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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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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더 나은 시장경제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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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진화

초판 인쇄 2012년 12월 27일 초판 발행 2012년 12월 31일

지은이│복거일 발행인│최병일

발행처│한국경제연구원 등록번호│제318-1982-000003호

주소│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27-3 하나대투증권빌딩 전화│02-3771-0001 팩스 02-785-0270~3

홈페이지│http://www.keri.org

ISBN 978-89-8031-635-9 03320 값 15,000원

이 책의 저작권은 저작권법에 의하여 한국경제연구원에 있습니다.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복제 및 무단 전재를 금합니다.

제작: FKI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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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더 나은 시장경제를 말하다 복거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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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1. 이 책에서 각종 인용 자료의 표기는 다음과 같이 통일하였다.

단행본  , 연구보고서 및 논문 , 잡지》, 영화 < >, 신문기사 외 기타 인용문 “ ” 2. 본문 중 인명, 지명, 기업명, 단체명 등 고유명사는 오른쪽 위첨자로 영문을 병기하고 그 외 인용

문의 원문이나 용어 설명 등의 경우 용어가 끝나는 부분 바로 뒤에 괄호로 영문을 병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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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당신이 시간의 씨앗들을 들여다보고서 어느 낱알이 자라고 어느 것이 못 자랄지 말할 수 있다면.

If you can look into the seeds of time And say which grain will grow and which will not.

‒ 셰익스피어, 맥베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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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문

자연을 대하듯 겸허하게, 순리를 따르면 건강해진다

최근 우리 경제가 보여 온 장기적 추세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사회주의적 특질들이 점점 짙어졌다는 점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 나선 주요 후보들이 ‘경제민주화’를 주요 경제 정책으로 내 걸었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이런 현상은 시장경제를 갖춘 우리 사회엔 이질적이고 당연히 걱정스럽다.

이런 현상을 낳은 요인들은 여럿이지만, 가장 근본적 요인은 우 리 시민들이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그래서 호의적이지 않다 는 사정이다. 시장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존재다. 그러나 경제학적 논의에 쓰이는 시장은 극도로 추상화된 개념이어서, 경제학에 대한 소양을 갖춘 시민들도 흔히 그것을 잘못 이해한다. 시장이라는 개 념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정은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방 해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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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7 시장의 특질들 가운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시장이 ‘진화에 가장 친화적인 기구’라는 사실이다. 인류가 생각해낸 어떤 기구도 시장만큼 진화에 좋은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다. 시장에선 재화를 사는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고르고, 파는 사람들은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추어 새로운 재화를 보다 싼 값에 제공하려 애쓴다. 그 과정에서 기업들은 빠르게 진화하고 시장 자체도 진화 한다. 시장이 자유로울수록 기업과 시장은 효율적으로 진화한다.

물론 현실 속 시장의 모습이 모두 아름답고 바람직한 것은 아니 다. 그러나 시장의 부족한 점들은 정부 부문의 부족한 점들보다는 훨씬 작고 덜 해롭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거래는 양 당사자들이 이익을 얻음으로써 성립된다. 자연히 불의와 부정은 잔류 수준으로 줄어든다. 그러나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을 지닌다’는 액튼 경의 지적처럼, 정부는 필연적으로 부패하고 불의를 낳고 억울한 사람들을 만들어낸다. 그런 사정이 시장경제가 어떤 다른 체제보다 나은 근본적 이유다.

