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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12년 02월

교육학석사(음악교육)학위논문

고등학교 음악교과서의 한국음악사 분석 연구

조선대학교 교육대학원

음악교육전공

손 경 아

(3)

고등학교 음악교과서의 한국음악사 분석 연구

Anal yt i cSt udyonCont e nt sofKor e an Tr a di t i onalMus i ci nHi ghSc hoolTe xt books

2012 년 02 월

조선대학교 교육대학원

음악교육전공

손 경 아

(4)

고등학교 음악교과서의 한국음악사 분석 연구

지도교수 김 혜 경

이 논문을 교육학석사학위 청구논문으로 제출함.

2011 년 10 월

조선대학교 교육대학원

음악교육전공

손 경 아

(5)

손경아의 교육학 석사학위 논문을 인준함.

심사위원장 조선대학교 교수 서 영 화 인 심사위원 조선대학교 교수 김 혜 경 인 심사위원 조선대학교 교수 이 한 나 인

2011 년 12 월

조선대학교 교육대학원

(6)

Ⅰ.서론

1

1 .연구목적

1

2 .연구방법 및 범위

3

3 .선행연구 고찰

5

Ⅱ.이론적 배경

8

1 .음악사의 개념

8

2 .한국 음악사의 시대적 구분

9

3 .한국음악사의 교육적 의의

19

Ⅲ.고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나타난 한국 음악사

21

1 .서술 내용과 형식 분석

21

2 .시대구분 및 시대명칭 분석

40

3 .문제점 및 보완점

42

Ⅳ.결론 및 제언

45

참고문헌

47

목 차

ABSTRACT

(7)

표 목차

<표 1> 한국음악사 내용을 수록한 3종의 고등학교 음악교과서 3

<표 2> 한국음악사 시대구분 9

<표 3> 금성의 시대 구분과 서술내용 28

<표 4> 금성의 시대별 사진 자료와 감상곡 29

<표 5> 박영사의 시대 구분과 서술내용 33

<표 6> 태성의 시대 구분과 서술내용 37

<표 7> 고등학교 음악교과서 3종의 삽입 사진자료 38

<표 8> 고등학교 음악교과서 3종의 음악사와 연계된 감상곡 39

<표 9> 고등학교 음악교과서의 한국음악사 시대구분 및 시대명칭 비교 41

(8)

자료 목차

[그림 1]금성교과서에 실린 울산 반구대 암각화 22

[그림 2]금성교과서에 실린 '범패'감상 23

[그림 3]금성교과서에 실린 '관악 보허자'감상 25 [그림 4]금성교과서에 실린 최초의 극장 '원각사' 27 [그림 5]박영사 교과서에 실린 조선시대 서술내용과 사진자료 32 [그림 6]태성 교과서에 실린 한국 음악사 '시대 구분 및 서술 내용 구성‘ 36 [그림 7]박영사 교과서에 실린 조선시대 서술내용과 사진자료 32

(9)

ABSTRACT

Anal yt i cSt udyonCont e nt sofKor e a nTr a di t i onal Mus i ci nHi ghSc hoolTe xt books

Kyung-A Son

Advisor:Prof.Hae-KyungKim,Ph.D.

MajorinMusicEducation

GraduateSchoolofEducation,ChosunUniversity

In this study,the three certified music textbooks for high schools for Korean music history were analyzed aboutthe problem and suggested a good way to improveit.

Peoplearetaughtmusicgenerallyatschool,Soitsclasstextbooksaretobethe mostimportantlearning medium forstudents.When students learn aboutKorean MusicHistorybytextbooksitisofgreatsignificancebecauseithelpsthestudents build the foundation forlearning music as wellas understand music as a whole throughlearningitschangesinhistory.

Therefore,thisstudy,thethreecertifiedmusictextbooksforhighschool,analyzed the history of music Korea Such as Discription contents, formal analysis, age-sensitiveageanalysis,designationofthearea.

The results obtained with this,Solutions thatneed textbook problems accordingly analyzesystematicconfiguration,editingcontentsandpresentedPicturesdata.

Compared with the three certified music textbooks for high schools looking comprehensive comparison and analysis, each textbook appeared in the overall developmenttrend ofthe times, Characteristics,background music ofeach era to describetheconfigurationshownbyconnected.

(10)

First,KumsungCo.consisedtheHistoryofKoreanMusicintheareabyorganizingthe musicofprehistoric·ThreeKingdomsperiod,GoryeoDynasty,Early Joseon Dynasty, Late Joseon Dynasty,Korea Modern and contemporary period and presented tendency music.

Second,ParkYoungCo.dealswithunderstandingthehistoryofKoreamusicandperiod assortmentdivided into totalEightages,such asprehistoric, Goguryeo,Baekje,Silla, United Silla,Goryeo Dynasty,Early Joseon Dynasty,Late Joseon Dynasty,afterthe enlightenment- thecurrent.Thus,Wecan seethatthetitleofTheThreeKingdoms periodisdisappeared.In general,calledtheThreeKingdomsofGoguryeo,Baekje,Silla calledtheperiodofTheThreeKingdomsperiodisnotclassified,theprehistoric,after the enlightenment - contemporary music,divided into each Nation,distinction and descriptions,separately.

Third,TaeSungCo.usedgeneralclassifiedmethodinhistoryofKoreafrom prehistoric to contemporary peroid.Specifically,prehistoric(B.C.–100),Three Kingdoms(200-676), United silla(676-935),Goryeo dynasty(935-1392),Joseon dynasty(1392-1860),Modern · Contemporary(1860-current).

As a result,each textbook Showing period Classification and Descriptions of the textbookscontentshowingdifferentaspectsthatcanbeseen.

Therefore,thisstudyunderstandingtraditionalmusicinKoreatounderstandthehistory correctly analyzescontainedin ahigh schooltextbooksrevisionandsupplementation of SouthKoreaandresearcheffectivewaystoorganizecontents.

(11)

Ⅰ.서 론

1.연구목적

오늘 우리가 듣는 음악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있었던 것’에서 ‘새로 운 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반복되어 우리에게 주어지듯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음악은 변한다.

역사는 모든 전문분야에 있어서 가장 기본바탕이 되는 지식으로 자국의 역사를 이해 함과 동시에 문화적 또는 역사적 의식을 고취할 수 있다는데 그 의의가 있으며,이는 예술분야의 음악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변화하고 발전 되고 있는 유구한 역사의 흐름 속에 함께 해 온 음악을 올바로 알기 위해서 반드시 역사 학습이 선행 되어야 한다.

음악사는 단순히 음악의 역사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 뿐 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통음 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부분으로,음악에 관한 총체적인 교육 즉,가창, 기악,창작 등 여러 음악적인 활동의 그 기초인 것이다.그러므로 음악 역사 관한 지식 은 음악을 공부하는 데에 있어서 반드시 바로 알아야할 것이다.

전통음악을 올바르게 학습하기 위해서 먼저 한국 음악의 역사를 연구하여 시대적 흐 름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시대적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를 이루는 정 치,경제,사회,문화 등의 모든 요소들의 이해가 유기적으로 작용해야하며,이러한 시 대적 흐름의 이해를 바탕으로 그 시대의 음악적 특징과 음악문화의 발달과정을 단편적 인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폭넓게 이해 할 수 있어야겠다.

우리는 일반적인 음악 교육을 학교 교육을 통해서 접하게 된다.학교 음악 교육에 있 어서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해주는 학습도구인 음악 교과서는 가장 중요한 교육 매체라 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교과서의 중요성은 매우 크게 인식되지만,실제 교육 현장에서 사용하 는 각 출판사에서 발행한 음악 교과서는 종합적인 사고로 한국 음악사를 학습하기에는 내용편성과 구성에 있어서 다소 미흡한 점들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현재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학습 자료로 쓰이는 교과서가 과연 한국 음악사 에 대한 교육이 올바르게 진행 될 수 있도록 정리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2)

먼저 한국음악사의 배경이 되는 음악사의 개념과 한국음악사의 시대 구분에 대해 살 펴보고,고등학교 음악 학습에 있어서 한국음악사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살펴보고 고 등학교 음악교과서에 나타난 한국음악사의 서술내용과 형식을 분석하고 시대 구분 및 시대 명칭을 교과서별로 분석하여,이를 통해 얻어진 결과로 교과서의 서술 방식의 문 제점과 제시된 감상곡이 적절한지 등에 대해 살펴보고 학생들이 보다 정확한 역사 기 술에 의한 한국 음악사를 이해하고 적절한 음악을 감상 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즉 한국 음악사를 학생들에게 쉽게 인식하고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다.

