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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문화, 디자인, 그리고 과학·기술의 상호구성성 이해 - 행위자네트워크이론의 이해를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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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일_2018.12.10 심사기간_2019.01.01-16 게재확정일_2019.01.23

사물의 문화, 디자인, 그리고 과학·기술의 상호구성성 이해 - 행위자네트워크이론의 이해를 중심으로 -

Understanding the Co-Constructivity of Culture of Artifacts, Design, and Science & Technology - focusing on understanding Actor Network Theory -

민수홍, 경기대학교 융합교양대학 교양학부

Min Soo-hong_Division of General Studies, College of Liberal Arts and Interdisciplinary Studies, Kyonggi University

차례 1. 서론

2. ANT란?

3. 사물의 문화를 새롭게 독해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ANT의 특징 4가지 3.1. 관습적 사고가 만들어내는 경계 넘기

3.2. 비인간 행위자의 영향력에 초점을 맞춘 탐구 3.3. 행위자의 네트워크 관찰

3.4. 네트워크의 건설 및 그 과정에서의 '번역'의 관찰

4. 조형과 과학·기술의 상호구성 사례 분석

5.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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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문화, 디자인, 그리고 과학·기술의 상호구성성 이해 - 행위자네트워크이론의 이해를 중심으로 -

Understanding the Co-Constructivity of Culture of Artifacts, Design, and Science & Technology - focusing on understanding Actor Network Theory -

민수홍, 경기대학교 융합교양대학 교양학부

Min Soo-hong_Division of General Studies, College of Liberal Arts and Interdisciplinary Studies, Kyonggi University

요약 이 연구는 행위자네트워크이론을 조형 연구에서 활용하여, 문화 연구의 조형적 연구 역량과 더불어 조형 연구의 융합적 연구 역량을 함께 고양하는 방안을 살펴본다. 행위자네트워크이론은, 오늘날 인간의 다양한 활동과 기 억, 경험과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비인간 행위자로서의 여러 사물들과 인간의 복합적인 관계를 관찰하고 분석하는 사회과학 및 과학기술학 분야에서 비교적 최근에 각광받기 시작한 연구 이론으로, 과학·기술에 관한 지식이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탐구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이 연구 는 이러한 행위자네트워크이론을 조형 연구에 활용함으로써, 조형적 사고와 행위의 결과인 사물이 지니는 과학·

기술적 특성을 보다 능동적으로 사고할 수 있으며, 사물의 문화를 관찰하고 그 변화 양상을 분석하고 성찰하는 능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됨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행위자네트워크이론을 소개하고, 행위자네트워크의 다양한 특성들 중에서 융합적 조형 연구에 유효하다고 판단되는 네 가지를 이 연구의 목적에 맞춰 정리했다. 그런 다 음, 새로운 고찰 가능성 제시의 수단으로써, 사회적 활동으로서의 어떠한 조형 행위의 결과인 인공사물과 그것 이 지니는 과학·기술과의 관계를 드러내는 사례들을 행위자네트워크이론의 관점으로 분석했다. 이를 통해, 조형 의 결과와 과정, 그 객체와 주체의 관계 설정에 대한 논의가 뚜렷한 구분 자체가 모호한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 들의 네트워크를 따르는 상호구성적 개념에 속해 있음을 보였다. 결론에서는, 융합형 조형 연구의 방법론으로서 의 행위자네트워크이론이 갖는 장단점을 분석함과 아울러, 이 연구가 갖는 의의를 다루며 사물의 문화 및 조형 연구에서 관습적으로 활용되는 이분법적 사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This study examines the method of promoting the convergence design research characteristics by combining ANT with design research. ANT is influential theory in the field of Social Sciences and STS observing and analyzing the complex relationship of human beings with various artifacts as non-human actors making human identities today. It has been evaluated that it helps to grasp the co-constructive relationships between human being and artifacts that was not exposed according to existing ways of thinking. This study suggests that the using ANT as a design research methodology can help to consider the scientific and technological context as results of design thinking and performances, to enhance the ability to observe and reflect on the culture of artifacts, and the ability of thinking socio-political characteristics of artifacts. Therefore, this research presents another interdisciplinary perspective that explores the cultural and historical performativity and epistemology of artifacts through design research. To do this, this paper first introduces ANT and compiles the characteristics into four contexts associated with design studies. Then, this research analyzes some cases showing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artifacts and science & technology, which can be further refined in terms of ANT. Thus, this study shows that the results and processes of design, and the discussion of the relationship between objects and subjects of them, belong to a co-constructive concept that follows a networks of human and non-human actors, not separate or unified derivatives. In conclusion, dis/advantages of ANT as a methodology of interdisciplinary design research and the implications of this study are discussed.

중심어

행위자네트워크이론 조형 연구 방법론 과학·기술 상호구성성

ABSTRACT Keyword

Actor-Network Theory, research methodology, science &

technology, co-constructivity

(3)

1. 서론

조형에 관한 실천들은 인간의 다양한 사고와 영감으로부터 비롯한다. 그러한 사고와 영감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조형의 해당 주체가 경험한 사회문화적 상황을 반영한 형태에 대한 사고와 감성, 그것을 지원하는 다양한 재료들, 그리고 그 재료들에 대한 모델링 기법, 기술 등을 꼽을 수 있다.1) 이러한 사고와 감성은 조형 주체의 내부에서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해당 사고와 감성을 가능하게 하는 외부적 영향을 받아 복합적인 방식으로 변화하고 발전한다.

그리고 그 외부적인 영향의 주요한 몫을 담당하는 것은 오늘날 과학·기술 분야이다.2) 현대 사회에서는 어떤 가치나 대상, 사건에 대한 판단의 준거를 마련하거나 그 실천 방식을 계획하 고 논의함에 있어 과학·기술 분야의 지식 생산 및 그 교류의 방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3)

이러한 배경에 따라 연구는, 사물과 인간의 복합적인 관계를 분석하는 사회과학 및 과학기술학 분야의 연구 방법론인 행위자네트워크이론을 조형 연구에 연결시키는 방안을 살펴본다. 그럼 으로써 조형 연구를 통해 사물의 문화와 역사, 미래를 살펴보는 또 다른 다학제적 관점을 제시 해보고자 한다. 연구는 다음의 순서로 이뤄진다. 먼저, 사물과 인간의 관계적 특성을 새로운 관점에서 분석하는 데 활용되는 행위자네트워크이론(Actor-Network Theory, 이하 ANT)을 소개하고, 그 특성을 네 가지의 맥락으로 정리했다. 그런 다음, 그 관계적 특성을 보다 새롭게 고찰할 수 있는 당대적 조형 사물과 과학·기술의 관계를 드러내는 사례들을 ANT의 관점을 통해 살펴본다. 이를 통해, 조형의 결과와 과정, 그 객체와 주체의 관계 설정 방식에 대한 다양 한 논의가 뚜렷한 구분이 모호한 상호구성적(co-constructive) 개념에 속해 있음을 밝힌다.

결론에서는, ANT가 조형연구방법론으로서 가질 수 있는 장점과 단점을 정리하고, 이 연구가 가지는 의의를 논한다.

