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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공간에 관한 미디어고고학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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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일_2019.02.10 심사기간_2019.03.02-18 게재확정일_2019.04.01

가상공간에 관한 미디어고고학적 고찰

A Media Archaological Study for the Virtual Space

이원곤, 단국대학교 예술대학 교수

Yi, Won Kon_Prof. College of Arts, Dankook University

차례 1. 서론

1.1. 배경 – ‘미디어환경’에서의 가상공간 1.2. 가상공간을 향한 미디어고고학의 확장 1.3. 연구목적과 연구방법

2. 가상공간과 미디어기술 2.1. 선원근법과 창문 2.2. 시각미디어로서의 건축 2.3. 파노라마, 완전영화 그리고 VR 2.4. 가상과 실재 사이의 사이

2.5. 휴대성(携帶性, Portability)과 상호작용성

3. 결론

(2)

가상공간에 관한 미디어고고학적 고찰

A Media Archaological Study for the Virtual Space

이원곤, 단국대학교 예술대학 교수

Yi, Won Kon_Prof. College of Arts, Dankook University

요약 본고는 현대의 매체환경에서 생산, 소비되고 있는 가상공간 및 그것을 만들어내는 이미지기술 내지 미디어에 대

한 고고학적 고찰을 행하는 것이며, 가상공간이 현전되고 소비되어온 과정을 미디어고고학적 관점으로 반추해 봄으로써, 가상공간과 미디어의 관련성에 관한 인식의 새로운 지평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디어고고학 은 주로 장치에 대한 분석으로써, 또는 시네마토그래프과 같은 미디어로서의 하나의 정점이 성취되는 과정, 즉 장치들의 역사를 대상으로 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이에 비해 본고에서는 그와 같은 구체적인 장치들을 포함하면 서도, 나아가 ‘감상자를 포함한 하나의 체계로서 성립된 미디어’ 범위로 하여, 선원근법적 회화에서부터 19세기 에 이르기까지 가상공간이 어떻게 현전되고 소비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선원근법, 즉, 단안(單眼)으로 대상을 객관적으로 보는 장치로서의 ‘창문=프레임’을 기준으로 삼고, 카메라옵스큐라, 수평원근 법을 적용한 아나모포시스로 가상공간을 현전시킨 바로크교회의 천정화, 그리고 19세기의 광학장치 등에서 가 상공간이 상호작용적인 조작에 의하여 향수되는 과정을 조사분석하였다. 그 결과, 가상공간은 창문너머의 대상 으로 향수되거나, 혹은 자신의 신체에 대한 감각을 환기하게 되거나, 실재하는 현실과 프레임너머에 현전된 가 상세계와의 사이세계를 감각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미 디어장치는 사용자가 가상공간을 보다 자유롭게 향수할 수 있도록, 소형화되고 휴대성이 강화되어 사용자가 보 는 위치를 바꾸거나 조절하는 편의성과 상호작용성을 확장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시각미디어 가 완전영화와 같은 단선적인 정점을 지향하며, 미디어고고학도 같은 지평에 서 있을 수 있으나, 가상공간을 현 전시키는 미디어는 한편으론 완전몰입을 추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중적 의식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다양성을 확대해 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In this paper, we review the virtual space that is being produced and consumed in the modern media environment, and the archaeological study on the imaging technology and media that produce it. And we aim to gain a new horizon of perception of the relevance of virtual space and media. by reflecting the process of virtual space being consumed and consumed from media archaeological point of view. Media archeology has shown a tendency to target the history of devices, mainly the analysis of devices, or the process by which a vertex as media, such as cinematography, is achieved. In contrast to this, in this paper, the scope of the media including 'the audience' as well as the concrete devices such as those mentioned above, and how the virtual space is being consumed and consumed from the sea painting to the nineteenth century I would like to take a look. Specifically, it is based on the linear perspective, that is, the 'window

= frame' as a device to see the world objectively in a single eye, camera obscura, 19th century’s optics devices and the ceiling illumination of the Baroque church in which the ‘horizon perspective’ is applied, were investigated and analyzed in the process of interacting with the virtual space. The results are as follows. the media-generated virtual space is consumed in various ways, such as perceiving the world beyond the window, ventilating the sense of the body, feeling the world between the actual reality and the virtual world that is beyond the frame. As time goes on, media devices are becoming smaller and more portable so that users can enjoy the virtual space in everyday living, and it is found that the convenience and interactivity of changing and controlling the position of the user are expanding. In conclusion, while visual media is aiming at a single-apex peak like a ‘total cinema’ and media archeology can stand on the same horizon, the media that make the virtual space evolve, on the one hand, And that it is expanding its diversity in double gazing and double consciousness.

중심어

가상공간 미디어고고학 미디어기술

ABSTRACT Keyword

Virtual Space Media Archaeology Media Technology

이 연구는 2018년도 단국대학교 대학연구비 지원으로 연구되었음.

The present research was conducted by the research fund of Dankook University in 2018.

(3)

1. 서론

1.1. 연구배경 – 현대의 미디어환경과 가상공간

이 논문은 서구의 르네상스시대에 발견된, 평면위에 유클리트적인 3차원을 부감시켜서 가상공 간(virtual space)을 현전(現前: presence)시키는 선원근법(線遠近法)을 출발점으로 한, 이미 지기술 및 미디어와 가상공간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구하고자 하는 연구이다. 가상공간 이란 문자 그대로 가짜, 허구 또는 상상의 공간을 의미하므로 원래 허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현대인은 이 가상의 존재를 현실과 거의 대등한 수준으로 현전시키는 기술의 발전을 추구해 왔으며, 이 새로운 공간에서 현실의 활동 혹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활동이 가능하도록 개발하 여, 그 속에서 일상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꿈을 꾸는 경우에서처럼, 가상공간은 단순한 뇌의 착각에 의해서도 감각될 수 있다. 본고에서 는 이와는 달리 구체적인 기술 혹은 미디어에 의해 현전되고 감각되는 가상공간을 관찰의 대상 으로 삼고자 한다. 가상공간은, 거기에 상호작용성이 개입하여 사이버공간이 되고1), 나아가 현실감을 구성하는 제(諸)요소가 통합되었을 때 가상현실(假想現實, virtual reality)으로도 인지될 수 있다.2) 현대인에게 있어 가상공간은 회화나 연극 TV드라마와 같은 문화를 향수하 는 공간일 뿐 아니라, 일하고 공부하고 노는, 거의 모든 영역의 인간활동이 영위되는 생활공간 이기도 하다.