불행하게도,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시장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사람들 은 드물고 시장을 싫어하고 억누르려는 사람들은 많다. 우리의 천성부 터 시장에 적대적이다. 우리 마음은 사람들이 부족사회를 이루어 수렵 과 채취로 살았던 원시시대에 다듬어졌다. 그런 사회에선 생산물을 구성원들이 대체로 공평하게 나누어 가졌고, 잉여와 재산은 거의 없었 다. 부족들 사이엔 교역이 드물었고 시장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상 태는 적어도 수십만 년 동안 이어졌다. 그러다가 대략 2만 년 전에 농업이 발명되었다. 농업을 통해서 생산성이 높아지자, 사람들은 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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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모으고 교역을 하고 시장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우리가 교역과 시 장을 경험한 시간은 원시시대에 비기면 아주 짧다. 자연히, 원시시대 에 형성된 우리 마음은 교역과 시장을 의심의 눈길로 보고 모두 ‘평등 한 가난’ 속에 살았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우리 사회의 전통도 시장에 호의적이지 않다. 뿌리 깊은 상업 천 시, 관리를 선망하는 풍조, 기업가 정신의 박약, 정부 부문의 꾸준 한 확대와 시장 부문의 축소, 시민들의 자본주의에 대한 깊은 반감, 재산권의 불충분한 보호, 기업 활동에 대한 지나친 규제, 비현실적 인 노동법, 전투적 노동조합, 그리고 아직도 남아 있는 보호무역 조 치들은 모두 시장이 제대로 움직이기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안타 깝게도, 제대로 자라나지 못하고 자유롭지 못한 우리 시장이 보이 는 부족한 모습들은 모두 시장의 책임으로 돌아간다.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진 마르크스주의의 부정적 영향도 크다. 마 르크스주의는 사회가 공산주의 체제를 향해 움직이고 공산주의 체 제가 자리 잡으면 변화가 없는 이상향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목 적론적 세계관(teleological world view)이다. 그래서 생명체와 문화가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끊임없이 진화한다는 진화론의 근본 명제에 어긋난다. 마르크스주의 경제 이론은 오래 전에 논파되었고 그것에 따라 세워진 공산주의 정권들도 거의 다 무너졌다. 그래서 한때 우 리 사회를 뒤덮었던 마르크스주의도 물러갔다. 그러나 생태계와 문 화를 진화의 관점에서 살피는 대신 목적론적 세계관으로 바라보는 이념적 틀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다. 그런 이념적 틀 로 보면, 많은 흠을 지닌 시장은 이상향의 청사진에 따라 단숨에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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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9 뀌어야 할 그리고 바뀔 수 있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시장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이해도 너무 부족하다. 세계화가 많 이 진행되어 우리 경제도 이미 세계 경제 속으로 편입되었는데, 우 리 사회의 논의들은 우리 사회를 높은 국경이 둘러싸고 있다는 암 묵적 가정 아래 진행된다. 예컨대, 대기업에 관한 논의에선 우리 국 적의 대기업들만 다루어지고 우리 시장에 외국 대기업들이 많이 들 어와 있다는 사정은 고려되지 않는다. 그래서 국내 기업들이 ‘역차 별’을 받는다는 얘기가 자주 들린다.

현대 사회의 진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관한 논의가 거의 없는 것도 문제적이다. 시장은 과학과 기술의 발 전에 맞추어 진화하고, 더불어 과학과 기술이 진화하도록 돕는다.

과학과 기술은 점점 빠르게 발전하기 때문에, 모든 규제들은 점점 현실을 따라잡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기술의 진화가 아주 빠른 산 업에 대한 규제는 점점 해로워진다. 규제가 합리적으로 설계되려면, 과학과 기술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시장에 적대적인 환경이다. 이런 환경을 조 금이라도 바꾸려면, 시장을 진화의 관점에서 살피는 태도가 널리 퍼져야 한다. 만일 진화적 세계관이 널리 퍼진다면 시장경제는 튼 튼한 바탕을 지니게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한다면 어떤 대책도 일시 적일 수밖에 없다.

2012년 12월 복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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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서문▮

자연을 대하듯 겸허하게, 순리를 따르면 건강해진다 ···········6

1

경제 환경의 진화

왜 지금 ‘경제민주화’인가 ·····················································15

경제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생태계 ·······································22

모든 것들은 역사를 지녔다 ··················································25

‘동반 성장’이 ‘동반 추락’이 되지 않으려면 ························29

금융위기는 시장의 실패인가? ···············································33

다수가 문제라고 믿으면 문제가 된다 ··································41

자연의 원리를 거스르면 문제가 된다 ··································46

지식에 대한 성찰 ··································································50

서툰 규제는 없는 것만 못하다 ············································55

‘점령’에는 책임이 따른다 ·····················································58

분노를 가라앉히고 원인을 찾아라 ·······································62

미국에선 왜 파마 값이 비싼가? ···········································68

경쟁은 진화의 본질이다 ·······················································73

(12)

2

정치 환경의 진화

스타플레이어와 정당정치 ·····················································81

통합진보당의 근본적 문제 ····················································89

김대중, 그가 남긴 유산 ························································93

무엇이 현명한 선택인가 ·······················································97

박정희는 올바로 평가되고 있는가 ·····································102

모든 악은 사회적 산물인가 ················································109

사법부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 ································113

반미 감정은 합리적인가 ····················································116

개성공단, 공동의 이익을 찾는 길 ······································126

통일을 위한 노력은 민간에서 나와야 한다 ·······················130

중국, 감정적으로 대하지 말고 제대로 알아야 ··················141

이상향은 필연적으로 반이상향을 부른다 ··························145

3

과학과 기술의 진화

외계 탐험의 첫걸음 ···························································153

진화의 맥락에서 살핀 로봇 ··············································156

경제위기는 눈앞의 문제, 온난화는 미래의 문제 ···············181

프리온의 정체 ····································································186

(13)

