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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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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군 금성면에 위치한 탑리역과 주변 풍경(사진: 의성군청 제공)

양희경 | 서울특별시 성북강북교육지원청 장학사([email protected])

의성,

중앙선에 전통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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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의 중심, 의성

승용차를 타고 가면 모를까 서울에서 대중교통으로 경북 의성에 가려면 대략 난감이다. 지도를 펼쳐보니 의 성군은 경북의 거의 한복판에 위치해 있다. 울진군을 제외하면 경북 내 다른 시 · 군과의 직선거리가 모두 80km 이내이다. 북쪽은 안동과 예천에 접하고 동쪽은 청송, 남쪽은 군위와 구미, 서쪽은 상주와 인접하고 있다. 의성까지 가는 철도 노선으로는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중앙선이 있다. 하루에 두 차례 운행되니 시간 을 잘 맞추어야 한다. 청량리역

에서 덜컹거리는 무궁화호를 타 고 3시간 50분 남짓 지나면 의성 역에 도착한다. 기차보다 버스가 낫지 않을까 해서 찾아보니 서울 에서 의성까지는 고속버스도 없 고 시외버스가 있다. 하루에 6차 례 운행되고 3시간 10분쯤 걸린 다. 시외버스가 기차보다는 소요 시간이 조금 덜 걸리고 자주 있으

니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것도 최근의 일이다. 고속도로가 지금처럼 발달하지 못했던 시 절 사람이나 물자 수송의 중심은 여전히 철도였다.

의성역에 도착하니 내리는 사람이 많지 않다. 한가롭고 조촐한 역이다. 여기저기서 “~했니껴” 하는 사투 리가 들려온다. 경북 사투리는 대개 ‘능교’형과 ‘니껴’형으로 나눌 수 있다. 능교형은 경북 남부의 중심인 대구 일대 지역에서, 니껴형은 경북 북부인 안동을 비롯한 예천, 의성, 영양, 봉화, 영주 등의 지역에서 주로 사용 된다.

의성은 험준한 태백산맥 줄기에 아늑히 자리 잡은 조용한 마을이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인문지리서 중 하 나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의성군 편에 보면 ‘의성 군민들은 솔직함을 숭상하고 순박(淳朴)하다’라고 표현되 어 있다. 의성군의 서쪽에 위치한 안계평야는

경북 최대의 곡창지대여서 예전부터 쌀 생산량 이 많았고 삼한시대 이래 이 땅을 차지하기 위 해 여러 나라가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삼한시 대 조문국에 속해 있던 의성군은 185년(벌휴왕 2) 신라에 병합되었고, 757년(경덕왕 16)에는 문소군이라 개칭되었다. 고려 초 이곳의 장수였 던 홍술은 후백제의 견훤과 벌인 전투에서 전사

의성군의 위치 출처: 의성군 홈페이지

의성군 주요 철도와 도로 출처: 의성군 홈페이지

의성역 제2 종관철도_중앙선을 타다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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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으로 산간지대가 많으며, 안계면을 중심으로 한 서쪽지역은 낙동강 상류인 위천을 끼고 있어서 경북에서 는 보기 드물게 넓은 평야지대를 이룬다. 따라서 동쪽지역은 특용 작물을 재배하는 밭농사의 비중이 높고, 서쪽지역은 벼를 재배하는 논농사의 비중이 높다. 전통적으로 농사짓기에 알맞은 땅은 서쪽의 안계면 일대 였지만, 동쪽지역은 중앙선이 지나가고 도로 교통이 더 발달하여 의성군 내에서는 앞서가는 지역이 되었다.

중앙선은 의성군의 단촌면, 의성읍, 금성면을 남북으로 관통해 지나간다. 의성군을 지나는 중앙선의 길이 는 약 29km이고, 의성군을 지나는 역으로는 북쪽에서부터 단촌역, 업동역, 의성역, 비봉역, 탑리역 등 5개 가 있다. 단촌역, 의성역, 탑리역은 1940년에, 비봉역은 1971년, 업동역은 1980년에 각각 개통되었다.