(13)

교과서명 출판사명 저자 검인 년

월일 발행연도

고등학교 음악

(주)금성 출판사

양종모,정태봉, 우광혁,신현남, 윤성원,김한순,독고현

2010.7.30.

2011.3.1 (주)

박영사 주광식,진태식,채은영 2010.7.30.

도서출판 태성

주대창,정은경,

홍수진,최종철 2010.7.30.

2.연구방법 및 범위

본 연구는 고등학교 음악 교과서 3종을 분석·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다.

<표 1> 한국음악사 내용을 수록한 3종의 고등학교 음악 교과서1)

각 출판사에서 발행한 고등학교 음악교과서에 수록된 한국음악사 내용을 분석하고자 하며,분석을 통해 얻어진 결과를 토대로 문제점을 찾아보고 그에 대한 바람직한 개선 방안을 제안하도록 한다.

2007개정 음악과 교육과정에 근거한 고등학교 음악교과서를 분석하기 위하여 본 논 문에서 사용하고 있는 방법 및 범위는 다음과 같다.

첫째,본 연구에 들어가기에 앞서 선행 유사 논문의 검토를 통해 지금까지 음악교과 서 내 국악 내용 연구 현황을 파악한다.

둘째,한국 음악사의 이론적 토대가 될 수 있는 기존 문헌을 바탕으로 시대 구분 및 내용을 검토함으로써 본인의 연구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한다.

셋째,고등학교 3종 음악 교과서에 수록된 한국 음악사 내용을 시대별로 구분지어 분석하고 각 교과서의 특징과 문제점을 도출한다.

각 교과서 별로 서술 내용과 형식 분석,시대 구분 및 시대 명칭을 분류한 표로 제 시하여 그에 따른 내용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각 교과서별 논의 점을 간략하게 제시하 1) 출판사 배열순서는 출판사명 금성, 박영사, 태성의 가나다순으로 정하였다. <표1> 이하 내용에는 출판사명을

금성, 박영사, 태성이라 표기하도록 한다.

(14)

도록 한다.

넷째,음악 교과서에 수록된 한국 음악사의 시대 구분 근거는 고등학교 음악교과서 와 기존에 이루어진 연구물들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시대 구분을 바탕으로 한 다.

다섯째,출판사별 내용 분석은 고등학교 음악교과서에 수록된 내용을 한정으로 한 다.

(15)

3.선행연구 고찰

본 연구를 위한 선행연구는 고등학교 교과서의 한국 음악사 내용을 분석하기 전에 기존에 이루어진 연구물들을 검토하고 한국 음악사의 시대별 변천과정과 내용이 어떻 게 구성되어 있는지 살펴보았다.

음악교과서 내 한국 음악사를 분석한 선행논문의 수는 적지 않으나 한국음악사 분석 을 위한 연구의 대상이 중학교 음악교과서의 한국음악사 내용에 대한 연구가 많은 이 유로 본 논문의 연구와 가장 유사하거나,혹은 가장 최근에 발표된 논문 3편2)과 한국 음악사를 다룬 문헌 6권3)을 검토해 보았다.

선행연구 되었던 연구방법은 주로 한국음악사의 시대구분 및 내용구성 측면의 내용 으로 유사하게 구성되었으며,검토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장 사훈은 『한국음악사』에서 삼국 이전의 음악,삼국시대의 악무,통일신라 이후의 음악,고려 시대의 음악,조선 전기의 음악,조선 중기의 음악, 조선 말기의 음악,갑 오경장 이후의 음악,국악의 재건과 현황으로 9시대로 악보자료,악곡분석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서술하였다.

이 성천 외 3인『알기 쉬운 국악개론』에서 선사시대의 음악,고대의 음악,중세의 음악,근세의 음악,근대의 음악 5시대로 나누어 시대구분을 하였고 세부적으로 선사시 대와 고대의 음악은 고구려음악,백제음악,신라음악,신라 통일 이후의 음악,중세의 음악은 향악,당악,아악 근세의 음악에선 초기 태조부터 태종14년까지,세종 때의 음악, 세조 때의 음악,성종 때의 음악으로 근대의 음악에선 조선 후기의 음악,민족수난기의 음악으로 나누었다.그 시대의 음악의 흐름과 연주되던 악기 음악기관과 음악의 유래 등의 다양한 음악사의 내용을 보다 폭넓게 기술하였다.

권 오성은『한민족음악론』에서 한민족 음악의 정의와 범위 및 속성을 비롯 한민족 2)이경진, 「중학교 교과서의 한국음악사 내용연구」 , (한국 교원대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7.)

이정미, 「고등학교 음악교과서에 나타난 한국음악사 내용 고찰」 , -7차 교육과정 8종 교과서를 중심으로- 강원대 교육대학원 교육학석사학위논문, 2007.)

남은정, 「중학교 음악교과서의 한국 음악사 내용 비교분석」, (단국대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0.) 3)장사훈, 『증보 한국음악사』 , (서울: 세광음악출판사, 1986.)

이성천 외 3인,『알기 쉬운 국악개론』 , (서울: 도서출판 풍남, 2004.) 권오성,『한민족음악론』 , (서울: 학문사, 2000.)

전인평,『새로운 한국음악사』 , (서울: 현대음악출판사, 2000.) 서한범, 『개정판 국악통론』 , (서울: 태림출판사, 2007.) 송방송,『증보 한국음악통사』 , (서울: 민속원, 2007.)

(16)

음악학의 연구방법을 먼저 개관하고,한민족 음악의 역사를 다른 문헌들과는 다르게 열국시대 이전의 음악,열국시대의 음악,남북국시대의 음악,고려시대의 음악,조선시 대의 음악,조선시대 이후의 음악으로 6시대로 구분하여 음악사를 기술하였다.일반적 으로 상고시대라고 하는 시대의 명칭을 열국시대 이전이라고 시대구분을 한 이유는 고 구려,백제,신라와 함께 존재하였던 나라인 가야를 포함하면 삼국시대란 말이 적합하 지 않기 때문에 종래의 삼국시대를 열국시대라 부를 수 있고,그 이전 시대를 열국시 대 이전이라고 하는 것이며,또한 통일신라시대라는 것도 남쪽에 국한된 표현이며 그 북쪽에는 발해가 있었기 때문에 남북극시대라 구분 지었다.

전인평은 『새로운 한국음악사』에서 원시음악,고대음악,중세음악,근대음악,현대 음악 5시대로 나누었다.한국음악의 여명기,원시부터 357년 안악 제 3호분 조성까지인 원시음악,서역음악 수용시대 국제교류시대 인 357년 안악 제 3호분 조성에서 1116년 대성아악 수용까지의 고대음악,봉건주의 음악시대,궁중음악 발전시대인 1116년 대성 아악 수용부터 1601년 ‘양금신보’편찬까지의 중세음악,인본주의 음악시대 민간음악 발전 시대 1601년 ‘양금신보’편찬에서 1901년 양악식 군악대 창설까지의 근대음악,민 족음악 모색시대 서양음악 수용시대 1900년 서양식 군악대 창설부터 현재까지인 현대 음악으로 구분지었다.

서 한범은 『국악통론』에서 삼한 시대,삼국 시대의 음악,통일신라시대의 음악,고 려시대의 음악,조선 시대의 음악,근대시대의 음악으로 6시대로 구분하여 국악의 역사 및 그 이론의 변천사를 다루고 있고,기보법부터 옛 악보 개관,악곡,악기,국악사 등 의 전반적인 내용을 체계적으로 설명하였다.

송 방송은 『한국음악통사』에서 향악의 형성과 발전시대,향악의 전성시대,당악·아 악의 수용시대,아악의 정비시대,근대로 전환기의 민간음악시대,서양음악의 수용시대, 민족음악의 모색시대 7시대로 구분을 하였다.다른 문헌과 다른 점은 음악적 특징을 반영한 시대 구분으로 각 시대의 음악문화양상을 소개 하고 있다는 것이며.각종 도상 자료 및 옛 악보 등을 함께 제시하여 방대한 한국음악사의 내용을 큰 흐름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이 경진은 중학교 음악교과서의 한국음악사 내용을 연구하여 상고음악시대,향악의 형성시대,향악의 발전시대,당악·아악의 수용시대,아악의 정비 및 당악의 향악화 시 대,향악의 전성시대,향악의 명맥유지 및 발전의 모색시대로 7시대로 구분하여 송 방 송의『한국음악통사』마찬가지로 음악적 특징을 방영한 시대 구분으로 교과서 내용을

(17)

재구성 하였다.교과서에 수록된 음악사 내용을 비교 분석하고 오류를 찾아 정정하였 으며,음악교과서의 음악사 내용을 재구성하여 기술하였다.