CONTENTS

나는 누구인가? ··································································193

낯선 세상에 대한 적응 ······················································198

천사들이 밟기 두려워하는 곳 ···········································201

혼외정사의 사회적 처벌은 비합리적이다 ··························206

우리 농산물, 한우… 생태민족주의의 어리석음 ·················211

무엇이 우리 것인가? ·························································215

철도의 미래에 관한 단상들 ··············································219

고령화 사회의 전망 ···························································224

2030년의 한국 ····································································228

▮참고문헌▮ 진화생물학에 관한 자료들 ··················································239

자유주의 및 시장에 관한 자료들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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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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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왜 지금 ‘경제민주화’인가 15

왜 지금

‘경제민주화’인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금 우리 사회의 기장 중요한 논점 들 가운데 하나는 경제민주화다. 주요 정당과 후보들이 경제민주화 를 이번 대선의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경제민주화는 ‘경제민주주의(economic democracy)’의 실현을 뜻한다.

경제민주주의는 19세기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부의 평등화(equalization of wealth)’라는 뜻으로 썼다. 20세기 초엽에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체 제가 자리 잡으면서, 경제민주주의는 실제로 구현되었다. 그러나 그 것을 꿈꾼 사상가들의 기대와는 달리, 그것은 괴물로 판명되었다.

20세기 말엽에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고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논파되자, 경제민주주의도 체계적 이론으로 존재하기를 멈췄다.

근년에 경제민주주의는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사소한 정책들을 포장하는 말이 되었다. 그런 주장들은 단편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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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성이 적어서 원래 경제민주주의의 파편들에 지나지 않는다. 예 컨대, ‘위키피디아Wikipedia’는 경제민주주의를 “결정 권한을 기업의 주주들로부터 노동자, 고객, 공급자, 이웃 그리고 보다 너른 공중을 포함하는 공중권리보유자들에게 즉 보다 큰 집단으로 이동시키는 것을 제안하는 사회경제적 철학(A socioeconomic philosophy that proposes to shift decision-making power from corporate shareholders to a larger group of public stakeholders that includes workers, customers, suppliers, neighbors and the broader public)”이라고 정의한다. 기업의 지배 구조에 관한 주장을 경 제민주화라는 거창한 구호로 포장한 것이다.

찬찬히 살펴보면, 그런 주장들의 이론적 바탕은 여전히 마르크스 주의의 ‘노동량가치설(labor-quantity theory of value)’임이 드러난다. 이 이론은 수요와 공급이 가격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원시 적 이론으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도 오래 전에 버렸다.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정치와 관련된 개념이다. 민주주의는 사 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같은 권리를 지니고 사회적 의사 결정에 참 여하는 제도다. 자연히 그것의 가장 두드러진 특질은 선거를 통해 서 지도자를 뽑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역()은 특정 계층이 우월적 권리를 지닌 ‘전제주의(autocracy)’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현실적으로는 기회의 평등을 뜻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선 모든 구성원들이 똑같은 정치적 기회를 누리며, 그런 기회는 자유로운 선거에 참여하는 것으로 완성된다. 민주화는 정치적 기회의 평등이 실현되지 못한 상태를 실현된 상태로 만드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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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경제민주화’인가 17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투표를 통해 나온 정치적 구도는 특정 세력 에 의한 권력의 장악이다. 선거에서 이긴 정당이나 개인이 국가 권 력을 일정 기간 독점적으로 행사하는 것이다. 그런 결과는 물론 평 등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것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할 수는 없다.

모든 구성원들이 모든 사회적 의제들에 대해서 투표하고 거기서 나 온 선택들을 함께 집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정치적 개념이며 그것의 본질이 기회의 평등이라는 사실은 강조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정치적 개념이므로, 그것을 다른 분야에 적용할 때는 당연히 조심스러워야 한다. 본질적으로 기회의 평등을 뜻한다고 해서 그것을 결과의 평등으로 여기는 것은 가장 근본적 수준에서의 오류다.

시장경제에선 모든 시민들이 자유롭게 경제 활동에 참여할 수 있 다. 그렇게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므로, 시장경제는 본질적으로 민주 적이다. 전통적 사회들에선 신분에 따라 경제 활동에 큰 제약이 있 었다. 근대에도 특정 사업들에 종사하려면, 국왕의 허가가 필요했 다. 시장경제에선 모든 사람들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진다.

시장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많으므로, 현실적으로는 모든 시민들 이 똑같은 기회를 누리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어떤 경제 활동에 참 여할 자격을 제한하면, 기회의 평등이 완전히 보장될 수는 없다. 자 격증이나 정부 허가를 얻은 사람들이나 기업들만이 특정 경제 활동 에 참여하도록 만든 것은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이런 제한은 늘 그럴 듯한 명분을 앞세우지만, 흔히 비합리적이어서, 기회를 얻은

(19)

사람들과 기업들이 초과 이윤을 얻게 된다. 비합리적인 정부 규제 를 풀어서, 기회의 평등을 회복하는 일은 일반적으로 ‘자유화 (liberalization)’라 불린다. 정부의 권한을 줄여 개인들의 자유를 늘린 다는 관점에서 나온 이름이다.

