고, 자신이 생활하는 공간을 언젠가는 떠나야할 곳으로만 생각해 왔다. 하지만 우리의 조사과정에서 마을 사람들 사이의 관계, 마을 공간에 대한 애착 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진정으로 이 마을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찾는 사람들도 많아졌 다. 대표적으로 부산미술공동체에서 부산의 가치를 알리고자 진행한 그림동화 발간 작업이 그 한 예이다.52)

우리의 연구성과가 세상에 알려지고, 부산시와 지자체의 정책도 이 마을을 주목하게 되었 다. 소위 유행하는 ‘마을만들기’ 사업이 이 마을에도 적용되었다. 필자들도 지자체의 정책결정 에 자문으로 참여하면서 의견을 피력하였다. 하지만 결과는 지자체가 필요로 하는 사업으로 귀결되었다. 나이드신 어르신들에게는 그다지 의미없는 근력운동을 위한 체육공원이 만들어지 고, 비좁은 도로를 넓히기 위해 도로변 주택들이 철거되었다. 마을 이름도 마을 사람들의 의 사와 관계없이 ‘비석마을’로 지정하였다. 공간의 변형은 그동안 살아온 마을 사람들의 기억과 흔적을 없애는 것이었다. 비석마을로 지정은 마을 사람들이 꺼리는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었 다. 마을 사람들은 항상 자신들 집터 아래에 있는 무덤 주인공들에게 죄의식을 지니고 있었 다. 기모노 입은 귀신 담론은 이러한 표현이다. 지자체의 정책은 계획된 예산을 계획된 기간 내에 집행해야 하는 그들의 시간에 따라 진행되었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그동안 일상을 공유 해 왔던 마을공간과 주민들과의 관계가 있었지만, 지자체는 이를 고려하지 않았다. 지자체는

52) 아미동을 소재로 한 그림동화는 할아버지 집에는 귀신이 산다(근간)이다.

(13)

끊임없이 이 마을을 상품화 하고 있다. 이 마을 고개 너머에 있는 ‘감천문화마을’53)을 따라가 려 하였다. 이를 위해 2016년부터는 ‘피란수도 부산야행’54)을 기획하였다. 관광객들은 지자체 가 만들어 놓은 관광코스를 따라 야간에 이 마을 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이 마을에 대한 필자들의 연구 목적인 구성원들의 정착과 관계, 그들이 만들어 내는 장소성 은 지자체가 가공하는 과정에서 ‘비석’과 ‘피란’이라는 두 가지로만 표상되어 상품화 되어 버 렸다. 관광객들은 마을 사람들이 살아왔던 삶에는 관심이 없었고, 일본인이 만들어 놓은 비석 과 한국전쟁 피란에만 관심을 가졌다. 필자가 생산한 연구성과는 이들 관광객들에게 소개되었 지만, 지자체가 만들어 놓은 대표 표상에 묻혀 버렸다.

지방사 연구나 로컬 연구는 한편으로는 역사의 주체로 서지 못한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드 러내는 작업이기도 하지만,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지자체나 글로벌 자본의 의도에 공범이 되 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아니면 아예 그러한 목적으로 연구를 하기도 한다. 지자체의 용역 사업은 연구자를 유혹한다.

Ⅵ. 맺음말

이상으로 지방사 연구와 로컬리티 연구의 관계를 정리해 보았다. 로컬리티 연구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장에 대한 관심이다. 연구의 시선을 현장에 맞추고, 그 현장을 움직이는 힘이나 가치를 발견해 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론이 그다지 새로운 문제제기가 아니고 식상한 것 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적지 않다. 약 10여 년간 고민한 결과는 기존 연구와 많이 닮아서 무엇이 다른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시선의 이동이 새로운 기 쁨을 맛볼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런데 가장 고민스러운 것은 연구와 실천이라는 것이 함께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두 가지를 함께할 수 있는 시간도 문제이지만 무엇보다 연구자가 현장을 드나드는 것은 자칫 또 다른 교만일 수도 있겠다하는 생각 때문이다. 현장을 연구비에 도움되는 연구대상으로만 생각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구 결과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칫 현장 사람들보다 국가나 자본에 팔려 가지나 않을까하는 점도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이런 저런 고민이 많기는 하지만, 그러나 지금은 어떤 염려와 우려가 예상되어도, 현장과 관계를 맺는 작업이 필요한 때이다. 수십 년을 살아오면서 익숙해져 있는 장소와 사람들이 한 순간에 사라져 가는 재개발 현장이나, 권력에 의해 강제 편입되는 곳을 볼 때, 삶터를 떠나야 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살아왔던 공간에 대한 기억과 가치를 기록하는 것도 연구자의 몫이라 고 생각한다.

로컬리티 연구는 끊임없이 현장에 대한 관심을 요구한다. 지방사 연구를 통한 현실과 현장 에 대한 개입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그렇지만 로컬리티 연구로서 지방사 연구는 과거의 사실 과 ‘지금 여기’ 사이의 관계 방식을 고민하게 한다. 과거의 사실이 잠재되어 드러나지 않든지, 아니면 현재의 국면과 함께 다시 떠오르든지 관계없이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삶터의 가치

53) 이 마을은 1950년대 태극도 교도들이 들어와 만들었는데, 이후 빈민 지역으로 방치되었으나, 독특한 경관과 색채가 마을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이 마을을 감천문화마을로 재생하면서 부산 도심재생 사업 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현 대통령도 방문하여 재생사업의 우수 사례로 격찬하기도 했다. 많은 방문객 들로 인기가 높다. 아미동은 부산 도심에서 이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이고, 두 구(區)의 경계에 위치하 고 있다.

54) 이 행사는 6월과 10월 두 차례 열렸다. 한국전쟁 피란수도를 복원해 내려는 시 정책과 맥을 같이 한 다.

(14)

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컬리티 연구는 지금 중요하게 여겨 지는 과거 사실만이 아니라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과거 사실이라도 하찮게 여기지 않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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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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