남 은정은 중학교 음악교과서의 한국 음악사 내용을 비교 분석하였는데,상고시대,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고려시대,조선시대,개화기이후 6시대로 구분하여 각 출판사 에서 발행한 교과서 9종의 한국음악사 내용이 학년별 분포를 비교해본 다음 교과서별 로 음악사내용을 분석하였다.

선행 연구물들을 살펴 본 결과 시대구분 및 내용 구성을 정리해 보면, 장 사훈은 시대구분을 기본적으로 왕조의 변천과정에 시대구분을 하였으며,특히 조선시대의 경 우 고악보의 분석 결과에 따른 음악적 변천에 주목하였다.

권 오성은 왕조교체에 따른 시대구분으로 한민족 음악의 역사를 다루었고,서 한범 은 대부분의 연구물들과 마찬가지로 왕조교체에 따른 구분으로 통상 분류되는 방법으 로 시대 구분을 하여 역사 및 변천사를 다루었으며,전인평은 한국음악이 외래음악을 수용한 역사를 살피면서 세계적인 흐름과 관련하여 시대구분을 했다.

남 은정과 김 현수 또한 통상 분류되는 방법으로 시대구분을 기초로 제7차 교육과정 중등학교 음악 및 국사교과서에 기술된 국악사의 내용을 고찰하여 수정 보완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연구하였다.이 경진은 송 방송과 마찬가지로 음악적 특징을 반영한 시대 구분을 하고 중학교 교과서의 한국음악사 내용을 연구하여,음악교과서의 음악사 내용 을 재구성하였다.

이상의 선행된 연구는 대체적으로 음악교과서 내 한국 음악사 내용의 세밀한 분석에 따른 효과적인 방안을 제시한 연구보다는 시대구분과 수록된 구성요소에 주로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다시 말해 기존 연구에서는 교과서내용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을 하지 않고 있다.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서양음악교육에 비해 국악은 아직도 체계성과 효율성이 결여된 과도기적 단계라고 생각된다.따라서 교육의 기초가 되는 교과서를 토대로 분석하여 보다 효과적인 음악사 내용을 구성 또는 편성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기존연구에서 이루지 못한 연구의 질적 향상의 당위성을 가지고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의 파악과 분석을 통해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구성방향을 제안하려 한다.

(18)

Ⅱ.이론적 배경

1.음악사의 개념

음악사는 한마디로 음악에 대한 역사적인 기술이라 할 수 있다.4)역사란 수많은 사 건이 연속하는 것5)으로 시대에 따라 음악은 변하므로 음악이 탄생해서 발전한 과정을 시대별로 연구하는 학문이다.따라서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음악의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시대적 변천을 연구하는 학문이므로 시대적 배경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 이 중요하다.

여러 사건은 우연히 일어나는 것 같지만 각 사건의 전개 과정을 보면 원인이 있고, 이 사건은 다른 사건에 영향을 주게 되기 때문에 역사가들은 자기의 사관에 따라 여러 사건 중에서 특정 사건에 의미를 부여 하고 그것을 시대구분의 계기로 삼는다.

음악사의 연구도 다른 학문의 역사처럼 각 시대에 나타난 역사적 사건을 수집하고 분리하여 체계화 시키는 작업이 포함되었지만,일반 학문의 역사와는 연구 대상과 방 법이 다르다.

역사 속의 음악을 조망해 단순히 음악적 지식을 바탕으로 해설에 그쳐서는 안 되며, 뚜렷하며 체계적인 정리를 하여 철저한 역사 자료 수집은 물론,잘못된 것들을 가려내 는 바탕 자료가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음악사는 서양 음악사처럼 위대한 작곡가들의 작품이 한 시대의 음악 양식 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민족의 삶에서 우러난 자연적인 음악이라 할 수 있다.즉 한 국음악사은 우리나라의 독특한 음악양식으로 이루어진 음악문화로서 한국 사람의 음악 이므로 결국 우리의 민족음악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학 문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겠다.

4) 사전편찬위원회 편, 『음악대사전』(서울 : 세광음악출판사,1982), p.1188.

5) 전인평, 상게서, p.21.

(19)

시 대 구 분

한국 음악사

상고 시대

삼국 시대

통일 신라 시대

고려 시대

조선 전기

조선

후기 근대 현대

2.한국음악사의 시대적 구분

시대구분이란 역사의 발전을 몇 개의 시대로 구분하여 체계적으로 이해하려는 역사 인식의 한 형태로 역사 발전을 몇 개의 특징적인 시대로 나누어 인식하려는 노력이 오 늘날 까지 계속 되고 있다.

앞서 선행연구의 고찰을 통해 한국음악사의 시대구분은 대체로 역대 왕조 교체에 의 한 시대구분이 지배적이다 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표 2> 한국음악사 시대구분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표 2>의 시대구분을 중심으로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또 한 발해음악에 대한 자료가 충분치 않고,교과서에도 언급이 없으므로 발해음악에 대 한 내용을 통일신라에서 다루며,북한음악에 대한 내용은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다.

1)삼한시대

상고시대의 음악은 문헌 기록과 자료가 없는 편이기 때문에 뚜렷한 음악 문화를 헤 아리기 어렵다.한국음악의 여명기로 원시부터 357년 안악 제 3호분 조성까지를 말한 다.안악 제 3호분 벽화는 서역음악의 유입을 알려주는 구체적인 자료가 된다.안악 제 3호 고분 벽화와 중국의 역사서의 하나인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의 기록으 로 상고시대의 음악을 추측해 볼 수 있다.이 시기의 음악문화는 우리나라에 나타난 기록이 없으므로 중국문헌의 단편적인 기록들을 통해 이해할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기원전 1세기쯤 북쪽에는 고구려,남쪽에는 변한과 진한,마한 등의 나라

(20)

가 성장 발전하였다.

이 시기의 음악문화는 우리나라에 나타난 기록이 없으므로 중국문헌의 단편적인 기 록들을 통해 이해할 수 밖에 없다.중국의 여러 문헌은 우리 음악을 기록하고 있는데, 주로 악기 이름과 제천행사에 대해서 소개한다.음악의 형태는 알 수 없으나 음악의 이름의 글자로 보아 춤은 창을 들고 추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으며 농경사회 이전 수렵사회에서 추었던 춤으로 이해할 수 있다.우리의 민속을 소개한 문헌의 글은 매우 상세하게 쓰여졌다.6)

부여에는 매년 12월에 영고라는 제천행사가 있었으며,고구려는 매년 10월에 동맹, 동예는 매년 10월에 무천이라는 제천행사가 있었는데,이것은 씨를 뿌리거나 농작물을 거둘 때 하늘에 제사지내는 풍속이며 사람들이 노래와 춤을 즐겼다.

또한 고대인들은 북이나 방울 같은 타악기에 주술적인 힘이 있다고 믿어 어떤 악기 는 별의 치료에 쓰고,어떤 때는 하나의 의료기구로 사용하기도 하였으며,특히 진한에 는 ‘슬’이라는 현악기가 쓰였다고 하는데,이 악기는 우리말로 ‘고’라는 악기일 것이며 가야고의 원형인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이렇게 상고시대의 악·가·무는 종교적인 제천의식 및 공동체 사회의 농경의식과 밀 접한 관계를 맺고 발전 되었다.

2)삼국시대

삼국시대의 음악은 외래 음악인 서역음악을 수용하여 삼국의 화려한 음악문화를 만 든 시기이다.

삼국 중 고구려는 요동방명을 포함한 만주지역과 한반도 북부지역에 걸친 광활한 국 토를 가진 국가로서 중국의 수나와 당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침략을 막았고 또 삼 국 중 일찍이 중국의 문화를 수용하여 문화예술의 수준이 높았다.

고구려 시대의 음악은 대부분 「삼국사기」,고구려고분의 벽화7),「고려사」악지, 일본문헌 「일본후기」,중국문헌「수서」음악지(音樂志)와 동이전(東夷傳)을 통하여서 당시의 음악 문화를 추측해 볼 수 있다.고구려의 음악은 그 전개된 과정에 따라 3기 로 나눌 수 있다.제 1기는 고구려가 융성해 지기 시작한 시기로 기악과 성악,춤이 종 6) 『예기』, 『통전』, 『백호통』 등의 기록

7) 황해도 안악 제 3호분 벽화 주악도 (奏樂圖). 이 고분은 조성 연대를 357년으로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있기 에, 음악사에서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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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 예술체에서 분리 되고,안악 제 3호분의 벽화에는 10종의 악기와 연주 그림과 춤을 추는 그림을 통해 중국 한(漢)나라의 음악이 들어와 고구려의 초기부터 음악문화가 풍 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 시기 왕산악이 중국 진(晉)나라에서 들어온 칠현금을 개 조한 거문고을 제작하고 100여곡을 작곡했다 전해진다.

