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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Geungnakjeon(Paradise Shrine) of Bong-amsa Temple at Mountain Hiyangsan - Based on its applications and historical period of establishme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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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희양산봉암사 극락전의 연구

-조성시기와 용도를 중심으로-

홍 병 화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박사과정)

김 성 우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

주제어 : 鳳巖寺 極樂殿, 차양칸(遮陽間), 願堂

1. 연구의 배경과 목적

879년 창건한 봉암사는 1982년부터 대한불 교 조계종의 종립선원으로 지정되어 일반인 의 출입이 제한되고 있어 봉암사 극락전의 건축사적 가치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 다. 그간 이 건물은 창건에 대해 정확히 알 려져 있지 않았다. 이 건물은 현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55호로 지정된 건물로 3×3칸 규모의 2층 목탑정도로만 알려져 있다.1) 한 조성시기에 대하여서는 정확한 언급이 없 거나 혹은 18세기경의 건물로 알려져 있다.2) 현장조사를 통해서 건물의 평면과 양식, 육 안으로 확인 가능한 구조와 기타자료들의 수 장여부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각종 문집이나 사적기에 포함된 봉암사 관련 기록 중 극락 전의 내용이 직, 간접적으로 포함된 자료를 최대한 빠짐없이 참고하였으며, 이 건물의 성격을 추정할 수 있는 각종의 회화, 공예,

1) 문화재청 문화재정보 참조.

2) 신지용. 닫집에 관한 연구. 1992.이화여대. 논문의 부 록에 실린 ‘감입형’닫집의 표를 참조.

석조 등의 미술품과의 비교를 진행하였다.

2. 창건시기 추정

2-1. 기록의 검토

현전하는 각종의 문헌으로는 정확히 이 건 물이 언제 지어졌는지 알 수 없다. 이번에 조사한 기록 중 가장 이른 기록은『冲齋先生 文集』에 실린 「戊寅日記(1518)」이다. 이 기 록에 의하면 봉암사에 중층건물이 있었다고 하나, 그 중층건물은 현재의 극락전이 아니 다. 이 기록에 나오는 중층건물은 미륵전인 데 이곳에 올라 남쪽을 관망했다고 되어 있 3) 내부가 통층으로 되어 있는 현재의 극 락전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18세기 기록인『伽藍考』에 의하면 “東有 新羅敬順王所刱極樂殿”이라고 하여 9세기 후 반에 창건된 극락전이 당시까지 현존하고 있 었음을 알 수 있다.4) 또한 18세기 초 기록

3) “二十三日 朝食 更與朴堧等流覽寺中 登彌勒殿 觀南 山拱揖而前 霜葉初丹如錦繡”

4) 권상로,『韓國寺刹事典(上)』 1994. 퇴경권상로박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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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봉암사극락전 인 『月谷集』중 「左湖日記」의 내용을 보면

웅장한 법당이 여러 동이 있었다고 하여 극 락전이 있었을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건물들 의 묘사가 구체적이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 다.5) 일제강점기의 상황까지 기록되어 있는

「鳳巖寺事蹟」의 내용을 보면 1674년, 1703년, 1907년에 큰 화재피해를 입어 사찰이 전소되 었다고 한다.6) 그러나 『冲虛大師文集』에 실린 「遊曦陽山記贈人」이라는 기록에 보면 대부분의 건물이 피해를 입은 화재에서도 응 진전과 극락전만은 피해를 면했다고 나와 있 어 혼란스럽다.7)

앞의 기록들 보다 구체적으로 봉암사를 묘 사하고 있는 「鳳巖寺事實略錄(1783)」에는 당 시 봉암사에는 중층, 혹은 삼층의 건물들이 있는데 이중에는 극락전 등의 전각들이 있다 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역시 이 기록도 어느 건물이 중층이고 어느 건물이 삼층인지 에 대해 구체적으로 적고 있지 않다.

가장 나중의 기록이지만 1937년에 발간된

『嶠南誌』에 따르면 절의 북쪽에 신라 경순 왕때 지어진 2층 극락전이 있고 그 안에는 조선 세조의 어필이 있다고 한다.8) 그러나 이 기록은 다른 기록들을 참고하여 발간 당 시에 정리한 내용으로 생각된다.

앞에서 살펴본 기록들은 상충되기도 하지 만 정리해 보면 봉암사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극락전이 18세기까지는 있었다고 하

서간행위원회. p. 830.

5) “入鳳凰門過石橋 橋邊有小碑二法堂七區 皆精麗 樓名 龍華 凡五十三間 極壯麗”

6) 권상로, 앞의 책, p.830. “朝鮮顯宗十五年甲寅 寺院全 部 爲火所燒 信和大師 鳩財重創 肅宗二十九年癸未 佛殿 僧寮 又爲酷炎被害 卽爲重建 純宗隆熙元年丁未 寺院全 部 燒失於兵火”

7) 한국불교전서편찬위원회.『韓國佛敎全書』10권.

pp.333~334.『冲虛大師文集』中 「遊曦陽山記贈人」

8) 『嶠南誌』卷三十六 聞慶郡 ‘寺北有二層極樂殿 新羅 敬順王所刱 奉安李朝世祖御筆’

는데 지금까지 전하지 않으며, 2층 이상의 건물들이 여러 동 있었다고 한다. 특히 극락 전은 몇 차례의 큰 화재에도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고 하는 점 등으로 봐서 造成上限이 가늠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가치가 있는 건물로 판단된다.