중앙선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내륙지방의 인원 수송은 물론 풍부한 광산자원, 농산물, 임산물 등을 수탈 할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하지만 의성군의 정차역들은 군내에서 생산되는 자원의 수탈보다는 경북의 중심부 라는 지리적 위치로 인해 다른 지역과의 연계 및 이동의 편리성 측면에서 결정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사람도 떠나고, 기차역의 승객도 사라지고

단촌역

김용락 늙은 측백나무가

반쯤 대머리가 된 회색빛 건물 뒤편 변소 입구에서 사색하듯 말없이 서 있는 단촌역

붉은색 페인트칠이 다 벗겨진

대합실 나무 의자가 카바이트 불빛 아래서 힘이 다한 노인처럼 꾸벅꾸벅 졸고 있던 경북 의성군 단촌역

… 중략 …

지나간 세월처럼 혹은 바람처럼 흔적도 없이 모든 것은 사라지고

낡은 역사(驛舍) 위로 흰 구름만 말없이 흘러가는 내 실존의 먼지 같은 단촌역

내 쓸쓸한 영혼의 집 단촌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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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촌역은 현재 쓸쓸한 무인 간이역이다. 단촌역 앞에는 이곳 출신인 시인 김용락의 ‘단촌역’이라는 시를 게 시한 표지판이 서 있다. 여객 열차가 정차하지 않는 곳이어서 그런지 덩그러니 놓여 있는 철로가 더 외로워 보인다. 1940년대부터 2008년 11월까지는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내리던 정차역이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수명이 다한 기차역의 역사를 없애지 않고 보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나마 중앙선의 과거 발자취 를 알 수 있어 다행이다.

기차역의 운명은 그 지역의 인구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의성군의 인구수가 처음 기록된 것은 1425년 (세종 7)에 간행된 「경상도지리지」이다. 의성현, 비안현, 다인현, 단밀현 등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총 호수는 1354호이고 인구는 남자 5184명, 여자 5973명, 합계 1만 1157명이다. 이때의 인구는 군역과 세금 부과의 목 적으로 조사했기 때문에 인구 조사에서 제외된 숫자가 상당수에 달하여 정확한 인구수는 가늠하기 어렵다.

1931년 의성군의 인구는 13만 4195명에 달하였고,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1965년에는 21만 45명으로 사상 최대의 인구수를 기록했다. 그러나 감소세로 돌아선 인구수는 1995년 8만 6212명이 되었고, 2016년에는 5만 683명으로 1965년 대비 약 75.9%나 감소되어 중앙선이 지나가는 모든 지역 중 인구감소율이 가장 높다.

고속도로나 국도 등이 발달하지 못했던 1970년대까지는 의성역의 승차 인원이 20만 명을 넘었을 정도로 중앙선은 교통수단으로써 역할이 컸었다. 그러나 의성군 전체 인구가 약 5만 명으로 줄어든 지금의 의성역은 여객을 실은 무궁화호 열차가 하루에 12회 정차하는 데 그치고 있으며, 승하차 인원도 5만 명 미만으로 줄어 들었다. 이곳을 지나는 노선은 중앙선, 영동선, 동해남부선, 대구선 등이다. 의성역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주 요 이동 정차역이 안동, 동대구, 하양, 태화강, 청량리순인 것으로 보아 안동과 대구를 생활권으로 하는 사람 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국가 전체적으로 산업화와 도시화의 거센 바람이 불었던 1970년대 이후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면서 의성군의 인구는 급격히 감소하였다. 중부내륙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승용차 나 고속버스를 이용하는 승객들이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의성군의 정차역들은 간이역이나 무 인 신호장으로 바뀌었고 그나마 현재 의성역과 탑리역만이 여객 정차역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비봉역 과 업동역은 2005년에 무인 신호장이 되었

는데, 무인 신호장은 여객은 취급하지 않고 기차가 단선 철로 등을 지나갈 때 옆 철로 로 비켜서 다른 기차를 지나가게 하는 정도 의 역할을 한다.

