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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고한 안보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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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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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기동부보훈지청

▶주소용인시 기흥구 용구대로 2354(마북동 360-9) 한국전력기술(주) 용인사옥 1층

▶대표 전화번호 031-289-2300

▶찾아오시는 길분당선 구성역 2번출구 도보 10분 일반버스 27, 68, 77, 101, 116-1, 116-3 등 초록버스 26-2, 30, 34, 34-2, 35, 36, 39-3 등 빨강버스 1241, 1251, 5500-1

충남동부보훈지청

▶주소천안시 동남구 원성1길 19(원성동) 한국농어촌공사 천안지사 1층, 3층

▶대표 전화번호 041-589-4900

▶찾아오시는 길 천안종합버스터미널에서 1, 12, 13, 22, 71번 승차 후 3번째 정류장 천안역에서 2, 72, 100, 110, 200번 버스 승차 후 3번째 정류장

※ 신설 지청으로 관할이 변경될 예정인 보훈대상자분들께는 3월 중 개별적으로 안내드릴 예정입니다.

경기동부·충남동부보훈지청이 새롭게 문을 엽니다

3월 2일, 신설 지청 업무 개시. 보훈 민원 서비스, 멀리까지 갈 필요 없이 가까운 지청에서 해결하세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1일 “확고 한 안보태세를 유지하면서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 을 포기할 수밖에 없도록 해나갈 것”이 라며 “정부는 굳건한 한미 연합방위태 세를 토대로 북한의 어떠한 도발과 위협 도 단호히 응징하겠다”고 말했다.

황 권한대행은 이날 오전 세종문화회 관에서 열린 제98주년 3·1절 기념식 기 념사를 통해 “정부는 무도한 북한 정권 의 도발에 강력 대응해 나가겠다”며 이 같이 강조했다.

황 권한대행은 이날 기념사에서 “3·1 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오늘, 우리는 당면하고 있는 국가적 위기상황 을 극복하는 데 더욱 진력하겠다는 결의 를 굳게 다짐하게 된다”고 말하면서 “사 드 배치 등 한미연합의 억제 및 방어능 력을 배가하여 북한 스스로 핵무기가 소 용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나갈 것”이라

고 말했다.

통일 기반 구축과 관련해서도 황 권한 대행은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통일국 가를 이루는 것은 북핵문제를 근본적으 로 해결하고 민족의 재도약을 실현할 수 있는 최선의 해법”이라고 전제하고 “북 한의 실질적인 변화 없이 우리가 추구하 는 통일은 이룰 수 없으므로 이를 위해 북한 주민들이 외부세계를 알고 시대흐 름을 인식하도록 국제사회와 함께 적극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일문제와 관련, 황 권한대행은 “대 한민국과 일본 두 나라 간 미래지향적 동반자 관계의 출발점이자 필요조건은 올바른 역사인식과 미래세대 교육”이라 며 “일본 정부도 역사를 있는 그대로 직 시하면서 미래세대 교육과 과거사의 과 오를 반성하는 데 진정성 있고 일관성 있게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 권한대행은 이어 “선열들은 나라마 저 빼앗겼던 캄캄한 암흑기에도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고 조국 광복의 미래를 위해 분연히 일어섰으며 그것은 오직 나 라사랑의 일념”이라고 말하고 “선열들

의 이러한 뜻을 받들기 위해서는 화합과 통합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라고 강조 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는 최근의 일련의 사태로 국론이 분열되고 사회 갈등이 확 대되고 있으며 서로를 반목·질시하는 현 상까지 일어나고 있다”고 진단하고 “이 제는 헌법의 정신과 가치를 존중하는 바 탕위에서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조 화와 균형을 이뤄나가는 노력이 필요하 다”고 밝혔다.

2017년 3월 1일 수요일 (월간) 국가보훈처 ☎1577-0606

“확고한 안보태세 … 북 핵 · 미사일 포기토록 할 것”

“일본 과거사 반성, 진정성 있고 일관성 있게 해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3·1절 기념사

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98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 행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헌법정신 가치 존중하고 국민화합 국론통일 필요

3 정책

국립묘지 장·사병 통합 안장 6 기획

호국보훈 정신과 국민통합

9 교육강좌

3·1운동의 위대성 11아름다운 인생 속초 동명항

(2)

지난달 8일 서울시 종로구 YMCA 대강당에서 3·1운동의 도화선이 되고 항일 독립운동 의 불씨를 당긴 ‘2·8독립선언 선포 제98주년 기념식’이 개최 됐다.

한국독립유공자협회(회장 승 병일)가 주관하는 이날 기념식 에는 이경근 서울지방보훈청 장, 광복회원, 학생 등 300여 명 이 참석한 가운데 학생대표가 2·8독립선언문과 결의문을 낭 독하고, 기념사·축사 등이 이어 졌다.

한편 같은 날 오전 일본 도쿄 한국문화관에서도 재일본 한 국YMCA(이사장 이청길)주관 으로 기념식이 개최됐다.

기념식에는 정부대표 권율정 국립대전현충원장과 박유철

광복회장, 이준규 주일대사, 광 복회원, 교민 등 250여 명이 참 석했다.

2·8독립선언은 항일 학생독 립운동의 최고봉으로 재일 한인 유학생들이 임시로 결성한 ‘조 선청년독립단’ 명의로 최팔용, 송계백, 김도연, 김상덕 선생 등 11명의 대표위원이 서명하고 재일 한인유학생 400여 명이 참 석한 가운데 1919년 2월 8일 동 경 한복판에서 조국독립을 세 계만방에 선포한 사건이다.

신설 경기동부보훈지청과 충 남동부보훈지청이 2일부터 새 로 마련된 청사에서 본격 업무 에 들어갔다.

이로써 그동안 5개 지방청과

19개 지청 등 24개였던 지방보 훈관서 체계가 이날 2개 지방보 훈지청이 추가됨으로써 26개 기관 체계로 확대 운영된다.

지역 국가유공자들의 현안이 었던 지청 신설은 지난해 하반 기 정부부처 내 업무협의를 끝 낸데 이어 올 초 국가보훈처 직

제 개정이 끝나 3개월 간의 실 무작업 끝에 이날 업무가 시작 된 것이다.

신설 경기동부보훈지청은 경 기도 7개 기초자치단체(성남 하 남 광주 용인 안성 이천 여주)를 관할하고, 충남동부보훈지청은 세종특별자치시와 충청남도 3

개 기초자치단체(천안 공주 아 산)를 관할하게 된다.

국가보훈처는 이번 지청 신 설과 관련해 “국가유공자의 명 예로운 삶 보장과 함께 전 국민 대상 나라사랑교육, 제대군인 일자리 5만개 확보를 통한 사회 복귀 지원, 미국을 비롯한 유엔

참전국 등과의 보훈외교 등 점 차 확대되고 있는 보훈행정 역 할의 중요성 등이 반영된 것”이 라며 “앞으로 국가유공자 예우 와 국민들의 호국의식 함양 등 선진보훈행정 실현을 위해 최 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오는 6일 박승춘 국가보훈처장과 지역 국가유공자 등이 참석한 가운 데 지청 개청 행사를 개최할 계 획이다.

발행일 2017년 3월 1일 발행처 국가보훈처 발행인 박승춘 대표전화(정책·민원·상담) 1577-0606 편집·배포 044)868-0745·6

(우)30113세종특별자치시 도움4로 9

본지에 수록된 내용은 국가보훈처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창간 1963년 9월 19일 홈페이지 www.narasarang.kr

6일 각각 개청 행사 지역밀착형 보훈행정

경기동부·충남동부보훈지청 2일 업무 개시

제862호 2017년 3월 1일 수요일 (월간)

2

종합

서울·도쿄에서 동시에

2·8독립선언 선포 제98주년 기념식 열려

올해 나라사랑 특성화 대학 으로 서울대(자유전공학부), 한 국교통대(항공운항학과), 대구 대(기초교육대학)가 선정됐다.

나라사랑 특성화 대학은 대 학교 현장에서 나라사랑 교육 을 활성화시켜 대학생의 올바 른 국가관 정립과 애국심·안보 의식·호국정신 함양을 도모하 기 위해 운영된다.