제 2기는 백제의 서울 한성을 함락시키고 북부지방의 부여를 통합하는 등 고구려가 세력을 확장하여 강력한 국가를 만들고 있던 시기이다.특히 중국은 물론 서역지방과 도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 졌고 그로 인해 음악도 서역계 음악이 들어오기 시작해 음 악과 춤과 놀이 문화가 매우 다양해 졌다.서역악기인 횡적(관종류),막목(피리종류), 공후(현종류)가 쓰였다.

제 3기는 중국의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입,백제와 신라와의 전쟁으로 인해 심난한 시기에도 불구하고 앞 시기에 이루어 놓은 음악자산을 키웠다.5세기 이후 들어오기 시작한 중국음악과 서역음악8)등 음악 문화를 다양하게 흡수하여 고구려 음악화 되었 다.이 시기에 고구려 벽화9)에는 완암,각,금,소,횡적,요고가 그려져 있으며,고구려 음악에 연주된 악기는 각,금,소,횡적,요고,오현,쟁,피리,북 등 새로 수입된 악기 도 포함되었다.

또한 고구려는 5세기 후반 중국의 위나라와,수나라,당나라에도 고구려 음악을 수출 하였다.

이와 같이 고구려는 삼국 중 가장 일찍이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서역과 교통한 나라로써,중국과 서역에 들여온 음악과 악기,춤,놀이들을 고구려화 시켜 이전의 고 구려 음악과 융합하여 수준 높은 음악문화를 만들어 후에는 문화를 받아온 중국에서 반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이 시기 삼국은 주체적인 역량과 자율성을 지니고 국가로 발전하는 건전한 사회의 성장기였다.그렇게 때문에 이러한 시기의 고구려는 물론 신 라,백제에서도 건전한 예술이 발전하였다.

삼국 중 선사시대의 마한땅을 중심으로 왕국을 건설한 백제 또한 중국과 바다를 사 이에 두고 있어 중국의 음악 문화도 일찍이 성행하였다.그러나 고구려와 반대로 역사 적 자료가 부족하여 음악에 대한 내용을 잘 알기 어렵다.

‘기악무(伎樂舞)’10)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의하면,백제사람 미마지(味摩之)가 8) 서한범, 「국악통론」, (태림출판사, 1990), p.230. 서역이란 중국의 서쪽 지역을 말한다.

9) 6세기경에 만든 통구 제 17호 고분

10) 탈춤에서와 같이 등장인물들이 각기 다른 탈을 쓰고 여러 과장(科場)으로 나누어 이야기를 전개하는 놀이 와 춤, 음악. 산대도감놀이와 봉산탈춤의 전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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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오나라에서 배운 것을 전했다고 하며,백제가 음악 자료를 많이 남기지 못하였 지만,「북사」와 「수서」에 의하면 백제악은 고구려에서 전해 받은 것 외에도 고 (북),각,쟁,우(생황),지,적과 같은 악기가 있었으며,「고려사」악지에서는 선운산·

무등산·방등산·지리산 등의 노래를 소개하였다.

특히 신라의 가장 대표적인 음악으로 현악기인 ‘가야고’11)의 음악으로 이 가야고는

「삼국사기」에 의하면 6세기경 가야의 가실왕이 당의 악기를 보고 만들었다고 하였 다.12)초기의 가야고의 원형은 전해지지 않지만 신라시대의 토우와 일본 정창원에 소 장된 가야고를 보면 가야고 한쪽 끝이 양머리 모양에 12현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 의 가야금과 같은 것이라 전한다.가야고는 통일 신라 이전의 유일한 현악기로서 독주 와 노래,춤이 함께 어우러져 연주 되었으며,우륵이 작곡한 12곡 이외에도 185곡이 있 었다.

3)통일신라시대

통일 이후 신라 음악은 매우 다양한 음악 양상을 보이이는데,신라는 ‘780년 신라 하 대에 이르러 서역 음악을 수용하였는데,이것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악조의 이름으 로 알 수 있다.

신라악은 백제와 고구려의 악기를 받아들여 통일 이전의 가야고 외에 삼현삼죽(三絃 三竹)13)이 기악형태로 연주되었고 또 노래와 춤에 편성되어 연주되었다.

팔관회가 열렸는데 하늘과,산,강이나 용신 등의 토속신에게 제사하고 국가와 왕실 의 태평을 기원하며,화랑에 의해 노래,춤,놀이를 하였다.학자 최치원(崔致遠837- 876)이 쓴 시를 통해 서역음악이 신라에 들어왔다는 증거가 되는데, 당나라에서 돌아 온 헌강왕 11년 이후 쓴 시에서 향악이라고 말한 점으로 보아 중국음악과 서역음악이 9세기 말에 향악화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그리고 830년 당나라에서 진감선사에 의해 범패가 소개되었고,승복을 입고 촌락을 돌아다니는 거사(居士)소리와 춤이 존재 하였다.또한 신라의 궁정에서 음악인을 상주시켜 연주·행정·교육을 담당하는 음악 기 관인 음성서(音聲署)가 있었다.

11) 이성천 외 3인, 상게서, p.288. ‘가야고’ 또는 ‘가얏고’가 순수한 우리말이지만 현재 ‘가야금’으로 부른다.

12) 정인평, 상게서, p.90. 1974년 경주의 황남동에서 나온 장경호에 가야고의 연주그림이 새겨져 있다.

13) 가야금·거문고·향비파, 삼현 (三絃)과 대금·중금·소금 , 삼죽 (三竹)으로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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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악은 우리나라 문헌 자료가 거의 없으나,「문헌통고」에 의해 여럿이 참여하는 일종의 군중 악가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또한 발해악에서 사용된 발해금은 고구려 의 거문고로 추측되는데,그 이유는 이웃나라에 소개한 악기의 이름에 그 전래한 나라 이름을 붙인 예가 많기 때문이다.

발해의 음악기관으로 신라의 음성서 같은 발해의 음악을 관장한 태상시에서 관원들 은 음악 행정만을 관장했을 것이고,실제로 음악 연주나 춤의 연행을 담당했던 음악인 을 거느렸을 것이다.14)

4)고려시대

고려시대는 고려가 건국된 918년부터 왕조가 바뀐 1392년까지로 삼국을 계승하였던 불교,유교를 채용하여 통일국가의 정치적 이념을 성립 시켰으며,지방의 호족들이 점 차 문벌 귀족화되어 이들에 의한 사회적 문화가 이루어지면서 그들을 위한 귀족중심의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고려시대의 음악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대성아악의 수입과 송나라의 사악이 수입에 있어서 이 시기를 대성아악의 수용시대로 부른다.당나라와 송나라 음악의 전래도 인 해 삼부악15)으로 크게 발전하였다.

향악(鄕樂)은 동쪽나라의 음악이라는 뜻으로 우리나라의 음악을 뜻한다.향악은 통일 신라 시기에 당나라 음악이 들어오기 이전의 모든 우리음악을 가르킨다.「세종실록」

의 기록을 보면,조선시대 초기에는 향악이라는 이름으로 50여곡이 있었다 전하나다.

이러한 문헌을 통해 많은 향악곡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연주된 향악기는 현금(거문고-6줄),가야고(가야금-12줄),대금(구멍 13), 비파(5줄),장구,아박(6매),무애,무고,해금(줄2),피리(구멍 7),중금(구멍 13),소금 (구멍7),박(6매)등으로 삼현삼죽 편성과,신라시대 이후 새로 첨가된 악기는 장구,해 금,피리이다.이러한 악기가 향악을 연주하여 고려의 향악은 더욱 풍부해질 수 있었 다.

당악은 당나라의 음악과 송나라의 음악 그리고 원나라음악을 합친 이름으로 향악의 대칭으로 사용하여 왔다.당악과 향악은 좌방악(左方樂),우방악(右坊樂)으로 「세종실

14) 전인평, 전게서, p.124.

15) 향악, 당악, 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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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에 의하면,궁중의 연례 때,왼편에 당악기를,오른편에 향악기를 배치하여 연주하 였던 점으로 보아 악기배치와 관련하여 이름을 붙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송나라 사악을 이 시대의 중요한 음악 사건으로 보는 이유는 '보허자’,'낙양춘이 원산지인 중국에도 전해오지 않는데 우리나라에 지금까지 전해온다는 점이다.