경제 분야에서 민주화라는 말이 아예 안 쓰이는 것은 아니다. 기 회의 평등은 보장되었지만, 경제력이 약해서 기회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도 실제로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일은 민주화라 불린 다. 대표적인 예는 ‘은행업의 민주화(democratization of banking)’다. 은 행은 어느 사회에서나 문턱이 높아, 가난한 사람들이 은행을 이용 하기 어렵다. 이런 사정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19세기 영국과 미 국에서 일었다. 가난한 사람들도 저축할 기회를 주자는 ‘저축은행운 동(savings bank movement)’,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을 마련할 자금을 빌려 주자는 ‘건축조합운동(building society movement)’과 ‘저축대부조 합운동(savings and loan association movement)’, 저축할 기회를 전국적으 로 늘리자는 ‘우편저축은행(postal savings bank)’ 등이 잇달아 나왔다.

그리고 20세기엔 은행들이 전통적으로 무시해 온 가난한 사람들에 게 사업 자금을 융자해 주자는 ‘소액금융운동(micro finance movement)’ 이 나와서 성과를 거두었다. 은행업 민주화를 위한 정책들도 나왔 으니, 은행들이 저소득층에 대한 융자를 늘리도록 유인(incentive)을 제공하는 방안과, 세금의 환불이나 복지수당의 지급을 은행 계좌를 통해서 하는 방안 등이 있다. 보험과 증권투자의 보편화도 경제민 주화에 크게 이바지했다.

이처럼 경제 분야에서 쓰일 때도, 민주주의나 민주화는 기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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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경제민주화’인가 19 평등을 추구한다. 결과의 평등과는 관련이 없다.

실은 결과의 평등은 기회 자체를 없앤다. 정치 분야에서 결과가 똑같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투표와는 관계없이, 모두가 지도자 가 되고 모두가 사회적 선택과 그것의 집행에 참여한다면, 투표가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경제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결과가 모두 에게 같다면, 누가 일하겠는가? 그런 상황에서 기회는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그래서 주류 경제학자들은 경제민주주의라는 말을 아예 쓰지 않 는다. 경제민주주의가 무슨 뜻을 지니려면, 애초에 기회의 평등을 이상으로 삼지 않고 최종 결과의 평등을 목표로 삼는 공산주의를 가리켜야 한다.

위에서 살핀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갑자기 경제민주화가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떠오를 까닭은 전혀 없다. 그것이 매력적인 구호라는 점을 빼놓고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우리 체제에 적대적인 사람들은 그들의 시장 간섭 정책들을 경제민주화라는 구호로 포장해 왔다.

그들은 헌법의 119조 2항을 근거로 삼는다. 그 조항엔 실제로 “경 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라는 표현이 들어있다. 이 표현은 아주 애매해서 논란을 부를 수밖에 없다. 이 사실만으로도 헌법에 들어가면 안 되는 표현이다. 문맥으로 보면, 그것이 당해 조 항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헌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향한다. 마르크스주의 경 제 이론에 바탕을 둔 경제민주화라는 개념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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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질적인 개념이 첨가되면서, 우리 헌법의 일체성이 상당히 훼손되었다.

그 조항의 현실적 해악도 크다. 역사적으로 법은 권력을 쥔 사람 들의 자의적 행태를 억제해서 시민들을 보호해 왔다. 권력이 남용 될 수 있는 규정들을 품으면, 좋은 법이 될 수 없다. 그 조항은 국 가가 시장에 자의적으로 간섭할 근거를 마련하면서도 권력이 남용 되지 않도록 하는 조치를 빠뜨렸다. 자연히, 우리 정부는 너무 자주 그리고 너무 깊이 시장에 간섭해 왔다.

그 조항이 실재하므로, 우리는 그것을 헌법의 정신과 맥락에 맞 게 해석해야 한다. 가장 합리적인 해석은 ‘시민들의 자유로운 활동 으로 나온 경제 상태에 부정적 측면들이 보이면, 국가는 그것들을 완화하려 애써야 한다’는 뜻을 지녔다는 것이다. 그 조항이 마르크 스주의 경제 이론에 바탕을 둔 경제민주주의를 내세웠다는 해석은 사리에 맞지 않다.

지금 경제민주화로 포장된 정책들의 핵심은 재벌 기업들에 대한 강력한 규제다. 비록 인기가 높지만, 그것은 폐기된 경제 이론의 틀 로 경제 현상을 살핀 데서 나왔다.