매년 일반 4년제 대학을 대상 으로 공모를 통해 3개 대학을 선정하는데 지난해 첫 특성화 대학으로 영남대(군사학과), 원 광대(군사학과), 충남대(군사학 부)를 선정한 바 있다.

이번에 선정된 3개 대학은 각

각 정부로부터 사업비 7,000만 원을 지원받아 국가안보, 국가 정체성 함양을 위한 강좌 개설 과 세미나, 체험교육 등을 운영 하고 대학 현장에 적용 가능한 체계화된 교육프로그램 연구·

개발 등을 추진한다.

한편 서울대는 이번 사업을 통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스토 리발굴 사업, 역사탐방 사업, 독 립운동사 독서캠프 등을 운영키 로 했다. 국립대 가운데 유일하 게 공군 ROTC를 운영하고 있 는 한국교통대도 명사초청 강좌 개설과 세미나 개최, 현장학습 등의 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대구대는 대구경북의 나라사 랑 전통을 호국·통일·선비문화 로 분류하고 교육과정으로 구체 화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나라사랑 특성화 대학 선정

서울대·한국교통대·

대구대 3개 대학

지난달 8일 오전 일본 동경 소재 한국문화관에서 열린 2·8독립선언 선포 98주년 기념식 행사 참석자들이 만세 삼창을 외치고 있다.

대학원에 재학 중인 국가유공자 등 본인과 배우자(교육지원대상자에 한함), 특수학교에 재학 중인 교육지원 대상자에게 다음과 같이 보훈장학금을 지원하오니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 공고문 및 신청 서식은 국가보훈처 홈페이지(www.

mpva.go.kr) 게시

메인화면에서 보훈지원 〉지원안내 〉 교육지원

대학원 장학

○ 신청대상 교육지원대상자로서 대학원에 재학하 는 국가유공자 본인 또는 전몰·순직자의 배우자, 고엽제후유의증환자(수당대상자), 5·18 민주유공 자 또는 사망·행불자의 배우자, 특수임무유공자 또는 사망·행불자의 배우자

※ 신청대상과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국가보훈처 홈페이지 참조

○ 신청자격대학원 석·박사과정(연구과정·해외유학 제외) 재학자로서 직전학기 성적이 90점 이상인 자

○ 신청 비대상

- (대학원, 특수학교장학) 지원대상자, 보훈보상대상자

- (대학원장학) 해당과정 수업연한 초과자, 논문학기 재학중인 자

- (대학원장학) 신입생, 편입생 및 그 외의 사유로 직 전학기 성적이 없는 자

- (대학원장학) 직전학기까지 대학원 장학금을 6회 이상 지원받은 자

- (대학원장학) 해외유학과정, 국내·외 원격대학원 재학자

- (대학원장학) 석사 또는 박사과정에서 장학금을 수 혜한 자가 다시 동일 학위과정에 재학하는 경우

특수학교 장학

○ 신청대상보훈법령에 따른 교육지원대상자 중 「장 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의 특수교육대상자로 특수학교 또는 일반학교에 재학중인 자

○ 신청자격성적 제한 없음

신청서 접수기간, 접수처 및 제출서류

○ 접수기간 -1학기 :2017년 4월 3일(월)~17일(월) -2학기 :2017년 9월 1일(금)~15일(금)

○ 접수처

학교 소재지 관할 보훈(지)청 보훈과

○ 제출서류

- 대학원장학 : 보훈장학신청서(서식), 개인정보 이용 및 제공 사전동의서(서식), 재학증명서, 직전학기 성 적증명서, 수업료 납입증명서 각 1부

- 특수학교장학 : 보훈장학신청서(서식), 개인정보 이 용 및 제공 사전동의서 각 1부.

※ 신청인원이 선발인원보다 많을 경우 장학금 예산 범 위내에서 장학금 선발기준에 따라 장학대상을 선발합 니다. 기타 자세한 사항은 보훈상담센터(☎1577-0606), 주소지 관할 보훈(지)청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2017년 3월 1일

국가보훈처장

2017년 보훈장학 신청 안내

한 송이 헌화 국민 기부운동(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주관) 은 종료되었습니다. 그동안 ARS(060-700-0625) 전화와 현금 기부로 협조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알림>

(3)

국가보훈처는 모든 국립묘 지의 장교·사병 묘역을 통합 안장키로 했다. 통합 안장은 올

해 2월 기존 장교묘역 만장이 예상되는 국립대전현충원을 시작으로 모든 국립묘지로 확

대한다.

이번에 통합 안장을 시작하 는 국립대전현충원은 1979년 국립묘지를 조성한 이후 현재 까지 ‘장교묘역’과 ‘사병묘역’

을 안장자 신분에 따라 구분 안 장해 왔다.

국립대전현충원은 통합 안장 을 위해 현재 안장 여력이 있는 기존 사병 제3, 4묘역을 활용해 우선 ‘통합 묘역’을 조성할 계획 이며, 추가 조성중인 묘역 1만 7,000기(2018년 7월 완공 예정) 도 모두 통합 묘역으로 운영키

로 했다.

통합 안장이 확정됨에 따라 국 립대전현충원은 지난달 14일 장·

사병 첫 통합 안장식을 가졌다.

한편, 국립서울현충원은 봉 안묘 만장(1986년) 이후 2006년 3월부터 봉안당 안장 시 장·사 병 구분 없이 통합 안장을 시행 중이며, 국립영천호국원과 국 립임실호국원의 봉안묘도 통합 안장한 바 있다.

국립대전현충원은 장교와 사 병의 구분 없이 통합 묘역으로 조성된 ‘천안함 46묘역'과 ‘서해 수호특별묘역'을 통해 국민들 의 호국정신 함양의 산 교육장 으로 활용하고 있다.

2017년 3월 1일 수요일 (월간) 제862호 3

정책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지난 1일 “3·1독립운동은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 과 용기를 우리 민족에게 주었 다”고 말하고 “조국독립을 위한 민족대단결이라는 3·1운동의 정신은 이후 36년간 이어진 독 립투쟁의 원동력이 되었고, 불 굴의 의지로 우리는 마침내 조 국광복을 이루고 주권국가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 처장은 이날 오후 서울 탑 골공원 3·1독립선언기념비 앞 에서 열린 제98주년 3·1독립운

동 희생선열 추념식 추념사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박 처장은 “그러나 독립의 기 쁨도 잠시였고, 조국과 민족은 다시 남과 북으로 갈려 동족상 잔의 6·25전쟁을 겪었고 70년이 넘도록 분단을 극복하지 못하 고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남 아 있다”며 “많은 안보 전문가 들은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이 군사적으로 안보위기 상황이 아니라 비군사적으로 심각한 안보위기 상황”이라고 현실을 진단했다.

특히 박 처장은 “북한은 한미 동맹 해체를 위한 핵미사일 위 협을 가시화하고 있고, 우리는 한미연합방위태세로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한미연합방위 태세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하고 “한미연합방위 태세를 통한 대비는 군사적 영 역이지만 한미연합방위태세를 굳건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 미동맹이 지켜져야 하고, 이는 국민이 지키는 비군사적 대비

의 영역이므로, 튼튼한 군사적 대비를 위해서 우리에게 무엇 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비군 사적 대비”라고 강조했다.

이어 박 처장은 “같은 민족 내 이념대결과 동맹국에 의해 안보를 보장 받는 국가는 국민 이 단결해서 비군사적 대비에

성공하면 전쟁 없이 통일을 이 룩하였고, 국민이 분열해서 비 군사적 대비에서 실패하면 전 쟁으로 패망한다는 것이 20세 기 역사가 주는 교훈”이라고 말 했다.

박 처장은 또 “이제 세계4대 분단국 중 독일, 베트남, 예멘 등 3개국은 통일했지만 부끄럽 게도 우리 민족만 유일하게 분 단을 극복하지 못하고 서로 대 치하며 갈등과 대립하고 있다”

고 지적하고 “따라서 우리 국민 은 20세기 역사가 주는 교훈을 마음에 새기고 단결하여 한미 동맹을 튼튼히 유지하면서 북 한을 변화시켜 나가야 하며, 이 를 통해 독일과 같이 평화통일 을 달성하고, 8,000만 민족이 하 나 되어 세계 중심 국가로 나아 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독립정신 이어 북한 변화시키며 통일·세계 중심국가로”

 

 





 



   

   



 

 

     



박승춘 보훈처장 독립운동 희생선열 추념사

제98주년 3·1절을 맞아 선열 들의 독립정신을 나라사랑 정 신으로 계승하기 위한 3·1독립 만세운동 재현행사가 지난 달 28일 부산에서 열린 ‘일신여학 교 3·1만세운동 재현행사’를 시 작으로 6월까지 전국 58개 지역 에서 개최된다.

