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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도 식민화와 산업혁명의 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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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도 식민화와 산업혁명의 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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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갈제국

무갈 제국의 끊임없는 영토 확장 정책은 국력의 낭비를 가져왔고, 너무 넓 은 영토를 확보함에 따라 자연히 중앙 정부 권력이 약화되었다.

특히 아우랑제브가 벌인 수년간에 걸친 마라타(Maratha) 동맹과의 전쟁 은 제국의 자원을 고갈시키고 데칸 지방의 융성한 무역과 산업을 황폐 화시켰다.

여기에 아우랑제브는 아크바르 이래로 샤 자한까지 꾸준히 유지된 무 갈 사회의 기틀인 종교 융화 정책을 폐기하고 지즈야를 부활하면서 힌 두들의 많은 불만을 야기하였다.

귀족들의 타락과 당파 싸움도 무갈 쇠퇴의 큰 원인이었다.

세금 징수권을 둘러싸고 발생한 정부 관리와 징세 청부인과의 갈등 그 리고 조정의 파벌 싸움 또한 황제 권력의 약화를 불러왔고, 결국 제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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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갈제국의 쇠퇴

결국 18세기 무갈 말기에는 제국 정부는 명목상으로만 존재하였고, 많은 수의 독립 혹은 준독립 상태의 토후 세력들이 전국에 걸쳐 등장하였다.

남부 인도의 하이드라바드, 남서부에서 출발하여 델리까지 판도를 키 운 마라타, 동부의 벵갈, 서부의 라즈뿌뜨, 뻔잡 등이 대표적인 세력이었 다. 이들은 대체적으로 법, 행정, 사회, 조세 등의 정책을 새롭게 수립하 여 개혁을 시도했으나 총체적인 사회 변화와 경제 위기의 극복에 실패 하였다.

그러나 무갈 쇠퇴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사회 변화 의식이 없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봉건 귀족 세력에 맞서는 새로운 세력이 형성되지 못하였 고 따라서 국민 국가와 같은 새로운 정치·사회의 정체성에 입각한 체제 를 이루어내지 못했다. 그들은 여전히 전근대적인 카스트와 지역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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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변화

17세기 유럽은 봉건 사회가 여전히 잔존하였으나 강력한 왕권을 중심 으로 근대 국가의 체제가 갖추어지고 초기 자본주의가 성장하기 시 작했다.

당시의 절대 왕권은 중상주의 경제 정책을 실시하면서 공업의 육성 과 발전을 이루어냈다.

이에 낡은 봉건적 세력과 새로운 자본주의적 세력이 충돌하였으나 서유럽을 중심으로 후자의 세력이 점차 막강해져 갔고 결국 17세기 영국에서 두 번의 혁명을 겪은 후 절대주의가 무너지고 입헌정치가 수립되었다.

당시 서유럽의 중상주의 경제 정책은 국내에서의 물품 수급을 원활 하게 하고 대외 수출을 증대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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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변화

대외 수출을 증대시키고자 하려면 지리상의 발견과 보조를 맞추면서 자연 스레 식민지 정책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국내 공업에 필요한 원자재를 값싸고 쉽게 확보할 수 있고, 국내 상품을 쉽고 유리하게 판매할 수가 있어 식민지 확보에 열을 올렸다.

영국의 인도 정복은 이런 맥락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영국은 인도네시 아를 차지하기 위한 각축전에서 네덜란드에게 패한 후 인도에 전력을 다하기로 한 상태였다.

동인도회사는 인도의 무갈 황제로부터 제국 내의 어디에서나 상관을 자유롭게 설치할 수 있는 포괄적인 허가를 획득하려 했으나 실패하였 다. 그래서 결국 각 지역의 통치자로부터 개별적인 상관 설치 권리를 얻 으려 했고 급기야 동인도회사는 처음으로 아라비아 해 연안에 있는 수 라뜨에 상관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이를 필두로 쩬나이, 뭄바이, 꼴까따 에 상관을 설치하고 요새를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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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묘한 인도 침투

18세기가 되면서 영국에서 면직물 산업이 주목받으면서 당시 면직물 가 내 수공업이 크게 발달한 벵갈이 큰 주목을 받았다.

동인도회사는 아우랑제브 사후인 1717년에 공무역에 대한 관세 면제 특권을 획득하면서 본격적으로 벵갈 공략에 착수한다. 그렇지만 당시 의 관세 면제 특권은 사무역과는 관계가 없고 오로지 공무역에만 주어 진 것이었는데, 당시 벵갈 정부 관리들이 부패하여 모든 사무역에도 공 공연히 면세 무역이 이루어졌고 이로 인해 정부 재정이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이때 벵갈 지역에 눈독을 들인 영국은 프랑스를 일축한 후 동인도회사 를 앞세워 1757년에 벵갈과 쁠랏시(Plassey)에서 싸웠다.

초반에는 패했으나 쩬나이로부터 구원군이 도착한 후 전세가 역전되 었고 결국 벵갈 태수는 굴욕적인 조건으로 강화를 체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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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갈 침략 성공한 동인도 회사

쁠랏시 전투에서 승리한 동인도회사는 벵갈 태수 임면권을 장악한 후 당시 태수를 폐하고 새로운 인물을 꼭두각시로 앉혔다.