2-2. 양식검토 1) 기단 및 초석

봉암사 극락전의 기단은 지대석, 면석, 갑 석 등으로 구분해서 잘 다듬은 기단이지만 면석에 기둥을 새기지 않아 架構式 기단이라 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하지만 갑석의 아래 쪽 모서리를 만곡되게 면접기 하는 등 다듬 은 수법에 상당히 공을 들였으며 기단 윗면 은 박석을 깔아 마감하여 건물의 격을 상당 히 높였다.

초석에는 두 번 접은 원형의 이중 주좌가 표현되어 있는데 이렇게 기단과 초석의 치석 에 많은 공을 들인 것은 이 건물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구체적으로 시기를 짐 작할 수 있는 수법은 사용되질 않아 양식을 비교하여 조성시기를 추정하기가 여렵다. 다 만, 치석의 축조의 흔적으로 봐서 조성당시 의 원형이 비교적 잘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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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봉암사극락전의 감실공포

<그림 2> 봉암사극락전의 초석

하지만 기단과 초석이 혹시 고식이라도 후 대에도 재사용되는 경우가 흔해 이를 가지고 건물의 창건시기를 추정하는 근거로 삼을 수 는 없다.

2) 공포

외형상 중층인 이 건물에서 공포는 하층 지붕인 차양칸을 받치고 있는 무출목의 공포 와 상층인 감실의 지붕을 받치고 있는 내외 2출목의 공포로 구분된다.

상층의 공포는 전형적인 조선전기의 수법을 보이고 있는 공포이다. 이 공포의 세부수법 을 살펴보면 우선 살미에 붙어 있는 쇠서의 표현이 짧고 굵은 편이면서도 살미와 거의 평행을 이루고 있다. 공포의 조성시기를 가 늠할 때 가장 중요하게 감안하는 요소는 쇠 서의 강직함이나 길이, 쇠서가 살미와 이루 고 있는 각도 등이다.9) 이 공포의 경우 그동

9) 이연노. 한국전통 목조건축의 보에 관한 연구 2002.

고려대 박사논문. pp.100-104.

이 논문을 보면 그간 16세기로 여겨졌던 성불사 응진전 의 중수와 청평사 극락전의 창건 편년을 잘못된 것이라 지적하고 있다. 그간 학계에서는 杉山信三의 주장을 그 대로 받아들여 성불사 응진전의 편년이 16세기에 중수 된 것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이 편년을 근거로 청평사 극락전도 16세기에 창건한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모두 당시 보수나 중창한 기록이 있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 었다. 하지만 이번 논문에서는 공포와 보의 결구상태를 들어 성불사 응진전은 14세기로, 청평사 극락전은 조선

안의 편년방식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조선중 기의 공포와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귀공포에서 조성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특 징으로는 가장 바깥쪽 출목의 좌우대가 직교 하는 1출목 위치의 부재와 결구되는 부분이 반턱이음으로 건너질러 쇠서로 마감되느냐 그렇지 않느냐 등이 조선시대를 전후기로 분 할하는 특징 중의 하나이다. 이는 麗末鮮初 부터 17세기 전반기까지 다포계 건물에 보이 는 귀포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그림 4> 봉암사극락전 감실공포의 은출심두

이 건물의 내부를 보면 고색단청이 잘 보존되 어 있어 조성당시의 수법이 잘 드러나는데 가 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공포의 중심에 표현된

초로 재고해야한다고 하고 있다. 이 주장에 무게를 싣는 다면 그간 假昻인 쇠서의 형태가 편년의 주요 기준이 되던 방식은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4)

은출심두(隱出心枓)이다.10) 이 표현수법은 고 려 말의 심원사 보광전에서 부터 15세기 건물 인 개심사 대웅전과 해인사 홍하문까지 줄곧 나타나는 수법으로 足材11)를 사용하면서 單 12)의 의장효과를 내기 위한 수법이다.13)

이 외에 귀공포의 내부 귀한대가 양옆 공 포의 살미와 교차하지 않고 병첨을 사용하며 공포대를 연결하는 수법은 안동 봉정사 대웅 전, 안악 월정사 극락전 등 麗末鮮初의 다포 계 팔작집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수법이다.

<그림 5> 봉암사극락전의 병첨

이 건물의 차양칸 공포는 감실 공포와는 달리 주심포식 공포이다. 이 공포는 출목이 없어 복잡하지는 않지만 살미의 쇠서가 상층 공포와 다르게 좀 더 길게 아래쪽으로 향하

10) 은출심두는 우리나라 조선전기 다포계 공포의 의장 수법으로 공포의 중심에 마치 소로가 놓여 있는 듯한 조각수법으로 ‘그림자소로’라고 하는 것이 적당할 듯하 다.