가상공간을 현전시키는 방법의 기본성은 선원근법으로부터 왔다. 원래 선원근법은 ‘신체화된 단안(單眼)에 의해 부감된 3차원 공간을 현전시키는 기술’이며, ‘데카르트적 원근법주의(Cartesian perspectivalism)’라고도 불린다. 세상을 대하고 인지하는 기본적인 태도라는 점에서 근대적 지적 전통과도 부합하는 것이다. 현대의 3차원 CG도 선원근법과 마찬가지로 x, y, z의 3축으 로 된 좌표계를 기반으로 가상공간을 현전시키며, 생산기술로서 이미 인공지능과 같은 자율적 프로세스의 영역에 진입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미디어테크놀러지가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예는 거의 없다. 많은 이론가들이 지적하듯이 기술은 인간 의 꿈이 무의식적으로 추구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꿈을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간주하는 이론도 존재한다. 그러나 어떤 때는 그 이데올로기 가 폭주하여 시행착오를 겪기도 한다. 예를 들면 21세기에 들어 가장 뜨거운 관심을 모았던 기술 중의 하나가 3DTV였다. 특히 영화 <아바타>의 성공이후에 3DTV가 미래의 새로운 미 디어환경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되었고, 특히 한국의 가전산업체들이 제품개발과 생산에 뛰어들었으나 그 열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일본에서는 2012년이래로 판매 량이 감소, 한국에서도 2016년 이후로 거의 동력을 잃고 기업들이 시장에서 철수하였다. 말하 자면 3DTV에 관해서는 기술적으로도 충분한 개발역량이 있었고, 미래적 전망으로서도 설득 력이 있는 비전이었으나 대중의 욕망은 그것을 외면하였다.

이 사례는 “3차원 가상현실영화’가 미디어산업의 미래일 것이라는, 일반인과 전문가들 모두에 게 거의 상식에 가까운 문명의 비전이 알고 보면 하나의 편향된 선입견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러나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까지의 입체사진, 1951~2년경의 입체영화, 그리고 70년대의 홀로 그램의 유행 등이 그것이다. 입체사진의 유행은 그 자체가 신기한 볼거리 수준에 머물렀지만 영화의 유행과 함께 거의 사라졌고, 입체영화의 열기는(아마도) TV의 보급과 함께 갑자기 식어버렸다. 그리고 레이저기술과 함께 많은 관심을 모았던 홀로그램 역시 알 수 없는 이유로 관심이 식으면서 전문박물관마저 폐관되었다.3)

1) 사이버공간이란 사이버네틱한 조작이 가능한 공간이란 의미이다. 가상공간 내부의 대상을 바깥에서 그것을 조작한다는 것을 의미하 고 가장 전형적인 비유로는 마우스로 조작이 가능한 컴퓨터게임속 공간은 사이버스페이스이지만, 영화관에서 감상하는 영화속 세상 은 단순한 가상공간이다.

2) 1994년 시카고대학의 D. 젤쩌(David Zeltzer)에 의하면 가상현실의 완성도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AIP cube라는 개념을 제안하였다. Autonomy(자율성), Interaction(상호작용성), Presence(임장감: 臨場感) 등 3가지의 완성도를 지수로 표시하 고 이를 AIP큐브로 도식화하였다. 여기서 임장감은 가상공간과 함께 사운드와 냄새 그리고 다양한 체성감각으로 구성될 수 있다.

3) Museum of Holography(Chicago). 1974년에 설립되었다가 1979년에 폐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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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완벽한 대체현실’이란 ‘꿈의 현실화’에 다름 아니고, 기술이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진 화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1990년대에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던 VR(virtual reality)이 완전영화의 또 다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면, 현재에는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과 증강가상(augmented virtuality)의 중간지점, 즉 현실과 가상을 구분할 수 없을 정 도로 정교하게 복합시키는 기술의 지향점을 MR(複合現實: mixed reality)이라고 명명한 사례 도 있다.4)

그리고 VR의 경우에도 ’궁극(窮極)의 VR‘(ultimate virtual reality: David Zelter. 1992)이라 는 지향점이 제시5)된 바 있으나, 현재의 연구자들은 현실과 가상성의 조합하는 기술 즉 AR연 구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상의 사례들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가상공간이 인간생활에 중요한 생활공간이 되기는 했으나, 인간의 일상에서 말 그대로의 ’완벽한 가상현실‘을 향한 몰입지향성에는 일정한 임계점이 있다는 사실과, 그리고 아울러 인간은 오히려 가상과 현실로 구성된 이중적 세계에서 일하고, 공부하고, 놀기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이점은 생물학적 신체 를 가지고 물리적 세계에 살아야 하며, 동시에 뇌(腦)가 표상하는 가상공간을 매개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실존적 양상의 반영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인간의 일상적 삶과 혹은 다양한 문화적 활동의 무대가 되는 가상공간(가상세계)의 관계를 이해하는 일, 그리고 그 가상공간을 현전시키고 매개하는 미디어에 대한 이해는 앞으로 학술, 예술, 디자인의 큰 과제가 될 것이다. 즉 가상공간과 현실공간 사이에 관계를 만드는 일 자체가 매우 중요한 예술/디자인작업이며, 빛, 소리, 운동 등 제요소가 연결되고 통합되어 AR(augmented reality), AV(augmented virtuality) 혹은 MR(Mixed Reality)의 리얼리티를 합성, 현전시키는 것이 새로운 미디어환경에서의 공학자, 디자이너의 일이라면, 미디어가 현전 시키는 가상공간에 대한 단선적인 역사인식이 아니라, 가상공간을 현전시키는 미디어의 과거 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보다 체계적인 이해가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이에 관한 선행연구로서 필자는 가상공간과 실제공간과 관계위상을 다섯 단계로 설정하고, 그것들이 각각 미디어테크놀로지에 의해 구현되는 과정을 분석한 연구6)를 행하여 가상공간은 다섯 단계의 진화를 거쳐 오늘날의 AR/MR에서와 같은 위상에 도달한 것은 대중적 욕구와 기술이 상호작용에 의해 공진화(共進化 : co-evolution)한 결과라고 논증한 바 있다.7) 본고는 이에 대한 후속연구로서, 가상공간을 현전시키는 미디어를 특정한 기기 및 장치 혹은 미디어테크놀로지에 한정하지 않고, 가상공간을 현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공간이나 구 조물에 까지 확장한 시야에서 이를 살피고자 하는 것이다.