아악은 제 16대 예종(1105-1122)9년 1114년 사신 안직승에 귀국할 때에 송나라의 휘종이 신악기와,악보 및 지결도(指訣圖)16)를 보냈다.철방향,석방향,비파,오현,쌍 현,쟁,공후,피리,적,지,소 포생 훈,장구 등의 악기 중에서 훈·지·소 는 아악기,나 머지는 속악기17)로서 당악에 편성되는 악기들이다.

이악기들은 신악기,음악을 신악이라 하였고,1114년 10월 태묘제례에 사용하였으며, 신악기는 당악기로 사용되었다.신악기를 보내준 데 대한 보답으로 송 휘종이 대성아 악을 보냈는데,이것이 중국의 아악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사례로 ‘대성악’또는

‘대성신악’이라도 한다.대성악기는 등가악기와 헌가악기18)로 나뉘는데,사용한 악기는 편종·편경·금·지·적·소·소생·훈·축·진고·입고·어 이다.아악은 오늘날까지 문묘악(文廟 樂)으로 연주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대성아악은 역사적인 의미가 크다.

고려의 음악기관은 ‘대악서(大樂署)’와 ‘관현방(管絃房)’로 대악서는 음악행정을 맞았 던 여러명의 관리를 거느린 음악기관이었고,관현방은 음악을 익히고 연주하는 악공을 지도·감독하는 악사들을 위한 음악기관이었다.19)

고려의 기보법에는 육보(肉補)와 율자보(律字譜),공척보(工尺譜)가 있고,또한 고려 는 궁중에서 소규모의 관현악단을 배치하여 임금의 출궁과 환궁,사신을 영접할 때 등 에 음악을 연주하는데,그것을 ‘고취악’과 ‘위장악’이라고 한다.또 연중행사로 상반기, 후반기의 제사가 있었는데 그것이 연등회와 팔관회이다.연등회는 연중 상반기의 큰 제사이며,팔관회는 하반기의 큰 제사로 매년 11월에 거행되었다.

한편,사대주의로 인해 향악은 점점 멸시를 받았으나,아악은 쇠퇴하여 각종 제례에 연주되지 못하고 그 향태만을 유지한 채로 조선시대로 넘어가게 된다.

16) 연주법, 악기 배치도, 연구 그림 등 연주에 필요한 참고자료를 기록한 책.

17) 송나라 궁중음악에서 사용하던 여러 양식중의 하나로서, 우리나라의 민속악과 다른 뜻임.

18) 등가는 건물 앞 좁은 뜰, 헌가는 건물 앞 계단 아래의 넓은 뜰에 악기를 배치하고 교대로 연주 19) 송방송, 상게서,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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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조선전기

조선시대는 왕조의 교체와 함께 여러 면에서 변화를 가져왔으며,국호를 고치고,수 도를 옮겨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하였다.음악문화 또한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로 계승 되는데,조선시대의 음악을 전기와 후기로 구분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전승된 고려의 음악은 향악,당악,아악의 삼부악인데,이 중에서 향악이 크게 발전하였고 당악과 아악은 없어지거나,불완전한 형태로 남아있었다.

고려 공민왕은 아악을 복구하려고 하였으나 종묘에만 겨우 음악을 연주하였는데 불 완전하였다.이것은 건국 초기에 정치적,사회적으로 기반을 조성하는데에 우선점을 부 었기 때문이다.

초기의 궁중의식에서는 종묘제례악에 아악을 연주하였으며,조회에서는 당악을 연례 에는 향악,당악을 연주하였다.

조선전기의 음악적 특징 중 정간보 창안과 박연의 예악사상에 의한 악조 개혁이라 할 수 있다.‘유량악보(流量樂譜)’란 음의 길이를 적을 수 있는 악보를 말하는데,우리 나라의 정간보가 유량악보에 속한다 할 수 있다.우리나라 음악사에 획기적인 선을 그 리게 된 세종대왕의 정간보 창안은 50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당시의 음악을 연주할 수 있어 매우 중요하다.세종은 훈민정음과 함께 음악을 기보하는 정간보 창안,악보편 찬,방간 하는 등의 업적을 남겨 높이 평가하고 있다.

조선전기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당악의 향악화이다.이것 또한 「악학궤범」을 통해 알 수 있는데,조선전기의 악기는 악기의 용도가 약간씩 달라져 해금과 월금은 당악에 두루 연주되었다.즉,조선전기의 당악기는 향악화 되었으며,향당교주20)가 유 행하면서 음악도 향악화되어 고려시대에 성하였던 당악은 점점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 다.

조선전기 음악기관으로는 고려왕조의 명말 때 음악기관이었던 ‘전악서’와 ‘아악서’가 계승되었다.건국 초 전악서는 향악과 당악의 연주를 관장하였고,아악서에선 종묘제례 악 중 악기로 연주되는 아악만을 관장하는 음악기관이었다.건국 이루 반세기 동안 전 악서와 아악서 이외의 봉상시·악학·관습도감이 있었는데,이 다섯 음악기관은 1457년 (세조3)장악서와 악학도감으로 통폐합되었다가,그 이후에 ‘장악원’으로 편성되었다.

20) 조선초기의 향당교주랑 향악기와 당악기가 교대로 연주하는 것을 말하고, 향당절주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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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조선후기

조선후기의 시기에는 임진왜란(1592)과 병자호란(1636)이후 궁중의 악기가 부서지고 악공의 도망으로 궁중음악은 유지하는데에 어려움을 겪었다.당시 조선시대 궁중음악 이 음악교육과 연주는 ‘장악원(掌樂院)’에서 담당하였는데,장악원은 유교적 예악사상을 구현하기 위한 기관이었기 때문에 예악사상에 의한 ‘악(樂)’에 관한 것만 담당하였다.

궁중의 군악이나 나례나 잡기를 반주하는 음악은 악의 범주에 들지 않았다.이러한 음 악을 담당한 사람들이 세악수와 취악수 등인데,세악수는 삼현육각(三絃六角)의 부드러 운 편성이었고,취고수는 나발,대각,나각,징,자바라,북 등 큰소리가 나는 음악을 맡 게 되었다.이와 같이 세악수는 궁중에서 쇠퇴한 장악원의 활동을 돕기도 하였지만,도 시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고 돈벌이를 함으로써 궁중음악 체제가 붕괴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여러 왕들이 궁중음악을 복원하려는 노력을 하였지만,향악정재,반주악곡 중 일보와 당악인 ‘보허자’와 ‘낙양춘’두 곡만 겨우 명맥을 유지할 뿐 궁중음악은 복구하 기가 쉽지 않은 않았다.그러나 보허자와 낙양춘 역시 원래 당악의 모습은 찾기 어려 울 정도로 향악화 되었으며 여민락,영상회상,보서자는 애초에 모두 성악곡에서 지금 은 순수한 기악곡으로 변한다.이렇듯 이 시기의 아악·당악·향악의 궁중음악은 점차 쇠 퇴하는 추세였고,궁중 밖의 민간음악은 점차 발전하고 그 문화가 다양해 지기 시작하 였다.

7)근대

궁중음악의 주요한 양식인 아악이 쇠퇴하고,당악은 향악화가 촉진되었으며,향악이 다양하게 발전하여 민중의 음악인 민속악의 탄생으로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궁중과 지배계급에 집중된 힘이 민간으로 분산되고,평등의식과 자각기운이 확산되 어가며 삶의 질을 찾게 되고,삶의 질 지향이 문화와 예술에 추구되어 민간음악이 형 성되고 발전하게 된다.민간음악은 가곡,가사,시조와,풍류,판소리,잡가,민요,시나 위,산조 등 17세기 이후에 크게 발흥하게 된다.

그 중 판소리는 판소리의 발생은 숙종 (1711-1720)시대로 보는 설과 다소 막연하게 영조(1725-1776)이전으로 보는 설이 있으나 문헌상으로 가장 오랜 기록은 유진한의

「만화집」‘춘향가’로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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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의 등장으로 서민들의 생활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었고,판소리는 산조와 함께 근대 후기 음악사의 대세를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판소리를 송만재의 ‘관우회’

에서 열두 마당이 있었음을 확인 할 수 있으며,열 두마당 중 춘향가,심청가,수궁가, 홍보가,적벽가,변강쇠가 이렇게 여섯 마당만이 신재효 (申在孝, 1812-1884)에 의 해서 기록되었고,이 여섯 마당 중에서 변강쇠가를 제외한 다섯 마당만이 현재까지 전 승되고 있다.