2. ANT란?

ANT는 어떤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실천해가거나 그 자신의 욕구를 실현해가는 과정 에서 맺게 되는 다양한 사물들과의 관계적 특성 및 요소들 간의 영향 관계와 그 변화의 맥락을 관찰하는 연구 방법론이다. 독특한 점은, 영어식 표기의 약자를 따서 부르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인간이 아닌 대상도 행위자(actor)로서 분석 과정에 포함시킨다는 것이다. ANT는 이러한 관점을 통해, ‘통섭’과 ‘융합’ 그리고 이를 통한 ‘혁신’의 개념이 크게 영향을 미친 지난 10여 년간 사회과학과 인문학 분야에서 특히 주목을 받아왔다.4)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이러한 ANT를 정립한 이들은, 1980년대 초반에 과학기술과 사회의 영향 관계5)를 연구하던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 미셸 깔롱(Michel Callon), 존 로(John Law) 등의 서유럽 문화권의 사회학자들이었다. 이들은 1970년대 후반부터 진행했던 과학 연구에 대한 다양한 방식의 참 여 관찰 연구를 통해, 불변의 진리(truth)와 지식을 탐구하는 것으로 흔히 받아들여지는 과학·

기술과 그 지식의 ‘상대적’ 생산 및 교류 방식을 탐구했다. 이렇게 축적된 경험을 통해 1980년 대 이후로는 이러한 자신들의 연구 성과를 논문의 형태로 출간함과 아울러 개념으로서의 ‘객관 성(objectivity)’과 ‘사실(fact)’을 역사적이고 사회문화적인 관점에서 성찰하는 여러 영향력

1) 대표적인 연구 사례로는 Rob Thompson, 『Manufacturing Process for Design Professionals』, Thames & Hudson, 2007을 참조.

2) 이에 관한 선행 연구로는 Ulrike Felt, Rayvon Fouché, Clark A. Miller and Laurel Smith-Doerr (eds.), 『The Handbook of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4th Edition), The MIT Press, 2017; 홍성욱, 서민우, 장하원, 현재환 지음, 『21세기 교양, 과학기술과 사회』, 나무+나무, 2016; 데이비드 에저턴 지음, 정동욱, 박민아 옮김, 『낡고 오래된 것들의 세계사』, 휴머니스 트, 2015; 홍성욱, 『생산력과 문화로서의 과학 기술』, 문학과지성사, 2002을 참조.

3) 현대 과학·기술이 지니는 이러한 사회문화적 특성을 분석하며 함의를 제시하는 최근의 연구 성과들을 망라한 연구로는 Ulrike Felt, Rayvon Fouché, Clark A. Miller, Laurel Smith-Doerr, eds., 『The Handbook of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 s』, Cambridge, The MIT Press, 2017을 참조.

4) 브루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엮음, 『인간·사물·동맹』, 이음, 2010, p.17 참조.

5) 예컨대 ‘실험 장비의 차이에 따라 그 실험 대상으로서의 자연을 다르게 정의하는 과정에 대한 관찰과 성찰’이나 ‘과학실험실, 연구 시설 등에서 만들어져 표준화된 지식이 여러 단위의 지역 사회로 퍼져가며 점차 변화하는 과정에 대한 관찰과 성찰’에 관한 연구 등을 꼽을 수 있다.

(4)

있는 단행본들을 집중적으로 출판함으로써, ANT를 대표적인 사회분석이론의 하나가 되게 했다.6) ANT의 영향을 받은 연구 성과들은 최근 크게 늘어나서, 이제는 이 이론이 STS 분야에서 처음 등장한 40여 년 이래로 다양한 전문 분야들 예컨대, 디지털화(digitalizing)와 컴퓨팅(computing) 에 관련하는 IT이론들이나 금융학은 물론, 사회의 불확실한 변화 양상을 다양한 가능성의 관 점에서 분석하는 경영학, 시스템 설계 등의 여러 공학 분야, 보건의학, 생태학, 미학 등으로 확산되어 분야의 연구방법론으로 활용되고 있다.7) 이러한 ANT는 국내에 제대로 소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영향력이 그리 큰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최근 사회학계 및 과학기술학계 를 중심으로 한 단행본 출간 및 연구 활동을 통해 꾸준히 그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8) 국내에 처음 소개된 지 20여 년이 다 되어감에도 ANT가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이유는 또 있다. ANT는 오늘날의 과학과 기술의 개념과 그 실현 방식을, 명확히 구분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같은 역할을 하는 ‘하나로 묶인’ 것으로 보며 이러한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테크노사이언스 (technoscience)”라는 개념을 활용한다. 이렇게 과학과 기술이 동일한 수행성(performativity)을 가진다는 개념 자체가 오늘날의 보편적 상식과 많이 다르기 때문에 낯설다. 더구나 국내의 인문학계나 사회과학계는 과학·기술에 관한 논의 자체를 합리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 분위기가 강해서9), ANT의 관점과 가치를 교육 및 연구 현장에서 익숙하게 만드는 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요구된다. 과학·기술은 ‘인간이 자연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고안해낸 것이고 인간이 앞 으로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민하면 되는 인간에게 종속된 것’이지 ‘어떤 과학·기술을 활용하고 그것에 익숙해지는 과정에서 인간은 물론 과학·기술도 이전과는 다른 정체성을 가지 게 된다’는 개념이 처음에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ANT가 연구 대상을 설정 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추가 설명이 많이 뒤따를 경우, 해당 분석의 함의를 한 번에 이해하기 힘들 때도 있다.

이어지는 절에서는 ANT의 여러 특징들 중에서도 특히, 사물의 문화를 새롭게 독해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네 가지를 정리해 보이겠다.

3. 사물의 문화를 새롭게 독해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ANT의 특징 4가지 3.1. 관습적 사고가 만들어내는 경계 넘기

ANT는, 인간과 사물10)의 관계와 그 관계가 속하는 맥락을 보다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 오늘날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세상(the world)의 다양한 경계(boundary)와 이러한 경계 에서 파생한 개념적 산물인 학문 분야들 간의 경계를 구분 짓지 않는다. 이러한 ANT가 ‘인간 (human)’과 ‘사회(society)’, ‘자연(nature)’을 각각 연구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과 사회과학,

6) ANT의 정립에 기여한 여러 학자들 중 오늘날 가장 영향력 있게 다뤄지는 이는 브뤼노 라투르이다. 라투르의 학문적 관점과 성과를 풀이하여 소개하는 저작으로는 아네르스 블록·토르벤 엘고르 옌센 지음, 황장진 옮김, 『처음 읽는 브뤼노 라투르』, 사월의책, 2017; 자신의 연구들을 라투르 그 자신이 설명하는 저작으로는 브뤼노 라투르 지음, 장하원, 홍성욱 외 옮김, 『판도라의 희망』, 휴 머니스트, 2018을 참조.