의성역이나 탑리역 대합실에 앉아 승하 차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대개 걸음걸이 나 얼굴에서 삶의 여유와 느긋함이 느껴지 는 노년 승객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의성 군 전체 인구 중 약 38%가 65세 이상의 노

<표 1> 의성역과 탑리역의 여객 승하차 인원수(1965~2015) (단위: 명)

구분 의성역 탑리역

연도 승차 인원 하차 인원 승차 인원 하차 인원

1965 200,872 201,974 109,977 107,019 1975 323,401 312,332 133,909 127,756

1985 177,000 189,155 75,880 71,417

1995 127,663 120,123 342,66 29,967

2005 39,544 37,928 14,425 13,588

2015 49,080 48,404 11,197 11,431

출처: 의성군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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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령기를 훌쩍 넘긴 남성들이 외국인 처녀와 결혼하는 비율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는 의성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여느 촌락에서 대부분 겪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마늘의, 마늘에 의한, 마늘을 위한 마을

의성읍에서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기가 어렵지만, 발에 치일 만큼 눈에 자주 띄는 것이 마늘이다. 집집마 다 처마 밑에 잔뜩 매달려 있거나 마당에 널어놓은 마늘을 흔히 볼 수 있다. 의성군은 경북 내에서도 손꼽히 는 농촌 마을로 마을 사람들의 절반 정도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의성군이 자랑하는 5개의 농산물은 일명

‘의로운 5형제’로 불리는데 황토쌀, 옥사과, 마늘, 청결 고추, 자두가 이에 해당한다. 물론 경지 면적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쌀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작물은 단연코 마늘이다.

의성군의 마늘 재배 역사는 조선 중종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첫 재배지로 알려진 곳은 선암 마을(의성읍 치선리)이다. 경주 최씨와 김해 김씨가 선암 마을에 자리를 잡으면서 마늘 재배가 시작되었다. 일제 강점기 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토종인 한지형 마늘을 생산하고 있는 이 동네는 10년 전만 해도 마늘 아니면 생 활이 안 될 정도로 마늘 농사에 모두가 매달려 마늘로 먹고 사는 곳이었다. 지금은 선암 마을 외에도 의성군 동쪽에 있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마늘을 생산한다. 의성 마늘이 유명해진 것은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가 개 통되어 전국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마늘은 0~5℃의 저온기를 1개월 이상 거쳐야 쪽이 나누어진다. 마늘통이 굵어지는 성장기에는 18~20℃의 기온을 유지해야 하는데, 의성군은 안성맞춤의 기후를 갖고 있다. 의성군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로

마늘을 건조하는 모습 기차역에서 소개되고 있는 의성

1) 총인구를 연령순으로 나열할 때 정중앙에 있는 사람의 연령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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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강수량이 매우 적은 곳이다. 강수량이 적고 일조 시간이 길면 곰팡이 등 각종 병충해가 적게 발생하고, 결 과적으로 농약을 덜 치게 되어 품질이 우수한 마늘을 생산할 수 있다.

농업과 축산업이 주요 산업인 의성군에 있어서 마늘은 ‘부자 농촌, 살맛나는 의성’을 만들어 주는 매우 귀 중한 특산물이다. ‘의성 마늘’은 오늘날 의성군을 대표하는 토종 농산물로서만이 아니라 의성군을 대외적으 로 홍보하는 대표 브랜드이다. 지역 곳곳에 마늘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세워지고 있으며, 인터넷 사이트인 ‘의 성 마늘 박물관’을 통해 의성 마늘에 관한 모든 정보가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다. 축산물 시장이 개방 되면서 ‘의성 마늘’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축산물의 대외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대안이 되었다. 이 때문에 지 역의 축산 대표 브랜드는 ‘의성 마늘 목장’이 되었고 소와 돼지, 닭, 달걀은 각각 ‘마늘소’, ‘마늘포크’, ‘마늘 닭’, ‘마늘란’이라는 상표를 붙이고 전국 곳곳으로 팔려 나간다. 그중에서도 의성 마늘치킨은 별미 중의 하나 이다. 요즘엔 ‘미식 유목민’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전국의 맛집을 찾아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TV의 맛집 소개 프로그램과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작성한 SNS나 인터넷 블로그 등을 통해 의성 마늘치킨 은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의성 마늘치킨을 먹기 위해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는 손님도 있다고 할 정도다.

