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형이상학 Wk01: 형이상학이란?

N/A
N/A
Protected

Academic year: 2022

Share "형이상학 Wk01: 형이상학이란?"

Copied!
31
0
0

로드 중.... (전체 텍스트 보기)

전체 글

(1)

형이상학

제 1주: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

(2)

범주란 무엇인가?

형이상학의 핵심적 목표는 시물들이 속하는 범주들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확히 무엇 을 뜻하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범주를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범주(category)는 사물들이 그 안에서 분류될 수 있는 최상위의, 혹은 가장 일반적인, 유형이다.

이것이 암시하는 바는 이런 것이다. 형이상학자가 하는 일은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을 취해 그것들을 분류하고 그래서 그것들을 가장 일반적인 유형에 포섭하는 것이다.

(3)

범주란 무엇인가? (계속)

예를 들어 보자.

●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 소크라테스는 포유류다.

● 소크라테스는 동물이다.

명백히, 인간보다는 포유류가, 포유류보다는 동물이 더 일반적인 류(genus)이다.

하지만 동물조차 아마 최상위의 유형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최상위의 유형은 따로 있다:

● 소크라테스는 실체, 즉 이러저러한 속성들을 가질 수 있는 존재이다.

달리 말하자면, 소크라테스는 실체(substance)라는 범주(category)에 속한다.

(4)

범주들의 목록을 정하는 작업 (계속)

범주들의 목록을 정하는 흔한 방법은, 어떤 존재자를 골라서

● 그것은 무엇인가? 또는 그 K는 무엇인가?

라고 계속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앞 슬라이드에서,

● 소크라테스는 무엇인가?

라는 물음을 처음에 던졌다면,

● 그는 인간이다.

(다음 슬라이드에 계속)

(5)

범주들의 목록을 정하는 작업 (계속)

라는 답을 얻었을 것이다. 계속하여,

● "그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그는 포유류이다"라는 답을

● "그 포유류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그것은 동물이다"

등의 답들을 계속 얻을 수 있었을 것이며, 결과적으로

● 그것은 실체이다.

라는 답을 얻은 이후로는 더 일반적인 답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다다른 유형이 바로 범주이다.

(6)

범주들의 목록을 정하는 작업 (계속)

그것은 무엇인가?

그는 인간이다.

그 인간은 무엇인가?

그는

포유류이다.

그 포유류는 무엇인가?

그는 실체이다.

그 K는 무엇인가?

더 일반적 유형이 없다!

(7)

범주들의 목록을 정하는 작업 (계속)

형이상학자들이 범주들의 완전한 목록을 만들기 원한다면, 소크라테스의 예에서 사용된 질문-대답 과정을 다른 대상에도 적용하기만 하면 될 것처럼 보인다.

형이상학자들이 사물들 사이의 차이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표본들을 고른다면 새롭고 서로 다른 범주들에 도달할 것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존재자들을 표본으로 고른다고 하자:

문재인 대통령, 3리터, 빨강, 스승-제자, 샹제리제 거리, 1980년

이들 존재자들로부터 앞의 질문-대답 과정을 통해서 다다르게 될 최상위 유형들은 무엇일까?

(8)

범주들의 목록을 정하는 작업 (계속)

불행히도 이것은 형이상학자들의 작업에 대한 설명으로서는 몇 가지 결점들을 안고 있다. 결점1: 이것은 형이상학을 아주 지루한 작업으로 만들어버린다. 범주들의

목록을 이런 식으로 작성한다는 것은 “그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일반적 답들을 발견해 내는 기계적 과정일 뿐이다.

결점2: 위의 설명은 형이상학 내에서 어떻게 흥미로운 불일치와 논쟁이 있을 수 있었는지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것에 따르면 만약 두 형이상학자들이 서로 다른 범주 목록을 제시한다면, 그것은 단지 한 명이 매우 거칠고도 명백한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일 것이며, 그런 실수는 쉽고 빠르게 정정될 것이다. 그러나 사실로 보자면, 지속적인 논쟁과 대립은 형이상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들이다.

(9)

존재 문제: 어떤 범주의 존재자들이 존재하는가?

특히, 범주들에 대한 형이상학적 탐구는 때때로 비단 우리의 언어와 상식을 정리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실제 세계에 관련된 문제들로 넘어갈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이른바 존재문제이다.

