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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의 초상화: 멜랑콜리 무표현성을 통한 세잔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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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의 초상화: 멜랑콜리 무표현성을 통한 세잔의 미학

전영백 (미술사학 Ph D., Leeds Univ.)

서문

세잔의 초상화들은 많은 비평가들에게 “비인간적”인 느낌을 자아내며 인간을 사물과 같이 취급했다는 평을 듣곤 했다.

베르나르 도리발(Bernard Dorival)은 세잔의 초상화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들은 정말 이상한 초상화들인데, 거기에는 사실 그의 다른 그림들에서보다 이 거장의 비교할 수 없는 독창성이 더 잘 드러나 있다. 그는 단조롭거나 중요하지 않았던, 그리고 때때로 양자였던 그의 모델들에게 거의 완전히 무관심하였다.1)

우리는 ‘한 개인의 얼굴 배후의 신비가 세잔을 얼음과 같이 차갑게 만들었다’고 한 도리발의 주장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왜 세잔은 모델들을 가장 정적이고 따분한 방식으로, 즉 도리발의 묘사에 의하면, ‘사진관에서 취하는 바보같은 포즈’로 의자에 앉혀 두었을까?2) 무엇이 세잔으로 하여금 그의 모델들에게 그러한 차가운 전면을 부여하여 그들의 내적 감정을 가리게 하고 또한 관객이 그들에게 접근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을까?

세잔 초상화들에서 무표현성, 무관심 그리고 거리감은 세잔의 그림에 대한 미술 비평의 계보에 있어서 초기부터 궁금히 여겨지며 강조되어 왔다. 그의 그림의 인물들의 마스크와 같은 표현 (또는 마스크 같은 얼굴의 비표현성)은 많은 미술 비평가들에 의해 다양하게 지적되어 왔는데 초기 저작자들 중에서 프리츠 노보트니(Fritz Novotny)가 이를 가장 강조하였다.

노보트니는 세잔의 그림들에서 중요한 특징으로 ‘기분 혹은 분위기(독일어로 “Stimmung”)의 결여’를 강조하는데,3) 필자는 이것이 정신분석학에서 논하는 멜랑콜리아에 유사한 심리적 구조를 갖는다고 본다. 노보트니는 ‘삶으로부터의 무관심’이나 인류로부터의 소원함’이 세잔 그림에 '차갑고, 경직되고 거의 불쾌한 특성을 주고,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작품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라 주장한다.

‘세잔의 그림들에서는 인물의 안색이 마스크에 가깝도록 표현의 공허함을 보이고 종종 거의 인형같은 경직성을 갖는다’고 말했다.4)

먼저, <빅토르 쇼케의 초상> (1877; V. 373; 오하이오의 콜럼비아 미술관) (도 1)을 본다. 샤피로는 이 그림을 묘사하기를: ‘물감의 짜임새가 표현된 대상들의 그것보다 더 두드러져 보이고, 칠해진 패턴이 사물들의 구조보다 더 명백하다.’ 인상주의자들의 친구였고 일찍이 르노아르와 세잔의 그림들의 가치를 알아보았던 당시 근대미술의 열정자, 빅토르 쇼케의 관상적 특징들이 극도로 단순화되어 있다. 기하학적 구성이 벽의 과장된 패턴들에 의해 강조되어 있고, 밝은 색채들에 의해 앞으로 나와 있는 카펫은 그림을 전경에서 통일되게 한다. 이 비교적 초기 세잔 그림에서 쇼케는 그의 거실에서, 그의 그림들과 뚜껑 있는 책상 앞에서 묘사되어 있다. 모아진 두 손에, 다리는 꼰 상태로 안락 의자에 기대어 있는데, 인물은 마치 퍼즐 조각들이 하나의 전체 디자인으로 끼워 맞추어지듯, 색채의 치밀한 구성판에 완전히 들어맞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노란 의자에 앉은 세잔 부인> (1893-5; V.570;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도 2)을 볼 때에 이 그림은 세잔의 아내인 올탕스 피케(Hortense Fiquet)가 쇼올 칼라의 진홍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4 개의 초상화들 중에서 하나이다. 그녀는 패턴 있는 노란 천의 높은 의자에 앉아 있다. 의자가 지탱하고 있는 세잔 부인의 몸은 과격하게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는데, 이 움직임은 그녀의 똑바른 머리의 수직적 선과 그녀 뒤를 가로지르는 수평의 빨간 띠에 의해 균형 맞추어져 있다. 그녀가 그러한 경사로 인해 넘어지는 것을 막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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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탕스 피케의 눈은 기민하고 직선적이며, 또한 그녀 머리의 단순한 형태로 더 두드러진다. 두 손은 모아져 있고, 의자에 곧고 안정된 포즈를 취하는데 그 자세가 서 있는 것과 누워 있는 것 사이에 있는 것처럼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이 초상 연작에서 올탕스 피케라는 인물을 통해 관객이 느끼는 거리감과 무관심의 감각은 고조에 달한다. 그녀 얼굴의 절대적인 무표정으로 인해 극도로 차갑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이고 안면에 비치는 강한 빛 때문에 마치 흰색 분이 칠해진 마스크의 느낌을 준다. 1870 년 이래 16 년 동안 세잔의 정부이기도 했던 그의 아내, 성적 욕구의 대상이 될 모든 이유를 가진 여인을 대면하면서도, 자신의 감정적 노출에 대한 화가의 고집스런 통제는 올탕스 피께의 얇고 작은 입술이 굳게 닫혀 있는 것에 상응하는 듯 하다.

<조아심 가스께의 초상> (1896; V.694; 프라하의 나로드니 겔러리) (도 3)은 또한 어떠한가? 이 초상화는 조아심 가스께의 상반신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는 어두운 회색 옷을 입고 대담하게 미완성된 상태에서 창문 같은 면을 그 틀로 삼아 기대어 있다. 가스께의 몸은 강한 대각선으로 그림을 가로질러 왼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는데, 이 대각선은 그의 코와 조끼의 이음이 이루는 선에 의해 지탱되어 있으며, 이는 다시 그림의 내적 공간으로 후진하는 그의 어깨 선의 반대적인 세력으로 균형 맞춰진다.

가장 놀라웁게도, 그 위치에 있어서 가스께의 눈은 같은 수준에 있지도 않다. (도 4) 그의 찌르는 듯한 오른 쪽 눈은 관객을 향해 있는 데 반해, 이보다 훨씬 낮게 자리잡은 왼쪽 눈은 그 모호한 불완전성으로 희미하게 사라진다. 캔버스의 빈 공간들이 그 얇은 색채의 막을 통해 드러나면서, 이 가스께의 초상은 세잔이 모델을 단지 스케치의 방식으로 포착하면서 짧은 시간만 소요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러나 가스께 자신은 이 초상이 그려졌던 당시를 회고한다: ‘나는 단지 다섯 번, 여섯 번 밖에 앉지 않았다. [...] 한참 후에야 나는 그가 이 그림에 60 번 이상 실행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초상의 모델로서, 가스께는 이 화가가 그의 내적 존재를 기습적으로 취하여 표현했다고 느꼈다. 인물의 그러한 “비인간적인”

취급 - 눈의 왜곡과 구성의 왼쪽 부분의 미완성 등 - 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에는 심오하고 깊이 마음을 움직이는 어떤 서정적 효과가 있다.

왜 세잔은 가스께가 감지했듯이, ‘그의 가장 아름다운 캔버스들의 인간적인 부드러움을 가리는, 명백하게 눈에 거슬리고 거친 표현을 해야만 했던 것일까?’

<암브로아즈 볼라르의 초상> (1899; V.696; 파리의 쁘띠 빨레 박물관) (도 5)은 세잔의 또 다른 주요 후기 초상화이다. 세잔 작품의 일반 군중의 인식을 가져오게 하는데 기여한 중요 미술 소장가 볼라르의 초상으로써 이 그림은 모델에게 ‘사과처럼 가만히 앉아 있으라’는 작가의 유별난 요구로 더욱 잘 알려진 초상화이다.5) 거의 고문에 가까운 115 차례의 실행 후에, 작가는 이 초상화를 미완성으로 남겨 두었다.