또한 서민음악 중 기악독주곡의 꽃이라고 일컫는 ‘산조’는 무속음악의 시나위와 판소 리의 음악적 영향 아래 발전되었는데,19세기 후반 김창조 (金昌祖,1865-1920)가 당시 의 엉성한 시나위 가락을 다듬어서 가야금에 얹어 연주함으로써,오늘의 가야금 산조 와 같은 독주곡을 만드는데 길잡이를 하였다.가야금 산조에 이어서 20세기초에 이르 러 백낙준 (白樂濬,1884-1934)이 거문고 산조를 만들었고,박종기 (朴鍾基)가 대금산 조,지용구 (池龍九)가 해금산조를 만들었다.이렇듯 여러 종류의 산조를 창시했던 명 인들은 근대음악의 기악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하였고,그로인해 산조가 20세기 전후 부터 한국음악사의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하였다.이 외의 민요와 잡가 등 서민의 애 환을 담은 민속악 등이 크게 성행하기 시작한다.

8)현대

우리나라는 20세기 초 서민들의 문화 욕구가 높아지면서,1908년 원각사라는 최초의 국립극장이 설립되었다.무대연출에 의해서 처음으로 창극 활동이 시도되었으며,1933 년 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硏究會)를 설립함으로 여러 창극단이 생겨나고 더욱 활성 화되었다.

한편,기독교 선교사들을 통해 서양음악이 전통문화 예술을 말살하기 위해 서양음악 을 활발하게 활동하도록 제국주의 일본의 정책에 의해 유입되었다.19세기 말부터 우 리나라에 소개된 외래음악은 우리나라의 음악문화를 크게 바꿔 놓았다.서양음악은 선 교사에 의해 ‘찬송가’가 보급되고,‘왕립군악대’의 연주활동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소개 되었다.

알렌(H.N.Allen1883~1932)·언더우드(H.G.Underwood1859~1916)·아펜젤러(Appenzeler 1858~1902)와 같은 미국선교사들에 의해서 찬송가는 이화학당이나 배재학당 등의 학교 에서 교육되기 시작하였다.이러한 서양문물을 배운 지식층들은 서양음악을 선진된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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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교양인들의 음악으로 받아들였다.

1894년 갑오경장 때 창설된 곡호대라는 군악대가 있었는데,서양악기로 편성된 군악 대의 연주곡목은 대한애국가를 위시하여 일본·미국·영국·독일 등의 국가 연주 및 행진 곡과 서양춤의 무도곡들을 연주하였다.그러나 군악대는 구한말의 군대 해산으로 1907 년 8월 해산하게 되었고,군악대의 직제가 이왕직의 양악대로 바뀌었다가 양악대 마저 1915년 완전히 해산하게 된다.이렇게 흩어진 양악대의대원들은 일제 시대 학교의 음 악교사로 활동함으로써 양악보급의 일을 담당하였다.

일제시대에는 조선왕조의 제례의식 중에서 오직 종묘제례악과 문묘제례악만이 1920 년 이왕직아악부의 아악생들에 의해 광복 이후 국립국악원에 전승되었다.연례악와 군 례악 및 정제의 역시 이왕직아악부의 아악생들을 통해서 일제시대를 거쳐 광복이후에

‘국립국악원’에서 명맥을 이을 수 있었다.

풍류방의 전통은 조양구락부에서 1911년에 설립된 ‘조선 정악 전습소’에서 일부 전 승되었으며,조선정악전습소의 졸업생들은 일제시대의 국악 활동과 양악활동에 중추적 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또한 판소리·산소·민요 등의 민간음악도 권번교육을 받은 기생을 통하여 전승되었는 데,산조는 명인들이 많이 등장하게 되자 각 악기마다 자기의 유파를 만들어 더욱 활 달하게 발전되어 오고 있다.

1959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 국악과가 설립되면서 국악의 발전적 미래가 국악 창 작에 있다는 전망에 많은 황병기,이성천 등 많은 창작곡을 발표하였다.이렇듯 서양음 악의 형식을 빌어 창작한 새로운 국악작품들이 발표되기 시작하면서 창작국악이 대중 화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서양음악의 오케스트라와 같은 국악기만의 악기편성으로 관현악단과 소규모의 실내악편성,서양음악과 국악이 함께 연주하는 퓨전음악 등 다양하게 시도되고 나타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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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한국음악사의 교육적 의의

오늘날 우리나라의 전통음악을 국악이라 부른다.국악은 우리역사의 온갖 시련 속에 서도 민족의 희노애락을 함께 하면서 오랜 전통으로 갈고 닦아온 값진 예술 즉,우리 의 모든 전통문화와 함께 우리 민족의 삶 속에서 만들어진 음악이라 할 수 있다.하지 만 사실 우리에게 있어서 국악은 친숙한 음악이 아니다.국악보다는 오히려 대중음악 이나,클래식,오페라와 같은 서양음악이 오히려 더 친근하게 느껴지고 귀에 익을 것이 다.이렇듯 우리 민족이 유구한 역사와 함께 우리 내면에 흐르는 고유한 음악적 정서 를 가지고 있음에도 현실적으로 국악이 우리 삶에서 먼발치에 자리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1952년 런던에서 채택된 국제 민족 음악 선언문에서는 한 나라의 예술은 그 민족의 역사적인 문화재이므로 올바른 교육과 육성을 통해 청소년으로 하여금 민족음악,즉 전통음악을 존중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21)

음악의 역사에 대한 지식은 음악을 공부하는데 있어서 그 기초가 된다.하지만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하며 고유의 음악적 정서를 가지고 있음에도 우리나라 학교 음악 교육에서는 한국 음악사를 체계적으로 정립하여 교육하는데 있어서 미흡한 점이 많다.

한국 음악사는 단순히 음악의 역사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음악을 이해하 는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부분이다.즉 음악 전반을 포함한 음악에 관한 총체적인 교 육 즉,가창,기악,창작,감상 등 여러 음악적인 활동의 기초가 되는 교육인 것이다.

따라서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음악사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 음악사 교육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여러 가지 있다.

첫째,한국 음악사 영역에 나타난 음악의 유입과 탄생의 배경,음악 양식과 작품등 을 통해서 음악에 대한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하여 교과서의 다른 영역 학습에 기초가 된다.

둘째,사회적 배경을 통하여 그 시대의 생활양식의 문화의 여러 측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며 역사적 배경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역사를 공부할 때도 도움을 준다.

셋째,음악교육의 질을 높이며, 음악활동과 창의적으로 음악을 표현하며 형성하는데 도움을 준다.

21) 최종민, 상게서,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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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음악에 대해 올바르고 넓은 시야와 시각을 가질 수 있고,음악사가 일반 역사 에서 차지하는 부분을 인식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될 수 있다.

다섯째,한국음악사 영역과 연계하여 나타나는 감상 학습을 통해 음악의 특징과 감 상곡에 대한 정보 수집하여 음악을 생활화 하도록 하는데 영향을 끼치며,정서적 발전 을 도와서 심미적인 체험을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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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고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나타난 한국 음악사

1.서술 내용과 형식 분석

(1)금성

금성은 한국 음악사 영역을 감상 (음악을 듣고 느끼며 알아가기)단원전체에 우리 나라 음악사,서양음악사,대중 음악사를 한 단원으로 편성하였다.

즉 음악사 영역이 교과서 전체에 고루 분포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상고·삼 국 시대의 음악부터 서양대중음악의 역사까지 한단원에서 볼 수 있도록 하였다.또 시 대별 음악사와 대표적인 악곡으로 감상을 제시하였다.

학생들은 각 시대별 음악을 감상하며 음악 작품의 음악요소 (리듬,선율,화성,음 색,형식 등)를 감지하고,구성·연주·음악 양식의 시대적 구분 및 변천,작곡가의 경향 등을 이해하며,각 악곡의 내용과 시대적,문화적 맥락을 파악하고,시대별 문화권의 음악을 비교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 음악사 영역을 크게 상고 ·삼국 시대의 음악,고려 시대의 음악,조선 전기의 음악,조선 후기의 음악,한국 근·현대의 음악으로 총 5시대로 나누었으며,교과서 좌 측 페이지는 각 시대별 음악사 설명과 사진 자료로,좌측에는 그 시대의 특징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악곡에 대한 설명과 악보를 제시하고 감상하도록 하여 한국 음악사적 흐름과 악곡을 감상하며 역사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한국 음악사역은 교과서 92-99총 8장으로 감상곡과 함께 시대별 흐름 순으로 구성 되어 있으며,각 시대별 음악사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상고·삼국 시대의 음악으로는 상고시대와 고구려,신라,백제와 통일 신라 시대 까지 포함하여 상고·삼국 시대의 음악으로 시대를 구분 지었다.