한 가지 예로서, 재주넘기를 한번 생각해 보자. “재주넘기”는 한 단어로서, 한국어 화자들 대다수는 이 용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는 이 용어를 적용하며, 또 다른 어떤 상황에서는 이 용어를 적용하지 않는다. 즉

“재주넘기"라는 말을 포함하는 참된 문장에 의해서 서술되는 객관적 상황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10)

존재 문제: 어떤 범주의 존재자들이 존재하는가? (계)

이제 우리는 “재주넘기”라는 말을 사용하여 서술되는 사실들에 대해 완전히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는 두 철학자들을 상상할 수 있다.

철학자 A는 재주넘기라는 사물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재주넘기라는 것은 인간의 신체가 완전히 한 바퀴 도는 것이다. 이러한 회전은 여러 번 일어났으므로 여러번의 재주넘기가 존재했다. 만일, 재주넘기와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우 리는 다음 주장이 어떻게 참일 수 있는지 설명할 방법이 없다:

(1) 조지는 목요일 오후 3시에서 4시 사이에 재주넘기를 다섯 번 했다.

(11)

존재 문제: 어떤 범주의 존재자들이 존재하는가? (계)

그러나 철학자 B는 이에 반대한다. 그는 재주넘기 같은 것은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사람들 혹은 어떤 동물들이 적절한 방식으로 회전함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이 사실로부터 특별한 부류의 존재자, 즉 재주넘기가 존재한다는 것이 따라 나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1)과 비슷한 많은 주장들이 참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이로부터 특별한 부류의 존재자들이 있다는 결론이 따라나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1)을 참이게끔 하는 것은 특정 시간 동안 조지가 다섯 번 회전했다는 것 밖에 없다.

(12)

존재 문제: 어떤 범주의 존재자들이 존재하는가? (계)

A와 B의 견해는 어디에서 충돌하는가? 다음 문제들과 관련해 그들의 견해가 충돌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 “재주넘기"라는 용어의 올바른 용법

● “재주넘기"라는 용어를 포함한 문장들의 참거짓

A와 B는 존재하는 존재자들의 목록 속에 재주넘기가 들어가야 하는지, 들어가지 말아야 하는지와 관련해 의견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철학자나 철학적

공동체가 존재한다고 인정하는 존재자들, 혹은 그것들의 범주들의 목록을 "존재론"

("ontology")이라고 부른다.

(13)

존재 문제: 어떤 범주의 존재자들이 존재하는가? (계)

한 가지 주의해야 될 점은, A와 B가 서로 다른 존재론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일상생활에서는 그들은 거의 비슷하게 행동하고 말하리라는 것이다. B조차도,

(2) 조지가 목요일 오후 3시에서 4시까지 행한 다섯 번의 재주넘기들이 존재한다

고 때때로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B가, 철학자로서 진지하게, 재주넘기들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는 (2)보다는 (1)을 말했어야 하지만, 때때로 그는 마치 재주넘기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슨하게 말하기도 한다.

결국 어떤 철학자나 철학적 공동체의 존재론이란, 그 또는 그들이 존재한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존재자들의 목록인 것이다.

(14)

존재 문제: 어떤 범주의 존재자들이 존재하는가? (계)

재주넘기라는 주제는, 진지한 형이상학자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너무 특수하고 너무 지엽적이다. 그러나 A와 B 사이의 의견 불일치는 아주 쉽게 일반화될 수 있다.

● 명백히 A는 사건(event)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존재자들이 우리들의 존재론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믿으며, 재주넘기의 존재에 대한 A의 믿음은 그의 더

일반적인 믿음에서 기인한 것이다.

● B가 재주넘기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그가 재주넘기를 특별히 싫어해서가 아니다. B는 다음과 같은 더 일반적인 철학적 신념 때문에 재주넘기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존재론은 사건들을 포함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논쟁은 이른바 “존재 문제"를 다루며, 한 가지 중요한 유형의 형이상학적 문제이다.

(15)

본성 문제: 범주 C의 본성은 무언가?

형이상학자들이 언제나 “C가 존재하는가?”라는 형태의 질문에 대해서만 서로 대립하는 것은 아니다. C의 존재자들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그것들의 본성, 특히 다른 범주 C’의 존재자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형이상학자들이 의견을 달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다음 논쟁을 생각해 보자.