11) 연접하여 살미가 결구되어 있는 공포에서 살미의 춤을 말한다.

유성룡. 결구기법 분석을 통한 고려시대 주심포 건축의 형성에 관한 연구. 2003. 고려대 박사논문.

이 논문의 명칭설명을 참조하였다.

12) 소로의 사용으로 살미간의 이격이 있는 공포에서 이 이격을 제외한 첨차의 춤. 위의 논문 참조.

13) 유성룡. 위의 논문 참조.

이 논문에서는 공포중심에 소로를 두고 單材로 중첩하 던 특징을 나중에 足材로 대체하면서 공포중심에 소로 가 놓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수법으로 은출심두를 거론 하고 있다.

듯 휘어져 있다. 또한 기둥머리에는 사괘를 틀어 도리방향으로 첨차를 놓고 이와 직각방 향으로는 헛첨차의 위치에 반원형으로 외부 가 마무리된 부재를 설치하였다. 이 부재의 내부는 수덕사 대웅전의 헛첨차처럼 초각이 이어져 살미의 내부와 일체화되어 주두를 잡 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으나, 외부는 출목이 없어 헛첨차처럼 위의 살미를 받쳐주지 않고 있고 익공이나 안초공처럼 위 부재와 접하여 일체화되어 있지도 않다.

하지만 이 결구수법은 출목이 없을 뿐 결 구의 위치와 결구의 효과가 헛첨차의 수법 과 동일하기 때문에 헛첨차를 가지고 있는 같은 시기 건물과 비교해 볼 수 있다. 도리 방향 첨차의 경우 원래 창방의 위치인데 창 방이 생략되고 맹씨행단, 평양 숭령전 앞 정 문, 동묘의 삼문의 경우처럼 첨차가 놓였다.

<그림 6> 봉암사극락전의 차양칸공포

이처럼 창방이 첨차로 대체되는 수법은 麗末鮮初부터 임진왜란 직후까지의 건물에 서 나타나는 수법으로 이 건물의 조성하한 을 가늠하는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이다.

또한 귀포의 기둥머리 사괘에 설치되어 장혀를 받고 있는 첨차의 경우 부석사 조사 당의 헛첨차와 똑같은 수법으로 단지 방향 만 바꿔놓은 모양을 하고 있어 부석사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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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0> 봉암사극락전의 선자연

<그림 9> 무위사극락전 불단과 닫집비교(上봉암사, 下무위사:조선고적도보) 당과 직접 비교할 수 있다.

<그림 7> 부석사 조사당 헛첨차와 비교

3) 대공, 천정, 불단, 선자연

이 건물의 내부 천정마감은 공포의 두 번 째 출목위에 뜬장혀를 놓고 그 위 네 모서 리에 대공을 놓고 다시 그 위에 불전의 내 부를 묘사한 寶蓋型 닫집이 있는 우물천정 을 설치하였다.(그림9. 참조)

건물의 네 모서리에 올려놓은 대공은 一 斗三升式의 포대공인데, 이는 봉정사 대웅전 ㆍ평양 보통문ㆍ서울 남대문 등에서나 볼 수 있는 수법으로 現傳하는 15세기 이후의 건물에서는 쉽게 보이질 않는다.

<그림 8> 봉암사극락전의 포대공

천정과 닫집 그리고 소란반자에 시문된 단 청의 문양, 불단의 형태 등은 무위사 극락전 과 비교해 볼 수 있다.

이중에서도 寶蓋型으로 닫집을 설치하는 수법은 현존하는 유구로 볼 때 조선 초기 이 전에 창건된 건물에서만 볼 수 있다.14)

선자연의 경우 상층과 하층 모두 초장에 붙임혀를 사용하지 않는 古式으로, 일반적으 로는 후대에 지붕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붙임 혀가 붙게 된다. 그런데 이 건물의 경우는 고 식 수법이 그대로 남아 전해지는 것으로 봐 서 창건 후 대규모의 보수가 한 번도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와 같은 수법은 17세기에 지어진 용문사 진영각과 16세기에 지어진 겸 암정사의 누마루 등에 남아 있지만, 고려시대 유물인 봉정사 극락전 닫집이나 경천사지 10 층석탑 등 주로 시대가 올라가는 유구에는 모두 선자연에 붙임혀가 없어 이 같은 수법 이 고식임을 알 수 있다.15)

양식의 검토를 통해서 이 건물의 상한을

(6)

여말선초까지, 하한을 17세기까지 比定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비교적 폭이 넓은 상하한의 간격은 목조건축의 특징상 불가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심시기를 여말 선초로 삼는데는 문제가 없어 보이며, 이는 문헌검토에서 확인한 것과 어느 정도 일치하 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위에서 검토한 내용을 표로 정리하면 다음 과 같다.