국가보훈처는 서울 종로구를 비롯한 부산, 울산, 충남 천안

시, 경북 영덕군, 제주 조천읍 등 전국 58개 지역에서 개최되 는 69개의 만세운동 재현행사 를 지원한다.

만세운동 재현행사는 지역별 만세운동일을 전후해 2월 말부 터 6월까지 지방문화원, 청년회 의소, 독립운동 관련 기념사업 회 등 민간단체 주관으로 개최 된다.

각 행사들은 당시의 만세운 동을 재현하는 동시에 지역 특 성을 살린 공연과 체험행사를

동시에 실시해 청소년을 비롯 한 지역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 는 지역문화축제로 치러질 예 정이다.

한편 3·1독립만세운동 재현 행사는 지난 1999년 3·1절 제80 주년을 기념해 전국 15개 지역 에서 최초로 시작됐으며, 제98 주년을 맞는 올해에는 전국 58 개 지역이 참가하는 등 우리 민 족의 자주독립정신을 이어가는 대표적 독립기념행사로 자리매 김하고 있다.

만세운동 재현과 함께 참여형 지역문화축제로

전국서 3·1 만세운동 재현행사 열려

1일 제98주년 3·1절 기념 식(10시, 세종문화회관) 3·1독립운동 희생선열 추 념식(오후 2시, 탑골공원 독 립선언기념비)

15일 제57주년 3·15의거 기 념 식(10시 ,

3·15 아트센터)

24일제2회 서해수호의 날 행사(10시, 국

립대전현충원)

3월 보훈캘린더

“비군사적 대비 강화 전쟁 없는 통일 이룩”

국립묘지 장·사병 구분 없이 ‘통합’ 안장

대전현충원 첫 통합안장식을 가진 ‘통합 묘역’ 모습.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열린 제98주년 3·1독립운 동 희생선열 추념식에서 추념사를 하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3월 1일 제98 주년 3·1절을 맞아 1909~1910 년 경기도 양주·포천 일대에서 의병으로 활동하다 일본 헌병 에 체포돼 피살 순국한 전성서 선생, 평남 대동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이끌다 중형을 받고 옥 고를 치른 양희언 선생, 하와이 에서 한인여성의 단결과 독립 운동 지원에 헌신한 여성독립 운동의 대모 황마리아 여사 등 75명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포상했다.

이번에 포상되는 독립유공자 는 건국훈장 43명(애국장 12, 애 족장 31), 건국포장 18명, 대통 령 표창 14명이다.

훈·포장과 대통령 표창은 제 98주년 3·1절 중앙기념식장과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기념 식장에서 유족에게 수여됐다.

이로써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분은 1949년 포상이 시작 된 이래 건국훈장 1만 697명, 건 국포장 1,196명, 대통령 표창 2,758명 등 총 1만 4,651명이다.

독립유공자 75명 포상 실시

(4)

국가보훈처는 지난달 14일 초고령 애국지사와 상이유공자 의 수송시설 이용지원을 위해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 와 ‘국가유공자 버스 할인이용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에 따르면 우등시외버스 를 포함한 모든 시외버스는 오 는 4월 1일부터 애국지사, 국가 유공자(1~5급), 5·18민주화운동 부상자(1~7급)의 운임 할인율이 종전 무료 승차에서 70% 할인으 로 변경된다. 6급 이하 상이자는 종전과 같이 30% 할인된다.

그러나 고속버스는 기존과 동일하게 상이등급에 따라서 50%~30% 할인되며, 작년 11 월 정식 운행을 시작한 프리미 엄 버스는 할인 이용에서 제외 된다.

국가유공자 할인율 조정과 관 련,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 회는 “매년 누적되고 있는 운임 손실에도 불구하고 국가유공자 버스 운임 할인제도를 시행해 왔다”며 “우등시외버스 전면 도 입에 따른 시외버스 운임 상승

과 고속버스 할인율과의 형평 성, 민간 버스 운송업계의 경영 여건 악화 등으로 인해 부득이 시외버스 할인율을 일부 조정 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한편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최근 일부 국가유공자가 할인 받은 기차표를 일반인에 판매 해 사기 및 공문서 부정행사 혐 의로 불구속 입건되는 등 수송 시설 이용지원 제도를 악용하 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 하고 “수송시설 이용지원 대상 자가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 로 수송시설을 이용하거나 타 인에게 이용하게 하는 경우 3년 간 이용을 정지할 수 있으므로

국가유공자의 명예를 지키면서 지속적으로 할인 제도를 유지 할 수 있도록 보훈법령을 준수 해 줄 것”을 당부했다.

국가 안위의 소중함을 일깨 우고 국민 안보의식을 결집하 기 위해 지난해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서해수호의 날’이 올해 2회째 열린다.

오는 24일, 3월 넷째 주 금요 일 열리는 서해수호의 날은 제2 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도발 등 북한의 서해 도발 에 희생된 장병을 추모하고 생 존 장병과 전사자 유족을 위로 하는 기념식이다.

그동안 정부는 천안함 피격 등 북한 도발 관련 행사는 5년

간 정부행사로 시행한 후, 각 군 으로 이관해 추진해 왔으나 북 한의 끊임없는 도발을 차단하 고 안보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서해수호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고 첫 번 째 정부기념식을 개최했다.

서해수호의 날은 이름과 장 소, 행사 날짜 모두 의미가 담 겨 있다. ‘서해수호’라는 이름 은 서해도발 관련 사건을 포괄 하고 있고, 정부기념식이 열리 는 장소 국립대전현충원에는 서해 수호 3개 사건 전사자 모 두가 안장돼 있는 곳이다.

행사일인 3월 넷째 주 금요일 은 우리 군의 희생이 가장 많았 던 천안함 피격일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북한의 3개 도발 사건은 아직 도 국민의 가슴 속에 아픔과 상 처로 남아 있다.

지난 2002년 6월 29일 발생한 제2연평해전. 북방한계선(NLL) 을 불법으로 침범한 북한 경비 정과 해전을 치르다 참수리 357 호 장병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을 입었다.

천안함 피격은 2010년 3월 26

일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북한 의 연어급 잠수정으로부터 기 습 어뢰 공격을 받아 우리 해군 의 초계함인 ‘PCC-772 천안’이 피격돼 침몰한 사건이다. 이 도 발로 천안함 승조원 46명이 전 사하고 구조에 나섰던 한준호 준위가 순직했다.

같은 해 11월 23일 일어난 연 평도 포격 도발은 북한이 대한

민국 영토에 직접 포격을 가한 사건이다. 해병대원 2명이 사망 하고 16명이 중경상을 입었으 며, 민간인 2명이 사망하고 10 명이 다쳤다.

서해수호의 날은 이런 북한 의 국지적 도발을 상기하고 이 를 막아내기 위해 전 국민이 하 나가 돼 호국정신을 다지는 기 념일이다.

‘정부기념일 서해수호의 날’

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호 국 영웅들을 추모함과 동시에 국가를 위한 희생은 국가가 끝 까지 책임진다는 정부의 확고 한 의지를 담고 있다. 또한, 계 속되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에 국민의 하나 된 힘이 최상의 안보라는 것을 언제나 상기시 켜 범국민적 안보 의지를 고양 하는 의미가 있다.

한편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 릴 올해 서해수호의 날 정부기 념식은 최근의 안보 위기를 반 영해 더욱 엄숙하고 뜻깊은 프 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제862호 2017년 3월 1일 수요일 (월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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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24일 대전현충원, 두 번째 ‘서해수호의 날’ 열린다

나라사랑배움터 ‘앤어워드’ 수상

서해도발 3개 사건 희생자 추모·위로

“안보의식 결집하는 날”

국가보훈처 ‘나라사랑배움터’

사이트가 디자인, 콘텐츠 등의 항 목에서 ‘우수’ 평가를 받아 미래 창조과학부가 후원하는 ‘2016 앤 어워드(&Award)’에서 정부공공 분야 우수상을 수상했다.