삼국 시대 이전의 음악 문화인 상고시대는 실체를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다.우리나 라의 가장 오래된 음악사 유물은 청동기 시대,또는 그 이전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경북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이며,이 암각화는 수렵과 재취 생활을 하던 당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보여 주며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굿 장면을 새겨 놓은 것으로 보이며, 현재 무속 의식에서 사용되는 음악이 그 당시부터 연주 되었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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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삼국 시대 중 고구려는 진나라에서 보내온 중국의 칠현금을 왕산악이 개조하여 새롭 게 만든 거문고를 중심으로 금곡(琴曲)이 발달하였다.또 오현금·쟁·피리·소·고 등이 연주 되었는데,이 중 오현금과 피리는 서역 악기로 중국 수나라와 당나라의 궁중에서 고구려악이 연주되기도 하였다.

삼국 시대 중 신라는 가야의 우륵을 통해 가야금을 받아들인 이후,신라의 연향악들 은 대부분 가야금과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도록 편성되었으며,이것은 일본 궁중에서 연주되기도 하였다.또한 국가 음악 기관인 '음성서'에서는 국가의 제례와 회례,연회 의식에서 연주되는 음악을 담당하였다.

삼국 시대 중 백제시대의 음악은 '일본 후기'에 의하면 백제가 일본에 전해 준 것은 공후·막목·횡적·춤으로 고구려의 것과 같다.한편 고·각·공후·쟁·우·지·적 등의 일곱 가 지 악기가 사용되었는데,이를 통해 중국 남조와 교류하면서 그 음악을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또,'일본서기'에 의하면 백제인 미마지가 중국 남조의 오나라에서 기악무 를 배워 일본에 전해 주었다고 한다.

통일신라는 7세기에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자 음악 문화도 하나로 뭉치게 되었다.즉, 거문고·가야금·비파의 세 현악기와 대금·중금·소금의 세 관악기가 주측을 이루는 삼현 삼죽의 악기 편성이 이루어 졌다.또 이 시기에는 승려와 지식층 사이에 향가가 유행 하여 수준 높은 노래 문화를 형성하였는데,이것은 고려가요와 대엽에 이어 조선조의 가곡으로 연결되었다.한편,당악에 대칭되는 향악의 내용이 확대되어 고구려의 거문고 와 서역의 향비파가 들어왔으며,당나라로부터 불교음악인 범패가 들어와 유행하였다.

상고 ·삼국시대의 음악을 상고 시대,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시대,통일 신라 시 대로 구분지어 간략한 설명과 함께 울산 반구대 암각화,장천 1호분 기악도,안악 3호 분 대행렬도 등의 그림 자료도 제시하였다([그림 1]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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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금성교과서에 실린 울산 반구대 암각화

이 시대의 감상곡으로 제시한 곡은 삼국 시대의 음악 중 신라 때 들어온 궁중의 중요 한 연례와 무용에 사용하던 음악인 수제천과,8-9세기 우리나라에 유입된 불교 의식 의식음악인 범패로 악곡의 설명과 함께,수제천 연주모습 사진 자료와 악보를 제시하 여 악곡의 시대 배경과 음악적 특징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그림 2]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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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금성교과서에 실린 '범패'감상

둘째,고려시대의 음악은 아악,향악,당악으로 구분하여 서술하였다.먼저 아악은 중 국 주나라에서 비롯된 중국의 의식 음악으로 종묘사직 등 국가의 중요한 제사에 사용 되었으며,'금·석·사·죽·포·토·혁·목'의 팔음 악기를 당상악 (등가,登架),당하악 (헌가, 軒架)으로 구분 배치하여 교대로 연주한다.중국 송나라의 휘종은 고대부터 내려오던 아악을 새로 정비하여 '대성아악'이라고 하였고,이것이 고려 예종 때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는데,이때 들어온 아악기는 20종 422점에 달한다.그러나 고려후기 의종이 무신 들에 의하여 시해(1173년)된 사건을 계기로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악공들이 뿔뿔이 흩 어지고 아악기가 손실되는 등 그 전승에 많은 타격을 입었다.

고려 전기의 향악은 거의 통일신라시대의 향악을 계승하였다.고려 향악에 사용된 악기는 신라와 같이 거문고·가야금·향비파·대금·중금·소금·대고·박으로 편성되며,이 밖 에 당악연주에 사용된 장구가 추가되었다.또한 고려사 악지에 의하면 백제악 5곡,신 라악 5곡,고구려악 5곡 등의 삼국악이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에 전하여졌음을 알 수 있다.고려 후기에 새롭게 나타난 '별곡'은 여러 장으로 된 긴 가사가 1장의 음악으로 반복되는 유절 형식의 긴 노래로 '한림별곡·청산별곡·서경별곡'이 전하며,이 외의 고 려 가요로 '만전춘·쌍화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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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악은 11세기 문종 때 송나라에서 들어왔으며,12세기 초에는 고려의 여기가 송나 라에서 대무를 배워 귀국함으로써 송나라의 춤이 전해졌다.예종 9년에는 송나라 휘종 이 새로 정비한 연향악인 대성신악이 들어왔고,이후에 이것이 당악으로 불리게 되었 다.당시 소개된 당악기 반주 및 한문으로 된 송사를 동반하는 '당무'또는 '당악정재' 를 반주하는 당악은 고려의 궁중 연향에서 좌방악이라 하여 서쪽에 배치되었고,향악 기 반주에 우리말 노래를 수반하는 '향무'또는 '향악정재'를 반주하는 향악은 우방악 이라 하여 동쪽에 배치되었다.

고려 시대의 음악을 아악,향악,당악으로 구분하여 아악과 당악은 중국에서 어떤 경 로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우리음악으로 흡수되었는지,향악은 어떻게 발전하였는지 설 명하였으며,편종,편경 악기 사진 자료와 정재 때의 춤의 하나인 포구락 사진 자료를 함께 제시하였다.

고려 시대의 악곡 중 감상곡으로 제시한 곡은 고려 시대 송나라에서 들어온 사악22) 의 하나로 후에 조선 선조 이후 가사는 없어지고,향악화 되어 기악곡으로 파생된 관 악 편성으로 연주하는 관악 보허자와 당악의 특징을 알 수 있는 관악 합주 편성 곡인 낙양춘이다.연주 모습이 담긴 사진 자료와 악보를 제시하여 악곡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그림 3]참조).

[그림 3]금성교과서에 실린 '관악 보허자'감상 22) 송대 유향하던 운문체인 사(詞)를 노랫말로 사용한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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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조선 전기에는 불교 억제 정책으로 연등회와 같은 불교관련 행사가 폐지되고, 아악이 새롭게 변화되었으며,건국 대업을 칭송하기 위해 많은 새로운 곡이 창작되었 고,이를 잘 보존하기 위하여 '악학궤범'과 같은 악서가 발간되는 등의 조선 전기의 음 악사를 설명하였다.

고려 시대의 아악,당악,향악이 조선 시대로 넘어온 후의 음악사적 흐름에 관한 설 명은 다음과 같다.

아악은 조선 초기에는 대개 고려 시대의 아악을 답습하였지만,세종 때 제향에서 연 주되던 향악교주 전통이 폐기되고,아악 연주로 일관되도록 고쳐졌다.또한 박연 등에 의해 새롭게 제정된 아악곡이 '아악보'에 실리는 등 아악 역사의 주요한 전환점이 되 었다.율관 및 편경의 제작과 함께 아악기 제작에 힘을 쏟았다.

조선 전기에는 고려조의 당악,즉 송악(宋樂)이 그대로 답습되었다.'고려사'악지 당 악 정재의 '헌선도·수연장·오양선·포구락·연화대'는 조선 시대 '악학궤범'의 당악 정재 에 계승되었고,그 밖에 당악 정재의 양식을 따서 창작된 '몽금척·수보록·근천정·수명 명'등이 '악학궤범'의 당악정재에 첨가되었다.

향악은 조선 전기에는 대부분 고려 시대의 향악을 계승하였고 '대악후보','시용향악 보'및 '금합자보'에 기보되었다.조선 전기 향악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금합자보'의 평조 '만대엽'이다.세종대왕은 조정의 공덕과 조선 건국의 위엄을 좀 더 포괄적으로 담기위해 용비어천가를 가사로 하여 연주하는 '봉래의'를 비롯하여 '발상','보태평',' 정대업'등의 신악을 새로 창작하였다.또 정간보의 창안으로 많은 신악이 악보화 되 었다.