탑리역 이름의 비밀

의성군 금성면에 있는 탑리역은 역사 모양이 특이하기 때문에 기차 마니아들에게는 꽤 알려진 성지이다. 성 곽 모양을 닮은 탑리 역사는 인근에 있는 금성산성의 모양을 본떠 만든 것이다.

탑리역 철로에 서 보니 동쪽으로 금성산이 한눈에 보인다. 삼한시대 부족국가인 조문국이 쇳덩이처럼 견 고한 산성을 쌓았는데, 이를 쇠울산성이라 불렀다고 한다. 금성산은 쇠울산성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금성 산에는 조문국이 신라와 최후의 결전을 벌일 때, 부녀자들이 앞치마로 돌을 날라 최후까지 항쟁했다는 전설 이 전해진다. 금성산에는 조문국 시절 초소였던 관망대와 석탑 등 약간의 유적들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금성산 서쪽에는 경덕왕릉을 비롯한 조문국의 고분이 약 200여 기 분포한다. 조문국에 관련된 글 자료는

금성산 탑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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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에 심은 목화씨 가운데 오직 한 개만 싹을 틔워서 그 이후 전국적으로 목화 재배가 확대되었다.2) 목화는 그 익은 열매에서 실을 빼내어 옷감을 짤 수 있는 식물인데, 20세기 나일론이 발명되기 전까지 우리의 옷을 만 드는 데 주된 재료로 쓰였다.

금성산은 해발 고도가 약 531m로 정상에 오르려면 꽤나 가파른 산길을 올라야 하지만 정상에 오르면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다. 넓은 평지는 화산의 분화구가 무너져 내려 형성된 칼데라이다. 우리는 화산이라고 하면 백두산이나 한라산을 떠올린다. 백두산이나 한라산은 신생대에 화산이 폭발하여 형성되었지만, 금성산은 그 보다 훨씬 이전인 중생대 백악기에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화산이다. 지금은 용암이 분출된 지 너무 오래되어 그 흔적을 찾기가 어렵지만 산 정상부에 있는 넓은 평지와 주변에 굴러다니는 검은색의 화산암에서 과거의 화산 활동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금성산 정상부의 칼데라는 풍수지리상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 조상 의 묘를 쓰면 만석꾼이 될 수 있지만 주변 지역은 3년 동안 가뭄이 든다는 전설이 있다.

금성산에서 북동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공룡로’라는 특이한 도로를 만날 수 있다. 금성면 제오리에서 도로 공사를 하던 중 중생대를 대표하는 동물인 공룡의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었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1억 1500만 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곳의 공룡 발자국 화석은 약

300여 개인데 발굽울트라룡, 발톱고성룡, 발목코끼리룡 등 초식공룡과 육식공룡인 한국큼룡의 발자국이다. 이처 럼 금성산과 그 주변 지역은 중생대의 화산 지형과 공룡 들을 만날 수 있어 지질사적으로 중요한 장소이다.

대부분의 기차역은 그 지역의 주요 지명을 따서 이름 을 짓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곳의 기차역 이름은 왜 금성역이 아니고 탑리역일까? 탑리역 이름은 인근의 ‘탑 리리’라는 지명에서 온 것이다. 도대체 어떤 탑이 있어서

‘탑리리’라는 지명이 붙게 된 것일까? 탑리역에서 남쪽으 로 내려가다 보면 화강암을 깎아 만든 오층 석탑을 만날 수 있다. 석탑이지만 벽돌을 쌓아 만든 전탑(塼塔)의 형 태를 갖추고 있다.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오층 석탑에 대해 “기단의 형식, 몸돌, 지붕돌의 형식에

2) 경상남도 산청에 목면 시배유지가 있어 정천익의 목화 재배와 관련된 전시물을 관람할 수 있음.