7) Chris Salter, Regula Valérie Burri, and Joseph Dumit, "Art, Design, and Performance", Ulrike Felt, Rayvon Fouché, Clark A. Miller and Laurel Smith-Doerr (eds.), 『The Handbook of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4th Edition), The MIT Press, 2017, pp.139-167; Alex Preda, "Machineries of Finance: Technologies and Sciences of Markets", Ulrike Felt, Rayvon Fouché, Clark A. Miller and Laurel Smith-Doerr (eds.), 『The Handbook of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4th Edition), The MIT Press, 2017, pp.609-634; Gwen Ottinger, Javiera Barandiarán, and Aya H. Kimura, "Environmental Justice: Knowledge, Technology, and Expertise", Ulrike Felt, Rayvon Fouché, Clark A.

Miller and Laurel Smith-Doerr (eds.), 『The Handbook of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4th Edition), The MIT Press, 2017, pp.1029-1057 등을 참조.

8) 국내에서의 대표적인 논문 출간 사례로는 이종찬, 「행위자-연결망 이론을 통해 본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TNR)과 공존의 정치」, 서 울: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석사학위청구논문, 2016; 오세욱, 「소프트웨어 '한글'의 행위자 네트워크 분석」, 서울: 서울대학교 대학 원 언론정보학과 박사학위청구논문, 2014; 김용, 「환자 중심의 의료서비스 변화: 의사와 환자의 커뮤니케이션 개선을 중심으로」, 과학기술학연구, Vol.13, No.2, 2013, pp.71-110; 홍민, 「행위자-네트워크 이론과 북한 연구: 방법론적 성찰과 가능성」, 현대북 한연구 Vol.16, No.1, 2013, pp.106-170을 참조. 이외에도, 한국연구재단 및 국립중앙도서관, 서울대학교중앙도서관 홈페이지에 서 “행위자연결망이론” 혹은 “행위자네트워크이론”을 검색어로 했을 때 드러나는 연구 사례들이 2010년대 이후로 급증함을 확인 할 수 있다.

9) 브루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엮음, 「인간․사물․동맹」, 이음, 2010, p.18 참조.

10) 여기서의 ‘사물’은 사회가 정한 다양한 분류방식에 따른 자연물, 인공사물 모두를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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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을 가로지르며 의식하는 가장 큰 경계는, ‘사회’와 ‘자연’을 분리시키는 경계다.11) 늘날의 흔한 생각의 방식(way of thinking)은, 어떤 ‘사회’와 그에 관한 지식은 해당 사회를 이루는 인간과 그 문화에 관한 이해에 근거한다고 보고, ‘자연’과 그에 대한 지식은 어떤 물질 (혹은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과 해당 대상이 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이해에 근거한다고 간주 하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전자는 이성과 감성이 결합된 인간의 지적 활동에 영향을 받고, 후자는 객관적이 고 사실적인 지식에 의해 이뤄진다고 여기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ANT는 사회/자연의 구분 과 이를 통해 생겨나는 ‘사실’과 ‘지식’에 관한 주관성과 객관성의 경계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다. 대상에 대한 ‘이해’를 위해 설정한 그러한 경계를 오히려, 보다 온전한 이해에 방해가 되는

‘편견’으로 간주한다. 어떠한 ‘경계’는 원래부터 주어진 게 아닌, 일정의 조정과 합의를 통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ANT는 또한, 현상과 대상에 대한 기존의 이해와 의미부여 방식을 뛰어넘기 위한 방도로, 우리 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펼쳐지는 어떤 상황과 현상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이종 (heterogeneous)’ 혹은 ‘잡종(hybrid)’ 등의 개념과 표현을 흔히 사용한다. 우리가 보는 현상 과 대상은, 시간과 공간의 차이에 따라 언제나 그 의미가 변화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변화 과정에서 인간 행위자와 비인간 행위자를 통해 어떤 개념이 그 나름의 맥락에 따라 이어지는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매개자(mediators)’나 ‘유사객체(quasi-objects)’ 그에 대비되는 ‘유 사주체(quasi-subjects)’ 같은 개념을 고안하거나 차용하여 활용한다.12) 이러한 접근을 통해 서 우리가 보다 편견 없이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생각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림 1>은 ANT의 분석 과정에서 활용되는 ‘정화(purification)’와 ‘번역(translation)’의 개 념을 설명하는 개념도이다.13)

ANT에서는 사회와 자연, 인간과 비인간 사물을 구분하는 기존의

‘이분법(dichotomy)’이 설정되는 과정에서, 그 각각을 이루는 요소 들을 규정하고 분류하는 작업이 어 떻게 이뤄지는지를 잘 관찰하는 것 이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어떠한 개념적 합의 즉, 더 이상의 조정과 분석이 필요하지 않은 단일하고 순 수한 요소를 정의하는 ‘정화’가 어 떻게 이뤄지는지, 그러한 ‘정화’를 거쳐 마련된 요소들이 어떠한 설명 즉 ‘번역’을 거치게 되는지를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서술하려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ANT가 설명해내는 인간과 비인간, 사회와 자연을 이루는 여러 현상들과 그것들에 연관 된 행위자들의 관계망(networks)은, 항상 요동치고 서로 얽혀 있다. 개념적인 ‘정화’의 작업을 통해 뚜렷한 인과 관계를 가지고 있고 동시에 확정적인 것으로 이해되던 인간과 사물들, 그리 고 그 사회와 자연의 관계망은, ‘번역’ 작업을 통해서 그 혼종성이 드러나며, 서로가 서로에게 끊임없는 영향을 언제나 주고받는, 변화무쌍하고 역동적인 것으로 새롭게 이해된다는 것이다.

11) 이 경계는 우리 일상에서도 인식론적으로 크게 작용하고 있다. 가령, '지금 창 밖에 보이는 수풀은 사회인가 자연인가'라는 질문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연'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창 밖 대상'으로서의 수풀은 거의 모두가 인간의 조경적 지 식과 그에 관한 실천에 관하는 것이어서, 이들 '자연'은 대부분 사회적 부산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균형 잡힌 인식일 수 있다.

12) 브루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엮음, 『인간․사물․동맹』, 이음, 2010, p.20 참조.

13) 출처: Bruno Latour, Catherine Porter trans., 『We Have Never Been Modern』, Harvard University Press, 1993, p.11.

<그림 1> ANT에서 활용하는 ‘정화’와 ‘번역’의 개념

(6)

3.2. 비인간 행위자의 영향력에 초점을 맞춘 탐구

ANT는 어떤 인간의 세계에 대한 이해를 매개하는 유무형의 다양한 비인간 행위자(nonhuman actor)들, 예컨대 그래프나 종이, 설계도, 표본,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배양된 세균, 그리고 측정 기구 같은 것들이 인간과 관계 맺는 방식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기존의 경계 짓기와 위계 설정 방식에서는 드러나지 않던 인간과 사물의 관계성을 다시 보게 해준다. 인간이 지닌 능력 이 차이는 그가 어떤 사물-비인간 행위자와 동맹을 맺는지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데, 바로 그 능력의 차이를 만드는 인간과 사물의 네트워크가 어떻게 건설되는지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14)

