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국토 제424호(2017. 2) 국토시론
2016년 1월 다보스 포럼에서 공식 의제로 채택되면서, ‘제4차 산업혁명’은 시 대적 키워드로 급부상하였다. 다수의 관련 서적이 국내외에서 출판되었고 신 문과 방송 등 많은 언론이 이 주제를 특집으로 다루었다. 학계에서는 연구 주 제로, 정부는 정책 과제로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먼저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해 보자. 제4차 산업혁명은 과연 이전의 산업혁 명에 버금갈 정도인가? 증기기관이 가져온 1차 산업혁명의 충격, 전기가 가 져온 2차 산업혁명의 충격, 컴퓨터가 가져온 3차 산업혁명의 충격은 모두 경 제·산업 전반의 생산성 혁명으로 귀결되었다. 이전의 산업혁명은 생산, 소 비, 조직, 고용 등에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하였고 이는 경제 전체의 생산성 증 가로 나타나 경제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 과연 제4차 산업혁명도 이전에 버금갈 정도의 생산성 혁명을 가져올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불확실하다. 제4차 산업혁명에서 거론되는 다수의 기 술들이 이미 산업 현장에 변화를 가져오고는 있지만, 패러다임 전환까지는 이 루어지지 않고 있다.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은 빠른 속도로 보급·활용되고 있는 반면, 로봇, 인공지능 등이 폭넓게 활용되어 경제·산업 전반에 큰 변화 를, 예를 들어 조직변화를 가져오기까지는 시간이 더 소요될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기술들이 근본적으로 경제전반의 생산성 혁명으로 나타날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 이전의 세 차례 산업혁명이 초래한 생산성 혁명이라는 측면에서 제 4차 산업혁명은 ‘아직은’이라고 판단을 유보하는 게 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보스 포럼의 마케팅에 넘어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충격이라는 측면에서는 과장되긴 했지만,
제4차 산업혁명,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할 것인가
서중해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mail protected])
3 제4차 산업혁명 담론에서 제기되는 핵심 사안은 우리 경제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기 때문 이다. 제4차 산업혁명 담론이 아니어도 우리가 근본적으로 대처해야 할 과제들이 제4차 산업혁 명의 논의점으로 더 부각되었다고 판단한다.
제4차 산업혁명 논의에서 주목할 점은, 먼저, 변화의 속도이다. 신기술의 확산이 임계점을 넘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정착할 때까지 소요되는 시간(기술확산 속도)이 짧아지고 있다. 기 술확산 속도를 보면 증기기관 120년, 전기 50년, 항공기 25년이었는데, 인터넷은 7년에 불과하 다. 현재 논의되는 많은 기술들의 확산속도는 더욱 짧아질 것인데, 이는 후발국이 준비할 여유 시간도 짧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변화가 감지되면 빨리 대응해야 한다.
두 번째는 잠재적 파괴력이 발휘되는 방식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경제는 글로벌화로 더 통합되고 정보통신기술로 더 연결되었으며 생
산의 우회과정은 더 길어졌다. (이를 경제 활 동·구조의 복잡성 증가라 한다.) 복잡하게 연 결된 경제에서 충격은 증폭되어 파급되고, 충 격의 범위와 대상이 급격하게 커진다. 경제력 의 집중, 승자독식 등의 경향이 더 강화된 배경 에는 파괴력이 발휘되는 방식의 변화가 있다.
아이폰과 같은 파괴적 혁신, 스타 기업·인재 에 대한 보상의 급격한 증가 (그로 인한 소득불 평등 확대) 등의 현상이 이를 보여준다. 제4차 산업혁명에서 거론되는 신기술이 실현될 경우, 경제 활동·구조의 복잡성과 연결성이 현저하
게 커졌기 때문에 그 파괴력은 대단히 클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응 방식도 달라져 야 하는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서 제대로 된 논의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세 번째는 노동의 미래이다. 이전의 산업혁명은, 부분적으로는 신기술에 의한 노동 대체로 피해를 보는 집단이 발생하였지만,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면서 고용이 늘어나 경제전반의 후생 을 증가시키는 선순환을 이루었다. 과연 제4차 산업혁명에서도 이런 선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 을까? 관건은 일자리와 소득의 ‘순환’에 있다.
이전의 산업혁명에서는 자본과 노동이 상생해 왔다. 자본 축적은 일자리와 함께, 노동생산 성 제고를 가능하게 하였고 이는 자본과 노동 모두의 소득 증가를 가능하게 하였다. 자본과 노 동에 이어 로봇이 등장하는 제4차 산업혁명에서는 생산에 참여하는 노동의 생산성이 현저하게 증가하겠지만, 일자리도 함께 늘어날지는 분명하지 않다. 따라서 경제 전체로 볼 때 자본과 노 동 사이의 몫이 어느 쪽으로 기울지 예단할 수 없다. 한편으로는, 노동의 몫이 줄어들 수 있다
제4차 산업혁명에서
거론되는 신기술이 실현될 경우,
경제 활동·구조의 복잡성과
연결성이 현저하게 커졌기 때문에
그 파괴력은 대단히
클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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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전의 산업혁명과 같이 일자리도 늘어나 자본-노 동의 상생이 가능할 것이라는 낙관론도 있다. 만일 비관론에 따라 노동의 몫이 줄어든다면, 유 효수요의 부족으로 자본주의는 지속가능하지 않게 된다. 소득이 ‘순환’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하게 된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기술의 활용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제4차 산업혁명에 서 논의되는 기술은 대부분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다. 우리는 밑바닥부터 만들어갈 능력이 크 게 모자란다. 외부의 기술을 재빨리 활용하여 산업현장에 적용하고 혁신을 이루어내는 전략으 로 대응해야 한다. 제4차 산업혁명에서 논의되는 기술의 활용·응용 영역은 무한하다. 재래식 농업의 한계를 돌파하는 스마트팜, 자본집약적 제조업의 한계를 돌파하는 스마트공장, 도시 전
체를 재생시킬 수 있는 스마트시티, 국토 전체 를 고도화할 수 있는 스마트공간, 질병치료의 새로운 장을 여는 스마트헬스 등, 우리가 생각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신기술의 접목 이 가능하다.
이러한 미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신기술의 활용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을 제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스마트헬스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개인정보의 사회적 이용이 가능해야 한다. 사 생활이 보호되면서 개인정보의 데이터화를 통 한 공유가 허용되도록 법제를 정비해야 한다.
신기술을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허 용된 것만 할 수 있는 현재의 규제방식에서는 신기술의 실험과 혁신이 불가능하다. 금지된 것 외에는 할 수 있도록 규제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근본적으로 노동의 미래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는 디스토피아가 아 니라 생산성 혁명을 통한 선순환, 자본과 노동의 상생이 가능한 자본주의를 설계하는 것이다.
상생의 자본주의 실현은 궁극적으로 일자리와 소득 창출에 달려 있다. 노동시장이 원활하게 작 동하면 경제·산업의 구조전환이 촉진되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여지가 늘어난다. 또한 노동 의 미래에 대응하여 교육·훈련체제를 바꾸어야 한다. 판에 박힌 작업은 로봇이 더 잘할 수 있 다. 반면 인간의 자유로운 사고와 가치의 세계는 로봇에게 점령 당하지 않을 것이다. 로봇에 맡 기고 남은 시간에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인간이 노동의 미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