1.2. 새로운 미디어고고학의 제안

미디어고고학은 근현대의 지배적인 미디어들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와 그것들에 가려져서 잊 혀진 오래된 미디어들을 재고찰함으로써 새롭게 떠오르는 미디어 혹은 미디어전반에 대한 이 해를 지평을 구하고자 하는 분야이다. 말하자면 기존의 미디어이론으로부터 거절되었던 역사 를 재발견하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M. 푸코, W. 벤야민, M. 맥루언, J. 보드리야르 등은 비록 ’미디어고고학‘이란 용어 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미디어고고학의 관점에서 볼 때, 선구적이고 창조적인 인식을 발표했 으며, 이런 연구자들에 의해 기존의 미디어문화 또는 미디어테크놀러지의 발전에 관한 규범화 된 담론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관점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계속 이어져 왔다. 그것은 또 영상/

화상을 통하여 가상공간을 현전시키는 기술과 그것을 향수하는 댜양한 방식들에 대한,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형성된 서로 다른 미디어문화의 과거와 현재를 소통시키고자 하는 문제의식

4) Paul Milgram & Fumio Kishino, “A Taxonomy of Mixed Reality Displays”(IEICE Transactions on Information Systems, Vol E77-D, No.12, December 1994.) 참조.

5) edited by Jolanda-Pieta van Arnhem, Christine Elliott, Marie Rose, Augmented and Virtual Reality in Libraries, Rowman & Littlefield Publishers. 2018. pp.58~59.

6) 이원곤 ‘미디어테크놀러지와 가상공간의 위상’ (‘기초조형학연구’. Vol.10, No.2. pp.321-330), 2009.

7) 이원곤, 같은 논문. “제3장 : 가상공간의 위상변화, 그리고 공진화”.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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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본격적인 연구분야로서의 미디어고고학은 20세기 중엽에 ‘영화의 고고학’에서 시작되 었고, 그 대표적인 연구자였던 C. W. 쩨람(C. W. Ceram)은 사진, 환등(幻燈), 가현운동(假現 運動: apparent movement) 등 3개의 기술적 요소가 융합된 결과로서의 ‘시네마토그래프’라는 구체적인 장치의 발명에 이르는 역사를 조명하였는데, 그에게 있어 ‘영화는 그 ‘장치’이상의 것’8)이었으므로 미디어고고학의 범위를 벗어난 세계였다. 그리고 1980년대에 이르러 베르러 네케스(Werner Nekes)가 ‘영화 이전의 영화’9)이란 다큐멘터리 필름으로 같은 분야에 대한 자료를 가시화하는데 공헌하였으나, 이 역시 미디어고고학적 기록으로서 주로 18~9세기의 장치들을 대상으로 하는 접근이라는 점에 큰 차이가 없었다.

이에 대해 E. 허타모(Erkki Huhtamo)는 C. W. 쩨람의 연구가 ‘직선적이고 목적론적으로 기술 한 편협한 시각’이라고 비판한다. 즉 그의 연구가(빠떼사의) 영화산업의 탄생을 종점으로 하는 단선적인 역사발전이라는 시각을 견지하였기 때문에 미디어고고학이 살펴야할 풍부한 문맥을 놓치고 말았다는 것이다.10) 이에 E. 허타모는 그의 저서의 제목‘미디어고고학-과거, 현재 그 리고 미래와의 대화’가 의미하는 것처럼, 기존의 단선적인 관찰방법에서 벗어나, 근현대 미디 어아티스트들의 작품들에 대한 비교분석을 행함으로써 이에 대한 보다 풍부한 문맥의 설명이 가능해졌다.

가상공간을 현전시키는 미디어테크놀로지의 진화는 대중적 욕구와의 상호작용에 의해 공진화 (共進化 : co-evolution)한 결과라는, 전술한 연구자의 관점에서 볼 때, 20세기 이래의 미디어 담론은 ‘시뮬라시옹’이나 ‘가상현실’과 같은 또 다른 차원의 ‘완전영화’의 지평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시네마토그래프가 발명된 이후에도, 토키영화, 색채영화, 입체영화 등으로 장치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완전영화의 신화’11)가 태어나고, 이 신화를 미디어기술이 지향해야할 목표로 삼는 잠재의식이 형성되었으며, 이것이 미디어산업의 발전과 진화를 견인 하였고 할 수 있다. 즉 전술한 3DTV는 시네마토그래프를 하나의 정점으로 보는 ‘직선적이고 목적론적으로 기술한 편협한 시각’과 마찬가지로 완전영화의 신화의 산물인 것이다. 달리 말하 자면 또 하나의 완전영화신화라고 할 수 있는 ‘시뮬라시옹’이나 ‘가상현실’과 같은 단선적인 미디어담론이 규범화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전술한 연구자들의 경우에서와 같은 장치중심이거나 완전영화를 지향 점으로 보는 분석을 지양하고, 구체적인 장치들을 포함하면서도, 나아가 ‘감상자를 포함한 하 나의 체계로서 성립된 미디어’라는 넓은 의미의 미디어를 통하여 가상공간이 어떻게 현전되고 향수되는지를 중심으로 살피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본고에서 살피고자 하는 ‘가상공간을 현전 시키는 미디어’란 단지 회화나, 사진, 영화 등 이미지기술뿐 아니라, ‘창문’이란 비유가 암시하 듯이, 그것을 포함하는 건축 등 구조물과 상자 등으로 관점을 확장하여 peepshow에서와 같은 관찰자의 의식이나 몰입의 구조를 중점적으로 살피고자 한다. 이점에서 19세기말의 많은 광학 장치들도 몰입을 위한 구조물로서 고안된 것이 다수 존재하나, 이전의 연구자들이 주로 그것들 을 환등, 가현운동 등 시네마토그래프라는 장치의 발명과 관련있는 측면에서 살피는 것임에 반해, ‘가상공간의 현전’이라는 구체적 목표가 그것들과 상이한 것임을 밝혀두고자 한다.