실제로 오늘날 우리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비인간들과 함께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여러 이슈나 ‘문제(problem)’들 때문에 삶의 방식이 달라지기 도 한다. 예컨대, 조형과 그 문화에 관련하는 구체적인 문제들인 ‘어떤 신분으로 보이기 위한 사물들의 동원과 치장 방식에 대한 고민’15)이나 ‘특정 문화권이나 계층의 대표적 주거양식과 생활양식에 대한 분석’16)과 같은 조형적인 연구 주제에서부터, 직접적이지는 않더라도 조형 연구와 연관된 분야들의 문제들이라고 할 수 있는 ‘대체 에너지원을 활용하는 운송 수단에는 어떠한 인센티브를 줄 것인가’, ‘신소재를 활용한 조명 제작 기법은 어떻게 정할 것인가’ 그리 고 ‘어떤 기계 장치가 안전사고를 유발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예방하기 위한 방법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17) 등에 이르는 문제들과 그 해결 과정은 인간과 비인간이 구체적인 결속을 맺어가며 이뤄진다. 결국 인간은 비인간을 통해서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지만 그 문제 해결을 통해 개선과 발전의 가치에 관하는 새로운 이슈와 문제들에 직면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다뤄가 는 과정에서 새로운 네트워크의 건설을 반복하는데, 이런 의미에서 인간이 갖는 어떤 정체성과 행동의 특성은 곧, 비인간과의 네트워킹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살아 가고 있는 ‘사회’는 이러한 인간-비인간 네트워크의 복합체(collective)가 중첩되어 이뤄졌다 고 할 수 있다.

한편, 우리가 어떤 ‘사회’를 상상할 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물적 요소로서의 비인간의 개입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바꾸어 말해, 비인간을 제외한 순수한 ‘자연’ 또한 상상하기 힘들다. 개념으로서의 자연을 대상화하고 객관화하기 위해서는 ‘자연을 자연이게 하 는’ 분류와 측정 등의 행위 및 그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비인간의 개입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 다.18) 아울러, 어떤 대상으로서의 자연의 가치를 가늠하는 방식은 결국 기준을 어떻게 적용하 는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떤 세균이나 동식물 등의, 인간의 가치관에 대해서 는 중립적인 생명체들을 ‘유해생물’로 지정하거나 이와 반대로 어떤 생명체와 그 서식지를 유 전자의 보존 및 종다양성(bio-diversity)의 유지-보전을 위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고 정부 적 차원의 보존과 제도적 복원 활동을 펼치는 일들은, 우리가 자연이라고 부르는 어떤 대상들 과 그에 관한 네트워크가 일정의 사회적 조정과 해석을 통한 것들임을 알게 해준다. 이러한 관점에 따라, ANT에서는 오늘날의 이산화탄소가 인간의 어떤 이익활동을 대변하는 노동조합 이나 시민단체의 활동 못지않게 정치적 성격을 띠는 비인간 행위자로 간주될 수도 있다.19)

14) 브루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엮음, 『인간․사물․동맹』, 이음, 2010, p.7. 참조.

15)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제작 유튜브 강연 ‘미인공감 37회 - 물건은 어떻게 부러워지는가?’ (https://www.youtube.com/watch?v=

nbp0bY-ttD4&t=48s) 참조.

16) 박해천, "1980년대 중후반 아파트 거실의 사물 배치에 대한 연구 : 여성지 『샘이깊은물』의 「볼만한 집치레」를 중심으로", Archives of Design Research, Vol.31, No.4, 2018 참조.

17) “넉 달 전 예고된 ‘연쇄 화재’…BMW, 결함 사전 인지 의혹” (jtbc 2018년 8월 4일) 기사 참조: 정부의 환경규제정책에 맞춘 배출가스 오염물질 저감장치인 EGR(배출가스 재순환장치)의 ‘문제’를 상이한 이해당사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살필 수 있는 좋은 사례이다.

18) 이러한 분석을 역사적 고찰을 통해 실증하는 사례로는 브뤼노 라투어 지음, 장하원, 홍성욱 옮김, 『판도라의 희망』, 휴머니스트, 2018의 5장 “사물의 역사성: 파스퇴르 전에는 어디에 세균이 있었나?”를 참조.

19) ‘디젤게이트(Dieselgate)’로 불리며 2015년에 불거졌던 자동차 배출가스측정 및 감소장비 운용 프로그램 조작 사건은, 지구온난 화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이산화탄소 및 환경 유해 가스의 배출량 감소를 목표로 이뤄졌던 여러 사회물질적-제도적 실천들과 그에 따른 역기능과 오류를 드러내는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개괄과 분석으로는 https://en.wikipedia.org/w iki/Volkswagen_emissions_scandal 및 https://www.practicalcaravan.com/blog/32270-how-the-vw-emissions-scan

(7)

지난 2015년에 벌어진 ‘디젤게이트(Dieselgate)’는 그런 면에서 흥미로운 사례다. 개인용 운 송수단의 어떤 ‘멋짐’을 표상하던 폭스바겐과 아우디 및 포르쉐 등의 자동차 회사들이 연루되 어 국제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디젤게이트’는 ‘주행거리당 이산화탄소 배출량 대폭 감소를 통한 지구 온난화 속도의 감쇄’라는 이상적 가치를 기술적으로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는데, 이는 곧 비인간 행위자로서의 이산화탄소가 지니는 사회적 가치에 관계된 또 다른 비인간 행위자인 기술과의 복합적 관계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아래 <그림 2>의 왼편 일러스트20)는 ‘디젤게이트’가 한창이던 때, 해당 사건의 성격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디젤게이트 이후 폐기되어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사막에 방치된 폭스바겐 및 아우디사(社)의 차량들을 상공에서 촬영한 오른편 사진21)은 그 이후의 후속효과를 보여준다.

<그림 2> 자연의 일부인 이산화탄소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그 여파(aftermath)

비인간 행위자의 사회적 영향력에 초점을 맞춘 이러한 분석과 고찰을 통해 우리는, 오늘의 사회와 자연이 구분되었다가 다시금 연루되는 방식과 그에 연루되는 인자들의 작용 방식을 관찰하는 태도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조형의 가치와 적절성, 우수성을 감별

하는 우리의 감각 또한 보다 객관 화해서 고찰할 수 있는 여지를 만 들어낼 수 있다.

<그림 3>은, 어떤 ‘진리(truth)’

를 표상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자 연’, 그리고 그에 대해 ‘오류(false)’

를 가지는 것으로 이해되는 ‘사회’

의 도식적 구별과 그에 따른 생각 의 방식을, ANT가 그 사고 방식 을 해체하는 인식론적 분석과 고 찰을 통해 새로운 ‘균형’ 즉 “대칭 성(symmetry)”을 형성하는 방식 을 보여준다.22)

세 단계의 균형 잡기 맨 마지막에 서 이뤄지는 “일반화된 대칭성 원리 (Generalized Principle of Symmetry)”

성립을 통해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만들어낸 개념으로서의 ‘자연’을 보다 객관적인 관점으 로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dal-affects-us 참조.

20) 출처: http://stollmeyer.eu/?p=426

21) 출처: https://www.engadget.com/2018/04/04/vw-dieselgate-epic-scale-the-big-picture/

22) 출처: Bruno Latour, Catherine Porter trans., 『We Have Never Been Modern』, Harvard University Press, 1993, p.95.