부분 비교

하한 비교대상

기단/초석 라말선

초~고려

운두가 높더라도 이중주좌가 있는

형식

공포 차양

헛첨차 14c 부석사 조사당 주심

첨차 17c 동묘 삼문

감실

가앙 14c~

15c

성불사 응진전, 청평사 극락전.

은출 심두 15c

심원사 보광전, 월정사 극락전, 봉정사 대웅전 등.

내부

병첨 15c 월정사 극락전, 봉정사 대웅전.

좌우대

직교 17c 초 위봉사 보광명전 등.

닫집/불단 15c

무위사 극락전의 닫집과 불단과

비교

포대공 15c

서울 남대문, 평양 보통문, 봉정사 대웅전.

선자연 17c 용문사 진영당

[표 1] 봉암사 극락전 양식하한 비교

14) 현존하는 보개형 닫집이 있는 건물로는 봉정사 대 웅전, 무위사 극락전, 장곡사 하대웅전 등이다. 특히 장 곡사 하대웅전의 경우 건물은 16세기 정도로 평가받고 있지만 실측조사보고서의 내용에 의하면 닫집은 고려시 대 것이라고 한다.

15) 홍병화.「봉정사 극락전 닫집의 편년에 대하여」

『성보』제5호. 2003. p.93.

3. 봉암사 극락전의 성격

3-1. 건축형식에 대한 비교 1) 유사중층건축과의 비교

우선 외견상 봉암사 극락전과 같은 형식의 건축물들을 찾아보면 조선고적도보에 실려 있는 오대산 사고의 선원보각과 사각, 남한 산성의 수어장대, 선암사의 장경각 등이다.

사고건축 등은 책을 보관하는 기능을 가진 건물로 통풍에 유리하게 하기 위해서 중층의 건물을 짓고 하층의 주변을 개방한 것으로 생각되고, 장대건축의 경우는 군사지휘관의 전망과 권위를 위해 중층으로 짓고 하층을 개방한 것으로 건축의 성격 및 기능에서 봉 암사 극락전과는 큰 차이가 난다.

<그림 11> 봉암사극락전과 유사중층형식 비교 (上左봉암사극락전, 上右선암사장경각, 下左오대산선원보각, 下右남한산성수어장대)

다만 선암사 장경각의 경우 전하는 기록이 없어 연혁과 조성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여주 신륵사 대장각과 양평 용문사 대장전이 각각 국왕과 망부모의 극락왕생 및 국운의 융창을 기원하거나 조부의 영혼을 달 래기 위해 조성되었다고 하고, 특히 이중 신 륵사 대장각의 경우 선암사 장경각의 경우처 럼 2층으로 지어졌다는 내용이 전해져 선암 사 장경각의 조성이유를 짐작해 볼 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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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2> 선암사장경각 평면 (이선화논문)

다.16)

선암사 장경각의 경우 조선고적도보에 실 린 사진에 의하면 高柱에 龕室이 있고 平柱 列이 개방된 중층건물이지만 현재는 내부에 감실이 있는 단층건물로 변형되었다. 이 건 물은 감실의 고주가 상층의 변주가 되는 온 칸물림 방식의 통층구조로 고주를 중심으로 감실이 구성되어 있는 방식이었던 것으로 파 악된다. 선암사 장경각의 평면과 주변 배치 정황을 근거로 원당건축으로 분류하기도 한 다.17)

또한 건물을 없지만 「舍利靈應記」에 의하 면 경복궁 문소전 옆에 列聖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불당의 형식이 가운데 ‘주변에 여 덟 칸의 처마를 두른 한 칸의 불전(佛殿一間 補簷八間)’으로 봉암사 극락전을 연상케 하는 건물이다.18)

2) 앞쪽 高柱를 減柱하지 않은 원통전과의 비교 봉암사 극락전의 경우 중심에 한 칸의 감 실과 그 주변에 차양으로 둘러진 평면을 가

16)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 해석문 참조.

민족문화추진회. 「지평현 미지산 용문사 대장전기」시 주자인 具氏의 자손들이 대장경을 시주할 곳을 찾아 돌 아가신 조부의 靈을 위로하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17) 이선화. 조선후기 지방 위축원당의 배치구성과 건축 적 성격. 1996. 울산대학교 석사논문.p.55.

18) 권상로.『韓國寺刹事典(上)』.1994.이화문화사.p.375.

진 건물로 감실 주변을 요잡(繞匝)19)할 수 있는 건물이다. 이는 일부 원통전에서 찾아 볼 수 있는 평면형식으로 법주사 원통전, 화 엄사 원통전 등이 이러한 평면을 가지고 있 다.

이 건물들의 특징은 모두가 내부에 후불벽 을 구성하는 고주이외에도 불단 앞쪽에 있는 고주를 생략하는 減柱法을 사용하지 않아 중 심을 구성하는 코어가 온전하다는 것이다.