1.3. 연구목적과 연구방법

이 연구에서는 선원근법의 발견으로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의 가상공간을 현전시키는 기 술, 연출, 미디어 등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가상공간을 현전시키는, 감상자를 포함한 하나의 체계로서 성립된 미디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의 지평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

8) C.W.Ceram. Eine Archaeologie des Kinos. 月尾嘉男訳, フィルムアート社 p.19.

9) 다큐멘터리 필름 <Was geschah wirklich zwischen den Bildern?>, 감독: Werner Nekes, 1986.

10) Erkki Huhtamo, Media Archaeology: Dialogue between the Past, Present and Future. 太田純貴編訳. NTT出版.

pp.9-10.

11) Andre Bazin, What is Cinema, 2 Volumes, translated. by Hugh Gray, The Regents of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1967. pp.23-27.

(6)

이 논문에서 ‘미디어’는 가상공간을 현전시키는 기술 혹은 그것을 기반으로 체계화된 미디어로 지칭하며, ‘가상공간’은 ‘일루전’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명증(明證)된 원리에 의한, 또 정합성 (整合性)을 지닌 공간으로서, 미디어에 의해서 실현되거나 원격지로부터 전송되어 현전된 ‘원 격현전(telepresence)의 결과를 포함한다.12)

이글에서 말하는 가상공간에 대한 가장 좋은 비유는 ‘창문’이다. 이 비유는 르네상스시대의 화가였던 L. 알베르티(Leon Batissta Alberti : 1404-72)가 매우 적절하게 사용하였으나, 최근에 A. 프리드버그(Anne Friedberg)는 이를 ‘가상의 창문’(virtual window)라는 용어로 축약하고, 이 ‘창문’을 2차원인 면과 프레임을 갖는 스크린 즉 건축적 구성요소로서 정의하였 다.13) 이 ‘2차원창문’ 혹은 ‘스크린’은 가상공간이 현전되는 곳이며, 오늘날에는 컴퓨터 모니터 상의 다중 스크린과 분할화면이 일상의 소통을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지만, 적어도 가상공간을 현전시킨다는 측면에 한정해서 본다면 이 스크린을 관객=사용자의 시야(視野)에 어떤 방식으 로 구성하는가에 따라, 크게는 트롱프뢰이유, 바로크교회의 천정, 파노라마 등에서와 같은 건 축물이 가상공간을 현전시키기 위한 미디어가 되며, 작은 규모로는 peepshow 혹은 VR/AR고 글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어느 것이나 보는 사람의 시야를 효과적으로 통제하여 가상공간을 현전시키도록 시각적 장치라는 공통점이 있다.

본고에서는 이처럼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을 대비, 통합 또는 다양한 위상으로 구조화하는 방식 에 따라 다른 리얼리티가 생산/향수되는 문화를 관찰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선원근법에 대한 고찰에서 가상공간 현전하는 기술의 기본성에 관한 이해를 얻고, 다음 세대들에서 구현되는 가상공간의 특질을 파노라마, 등에서 심화시키고, 변화되어온 역사를 이해하는 기초사례로 기존의 미디어고고학이 주시했던 19세기의 장치에 대한 조사결과를 참조하면서, 가상공간을 현전시키고 소비하는 양상에 대한 분석을 행하고자 한다.

2. 가상공간의 위상 2.1. 선원근법과 창문

선원근법은 시각적 착시에 의해 프레임 안에 가상공간을 현전시키는 기술이다. 르네상스 이전 에도 원근법이 사용된 적이 있지만, 그것이 현대의 투시도법과 완전히 같은 것인지를 두고 논쟁이 있으나 정설은 없다.14) 그리고 르네상스기의 선원근법은 ‘탈신체화된 단안(單眼)’, (기하학적으로 균질의) ‘공간에 부동의 상태로 설정된 시점’을 전제로 하는 데카르트적 선원근 법으로 불리며, Martin Jay가 논한 ‘근대 시각중심주의’의 주된 경향 중에서도 ‘북방미술’(네덜 란드를 중심으로 하는 북방미술에는 물질적인 표면을 신봉하는 것), 그리고 ‘바로크적인 것’들 과 구분된다.15)

그리고 이 선원근법이 상징하듯이 근대문명에서는 사물이나 자연과의 거리가 설정되고, 다른 감각들 보다 시각이 우위에 서서 그것들을 대상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투시화법의 기하학 적 원근법이나 근대물리학의 기계론적 자연관, 그리고 근대의 인쇄술은 그 방향성의 대표적인 산물이며 그 방향성을 강하게 견인하기도 했다. 그런 속에서 시간도 공간도 모든 것이 양적으 로 측정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하게 되었고, 그 결과 인간의 시간도 공간도 우주론적인 의미도 박탈되고 세속화되었다. 원근법에 기반한 착각이 이용되어 일반적으로 시각상의 한 점이 고정 되어, 그곳에 수렴되도록 그려진 것이 바로 눈에 보이는 질서가 되었다.