공룡 발자국 화석 조문국 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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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서 신라 석탑의 출발점 역할을 한다”라고 평가했으며 신라 석탑을 연구하려면 오층 석탑을 반드시 거쳐 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 석탑의 중요성 때문에 오히려 ‘금성면’이라는 이름이 가려져 시외버스 행선지 도 ‘탑리(금성)’, 기차역 이름도 금성역이 아닌 ‘탑리역’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책에서 밝히고 있다.

자연과 전통의 콜라보, 그리고 딜레마

의성군을 지나는 중앙선 열차는 시간에 쫓겨 황급히 달리기보다 시간을 타고 여유롭게 지나간다. 마주 오는 열차를 기다리며 각자 지나온 길을 서로에게 넘겨주며 마을과 마을을 잇는다. 의성군의 마을들을 돌아다니 다 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것처럼 곳곳에서 전통의 멋을 느낄 수 있다. 그 흔한 패스트푸드점 은 보기 힘들다. 옛날 빵집이나 허름한 간판이 걸려 있는 식당은 젊은 세대가 볼 때 분명 낯선 모습이겠지만 장년층에게는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하는 장소이다.

의성군은 유교 문화가 많이 남아 있는 안동, 예천에 인접해 있어 옛 풍습을 지키려는 보수 성향이 짙은 곳 이다. 이러한 보수 성향은 씨족 마을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 데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의성군의 가장 남 쪽인 가음면 양지리의 밀양 박씨 마을이나 산운리의 영천 이씨 마을, 봉양면 구미리의 나주 신씨 마을, 점곡 면 사촌리의 사촌 김씨 마을 등은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면서 오랜 전통을 이어 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탑리역에서 남서쪽에 있는 금성면 산운리에 자리한 산운마을은 일명 ‘대감마을’로 불리며, 400년 이상을 이어온 영천 이씨의 집성촌이다. ‘산운(山雲)’이라는 이름은 신라시대 때 ‘금성산 수정계곡 아래 구름 이 감도는 것이 보였다’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선조 때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학동 이광준이 이곳 에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으며, 학록정사, 운곡당, 소우당, 점우당 등의 지정 문화재와 약 40여 동의 전 통 가옥이 남아 있다. 풍수학자들은 산운마을의 경우 금성산과 비봉산을 병풍 삼아 위천이 감돌아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으로 설명한다. 굳이 풍수를 따지지 않는 보통 사람들에게도 산운마을은 아늑하고 마음이 평온해지는 명당이자 길지로 느껴진다.

전통 마을의 운치와 느긋한 아침을 맞이하고 싶은 여 행객이라면 이곳의 한옥에서 잠을 청하는 것도 좋다.

요즘엔 전통 가옥 중 일부가 여행객들에게 숙박을 허용한다. 그중 소우당은 아름다운 정원을 갖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대한제국시대 학자였던 소우당의 주 인인 이홍이 딸과 며느리들의 여가를 위해 완성했다는

‘별원’은 작은 연못부터, ‘총석’이라 부르는 세워놓은

의성역 역전 식당 단촌역 옛날 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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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군의 북동쪽에 위치한 점곡면 사촌 김씨 마을은 김자첨이 1392년 터를 잡은 지역으로 조선 시대에 46명 의 과거 급제자 등 많은 유학자를 배출한 유서 깊은 곳이다. 부자보다는 학자들이 많이 태어날 명당이라는 풍수지리설에 걸맞게 송은 김광수, 만취당 김사원, 천사 김종덕 등 영남학파의 대표적인 학자들뿐만 아니라 대과나 소과에 합격하거나 문집과 저서를 낸 학자들이 대략 6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 마을에는 ‘서쪽이 허하면 인물이 나지 않는다’라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서쪽으로 길게 가로 놓인 숲이 있다. 마을을 보호하는 방 풍림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수령이 400~600년 된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 이 빼곡하다. 서애 류성룡의 어머니가 1542년 사촌리 친정집에 다니러 왔다가 이 숲에서 서애 류성룡을 낳았 다는 전설이 있다.