그 후 동인도회사는 새로운 태수로부터 많은 이권을 챙기는 데 온 힘을 다 기울였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벵갈로부터 비하르와 오릿사 지방까지 확대된 관세 면제 특권을 획득한 것이었다.

이 특권은 무갈 정부로부터 이미 받은 공무역 면세 특권을 넘어 사무역 에까지 범위가 확장된 것이었다.

이와는 반대로 인도 상인들에게는 무거운 세금이 부가되었다.

관세 면제 특권 외에도 동인도회사는 전쟁 발발에 대한 배상금을 지불 받았고, 캘커타에서의 자유로운 요새 구축을 허가받았으며 주화 주조 권도 획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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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식민지화

결국 인도 상인들과 토후는 몰락하고 동인도회사는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 다. 그리고 1765년에 무갈 제국 정부로부터 벵갈, 비하르, 오릿사 지방의 조세 징수권까지 확보하였다.

이 지역의 세금 징수권을 획득하면서 동인도회사는 광대한 벵갈의 부(

富)를 장악하게 되었다.

영국의 손에 들어간 벵갈의 부는 인도 침략에 쓰일 군대와 행정의 조직 에 적극 활용되었다.

그리고 획득한 부를 무역에 재투자하여 더욱 막대한 부를 획득하였는 데 이것은 영국의 산업혁명 발생의 재원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쁠라시 전투로 인해 영국은 종래의 무역 활동에서 벗어나 인도를 식민 경영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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쁠랏시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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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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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내부에서 세력확장

동인도회사를 앞세워 인도에 들어 온 영국 제국주의는 1757년 이후 벵갈, 비하르, 오릿사 등 인도 북부의 일부 지역을 통치하였다.

하지만 동인도회사가 그 지역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권을 행사하긴 했 지만 그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가지고 있던 무갈 제국은 적어도 형식적 으로는 엄연히 살아 있었고, 심지어는 벵갈의 토착 지배권도 완전히 망 한 것도 아니었다.

동인도회사는 이곳에서의 불평등 무역을 통해 확보한 이익과 엄청난 규모의 조세로 행정 조직을 갖추고 대학을 만들어 하급 관리를 양성하 였고 많은 인도인을 용병으로 불러 모아 군대를 조직하였다.

*동영상 자료 시청

*당시 인도 주변의 세계정세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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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국민의 문제

1800년 초가 되서 북부의 가운데 지역과 남부의 큰 세력들이 복속되었다.

그 가운데 일부는 주권을 완전히 상실한 곳도 있고, 일부는 보호조약을 체결하여 외교와 군사의 보호 아래에 놓이게 된 경우도 있었다.

보호조약을 체결한 곳에서는 그 나라의 군대를 해산해야 했고, 동인도 회사가 자기 군사를 주둔시키는데 드는 비용을 부담해야 했고, 이웃에 있는 적대 세력과 전쟁을 하면 서로 도와준다는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동인도회사는 인도 전역에서 인도 세력끼리 힘을 모아 저항할 수 있는 기회를 미리 차단하였다.

* 1799년 남부 인도의 강자 마이소르가 영국과 그 보호조약 아래에 있던 하이드라바드 연합군에게 패배하면서 인도는 급격하게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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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국민의 문제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게 된 결정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는 18세기까 지 인도에 하나의 민족 의식이 형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동인도회사가 들어 올 무렵 인도 각지에는 상당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 는 세력이 꽤 있었으나 그들은 서로를 하나의 민족으로 인식하지도 않 았다.

따라서 동인도회사를 앞세운 영국을 공동의 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불 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서로 영국과 합세하여 상대방과 싸우는 일이 비 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중국사에서 볼 수 있는 서구 열강의 침략에 대한 중국 전체 단위로서의 저항 같은 것은 일어나지 못했다.

*중국과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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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국민의 문제

중국에서는 청조가 영국과 싸워 그 패전의 멍에를 쓰고 불평등조약 을 맺어 이권을 넘기거나 영토의 일부를 넘기는 일이 일어났지 만 인도에서는 무갈조가 영국과 직접 싸워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인도 안에 존재하던 모든 이질적인 세력이 하나의 인도 민족이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아이러니 하게 영국이 그들을 하나 의 식민 대상으로 삼으면서 지배를 한 지 약 100년 정도 지난 뒤 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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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식민지가 된 인도

• 1757년부터 시작된 영토 확장은 1856년에 가서 대부분의 세력이 영국 에게 복속되면서 끝난다.

물론 여전히 영국에게 복속을 당하지 않거나 영국이 일종의 방패의 역 할로 복속시키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둔 상태의 독립국의 상태로 있었 던 곳도 많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동인도회사를 앞세운 영국은 인도의 각 세력을 최 대한 분리시켰고 그로 인해 인도인의 손에 의해 인도의 각 세력이 추풍 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는 사실이다. 근대적 의미의 민족 의식이 존재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갈 제국이 통치권을 박탈당하고 완전히 망한 것은 1859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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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타 전투

(17)

19세기 인도

(18)

델리의 붉은 요새

(19)

세포이 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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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의 마지막 황제

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