<그림 3> ANT가 추구하는 인식론적 균형과 ‘대칭성’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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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행위자의 네트워크 관찰

앞서 다뤘듯 어느 한 인간 행위자의 활동은 다양한 비인간 행위자들과의 네트워킹을 통해 이뤄 진다. 어떤 내용을 형식에 맞춰 수집·기록하여 정보화하고, 이를 통해 대상에 대한 이해를 마련 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하나의 행위자로서 비인간 행위자들과 끊임없이 교류한다.

<그림 4> 구강용 건강보조제들의 효과를 시각화한 인포그래픽

위의 <그림 4>는 구강용 건강보조제의 인기도와 그 기대효과를 풍선 경주처럼 시각화하여 보여주는 인포그래픽 디자인 사례이다.23) 인터넷 인프라와 공학적 알고리듬이 네트워킹 결과 인 ‘구글 검색어 인기도’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과학적 근거의 검색, 그리고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을 활용한 조형 행위의 결과이지만, 비인간 행위자로서의 해당 그래프는 또 다른 비인 간 행위자로서의 구강용 건강보조제를 지시하고 있다. 인터넷 접속을 통해 이 네트워킹에 참여 하게 되는 어떤 인간 행위자가 있다면, 그는 ‘적당한’ 정보 검색과 ‘적절한’ 선택을 통해 자신의 건강 상태를 지원하는 건강보조제와 연결될 것이며 이는 해당 인간 행위자의 변화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결국 인간 행위자 ‘나’와 그가 구현 중인 상태와 정체성은, 그가 연결된 복합적인 인간-비인간 행위자 네트워크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인 셈이다.

아울러, 어떤 인간 행위자의 행위 능력은 해당 인간 행위자의 네트워킹을 통해 연결된 여러 인간-비인간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을 거쳐 드러난 ‘관계적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자전거나 플라스틱 등의 하나의 사물이나 재료에서부터, 전기나 통신망, 수도, 도로, 철도 등의 비인간 행위자들이 네트워킹 하는 방식 또한 이와 같다. 예컨대, 오늘날 우리 일상의 물리적 이동성 (mobility)을 지원해주는 대표적 비인간 행위자인 ‘자동차’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일단 그것을 탑재할 바퀴 달린 손수레뿐 아니라 내연기관으로서의 엔진이 만들어졌어야 했다. 이러 한 엔진이 등장하기까지에는 19세기 독일의 기계 기술자이자 발명가인 니콜라우스 오토 (Nikolaus Otto)와 같은 여러 인간 행위자들의 관여는 물론, 이에 따른 성취를 대중에게 극적 으로 조형화하여 선보이며 그 투자 가능성을 홍보하기 위한 박람회와 같은 전시 행사도 필요했 다. 또한 고온에서의 기체 팽창과 압축의 원리를 설명하는 표준화한 이해 방식인 카르노 순환 (Carnot Cycle)을 비롯한 열역학 지식 및 그 지식을 만들어낸 과학자들이 기여했다. 동시대의 빌헬름 마이바흐(Wilhelm Maybach), 고틀리프 다이믈러(Gottlieb Daimler)와 같은 엔지니어 이자 발명가적 기업가들은 오토와 함께 4행정 기관(four-stroke engine)의 피스톤에 연료를 주입하는 기화기(carburetor)를 만들어 이를 내연기관에 연결하고, 이에 차체(body)를 얹어 서 지금의 자동차가 될 ‘탈 것’의 원형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림 5>에서 보듯, 그 조형성은 오늘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자동차의 그것과 무척 상이하다.24) 자동차가 그것을 실현시켜주

23) 출처: 민수홍·황수홍, 「조형과 디자인 사고의 데이터 재고찰-통계와 그 수행성 사례 분석을 중심으로-」, 기초조형학연구, Vol.19, No.1, 2018, p.203.

24) 출처: https://www.daimler.com/company/tradition/company-history/1885-1886.html 및 https://www.gottliebdaiml 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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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당시의 다른 기 술들과 네트워킹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미국의 헨 리 포드(Henry Ford) 는 동일 작업을 반 복적으로 수행하도 록 설계된 수백, 수 천 단위로 된 특수 공작기계와 노동자들을 하나의 컨베이어 벨트에 엮이도록 표준화하여 이전까지는 개별적인 수작업을 통해 생산되던 자동차가 하나의 대량생산 방식을 통해 만들어지도록 했다. 우리가 오늘날 경험하고 있는 자동차는 곧, 이렇게 수없이 다양한 인간 행위자들과 비인간 행위자들의 네트워킹과 그 관계적 효과를 따른 것이다.25) 또한 그것에는 단지 그 부속들과 그에 관한 특허 등의 기술만이 아닌, 수없이 다양한 관련 법규와 도로 및 신호 시스템, 그리고 석유나 가스, 전기, 수소 등으로 대표되는 연료 공급 시스템과 그에 관한 하부 구조(infrastructure), 이에 더해 탄소배출량 증가에 따른 지구온난화와 환경파괴라는 개념과 연계하여 수많은 조정 을 거치고 있는 이종적인 네트워크들이 겹쳐져 있다.26)

3.4. 네트워크의 건설 및 그 과정에서의 '번역'의 관찰

앞서 살펴보았듯, ANT가 설명하는 인간-비인간 행위자들의 네트워크는 이종적인 행위자들 이 복잡하게 얽혀서 이뤄진다. 또한 역동적이면서도 소멸되기 쉽다. 이러한 네트워크를 지속시 킴과 아울러 더 많은 행위자들을 끌어들여 그 영향력과 세(勢)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그때그때 의 상황과 여건에 따른 여러 가지 전략이 동원된다. 앞서 살핀 세 가지 특성들을 종합하는 것으로서의 ANT의 핵심은, 행위자들의 네트워크가 어떠한 ‘번역(translation)’을 따라 생겨나 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사전적 의미에서의 번역은 어떤 언어를 그것과 다른 언어로 풀이해내는 것을 뜻한다. 이는 곧, ‘어떤 언어로 된 말과 글을 그에 상응하는 뜻의 다른 말과 글로 바꾸어 전달하는 일’이다.

이렇듯 번역이 추구하는 이상(ideal)은 서로 다른 두 언어를 같게 하는 것이지만, 어떤 다른 두 언어도 의미론적으로 완전히 동일한 상태에 이를 수는 없고, 이러한 차이를 줄여나가는 과정을 통해 두 언어는 항상 새로운 차이를 갖게 된다. 이에 따라 번역은 결국, 같게 만듦과 동시에 새로운 차이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뤄지는 번역의 이러한 특성을 유비해서 ANT가 활용하는 ‘번역’ 개념은 ‘어떤 행위자가 가진 이해나 의도를 다른 행위자의 그것에 맞춰 바꾸기 위한 개념적 틀(conceptual frame)을 만드는 행위’를 가리킨 다.27) 물론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번역과 마찬가지로, ANT에서 다뤄지는 행위자들 간의 의도가 같아지는 것은 불가능하며, 어느 정도 유사해지는 과정에서 또 다른 차이가 새롭게 생겨난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의 과정은 곧, 새로운 질서(order)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ANT의 ‘번역’의 특성을 살펴보기 위해, 다시 한 번 ‘자동차’를 대상으로 삼아 그것이 언어별로 나 문화별도 이해되고 인식되는 방식의 차이를 살펴보자. 오늘날의 이탈리아 표준어에서 ‘자동 차’를 지칭하는 단어인 ‘macchina’는, 그 생김새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듯, 그것이 지닌 ‘기계’로 서의 특성을 드러낸다. 비인간 행위자인 자동차와 보다 구체적인 관계성을 만들어간 인간 행위

25) 브루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엮음, 『인간·사물·동맹』, 이음, 2010, p.23 참조: 자동차 디자인과 대량생산방식에 관한 보다 상 세한 분석으로는 http://global-autonews.com/bbs/board.php?bo_table=bd_022&wr_id=345를 참조.