● 심신동일론자들은 분노, 사랑, 믿음 등의 심적 상태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물론 심신이원론자들도 그러하다.

● 심신동일론자와 심신이원론자 사이의 의견 차이는, 그런 심적 상태들이 두뇌생리적 상태들과 동일한지 아니면 구별되는지에 있다.

이것은 심적 상태의 본성에 대한 논쟁이다. 일반적으로 "C에 속하는 존재자들의 본성은 무엇인가?"라는 형태의 철학적 문제를 본성 문제라고 한다.

(16)

중간정리

정리하자면:

형이상학의 핵심 목표는 존재자들의 범주들, 즉 최상위의 유형들을 파악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반복된 문답법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형이상학이 단지 철학자 스스로와의 문답을 통해서 범주들의 목록을 확정하는 작업일 뿐이라면, 그것은 지루한 분류학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형이상학은 실재에 대한 야심찬 작업들을 시도하는데, 그것은

존재질문, 즉 "어떤 범주 C의 존재자들이 진정으로 존재하는가"라는 물음과 본성질문, 즉 "범주 C에 속하는 존재자들의 본성은 무엇인가라"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이다. 이 물음들의 답을 알아내는 것은 실재에 대한 지식의 획득이다.

(17)

역사적 고찰1: 아리스토텔레스

지금까지 오늘날 철학자들이 형이상학을 어떤 분야로 인식하는지 논했다. 과거에는 어땠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책 『형이상학』에서--이 책의 제목에서 그 단어가 최초로 쓰였다--자신이 수행하는 작업을 두 가지 방식으로 묘사했다:

1. 제 1원인에 대한 지식.

2. 존재로서의 존재에 대한 탐구.

이 두 가지 묘사 가운데, 두번째가 현대인들의 형이상학에 대한 관점과 유사하다.

왜 그런지 알려면 존재로서 존재를 탐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논할 필요가 있다.

(아주 쉽다)

(18)

역사적 고찰1: 존재로서의 존재에 대한 탐구

다시 소크라테스를 생각해 보자.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학자들이 그 인물을 탐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 인류학자는 인류의 일원으로서 그를 탐구할 수 있고,

● 포유류 전문가는 포유류로서의 그를 탐구할 수 있고,

● 동물학자는 동물로서의 그를 탐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더 일반적으로,

● 존재로서의 소크라테스를 탐구할 수 있고, 그 탐구자는 형이상학자 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19)

역사적 고찰1: 제 1원인에 대한 탐구

반면 형이상학을 제1원인에 대한 탐구로 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은 오늘날의 철학자들에게는 매우 생경한 것이다.

여기서 제1원인이란 모든 것의 궁극적인 원인을 말한다. 그 당시의 세계관에 의하면 지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궁극적으로 별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결과이며, 다시 별을 움직이는 비물질적인 제1원인이 있는데 이들을 신들(gods) 이라고 한다. (고대 희랍이 다신교 사회였음을 잊지 말라.)

즉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제1원인에 대한 탐구로 규정지은

형이상학은 오늘날의 분류법에 따르면 오히려 종교철학에 가까운 것이다. 이것은 특정한 주제, 즉 신에 대한 학문이므로 일종의 분과학문으로 여겨진다.

(20)

역사적 고찰2: 중세와 대륙합리론

형이상학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두 가지 규정들이 매우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둘이 궁극적으로 같은 학문을 규정한다고 믿었다.

중세 철학자들도 형이상학에 대한 이러한 이중적 개념화가 단일 분과 내에서 실 현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 분과는 실재의 범주적 구조를 기술하는 동시에

신이라는 실체의 존재와 본성을 확립하려는 목적을 가진다.

17-18세기 합리론자들도 형이상학은 존재하는 사물들의 가장 일반적인 유형/종의 성격을 규정하는 학문이며, 또한 신이라는 실체와 그의 인과적 역할을 규명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여기에 더해서 정신과 물질 사이의 구분, 인간 안의 정신과 물질 사이의 관계, 자유의지의 본성과 범위 등 주제들도 다루려 했다.

