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홍 빈
한국YMCA 전국연맹 정책기획3팀장 hbmoon@ymcakorea.org
들어가는 이야기
시민 운동이란 화두를 고민하며 산지 10여년이 훌쩍 지났다. 그러면서 항상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었다. 개인의 성숙과 사회 구조의 개혁이 동 시적으로 일어나는 운동은 정말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독재 정권하에서 대학시절을 보낸 필자는 사회 구조의 개혁이 전제되지 않는 그 어떤 것 도 인정하기 힘들었다.‘개인의 성숙’운운은 사치스럽기까지 했다. 이렇 게 1980년대 민주화 과정을 거쳐 1990년대 시민 운동에 투신하면서 필 자의 주된 관심은 정부나 기업의 구조적인 개혁에 있었다. 정부나 기업 의 구조적인 문제 이른바 이슈(issues)가 제거되지 않고는 진정한 의미 의 민주화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문가들의 도움 이 필요했다. 자연스럽게 운동의 방식은“반대”,“폭로”,“대안 제시”가 주를 이루었고, 운동의 성패는 여론화의 성공 여부에서 찾게 되었다. 이 런 방식에 점차 익숙해지면서 정작 시민의 변화와 성숙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 이슈가 해결되면 다른 이슈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필자에게 학습 공동체 운동이 다가왔다. 시민들을 대신 하여 이슈를 제기하고 해결하는 것이 늘 부담스럽고 벅찼던 필자에게 개 인의 성숙과 사회의 개혁이 동시적으로 가능한 운동을 알아가면서 경험 한 벅참과 설레임은 꽤 충격적이었다. 그 벅참과 설레임으로 지금까지 3 년이 흘렀다. 이 글은 필자의개인 의견이라기 보다는 지난 3년 동안 학 습공동체를 일구어 가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YMCA의 회원들 그리고 실 무자들과 함께하면서 깨달았던 기록들이다. 그 경험이“NGO의 평생학 습적 기능”이라는 특집의 내용으로 정리될 수 있을지 한편으로 걱정스럽 다.
직 업 과 인 력 개 발
24
학습의 주체로서 거듭나기 - 한 사람을 찾아서
“내가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삶이 무엇일까? 아 이들에게 가르쳐줘야 할 삶의 가장 귀한 가치는 무 엇일까? 그 질문 앞에서면 여전히 부끄럽기만 하 다. 하지만 나는 <내일을 다지는 부모 모임>을 통 해 나를 보려는 용기를 키웠고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중략)... 때로는 책을 읽으면서, 때 로는 강의를 들으면서, 때로는 집단 상담 시간의 울음을 통해서 나는 끊임없이 연습을 한다...”
이 글은 시흥 YMCA 학습 공동체의 하나인 <내일 을 위한 부모 모임> 회원 한분이쓴 소감문의 일부이 다. 이 글은 학습의 주체로서 거듭나기를 생생하게 보 여준다. NGO의 평생학습적 기능으로서 첫 번째 강 조하고 싶은 것은“학습의 주체로서 거듭나기”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이와 같은 평생학습적 기능을 수행 하기 어려운 장애물이 존재한다. 첫째가 학습에 대한 수동적 태도이다. 우리가‘배운다’라고 했을 때 항상 머리속에 떠올리는 것이 칠판과선생님이다. 그 동안 강의와 같은 일방적 대화 방식을‘가르친다’고 했고, 그의 가르침을 받는 것을‘배운다’라고 표현해 왔다.
이처럼 학습하면 일방적인 지식 전달이나 강요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누군가 가르쳐야 되고, 그 교 사는 무엇인가를 완전히 알고 있어야 하고, 책상과 의 자, 칠판이 있어야 하고...’그 밖에서 특히 생활속에 서 학습을 경험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아예 머리속에 없 었다. 결국 배우고 가르치는 관계속에서 교사(전문 가)가 아닌‘나’는 언제나 수동적인존재가 되도록 교 육 받아 왔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 정도의 차이일 뿐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둘째는 교육 미식가로의 유혹이라 할 수 있다. 급변 하는 사회를 따라가기 위해 초조한 이들, 다양한 취향 과 기호를 살리고 싶은 이들을 위해 백화점, 각종 사 회 교육기관에서는 다양한 메뉴를 차려 놓는다. 차려 놓은 메뉴를 맛보기 위해 이곳 저곳을 옮겨다니면서
‘맛있는 메뉴, 맛있는 집’을알아내고 그 정보를 나눈 다. 결국 교육수요자(대부분 성인 여성)나 강사들은
‘교육 미식가’가 된다. 아름다운 모습이고 그전에 찾 아볼 수 없는 모습이기는 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 로 안타까움이 있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여전히‘나’
는 학습에서 수동적인 존재로 머물게 한다는 점이다.