26) 아울러, 이러한 네트워크를 이루는 여러 행위자들의 개별적인 실천(practices)은, 해당 네트워크가 가지고 있는 새로운 변화의 가 능성을 담지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하부구조'로 번역되는 인프라스트럭처에 관한 분석으로는 Stephen C. Slota and Geoffrey C. Bowker, 「How Infrastructures Matter」, Ulrike Felt, Rayvon Fouché, Clark A. Miller and Laurel Smith -Doerr (eds.), 『The Handbook of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4th Edition), The MIT Press, 2017 참조.

27) 브루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엮음, 『인간·사물·동맹』, 이음, 2010, p.25. 참조.

<그림 5> 1886년에 출시된 최초의 자동차(Benz Patent-Motorwagen Trycicle. 이미지 왼편)과 다이믈러가 발명에 참여하여 특허를 낸 기화기의 특허 도면의 일부(오른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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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 주로 남성들이었다는 인식이 반영되어, 자동차를 지칭하는 명사(名詞)가 여성형인 것도 또한 흥미롭다. ‘비인간 행위자의 성별을 그 주된 사용자의 문화적 성별과 교차 대비시키는 습속’

이 작용하여, 해당 대상을 인식시키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오늘날 자동차 보급률과 운송률이 가장 높은 국가인 미국에서는 자동차를 주로 ‘vehicle’,

‘mobile’, ‘car’ 등의 단어를 통해 표현한다. 영국에서는 자동차를 ‘motor’나 ‘car’ 아니면 앞의 두 단어들을 합친 ‘motorcar’로, 독일에서는 ‘auto’ 혹은 영어에서의 ‘짐마차(wagon)’와 유사 한 ‘wagen’으로 표현한다. 이렇게 언어별로 ‘자동차’라는 대상-비인간 행위자와 연결 짓는 기억과 경험의 차이가 해당 비인간 행위자의 ‘쓰임새’와 ‘자동성’에 관련함을 확인함으로서 ANT 연구에서 활용되는 ‘번역’의 개념과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비인간 행위자의 ‘활용성’을 언어를 통해 개념화하는 문화적 차이를 살펴볼 수 있기도 하다.

한편, <그림 6>은 대상에 대한 해석의 표현으로서의 ‘조형’과 ANT의 ‘번역’이 개념적으로 유사한 맥락에 속함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림 6>의 위 세 개의 자동차 의인화 캐릭터들의 눈이 차량의 전면유리에 놓여있는 데 비해, 아래의 캐릭터들은 전조등을 눈으로 표현했다. 아동용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자동차 캐릭터를 의인화할 때 그 눈을 어디에 놓느냐 에 따라서 자동차의 ‘눈’에 대한 인식이 생겨난다. 애니메이션의 주요 대상인 아동들은 그 인식 의 방법에 따라 자동차를 이해하고, 일상의 경험을 통해 이를 재인하게 된다.

두 가지의 다른 표현 방식을 부여받은 해당 캐릭터들은 곧, 그 주요 소구 대상인 아 동들이 자동차를 인식할 때 각각 ‘자동차의 시선은 곧 운 전자의 시선이다’와 ‘자동차 의 시선은 곧 자동차의 것이 다’라고 받아들이도록 하는

‘조형’, 달리 말해 ‘번역’의 경 로를 만들어놓았다. 감정을 담은 인간의 표정을 보다 풍 성하게 재현할 수 있고 운전 자의 전방 주시를 강조하는 현재의 자동차 운행 방식을 따르는 전자의 방식과 조형 행위의 결과인 자동차의 외양을 충실히 재현하는 후자의 방식 중 어떤 방식의 조형 혹은 번역 이 더 바람직한 것인지를 분명히 판정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을 통해, 우리 는 해석으로서의 조형과 ANT의 번역이 같은 개념적 맥락을 따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4. 조형과 과학·기술의 상호구성 사례 분석

이 절에서는, 당대적 조형 사물들과 그에 관한 과학·기술의 관계를 살펴본다. 이를 통해, 전문 적인 조형 주체로서의 작가와 디자이너, 그 대상 혹은 객체로서의 조형 결과물과 사용자와의 관계, 그에 대한 정량적 평가 및 정성적 분석에 관하는 여러 접근들이, 서로 구분 가능한 것보 다는 복합적인 인간-비인간 행위자 간의 네트워크를 통해 상호구성적인 영향 관계에 속한 것임을 보이겠다. 이를 위해 먼저, 인간 행위자가 구현하는 어떤 조형의 실천이 비인간 행위자 로서의 당대적 과학·기술의 수행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펴보겠다.

‘소비자 만족도 조사’ 등으로 대표되는 정량적 분석 체계나 ‘소비 트렌드 분석’ 등으로 대표되 는 정성적 분석 방식은, 비인간 행위자로서의 어떤 조형 결과물의 적절성과 우수성을 분석하거 나 그것을 가능하게 한 다양한 영향 관계를 분석하는 중요한 사회적 지표가 된다. 또한, 그 신뢰도에 따라 해당 비인간 행위자의 특성을 규정하는 영향력을 가진다. 그리고 어떤 조형의

<그림 6> ‘조형’을 통한 '번역'의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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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지표와 영향력을 만들고 그 권위를 높여가는 과정들은 항상, 과학·기술 분야가 지향적으로 실천하는 가치인 ‘객관성(objectivity)’과 ‘일반성(generality)’

을 표상(representation)하며 이루어진다. 조사 대상을 다루는 과정에 관여하는 조사 주체로 서의 인간 행위자가, 조사 객체가 속할 영역을 지정하는 과정에서 작용하는 자연과 사회, 이성 과 감성, 객관과 주관, 그에 대한 미감 등의 판단 기준들에는 이미, 과학·기술적 검증을 배경으 로 삼은 보편적 이해 형성의 태도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례 분석으로서의 <그림 7>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