이 초상에서, 볼라르는 다리를 포개고 손은 신문을 잡아서 무릎에서 겹쳐 있다. 이 인물의 얼굴에 나타난 무관심과 공허함은 세잔 초상화 중에서 그 절정에 달한다. 볼라르의 얼굴은, 테오도르 레프(Theodore Reff)가 묘사했듯이, ‘단일하게 무표정하고’, 강한 윤곽선으로 규명된 머리와 수염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레프는 기록하기를: ‘이것은 문자 그대로 하나의 마스크이고 볼라르의 다채롭고 재능 있는 인성에 대해서는 거의 나타내어 주지 않는다’.6)

무엇보다, 볼라르의 눈이 이 초상에서 가장 특징적이다. 그 눈의 매력은 화가의 정교한 기술이나 빛의 효과에 의한 것이 아니고 그것들이 형편없이 취급되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어디에 눈동자가 있는지조차 확인하기 힘들다. 비록 세잔이 종종 초상 인물의 눈을 자세히 묘사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나, 이 초상에서의 볼라르의 눈보다 덜 묘사된 다른 모델의 눈을 찾기는 힘들다. 볼라르의 눈의 공허감은 오로지 세잔이 이 시기에 그렸던 <해골의 피라미드> (1898-1900; V.753; 개인 소장) (도 6)의 눈 구덩이에 대응할 뿐이다.

베르나르 도리발(Bernard Dorival)은 우리에게 자신이 세잔의 ‘고전적 원숙기(classic maturity)’라고 부른 시기, 1883 에서 1895 사이의 12 년 동안의 초상의 숫자와 종류를 알려준다. 리오넬로 벤추리가 헤아린 59 점의 초상화들 중에서, 도리발은 다음과 같이 분류하고 있다: 자화상 7 점, 아들의 초상 3 점, 그의 아내의 초상 18 점, 빅토 쇼께의 초상 2 점, 그리고 마을 사람을 그린 18 점 등이다.7) 1895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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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최종 시기에 마르셀 브라이온 (Marcel Brion)은 세잔이 그린 300 여점 이상의 그림 중에서 자화상 7 점, 아내의 초상 18 점, 그리고 아들의 초상 3 점이 포함되어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8)

미술 비평의 문맥에서, 세잔의 초상화의 무-표현성(non-expressiveness)의 성질은 대조적으로 해석된다. 세잔 그림의 차가운 전면(facade)에도 불구하고, 샤피로와 같은 몇몇 비평가들은 세잔의 인간에 대한 그의 욕망을 드러내는 특징들에 주시하는데, 샤피로는 이것이 ‘정물과 풍경의 영향을 능가하는’ 것이라 말했다.9) 필자는 표현의 부재와 고도의 심도 깊은 욕망이 혼합되는 세잔 초상화들의 이러한 역설을 이해하기 위해 주체성의 이론과 정신분석학의 멜랑콜리아 담론의 견지에서 세잔의 그림에 접근하고자 한다. 이는 그가 심한 우울증의 특성을 가진 작가였다는 점에 전적으로 근거하지 않는다. 그림에 드러나는 미학적 구조는 개별 작가로서의 폴 세잔의 그런 개인적 양상 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행위 및 표현의 과정은 작가의 제한된 개인성을 능가할 수 있고, 또한 그 과정에서 그림에서의 형태와 색채의 구성에 대한 작가의 본래의 계획을 너머 예기치 못한 것들도 표현될 수 있음을 가정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잔이 우울적 유형의 사람이었음을 참고할 수 있다. 세잔의 성격 형성에 있어 가장 명백하고 근본적인 이유로, 독재적이고 냉정하고 부의 축척에만 관심을 가졌던 그의 아버지와 세잔 사이의 어려웠던 관계를 들 수 있다. 자신의 사업에 뒤이어 은행가가 되기를 강요했던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화가의 길을 선택했던 것인데 부친에의 경제적인 의존으로 인한 속박과 그에 대한 고질적인 두려움은 그의 생애를 지배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미술에 흥미를 가졌고 아들의 재능을 인식했던 세잔의 어머니는 독설가이며 구두쇠였던 아버지 모르게 그를 은밀히 격려하고 보조해 주었는데, 세잔이 얼마나 그녀를 가깝게 느꼈으며 남편에 대한 그녀의 두려움도 또한 동일시했는가를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세잔의 절망, 감정에 쉽게 휘말리는 것 그리고 우울증 및 멜랑콜리라는 말은 그의 전기에서라면 익숙하게 나오는 용어들이다.10) 종종 그는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여 느닷없이 화를 내거나 갑자기 절망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던, 괴벽에 시달렸던 사람으로 묘사되어진다. 특히 세잔은 신체적 접촉의 히스테리컬한 공포가 있었을 정도로 인간에 대한 혐오감을 가졌던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11) 그리고 그는 여성들과 가까이 지내기를 꺼려했고 작업을 위해 누드 모델을 고용한 적도 없었다. 세잔의 우울적 증상은 너무 끈질겨서 1895 년 그의 개인전의 엄청난 성공조차 그의 자긍심을 세워주지 못했다. 특별한 이유 없는 그의 감정적 폭발은 그의 친구들을 놀라고 당황하게 하였는데, 그가 격정에 사로잡혀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을 팔레트 나이프로 난도질하던 것은 여러 사람들에게 목격되었다.12) 그러나 그의 둔탁하고 거친 태도에도 불구하고 세잔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화가’로 인식되어졌고 자신과 자신의 예술성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이 화가의 천재성을 안타깝게 표현한 글들을 종종 접할 수 있는데,13) 메를로 퐁띠는 ‘세잔의 회의(Cezanne's Doubt)'이라는 글에서 이러한 세잔이 자신과 자신의 예술성에 대해 품는 회의가 그의 작품에 깊이를 더 해 주는 것이라 하였다. 또한 그의 저계층 사람들에 대한 깊은 인간적 이해와 동정 아닌 존경심은 주위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기도 했다.14) 세잔의 그림에서 어두운 색조의 슬픔에서 우러나오는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볼 때, 그의 절망을 한 사람의 이상한 심리적 고뇌로만 진단하기에는 일반적으로 동일시될 수 있는 부분이 상당히 많음을 본다. 세잔의 그림에 나타난 심리의 일반적 양태로서의 멜랑콜리아의 증상적인 구조를 읽기 위하여 이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이론들(특히 쥴리아 크리스테바의 이론)의 시각을 참고로 하고자 한다. 그러나 본 글은 이에서 그치지 않고, 세잔 그림의 창작 과정을 멜랑콜리아에 대한 작가 자신의 탐닉과 동시에 그것에 대한 항거 사이의 끊임없는 긴장으로 이해하는 데에 있다.

본문

세잔의 멜랑콜리 초상화

세잔의 후기 초상화의 연구에서, 테오도르 레프는 바로크 미술, 특히 렘브란트를 상기시키는 엄숙함과 신비, 어둡고 번뜩이는 정신성의 새로운 느낌‘에 주목한다. 그러한 작품들로는 <커피 주전자와 여인> (c.1893; V.574) (도 7), <귀스타브 제프로이의 초상 (1895;

V.692; 오르세이 박물관> (도 8), <조아심 가스께의 초상> (1896; V.694) (도 3), <앙리 가스께의 초상> (1896; V.695), <로자리를 가진 늙은 여인> (1895-6; V.702) (도 9), <젊은 이태리 소녀> (c.1900; V.701) (도 10), 그리고 <독서하는 사람> (1896; V.678) 등이 있다. 이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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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들에서, 레프는 가라앉은 색채 조화의 심각하고 슬픈 이미지들이 모델들의 비표현적이고 마스크와 같은 외관들을 통해 심오한 심리적인 내용을 드러낸다고 암시하고 있다.15)

세잔은 그의 초상화 전반에 걸쳐 모델의 포즈에 있어서 주로 팔을 끼고 있거나, 손을 겹치고 있고, 다리를 꼬고 있거나, 머리를 한 팔로 보조하는 것을 자주 활용하였다. 여기에서 레프는 전형적인 ‘멜랑콜리 포즈’를 강조하는데, 이것은 모델이 머리를 팔로 괴고 팔꿈치에 힘을 의지하는 자세를 말한다. 그가 주장하듯이, 세잔의 작품에서의 이 포즈의 근원은 <해골을 놓고 사색하는 막달라 마리아> (1860s; V.86) (도 11) 등과 같이 1960 년대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잉(Lawrence Gowing)은 이 그림이 루브르 박물관의 페티(Domenico Feti)의

<Melancholy>(1867) (도 12)를 참조했다고 제시한다.} 그의 전 작업 기간을 통해 세잔은 끊임없이 이 포즈에 매료되었던 듯 하다. 1870 년 경에, 레프는 이 포즈를 <목가적 풍경> (1870; V.104; 오르세이 박물관) (도 13)에서 작가 자신이 ‘어두운 중심의 인물’로, 그리고 <성 안토니의 유혹> (c.1870; V.103; 쥬리히의 벌 재단) (도 14)에서 그림의 주된 활동과는 분리되어 보이는 ‘무거운 누드’로 나타난다고 제시한다.16) 세잔 초상화의, 특별히 1890 년대의 그림들에서의 엄숙하고 완고한 특징은 개인적인 의심과 절망 뿐 아니라 19 세기 말의 유럽에 팽배했던 무신론적인 문화적인 경향의 맥락에서도 이해될 수 있다.