이는 관음신앙이 민중들의 이해에 부응하 는 타력신앙 중의 대표신앙으로 백성들의 稱 號에 의해서 언제 어디서든 應身하는 圓通殿 의 의미를 건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림 13> 앞쪽 고주를 감주하지 않은 원통전 평면 (左화엄사, 右법주사)

이와 같은 평면을 가진 원통전과 봉암사 극락전에서 일부 유사한 평면상의 특징을 찾 을 수는 있다. 그러나 대부분 관음보살을 봉 안한 건물이 일반불전과 평면상의 차이가 없 고 원래부터 관음신앙과 원당과의 신앙적 친 연성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해 보면 건물 중앙 에 감실 혹은 전열의 고주를 감주하지 않은 건축과의 상관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봐야한 다.20)

19) 부처의 둘레는 도는 일.

20) 선운사 영산전의 경우도 중앙에 고주가 있어 코어 가 형성된 柱網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건물은 「兜 率山禪雲寺靈山殿造成施主錄序」에 의해 각황전 이었음 을 알 수 있다. 이선화의 논문에서는 이 건물이 평면의 특징상 원당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지만 그럴 가능성

(8)

3-2. 葬儀用 佛具와의 외형 비교

봉암사 극락전의 경우 원당건축의 성격에 적합한 조형을 위해 어떤 모본에 영향을 받 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 건축에 영향을 준 것에 조사들의 묘탑인 僧塔과 舍利器, 그리고 靈駕를 천도할 때 쓰 이는 臺畔을 들 수 있다. 승탑의 경우 보개 와 옥개가 같은 모양으로 구성되어 이중으로 지붕이 중첩되어 있는 고달사원종대사혜진탑 과 보현사낭원대사오진탑 등이 대표적인 유 사형식이다.21)

<그림 14> 이중옥개형 승탑(左:고달사,右:보현사)

그리고 河北省 灵壽縣 麒麟院 幽居寺 근방 에서 출토된 大安2年銘 중국의 사리기22) 14세기에 만들어진 우리나라의 舍利器들을

은 희박한 편인 것이다. 오대산 적멸보궁 역시 내부에 감실을 두고 있는 이중 평면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내 부에 감주법을 사용하지 않는 평면의 특징은 개별건물 의 영건목적과 관련하여 개별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 다.

21) 엄기표.『신라와 고려시대 석조부도』.2003.학연문화 사.pp.217~230. 이글에서는 이와 같은 형식의 승탑을 석 등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석등 또한 조형적 모티 브가 건축물에서 온 것으로 봐야하는 만큼 중층은 아니 면서 옥개부만 중첩되어 있는 ‘이중옥개형’정도 분류하 는 것이 무난할 것으로 생각된다.

22) 『文物』491. 1997.p.80. 여기서 大安이라는 연호는 요나라와 금나라에서 썼던 연호로 각각 1086년과 1210 년을 말한다.

보면 두 개의 지붕이 연속해서 겹쳐진 사리 기를 찾을 수 있는데, 이것들과 봉암사 극락 전과의 영향관계를 따져 볼 수 있다.

<그림 15> 이중옥개형 사리기(左부터 대안2명, 동경박물관소장, 수종사출토, 이성계발원 順)

또한 조선시대 불화 중 아미타구품도나 감 로도에 나타나는 대반을 들 수 있는데 이 대 반은 영가를 극락으로 천도해 가는 연(輦)의 일종으로 봉암사 극락전과 그 형태가 매우 유사하다.

승탑, 사리기, 대반은 모두가 불교식 葬儀 에 사용되는 佛具로 원당건축의 조형적 모티 브로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그림 16> 감로도의 대반(左통도사,右순치8년명)

이 외에 봉암사 극락전과 외형이 비슷한 것으로는 일본에 있는 중층의 다보탑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의 목조 다보탑은 하층 의 지붕이 차양칸(裳階もこし)이라는 공통점 만 있을 뿐 하층과는 다르게 상층은 원형으 로 되어 있어 평면형식에서 차이가 크다. 봉 암사 극락전의 내부는 일본처럼 이불병좌상 을 봉안하거나 대일여래를 그 권속과 같이

(9)

<그림 17> 불화에 나타나는 극락세계의 중층건물(上:출처미상의 구품도, 下:직지사감로도) 봉안할만한 공간이 되지는 못한다.23)

3-3. 기록의 검토

서방극락정토를 묘사하고 있는 경전은 정 토삼부경이라고 하여 『아미타경』, 『불설 관무량수경』, 『무량수경』등이 있는데 이 중에서도 가장 구체적으로 극락을 표현하고 있는 경전이 『불설관무량수경』이다. 이 경 전에는 극락을 觀想하는 16가지의 방법 중에 여섯 번째 방법이 寶樓觀이라고 말하고 있 어, 불교에서 누각을 얼마나 이상적인 건축

23) 日本建築學會,『日本建築史圖集』1999.彰國社. p.118 김버들, 불교경전과 다라니에 나타난 다보탑의 조형특성 에 관한 연구, 2007. 동국대 박사논문. pp.176~193.

법화경의 견보탑품에 나타나는 석가여래와 다보여래의 이불병좌와 보탑용출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 일본 다보탑이다.