조선 전기 시대 음악의 감상으로 제시된 악곡은 우리나라 중요 무형 문화재 1호로 지정된 종묘제례악과,세종이 만든 용비어천가에 관현악 반주를 얹어 부르던 음악인 여민락이다.제시된 두 곡은 조선 전기 시대의 대표적 음악으로 음악사적 흐름과 악곡 의 특징에 관한 설명과 함께 사진 자료를 제시하였다.

넷째,조선 후기 음악의 뚜렷한 특징은 민속악 판소리와 산조의 등장과 발전으로,금 성에서는 가야금 산조에 대해 발생 배경과 악곡의 구성과 특징에 대해 설명하였고, 줄 풍류의 대표적인 악곡인 영상회상의 특징과 종류에 대해서 설명하였다.또 고려 시 대부터 전해 온 당악,아악,향악이 어떠한 변화와 발전을 거쳐 아악은 전기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였으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규모가 축소되고 향악과,당악은 구별이 없어진 배경을 설명하였으며,판소리와 가야금 산조,현악 영상회상,관악 영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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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의 사진 자료를 제시하였다.

다섯 째,한국 근·현대의 음악은 개화와 갑오경장,일본의 한국 강점 등으로 혼돈의 시기인 근대에 음악도 그 종류와 형태,내용 면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 되던 시기 였다.금성은 이러한 한국 근·현대의 시대를 몇 가지로 설명하여 한국음악사적 흐름을 설명하였다.

첫 째,서양식 군악대가 창설되어 서양 악곡들이 소개되었고,이왕직 아악부에서 악 생들이 양성하는 조선 정악원을 설립하였으나,일본의 식민지 문화 정책과 서양 문화 의 힘으로 약화 시켰다.

둘 째,광복 이후 크게 위축된 전통 음악을 회복하기 어려웠고,1951년 국립 국악원 의 개원으로 전통 음악의 연구 및 연주 활동이 활발해졌으며,1954년부터 대학의 국악 과 신설을 시작으로 대학에서도 전통음악 교육이 실시되었다.

셋 째,1960년대 국악 관현악단을 창단하는 등 전통음악의 계승,발전을 위한 노력이 계속 되었으며,국악 관현악단을 창단한 이후,창작 국악 운동이 활발히 전개 되어 김 기수,이성천,황병기 등 많은 작곡가들에 의해 다양한 형식과 연주 형태의 작품들이 창작,연주 되고 있다.

최초의 극장인 '원각사'와 창작 국악 관현악단의 사진 자료도 함께 제시 하였다([그 림 5]참조).

[그림 4]금성교과서에 실린 최초의 극장 '원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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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교과서 내용 쪽수

상고·

삼국 시대

상 고

시 대 제천의식과 결부된 음악이라 추측

92-93 고구려 왕산악이 개조한 거문고를 중심으로 금곡이 발달

오현금과 피리 서역 악기가 중국을 거쳐 수용

신 라

우륵을 통해 가야금 받은 이후 연향악 가야금,노래 춤 편성 국가 음악 기관인 '음성서'국악 제례와 회례,연회 의식에 서 연주되는 음악 담당

백 제

중국 남조와 교류하며 음악을 받아들임

'일본서기'에 의하면 미마지가 중국 남조의 오나라에서 기 악무 배워 일본에 전함

통 일 신 라

삼국을 통일 후 음악 문화 하나로 뭉침

거문고,가야금,비파,대금,중금,소금 삼현삼죽 악기편성 고려가요·대엽이어 조선조의 가곡으로 연결됨

당나라로부터 들어온 불교음악인 범패 유행

고려시대

아악-중국의 의식음악으로 종묘사직 등 국가 중요 제사에 사용,예종 때 '대성아악'들어옴

94-95 향악-통일신라의 향악 계승

'고려사 악지'통해 백제,신라,고구려 삼국악이 통일 신라 를 거쳐 고려에 전해짐

당악-송나라에서 들어옴.

예종 9년 송나라 휘종이 정비한 연향악 '대성신악'당악으 로 불리게 됨 궁중 연향에서 좌방악배치

조선전기

불교 억제 정책 불교 관련 행사 폐지 아악정비,건국 대업을 위한 새로운 곡 창작 '악학궤범'과 같은 악서 발간

96-97

조선후기

민속악인 판소리·산조의 등장

임진왜란,병자호란을 겪으며 아악 축소,향악·당악의 구별 없어짐

영상회상,가곡,가사,시조 등의 정악곡 변화·발전

98

한국 근·현대

근대 정치,사회,문화 등 혼돈의 시기.음악의 종류와 형 태,내용면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

서양악곡 등장,국립국악원 개원·국악 관현악단 창단,창작 국악 운동 전개,사물놀이 공연 발생

99

<표 3> 금성의 시대 구분과 서술내용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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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사진 자료 감상곡

상고

· 삼국 시대

상고

시대 울산 반구대 암각화 고구려 안악 3호분 대행렬도

장천 1호분 기악도

신 라 수제천 연주모습 수제천

백 제 통일 신라

비천상

범패 연주 모습 범패

고려시대

포구락

편종·편경 악기 사진 관악보허자 연주 모습 낙양춘 정간보

관악보허자 낙양춘

조선전기

악학궤범

악학궤범 7권 1장

종묘제례악 헌가 연주 모습·일무 여민락 연주 모습

종묘제례악 여민락

조선후기 판소리·가야금산조·현악영산회상·

관악영상회상 연주 모습

가야금산조 영산회상 한국 근·현대 최초의 극장 '원각사'

창작 국악 관현악단 연주 모습

<표 4> 금성의 시대별 사진 자료와 감상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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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영사

박영사는 한국 음악사 영역을 '음악의 이해'라는 대단원에서 시간속의 우리 음악과 역사로 배우는 서양 음악이라는 두 소단원으로 나누어 한국 음악사와 서양 음악사를 구분했다.

한국음악사 영역은 한국 음악사,아름다운 우리 문화 - 중요 무형 문화재,남·북한 전통 음악의 현주소라는 세 소단원에 걸쳐 구성하였으며,상고 시대부터 남·북한 전통 음악의 현주소까지 폭넓게 다루었다.

한국 음악사의 시대구분을 상고시대,고구려,백제,신라,통일신라,고려,조선시대 (조선전기-조선후기),개화기 이후-현재의 음악 총 8시대로 나누었다. 상고 시대부터 개화기 이후-현재의 음악까지를 네 페이지로 두 장에 걸쳐 시대별로 구분지어 비교적 간단히 서술을 하고 있고,그 시대 주요 사진 자료로 구성되었으며 시대별 감상곡은 제시하지 않았다.관련된 사진자료와 시대구분 및 서술내용을 다음과 같다.

첫째,상고 시대 음악은 음악과 춤이 하나가 된 형태로 오늘날 정월 대보름이나 단오 축제, 굿, 농악 등의 형태로 전승되고 있으며, 종교적이고 집단적인 것이 특징이다.

둘째,북방과 밀접한 지리적 관계로 고구려는 중국과 서역과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

고구려 음악 문화는 한나라의 음악을 먼저 수용하고,이어서 서역음악을 수용하는데 7 세기에는 고구려 음악이 수나라의 궁정에서 공연 될 만큼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거문 고를 비롯하여 횡적,비파,완함,요고 등의 악기가 사용되었고,고구려 가요에는 유리 왕의 '황조가','공후인'이 있다.

셋째,백제는 지리적인 조건으로 다른 나라보다 대륙의 문화를 늦게 수용했지만 널 리 수,당,일본까지 뛰어난 백제 문화를 전했다.백제사람 미마지는 중국에서 배워 온 기악무를 일본 상류층 자제들에게 전수해 주었는데 이 춤은 현재 탈을 쓰고 노는 양주 별산대놀이와 유사하다고 추정한다.1993년 부여에서 발견된 백제 금동대향로에는 5인 의 악사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악사의 손에는 북,완함,거문고로 추정되는 현악기,세 로로 길게 부는 종적,팬파이프처럼 생긴 베소가 들려 있다.백제가요에는 '무등산',' 정읍사'등이 있다.

넷째,신라로 귀화한 우륵에게 전수받은 춤과 노래와 가야금으로 대표된다.

다섯째,삼국을 통일한 후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음악까지 수용하였고 국가적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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