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부족하면 몸도 시들‐ 감기₩요로결석₩변비 위험 높아져
깨끗한 물, 건강에 좋은 물, 병 치료하 는 물?
물이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생각 은 인간의 역사만큼 오래됐다. 세계 어느 곳 을 가든 신비한 물3 약수(藥水)3 젊음을 되 찾아 주는 샘물3이 있다. 대개는 그냥 물이지 만, 어떤 물은 물 이상의 뭔가가 있다는 것이 다. 야생동물의 생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
면 동물들도 병에 걸리거나 다쳤을 때 특별한 샘물을 찾 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물 분자의 모양은 온도 등에 따라 달라지는데 그 중 육 각수(六角水)3가 몸에 좋다는 학자의 저서가 나온 적도 있었고, 일본의 한 대체의학 전문가는 물에 음악을 들려 주면 결정(結晶)이 바뀐다는 주장을 내놓아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물의 신비함을 믿고 싶은 이런 욕망은 마케팅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수만 년 전 형성된 빙하가 녹은 물을 담아 한 병에 몇 만원씩에 파는가 하면, 해양심층수, 암반수 등 이런저런 물들이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각종 미네랄이 섞인 건강수(水)3 치료용 물3까지 속속 등장하 고 있다.
수돗물에 대한 우려를 덜어주겠다던 정수기 업체들도 초기에는 깨끗한 물3을 자랑했으나, 요즘은 건강에 좋다 3는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 살찌고 마른 것, 수명의 길고 짧음은 마시는 물에 그 원인이 있다”는 동 의보감의 품수론(品水論)까지 인용되고 있다.
의사들“물은 물일 뿐”
의사들의 입장은 그러나“물은 물일 뿐, 건강에 특별히 좋은 물은 없다”는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유해물질이 없 는 깨끗한 물이 몸에 가장 좋다는 것. 더럽지만 않으면 몸 속에서 다 똑같다는 것이 현대 의학의 정설이다.
이 때문에 이른바 기능성 물 시장이 급성장하는 현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부 탁한 서울대 의대의 한 교수는“물의 의학적 효능이 명 확히 밝혀진 게 뭐가 있나. 물을 판매하려는 사람들의 장 삿속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단단히 속고 있다”는 강한 비 판을 내놓았다. 물이 몸 속에서 생명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맞지만, 더 좋은 물3이 건강에 더 많은 역할을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설명 이다. 어느 쪽이 맞는 것일까?
좋은 물도 기준이 있다?
의학적으로 좋은 물의 첫째 조건은 인체에 해로운 병 원균이 없고 깨끗한 것3이다. 또 항산화 물질의 활동을 돕 고 음식의 분해, 소화, 흡수를 높이는 약 알칼리성(PH 7.5 정도)이 산성화된 물보다 좋은 것으로 본다. 몸 속에 들어 가서 수분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다 는 것.
좀 구체적인 풀이도 있다. 한국수 자원공사는 좋은 물을 이렇게 규정한다.
e무색₩무취 e온도 8~14도 ePH 중성 또
는 6~7의 약알칼리성 e과망간산칼륨 함유량 2㎎/L 이 하 e염소이온 12㎎/L 이하 e경도(硬度₩물에 칼슘과 마그네슘이 함유돼 있는 정도: 물의 세기) 100㎎/L 이하 e증발 잔류물 40~100㎎/L 이하 e유해성분(중금속, 농 약 등)이 없을 것 e미네랄 성분이 100㎎/L 정도 함유된 것 등이다.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있긴 하지만 좋은 물의 공통점 은 유해물질이 없고 깨끗해야 하며, 약알칼리 성질 등이 다. 물 속 미네랄 성분의 있고 없고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르다.
미네랄 성분 많으면 좋은 물인가
물 논쟁의 핵심이 물 속에 어떤 성분이 들어 있느냐 하 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미네랄이다. 해양심층수 등 기능성 물을 시판 중인 기업들은“미네랄 성분이 충분히 포함된 것이 좋은 물”이라고 주장한다. 물을 마시면서 아 울러 인체에 필수적인 미네랄까지 공급해주기 때문이란 것이다. 칼슘, 마그네슘 등 몸에 꼭 필요한 미네랄은 체 내 생성이 안 되므로 식품을 통해 섭취해야 하는데, 부족 한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은 미네랄을 물을 통해 손쉽 게 보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의료계 등에서는 물에 함유된 미네랄은 영양 분으로 사용하기에 부적합한 무기 미네랄로 인체에 들 어와도 흡수가 잘 되지 않으므로 굳이 미네랄이 많이 든 물을 마실 필요는 없다고 지적한다. 물만 마셔도 미네랄 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는 주장은 대부분 과장됐다는 설명이다.