으로 여겨 중요시했는가를 확인할 수 있 다.24) 이 사실은 중국 석굴사원에 그려진 佛 傳圖나 고려시대에 제작된 관경변상도에 나 타나는 전각이 주로 중층의 누각으로 묘사된 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에 많이 그려지는 감로도나 아미타구품도에서도 극락의 모습은 주로 연지와 중층건물로 표현 한다.

정확한 典據는 알 수 없지만 이 건물은 신 라 경순왕이 봉암사로 피난 와서 이곳에 머 무르며 조상의 명복을 빌었던 원당 건축이라 고 하고, 조선 세조의 어필을 봉안한 어필각 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건물은 창건 당시 부터 조선후기까지 줄곧 원당의 기능을 했다 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사실은 淸隱知 守가 쓴 「鳳巖寺事實略錄(1783)」에 御筆一紙 가 전해내려 온다고 적고 있어 재차 확인이 가능하다.25)

「鳳巖寺事實略錄」에는 延壽堂이라는 건물 이 극락전과 함께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 연수당이란 왕실 누군가의 壽命長久를 기원 하는 원당건물을 말한다. 이 기록의 의미는

「鳳巖寺事實略錄」이 작성되던 18세기 후반의 봉암사에는 선암사와 같이 왕실의 원당이 두 개가 있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으로 당시 봉암사의 사세를 짐작하게 한다.

이외에 중요한 기록으로는 『高麗史』에 나오는 봉암사에 관한 기사이다. 이 기사의 내용을 보면 1380년 가은현 陽山寺에 안치했 던 고려 태조의 眞影을 왜구 때문에 순흥으 로 옮겼다는 내용이다.26) 이 기록에 의하면

24) 동국대학교 전자불전연구소 한글대장경 검색서비스 참조. 송(宋) 서역삼장(西域三藏) 강량야사(畺良耶舍) 한 역. 최윤옥 번역 中 23쪽에서 6쪽의 내용.

25) 권상로, 『韓國寺刹事典(上)』 1994. 퇴경권상로박사 전서간행위원회. p. 834. “惟御筆一紙 傳之在寺耳”

주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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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양산사로 불리던 봉암사는 고려 말에 태조의 진영을 봉안했던 眞殿寺院 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기록에 나오는 어진의 이운시기와 봉암사 극락전이 원당이라는 점, 그리고 현상이 조성된 상한과 일치하는 점 등을 감안하여 추정해 보면 이 건물이 고려 태조의 어진을 봉안하는 원당인 眞殿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고려의 건국초기에는 수도를 중심으로 인접지역에 진전사원이 조성되지만 후기로 접어들면서 지방에도 진전이 세워지 고 있어 이러한 가능성을 더욱 높여준다.27)

하지만 『고려사』의 기록이 진전의 조성 관련 기록이 아니라 移運되어 간 기록이기 때문에 이운 후 어느 시점에 중수를 거쳐 새 로운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건물이 고려 태조의 眞殿이었다면 당연히 새로운 왕조인 조선시대에서는 고려시대와 같은 용도로 사용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3-4. 유교식 원당건축과의 비교

왕실은 역대로 극락왕생과 안녕을 위해 불 교에 의지하였는데 이는 유교를 통치 이데올 로기로 하는 조선도 마찬가지여서 이때도 왕 실 원당이 사찰에 많이 건립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는 先祖에 대한 祭禮만 으로는 死後世界에 대한 불안이 생길 수밖에 없는 유교의 특징 때문에 抑佛의 상황 속에 서도 불교를 중시했던 것이다.

현재 알려진 왕실의 원당은 모두 조선후기 에 지어진 것으로 평면이 유교건축형식이라 는 점이 특징이다. 원당은 크게 일반 불전에 위패나 진영, 글씨 등의 상징물만 봉안하는 경우와 위축에 필요한 특정 건축평면을 갖추

26) 『高麗史』 卷134 列傳 卷第47 辛禑(二)

“秋七月 奉加恩縣陽山寺太祖眞 移安于順興避倭寇也.”

27) 한기문 『고려사원의 구조와 기능』 1998. 민족사.

.pp.217~352.

고 있는 경우가 있다. 현재까지 원당건축으 로 알려진 건물로는 송광사 성수전(관음전의 전신), 고운사 연수전, 법주사 선희궁원당, 통 도사 해장보각, 선암사 장경각, 해인사 경홍 전 등이며,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사진으로 확인이 가능한 쌍봉사의 호성전 등이 있 다.28) 이 외에도 현존하는 표훈사의 어실각 과 복원된 신계사 어실각 등이 원당건축의 실례이다.

이들 원당건축을 현상을 중심으로 구분해 보면 크게 前楹을 가지고 있는 前楹(兩楹)형 29)과 고운사 연수전과 같은 기로소 영수각 을 본 뜬 형식,30) 송광사 성수전과 같은 감 실이 있는 일반 불전에 벽화를 통해 원당의 내용을 표현한 형식,31) 그리고 표훈사 어실

28) 이선화. 앞의 논문. 이 논문에서는 통도사 해장보각 과 선암사 장경각을 평면상의 특징과 건물주변의 배치 를 들어 원당건축으로 단정하고 있다. 쌍봉사의 護聖殿 은 전각의 이름을 보면 원당건축이라는 것을 알 수 있 다. 건물의 평면은 마치 陵園의 丁字閣과 같고 선암사와 흥국사의 원통전과 유사한 평면을 가지고 있다.