멜랑콜리아와 연관되어지는 공허로서의 삶에의 사색은 세잔의 그림에서 드물게 허무를 나타내는 해골과 같이 관습적으로 내려오는 상징들을 통해 명백한 방식으로 보여졌는데, 죽음을 사색하는 젊은 이라는 전통적인 주제가 표현된 <해골과 소년> (1892-4; V.679;

메리온의 반즈 재단) (도 15)이 그 예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그렇듯 삶의 허무를 쉽게 연상시키는 상징들 없이도 그 주제를 손으로 머리를 받히고 있는 포즈에서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할 수 있다. 건강한 젊은 여인의 멜랑콜릭한 순간이 나른함으로 표현되는 <젊은 이태리 소녀> (c.1900; V.701) (도 )를 비롯하여, 이 포즈는 <빨간 조끼의 소년> (1888-1890; V.681) (도 16), <담배 피우는 사람> (V.684, V.686, V.688: 1890-92) (도 17), 그리고 <휴식을 취하는 소년> (c.1890; V.391) (도 18) 등에서도 볼 수 있다. 멜랑콜리 포즈의 이 전형은, 레프가 설득력 있게 지적하듯, ‘그의 예술적 인성의 근본적 측면을 나타내는 로맨틱한 파소스와 사적인 죄의식의 부담’을 담고 있다. 레프는 이 포즈가 1870 년대와 1880 년대의 인상주의 및 구성적 시기 이후에 자주 등장한다고 지적한다.17)

서양 미술사의 전통에 있어, 이렇듯 손으로 머리를 지탱하는 멜랑콜리 포즈의 전형은 르네상스 시기의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의 <멜랑콜리아 I> (1514; 부르클린 박물관) (도 19)에서 찾아지는데, 멜랑콜리아 위상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그 초기 도상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멜랑콜리아 I>에서 날개 달린 여인은 생각에 깊이 잠긴 채, 계단에 낮게 앉아 있는데 불만족스럽고 거의 얼어붙은 모습이다.

하인리히 뵐플린(Heinrich Wolfflin)은 '그녀는 당장은 다시 일어나려고 하지 않은 듯 하고, 단지 그녀의 눈이 방황할 뿐이다’라고 묘사한다.18) 어윈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는 그녀는 자신의 비활동성과 무기력함에도 불구하고, ‘혼란 속에서의 사색하는 존재’인데 ‘초의식적으로 깨어있게 보인다’고 말한다. 그는 인물의 비활동성을 일에서의 무의미성으로, 그리고 그녀의 에너지의 마비를 사고에의 침잠으로 돌린다.

무언가 열심히 적고 있는 푸토(putto)의 분투적인 노력은, 파노프스키가 지적하듯이, 완숙하고 학식있는 멜랑콜리아의 비활동에 대조된다.19) 멜랑콜리아를 둘러싼 의미의 상실과 그녀의 허무감은 자연의 비밀이나 궁극적 지혜에 비교되는 인간 지식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의 견지에서 설명될 수 있다.20)

멜랑콜리의 인간적인 미화 배후에는 그것의 르네상스, 신-플라토닉적인 개념이 있는데, 이는 1489 년 마르실리우스 피시노(Marsilius Ficino)의 책('De Vita Triplici')에서 형성되었다. 파노프스키와 뵐플린은 뒤러의 작품은 피시노의 저술에 근거하고 있다고 하면서, ‘예술에서 뛰어난 모든 사람들(남자들)은 멜랑콜릭들이었다’는 그의 주장과 잘 맞는 것이라고 강조한다.21) 전통적으로 멜랑콜리와 토성(Saturn)은 밀접하게 연관되어져, ‘토성적인’라는 말은 멜랑콜리와 동의어로 인식될 정도였는데, 뒤러의 작품을 설명하는 이론가들에 의해서 상당히 강조되었다. 덧붙여, 뒤러의 시기에는 멜랑콜리는 병리적인 증상으로 여겨지기보다는, 신체 유동액에 따르는 인간의 네 가지 기질들 중 하나로 생각되어졌음에 주목한다.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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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러의 <멜랑콜리아 I>에 있어서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의 어머니와의 관계이다. 몇몇 학자들은 멜랑콜리 인물의 머리 위에 있는 소위 마법의 사각형은 뒤러의 어머니가 사망한 날짜를 가리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패리(M.P. Perry)는 이 판화는 ‘전적으로 뒤러의 어머니에 대한 헌정’이라고 강하게 논술했다.23) 주제에 있어서 화가의 어머니의 상실이라는 점과, 이 그림이 뒤러의 정신적인 자화상이라 한 파노프스키의 주장을 고려할 때,24) 정신분석학적인 견지에서 이 판화는 남성 주체가 갖는 모성의 상실에 대한 불완전한 애도라고 분석할 수 있다. 그것은 아들의 입장에서 상징체계에서 부재로 나타나는 모성의 성을 내면화하는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또한 다른 시각에서 보아, 판화의 인물이 남자가 아닌 여성임을 고려할 때, 이것은 크리스테바가 ‘우울적 성(depressive sexuality)’이라 묘사한 여성성과 멜랑콜리아 사이의 운명적인 관계를 나타낸다는 것을 또한 가정할 수 있다.)

세잔의 대부분의 후기 초상화에 있어 멜랑콜리아의 명백하고 전통적 상징 (뒤러 판화에서 보는 개나 박쥐와 같은)이나 일화적 내용 (뒤러의 경우처럼 모친의 죽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일련의 멜랑콜리 포즈, 무표정한 인물들의 고립감과 분리감, 더불어 색채의 기호학적 영역 - 특히 푸른색을 통한 거리와 깊이의 표현 - 등 표현에 있어서 여러 미적 수단들을 통해 뒤러가 거의 4 세기 전에 단지 형태적으로 포착했던 멜랑콜리 속성을 심화, 발전시킨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세잔의 초상화들은 부수적인 상징적 사물들을 배제하고 색채가 의미할 수 있는 능력을 확장시키면서 멜랑콜리의 일반화되고 추상적인 개념에 도달하고 있다. 뒤러 작품에서 상실은 화가 모친의 죽음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 경험에 부분적으로 근거한다면, 세잔의 후기 초상화에서의 그것은 주체성의 이론과 정신분석학의 견지에서 주체가 언어체계에 돌입할 때 주체와 (모성적인) 사물본체성(Thing)25) 사이의 근원적 관계의 상실이라고 보면서 접근할 수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세잔 그림이 갖는 독특한 성질과 관련되어 그림의 표면으로 부상되어진다. 즉, 세잔의 초상화에서의 인물의 고립과 분리를 통해서; 조심스럽게 고안된 자세들과 색면의 미완성된 구성으로 인해 이미지의 경계선적 상태가 강조되면서; 색채의 기호학적 공명과 그 진동을 통해서 형태적 묘사에서 미쳐 담지 못한 의미의 잔여를 전달하면서; 끝으로, 모델들의 종종 수수께끼와 같은 응시가 그의 초상에서 그들과 관객 사이의 비관습적인 심적 관계를 마련하면서.