<그림 7>의 왼편은 조형의 역 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아르누보(Art Noveau)’ 스타 일을 유행시킨 1900년 파리 엑 스포에 출품하여 금메달을 수상 한 전기자동차를 소개하는 당시 의 홍보포스터 이미지다.28) 른편은 지난 2017년 ‘기술혁신으로 인해서 판매 가격이 더욱 인하된’ 전세계의 전기자동차 기종들을 소개하는 기사에 등장한 시트로앵사(社)가 출시한 <C Zero 해치백> 모델의 공식홍 보이미지29) 중 하나이다. 그 조형적-기능적 우수성을 제각각의 방식으로 홍보하는 과정에서 제작된 두 이미지들은, 100년이 넘는 시차에도 불구하고 거의 동일한 재현 방식을 취하고 있 다.30)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조형에 관련한 분야에서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물의 고안 및 개선, 그 활용법의 연출 방식은 비인간 행위자인 사물이 갖는 과학·기술과의 관계적 특성을 고찰하고 분석함으로써, 그 결과를 구체화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조형 결과물을 기획-제작하 고 그것이 사회 속으로 뒤섞여 들어가는 과정에는 당대의 과학·기술에 관한 - 경제·문화 등의 개념을 포함하는 - 다양한 사회적 네트워크가 중첩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석은 그 반대의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다. 비인간 행위자로서의 인공사물 즉, 어떤 조형 결과물의 미학적 특성과 그 문화적 가치는 여러 인간-비인간 행위자의 동맹이자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는 여건을 마련하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과학·기술적 네트워크와 평가를 반영 하며 실현되기 때문이다.31) 다음의 <그림 8>이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한다.

‘공기를 가르며 낙하하는 물방울이 유선형 디자인을 이끌어냈듯 블루수노코의 가솔린은 그 유선형의 움직임을 이끌어간다’는 <그림 8>32)의 광고 문구에서 살필 수 있듯, 1930년대의 미국 가솔린 정유회사 블루수노코(Blue Sunoco)는 자사 가솔린 제품의 우수성을 홍보하는 광고에서 유선형 차량의 공기역학적 구조가 갖는 조형적 우수성 또한 함께 부각시켰다. 이러한 광고에서도 살필 수 있는 1930년대의 유선형 디자인의 큰 유행은, ‘유선형 물체가 운동 중에 공기 저항을 덜 받고 이에 따라 유선형 자동차가 고속 주행 시 연료를 덜 소비한다’는 과학·기 술적 지식에 관한 이해를 반영한 것이었다.33)

28) 1900년 파리엑스포를 포함하는 시기별 주요 박람회들은 당대의 다양한 과학·기술적, 문화적 성취의 홍보와 경연을 통해 시대별 용구 문화와 유행의 흐름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조형의 문화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 라 등장하는 신기술과 신소재를 조형의 실천을 통해 해석적으로 수용, 활용하는 모습을 시대별로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1851년에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대전람회(The Great Exhibition)는 산업진흥에 대한 역작용으로 ‘미술공예운동(Art and Craft Movements)’을 촉발시켰고 1900년 파리엑스포는 ‘아르누보(Arte Nouveau)’가, 1925년 파리엑스포는 ‘아르데코(Arte Deco)’

가 유행한 구체적인 계기가 됐다.

29) 출처: https://driveev.net/2017/08/23/what-are-the-cheapest-electric-cars-to-run/#.W1agwNUzaUk

30) 하지만 그것에 관련하는 비인간 행위자들의 성격은 시기에 따라 크게 다르고, 그만큼 대사회적으로 이뤄지는 ‘번역’의 내용 또한 다르다. 오른편에 보이는 오늘날의 전기자동차는, 이 연구의 3.2에서 다뤘듯, 오늘날 그 정치적 영향력이 훨씬 강화된 비인간 행 위자 이산화탄소가 잊혀가던 과거의 과학·기술을 다시 호출해낸 경우로 보아야 더 적절할 것이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다음의 네트워크이다. 이미 1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전기자동차라는 비인간 행위자는 오늘날 ‘(지구를 살리는) 청정기술’로 서 거듭나, ‘연료의 산화 연소 및 그에 따른 온실가스의 직접 배출을 전제로 하는 구래의 네트워크’에 대한 새로운 경쟁의 구도를 형성해가고 있는 것이다.

31) 한국과학기술학회 지음, 『과학기술학의 세계』, 휴머니스트, 2014, p.7. 참조.

32) 출처: https://paleofuture.gizmodo.com/dymaxion-car-of-the-future-1934-512627398 33) 존 헤스켓 지음, 정무환 옮김, 『산업 디자인의 역사』, 시공아트, 2009 (초판 발행 2004), p.142. 참조.

<그림 7> 상이한 시대의 비인간 행위자들과 그 재현 방식의 조형적 보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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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맥락의 분석을 뒷받침하는 오늘날의 사례 가 <그림 9>이다. 특허 도면을 활용한 <그림 9>

의 광고이미지에서 보듯, 미국의 보네이도사(社) 가 개발한 제품인 해당 사물은 ‘선풍기가 아니’며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자신들의 제품이 갖 는 우수성이 비행기 엔진 설계에 바탕을 둔 공학적 특성 즉, 과학·기술적 내용의 조형적·미학적 활용 으로부터 비롯함을 강조한다.

<그림 7>에서 <그림 9>까지의 사례들에서 살펴 보았듯, 비인간 행위자인 인공사물이 그 조형적 접 근과 발전을 통해 실현되는 과정에서는 흔히 어떤 과학·기술과 그 우수성을 ‘번역’하는 활동이 이뤄진 다. 역으로,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양상은 조형의 결과물인 비인간 행위자 즉, 인공사물의 당대적 성 격 혹은 그것을 이루는 물질의 특성을 어떻게 ‘번 역’하는지, 달리 말해 어떻게 네트워크를 구성해 가 는지에 따라 큰 영향을 받게 된다.34) 과학·기술적 활동은 기본적으로 객관화를 통한 ‘측정’과 ‘분류’ 행 위를 바탕으로 하며, 해당 실천들은 그것을 가능하 게 하는 실험 장비 및 도구의 고안과 개발 즉, 조형을 통한 개념의 물화(物化)를 통해 가능해지기 때문이 다.35) 이 두 가지 맥락의 과정에는, ANT가 산정하 는 여러 인간 및 비인간 행위자들이 상호구성적 역 할을 담당하며 관여하고 있으며, 그 두 맥락의 명확 한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로 모호하게 뒤섞여 있다.

이제껏 살펴보고자 했듯, 우리 인간이 고안해낸 다 양한 종류의 비인간 행위자들은, 다양한 ‘번역’을 통 해, 과학·기술 분야로부터 비롯한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고 경험하는데 영향을 미쳐오 고 있으며 ‘조형’은 결국, 그러한 ‘번역’을 물화하는 실천에 다름 아니다. ANT를 통한 이러한 이해는 조형 분야가 그것과 함께 하며 조형의 실천을 이끄는 비인간 행위자의 특성과 영향력을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36)

34) 이러한 맥락의 분석을 ‘공간’의 구성 및 연출 방식과 관련하여 선행한 연구로는 서민우, “과학의 공간, 공간의 과학”, 홍성욱·서민 우·장하원·현재환 지음, 『21세기 교양, 과학기술과 사회』, 나무+나무, 2016, pp.76-95; 서민우, “실험실이라는 사회, 사회라는 실험실”, 홍성욱·서민우·장하원·현재환 지음, 『21세기 교양, 과학기술과 사회』, 나무+나무, 2016, pp.96-115; 오웬 한너웨이,

“실험실 설계와 과학의 목적: 안드레아스 리바비우스와 티코 브라헤”(김봉국 옮김), 김영식·박민아 공편, 『프리즘』, 서울대학교 출 판문화원, 2014, pp.97-140; Sophie Forgan, "The Architecture of Science and the idea of a University", Studies in History and Philosophy of Science 20(4), 1989, pp.405-434를 참조.