29) 조재모 「조선시대 궁궐의 편전건축 형식」건축역 사연구 제12권 4호. 2003.참조.

이 논문을 보면 편전에서 행해지의 의례 중에 常參의 행례 시 위계를 정하는데 前楹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

또한 편전에서는 凶禮에 해당하는 昇遐가 행해지고 있 어 편전의 평면을 왕실원당건축형식의 한 유형으로 수 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정기철, 17세기 사림의 ‘묘침제’인식과 서원 영건. 1999.

서울대 박사논문. pp.81~178.

이 논문에서는 廟寢制에 대한 朱子大典의 儀禮釋宮과 殿屋厦屋說의 내용은 우리나라 사림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여기에서 묘사되는 묘침제의 평면형식인 堂室制는 건물내부의 앞쪽에 있는 두 기둥(兩楹,前楹)이 있어 의례 시 위계를 구분 짓는 아주 중요한 건축요소 로 기능한다. 그래서 17세기 우리나라의 士林은 사당을 영건하는 과정에서 이 건축형식을 모본으로 하였다고 보고 있다.

30) 이용윤. 「朝鮮後期 寺刹에 건립된 耆老所 願堂에 관한 考察」불교미술사학.2005.pp.185~211.

31) 송광사의 경우 전패를 봉안하는 방식의 건물이다.

전패는 주로 객사의 정청에 봉안하는 봉안물로 단이나 감을 별도로 마련하지 않고 탁자나 의자를 이용하여 봉 안하므로 건축의 평면상 특별한 차이가 없다. 하지만 송 광사 성수전의 경우는 내부에 측면이 보호된 불감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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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과 같은 전면에 퇴를 설치한 사당형식 등 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32)

<그림 18> 봉암사 극락전(서홍기술 건축)과 고운사 연수전(이선화논문)

이중 봉암사 극락전과 가장 비슷한 고운사 연수전의 경우 이미 앞선 연구자에 의해 기 소로의 영수각을 모본으로 한 원당건축임이 밝혀졌으며 건축형식면에서도 차양칸의 봉암 사 극락전과는 다르게 퇴칸을 두른 단층건물 로 엄연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선암사 장경각의 경우 봉암사 극락 전과 비교하면 퇴칸과 차양칸의 차이만 있을 뿐 외형이 가장 비슷한 건물이라고 할 수 있 다. 이 같은 건축형식은 김수온의 『舍利靈 應記』에 나오는 문소전 옆의 원당이 가장 유산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를 통해서 보면 봉암사 극락전이나 선암사 장경각과 같은 건 물은 古式의 불교식 원당건축임을 짐작할 수 있다. 위축을 위한 원당건축임에도 건축형식 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모본으로 하는 원형 의 차이를 비롯하여 축원하는 내용과 의례, 그리고 봉안물의 다양함에서 오는 건축적 차 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33)

어 객사의 정청과는 다르다.

32) 신계사와 표훈사 어실각의 경우 분명 前楹(兩楹)형 식과 같은 모본의 영향이겠지만 여기서는 분명 室外에 퇴를 가지고 있느냐, 전영의 고주가 생략되지 않은 것이 냐의 형식적 차이가 분명하여 이처럼 분류하였다.

33) 박병선, 조선후기원당연구, 2001. 영남대 박사논문.

이 논문에서는 원당의 기능에 따라 능침원당, 축원원당,

4. 결론

이 건물은 차양칸이 있는 유일한 건물로 그 현상조성시기는 앞에서 검토한 바대로 지 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麗末鮮初로 정 정해야 한다.

정확한 편년을 위해 자세히 살펴보아야 할 부분은 공포의 구성수법이다. 하층으로 보이 는 차양칸 공포의 수법에서는 고려 말까지로 창건 상한을 올려볼만한 수법이 사용되었지 만, 상층으로 보이는 감실 공포의 경우 알려 진 바대로라면 내부와 외부의 수법이 각각 달리 편년할 수 있어 혼란을 준다. 가장 혼 란스러운 부분은 쇠서가 假昻의 형태로 묘사 된 같은 시기의 다른 건물과는 다르게 살짝 휘어져 앞쪽으로 향하고 있어 後補된 것처럼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공포의 구조상 공포 의 살미가 엎을장으로 첨차위에 얹어지는 하 나의 부재이기 때문에 외부의 수법과 내부의 수법은 동시기 수법이 아닐 수 없다. 앞에서 도 주장하였지만 이는 성불사 응진전과 청평 사 극락전의 편년을 비판 없이 받아들인 결 과로 앞으로는 재고해야할 기준으로 생각된 다.