소비자들은 재벌 기업들의 제품들을 찾고, 젊은이들은 재벌 기업 들에서 일하려 한다. 금융기관들과 증권시장은 재벌 기업들에 자금 을 빌려 주려 애쓴다. 재벌 기업들은 수출을 주도해서 우리 경제를 이끈다. 만일 재벌 기업들이 통념처럼 그렇게 사악하고 문제적인 존재라면, 국내외 소비자들과 종업원들에게 어떻게 큰 혜택을 줄

(22)

왜 지금 ‘경제민주화’인가 21 수 있는가? 우리 재벌 기업들이 강제로 퇴출되면, 그 자리를 외국 대기업들이 차지하는 현상은 어떻게 정당화되는가?

우리 시장은 이미 너무 많은 규제들로 왜곡되었다. 거기서 활동 하는 기업들도 당연히 왜곡된다. 재벌 기업들이 보이는 추한 모습 들은 대부분 잘못된 규제들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우리의 과제는 비현실적 규제들을 푸는 것이지 경제 원리를 거스르는 규제 들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재벌을 공격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그르다 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의 주장을 경제민주화로 포장하는 관행에 정당성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반세기 넘게 재벌 문제와 씨 름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모두가 잘 아는 재벌 문제에 관한 낡은 주장을 그럴 듯한 이름으로 포장하여 내놓는 행태는 정직하지 못하다.

매력적인 구호로 자신의 주장을 포장하려는 충동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중요한 선거를 앞둔 지금 재벌에 대한 거친 공격을 경제민 주화로 포장하는 일은 시민들을 현혹시키려는 시도다.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고 현실적으로 해롭다.

(23)

경제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생태계

지금 주요 정당들과 대통령 후보들이 모두 경제민주화를 내세우고 있으므로 누가 집권하더라도 그것은 경제 정책의 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민주화는 시장에 적대적이다. 시장을 이해하 지 못한 상황에서 시장의 움직임에서 나온 결과를 부정한다. 자연 히 지금 우리의 시장경제는 근본적 위협을 맞았다. 이런 상황에 대 처하려면 시장의 본질을 잘 살펴야 한다.

태초에 시장이 있었다. 국가도 법도 없었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물자와 서비스의 교환을 통해서 자신들의 복지를 늘렸다. 국가가 나타나자, 시장은 새로운 환경에 맞추어 진화해 왔다. 국방과 치안 을 통해서 재산권이 확립되면서, 시장은 빠르게 발전했다. 다른 한 편으로,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간섭이 잘못되면 시장은 왜곡되고 자 라나지 못했다. 역사적으로 국가나 종교는 시장에 적대적이었고 그

(24)

경제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생태계 23 래서 경제 발전을 어렵게 했다.

진화는 이 세상의 존재를 잘 설명한다. 진화를 통해서 생태계와 문화가 나왔고 발전했다. 경제주체들이 자유롭게 활동하는 시장은 진화에 가장 좋은 기구다. 진화는 많은 변이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그런 변이들 가운데 환경에 잘 적응된 것들이 살아남아서 널리 퍼 진다는 공식을 따른다. 기업들은 늘 보다 나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 들어 내고 소비자들은 자신들의 수요에 맞는 것들을 고르며 그렇게 선택된 제품들과 기업들은 자라나고 버림받은 것들은 사라진다.

이처럼 진화에 친화적인 기구라는 사실이 시장의 놀랄 만한 우수성 의 원천이다. 슘페터Joseph Schumpeter의 ‘창조적 파괴’나 하이에크Friedrich

Hayek의 ‘발견 절차로서의 경쟁’ 및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라는

개념들은 멋지지만, 실은 진화 과정의 단면들을 지적했을 따름이다.

따라서 시장과 기업은 당시의 사회적 환경에서 존재할 수 있는 가장 나은 모습을 추구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덜 효율적이 된 기업 들은 “창조적 파괴의 폭풍”에 날려가고 거기 담겼던 자원들은 새로 운 기업들에 의해 쓰인다.

시장의 모습은 진화에서 얻어진 사회적 지식이다. (예컨대, 큰 부분 이 주식회사들로 이루어진 시장의 모습은 주식회사가 현대 경제에 적합한 기

업 형태라는 지식의 구현이다.) 모든 생명체들의 몸이 진화에서 얻어진

지식인 것과 같다. (예컨대, 모든 수중동물들이 지닌 유선형의 몸은 수중의 물리적 환경에 관한 지식의 구현이다.) 따라서 시장의 모습은, 산업 구조 와 기업지배구조를 포함해서, 사회의 소중한 지식이다. ‘발견 절차 로서의 경쟁’이나 ‘자생적 질서’는 이 점을 멋지게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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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모습은 수많은 사회적 힘과 요소가 서로 작용하면서 빚은 작품이다. 기업 수준에서 이루어진 수많은 실험의 결과이므로, 시장 으로 구현된 지식들은 소중하다. 시장의 판단이 어리석거나 아름답 지 못하게 보여도 가볍게 무시할 수 없는 이치가 바로 여기 있다.