이처럼 고정된 눈(=cogito, 사유하는 자아)을 전제로 해서 대상을 확실하고 객관적으로 인식

12) 그리고 이에 대한 필자의 선행연구로서 필자가 2009년에 행한 연구에서는 가상공간의 다섯가지 위상을 규명한 바 있다. 이 연구 에서는 가상공간과 현실의 위상진화라는 관점을 중심으로 논한 것임에 반해 본 논문에는 가상공간을 현전시키는 미디어에 중점을 둔 점에 차이가 있다. 이원곤 ‘미디어테크놀러지와 가상공간의 위상’ (‘기초조형학연구’. Vol.10, No.2. pp.321-330) 2009.

13) Anne Friedberg. The Virtual Window: From Alberti to Microsoft. The MIT Press. 2006. p.1.

14) 기원전 5세기경 그리스에서 무대미술에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무대위에 공간적인 깊이감을 내기위해서 평면패널을 배치 하고 깊이감을 주는 그림을 그렸다고 함. 예를 들어 유클리트는 투시도법에 관한 수학적인 이론을 성립시켰다고도 하나 이 이론 에 관한 정설은 없다.

15) Martin Jay, ‘Scopic Regimes of Modenity’, Foster Hal (ed), Vision and Visuality. Discussions in Contemporary Culture, Seattle: Bay Press, 1987. pp.3-23.

(7)

하고자 하는 방식은 현대의 CG에서도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즉 3차원 CG가 투시투영법(透視 投影, perspective projection)도 알베르티가 그의 “회화론”에서 설명한 작도법, 즉 시각 피라 미드를 따라 화면과 수직으로 교차하는 직교선orthogonal이 모이는 소실점을 기준으로 삼는 방식에 기본을 두고 있는 것이다.16) 그뿐 아니라, 사진과 영화 그리고 비디오와 디지털영상의 시대에 진입한 오늘날의 세계는 15세기때 보다 원근법의 구조를 더 정확하게 실현하였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컴퓨터모니터 화면 등에서 다양한 디지털 영상미디어에 의해 다중 스크린 으로 제시된 윈도우와 가상공간은 우리들 눈에 익숙한 관습이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화면에서의 시각경험을 통해 머릿속에서 세계를 재구성한다.

2.2. 시각미디어로서의 건축

그런데 가상공간을 현전시키는 프레임=창문은 필연적으로 건축물과 관련되어 있다. 건축물 혹은 구조적 장치와 이미지를 이용해서 현실공간과 연결된 가상공간을 현전시키는 방식으로 서 가장 오래된 사례는 트롱쀄이유(Trompe-l'œil)이다. 선원근법이 프레임저편의 가상공간 을 현전시킨 것이었다면, 트롱쀄이유에서는 그 프레임이 실내의 구조와 함께 인지되거나 소거 되고 관객이 서 있는 현장에 실재와 가상이 연결된 상황이 현전되는 것이다.

트롱쀄이유의 범주로 분류되는 양식은 매우 광범위하고 예를 들면 벽면이나 마루에 문이나 창문, 인물 풍경 등을 그려넣거나, 평면작품에 오브제를 부착한 경우, 엣셔의 작품처럼 불합리 한 공간을 표현한 경우 등을 들 수 있다. 원래 건축물의 문, 벽, 천정의 구분이 프레임역할을 하는 실내에서 분리된 대상으로서의 프레임저편의 가상공간은 그대로 건축적 공간의 일부로 서 환영을 현전시킬 수 있는 가장 적합한 환경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상세계의 현전을 가장 필요로 했던 곳 은 바로 교회였다. 하나님의 집이기도 한 교회는 신도들 이 신을 직접 만나는 곳이기도 하므로, 교리에 따라 그 런 이미지를 표현할 것인지를 두고 그것을 금하는 경우 도 있으나, 적어도 바로크시대의 교회는 그러한 신들의 세계를 교회의 천정에 표현하기를 권장하는 풍토였고, 벽이 아닌 천정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에 가상공간을 그 려내기 위하여 다른 원근법이 필요했다.

최초로 단축원근법에 성공을 거둔 화가는 멜로쪼 다 포 를리(Melozzo da Forlì, 1438 –1494)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 기법을 통한 건축적 환영으로 벽을 ‘열어’서 천 상의 세계를 현전시키는 사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안 드레아 포초(Andrea Pozzo, 1642-1709)는 큰 규모의 건축물 내부 천정에서는, 작은 규모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수직방향과 화면 외곽의 왜곡현 상이 부각되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하여, 동일한 각도에서 지각되는 물체의 길이는 동일하게 인지된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수직선과 수평선의 개념을 바꾸도록 제안하였고, 극장 무대배경 화나 건축물의 천정화에 대해 ‘수평원근법’17)을 적용하였는데, 이 수평원근법은 중앙투시도법 에서 취급하지 않았던 수직방향의 단축현상을, 실제 건축물의 수직선들을 천정면의 직교선들 로 전환시킴으로써 효과적으로 담아내는 결과를 가져왔다.18) 이렇게 해서 르네상스시대에는 프레임너머 대상으로 존재하던 가상공간의 속으로 관객을 몰입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이처럼 A. 포초를 비롯한 바로크 천정화의 사례는 화가가 그림을 건축물에 삽입하거나 부착하 는, 혹은 건축물에 하나의 대상으로서의 창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건축구조물 전체를 감상 자의 시점을 중심으로 한 미디어장치로 전환시키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몰입

16) 단, CG의 경우에는 화가들이 하는 것처럼 모든 방향의 빛을 고려하지 않고, 1픽셀에 하나의 광원을 시뮬레이트 하는 레이트레이 싱기법을 사용한다. 알베르티의 방식은 후대 미술사가들에 의해 합리적 구성법 ‘costruzione legittma’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됨.

17) 조은정, 아나모르포시스와 바로크 시대 선 원근법 이론, (‘미술사학’ Vol.35, No.35. pp.247-280), 010. p.255.