이외에 이 공포에 있는 편년의 다른 요소 와 栱包帶 위에 설치된 포대공, 닫집과 불단 의 형식 등은 모두 건물의 현상조성시기의 상한을 麗末鮮初로 보기에 부족함이 없다.

경순왕 당시 창건한 극락전이 있다는 『伽藍

호국원당, 기타원당으로 구분하고 있고 봉안대상에 따라 위패봉안원당, 어진봉안원당, 어필봉안원당, 태실봉안원 당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 구분에 따르면 봉암사는 기능은 축원원당이고 봉안대상은 어진 및 어필을 봉안 했던 원당이다.

탁효정,「조선후기 왕실원당의 사회적 기능」청계사학 19집.2004.

이 논문에서는 크게 능침수호사찰, 태실봉안사찰, 왕실 기복사찰로 구분하고 있으나 봉안대상에 따른 구분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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考』나 『嶠南誌』의 기록은 사실과 다르지 만 기단이나 초석 등의 수법에서 상한을 경 순왕 당시인 9세기경까지 올려 볼 수 있는 요소들이 발견되는 점 등을 볼 때 9세기에 창건되어 여말선초에 이르러 현재의 모습을 갖추는 등 지금까지 원래의 자리를 지키며 중수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 건물의 건축적 모티브는 승탑과 사리 기, 대반 등 장의용 佛具로 현존하는 유교식 원당건축과는 대별되는 불교식 원당건축의 유일한 예이다. 차양을 두른 독특한 구조로 중심에 비교적 좁은 감실을 설치한 것을 볼 때, 이 건물은 다른 극락전처럼 아미타삼존 불을 봉안할 만한 공간적 여유가 없어 고려 후기부터 지방에도 조성되기 시작한 眞殿건 축으로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원당이 주로 유교식 건축형식을 가지고 있듯이 고려시대의 위축원당은 당연 히 불교식 건축형식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려시대 건축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고 그 성격 또한 유교국가인 조선을 거치 며 변화하였을 가능성이 커 불교식 원당의 형식을 찾아내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상과 같은 여러 근거를 들어 『고려사』

의 기록에 나타나는 봉암사의 眞殿과 이 건 물을 연관시켜 새로운 시각으로 이 건물을 고찰하였다. 이 연구의 부족한 점을 메우기 위해서는 언제 봉암사에 진전이 지어졌는지 에 관한 자료와 이 건물의 정확한 중수기록 등이 추가로 발견되어야 한다. 그간 이 건물 은 학계에 제대로 알려진 바 없고, 해체보수 또한 진행한 적이 없기 때문에 연구가 부족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 상량문 등의 새로운 자료 발견과 연륜연대측정법의 시행을 통한 정확한 건물의 조성시기가 밝혀

지면 새롭게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생 각된다. 이번 연구에서 부족한 몇몇 부분은 그 이후로 미루어 놓고자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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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高麗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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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동국대학교 전자불전연구소 한글대장경 검색서비스.

22. 권상로.韓國寺刹事典.1994.이화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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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Geungnakjeon(Paradise Shrine) of Bong-amsa Temple at Mountain

Hiyangsan

- Based on its applications and historical period of establishment -

Hong, Byeong-Hwa

(Doctoral course, Dept. of Architectural Eng., Yonsei Univ.)

Kim, Seong-Woo

(Prof., Dept. of Architectural Eng., Yonsei Univ.)

Abstract

Bong-amsa Temple is a special temple in the custody of Jogye sect, a branch of Buddhism in Korea. Due to limited public access to this temple, its Geungnakjeon(paradise shrine) has been little known to outside. But it is known that the Geungnakjeon has been not yet explored from academic standpoints in terms of its historical establishment as well as applications, and it would be two-storied wooden pagoda or the like.

In order to examine its historical establishment, this study investigated his- torical records related to Bong-amsa Temple and its intrinsic architectural style. As a result, it was estimated that the building was established around the transitional period ranging from the late Koryo dynasty to the early Joseon dynasty. And it was found that the Geungnakjeon is not the two-stor- ied wooden pagoda, but the unique building including an incidental component called Chayanggan(遮陽間; a sort of stepped penthouse) in Korea.

In order to examine its possible applications, this study compared this build- ing with other Buddhist funeral articles in forms similar thereto, such as Buddhist pagoda(僧塔), sarira container(舍利器) and Gamnodo(甘露圖) which depicts Byeoknyeon Daeban(碧蓮臺畔; a palanquin carrying malignant spirit).

Then, this study estimated its possible applications on the basis of relevant historical literatures. As a result, it was found that this building was used as Wondang(願堂; a sort of Buddhist prayer house) to wish royal family's going to Nirvana after death, and it was not Confucian-style architecture popularized in the era of Joseon dynasty, but Buddhist-style architecture built widely from the era of Koryo dynasty to the early Joseon dynasty.

Keywords : Geungnakjeon at Bong-amsa Temple(鳳巖寺極樂殿), Chanyanggan (遮陽間), Wondang(願堂)

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