나라사랑배움터 사이트는 지 난해 최신 트렌드에 맞는 디자 인 변경, 온라인 친화적인 신규 콘텐츠 개발, 모든 해상도 및 이 용기기에 최적화된 콘텐츠 제공 등을 목표로 새롭게 개편했다.

2016 앤어워드는 ‘나라사랑배 움터’의 디자인과 콘텐츠를 종합 평가해 ‘정부공공 지자체 사이

트’ 분야에서 2등상에 해당하는

‘위너스 프라이즈’로 선정했다.

학생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교육용 웹사이트인 나라사 랑배움터는 전 국민이 나라사 랑 교육 정보 등을 자유롭게 활 용할 수 있게 리뉴얼 돼 접근성 과 호환성을 높여 장애인 등 소 외계층도 사이트를 어려움 없 이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부공공부문 2등상 디자인콘텐츠 혁신 인정

상이유공자 시외버스 할인율 70%로 조정

지난해 3월 25일 열린 첫 서해수호의 날 행사에서 ‘하나된 대한민국’ 공 연이 펼쳐지고 있다.

 

 





 



   

   



 

 

     



‘서해수호의 날’에 담긴 뜻

4월부터 1~5급 대상 6급 이하는 할인율 유지

나라사랑배움터 초기화면

지난달 21일 서울 서초지역에

‘서초구 보훈회관’이 문을 열었다.

서울 서초구 방배3동 옛 청사 를 리모델링한 서초구 보훈회 관은 총 사업비 27억 원을 들여 연면적 1,179m²(약 360평),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지어졌다.

이로써 서울 25개 자치구 중 도 봉구를 제외한 24개 구에 보훈

회관이 들어서게 됐다.

회관 지하에는 120석 규모의 강당, 물리치료실 등 건강 증진 실을 갖추고 1층엔 광복회, 상 이군경회 등 9개 보훈단체 사무 실과 지역주민이 이용 가능한 시간제 보육실이 마련됐다.

2~4층은 안보 전시실, 회의실 등이 자리 잡았다.

한편 서초구는 지난해 보훈 단체 위문금을 2만 원에서 5만 원으로 인상한 데 이어, 올해부 터 보훈 가족 1인당 보훈 예우 수당을 월 5만원, 참전유공자 기념일에는 1인당 위문금 30만 원을 각각 지급한다. ‘국가유공 자의 집’ 명패를 달아주고 생활 불편사항도 수시로 점검하는 등 국가보훈 대상자 예우·지원 을 확대할 예정이다.

서초구 보훈회관 새 보금자리 마련

구분 할인이용대상자 할인율

시내버스

농어촌버스

시외버스

고속버스

애국지사, 1∼7급 국가유공상이자 1∼14급 5·18민주화운동부상자 애국지사, 1~5급 국가유공상이자 1~7급 5·18민주화운동부상자 6~7급 국가유공상이자 8~14급 5·18민주화운동부상자 애국지사, 1~5급 국가유공상이자 1~7급 5·18민주화운동부상자 6~7급 국가유공상이자 8~14급 5·18민주화운동부상자 애국지사, 1~5급 국가유공상이자 1~7급 5·18민주화운동부상자 6~7급 국가유공상이자 8~14급 5·18민주화운동부상자

무임 무임 30%

70%

*2017.4.1부터 적용

30%

5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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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는 지난 2009년부터 6·25전쟁 참 전 전사자와 전사자 유족을 해 당 국가와 현지로 찾아 직접 감사와 위로의 뜻을 전하는 행 사를 펼쳐왔다.

이 행사는 보훈단체가 주체 가 돼 해외의 참전자나 유족을 찾아 감사 인사를 하는 최초의 행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 다. 특히 행사가 진행될수록 현 지 대사관 등의 적극적인 협조 가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민 간외교’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 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유족회가 찾은 나라는 첫 번 째 방문국인 에티오피아에 이 어 터키, 태국, 그리스, 콜롬비 아, 필리핀, 푸에르토리코, 호 주, 뉴질랜드 등 9개국에 이른 다. 아시아, 아프리카, 미주, 유 럽을 잇는 전 세계를 향한 따

뜻한 사랑의 인사가 민간외교 의 성과와 함께 보훈단체의 위 상도 크게 높인 셈이다.

유족회는 각국을 찾는 현지 행사에서 유족과 참전자 등을 초청해 오찬 등을 함께 나누고 위문금을 전달해 왔다. 특히 전국의 회원이 매년 십시일반 으로 모금한 5,000만원의 기금 으로 전달하는 200~1,000달러 의 위문금은 부모님의 참전과 전사 이후 어렵게 이어온 살림 살이에 큰 도움이 됐다.

현지에서는 또 형편이 어려 운 유족의 집이나 입원 참전자 를 직접 찾아 위로하면서 ‘이 름 모를 나라를 위한 희생’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함 께 이역만리 ‘유족’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끼는 감동의 시간 을 갖기도 했다.

국가별 참전협회와의 간담

회를 통해 유대도 강화하고 협 회에 대형TV 등 기념품을 전 달하면서 향후 협력행사를 펼 치기로 하는 등의 결과를 이끌 어 내기도 했다.

첫해부터 방문단 단장으로 참여해온 최해근 회장은 가는 곳마다 인사말을 통해 “6·25전 쟁에 참가한 파병국으로 대한 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그 어느 참전국 못지않게 고귀한 피와 땀을 바친데 대해 감사드

린다”며 “우리 대한민국의 국 민들은 자유의 소중함과 한국 전에 참전한 용사들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찬 자리는 더없이 따듯한 분위기에서 진행된다. 주인공 인 참전전사자 유가족과 참전 용사 등은 서로 이야기꽃을 피 우며 65년 전의 인연을 되새기 며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잡은 손을 놓을 줄 모른다.

일부 참전자들은 당시의 기

록물이나 편지, 훈장, 군번인 식표 등을 가져와 유족회 임원 들에게 보여주며 자신의 참전 으로 대한민국을 지켰고 오늘 의 대한민국이 있다며 자랑스 러워하기도 했다.

지난 2006년 푸에르토리코 방문시에는 국립묘지 참배에 보훈부 장관이 직접 동행하면 서 방문단에 대해 여러 차례 고 맙다는 인사를 아끼지 않고 이 번을 계기로 “참전용사와 그 가 족에게 더욱 관심을 가지고 지 원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유족회 관계자는 “이 행사 는 민간외교의 일익을 담당하 기 위해 매년 5만 여 유족회 회 원의 지원으로 이뤄지는 선양 사업”이며 “앞으로도 국가 민 족을 위해 소중한 이 사업을 계속 이어나가 국가유공자와 보훈단체의 새로운 모범을 보 일 것”이라고 말했다.

유족회는 올해에도 하반기 중에 에티오피아를 다시 방문 키로 하고 초청자 선정 등 벌 써부터 각종 준비사항 점검에 들어갔다.

최해근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장이 지난 2013년 10월 23일 콜롬비 아 보고타에서 열린 유엔군 참전유가족 위로 오찬에 참석, 참전용사 와 유족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지난달 16일 국가보훈처 제 10기 훈남훈녀 온라인 기자단 발대식이 열렸다. 이들은 올 한 해 국가보훈처의 온·오프라인 홍보활동을 책임질 28명의 새 로운 얼굴이다.

이날 발대식은 기자단의 주 요 활동이 될 블로그 글쓰기, 저 작권법 강의 등 기자단 역량교 육과 보훈정책 소개, 위촉장 수 여 후 격려사로 이어졌다.

기자단은 온·오프라인 공간 에서 보훈정책과 보훈 행사를 취재하고 콘텐츠를 제작하는 등 보훈 문화를 널리 홍보할 나 라사랑 메신저 역할을 수행하

게 된다.

발대식을 마친 기자단은 앞 으로 1년간 전국 곳곳의 나라사 랑 행사 현장 등을 찾아 생생한 기사로 젊은이의 ‘애국정신’을 펼치게 된다.

다음은 온라인 기자단의 각오.