18) 조은정, Ibid. 제2장 제2절: “성 이그나티우스 교회의 쿠폴라 천정화”(pp.54-257) 참조.

<그림 1> The illustionistic perspective of Andrea Pozzo's trompe-l'oeil dome at Sant'Ignazio(1685).

(8)

을 위한 장치라는 점에서 볼 때, 건축물은 트롱쁘뢰이유와 같은 트릭으로 감상자를 위한 가상 공간을 현전시키기에 최적의 환경이라는 점이다.

2.3. 파노라마, 완전영화 그리고 VR

그런데, 알베르티의 창문은 건축물의 내부에 인간의 눈높이에 해당하는 곳에 만들어지고, 그것 을 통해 세상을 관조하도록 설정된 것이지만, 그것을 통해 인간은 대상과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대상으로서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인간의 상상력은 그 가상공간 내부를 실제로 이해하고 시뮬레이션한다.

전술한 바로크교회의 사례에서 보듯이 건축물을 포함한 파노라마/디오라마관 등은 구조물은 인간의 시선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시각장치이기도 하며, 가상공간을 내부구조와 조합 하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전술한 교회의 아치형 천정 많은 경우 천사들이 강림하는 시각적 착각을 일으킬만큼 정교하게 가상공간이 현전되어 있으나, 그 가상 공간은 관객이 서 있는 교회의 바닥면과 완전히 분리된 천상의 세계이기도 하고 벽과 기둥과 수많은 장식조각상들의 연장선상에 서 있기도 하다.

말하자면 성당이 하나의 시각장치로 전용됨 셈인데, 이것은 자연과 우주를 하나의 관념적인 체계이거나 acoustic space로 인지하지 않고, 주체의 바깥에 펼쳐져 있는 객관적 대상으로 파악하기 시작한 근대이래의 시각적 관습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르네상스기 이후에 새로운 기법으로 생산된 세속적인 가상공간을 소비해 온 근대인의 뇌(腦)에는 시간이 흐름과 함께 지식과 경험이 축적되었고, 보다 세상과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보다 큰 가상공간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것은 가상공간을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의사체험(疑似 體驗)할 수 있는 환경으로 확대생산하는 방향으로 발휘되었다.

그러므로 파놉티콘과 파노라마가 1800년을 전후한 거의 같은 시기에 세상에 나온 것은 단순 한 우연이 아닐 것이다. 중세이전에 인간이 사는 현실세계와 신의 세계가 혼연일체가 되어 연결되는 acoustic space의 세계로부터, 대항해시대의 개막과 함께 프톨레마이오스적 기하학 적으로 정합성이 있는 지구(地球)의 실체가 체감되기에 이른 16세기19)에 이르면 유럽인에게 외부세계는 원근법에 의해 그려진 프레임너머의 가상공간처럼 인지되면서도 자신이 처한 실 재의 공간과 연결된 현실세계였다. 이윽고 우주는 뉴튼의 고전물리학적 세계관에서처럼 정교 하게 짜여진 천체이고 세상은 인간적 모험과 산책의 대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탐험소설을 즐기 고 소설(80일간의 세계일주, 해저2만리, 달나라여행 등) 외부세계의 풍경을 담은 그림책이 인기를 모았다. 파노라마는 이러한 시대에 대한 예언이기도 했다.

이처럼 시야를 통제하여 가상공간을 현전함으로서 그것을 하나의 환경 즉 실제의 현실로 현전 시키는 원리는 19세기의 파노라마, 디오라마, 사이클로라마, 말레오라마, 시네오라마 등은 물 론 입체사진, 입체영화 그리고 오늘날의 VR고글에 까지 이어진다.

VR기술에서도 핵심은 사용자가 있는 가상세계를 현전시킬 수 있는 모든 데이터를 동시에 동 원하고 그래픽을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콘도미니엄의 원리처럼 사용자의 주의가 향하는 방향 과 그 시점에서만 데이터를 불러오고 감각정보를 생성함으로써, 시야 전체를 커버해서 사용자 를 완전히 그 가상공간에 빠트리는 파노라마의 원리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말하자면 파노 라마나 완전영화의 신화, VR은 미디어로서 같은 상태를 지향하는 것이다.

하지만, 프레임 너머의 가상공간을 관객이 서 있는 실재의 공간과 어떤 방식으로 매칭시키는가 는 그것을 수행하는 장치, 구조물, 관객의 신체적 개입 등이 어떤 방식으로 실현, 구성되었는가 에 따라 달라지며, 미디어고고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러한 기술적 차이가 가상과 현실이 만나 서 결합하는 방식의 다양성을 만들어 낸 것이다. A. 바쟁은 영화의 발전이 단지 기술의 발명에 만 의존한 것이 아니며, 인류의 상상력이 가지고 있던 꿈이 기술을 통해서 현실화 되었다고

19) 예를 들면 1521년 마젤란이 항해했던 방향과 반대쪽으로, 1565년 미구엘 로페즈 데 레가스피(Miguel López de Legazpi)와 안드레스 데 우르다네타(Andrés de Urdaneta)에 의해 스페인의 세비야, 멕시코의 아카폴코, 필리핀의 마닐라를 잇는 국제무역로가 확보됨으로써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신화 혹은 과학이 아니라, 국제정치 및 경제적인 현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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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했다. (완전영화의 신화)기술과 꿈은 태어날 때부터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대상으로서의 가상공간’에서 ‘환경으로서의 가상공간=전방위이미지’로 이르는 시각 미디어의 진화는 전술한 것처럼 단선적이지 않고, 오랜 세월동안 다양한 기술과 문화적 문맥에 의해 다양한 모습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리고 사진의 발명/확산과 대중의 시각적 욕망이 폭발 한 19세기 에는 수없이 많은 기술과 발명이 이어지고 시각적 장치로 응용되었다. 실로 지구상 생명의 진화에서 캄브리아기에 비유할 수 있을 만큼 풍부한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2.4. 가상과 실재 사이의 사이

가상공간을 전방위로 현전시키는 방식에는 수십장의 그림을 연결했던 최초의 파노라마의 사 례로 부터 최근의 구면투영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술이 있으나 그 목표는 하나의 완전한 환영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관객에게는 자신이 가상과 실재의 중간영역에 있다는 사실의 자각이 더 경이로운 경험일지도 모른다. 카메라옵스큐라의 원리가 알려졌던 17~18세 기에 서유럽의 많은 호사가들이 자신의 집에 카메라옵스큐라 방을 만들어놓고 풍경감상을 즐 겼다는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그림 2~3> 영국 에딘버러에 있는 카메라옵스큐라 방과 그 내부.