세잔 초상화에서의 인물의 고립과 분리: 화가와 대상 사이의 감정적 연계의 배제

특히 어둡고 가라앉은 분위기를 연출한 1890 년대의 세잔의 후기 초상화들에서, 고독감과 공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초상의 고립적이고 정적 배경 때문이 아니라 모델들이 표현되어지는 방식과 거기에서 기인하는 초상화 자체의 분위기에서 그러하다. 바트가 논의하듯이, 세잔 후기 초상에 있어서 빈 방으로 사람들을 격리시키는 것은 초기보다 더 명백하다. 바트는 세잔의 ‘외로운 사람들은 쓸쓸한 방들에서 보여진다’라고 하면서 그들은 ‘군중의 활기차고 시끄러운 활동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고 말한다.26)

자신이 그리는 대상 모델과의 그러한 근본적인 분리를 꾀한 화가의 의도를, 우리는 세잔 초상에서, 초상화를 보는 관객이 그려진 인물과 정서적으로 관련하고자 하는 일상적 습관을 거부하는 그의 단호한 제스추어를 통해 포착할 수 있다. 그러한 초상화들 중에서, 먼저

<귀스타브 제프로이의 초상> (1895; V.692; 파리의 오르세이 박물관) (도 8)을 살펴본다. 세잔 예술의 위대성을 인식한 첫 비평가들 중 하나인 귀스타브 제프로이가 그의 도서관에서 정교한 기하학적 구성에서 거의 얼어붙은, 경직된 포즈로 자신의 일에 침잠된 채 수동적이며 억제된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인물 뒤의 책들의 복잡한 배열이 앞으로 튀어나오며 들어가며, 또 책장 칸마다 다른 경사로 꽂혀 있으면서 인물보다 더 인간적으로 보인다'는 샤피로의 묘사가 그럴 듯 하다.27)

그리고 그의 <로자리를 가진 늙은 여인> (1895-6; V.702; 런던의 국립 미술관) (도 9)에서의 인물의 극도의 경직성과 고집 센 저항으로 관객은 모델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게 된다. 이 그림은 18 개월 동안 격렬하게 작업한 후, 완성되자마자 구석으로 던져 버렸던 것인데, 화롯가에서 먼지가 싸여진 채 파이프로부터 떨어지는 물방울로 존패의 위기에 있었던 것을 발견하고 화가로부터 이 그림을 얻은 가스께는 세잔으로부터 직접 들은 모델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한다; ‘모델은 신앙을 잃은 수녀로 70 세의 나이에 사다리를 타고 수녀원의 담을 넘어 파계하였다. 노쇠하고, 짐승처럼 배회하는 이 노파를 세잔이 선의에서 자신의 종으로 삼아 들여 이 초상화의 포즈를 취하게 했다.’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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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세잔 부인의 초상> (1888-90; V.529; 휴스톤의 미술 박물관) (도 20)과 <노란 의자에 앉은 세잔 부인> 연작들 (1893-5)에서 인물의 인형 같은 머리, 무게감 없는 신체, 그리고 얼굴의 완전한 침묵 등을 주목할 수 있다. 휴스톤의 초상화와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오르세이 박물관의 <세잔 부인의 초상> (1888-90; V.530) (도 21)은 더 간단한 구성에 가까운 거리에서 올탕스 휘께를 포착하고 있으나, 그것과 유사하게 빛 바랜 푸른색을 전체 색조로 하여 가운데 가름마의 단순한 얼굴에 스폰지같은 가벼운 신체, 무표정한 마스크와 같은 얼굴의 묘사는 휴스톤의 그림과 다름이 없다. 그리고 <노란 의자에 앉은 부인> 연작 중에서 시카고 캔버스 (V.572) (도 21)의 무관심한 표정과 개인 소장 그림 (V.571) (도 23)의 냉정한 느낌은 두드러지는데, 완고한 부친의 몰이해에 16 년간 동안이나 비밀리에 관계를 맺어왔고 또한 자신의 아들도 낳아 주었던 올탕스 휘께를 보는 세잔의 시각이 놀랍도록 소원하게, 즉 작가의 감정적 개입이 배제된 상태로 표현되어져 있다.29)

실제로 세잔과 올탕스 휘께는 쉽지 않은 관계에 있었음이 그의 전기들에서 언급되어 있음은 볼 수 있다. 화가는 자신의 아들에게는 이틀에 한번씩 편지를 썼으나 자기 부인과는 서신을 주고받았다는 기록을 찾을 수 없다.30) 세잔에 대한 문자적 기록 및 비평에서 그녀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올탕스 휘께는 화가 자신을 포함한 어떤 다른 모델보다도 더 많은 초상화에 그려졌다. 거슬 맥(Gerstle Mack)은 수록한다: ‘단지 두 사람만이, 다른 사람은 기껏해야 셋이나 네 점의 초상화를 위해 앉는 고역을 참을 수 있는 스테미너를 가졌는데, 그것은 세잔 자신과 그의 부인이었다.’31) 비록 공감적인 전기작가들에게조차 화가의 ‘뮤즈’로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올탕스 휘께는 세잔이 그의 생애에 있어서 누구보다 가장 긴 시간에 걸쳐, 또 가장 강렬하게 쳐다본 모델이었음에 틀림없었다는 것을 지적한 리쉘의 말이 설득력을 갖는다.32)

세잔의 초기 시기에 인물들이 마치 공간에서 잃어버려진 듯 앉아있는 몇 개의 초상화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를테면 <빅토 쇼케의 초상>(1877; V.373) (도 1)과 <빨간 안락의자의 세잔 부인>(1877; V.292; 보스톤의 미술 박물관 (도 24) 등이다. 세잔 후기, 즉 1890 년대의 초상화들에서는 그 대부분을 관통하는 상실감과 분리감을 보는데 이는 정신분석학에서 분석되는 멜랑콜리아의 증상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모델은 종종 멜랑콜리 포즈를 취하면서, 세계에서의 그들의 분리와 고립을 노출한다. 바트는 세잔이 표현한 인물들은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미치는 어떤 효과에 무감각한 모습이라고 묘사한다. 그러나 그는 이런 인물의 무표정성과 무관심의 특성을 ‘비생동감(un-aliveness)'라고 본 노보트니를 비판하면서, 이것은 고질적인 외적 관습들 아래에 감추어져 있는 ‘인간의 내적 상태(inner state of a whole man)’를 나타내는 ‘진실한 표현(true expression)’이라고 주장한다.33)

멜랑콜리아의 증상적 구조의 정신분석학적 연구는 주체성의 규명에 있어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들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을 제공한다. 프로이드는 멜랑콜리아에 있어 세 가지 전제 조건을 분석하였는데, 이는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 사랑과 미움이 갈등하는 심적 애매성, 그리고 자아로 향한 리비도의 퇴행 등이다.34) 이를 참고하여 세잔 초상에의 정신분석학적 이해를 구하는 데에 있어 특히 두 가지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역설적인 것으로, 무표현은 단순한 결여나 부재의 견지에서라기 보다는, 깊은 내부로 향한 어떠한 심적 효과의 흔적으로 규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바트의 세잔 초상화의 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여기에 연관된다: ‘[개인]은 그의 외형의 모습을 내부로 끌어들여 그의 태도에 있어서는 무표정하고 벙어리와 같이 된다.’35) 바트의 언급은 프로이드가 진단한 대로, 애도(mourning)와 구별되는 멜랑콜리아의 증상과 직결된다. 즉 애도에서는 세상이 공허해지나 멜랑콜리아에서는 공허해지는 것이 자아 그 자체이라는 것이다.36) 또한 우울증의 사람들의 무표정은 멜랑콜리아의 특성으로, 외부로의 투사보다 내면화하는(introjecting) 메카니즘의 강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세잔 인물들의 수수께끼 같은 무심함에 대한 부분적인 설명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우울증에 대한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의 분석도 이러한 내면화 과정을 강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주체가 ‘나쁜 대상’과 더불어 ‘좋은 대상’을 상실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대상들을 외부로 투사하는 것에 무능하게 되는 증상이라 설명한다.