▲양민준(27, 숭실대)

“저는 나랏일을 하는 공직에 관심이 많은데 그 전에 애국심 을 키우고 싶어서 지원하게 됐 습니다. 대학생활, 군 생활 등을 거치면서 점점 ‘나라를 지킨다 는 것’의 무게감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됐어요. 저는 글 쓰는 것에 재능도 관심도 많아요. 기

자단 활동을 하면서 저의 능력 을 최대한 살려 호국보훈의식 이 약한 젊은 세대들에게 우리 나라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 래까지도 제대로 알리고 싶습 니다.”

▲이대웅(27, 동아방송예술대)

“군 전역 후 삶의 방향성을 잃 고 방황하던 때 우연히 들른 안 중근 기념관에서 만난 분과 대 화를 하다가 지난날을 잊고 산 다는 게 목숨을 내놓고 나라를 지킨 선열의 후손으로서 얼마 나 무책임한 일인지 알게 됐어 요. 저는 사명감으로 일하는 분 을 많이 만나 역사를 계승하는 사람들에 대한 콘텐츠를 만들 고 싶어요. ‘국가보훈처’라는 공

식 기관을 통해 쓰라렸던 우리 역사를 후대에 제대로 전하고 잊지 말자는 메시지를 주고 싶 습니다.”

▲김명회(28, 비디오팩토리)

“독립유공자 집안에서 살면 서 일제 강점기, 6·25전쟁 등 힘 들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자연 스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 런 생생한 역사를 저 혼자 알고

있기 아쉬웠던 차에 보훈처 온 라인 기자단에 지원하게 됐어 요. 생존 독립유공자가 얼마 남 지 않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분들이 사라지기 전에 취재해 기사화도 하고 역사적 가치가 있는 사료로 보존하고 싶어요.

또 하나는 저와 같은 독립유공 자 후손의 삶의 모습도 궁금해 관심 가져 볼 생각입니다.”

2017년 3월 1일 수요일 (월간) 제862호 5

단체

“대한민국 수호에 바친 헌신, 현지 찾아 감사”

대한민국상이군경회(회장 김 덕남)는 지난달 8일부터 10일까 지 3일간 수원 보훈재활체육센

터에서 보훈복지문화대학 워크 숍을 개최했다.

보훈복지문화대학을 활성화 시키고 실무자들의 역량을 강화 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워크숍에

는 전국 16개 시·도지부 복지부 장, 사회복지사 등 지역캠퍼스 실무자들이 참석했다. 참석자들 은 2016년 대학운영 성과보고, 2017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운 영계획 발표, 2017 창작예술제 계획 발표, 문화예술교육체험, 재활체육프로그램 체험 등 다양

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국가유공상이자들의 정신적·

심리적 재활을 위해 도입한 보 훈복지문화대학은 1년간의 활 동 결과를 모아 올해도 보훈복 지문화대학 학생들과 상군체육 회 회원들이 전시와 공연 부문 작품을 출품해 11월 창작예술

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김덕남 회장은 워크숍에서

“보훈복지문화대학을 통해 앞 으로도 국가유공상이자들의 건 전한 여가문화 정착은 물론 지 역사회에 올바른 보훈 문화 확 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 했다.

보훈복지문화대학 워크숍 개최

상이군경회

전몰군경유족회, 해외 참전유가족 위로 9년째

지난달 16일 오후 제10기 훈남훈녀 온라인기자단 발대식에서 박승춘 국가 보훈처장과 10기 훈남훈녀기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호국보훈 정신 메신저 되겠습니다”

훈남훈녀 온라인 기자단 발대식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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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2호 2017년 3월 1일 수요일 (월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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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2017년 정유 년 오늘 이 갈등 의 회오리 속에 서 우리는 어떤 미래를 그릴 것 인가.

우리는 세계 최빈국 중의 하 나로 전락했던 어제의 어려운 역경을 한 단계 한 단계 극복하 고 일어난 나라다. 드디어 2030년경에는 세계 7대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 아래 계속해서 성장을 이루어 나가고 있 다. 국제사회도 경탄해 마지않는 경제발 전과 정치발전을 이룩한 위대한 국가로 대한민국을 칭송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 속에는 분단과 분

열의 아픔이 여전히 숨어 있다. 특히 동 족상잔으로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다는 현실은 너무나 엄중한 상황이다.

우리는 현재의 분열을 국민통합으로, 분단을 통일한국으로 이어가야 할 책임 이 있다.

지난 세기 이데올로기적 대립과 갈등 은 오늘날 각각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의 급변하는 세계정세도 새로 운 상황 속에서 우리의 새로운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새롭게 동북아 질서가 재편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사회도 이제 는 갈등의 골을 본격적으로 정리해야 새 로운 질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 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념 갈등, 사회적 갈등 증폭의 원인 사실 우리 민족사와 정치사를 돌이켜 보면 우리의 이념 갈등은 그 뿌리가 상당

히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이념 이란 단어만 나오면 우리 국민들은 맹목 적으로 자신들의 신념에 기반해 주장을 하고 타인을 재단해왔다. 그러는 사이에 민주주의의 근간은 흔들려왔고 권력을 향한 편 가르기와 이념이라는 이름으로 제 무리들의 신념을 확산시켜 왔다.

결국 이념은 자기들만의 이익을 챙기 기 위한 갈등조장의 도구로 전락되고 말 았던 것이다. 이익갈등이 이념갈등이라 는 이름으로 치환되면서 오히려 갈등의 폭과 깊이는 더욱 넓어지고 깊어졌다.

인간 공동체에서도 어디에서나 권력 의 문제와 권력에 의한 억압의 문제가 발생한다. 문제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인위적인 이념갈등을 만들고 조장하는 세력이 생겨난다는 점이다. 이념갈등은 구체적으로 다시 사회적 갈등으로 그 영 역을 확산시켜 나간다.

이 과정에서 국민은 갈등과 휘둘려 분 열의 과정에 빠져들게 된다. 분열된 사 람들은 이제 각각 진영을 이루어 대립하 고, 이것만이 진리라 는 생각으로 내부 결 속을 더욱 강화시켜 나간다.

이후 분열의 결과물 은 개인 간, 지역 간, 계층 간, 세대 간의 갈 등으로 나타나게 되었 다. 갈등의 심화가 넓 어지면 분열의 골이 더 욱 깊게 패어지게 마련 이다.

오늘의 우리 현실을 어떤가. 우리의 정치는 오늘 우리가 닥친 선진 화와 복지의 미래를 어 떻게 그릴 것인가, 그 리고 경제와 실업문제 같은 현안 문제를 어떻 게 해결할 것인가 심각 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 해결 방안은 당연히 현존하는 갈등의 조정 을 통해 대안을 내놓고 함께 타협함으로써 공 동체의 발전을 가능하 게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개별 집단의 이익에 근거한 논리를 진보와 보수라 는 이분법으로 만들어 충돌하면서 민족적 과 제나 우리사회의 발 전, 튼튼한 안보 등의 화두는 모두 밀어내고 말았다. 지난해를 거쳐

온 ‘최근의 상황’에서도 그것은 예외가 아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선조들이 물려준 대한민국을 보다 튼튼히 지키고, 더욱 강하게 만들고, 우리 후손들이 자 랑스러워하는 대한민국으로 어떻게 만 들어 나가느냐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고 있다. 지금 우리는 그 과제를 놓치 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반도 DNA 살려 화합과 통일 오늘날 국제사회는 이미 공동체 구성 원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 를 추구하면서 서로를 존중하며 미래를 내다보는 선진사회 국가를 만들기 위해 서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우리 역 시 이제는 한반도 평화의 길과 한민족 공동체의 통일을 향한 21세기 보편적 가 치와 인류사회가 지향하는 발전의 방향 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우리 역사의 주인은 독립운동에서부 터 산업화를 거쳐 오늘날 민주화를 이뤄 내기까지 기여해온 대한민국의 모든 구 성원들이다. 여기에다 나라를 위해 직접 몸 바쳐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국 가유공자들은 그만큼의 도덕적 권위와 가치를 가졌음을 알아야 한다. 이들에게 는 우리의 오랜 역사 속에 잠재되어 있 던 한반도 DNA가 내재되어 있다.

한반도 DNA는 어디서 발견할 수 있 는가. 우리는 이를 위해 수많은 선열들 이 조국 독립을 위해 순국(殉國)을 마다 않고 고귀한 목숨을 내던져 투쟁했으며, 6·25전쟁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서슴 없이 총을 들고 나서 자신과 가족을 희 생했다.