시장은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할 뿐 아니라 그 특질 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서, 어떤 특질만을 떼어 내서 바로잡을 수는 없다. 시장에서 어떤 부분이 마음에 너무 거슬리면, 그것을 바 로 손보는 대신 그것을 낳은 사회 환경을 바꾸는 것이 합리적이다.

정부의 힘이 압도적이고 사회가 속속들이 부패했고 경제적 자유주 의에 어긋나는 노동조합이 강대한 상황에서, 시장의 모습이 모두 아름답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다.

여기서 요구되는 것은 생태계를 대할 때 우리에게 요구되는 겸허 함이다. 실제로 경제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생태계다. 그래서 미국 생물학자 마스턴 베이츠Marston Bates의 통찰대로, “경제학은 사람의 생태학이라 할 수 있고, 생태학은 자연 경제의 연구라 할 수 있다 (Economics can be thought of as the ecology of man; ecology as the study of the economy of nature).” 그런 겸허함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내놓은 청사진인 ‘경제민주주의’가 실현되면서, 명령경제라는 괴물이 나왔 다. 시장은 선거를 앞둔 정치가들이 내건 구호에 의해 훼손되기엔 너무나 소중한 지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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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들은 역사를 지녔다 25

모든 것들은 역사를 지녔다

좌파와 우파는 서로 다른 틀로 사회 문제들을 살핀다.

그런 틀의 차이는 역사에 대한 태도에서 특히 뚜렷하게 나타난다.

우파는 현상을 역사적 맥락에서 살핀다. 그래서 그들은 문제적 현상도 그것이 나오게 된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런 현상을 직접 없애는 것은 흔히 불가능하거나 비용이 많이 든다고 지적한다.

좌파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어떤 이상적 청사진과 비교한다. 그 들은 우리 사회가 가난한 중세적 사회에서 풍요로운 현대적 사회로 빠르게 발전해 와서 부족하거나 추한 점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들 마음에 안 드는 부분들을 도려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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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차이는 우연이 아니다. 우파는 사회가 느닷없이 생긴 것이 아니라 역사를 지녔고 끊임없이 진화한다고 여긴다. 사회가 그렇게

‘경로 종속적(path-dependent)’이므로, 그들은 과정을 살펴서 현상을 평가한다.

반면에, 좌파의 틀은 목적론(teleology)이다. 사회가 환경에 맞춰 진 화하는 것이 아니라, 마르크스가 예언한 이상적 상태를 향해 나아 간다고 보는 것이다. 자연히, 그들에겐 과정이 아니라 최종적 결과 가 중요하다.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진 뒤, 마르크스를 드러내놓고 따르는 사람들은 드물지만, 마르크스에 심취했던 사람들은 여전히 그의 세계관을 틀로 삼아 세상을 본다.

이런 세계관의 대립은 사회적 평등에서 잘 드러난다. 좌파는 모든 사람들이 동등한 재산과 소득을 갖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다. 우파는 기회의 평등이 이루어진 뒤에 나오는 차이는 자연스럽다고 여긴다.

두 세계관을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사 와 과정을 아예 무시하고 최종 결과만으로 판단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재산의 형성에 공헌한 사람과 아무런 공헌을 하지 않 은 사람이 재산에 대한 권리를 나누어 갖는 것이 어떻게 정의로울 수 있겠는가? 그레고리 맨큐Gregory Mankiw

의 지적대로 최종 결과만을 고려하는 것이 옳다면,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과 게으른 학생들이 같은 학점을 받아야 한다.

이런 패턴은 기업 지배구조 논쟁에서 다시 선명하게 드러났다.

좌파가 제기한 문제는 대기업 집단의 의사결정에서 나오는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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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들은 역사를 지녔다 27 이다. 그들은 “단 몇 퍼센트의 지분만을 가진 총수가 실질적으로 재벌 전부를 소유한다”고 비판한다. 현상만을 보면, 틀린 얘기는 아 니다. 그래서 ‘경제민주화’라는 구호 아래 나오는 기업 지배구조 비 판에 많은 시민들이 공감한다.

그러나 기업이 자라난 역사를 살피면, 얘기는 달라진다. 어떤 재화 가 생산되려면, 먼저 소유권이 확립되어야 한다. 자신이 생산한 것을 자신이 소유한다는 확신이 없으면, 누구도 생산에 착수하지 않는다.