(21)

역사적 고찰2: 중세와 대륙합리론 (계속)

그럼에도 합리론자들은 형이상학에 어떤 통일성을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학문의 일차적 주제는 존재(existence)이다. 먼저 우리는 존재를 그냥 존재로서 탐구할 수 있는데, 이런 탐구를 “일반형이상학”이라고 부른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존재로서의 존재에 대한 탐구"라고 불렀던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존재를 더 세분화된 관점에서도 탐구할 수 있는데, 이를

“특수형이상학" 이라고 부른다. 여기에는 다음 분야들이 포함된다:

● 우주론: 변화하는 사물들 속에서 발견되는 존재 탐구.

이성적 심리학: 합리적 존재들 안에서 발견되는 존재 탐구.

● 자연신학: 신 안에 드러나는 존재 탐구. (=제1원인에 대한 탐구.)

(22)

역사적 고찰2: 중세와 대륙합리론 (계속)

그러나 합리주의 형이상학과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은 그 주제만 다른 것이

아니다. 형이상학적 주제들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접근법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범주들에 대해 논할 때 아리스토텔레스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상식을 저버리지 않고자 노력했다. 그의 존재론에 포함되어 있는 범주들은 우리의 상식과 맞닿아 있는 친숙한 사물들이다.

예) 개체로서의 말들(horses), 개체로서의 인간들.

(23)

역사적 고찰2: 중세와 대륙합리론 (계속)

반면 합리주의자들은 매우 반상식적인 범주들을 거리낌없이 도입했다.

예) 라이프니쯔의 단자들(monads) => 왜 반상식적인가?

이들의 이러한 대담한 태도는 영국 경험론자들의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24)

역사적 고찰3: 칸트

칸트에 의하면, 우리 인간들의 지식은 두 요인들의 상호 작용에 의해 가능하다:

● 인간의 인지 기능에 부여된 선천적 개념들

● 감각 경험에 주어지는 아직 가공되지 않은 자료들

그런데 형이상학은 감각 경험이 그 답을 제공할 수 없는 물음들, 예를 들면

● 영혼의 불멸성 여부,

● 신의 존재 여부,

● 우리들의 자유의지 소유 여부

등에 답하고자 한다. 형이상학은 이러한 주제들에 대한 지식을 우리에게 약속한다.

(25)

역사적 고찰3: 칸트 (계속)

하지만 우리들이 지식을 획득하는 방식은 실체, 인과성, 사건, …

등의 선천적 개념들을 감각자료에 적용할 것을 요구하고, 결과적으로 그 선천적 개념들에 의해서 가공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세계--즉, 물자체의 세계--에 대한 지식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다음의 반복된 경험을 생각해 보자:

불이 난 직후 열이 발생했다. 불이 난 직후 열이 발생했다. ...

우리들은 불이 원인이 되어 열이 결과로서 발생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인과 개념을 불과 열에 적용하기 앞서 세계 자체는 어떠했는지 묻는 것은 부질없다.

(26)

역사적 고찰3: 칸트 (계속)

더군다나 앞에 봤던 형이상학의 근본적 물음들, 즉

● 영혼의 불멸성 여부,

● 신의 존재 여부,

● 우리들의 자유의지 소유 여부

등은 위의 선천적 개념들의 적용범위를 뛰어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특정한 사건의 원인, 예를 들어 열의 원인으로서 불은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건들의 공통적 원인으로서 신을 생각하는 것은 인과 개념의 적용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다른 두 물음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유로, 그 대답들을 아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형이상학에는 진정한 지식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27)

역사적 고찰3: 칸트 (계속)

전통 형이상학의 이러한 측면을 드러내기 위해 칸트는 전통 형이상학을 초월형이상학(transcendent metaphysics)

이라고 부른다. 반면 자신의 형이상학은 비판형이상학(critical metaphysics)

이라 부르며 초월 형이상학과 대비시킨다. 초월 형이상학은 감각 경험을

넘어서는/초월하는 실재의 성격을 규정하고자 하지만 비판 형이상학은 자신의 임무를 우리의 사유와 지식의 가장 일반적인 특징들을 묘사하는 데 둔다.

초월형이상학은 인식 능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무리한 기획이지만, 비판형이상학은 완전히 정당한 기획이다.

(28)

요약

● 거칠게 말해서, 오늘날의 형이상학은 범주들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다.