▶D2면에 계속 글=임형균 헬스조선 기자hyim@chosun.com
정시욱 헬스조선 기자sujung@chosun.com
도움말=안윤옥 서울대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박샛별 아주대의대 가정의학과 교수, 송미연 경희대 동서신의학 병원 한방재활의학과 교수, 김현원 연세대의대 생화학교 실 교수, 유제강 웅진코웨이 박사
중소기업 사장인 김모(45)씨는 작년부터 물 맛에 푹 빠졌다. 김씨의 사무실과 집 냉장고엔 노르웨 이 탄산수, 자작나무 수액, 해양심층수라고 적힌 생수들 로 가득하다. 백화점 생수매장에서 일주일에 70~80병씩, 매주 20만~30만원을 물 사는데 쓴다. 물만 잘 마시면 암 을 비롯한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외국 서적을 접한 후 부터다. 물과 사랑에 빠진 김씨는 지난 8년간 하루도 빠 지지 않고 복용하던 비타민, 홍삼도 끊어버렸다.
그는“주위에서 명품 물 중독자라고 비아냥대지만, 물 을 바꾼 뒤 몸이 훨씬 좋아졌다는 것을 느낀다. 아픈 뒤 병원비 내는 것보다 좋은 물로 병을 예방하는 것이 오히 려 낫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15년째 당뇨병을 앓고 있는 이민정(55₩가명)씨.
최근엔 증세가 심해져 시력도 떨어지고, 발이 썩 는 당뇨발 위험성이 높다는 진단까지 받았다.
겁도 나고 무서운 생각까지 들 무렵, 미용실에 들렀다 탁자에 놓인 고혈압₩당뇨병, ○○○이온수로 말끔히 고 칠 수 있다3는 광고 전단지를 본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220만원을 주고 당장 집에 설치했고, 밥 짓고 세수하는 것도 모두 이 물을 이용했다. 그때부터 자가 혈당체크도 안 했고, 약도 먹지 않았다. 약을 끊은 지 20일 후 쇼크로 쓰러진 이씨는 응급실로 실려갔다. 의사는“치료를 위해 의사가 처방한 약보다 효능 검증도 안된 물을 더 믿는 환자가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수만년 빙하 녹은 물, 분자 완벽한 육각수, 수천 미터 해양심층수‐
마시면 건강해질 水 있을까
우리 몸의 70%(성인 기준)가 물이다. 근육의 70~80%, 콩팥의 74%, 간의 69%, 심지어 물이라곤 없어 보이는 뼈 도 22%가 물이다.
입으로 들어온 물은 위 장 간 심장 혈액 세포 혈액 신장 등을 순환한다. 물을 공급 받은 싱싱한3 세포는 혈액과 조직액의 양을 충분히 유지시켜 혈액순환 을 원활하게 하고, 영양소와 산소를 공급한다. 또 물은 몸 속 노폐물을 체외로 배설하는 중요한 역할도 한다. 아울 러 체액의 산성도를 중성 내지 알칼리성으로 유지시키며 체온 조절도 한다.
물이 부족하면 몸은 시들해진다. 몸 속 수분의 4~5%
만 부족해도 갈증이 생기고 피곤함, 근육 감소, 현기증, 집중력 약화 등의 증상이 바로 나타난다. 단식할 때 음식 은 먹지 않아도 비교적 오래 버틸 수 있지만, 물을 마시지 않으면 금방 심각한 상태에 이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몸 속 수분의 10%를 상실하면 심근경색증, 심장마비 위 험이 급증하며 20% 이상 잃어버리면 생명이 위험해진다.
이 정도는 아니라도 물이 부족하면 기관지나 코, 점막 이 건조해져 감기에 잘 걸린다. 소변량이 줄면 요로결석 의 위험성이 증가하며, 심한 구취나 구강건조증, 노화촉 진, 변비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만성적인 수분 부족 증상이 생기면 유해물질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기능이 뚝 떨어져 노폐물이나 발암물질 등이 쌓여 암 등 심각한 질환에 걸릴 위험도 증가한다. 정시욱 헬스조선 기자
물과 신체
조선일보 건강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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