창업자는 자신이 세우려는 기업이 자기 것이 되리라 믿고서 기업 을 세운다. 그리고 그 기업을 계속 자신이 소유하려고 애쓴다. 기업 이 자라나면, 외부 투자가 늘어나므로, 창업자의 지분은 점점 줄어 든다. 당연히, 창업자는 줄어든 지분에도 불구하고 경영권을 유지하 는 방안을 찾는다. 모든 성공적 지배구조는 이 조건을 충족시킨다.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지배구조는 이내 사라진다.

이렇게 보면, 우리 대기업집단 총수들의 지분이 아주 작다는 사실은 창업자나 그의 후계자들이 적절한 지배구조를 찾아냈고 덕분에 투자 가 꾸준히 이루어졌다는 것을 가리킨다. 투자자들은 창업자를 믿고서 자발적으로 투자했고 불만이 있는 투자자들은 주식을 팔고 떠났다.

그런 과정의 어디에 무슨 문제가 있는가? 기업의 지배구조는 정치체제 가 아니며, 기업 총수의 경영권 확보는 전제정치가 아니다.

그렇게 기업이 자라나면서, 소비자들의 삶은 윤택해졌고 종업원 들은 일자리를 얻었고 정부는 세금은 점점 많이 거두었다. 사회가 기업들에 무엇을 더 요구할 수 있겠는가? 무엇을 얻기 위해서 잘 기능하는 기업의 구조를 뜯어고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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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에서 기업 형태는 환경에 맞게 진화한다. 그래서 실재하 는 기업 지배구조는 우리 사회의 도덕, 법, 지식, 문화적 풍토로 이 루어진 환경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나은 지배구조에 아주 가까울 터이다. 그것을 바꾸어서 더 나은 것이 나올 가능성은 생각보다 훨 씬 작다.

위에서 살핀 것처럼, 지금 실존하는 기업 지배구조를 바꾸려는 시도는 정의롭지도 현명하지도 못하다.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한다, 모든 것들은 역사를 지녔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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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 성장’이 ‘동반 추락’이 되지 않으려면 29

‘동반 성장’이

‘동반 추락’이 되지 않으려면

최도현 씨는 인천에서 ‘대원인물(刃物)’이라는 기업을 경영 한다. 1995년에 설립된 이 기업은 공업용 칼을 만드는데, 40여 명의 종업원들이 100억 원 남짓한 매출을 올린다. 처음부터 포스코POSCO의 계열사였던 이 기업이 만든 칼은 5센티미터 두께의 큰 조선용 강판들 을 단숨에 자른다.

최 사장은 이런 칼을 만드는 기술에선 자기 회사가 세계 제일이 라고 자부한다. 실제로 그 회사 제품들은 세계 여러 나라에 수출된 다. 그는 포스코가 없었다면 자기 회사도 없었다고 단언한다. 그 회 사는 포스코 외에도 5개 기업들과 2차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기업 생태계는 우림(雨林)과 같다. 하늘로 솟구친 나무들이 플랫폼 이 되어 다양한 종()들이 깃든다. 만일 교목들이 없다면, 생태계는 훨씬 얄팍하고 단조로울 터이다. 기업 생태계에서 대기업은 우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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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목들과 같다.

대기업의 공헌은 수출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해외 시장에 중소기 업이 혼자 교두보를 마련하기는 무척 힘들다. 그러나 대기업이 먼 저 진출하면 자연스럽게 연관된 기업들이 함께 진출하게 된다. 수 출을 통해 경제 발전을 이룬 우리에게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 다.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가 작고 수출 지향적 경제 구조를 지녔으 므로, 대기업은 앞으로도 우리 경제를 이끌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서 대기업에 대한 태도는 근년에 부쩍 부정적이 되었다. 특히 현 정권이 ‘동반 성장’이라는 구호를 내건 뒤로는, 비합리적 정책들이 잇따라 나왔다. 중소기업들을 보호 한다는 명분 아래 대기업들이 들어올 수 없는 업종들을 지정한 것 은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어떤 업종에 적절한 기업 규모는 미리 알 수 없다. 그것은 시장에서 많은 기업들이 실험을 한 뒤에야 비로 소 얻어지는 지식이다. 통념적으로 중소기업에 적합한 업종인데도 대기업이 번창한다면- 예컨대 두부나 간장처럼 - 그 사실이 가리 키는 것은 통념이 그르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에 적합한 업종들을 지정하고 거기에 이미 자리 잡은 대 기업들을 나가라고 한다면, 그것은 우림의 교목들을 베어 버리는 것과 같다. 대성당처럼 장엄하다는 우림에서 교목들이 사라지면, 그 자리에 관목들과 덩굴들이 얽혀서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는 밀림 (jungle)이 나온다. 무역 장벽이 낮아진 터라, 실은 외국의 대기업들 이 대신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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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 성장’이 ‘동반 추락’이 되지 않으려면 31 규모의 경제는 경제학의 기본 법칙이다. 그래서 규모가 큰 기업 들이 대체로 경쟁력이 높아서 높은 임금과 많은 세금을 낸다. 당연 히 대기업이 많은 경제가 건강하다. 우리 산업에서 어떤 업종에 대 기업이 없고 그래서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낮아 해외 시장으로 진 출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물어야 한다. ‘왜 이 업종엔 대기업이 없 는가? 혹시 중소기업들이 정부가 친 보호막 안에서 안주하는 것은 아닌가?’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자라나도록 격려하는 정책은 정말로 긴요 하다. 기업의 크기 자체도 중요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기업의 성장 속도다. 빠르게 자라나는 기업들이 경제를 활기차게 만들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빠르게 자라나는 1퍼센트의 기업들이 전체 일자리의 40퍼센트를 창출해낸다.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일자 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지금, 위의 물음은 정말 로 필요한 물음이다.

