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건국신화의 발상지인 포로 로마노의 모습
김태일 |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email protected])
여전한 감동과 낭만의 도시, 로마
영화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
영화와 도시 35
놓을 수 없다. 파라마운트(paramount) 영화사가 1953년 제작하여 1955년 개봉한 ‘로마의 휴일’은 고전영화 중에서도 고전이지만 세대를 넘어 지금까지도 폭 넓게 사랑받고 있다. 필자는 이 영화를 중학생 시절 텔레비전에서 처음 본 후 세 번이나 더 보았다. 첫 번째는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보았고, 두 번째는 주인공 오드 리 헵번(Audrey Hepburn)의 청순함과 사랑스러움 때문에 다시 보았으며 세 번째 는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면서 영화의 배경인 로마를 공부하기 위해 보았다.
필자는 ‘로마의 휴일’을 볼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받는다. 이는 앤 공주 역을 맡 은 오드리 헵번과 지방신문 기자 조 역의 그레고리 펙(Gregory Peck)이 다양한 역 사를 품은 로마를 배경으로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코미디 연기를 잘 소화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세기 최고의 거장으로 불리는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대표작인 ‘로마의 휴일’
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배우는 오드리 헵번이다. 캐스팅 당시 그녀는 그다지 주 목받지 못한 배우였다. ‘로마의 휴일’은 아카데미 10개 부문 후보로 선정되었고, 오 드리 헵번은 당당히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영화 속 앤 공주처럼 주목을 받으 며 최고의 배우 자리에 올랐다. 공주나 신데렐라의 꿈같은 이야기가 그녀의 실제 인생에서도 펼쳐진 셈이다. 그녀는 ‘티파니에서 아침을’ 같은 영화에서도 청순하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등장하지만, 그녀의 매력을 한껏 보여주는 영화는 바로 ‘로마의 휴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로마의 휴일’로 시선을 옮겨 보도록 하자. 영화의 줄거 리는 간단하다. 왕실의 딱딱한 제약과 정해진 일정에 싫증을 느 낀 앤 공주는 이탈리아 공식 방 문 중 일행을 따돌리고 로마를 배회하다 특종감을 찾는 기자 조 를 만난다. 조는 처음에 거리에 서 잠든 앤을 가련한 여인으로 생각하지만 일련의 사건을 겪으
로마의 휴일(1953) 감독: 윌리엄 와일러 출연: 그레고리 펙,
오드리 헵번, 에디 알버트, 하틀리 파워 등
이탈리아 로마 위치 로마 (Rome)
‘로마의 휴일’ 명장면 중의 하나인 스페인 계단에서 젤라토를 먹는 앤과 조 기자
면서 공주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이들은 스쿠터를 타고 자유분방하게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고대 도시, 로마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의 평범한 삶을 접한다. 한 여름 밤의 꿈과 같은 시간을 뒤로 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 가는 남녀의 애틋한 마음이 진한 여운을 남기며 영화는 끝 을 맺는다.
영화 속 로마:
로마를 더욱 매력적으로 돋보이게 하는 건축
‘로마의 휴일’에서는 앤 공주가 공식사절단에서 이탈하여 하루 동안 로마를 구석구석 둘러보는 장면을 통해 로마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1. 포로 로마노(Foro Romano, 로마광장)
‘로마의 휴일’에서 앤과 조가 처음 만나는 곳의 정확한 장 소명을 알 수는 없지만 포로 로마노(Foro Romano)와 유사한 느낌을 주는 장소가 등장한다.
포로는 원래 그리스 아테네의 아고라(Agora, 시장)에
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리스의 아고라에 해당하는 노천 개방 광장으로, 5개의 집회 장소, 정기적 시위 행렬 장소로 쓰였던 도시의 중심적인 장소를 뜻한다. 포로 로 마노는 공공건축들이 줄을 서서 노천 광장을 이룬 포로 로마노와 단일 중앙 신전을 열주 회랑으로 둘러서 이룬 포로 임페라투스(Foro Imperatus, 황제광장)로 크게 구 분해볼 수 있다. 당시의 건물 규모와 구조를 알 수 있도록 지금도 잘 보존되었는데, 서쪽에 있는 벽돌로 된 4층 건 물이 공화제 시절 정치의 최고기관이었던 원로원(Curia) 이다.