두 번 째로, 멜랑콜리아에서는 외부 대상들과의 뿌리깊은 분리와 그들과 주체 사이에 줄일 수 없는 거리가 있음이 분석되는데 이것은 세잔의 인물 표현에서 두드러진 특징이다. 정신분석학에서 상징의 발전에 있어 필요하다고 인식되는 대상-카덱시스(object- cathexis)37)는 멜랑콜리아의 증상에서는 적절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거기에서는 주체의 대상과의 관계가 미약하여, 주체가 대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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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시킬(eroticise) 수 없음으로 인하여 그것으로부터 어떤 상징적 의미도 도출해 낼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바트가 세잔의 그림에서 ‘화가와 그려진 대상 세계 사이의 줄일 수 없는 갭과 보여진 사물들에 실제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느낌’이 출현한다고 묘사한 것을 이해할 수 있다.38)

쥴리아 크리스테바는 그녀의 책, <검은 태양: Blank Sun>에서 홀바인(Holbein), 너발(Nerval), 도스토예프스키(Dostoyevsky), 뒤라(Duras) 등의 예술과 문학을 멜랑콜리아(우울증)의 담론으로 분석하고 있는데, 이 담론에서의 슬픔은 광기에 대한 방패로서 설명하고 있다.

우울증의 담론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정신이상적인 위험의 “정상적” 표면이다: 우리를 압도하는 슬픔, 우리를 마비시키는 지연(retardation)은 또한 하나의 방패인데 때때로 가장 최종적인 것, 즉 광기에 대한 방패이다.39)

크리스테바에 따르면, 주체가 언어계에 들어가기 위해 불가피한 과정인, 모성으로부터의 분리는 멜랑콜리아에서는 완성되어지지 않았다. 모성으로부터의 분리가 성공적이지 못하고 원초적 나르시시즘의 온전치 못한 기능으로 형성되는 멜랑콜리아에서는 슬픔이 압도적이다.40) 그러한 나르시즘적 우울증의 사람들은 그들이 맺는 외부 대상과의 관계가 여의치 않는데 크리스테바는 사실상 그들에게 유일한 대상은 슬픔으로 이것이 ‘하나의 대체 대상(substitute object)’으로 자리잡는다고 설명한다.41)

엄밀하게 말해서, 세잔의 완숙기의 그림들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지하는 불행감과연결된 슬픔은 세잔이 그의 표현을 통해 의도적으로 이끌어내려 했다고 보기 힘들다. 아마도 그러한 슬픔은 그의 그림 자체에 있다기 보다는 관객이 그들을 감지하는 과정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것은 차라리 그가 자신의 그림으로부터 혹은 그가 사물을 보는 방식에서부터 제거하기를 원했던 감정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세잔 초상화들의 인물들에서 보듯이, 상실과 공허의 감각을 일으키는 마스크와 같은 표현을 설명할 수 있는가? 아니면 더 확장된 의미에서, 어떻게 우리는 그의 풍경화들에서 명백하게 병풍처럼 방어하는 바위들의 배열, 혹은 장면들이 얇은 그러나 투과할 수 없는 스크린 뒤에 보류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가?

색면 구성의 경계선적 상태

한편, 1929 년 세잔 그림에 대해 소설가 로렌스 (D.H. Lawrence)가 묘사한 것은 화가의 시각적 언어에 대한 영감 있는 문학적 해석을 제공해 준다. 그는 사물의 외양을 보는 데 있어 필요한 구분이 있는데 이는 은유적 차원에서 ‘상투어구(cliche)’와 그가 이름지은

‘사과성(appleyness)’42) 사이의 그것이라고 제시한다. 인물화의 경우에서, 신체적 ‘상투어구’는 소위 ‘인간성, 개인성, 유사성’으로, 로렌스에 따르면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것이고, 인내의 한계를 지나쳐 지루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반면 그는 하나의 대상에 있어서 ‘사과성’은 '대상의 직감적 감지나 본능적인 깨달음에 의해 인지되어질 수 있는 어떤 것'이라고 설명한다.43) 사과성을 감지한다는 것은 대상을 포착하는 데에 있어 그 내부를 관통하는 근본적 신체성에까지 다다를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세잔의 그림은, 그에 따르면, 대상의 사과성을 포착하고 그것의 상투어구를 배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므로 로렌스가 지적한 세잔 그림에서의 사과성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대상을 꿰뚫어 그 감추어진 측면들을 노출시키는 지점까지 볼 수 있는 미적인 눈을 요구한다고 할 수 있다.

화가의 어린 시절 친구의 아들이자 자신의 전기 수록자인 시인 가스께를 그린 <조아심 가스께의 초상> (도 3)은 로렌스의 해석에 하나의 적절한 시각적 보기로 제시될 수 있다. 다시말해, 가스께의 과격하게 미완성된 얼굴에 대해서 로렌스의 클리쉐와 사과성의 개념적 틀보다 더 설득력 있는 것을 찾기 힘들다. 이 그림의 공백의 부분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예민한 시인을 표현한 근본적인 구성에 아이러니컬하게 기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세잔의 가스께 묘사에서의 이러한 균열과 금은 로렌스가 세잔이 ‘“클리쉐”를 피하는 최종적 방법’으로 설명한 것이 적절하게 느껴진다. 클리쉐를 갭과 간격들을 통해 무(nothingness)로 사라지도록 한다‘는 것이다.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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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께의 얼굴의 칠해지지 않은 여백들은 흩어진 구멍들이 되어 이것들을 통해 관객은 이 인물의 지각에 있어서 클리쉐를 밀어낸다.

이것은 순수한 시각경험에 이르기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간격들을 통해 관객의 감정적인 투영이 이 그림에서 빠져나간다. 단지 가스께 자신만이, 이제는 클리쉐에서 자유로와, 색채 파편들의 뒤덮임과 그 배후의 비어있는 공백 사이의 경계, 즉 존재와 부재 사이의 문턱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다.

가스께의 얼굴, 머리와 칼라를 통해 흩어져 있는 모든 공백의 부분들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은 빈약하다고 묘사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모델의 근본적 구조로서 볼 수 있는 것을 추출해 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스께의 얼굴에 초점을 맞춘다면, 색채 조각들과 공백 부분들이 얼굴에서 연합하고, 다시 이것이 얼굴의 전체 이미지의 구성에 기여하는 방식을 보고 놀라게 된다. (도 4) 이 얼굴은 로렌스의 표현에 따르면 클리쉐가 없는 얼굴로서, 가스께의 얼굴의 기본적 구조가 자두색, 주홍, 진홍 그리고 황록의 색채 조각들의 최소의 붓자국들에 의해 구성되어 있다.

볼라르는 세잔이 초상화 그리기를 무척 즐겼음을 지적한 후에, 그가 “인간 얼굴이 모든 미술의 목표이다”라고 말하곤 했음을 기록한다.45) 가스께의 거칠게 규명된 얼굴에서 세잔이 구하였던 것은 무엇인가? 충만한 정도의 집중과 강도가 그의 오른쪽의 눈에서 절정에 달하는데, 이는 왼쪽 눈이 과격하게 비정형적이고 전치되어(dislocated) 있어 그 효과가 더 두드러진다. 관객을 보는 모델의 눈길이 이 그림에서보다 더 직접적인 다른 초상을 찾기는 힘들지만, 돌이켜, 세잔의 첫 초상화(도 )에서 가스께의 파고드는 눈길이 야기하는 관객과 화가 사이의 대면을 확인할 수 있다. 가스께 초상화는 “보여지는” 위치가 “보는 것”으로 반전되는 데에 충분한 시각적 힘을 갖고 있다.