우리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투혼 에서 찬란한 민족의 혼과 얼, 즉 한반도 DNA를 발견할 수 있다. 그 DNA를 오 늘에 되살려 민족의 화합과 통일로 가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의무인 것이다.

한 국가의 건강성은 국민통합의 정도 에 달렸다. 그리고 국민통합은 호국보훈 정신과 나라사랑정신의 함양에서 나온 다. 나라사랑정신은 국가정체성을 함께 확인하면서 키워진다. 따라서 국민통합 의 중요한 기제는 나라사랑정신이 된다.

나라사랑 없는 국민통합은 맹목이 된다 는 뜻이다.

우리 대한민국의 마지막 과제는 당연 히 통일이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당 당히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도 통일은 필수불가결하게 통과해야할 마지막 관 문이다.

이제 갈등을 넘어 함께 화해하고 손을 잡아 더 커다란 통합, 통일의 길을 준비 해야 할 때이다. 지금의 작은 차이와 분 열을 넘어서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기고 - 호국보훈 정신과 국민통합

“호국보훈 정신으로 국민통합과 통일을 준비해야”

양정훈

수원대 교수, 국제 정치학박사

한국보훈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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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일 수요일 (월간) 제862호 7

전면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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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2호 2017년 3월 1일 수요일 (월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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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호국정신

6·25전쟁은 대한민국과 북한 간의 ‘수 도 쟁탈전’이었다. 수도 서울이 북한의 남침 4일차에 북한군에 의해 점령당하 자, 이에 질세라 국군과 유엔군은 맥아 더 유엔군사령관의 인천상륙작전에 힘 입어 수도 서울을 탈환했다. 전쟁 발발 4 개월 만에 양측의 수도가 적에게 뺏고 뺏기는 세계전쟁사에서도 유례를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보기 드문 상황이 연 출됐다.

전쟁에서 수도는 군사적·정치적·심리 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수도를 빼앗긴 입장에서는 전쟁에 졌다 는 패전의식이 감돌면서 군은 물론이고 국민들의 사기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반 면에 적의 수도를 빼앗은 입장에서는 전 쟁에 이겼다는 승전 기분에 전쟁에 뛰어 든 군이나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 입장에 서 모두 들뜨기 마련이다.

그래서 일찍이 고금동서의 전략가들 은 상대편의 수도를 제1의 공격목표로 삼고 여기에 군사력을 집중해 조기에 수 도를 공략하고자 모든 노력을 경주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제2차세계대전 시 히 틀러는 프랑스의 파리를 조기에 점령했 으나 유럽의 전쟁을 끝낼 모스크바 공략 에 실패함에 따라 패전했다. 일본도 중 국의 수도인 남경을 손쉽게 점령했으나 장개석(蔣介石) 정부의 임시수도인 중 경 공략에 실패함으로써 결국 패전국의 멍에를 짊어지게 됐다.

수도서울 선점 위한 일진일퇴 북한의 김일성도 6·25전쟁을 일으켰 을 때 주저함이 없이 제1의 군사적 목표 를 수도 서울에 두었다. 김일성의 수도 서울에 대한 집념은 대단했다. 김일성 은 1948년 9월 9일 평양에 공산정권을 수립했음에도 북한헌법에 그들의 수도 를 ‘서울’로 못 박았다. 그런 점에서 당 시 북한이 쓰고 있던 평양은 임시수도 였던 셈이다.

김일성의 서울 점령의지는 강했다. 북 한군은 서울 점령을 위해 전쟁 개시와 함께 38선을 넘은 북한군 7개 사단 중 6 개 사단과 북한군 유일의 전차여단인 105전차여단을 수도권 공략에 동원했 다. 전차는 물론이고 전차를 파괴할 변 변한 대전차무기도 없는 국군의 입장에 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국 군의 진지를 무력화하며 남하하는 북한 군 전차를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이 때 궁여지책으로 나온 것이 맥주병이나 음료수병에 휘발유를 넣은 화염병과 여 기에 수류탄을 묶어 적 전차에 돌진하는

육탄전이었다. 그렇게 해서 수도 서울을 4일 동안 지켜냈다. 그만큼 전쟁에서 수 도는 전쟁의 향방을 가늠케 하는 풍향계 역할을 했다.

1950년 9월 28일 수도 서울을 탈환한 국군과 유엔군은 이 여세를 몰아 38선을 돌파하여 드디어 적의 수도 평양을 점령 했다. 미1군단에 배속된 국군1사단이 열 악한 기동장비에도 불구하고 선두로 평 양에 들어갔다. 국민들은 감격했고, 이 소식을 전해들은 육군본부 수뇌부들은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국군과 유엔군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두만강과 압록강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통일 이 눈앞에 다가온 듯했다. 국군은 압록 강변의 초산에 당도했고, 미군은 두만강 과 인접한 압록강 상류의 혜산진에 도달 했다.

이때 중공군이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이라는 북 한과의 지리적 이해관계와 ‘항미원조(抗 美援朝, 미국에 대항해 싸우는 조선을 돕는다)’는 전략적 명분을 내세워 한국 전선에 불청객으로 뛰어들었다. 30만 대 군을 앞세운 중공군의 인해전술과 그들 의 야간기습공격에 국군과 유엔군은 다 시 평양을 내주고 38선으로 물러났다.

그것도 부족해 다시 서울을 내주고 남한 지역에서 동서 간의 길이가 가장 짧다는 평택-안성-원주-삼척 선까지 물러났다.

1950년 1월 4일을 전후한 상황이었다.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은 중공군의 막 대한 병력을 앞세운 공격에 한반도에서 의 철수까지 거론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위기일발의 숨 가쁜 순간이었다. 그 과 정에서 미8군사령관이 교통사고로 순직 하고, 리지웨이 중장이 후임 사령관에 임명됐다.

리지웨이(Matthew B. Ridgway) 사령 관은 중공군에 대한 분석에 들어갔다.

이어 37선에서 38선을 향한 작전을 구상 했다. 거기에는 수도서울에 대한 재탈환 도 포함됐다. 이를 위해 리지웨이 사령 관은 중공군에 이길 대응책도 마련했다.

중공군의 대규모 병력을 앞세운 공격에, 유엔군은 그들보다 우세한 포병·함포·

공중화력으로 맞선다는 계획이었다. 병 력을 앞세운 중공군의 인해전술(人海戰 術)에 화력의 우세를 이용한 유엔군의 화해전술(火海戰術)의 맞대결이었다.

그리고 중공군의 장기인 국군과 유엔 군의 부대 간의 빈틈으로 침투해 아군 후방으로 깊숙이 들어와 지휘소 습격 등 후방교란을 일삼는 중공군의 전술에, 국 군과 유엔군이 상호 어깨를 나란히 하고

보조를 맞춰 나간다는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매 작전시마다 부대의 진출을 통제 하는 통제선을 설정해 운용했다. 작전 중 통제선에 빨리 도달한 부대는 다른 부대가 통제선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렸 다가 다음 통제선으로 진격하는 개념이 었다. 이런 식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38 선을 향해 한 걸음씩 중공군을 압박하며 진격해 나갈 계획이었다. 리지웨이의 이 런 전법에 중공군은 당황했고, 국군과 유엔군은 커다란 성과를 냈다.

육군·해군 합동적전으로 적퇴각 유도 중공군의 3차공세로 37선까지 밀려나 그곳에서 휴식과 정비를 끝마친 국군과 유엔군은 드디어 중공군을 찾아 나섰다.

리지웨이 입장에서는 공산군이 어디에 얼마만한 병력이 있는지를 확인할 필요 가 있었다. 그래서 각 군단별로 1개 연대 씩을 차출해 전방으로 내보냈다. 탐색전 이었다. 수원과 여주 선까지 적의 저항은 별로 없었다. 적에 대한 탐색을 끝마친 리지웨이는 드디어 1951년 1월 25일 한 강 이남을 목표로 한 ‘썬더볼트(thun- derbolt)' 작전을 전개했다. 작전은 대성 공이었다. 2월 10일까지 국군과 유엔군 은 한강 이남까지 진출했다. 서울 이남의 한강변에는 국군1사단이 진출해 있었다.