<그림 4> 미국 산타바바라 해변에 설치된 카메라옵스큐라(현재)

<그림2, 3>에서 보는 것처럼 관객은 실제의 풍경이 있는 바로 옆에서, 그것을 기록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일시적으로만 나타나는 그림자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창문 너머의 가상공간과 같은 방식으로 관조하는, 일종의 심리적 거리를 즐기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관객은 바로 문밖에 실재하는 현실이 어두운 방안에서 영상으로 전환된 ‘가상의 실재’로 대면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관객은 현실과 가상의 중간에 서 있는 자신의 신체에 대한 감각을 환기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의 사례<그림 4>에서 보듯이, 이 장치가 수백년이 지난 오늘날 에도 여전히 실제의 볼거리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현실에 실재 하는 현실과 프레임너머에 현전된 가상공간 사이에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태어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러한 이중적인 구조를 인위적으로 만들고 관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로이 애스콧(Roy Ascott)이 이중의식(double consciousness)이라고 묘사했던, 인간의 보다 본질 적인 측면을 엿볼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림 5> "portable" camera obscura in Kircher's Ars Magna Lucis Et Umbra(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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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러한 체험에 대한 소망은 이미 17세기에도 표현된 바 있다. <그림 5>에서 보듯이 A. 키르허는 휴대용(portable) 카메라옵스큐라의 디자인을 소개한 바 있는데, 이 장치에는 아래쪽에 가마처럼 들고 옮길 수 있도록 손잡이가 달려있다. 이처럼 영상을 화상으로 전환하거 나 기록/전송하는 기술이 없었던 그 시기에 실제의 자연으로부터 그 복제이미지를 리얼타임으 로 향수하는 행위, 의도적으로 실제를 가상으로 바꾸어 향수하는 심리에는 실제와 꿈의 사이에 서서 그 거리를 관조하는 인식의 놀이정신이 있다.

그리고 이처럼 현실 저편의 실제공간과 가상공간에서 접속하는 경험은 오늘날에는 원격현전 에 경우도 마찬가지로 이중적인 시선, 이중적인 인식을 제공한다. 오늘날에는 화상전화의 사용 과 함께 이런 심리적 경험이 일상화되었지만, 1980년에 뉴욕과 L.A의 공공장소를 인공위성 영상중계로 연결했던 이벤트 <Hole in Space>20)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림 6> Hole in Space. Kit Galloway와 Sherrie Rabinowitz. 시민들이 공공장소에서 서로 마주보 면서 소통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이벤트에서 양측 시민들의 영상은 인공위성으로 중계되어 상대방측에 투사되었는데, 두 도시의 공공장소에서 시민들은 먼 곳에 있는 상대방과 얼굴을 보면서 소통하고, 마치 광장에서 축제를 벌이듯이 교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경우에는 위성을 통해 신호가 오가기 탓에 약간 의 시간지연이 생기게 되고, 이 때문에 상대측의 존재감이 현실과 가상 중에 그 어느 쪽도 아닌, 제3의 공간으로 감각된다.

2.5. 휴대성(携帶性, Portability)과 상호작용성

19세기에는 대중의 시각적 소비욕망이 폭발적으로 분출한 스펙터클 취향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시기였다. 관객에게 보다 리얼한 가상성을 감각하도록 연출하기 파노라마처럼 단순한 벽화만이 아니라, 이중의 벽으로 연출된 디오라마, 움직이는 이미지, 소리와 흔들림 등이 동원 되는 경우가 많았고, 관객에게 계획된 연출을 확실하게 전달하는 방법은 관객의 시야를 일정한 범위로 한정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러나 거대한 구조물을 필요로 하는 만국박람회의 어트랙션이나 디오라마, 사이클로라마 등 보다 더 손쉽고 일상적인 방식은 구멍을 통해 상자 속에 연출된 가상세계를 감상하는 방법이었 다. 이런 종류의 새로운 방식으로 가상공간을 현전시키는 시각장치를 개발하고자 하는 열정은 A. 키르허에 의해 환등기의 원리가 알려졌던 17세기로부터 시작되어 19세기 후반의 빅토리아 여왕의 시대에 이르면서, 그 절정에 이르렀고, 19세기 후반의 파리의 그랑불루바르(Grands Boulevards)를 중심으로 한 환락과 오락의 문화가 환타스마고리아, 디오라마, 사진, 그리고 소마트로프, 조에트로프, 페나키스티스코프와 이윽고 에밀 레이노의 애니메이션극장이 문을 열고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래프의 발명으로 이어졌던 것이다.21)

20) November 1980, a public communication Sculpture was constructed by Galloway and Rabinowitz named ‘Hole in 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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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상의 사례<그림 7~11>들은 미디어장치 가상공간을 보다 자유롭 게 향수할 수 있도록 사용자가 보는 위치를 바꾸거나 조절하는 편의성과 상호작용성이 강화되 고 휴대가 가능할 정도로 소형화되어가고 있는 점이다.