가스께는 세잔의 초상화에 있어 ‘평상적인 절차들’ 중 하나가 ‘모델이 떠난 후에 작업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46) (이 초상화도 자신은 5-6 회 밖에 앉지 않았으나 후에 세잔이 이 그림에 60 회 이상 실행했음을 알게 되고 놀라움을 표시한다.) 그와같이 사람들을 묘사하는 데 있어 세잔의 독특한 방법은 모델의 명백한 신체적 외양에 의해 미혹되지 않으려는 작가의 고집스런 의도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그림 표면의 미완성의 색채 구성은 세잔 그림의 한 주요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메를로 퐁티는 남겨진 여백의 작용을 특히 그의 후기 수채화에서 주목한다. 하얀 빈 공간이 어떤 특정 위치를 차지하지 않는 면들 주위에서 사방으로 방사된다고 하면서, ‘투명한 표면들을 서로 겹치게 하는 것’, 그리고 ‘포개어 지고, 앞으로 나오고 뒤로 후진하는 색면들의 유동적인 움직임’을 강조한다. 메를로 퐁티는 그의 <발리에의 초상> (1906) (도 )을 지적하면서, '색채들 사이의 흰 여백이 노란색, 녹색, 푸른색 못지 않게 아니 그보다 더 일반적인 것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묘사한다.47)

세잔 그림의 채색된 표면은 초기에는 밀집되게 짜여져 있고 후기에는 성성하게 구성되어 있는데 그 색채 텍스추어의 간격과 구멍을 드러내 보이면서 화가의 그림에 대한 완벽한 통제감을 절감시킨다. 포스트 모던 시기에, 우리는 세잔 작품의 이러한 빈약하고 비결정적 성질에 더 매료된다고 할 수 있는데, 세잔의 이미지들이 이렇듯 갈라진 틈과 분열에 많이 의지하는 것에 착안하여, 프레드 올톤(Fred Orton)은 세잔의 예술은 ‘느슨한 연결, 갭 (또는 구멍)의 예술’이라고 규명한다.48) 그림 면을 중요한 하나의 의미의 연계체제(signifying network)라고 규명할 때, 세잔 그림의 색채표면의 유연성 있는 텍스추어는 붓터치에 의한 것일 뿐 아니라 그것들의 부재에 의해서도 형성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순수한 시각’과 색채의 효과

근대 미술에 대한 통찰을 갖고 세잔의 그림을 분석한 한스 세들마이어(Hans Sedlmayr)는 우리에게 정신분석학적 관심과 시각적 효과 사이의 특정한 관계에의 연결점을 제공한다. 그는 세잔이 ‘순수한 시각(pure vision)’에 도달하기 위해 그의 초상화에서 인간적 느낌을 고의적으로 배제했다고 설명한다. 세들마이어는 쓴다: ‘세잔의 근본적 목표는 시각적 세계에서 “순수한” 시각이 발견할 수 있는 것을 나타내는 것인데, 이 시각은 모든 지적이고 감정적인 오염을 정화시켰던 것을 말한다.’49)

세잔의 감각에 있어서 ‘순순히 보는 것’의 이러한 자세는, 세들마이어에 따르면, 이 화가로하여금 모든 것들이 더 의미 있고, 일상적으로 나타나는 것보다 더 “실제(real)인” 것으로 보이게끔 유도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세들마이어는 그의 순수한 시각에 있어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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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용을 또한 언급한다: ‘세잔이 우리로 하여금 온전하게 눈의 경험으로 제한시키는 것’은 눈이 경험하는 세계로부터 우리를 격리하여 그 세계로 향한 길을 느낄 수 없도록 한다’는 것이다.50)

세잔 미술에서 무관심 혹은 냉담함을 ‘인간적인 것을 벗어나는(extra-human)' 그리고 ‘삶에서 분리된’ 것으로 보는 노보트니의 해석을 발전시키면서, 세들마이어는 대상들을 묘사하는 데에 있어서 세잔 태도의 독자성은 일상적인 것들의 세계로부터 물러나서 그것들의

‘궁극적 근본(ultimate origins)’에 달성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51) 세들마이어는 대상들로부터의 일상적 감정적 연계를 철회하는 곳에서 세잔은 그의 ‘근원적 수준(essential sphere)에 도달하고 색채 그 자체의 영역을 발견한다’고 제시한다. 세들마이어는 그 ‘특이한 심리적 상태’에서 도래하는 작가의 지각이 그의 색채의 강도와 직결되는 순간을 포착하면서 다음과 같이 쓴다.

사물들을 보는 이러한 방식이 갖는 마력은 가장 일상적 장면조차 야릇하고 근본적인 신선함을 획득하게 되고, 무엇보다 색채가 대상들을 지시하고 규명하는 임무로부터 해방되어 이전에는 갖지 않았던 강도를 얻는 것이다.52)

이러한 것은 1870 년대 후기의 세잔 초상화들 중 몇 점을 살펴봄으로써 눈으로 확인되는데, 이 시기는 바트에 의하면 그의 인물 묘사가 갈등관계에서 통합성으로 이끌어지고 동시에 인물들이 더 공허해지고, ‘비개인적이고 일반적인’ 것으로 된다고 설명한다.53) 예를들어, 그의 <빅토 쇼케의 초상> (도 1)이나 <빨간 안락의자의 세잔 부인>(도 24)에서 세잔의 흥미는 각각 다른 면들(planes)에 존재하는 색채들 사이의 연관관계에 집중되는데, 이 면들을 통해서 세잔은 공간적 관계들을 재배열할 수 있었고, 다른 영역들의 다양한 색채들이 그림면의 최전방에서 통합되어지는 하나의 시각적 효과를 산출한다. 마이어 샤피로는 <빅토 쇼케의 초상>에서 그림 표면에 주시하여 깊이를 약하게 하는 고안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는 설명하기를, 원칙적으로 그 방법이 하나의 면(plane)에 있는 것을 깨뜨리고 부숴서 다양한 깊이에 걸쳐 있는 그림 면에 통합시켰다는 것이다.54)

특히 <빨간 안락의자의 세잔 부인>에서의 흥분을 자아내는 색채 효과를 간과할 수 없다. 이 캔버스에서 전체 그림 표면을 뒤덮고 있는 색채의 짜임새는 견고한데, 여기에서 세잔의 관심은 그림 면에서 색채가 확장하고 반사하도록 그 평면에 색채를 쌓아 올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놀라운 색채의 향연은 리본이 달린 블라우스의 녹색, 올리브색, 옥색, 보라, 또 안락의자의 오렌지-빨강 색, 그리고 스커트의 현란한 노랑 및 연두색의 응집되고, 강도 있는 복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녀의 스커트를 볼 때, 우리의 시각은 그 촉각적이고 또한 청각적인 감각들로 전이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그 옷의 질감을 만지고 그녀가 움직일 때 나는 산뜻한 소리를 듣는 것 같다. 이러한 복합적 감각들이 그림 면에 구성되어 있는 색채들로 집약되어 진다.

이 초상화는 올땅스 휘께의 관상적인 표현과 개인적, 감정적 상태의 자세한 묘사보다 색조의 충만함을 통해 충분한 시각적 만족을 준다. 여기에서 그림의 평면성은 색채의 향연으로 인해서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현란한 빨간 안락의자가 하나의 울타리와 같이 기능하고, 인물의 상체가 그녀의 후진하는 둔부와 또 스커트의 반짝이는 평면적 짜임새 아래 급격하게 단축된 허벅지 부분과 상당히 분리되어 있음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

가스께는 세잔의 정물화를 읽는 가운데, 세잔이 ‘순수한 색채의 즐거움이 아닌 모든 다른 것으로부터’ 대상을 ‘분리시키므로써’ 그의 감정의 본체에 다다르려고 시도했다고 강조한다.55) 도리발도 유사하게 세잔이 ‘모델의 구조를 이루는 주된 부피를 기하학적으로 단순화시키고 거기에 색채와 삶을 부여하므로써' 생생한 색채를 이룬다고 한다.56) 클리쉐에 대한 거부는 세잔 초상화의 독특한 색채효과에 있어 중요한 연관을 갖는다. 다시말해, 세잔 그림에서 색채의 깊이는 모델의 감정적 표현, 성격, 그리고 작가의 그(그녀)에 대한 연관조차 배제시키는 것에 크게 빚지고 있다 할 수 있다.