수도 서울을 재탈환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리지웨이 사령관은 수도 재탈 환을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서울을 직 접 공격하는 대신 적이 스스로 물러나게 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수도 서울을 탈 환하기 위해 공격하면 적의 강력한 저항 에 국군과 유엔군이 많은 피해를 입을 뿐만 아니라, 설령 서울을 점령했다고 해도 서울북쪽의 산악지형을 배경으로 공산군이 저항하면 한강을 등지고 싸우 는 국군과 유엔군의 입장에서는 불리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런 고민 끝에 리지 웨이 장군은 서울 동쪽에 해당하는 뚝섬 과 양수리 방향으로 국군과 유엔군을 진

출시켜 의정부와 포천으로 나아가게 하 면, 서울에 있던 공산군이 측방으로부터 포위위협을 느끼고 스스로 서울에서 철 수하게 될 것으로 판단했다.

이때 리지웨이는 평양에 집결해 있던 중공군이 수도권으로 증원되지 못하도 록 평양의 서쪽 관문인 진남포에 유엔해 군 상륙작전을 가장했다.

이른바 양동작전이다. 이 작전이 적중 했다. 평양에 주둔한 중공군 대병력은 위장 상륙작전에 겁을 먹고 서울로 병력 을 보내지 못했다. 대신 뚝섬과 양수리 를 도하한 미 25사단과 미3사단이 서울 동측방으로 진격하자 서울에 있던 공산 군은 예상했던 대로 포위위협을 느끼고 북쪽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한강 남안의 국군 1사단장 백선엽 준장은 직속상관인 미1 군단장 밀번(Frank Milburn) 장군에게 서울 재탈환작전을 건의했다. 밀번 군단 장의 답은 오케이였다. 1951년 3월 15일 아침, 백선엽이 지휘하는 1사단은 드디 어 서울재탈환에 나섰다. 선두인 15연대 가 여의도에서 마포 쪽으로 도하했다.

뒤이어 사단본대가 뒤따랐다. 감격적인 서울 재탈환작전에 신성모 국방부장관, 리지웨이 미8군사령관, 미1군단장 밀번 장군이 지켜봤다. 예상했던 대로 적의 주력이 빠져나간 서울에는 산발적인 총 격만 있었다.

탈환한 수도 서울의 모습은 두 차례의 전화(戰禍)로 처참했다. 남대문도 한쪽 귀퉁이가 날라 갔다. 그렇지만 수도 서 울을 재탈환한 국군의 감격은 남달랐다.

이후 서울은 적의 끈질긴 공세에도 함락 되지 않았다. 이 작전은 한미양국의 지 휘관과 장병들의 지략과 뛰어난 공로가 아닐 수 없다.

서울 재탈환의 정점을 찍는 시가전의 병사들.

남정옥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 연구위원, 문학박사

썬더볼트 작전 이어 적 퇴각 유도한 한미 수뇌부의 승리





 





    







6·25전투현장과 호국 영웅들 ④ 서울 재탈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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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일 수요일 (월간) 제862호 9

이 시대의 호국정신

3·1운동은 우리 민족 최고 최대의 독 립운동이다. 3·1운동의 위대한 점을 이 야기하려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 다. 우리는 그 중에서 특히 다음 3가지에 주목해 보고자 한다.

첫째, 3·1운동은 한민족의 도전정신을 보여준다.

3·1운동이 일어나기 4달 전 제1차 세 계대전이 끝났다. 일본은 대전의 승전국 이었다. 일본의 위상은 올라갔고, 국제 적 발언권이 강해졌다. 당연히 우리 독 립에 불리한 일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인류사상 최초로 국 가의 인적, 물적 자원을 총동원한 총력전 이었다.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일본은 전 쟁비용으로 엄청난 부채에 시달리게 되 었을까? 아니다. 엄청난 이익을 보았다.

한민족의 위대한 도전정신 입증 전쟁터는 유럽이었다. 일본은 피 흘리 지 않고 독일이 가진 중국 산둥반도 칭 타오 등 조차지나 태평양에 위치한 섬들 을 차지했다. 일본은 또한 연합국에 전 쟁 물자를 공급하기 위해 밤을 새워 공 장을 돌려야 했다. 개항 이후 60년간 만 성적인 적자였는데, 대전 특수경기로 일 약 흑자국으로 도약했다. 호황으로 돈이 넘쳐서 쌀 투기가 일어나 1918년 여름

‘미(米)소동’이라고 하는 주부들의 폭동 이 일어났을 정도였다.

조선총독부는 지배체제를 단단하게 구축했다. 한국 주둔 2개 사단을 기반으 로 군대와 경찰을 통합한 헌병경찰제로 써 한국인의 저항을 10년간 거의 완벽하 게 억눌렀다. 10년에 걸친 토지경계 측 량과 소유권 조사 등 토지조사사업을 완 료했다. 여기다 1914년 지방행정구역을 일대 개편했다. 경성과 평양 같은 대도 시는 외곽지역을 분리하여 약화시키고, 지방의 군, 면, 동리는 3~5개씩 떼고 붙 이고 하여 지방의 공동체적 유대를 해체 했다. 또한 면의 기능을 강화하고, 90%

이상의 면장을 친일인사로 교체해 식민 지 지배 체제를 탄탄하게 완성했다. 이 렇게 해서 일본의 지배체제는 거의 완벽 하게 구축됐다.

이에 반해 1910년대 만주와 연해주에 건설한 우리 독립운동기지들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산산조각 이 났다. 연해주에서 추진한 대한광복군 정부(정통령 이상설) 수립과 광복군으로 독립을 쟁취하겠다고 한 계획이 무산된 것이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갈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 라는 미국 학자는 “모든 혁명은 썩은 문

짝을 차 엎는 것”이라고 했다. 프랑스 혁 명, 러시아 혁명 등 모두 낡은 체제가 자 체 모순으로 썩은 문짝처럼 흔들흔들하 던 것을 혁명세력이 발로 차서 넘어뜨렸 다는 것이다.

그러나 3·1운동 때 일본은 국제적으로 는 전승국, 경제적으로 흑자국, 그리고 식민지 지배체제를 완성한 시점이었다.

썩은 문짝이 아니라 새로 튼튼하게 만든 철문이었다. 거기에다 우리 독립운동은 대전의 발발로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3·1운동은 이런 상태에서 불가능에 도전 해 일어났다. 기적 같은 일이 아닌가?

둘째, 3·1운동은 우리 민족이 자발적 이고 창조적인 민족임을 보여 주었다.

1919년 3월 1일 태화관에서 민족대표 들은 독립선언 후 곧바로 경무총감부에 구금됐다. 발발하는 순간 운동 지도부가 공백이 된 것이다. 당장 파고다 공원에 서 문제가 됐다. 오후 2시 입추의 여지없 이 청년학생, 시민들이

모여 들었는데, 어떠한 주도자도 나타나지 않았 다. 결국 회중 속에 있던 청년지사(정재용) 한 사 람이 스스로 나서 자신 이 갖고 있었던 선언서 를 낭독해 거대한 독립 만세운동이 시작됐다.

지방에서도 민족대표 를 원망하고 앉아 있지 않았다. 주민들이 스스 로 주도자가 되어 온갖 창조적인 방식으로 운동 을 계획하고 이끌었다.

자발적으로 기꺼이 참여 하고 봉사하며 희생하는 새로운 국민, 새로운 시 민정신이 탄생했다.

셋 째 , 3·1운 동 은 21 세기 새로운 길을 제시 했다.

20세기 전반은 제국주 의의 침략과 식민지 지 배, 폭력과 억압의 시대 였다. 3·1운동이 일어나 면서 변화가 시작된 것 이다. 약소국의 독립이 거대한 물결을 이루며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제1·2차 세계대전을 치 르면서 47개국이, 1950

~60년대에 아시아 아프 리카 90개국이 독립했 다. 다시 80~90년대 구

소련 치하의 동구권이 해체되면서 29개 국이 독립했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 200 여 개 독립국가 시대가 된 것이다. 그 세 계사적 전환의 시점이 3·1운동이 일어 나던 그 때였다. 세계는 3·1운동이 제시 한 ‘독립’ ‘해방과 자유’의 길을 따라 전 개되었다.