결국 학습에 있어서 수동적인 존재로 남을 때 학습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 가는 것’,‘가치관 변화’와는 무관할 수 밖에 없기 때 문이다.
한준상 교수는 학습을 인간의 본능으로 생각하면서 학습에 있어서 자기 자신의 주체성, 주도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지혜에로의 의지는 학습자에게 배움에 있어서 학습자 스스로의 자활감을 요구하고 있다. 이때 학습자에 있어서 자활감(empowerment)은 정치 적인 권력으로 남을 지배하거나 억제하는 그런 물 리적인 힘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보다는 학습 자 개인의 심리적인 자율 감각이나, 자기의 삶살 이를 위해 주변의 환경이나 조건을 교육적으로 활 용함으로써 학습자 스스로 그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정신적인 상태를 지칭한다. 학습 자 나름대로 갖고 있는 자활감은 학습하는 인간의 새로운 모습인 동시에, 배우는 행위를 스스럼없이 특 집 평생학습사회와 인적자원개발
즐기게 만드는 배움에로 이끄는 힘이다. 이 힘으 로 인해 자연스럽고도 천진난만한 몰입을 의미하 는 학습의 흐름과 배움의 즐거움, 그것을 끊임없 이 경신해 나가는 학습의 쾌락을 경험하게 만든다 (한준성, 2002).
한준상 교수가 지적하는 것처럼 학습자가 주체성을 회복하는 것은 곧 삶의주체로 회복되는 것이다. 그랬 을 때‘나’는 항상 수동적이고 주눅 들어 있는‘배우 는 자’만 아니고 때로는 자기가 깨달은 것을 다른 사 람과 가르치는(나누는) 자임을 깨닫게 된다. 또한 학 습의 공간이 학교라는 갇혀진 곳이 아니라 삶의 공간 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학습의 목적이 지식을 머 리속에 자꾸 집어 넣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된 삶 의 방식에 대한 성찰과 가치관 변화의 경험에 있다는 것을, 서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 한사람을 찾는 것, 그런 한 사람이 되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공동체성의회복- 학습공동체의 조직과 활동
NGO의 평생학습적 기능으로서 두 번째로 강조하 고 싶은 것은 학습 공동체 조직과 활동을 통한 공동체 성 회복이다. 첫번째 기능으로서“학습 주체로서의
나”에 대한 강조는 기존 일방적인 가르침만을 강조하 는 교육 학자들이 주장하는것처럼 사회와 역사로부 터 고립된 개인 학습자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동안 우리가 경험하는 성인 교육의 대부분은“학습 주체로 서의나”를 내면적으로 성찰하는 것과는 무관하였고,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 주지도 못하였 다는 반성을 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볼 때
“학습 주체로서의 나”는 사회와 역사에서 고립된 진 공 상태 속에서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서로간의‘관계’속에서 회복된다는 점을 강 조할 필요가 있다.
YMCA에서는 학습 주체로서의 나로 거듭나는“진 지”로서“학습 공동체”에 주목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학습 공동체란“5-10명으로 구성원들이 자발 적으로 모여 정해진 주제를 체계적으로 학습하는 모 임으로 전문가가 아닌 일반 주민들이 함께 주기적으 로 모여공통적인 관심사에 대해 학습하고 이를 실천 하는 소모임”을 말한다(이지혜, 2001). 피상적으로 볼 때 학습 행위는 개인 단위의 활동이라고 이해될 수 있지만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학습을 둘러싸고 있는 동기, 목적, 내용, 방법등은결국 집단적 상호 작용의 결과 및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한숭희, 2001). 이러 한 관점에서 볼 때, 공동체 학습의 핵심은 개인의 변 화를 넘어서, 개인과 공동체의 유기적 상호작용을 통
직 업 과 인 력 개 발
26
해 드러나는 공동체 자체의 변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 다. 개인의 성숙과 공동체의 변화가 동시에 가능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학습 공동체를 조직해서 학 습과 실천의과정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면서 참가자들 은 더 이상 자신이“개인”이 아니라“공동체인”라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자신의 성숙과 지역 사회의 변화 를 끊임없이 배우고, 반성하고, 실천하면서 말이다.