질문은 명확해진다: 왜 세잔은 그의 대상(모델)을 가능한한 소원하게 해야 했던가? 세잔의 강도 있는 색채를 통해 전달되는 정서(affect)가 대상에 대한 감정적 반영으로부터 철회에 기반한다는 이러한 역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의 표현에 있어서 이렇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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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void)에서 초과(excessity)로의 전환에 관여한 심리적인 메카니즘은 무엇인가; 명백히 ‘삶으로부터 분리된’ 형태를 취하는 그의 그림을 구성하는 색채를 통한 삶에의 열렬한 욕망을 보여주는 그런 아이러니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세잔 그림에 있어서 그러한 역설적인 측면은 기호체계와 멜랑콜리아 또는 불완전한 애도 사이의 관계에 대한 크리스테바의 설명에서 구조적인 유사성을 찾는다. 크리스테바는 싸인에 있어서의 독특한 멜랑콜리아의 메카니즘을 강조하는데, 그것은 싸인이 기초해 있는 상실의 부인(the negation of the loss)을, 즉 (모성적) 사물본체의 상실을 언어적으로 극복하고자 하지 않고 이 싸인에 정서(affect)를 싣는다는 것이다.57) (이에 반해, 일상의 경우 말하는 주체(speaking subject)는 언어의 습득으로 주체 형성에 있어서의 근원적인 상실을 극복하고자 한다.) 크리스테바는 멜랑콜리아에서는 언어(번역)가 ‘이름붙일 수 없는 것을 포착하기 위해’ 그 자체에 소원하고 이질적인 것이 된다고 분석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결과되는 멜라콜리아에 있어서의 정서는 현존하는 언어의 한계를 확장시켜서 ‘낯선 연쇄(의미에 있어서 연결)나 개인적 언어 그리고 시’와 같은 새로운 언어들을 산출한다고 설명한다.58)

크리스테바의 멜랑콜리아 분석은 따라서 세잔 초상에서 인물들의 무관심하고 소원한 표현과, 세들마이어의 묘사를 빌어 ‘본래적 신선함’을 갖는 세잔 색채의 강도 사이의 근본적인 연계에 하나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불완전한 애도(멜랑콜리아)에 있어서 정서의 과잉(excess of affect)이 주체가 스스로에게 소원하게 되는 것(becoming alien to itself)의 작용에 밀접하게 연관됨을 드러내는 그녀의 설명이 그러하다.59) 그러한 정서의 과잉은, 세잔의 경우에는, 기호학의 영역에서 색채에 의해 표현의 전방으로 이끌어지고 전달되어진다. 의미체계에 관계된 멜랑콜리아의 구조에 대한 크리스테바의 설명은 세잔 초상화에서 인물에의 개별적 느낌의 표현을 제거하는 것과 그의 색채에 보유된 정서의 과잉 사이의 역설적인 관련을 이론적으로 이해하도록 한다. 세잔의 색채는, 멜라콜리아의 작용에서처럼, 의미하는 중성성(signifying neutrality)이 밀려나간 다음에, 그 시각적 싸인에 있어서 독특한 공간적인 공명(spacious resonance)을 이룬다.

흥미롭게도, 세들마이어는 사실상 세잔과 다른 근대 화가들과 같은 소위 ‘순수한 화가들'(pure painters)이 ’병리적인 경계에 다다른다’면서 그들의 심리적 구조를 간파한다.60) 세들마이어는 이러한 작가들의 그림들에서의 인물의 신체의 형태들에 주목하면서 그 자체는 어떠한 내재적인 의미를 갖지 않고, ‘나무 인형’, ‘인체 모형’ 혹은 ‘공학적 모델’로 나타난다고 묘사한다. 그러므로써, 그는 이러한 화가들에 의해 인지된 사람 몸의 ‘신체없는’ 상태를 외부 대상들에 대한 그들의 투영 능력의 결여로 돌리고 있는데, 세들마이어는 바로 이것이 근대 회화의 영역을 연 것이라 한다.61) (여기에서 앞에서 언급한 대로 클라인의 우울증의 증상에 대한 분석을 상기할 수 있다.) 세들마이어가 ‘순수한’ 화가들에서 감지한 ‘병리적인 상태’는 크리스테바의 시각에서 멜랑콜리아의 증상으로 볼 수 있다.

세들마이어는 세잔의 그림을 ‘인상주의와 표현주의 사이의 좁은 등성이’ 그리고 ‘경계선 양상’으로 규명하는데, 특히 그의 인물 묘사에서 보이는 부자연스러운 고요성과 표정의 공허함은 ‘무의미와 싸인들(nonmeaning and signs)’ 사이의 경계적 영역에서 고려되어지는 멜랑콜리 증상과 통한다. 세잔의 초상화에서 보는 인물의 무표현성으로 그림에서 단순한 부재(nothingness) 대신에 심도 깊은 정서를 담고 있는 그의 색채가 강조되어지는데, 이러한 색채의 놀라운 강도가 드러내는 심적 중량감은 ‘어두운 비상징주의(asymbolism)에 대항하여 분투하는 심리의 경계적 경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62) 세잔이 크리스테바 이론에서 ‘멜랑콜리 예술가’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색채 기호학이 이루는 의미과정(signifying process)을 통해 상실을 보유하는 것에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세잔 초상화에서의 엄숙하고 침잠한 인물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욕망을 완전히 빼앗긴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가장 어두운 순간조차, 그들은 무(無)로, 검정색의 절망에 빠지지 않았고, 종종 포용하는 푸른색에서 색채의 위안적인 공명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런 느낌으로 우리는 그의 <로자리를 가진 늙은 여인> (도 9)으로 돌아온다. 이 그림의 주된 색인 회색빛 감도는 어두운 푸른색은 희망 없이 가라앉은 이 그림을 색채에 있어서 일종의 기호학적 피신처와 같이 완전한 비상징주의의 무의미성으로 빠져들지 않도록 견고하게 부여잡고 있다. 이러한 단호한 의지는 전체 그림면을 스며들어 있는 깊고 견고한 푸른색으로부터 발산하고 있는데, 이것은 로자리가 그녀에게 유일한 희망인 양 결사적으로 부여잡고 있는 노파의 가엽도록 고부라진 손에서 형태적으로 상응된다. 이 그림에서 저변에 깔린 푸른색은 절대적인 무신론과 절망적 신앙의 경계에서 안깐힘을 쓰는 주체의 불안정한 상태를 견고히 지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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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의 푸른색은, 바트가 밝혔듯이 미술사에서 거리를 표현해 왔던 그 전통적인 기능을 가장 완숙히 발현시켰음과 동시에, 크리스테바에 의해 제시되고 그리젤다 폴록이 강조했던 푸른색이 갖는 '탈중심화 효과(noncentered or decentering effect)'를 실현하는 데 기여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주체가 하나의 '고정된 시각적 “나”(the fixed, specular "I")'로 형성되기 전의 근원적 순간을 경험하게 하는 효과를 말한다.63) <푸른 작업복의 농부> (V.687; 1892 or 1897; 킴벨 미술 박물관, 텍사스) (도 25)에서의 시원한 프러시안 파랑은, 세잔의 푸른색이 크리스테바가 주장한 바대로 지오토(Giotto)로부터 시작된, 색채를 통한 서구 회화의 해방을 더욱 완성시켜 현대미술의 색채 회화 (마티스, 로스코, 몬드리안)로 연결시켜준 중요한 다리 역할을 했음에 하나의 예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64) 이 그림에서의 푸른 색조는 재현(representation)을 너머선 독자적인 색채 영역을 유감없이 나타내는데, 공기가 함유된 듯한 넉넉하고 융통성 있는 그 텍스추어를 통해 멜랑콜리의 고립감과 분리감이 경감되면서 미적 승화(sublimation)에 도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세잔의 자화상 / 라캉의 거울단계 이론 / 멜랑콜리아

벌 재단(Buhrle Foundation)의 <팔레트를 가진 자화상> (V.516; 1885-7; 쥬리히) (도 26)에서, 세잔은 그의 응시를 굳건하게 고정시킨 채, 이젤에 놓여진 캔버스 앞에 직립의 정적인 포즈를 취하면서 팔레트와 붓을 잡고 있다.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전경의 팔레트와 캔버스는 관객과 화가 사이에 놓여 있다. 밝은 안개같이 칠해진 배경은 인물이 후진할 수 있는 어떠한 공간을 암시하지 않는다. 이 초상에서 화가는 그가 보여지고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고 우리의 눈에 포착된 듯이 그 자신을 우리에게 노출시키는 듯 하다.

이 초상에서 화가는 단색조의 회색으로 칠해진 양복을 입고 있는데 이는 그의 수염과 머리를 또한 묘사한다. 인물의 우세성에도 불구하고 이 초상화에서 그는 우리에게 그가 그의 존재와 작가로서의 강한 주체성을 인식하도록 기대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세잔이 사람을 팔레트, 캔버스 그리고 이젤과 같은 사물들과 같은 방식으로 취급했다는 비판에 일치하면서, 그는 오히려 그 전형적인 무관심과 자신을 강하게 주장하지 않는 모습으로 보인다. 사실상, 그의 신체는 그러한 대상들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의 팔은 팔레트의 연장된 선이 되고 그의 아랫쪽 팔은 거의 팔레트 그 자체에 의해 대체되어 있다. 샤피로는 이에 적절한 묘사를 제공한다: ‘이는 우리가 아는 가장 비개인적인 자화상들 중 하나이다.’65)

화가의 크고 견고한 신체가 팔레트의 수평적 선과 이젤의 약간 경사진 수직적인 선이 이루는 틀에 들어가 있다. 노랑기가 감도는 브라운의 이젤, 적갈색의 팔레트 그리고 하단 왼쪽 구석에 있는 벽돌 빨강 탁자의 부분이 그의 신체를 둘러싸는데, 신체는 자켓과 수염의 어두운 회색, 이젤의 색과 유사한 색조의 밝은 브라운 얼굴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자화상에서 세잔 그 자신은 그가 자신의 모델들에게 요구했던 완전히 고요한 포즈를 이루고 있다.