대기업의 역할은 제조업에서 특히 긴요하다. 경쟁력이 높기로 유 명한 독일의 ‘중간(mittelstand) 기업’들은 독일의 큰 기업들 덕분에, 특히 폭스바겐Volkswagen, 비엠더블유BMW, 다임러Daimler AG와 같은 큰 자 동차 회사들이 창출한 시장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다. 지금 영국은 제조업을 되살려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려 하는데, 가장 큰 장애는 대기업들이 거의 다 사라졌다는 사정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외국의 대기업들을 유치하려고 애쓴다.

대원인물의 최 사장은 대기업과 계열기업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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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긍정적이다. 대기업들이 계열사들에게 제품의 값을 낮추고 품질 은 높이라고 늘 요구해 왔기 때문에, 지금 많은 중소기업들이 경쟁 력을 갖추어 해외 시장으로 진출했다는 얘기다. 아직도 하청 중소 기업들을 윽박지르는 대기업들이 드물지 않겠지만, 시장과 대기업 에 대한 믿음이 얇아진 지금 이런 진단은 고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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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는 시장의 실패인가? 33

금융위기는 시장의 실패인가?

자본주의 4.0을 통해 아나톨 칼레츠키Anatole Kaletsky가 말 하려는 바는 그 책의 부제인 ‘위기 여파 속 새로운 경제의 탄생 (Capitalism 4.0: The Birth of a New Economy in the Aftermath of Crisis)’으로 깔 끔하게 요약된다. 1979년부터 2008년까지 지속된 ‘자본주의 3.0’은 실 패해서 2007년부터 시작된 경제위기를 불렀고, 이제는 새로운 자본 주의가 탄생할 때가 되었다는 얘기다.

칼레츠키에 따르면, ‘자본주의 3.0’은 영국의 대처Margaret Thatcher 정 권과 미국의 레이건Ronald Reagan

정권이 도입한 시장 중심 정책을 핵심 적 특질로 지녔다. 자연히 새로운 자본주의는 시장의 몫을 줄이고 정부의 몫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런 개혁을 통해 서 자신이 제시한 형태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지금 서양이 지닌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멸망하고 중국의 권위주의적 자본주의에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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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될 수밖에 없다고 그는 단언한다.

서양은 이처럼 선택할 수 있다. 하나의 선택은 5천 년 역사의 대부 분에서 중국이 서유럽이나 미국보다 더 응집적이고 내구적이며 성공 적인 사회였다고 정중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선, 21세기 의 중국은 자신의 문화적 가치들과 국가적 이익을 위해 범지구적 지 도력의 자연스러운 위치를 되찾으려는 것뿐이다. 또 하나의, 덜 패배 주의적 선택은 이 책에서 제안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으로 서양의 민주적 자본주의가 중국의 권위주의적 판본보다 더 적응적이 고 내구적임을 보여줄 수 있다. 이것을 하기 위해선, 그러나, 서양은 자신의 세계관 전체에 대해 자신 있게 권위주의적인 중국에 의해 제 기된 도전을 인정하고, 2007~2009년의 위기 뒤엔, 서양의 사회정치적 모형의 재발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칼레츠키의 주장은 그럴듯하고 큰 주목을 받았다. 우리 사회에서 도 ‘자본주의 4.0’이란 말이 자주 들린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의 주장은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안고 있음이 드러난다.

먼저 짚어야 할 것은 방법론적 문제들이다. 그는 현대 서양의 자 본주의를 네 가지 시기로 구분한다. ‘자본주의 1.0’은 미국이 독립을 선언하고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나온 1776년부터 대공황의 시기 인 1932년까지 존속했다. ‘자본주의 2.0’은 금본위제가 폐기되고 뉴딜 (New Deal) 정책이 시작된 1931년부터 인플레이션이 심화되고 에너지 위기가 닥치고, 금 태환(兌換) 통화체계의 붕괴가 일어난 1980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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