35) 이러한 맥락의 분석을 선행한 연구로는 이상욱, “구성주의를 넘어 정치생태학으로: 부뤼노 라투르”, 이상욱·홍성욱·장대익·이중원 지음, 『과학으로 생각한다』, 동아시아, 2007, pp.250-261; 홍성욱, “과학은 이론, 실험, 기구가 얽혀 발전한다: 피터 갤리슨”, 이상욱·홍성욱·장대익·이중원 지음, 『과학으로 생각한다』, 동아시아, 2007, pp.262-271; 브뤼노 라투르 지음, 장하원, 홍성욱 책임 번역, 『판도라의 희망』, 휴머니스트, 2018의 2, 4, 6장; Carsten Timmermann, Julie Anderson (eds.), 『Devices and Designs: Medical Technologies in Historical Perspective』, Palgrave Macmillan, 2006을 참조.

36) ANT를 조형 및 디자인 연구에 적용한 사례로는 Marija Cvetinovic, Zorica Nedovic-Budic, Jean-Claude Bolaya, 「Decoding urban development dynamics through actor-network methodological approach」, Geoforum, Vol.82, 2017; Yvonne Rydin, 「Using Actor–Network Theory to understand planning practice: Exploring relationships between actants in regulating low-carbon commercial development」, Planning Theory, Vol.12, No.1, 2012; K. Ruming, 「A new network direction in housing studies: the case of actor-network theory」, proceedings of Australasian Housing Researchers’ Conference 2008을 참조. 하지만 이들 연구는 모두 조형 및 디자인 연구에의 ANT의 적용 가능성 탐구에 그치 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조형과 디자인의 결과로서의 사물이 지니는 구체적인 행위성에 관한 연구는 조형과 디자인 분야보다는

<그림 8> 조형적 우수성의 근거를 과학·기술적 특성 으로부터 인용하는 사례 1 (1934년의 광고 이미지)

<그림 9> 조형적 우수성의 근거를 과학·기술적 특성 으로부터 인용하는 사례 2 (2017년의 광고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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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결론

ANT는 우리로 하여금 행위자로서의 어떤 인간에 연결되는 비인간 행위자의 특성과 그 관계성 을 통해 살펴보게 하는 이론이다. 이와 동시에, 어떤 비인간 행위자의 힘(power) 즉, 영향력이 증대되거나 감퇴하는 맥락을 인간 행위자와의 네트워킹 방식에서 보도록 하는 이론이기도 하 다. 이러한 특성을 지니는 ANT를 조형 연구에 접목했을 경우 기대되는 장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그간의 인식의 틀에 갇혀 보지 못하던 인간 외의 존재들-사물들-비인간 행위자들이 인간 행위자의 다양한 조형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볼 수 있다. 둘째, 조형 행위의 결과 물인 사물이 디자이너나 조형가가 생각지 못했던 과학·기술의 지식의 영향을 받는 네트워크 속에서 새로운 역할을 획득함을 관찰함으로써, 보다 새로운 조형에의 영감을 얻고 사물의 문화 를 성찰하는 능력을 고양함과 아울러, 그 미래의 변화 양상을 예측하는 능력을 신장시킬 수 있다. 셋째, ‘감성|이성’, ‘주관|객관’, ‘현대|전통’, ‘내부|외부’, ‘예술|과학’ 등의 이분법이 관 습적으로 설정되는 방식을 관찰하고 이를 역발상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겨남으로써 이분법적 사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릴 수 있다. (<그림 10> 참조)

<그림 10> 조형과 디자인의 결과물인 (비인간 행위자로서의) 사물이 지니는 과학·기술과의 상호구성성을 보다 능동적으로 이해하는 개념도

물론 단점이 없지는 않다. ANT는 요소들이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연구하는 방법이지, 요소들 이 맺는 관계의 성격이 무엇인지(자본주의적인지, 권력적인지, 기능적인지 등)를 규정하는 실질적인 이론은 아니다.37) 이러한 ANT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많은 개념적 훈련이 필요해 서, 이에 관련한 기초 문헌들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며 이해하기 위한 시간이 적지 않게 요구된 다. 기존의 관습적 사고방식의 영향력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사고의 훈련이 필요하 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NT는, 이제껏 활용되어온 조형 및 디자인 방법론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던 - 과학·기술 및 조형과 디자인의 상호구성물인-여러 사물들의 활동과 역할 들을 보다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며 그 복합적 영향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얻어내기에 무척 유용한 이론임에 분명하다. 우리가 흔히 가지고 있는 전통과 현대, 사회와 문화, 분야 및 그에 관한 전문성에 대한 생각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인간과 사물에 대한 기존의 관점과 태도들은, ANT를 통해 새로운 인식의 방법을 마련해낼 수 있고, 이를 통해 조형의 새로운 가치와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38)

우리를 둘러싼 비인간 행위자로서의 수많은 사물들은, 그것을 독해하는 관점이 어떤 것인지 에 따라 조형의 문화와 그 특성을 다루는 연구의 새로운 재료가 될 수 있다. 아울러, 다양한

사회학 분야의 성과로 분류되는 경향이 국내외적으로 짙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Elizabeth Shove (ed.),

『Infrastructures in Practice』, Routledge, 2018; Britt Östlund, Elin Olander, Oskar Jonsson, Susanne Frennert,

「STS-inspired design to meet the challenges of modern aging. Welfare technology as a tool to promote user driven innovations or another way to keep older users hostage?」, Technological Forecasting & Social Change Vol.93, 2015; Elizabeth Shove, Mika Pantzar, Matt Watson, 『The Dynamics of Social Practice: Everyday Life and how it Changes』, SAGE Publications, 2012를 참조.

37) 아네르스 블록, 토르벤 엘고르 옌센 지음, 황장진 옮김, 『처음 읽는 브뤼노 라투르 - 하이브리드 세계의 하이브리드 사상』, 사월 의책, 2017, pp.54-55. 참조.

38) 이에 따라, 어떤 경향의 ‘유행’, 그리고 그에 관한 조형과 디자인을 강화 혹은 약화시키는 공학 재료나 모델링 테크놀로지, 공작기 계, 자(ruler)나 제도용구, 색연필, 3-D CG 프로그램 등의 도구 혹은 사물에 관한 UI/UX 연구가 수행될 수 있을 것이다.

(14)

인식과 존재 방식을 통해 오늘의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와 미래에 대한 보다 새로운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행위자들이기도 하다. ANT를 통해 비인간 행위자로서의 사물이 지닌 가치를 재발견함으로써 그 관계적 특성을 바라보게 하는 것은, 조형이라는 ‘실천’

이 지니는 융합적 특성을 새롭게 성찰하게 하는 방법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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