<팔레트를 가진 자화상>에서 가장 의아스러운 것은 화가가 들고 있는 팔레트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것은 그림 자체와 유사한 색조를 갖고 있다: 어두운 남색, 회색, 다양한 색조의 브라운 등이 그러하다. 우리의 주의가 이 초상에서의 팔레트로 이끌여지는 것은 주로 그 어색하고 맞지 않은 각도 때문일 것이다. 팔레트는 인공적인 방식으로 위치해 있는데 이는 작가 자신을 향해 있지 않고 그로부터 돌려져 그림면에 병행되도록 되어 있다. 그가 그림을 그리려고 하는 순간을 가정할 때 팔레트가 비현실적으로 쥐어져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더군다나 그렇게 정확하게 수평적 각도에서 그의 손가락이 얼마나 지탱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팔레트의 수평적 병행들의 정확한 선들과 그 과장된 날카로운 모서리들은 우리에게 극도의 절제와 불편함마져 준다.

이 <팔레트를 가진 자화상>에서와 같이, 모델로서의 작가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행위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자화상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일반적인 자화상의 도상은 인물의 시선이 밖으로 설정되어 작가(및 관객)의 눈과 마주쳐 그리는(보는) 주체에 속함을 확인하는 것이 보통이다. 세잔으로 말하자면, 이 초상화 이외에 단지 몇 점의 예외들이 있는데, 이들은 <베레모를 쓴 자화상> (1989-1900; V.693;

보스톤의 미술박물관)과 다른 두 자화상들이다 (V.289, V.130).

필자는 이와같이 <팔레트를 든 자화상>에서의 비일상적인 응시의 방향과 시선과 관련된 팔레트의 구조적 차단 효과 그리고 두드러지게 큰 신체의 비율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러한 점들을 자화상을 그리기 위해서 화가가 사용할 수 밖에 없는 거울과의 관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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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고하고자 한다. 우선 거대한 신체 비율로 미루어 세잔이 이 그림을 그릴 당시 거울로부터의 거리가 상당히 떨어졌음을 알 수 있고, 마주치지 않는 시선의 방향은 작가의 눈이 거울로 향하지 않는 순간을 의미한다 - 마치 거울에서 비춰지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찾는 것처럼.

이 초상화에서 부자연스럽게 그림 면에 병행되게 묘사된 팔레트는 마치 거울을 통해 자신을 보는 세잔의 시선 (그리고 인물을 보는 관객의 시선)에 대한 방패인 것처럼 그리는 화가와 그려지는 화가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 샤피로가 묘사한다: ‘그의 손에서의 정지된 팔레트는 관찰자와 작가-주체 사이의 중요한 장벽이다’66) 그렇다면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왜 세잔은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의 관계에서 이와같이 시각의 장벽을 요구하였는가?

<팔레트를 가진 자화상>의 이러한 특징들에 관심의 초점을 두면서 팔자는 쟈크 라캉의 초기 이론인 거울단계 이론을 참고하여 이 그림의 이해를 도모하고자 한다. 라캉의 1930 년대에 발표된 거울단계 이론에서 6 개월에서 18 개월 사이의 소아가 최초의 총체적 이미지를 거울에서 발견하고 형성하게 되는 주체성의 구조를 분석한다. 이 이론의 핵심은 주체의 실제 신체(real body)와 거울의 반영된 신체(specular body) 사이의 견고한 공간적 관계들에도 불구하고, 이 총체적 자아의 이미지는 주체의 소외를 대가로 한 환상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분리된 두 개의 위치로 인한 ‘나’의 분열은 ‘나’의 지각에서의 자아의 일부분을 상실하게 된다.

세잔의 자화상들 중에서 벌 재단의 이 그림은 그 신체의 비율에 있어서 특별히 두드러 진다. 이미 지적했듯이 그가 이 자화상을 그렸을 때 그는 거울로부터, 또한 그림으로부터 꽤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을 주목하자. 여기서 제기할 수 있는 한가지 질문은: ‘자기 자신을 지각하는 데에 있어 거울로부터의 거리가 어떤 차이를 가져오는가?’하는 것이다. 필자의 제안은 거울에 가까이 갈수록 라캉의 거울단계의 메카니즘으로부터 피하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거리의 관점에서 우리는 세잔이 거울, 캔버스 그리고 화가 자신 사이의 먼 관계를 설정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는 그가 자아의 통합된 구성을 꾀하는 거울의 환영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상정한다.

다시 말해, 몰입과 무관심의, 존재와 부재 사이의 중간 영역에 속하는 그의 비스듬한 응시를 통해, 이 자화상은 우리가 가능하게 거울단계의 메카니즘을 피할 수 있는 영역으로 유도한다.

라캉과 그의 추종자들이 강조한 거울단계에서의 역설적 구조를 다시 살펴보자. 무엇보다 라캉의 초기 거울단계 이론에서, 그가 거울단계를 거치는 어린 아이가 갖게 된다고 한 즐거움은 환상에 기반해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말콤 보이(Malcolm Bowie)는 이를 강조한다: ‘신체, 배경, 그리고 거울의 복잡한 기하학이 개인에게 일종의 계략, 기만, 유혹으로 작용한다.’67) 보이의 라캉 해석이 있어서 흥미로운 것은 거울 앞의 아이는 우리가 가정하는 것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보이의 말을 인용하면, ‘아이는 속아 남아 있고자 하는 비꼬인 의지를 갖는다’.68) 비록 아이가 거울 시각이 자아의 지각을 위한 덫이라는 것을 알지라도 (그리고 우리는 라캉 덕분에 이를 이론적으로 알지만), 거울은 여전히 시각 영역에서의 총체적 신체를 가진 자아의 견고한 확신을 제공한다.

불안정한 느낌은 있으나, 시각적 (오류)지각 - (mis)preception - 을 통한 자아의 구성은 거울 단계의 환영에 구조해 있다.

거울단계의 순간은, 제인 갤럽(Jane Gallop)이 강조하였듯이, ‘라캉이 자아의 기본적 기능이라 부른 것, 즉 오인(recognition)의 첫 경우이다.'69) 거울단계에서의 그러한 환영은 거울 앞에 있는 아이에게 그 타당성을 확신시켜 주는데 왜냐하면 아이의 실제 신체와 거울에 비춰진 시각적 신체 사이, 그리고 신체와 배경 사이에 견고한 공간적 관계들이 있기 때문이다.70) 그러나 거울 단계에서의 환영이 자아의 소외를 담고 있다는 라캉의 요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론적으로 아이가 통합성을 가진 ‘나’를 인식하게 되는 순간은 또한 주체가 그 자신과 부조화하게 되는 사실을 나타낸다. 유사하게 바이스 벤베누토(Bice Benvenuto)는 쓴다: ‘자아의 형성은 그 스스로의 이미지와의 소외와 매혹의 지점에서 시작한다’.71)

자아 형성에 있어서 그러한 필수적인 소외는 이름붙일 수 없는 흔적들을 남기는데, 그것은 자아의 ‘실제 신체(real body)'와 거울에 반영된 ‘반사적 이미지(specular image)' 사이의 분열로부터 부상한다. 우리는 ’나‘에의 기초를 형성하는 거울 이미지에 의한 포획의 과정에서 우리 자신들의 어떤 부분을 상실한다. 거울 단계에서 그려진 소외를 우리로 하여금 재규정할 수 있도록, 우리는 그의 초기 이론의 수정을 필요로 할 것이다. 이 대립적인 소외는 ‘objet a 로서의 응시’라는 라캉의 후기 개념에서의 이론적 해결을 찾는데 이것은 그의 구절로

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