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 우리 문화유산의 향기 ㅣ182
조선시대 교학의 이념이자 학문의 근본이었던 유학과 성리학의 대학자 퇴계 이황 선생은 1501년(연산군 7년)에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출생했다. 1561년(명종 16년), 61세 때 도산면 토계리에 도산서당을 세워 학 문탐구와 후진양성에 전념하다가 1570년에 별세했다. 사후에 유림과 제자들이 서원을 짓고 향사해왔으며, 1575 년(선조 8년)에 사액서원이 되었다. ‘도산서원’의 현판은 당대 최고의 명필 한석봉 선생의 친필 편액이다. 서원 내 에는 옛 도산서당과 농운정사, 도서를 소장한 광명실, 전교당 등이 있다. 유생들에게 강의를 하던 전교당(典敎堂) 은 1574년(선조 7년)에 건립된 것으로, 3칸 온돌방과 5칸 대청이 시원스럽다. 또한, 사당인 상덕사와 책을 출판 하던 장판각, 전사청, 옥진각(유물각) 등이 있는데, 상징적인 건물구조와 질서정연하고 검소한 건축양식은 자못 엄숙하다. 정조가 퇴계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도산별과를 실시했던 기념비적 ‘시사단’이 강변(안동호) 맞은편 언 덕에 있다. 유서 깊은 도산서원은 이상사회 건설에 뜻을 품었던 많은 학자들을 배출한 교육기관이다. 서원 입구 에서 퇴계명상길로 고개 하나를 넘으면 ‘퇴계종택’이다. 다소 외진 듯한 종택은 안채와 사랑채, 사당 등으로 안채 는 정면 6칸, 측면 5칸의 ‘ㅁ’자형 건물에 고주대문을, 그리고 사랑채에도 같은 솟을대문을 세웠다. 사랑채 대문 에 ‘퇴계선생구택’이라는 편액과 당호 ‘추월한수정’은 선생의 가르침과 따뜻한 숨결이 느껴진다. 도산면 일대에는 퇴계파 진성이씨 동족마을과 퇴계태실, 묘소 등이 있다. 특히, 동방오현에 오른 선생은 학문을 연구하며 집필한 계몽전의, 주자서절요, 성학십도, 도산십이곡, 심경후론, 예안향약, 매화음주시 등 2천여 편의 문집과 시를 남겼 다. “저 매화나무에 물 잘 줘라”라고 한 마지막 유언은 이학(理學)의 경문을 듣는 듯 눈물겹고 감동스럽다. 흔하 고도 귀한 천 원짜리 지폐 한 장 펼쳐들면 선생의 삶과 학덕을 기리는 근엄한 초상을 볼 수 있고, 겸재 정선의 ‘도 산서원도’에는 500년 묵향이 그윽하다. 조선의 봄을 시샘하던 이십사번화신풍은 진경산수 도산(陶山)을 맴돌고, 담장 밖으로 유생들의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들리는 듯하다.
박영순 | 수필가(zooc0929@hanmail.net)
도산서원(陶山書院)과 퇴계종택(退溪宗宅)
안동시 도산면 백운로(토계리)에 자리한 도산서원 Willi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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