2. 판테온(Pantheon)
그리스에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면 로마에는 판테온 신전 이 있다. 미켈란젤로가 ‘천사의 설계’라고 극찬한 신전이 기도 하다. 판테온(Pantheon)은 그리스어로 ‘모두’라는 뜻을 가진 pan과 신을 뜻하는 theon이 합쳐진 말로 만신 전(萬神殿)을 의미한다.
원형의 평면을 가진 판테온은 117년경 하드리안 황제 에 의해 재건되었다. 현관은 8주식(柱式), 코린티안식 전 면의 주두를 사용했다. 주 건물인 로툰다(Rotunda)는 기 원전 120~124년에 만들어졌다. 이곳의 실내 직경과 돔 정점의 높이는 43.5m다. 돔의 정상 부분에는 직경 9m 의 천창이 있으며 이를 통해 들어오는 밝은 빛은 어두 운 내부 공간에 상당히 극적이고 획기적인 변화를 준다.
판테온은 로마 건축의 웅장함과 장대함 속에 담긴 세련미 를 시각으로 느낄 수 있는 신전이다. 로툰다 출입문의 양 쪽에 대형 니치(great niche)가 있는데 좌측에는 아우구 스투스(Augustus) 입상을, 우측에는 아그리파(Agrippa) 입상을 두었다. 판테온은 로마 건축의 기술적·미학적 가 치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으며 파르테논 신전, 성 소피아 성당과 함께 3대 고전건축물 중 하나로 꼽힌다.
영화와 도시 35
‘로마의 휴일’에서 앤과 조가 처음 만나는 장면
보는 장면이 나온다. 로마를 대표하는 건축물 콜로세움 은 로마 제국의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세월이 흘러 도 로마시 중심에 있는 콜로세움의 웅장함은 변함이 없 다. 대개 투기장은 타원형의 평면을 갖고 있다. 콜로세움 의 평면은 장축 188m, 단축 156m이며 내부 중심에 타원 형의 아레나(경기장 부분)가 있다. 아레나의 크기는 장축 68m, 단축 54m다. 외관상으로 볼 때 4층 형식의 아케이 드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높이는 48.5m에 이른다. 수용 인원은 4만 명이지만 최대 8만 4천 명까지도 수용할 수 있다.
콜로세움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고대도시 로마를 방문 하게 되면 그리스와 달리 구조물들이 무척 거대하다는 것 을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다. 로마는 그들이 누리는 권력과 문화의 힘을 건축물을 통해 표현하려고 했고, 이를 만족 시킬 수 있는 거대한 건축물을 축조해야 했다. 그래서 건 물은 화려함이나 섬세함보다는 장대한 스케일이 우선이 었고, 그리스와 같은 순수하고 예술적인 건축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인들은 구조적인 수
술이 있었던 점, 둘째, 다른 나라와의 교류를 통해 관할 권에 있었던 동양문화권의 벽돌, 돌 장식 등의 기술과 예 술성을 흡수하면서도 로마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와 결 합한 구축법(構築法)을 실현할 수 있었던 점, 셋째, 콘크 리트를 기초공사에 이용해서 벽을 세웠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4. 스페인 계단과 바르카차 분수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을 가장 예쁘고, 가장 청순 하게 묘사하고 있는 장면이 스페인 계단에서 젤라토를 먹 는 모습일 것이다. 이 장면으로 인해 스페인 계단은 더욱 유명한 로마의 관광명소가 되었다. 1725년 프랑스대사관 의 원조를 받아 건축한 스페인 계단은 이곳에 스페인대사 관이 자리 잡고 있어서 스페인 계단으로 이름 붙여졌다 고 한다. 이전에는 스탕달, 발자크, 리스트 등의 문호와 예술가들이 근처에 거주하였다고 한다. 스페인 계단 앞 에는 배 모양을 하고 있는 바르카차 분수(Fontana della
‘로마의 휴일’의 한 장면과 거의 유사한 장소에서 촬영한 콜로세움의 모습 스페인 계단의 현재의 모습
Barcaccia)가 있다. 스페인 계단과 바르카차 분수 주변은 항상 사람들로 활기가 넘치는 관광명소다. 이곳은 수많은 관광객이 계단에 앉아 도심 속 한가한 시간을 가지며 마 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공간임이 틀림없다.