마을 만들기 -마을 전체가 배움터
NGO의 평생학습적 기능으로서 세번째 강조하고 싶은 것은“마을 만들기”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마을 만들기란 생활 주변 환경의 개선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간에 수단적인 만남이 아닌 만남 자체 를 즐기는 상호간에 전인적인 푸근한 관계를 형성하 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차원의 마을 만들기는 학습과 실천의 순환 과정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오늘 날의 마을은 더 이상 학습의 공간이라고 말하기에 민 망하다. 산업화 이후 삶이 생산 중심으로 재편성되면 서 교육이라는 활동은 마을로부터 떨어져 나와 별도 의 공간에서 자기 완결적 구조를 갖게 되었다. 즉 학 습과 관련된 모든 요소들은 가족과 마을에서 분리하 여 교육 기관(학교, 학원) 한곳으로 집결시켜 독점하 게 된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경험하고 있듯이 학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환경이 너무나 복잡해 졌다. 무엇보다도 경험에 바탕을 둔 감수성과 상상력 이 요구되고 있다. 그 경험은 닫혀진 교실에서 이루어 질 수 없기 때문에 구체적인 현장 즉 마을에서부터 시 작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마을이 다시 학습 공간 으로 거듭나야 한다.
광명 YMCA의“아름다운 마을 만들기”사례는 그
런 의미에서 주목할만 하다. 광명 YMCA 공동체형 생활 협동조합 운동을 하면서 형성된 지도력들은 한 아파트 단지를 학습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자치 부녀 회에 참여하게 된다. 이들은 교육 위원회를 구성하여 주민들 중에서 학습 자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 내서 마을 주민들에게 홍보하고 함께 배울사람들을 묶어 주고 장소를 제공해 주고 모임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지난 2001년부터 진행해 오고 있다. 생태에 대한 관심이 있던 회원은 인근에 위치한 산에서 봄에는 나비 학교 가을에는 나무 학교등과 같 은 생태 교육을 진행하고, 그림을 잘 그리는 회원은 수채화 교실을열고, 어학에 뛰어난 이는 일본어 교실 을 열었다. 그 밖에 자녀 교육에 관심 있는 이들을 위 한 강좌도 만들어 진행하였다. 한 해 동안 이들이 한 활동을 보다 많은 주민들에게 알리고 나누기 위해 마 을 축제도 열었다. 수채화도 전시하고, 풍물도 공연하 고, 마을 강좌에서 이루어진 결과물도 전시하였다. 광 명 YMCA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속에서“마을”을 재 창조해 가고있는 것이다.
자치 체험- 민주주의 훈련의 장
NGO의 평생학습적 기능으로 마지막으로 강조하 고 싶은 것은“자치 체험”이다. YMCA에서 학습 공 동체를 운영하면서 매우 중시하는 것은 자치와 자율 이다.“누군가 도와주지 않더라도 주민들이 스스로 협동하면 안 될 일이 없구나”를체험하는 것이다. 그 래서 학습 공동체 안에서는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로 구분되지 않는다. 구성원 모두가 자기 역할을 맡게 된다. 어떤 사람은 회원들의 건강에 관심을 갖고 도와 주고, 다른 사람은 회원들의 독서와 독서 토론을 도와 특 집 평생학습사회와 인적자원개발
마치는 이야기
이상에서 개인의 변화와 성숙에 기초한 사회 운동 으로서 학습 공동체 운동을 전개하면서 느낀 깨달음 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평생학습에 대한 전문적
면 하는 바램 때문이고, 두 번째는 평생학습을 전문적 으로 하는 이들이 이제 평생학습을 전문성이라는 이 름으로스스로 친 담을 과감히 허물고 보다 현장으로 내려갔으면 하는 바램 때문이다. 여기에서 나눈 작은 경험이 평생학습과 시민 운동의 퓨전(fusion)이 새롭 게 일어나는 단초가 되었으면 좋겠다.
<참고문헌>
이지혜(2003), 성인 여성의 학습 동아리활동 시범지원방안에 관한 연구,교육인적자원부 한국YMCA전국연맹 편(2002), 이웃과 함께하는 학습 공동체 만들기
한국YMCA전국연맹 편(2002),학습 공동체 이야기 모음:배우고 가르치는 기쁨 한숭희(2001), 평생학습과 학습생태계,학지사
한준상(2002), 학습학, 교육과학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