즉, 가상공간을 현전시키기 위한 미디어가 처음에는 바로크교회나 파노라파/디오라마에서처 럼 큰 구조물로 나타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들이 대형영화관이나 테마파크의 어트랙션 혹은 만국박람회의 거대전시물로 발전한 반면, 한편으로는 점차 소형화되어 휴대가능한 크기 로 편의성이 추가되며 이에 더하여 상호작용성이 추가되면서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그것은 마치 오늘날의 VR이 초기에 선보였던 CAVE(Cave Automatic Virtual Environment) 등으로 대표되는 큰 스케일로 제작되는 사례보다는 데스크탑(desktop)이거나 팜탑(palmtop) 등의 형태로 일상적 편의성이 강조되고 있는 현실과 유사하다.

그리고 여기서 또 한가지 주목되는 점은 <그림 11>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사용자는 상자 속의 가상공간에 몰입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현실에서의 다른 형태의 환영에 몰입하고 있는, 즉 이중적 감각의 상태를 즐기고 있는 점이다. 이는 전술한 <그림 2~4>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관객이 실재하는 현실의 풍경을 카메라옵스큐라 박스 안에 비친 영상(影像)22)으로 감상하며, 하나의 실재에 대한 이중의 시선에 몰입하는 심리상태와 닮았다고 할 수 있다.

21) 이와 같은 장치들의 발전과정에 대해서는 전술한 C. W. 쩨람 등의 연구에서 다루고 있으므로 본고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22) 이 경우에는 단지 pinhole을 통해 실내로 들어온 상(像)이므로, 기계적 장치에 의해 만들어진 ‘映像’과 구분하여 ‘影像’이라고 표 기한다.

<그림 7> Samuel van Hoogstraten(1627-78) 의 원근법 상자(perspective boxes) 상자의 구 멍으로 보면, 데덜란드민가의 내부풍경이 입체적 으로 보인다.

<그림 9> Antique Victorian Alabaster Peep Egg. 19세기 후반.

<그림 8> Gainsborough Show box, 18세기 후반. 유리에 그려 진 그림 뒤쪽에 촛불 혹은 외광 (外光)조명을 배치해서 밝고 선 명한 풍경을 감상하도록 했다.

<그림 10> 19세기 후반 런던의 템즈강 터널을 가상 체험할 수 있는 peepshow장치. 눈높이를 달리할 수도 있고, 접는 방식으로 제작되어 있으므로 앞뒤로 위치 를 조작하면서 감상이 가능하다.

<그림 11> 마치 뮤토스코프(mutoscope) 처럼 손잡이를 돌리며 peepshow장치를 감상하는 인물을 그린 우편엽서(1900년 경). 이 남성사용자들이 이 행위를 통해 성적만족으로 얻고 있는 것처럼 묘사되 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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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마치는 말

시네마토그래프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 가상공간을 현전시키는 미디어장치는 매우 풍부한 생 태계를 이루고 있었지만, 시네마토그래프가 세상에 나온 후에 그것들은 대부분 대중의 관심에 서 멀어지고23) 20세기는 영화의 세기가 되었다. 그리고 비디오, CG, VR 등 정보기술이 가상 공간을 현전시키고 향수하는 방식을 더욱 다양하게 확장하고 진화시켜왔다. 그러나 가상공간 을 현전시키는 기술이 선원근법으로부터 완전영화=궁극의 VR로 단선적인 진화의 노선으로 나아가지 않고, 입체사진, 입체영화, 홀로그램, 3DTV의 유행과 쇠락한 역사에서 보듯 완벽한 몰입이라는 목표점을 향하다가 다시 다른 어떤 지점으로 관심이 몰렸던 사실에서 우리는 가상 (공간)과 현실(공간)은 이분법적으로 분리되지도 극복되지도 않고 함께 존재하면서 생활을 위한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돌이켜 보자면 관객을 하나의 통일된 감각환경에 빠트리겠다는 몰입지향성 즉 완전영화의 신 화는 ‘신의 집’을 완성하고자 했던 교회에서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본고에서 행한 연구는 구체적인 미디어장치들을 포함하면서도 나아가(교회와 같은 건축물에서 보듯이) ‘감상자를 몰입시키는 하나의 체계로서 성립된 미디어’라는 새로운 지평에서 가상공간이 어떻게 현전되 고 향수되는지를 살펴보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건축적 peepshow와 같은 휴대가능한 소형장 치로 발전했고, 그 가상공간을 감상하는 감상자의 의식은 ‘완전몰입’에서 이중적 의식상태로 진화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문명의 거의 모든 것이 최초에는 뇌(腦)에서 시작되었듯이, 가상성은 현재화의 무한한 원천이기도 하다. 지난 세기를 거쳐 지금에 이르는 동안 현실과 가상의 의미에 대한 질문은 이미 진부한 논의가 되었다. 디지털 문화가 우리의 삶에 깊숙이 자리하면서 현실과 가상의 세계는 더 이상 낯설거나 서로 반대되는 대립의 개념이 아니게 되었으며, 오히려 두 세계가 더욱 단단하게 얽힘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미디어의 진화가 결국은 인간의 삶을 통째로 디지털공간으로 옮겨놓을 것이라거나, 시뮬라시옹이 현실을 잠식할 것이라는 가정은 불필요한 것이라고 보인다. 우리는 이미 가상공 간이 현실공간과 대등한 무게를 지닌 세계에 살고 있으며, 가상과 현실이 어떤 식으로든 연결 된 상태에서 공간과 시간의 기반으로 하는 활동이 가능해졌다는 점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조형활동의 측면에서 보자면 가상공간과 현실공간을 어떤 식으로 조합할 것인가에 따라, 우리 가 얼마나 다양한 리얼리티를 접할 수 있을 것인지 결정될 수 있을 것이므로, 가상현실, 증강현 실, 복합현실, 증강가상, 합성현실 등 복잡한 명칭이 시사하는 만큼이나 다양한 방향으로 진화 되어가는 우리 시대의 리얼리티에 대한 보다 정교한 시선을 확보하기 위한 지평을 마련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서 미디어고고학적 접근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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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상영을 시작한 레이노의 애니메이션은 파리에서 가장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하였으나, 1895년 시네마토그래프가 출현한 이후 관객이 급감하여 1900년에 상영을 중지하였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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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