5. 트레비 분수
영화에서 주요 무대로 등장하지 않지만 몇 개의 분수가 나 오는데 그중 하나가 트레비 분수다. 영화에서는 앤을 찍으 려는 학생의 카메라를 조가 뺏는 장면에서 트레비 분수가 등장한다.
스페인 광장을 지나 조금 걸어가면 트레비 분수가 나온 다. ‘트레비(trevi)’는 3차로를 의미하는 것으로, 분수가 위 치한 지점이 3개의 도로가 교차하는 곳이기 때문에 붙여 진 이름이다. 트레비 분수는 교황 클레멘스 12세가 실시 한 분수 설계공모에서 당선된 작품이다. 궁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3개 도로가 만나는 교차점을 시각적으로 연결하는 상징적인 공간이라는 점에서 로마의 매력을 한 껏 높이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여전히 트레비 분수 주변은 건축물과 분수가 일체화된 아름다운 수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트레비 분수의 가장 큰 매력은 동전 던지기를 시도하는
여행객들이다. ‘어깨 너머로 동전을 던지면 다시 로마를 방문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이곳은 언제나 관광 객들로 북적인다.
6. 진실의 입
로마 중심가를 가로질러 흐르는 테레베 강을 따라 마로 니에 가로수가 있는 곳에서 조금 내려가면 기원전 2세기 에 세워진 포르투나 비릴리스 신전(Tempo della Fortuna Virile)이 보인다. 이 신전은 정면에 이오니아식 기둥이 있 고 기둥형 벽면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강과 항구의 신을 모 신 곳이다. 바로 앞에 있는 신전은 화로와 화롯불의 신과 관련된 베스타 신전(Tempo di Vesta)으로 신전 앞의 광장 이 그 유명한 진실의 입 광장(Piazza Bocca della Verita) 이다.
‘로마의 휴일’의 백미는 바로 진실의 입이 등장하는 장 면이 아닐까 한다. 진실의 입은 강의 신 얼굴을 조각한 대 리석판이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진실의 입에 손을 넣으 면 손이 빠지지 않는다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영화에서는 극적인 효과를 주는 장치로 사용되기도 했다. 신분을 속 인 두 사람이 이를 의식해야 하는 심리적 상황을 극적으로 잘 보여준다. 진실의 입은 각자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표출 영화와 도시 35
트레비 분수 진실의 입 앞에 두 주인공 모습
되어 전환점이 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영화 때문에 진실의 입 앞에는 두 주인공과 같은 마음으로 손을 넣어보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영원한 도시, 로마: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고대 로 마시대에 건축된 8개의 집정관도로를 비롯하여 대간선도 로가 로마를 중심으로 사통팔방으로 뻗어져 있고 대환상 도로는 로마를 감싸는 모습이다. 로마는 2천 년 전의 도 로체계를 현재까지도 잘 유지하고 있다. 그 사이를 테베 레 강이 가로질러 흐르면서 도시를 두 개로 나누고 있고, 테베레 강 북서쪽은 가톨릭의 총본산인 바티칸 시국이 있 다. 동쪽과 동남쪽에는 로마 건국신화의 발상지인 팔라 티노 언덕, 첼리오 언덕, 에스퀼리노 언덕, 비미날레 언 덕 등이 있다. 그리고 로마 시내에는 베네치아 광장과 주 변에 나보나 광장을 비롯하여 판테온, 포로 로마노와 콜 로세움 등 주요 고대 유적들이 흩어져 있다. 로마는 광장 과 거리, 하천과 지형의 여건을 고려하여 조직화되고 체계 화된 도시구조를 보여주고 있어서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
오래된 역사의 도시 로마는 둘러보기에 여전히 시간 이 부족하게 느껴지는 도시다. 살펴볼 유적이 많고 광범 위하게 분포하고 있어서 대충 둘러보며 지나치기에는 너 무나 많은 사실(史實)을 숨기고 있는 역사도시다. 외국 도시를 둘러보고 돌아볼 때 항상 느끼는 감정이기는 하 지만, 로마를 둘러보고 돌아오면서 못내 아쉬움이 깊이 남았다.
로마의 중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