수평적 연대, 협력, 자발성 분출 다른 한편 20세기 전반은 혁명의 시 대, 영웅의 시대, “나를 따르라!”는 시대 였다. 그러나 3·1운동으로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가 합시다!”하는 운동이 탄생한 것이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 서 개개 마을 상황에 따라 독창적인 방 법을 생각해 냈다. 거리시위는 기본이 고, 상가 철시시위, 산상 봉화시위, 시신 을 운구하며 벌인 운구시위 등 갖가지 방법이 다 창안됐다. 수평적 연대와 협 력, 위대한 자발성이 분출됐다.

21세기가 되면서 20세기 식 “나를 따 르라!”는 영웅주의, 수직적인 지시통제 문화가 퇴조했다. 자발성과 창조성이 화

두가 됐다. 100년 전 3·1운동은 바로 21 세기가 절실히 요구하는 수평적 문화, 다원적 협력, 쌍방향 소통의 길을 실제 로 열어 보여주었다.

3·1운동은 한민족이 불가능에 과감히 도전한 역사였고,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국민의 탄생이었으며, 21세기 새로운 방 식 즉, 수평적 문화, 다원적 협력, 쌍방향 소통이라는 3·1문명의 길을 제시한 운동 이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우리 민족은 세계의 선진국, 21세기 신문명의 선도자 라 할 수 있다.

해방 후 자유의 나라가 되자 한강의 기 적, 한류 문화가 불같이 일어난 것은 결 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3·1운동을 기 억하고, 3·1운동이 보여 준 도전정신, 자 발적 능동적 국민, 21세기적 수평적, 다 원적, 쌍방향적 방식을 발전시켜 간다면 한민족은 세계에 우뚝 서는 위대한 민족 이 될 것이다.

이정은(사) 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전 독립기념관 수석연구원

도전정신, 창조적 민족 알리고 독립국가 모범 보여





 





    







나라사랑교육강좌 ⑧ 3·1운동의 위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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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2호 2017년 3월 1일 수요일 (월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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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

충북 청주 출신인 선생은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 하는 등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선생은 18세 쯤 동학에 입도한 후 1894년 손병희와 함께 6만 명의 교도 를 이끌고 동학혁명에 참여했다. 1908년 손병희 선생 이 일본에서 귀국해 천도교를 일으키자 이에 입교해 전제관장, 이문관장 대리, 금융관장, 보문관장 등을 역임했다.

1919년 2월 25일경 천도교 기도회 종료보고와 광무 황제 국장 참배를 위해 상경해 천도교 지도자인 손병 희, 권동진, 오세창 선생 등과 함께 3월 1일 독립선언

에 민족대표로 참여하기로 했다,

2월 27일 김상규 선생의 집에 모여 독립선언서 초 안을 검토했으며 민족대표로 서명하고 날인했다.

3월 1일 인사동 태화관에서 선생과 민족대표들은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포하고 만세를 외치다 일본경찰에 체포돼 경시청총감부에 구금됐다.

이후 1920년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 받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선생은 천도교 종리원의 서 무와 주임을 거쳐 중앙교회 심계원장, 감사원장, 선 도사 등을 역임했다.

김형우 삼조는 해병 독립 제5대대 분대장으로 1951년 6월 24일부터 7월 23일까지 김포지구 월암리 전투에 참 가했다.

당시 독립 5대대는 육군 제1사단의 작전지시에 따라 월암리에 정찰대 본부를 두고 개성 방면의 철저한 수색을 감행하며, 장애물 설치, 진지 보강 등 방어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수색작전은 긴박한 상황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고, 미 제1군단장과 육군 제1사단장으로부터 “수색정찰 의 철저여하에 따라 승패가 좌우된다. 티끌만한 움직 임도 놓치지 마라”는 특별지시가 거듭 내려왔다.

1951년 7월 23일 2개 소대로 편성된 정찰대는 개풍군

월암리 지역에서 적 1개 연대병력에 포위돼 전멸의 위기를 맞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김형우 삼조는 결사대에 자원, 5 명의 대원을 이끌고 총탄이 빗발치는 포위망을 뚫으 며 침착하게 적 앞 10미터 이내까지 접근해 격렬한 총격전을 벌여 본대의 철수를 필사적으로 막아냈다.

총격전 끝에 실탄이 떨어지자 김형우 삼조와 5명의 결사대원은 마지막 수류탄을 던져 15명의 적을 사살 하고 과감하게 돌진, 개머리판을 휘두르며 일당백의 육박전을 벌였다.

결사대는 수적으로 절대 열세였던 정찰대의 퇴 로를 열어 수많은 전우의 목숨을 구하고 끝내 산화 했다.

이달의 독립운동가 권병덕

선생(1868~1943)

민족대표의 한 사람으로 독립운동에 동참

월암리의 꺼지지 않을 빛으로 남다

이달의 6·25전쟁 호국영웅 김형우

해병대 삼조 (?~1951. 7. 23)

신녕전투는 북괴군이 낙동강 전선에서 마지막 공세(9월 공세)를 펼쳐 국군 제8사단의 방어선을 돌파하고 영천 동측방으로 진출하고 있을 때, 영 천 북방의 신녕 지역을 방어중이던 국군 제6사단 이 북괴군 제8사단의 침공을 저지하고 이들의 영 천 지역 진출을 막아낸 방어전투다.

이 전투에서 국군 제6사단은 신녕 북쪽의 조림 산과 화산동 일대에 방어 진지를 구축해 북괴군의 공세에 대비하고 있던 중, 10여 대의 전차로 증강 된 북괴군 제8사단이 공격을 가해오자 17일 동안 공방전을 전개한 끝에 이들을 격퇴했다.

이 교전에서 사단 특공대는 새로 지급된 3.5인치 로케트 포로 북괴군 전차 8대를 파괴해 전차 중심의 돌파작전을 시도하던 북괴군의 공격을 저지했다.

특히 제6사단 19연대 1대대 소대장이었던 변규 영 소위는 특공대장으로 자원해 5명의 특공대원 을 선발하고 잠복에 나섰다. 특공대는 직접 전차 를 파괴하고 인민군 소위 1명을 포함해 5명을 생 포하는 등 큰 전공을 세웠다.

이때 북괴군 제8사단은 유엔 공군의 활발한 활 동에 제압돼 주로 야간 공격을 감행했으나 국군 제 6사단의 완강한 저항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이 전투로 북괴군 제15사단은 영천 지역에 고립 된 채 격파 당했으며 국군과 유엔군은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북한의 남하를 저지하다

3월의 6·25 전투

<신녕전투>

신녕전투 중 포로를 잡은 병사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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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일 수요일 (월간) 제862호 11

속초시는 6·25전쟁 기간에 전사한 한호 외 53위의 속초 출 신 호국군경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충혼탑을 건립했다.

<사진>

6·25전쟁 기간 속초시민은 조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북한군에 맞섰으며, 많은 젊은이들이 아군의 후퇴와 방 어, 반격과 북진, 3·8선 인근의 고지쟁탈전, 빨치산 토벌작전 등에서 조국을 지키다 전사하거나 부상을 당했다.

속초시는 이곳 출신 전몰용사들의 숭고한 애국심과 애향 심을 후대에 널리 계승시키며 나아가 그들 유족들을 위로하 기 위해 충혼탑 건립을 추진해 1964년 5월 1일 속초시 동명동 등대봉에 탑을 준공했으나 1969 년과 1987년 두 차례 이전해 도 문동 현재 위치에 세워졌다.

현재 남아있는 탑은 1987년 이 전 당시 새로 세운 것으로 앞면 좌우에 국군의 활약상을 조각한 청동상이 있고 뒷면에는 비문과 전사자 명단을 새겼다.

계절은 바다를 통해 상륙한다

바다에서 먼저 계절이 제 몸을 드러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중에서 가장 먼저 오는 봄이, 가장 먼저 겨울을 몰아낸다

그리고 봄으로 봄을 불러 세상 모든 곳이 봄이 되게 한다

오늘 햇살에 부서지는 파도 끝에서 대롱대롱 달린 겨울이 떨어져 나간다 처얼썩 소리는 그의 뒷자락인 듯 어둠을 싸안고 저만치 달아난다

어깨를 펴고 얼굴을 펴고

땅에서 솟아나는 새로운 열기에 귀를 기울인다

<지역현충시설>

속초 충혼탑

커버스토리 - 속초 동명항

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