의성군청 홈페이지에 가면 ‘의성이야기’라는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의성군의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짧은 가사에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그 옛날 조문국 이 땅에 있었네 수백 년을 존재했었네 의성군 금성면 도읍을 두고 사방팔방 수백 리였네 고운사 수정사 대곡사 지장사 절도 많이 있고요 면마다 동마다 고분도 많아라

학덕 높은 선비의 고장 인재의 고장 의성은 인심이 너무 좋다오

마늘에 고추에 능금이 일등품, 문익점이 목화 심은 곳 의성은 공룡의 화석이 있고 작약 향기 가득하다네 만취당 산운마을 탑리 오층 석탑 빙계계곡 물도 차고요 낙동강 굽이굽이 들녘을 펼쳤다

산이 높고 물이 깊어 살기 좋은 곳 의성은 씨름이 유명하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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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의성군은 “영미야~”로 인해 전 세계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의성 출신 의 ‘갈릭 걸스’라 불리는 여자 컬링 대표팀이 은메달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2006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 던 컬링 전용경기장을 유치한 의성군민들의 혜안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컬링 덕분에 마늘 등 농산물의 판 매량이 늘어나고, 의성군을 찾는 관광객들도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영화감독 임순례는 의성군에 대해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라 언급했다. 임 감독이 2010년 내놓은 영화인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에는 금성면에 위치한 수정사가 나온다. 예쁜 돌담길을 갖고 있는 수정사는 영화 속 에서 ‘맙소사’라는 절로 나와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그리고 임 감독의 또 다른 영화인 ‘리틀 포레스트’

에는 사곡면의 마늘밭이 나온다. 이처럼 의성군의 꾸미지 않은 자연스런 풍광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 지 않지만 한 번 다녀간 사람들은 다시 찾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의성군을 방문하는 다른 여행객들은 어떤 목적을 갖고 올까? 중생대 화산인 금성산과 공룡 발자국, 냉풍으 로 유명한 빙계계곡 등 독특한 자연경관을 감상하러 올 수도 있다. 아니면 학록정사나 운곡당처럼 고풍스러 운 가옥에서 선조들의 정취를 느껴보기 위해 올지도 모른다. 만약 의성군이 기차나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매 우 쉬운 곳이었다면 이런 자연경관과 전통이 잘 어우러진 지역으로 현재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의문을 가져 본다.

중앙선은 현재 도담-영천구간의 복선 전철사업이 2010년부터 계속 진행되고 있다. 2020년경에 이 사업이 완료되면 청량리-의성구간의 소요 시간이 3시간 50분에서 1시간 30분 내외로 단축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렇게 된다면 의성군에 있는 중앙선 기차역도 많은 변화가 생길 것이다. 경제적으로 효용 가치가 떨어진 기차역은 폐역이 될 것이고 반대로 의성역은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 역으로 변모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 상 모든 일들이 항상 경제적 논리만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바쁜 도시에서의 삶이 지치고 힘들 때, 아무 생 각 없이 천천히 걷고 싶을 때, 옛날 빵이 먹고 싶거나 할머니의 손맛이 그리울 때, 그때를 위해 이곳이 여전 히 그 모습을 지키고 있기를 바란다면 너무 지나친 욕심인 걸까 생각해 본다.

참고문헌

국가통계포털. http://kosis.kr

디지털의성문화대전. http://uiseong.grandculture.net

뿌리 깊은 나무 편. 1998. 한국의 발견: 경상북도. 서울: 뿌리 깊은 나무.

유홍준. 2003.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말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 서울: 창작과 비평사.

의성군. 2017. 2016 의성통계연보. 의성: 의성군청.

_____. http://www.usc.go.kr

의성마늘박물관. http://tour.usc.go.kr/garlicmuseum/main.tc 제2 종관철도_중앙선을 타다 10

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