● 범주란 최상위의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는 인간이기도, 포유류이기도, 동물이기도 하지만, 그가 속하는 가장 일반적인 유형은 실체 (substance; ousia)이며, 이것이 바로 범주의 한 예이다.

● 범주들의 목록을 정하는 흔한 방법은 그것은 무엇인가?

라고 계속 묻는 것이다. 더 이상 더 일반적인 대답을 찾을 수 없으면, 마지막에 얻은 대답이 주어진 표본의 범주이다.

● 다양한 표본을 가지고 위의 문답법을 실행함으로써 범주들의 완전한 목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은 형이상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한 가지 규정이다.

(29)

요약 (계속)

● 하지만 형이상학자들은 보통 더 야심적인 문제들을 풀려고 노력한다.

● 그 중 이른바 존재문제는 어떤 범주의 존재자들이 우리들의 존재론(ontology), 즉 공식적인 존재하는 것들의 목록에 포함되느냐 하는 것이다.

● 또 하나 문제는 이른바 본성문제이다. 범주 C의 존재자들이 있다고 할 때, 그것들의 본성은 무엇이며 특히 다른 범주의 존재자들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탐구한다.

(예를 들어, 심적 사건들은 신경생리적 사건들에 지나지 않는가 아니면 후자로부터 구별되는가?)

(30)

요약 (계속)

● 역사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을

제1원인에 대한 탐구

존재로서의 존재에 대한 탐구

로 규정했으며, 전자는 오늘날의 종교철학에 더 가깝고, 후자가 오늘날의 형이상학에 해당한다.

● 중세철학자들과 대륙합리론자들은 대체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 대한 이중적 규정을 받아들였지만, 합리론자들은 일반형이상학에 더하여

특수형이상학을 도입하였다.

(31)

요약 (계속)

● 일반형이상학은 존재를 일반적으로 탐구하는 반면, 특수형이상학은 특정한 영역에서 나타나는 존재를 탐구한다

우주론: 변화 속에서 나타나는 존재에 대한 탐구.

합리적 심리학: 합리적 존재 속에서 나타나는 존재에 대한 탐구.

자연신학: 신 안에 드러나는 존재 탐구. (=아리스토텔레스가 제1원인에 대한 탐구로 규정한 것.)

● 칸트는 이런 대륙합리론의 기획을 우리 인식능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으로 보고 초월적 형이상학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러한 형이상학에는 지식이 있을 수 없다고 보았다.

● 반면 자신의 비판형이상학은 우리의 사유와 지식의 가장 일반적 특징을 묘사하는 것으로 규정했으며, 완전히 정당한 기획으로 간주했다.

참조

관련 문서

논변이 타당하려면 그 논변의 전제들이 참인 상상가능한 모든 상황하에서 결론이 참이어야 하고 또 그러면

이는 지금껏 한반도를 지진 안전지대로 생각하고 지진으로 인한 피해 가능성에 대해 무심하게 넘긴 우리의 상식을 완전히 변화시킨 경험이었습니다.. 다행히 이번

특히 곤충체험장과 연계하여 지역 축제 중 하나인 시흥갯골축제에서 곤충 체험 부스를 운영하고, 밀웜을 포함한 다양한 곤충 음식을 직접 만들 고 시식할

패러디는, 특히 패러디의 상호텍스트성은 과거를 폐기하는 욕망이 아니라 당대 세계에 적절한 창조로 과거를 개변하려는 욕망을 함축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준오는

우리 문화에 대한 선교사들의 부정적 시각은 우리의 종교에 대해서도 동 일하다. 18) 특히 미국 출신 선교사들은 미국에서 생겨난 보수주의․경건주 의․근본주의 선교

특히 우리의 현실은 국어 영어 수학과 같은 주요 과목들이 입시에서 강조 , , 되면서 음악교육이 더욱 침체되고 위축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통합교육과 관련된 교사의 인식에 대한 연구에서는 장애유아 및 초등학교 교사 들에 대한 연구가 많았으며, 고등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한 연구논문은

그는 현재 유가 인문주의 연구의 취약점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그 이유를 “유가 인문주의에 대한 탐구는 대체로 서구 (특히 르네상스로부터의 근대)인문주의와 유사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