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황금 반도(
The Golden Chersonese and the Way Thither)』에 나타난 제국주의적 시선과 여성 여행자로서의
정체성
정희선*
The Imperialistic Gaze and Identity of a Female Traveler Represented in Isabella Bird’s The Golden Chersonese and the Way Thither
Heesun Chung*
본 연구는 2017년도 상명대학교 교내연구비를 지원받아 수행하였음.
* 상명대학교 공간환경학부 교수(Professor, School of Space and Environment Studies, Sangmyung University, hchung@
s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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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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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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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본고에서는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황금 반도(The Golden Chersonese and the Way Thither)』(1883) 에 나타난 Bishop의 여정과 글의 주제를 살펴보았으며, 텍스트에 반영된 제국주의적 요소와 무슬림 사회에서 의 여성 여행자이며 식민통치국 출신의 백인으로서 겪은 정체성의 충돌을 살펴보았다. Bishop은 말레이 반도와 그 주변 지역을 여행하면서 식민 지배자와 피지배자와의 관계를 바라보는 관찰자였으나 모국인 식민통치국의 입장을 벗어난 객관적 태도를 유지하지 못하였으며, 남성적 식민주의 담론을 여행 내러티브에 투영시켰다. 그러 나 제국주의적 시선과 글쓰기 방식을 비판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데, 그 이유는 Bishop이 가부장제와 백인 우 월주의, 제국주의가 특징적이었던 빅토리아 시대의 인물이었으며, 무슬림 사회로의 백인 여성 여행자이며 관찰 자로서의 위치성에 따른 모순을 고려해야하기 때문이다. Bishop은 제국주의 담론을 그대로 수용하였으나 여성 으로서의 나약함 대신 신체와 정신의 강건함을 보여주며 미지의 열대로의 도전적 탐험을 함으로써 19세기 후반, 여성의 주변적 지위와 한계의 극복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주요어 : 말레이 반도, 제국주의, 여행자의 시선과 정체성, 여행 내러티브, 재현
Abstract : This paper examines the characteristics of travel narratives in Isabella Bird’s Golden Chersonese and the Way Thither published in 1883, and explores the imperialistic elements in the texts and the conflicts of the identities which she experienced as a Caucasian female traveler in Muslim societies. Although Bird was an observer looking at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olonial rulers and their subjects in Malay Peninsula, she failed to maintain an objective attitude beyond the colonial rule of her native country and projected the masculine colonial discourse in the travel writing. However, her imperialistic gaze and literary texts cannot be viewed only from the critical perspective not only because she was a Victorian figure characterized by patriarchy, racism, and imperialism but also because her texts reflected contradictions caused by her posi- tionality as a female traveler and an official visitor of Muslim societies. While she accepted the imperialistic discourse, she demonstrated that the marginal status and limitations of women in the late 19th century could be overcome by going on adventurous expeditions into the unknown tropical regions showing her physical and intellectual strengths instead of vulnerability.
Key Words : Malay Peninsula, imperialism, tourist gaze and identity, travel narratives, representation
1. 서론
본고에서는 1883년 출간된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황금 반도(The Golden Chersonese and the Way Thither)』(유병선 역, 2017)(이하 『황금 반도』로 지칭 함)에 나타난 Bishop(Isabella Bird Bishop, 1831~
1904년)1)의 여정과 지리적 묘사의 특징을 분석함으 로써 19세기 후반 외부 세계에 알려지지 않았던 말레 이 반도와 그 주변의 열대지역이 영국 빅토리아 시대 여성 여행가의 시선을 통해 어떻게 표상화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특히 여성의 참정권도 인정되지 않던 19세기 후반, 세계 각지를 방문했던 Bishop의 시선 속에 제국주의·식민주의의 요소가 인종, 젠더, 계급, 권력 등의 복잡한 구조와 상호작용하면서 어떻 게 텍스트에 투영되었는지, 나아가 미지의 세계에 대 한 여성으로서의 독특한 시선이 여행 내러티브에 내 재되어 있는지 알아보고자 하였다.2)
‘황금 반도(Golden Chersonese)’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지리학자들이 말레이 반도(Malay Peninsula) 에 붙인 지명으로 알려져 있는데, 인도차이나 반도에 서 보르네오 해와 안다만 해를 사이에 두고 남쪽으 로 돌출한 좁고 긴 반도를 말한다. 고대 그리스의 지 리학자이며 천문학자였던 Klaúdios Ptolemaîos의
『Geōgraphikḕ Hyphḗgēsis』에는 황금 반도의 좌표 와 주요 도시의 지명·위치 등이 언급되어 있다고 알 려져 있다(Wheatley, 1955).3) 황금 반도라는 지명은 마치 이곳에서 금의 생산량이 많을 것이라는 선입견 을 갖게 할 수도 있으나 주지하다시피 말레이 반도는 주요 주석 산지로서 금의 생산량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편이고, 19세기 말 세계 곳곳을 탐험한 여행가 이며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영국 왕립지리학회 회원 이었던 Bishop의 여행기 제목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Bishop4)은 1878년 12월 24일 총 7개월에 걸친 일 본 열도 답사를 끝내고 싱가포르를 거쳐 귀국하던 중, 예정에 없던 말레이 반도로의 여행을 결정하고 이후 2개월간 광조우, 홍콩, 사이공, 그리고 말레이 술탄 왕국이었던 네그리 슴빌란(Negeri Sembilan), 슬랑 오르(Selangor), 페락(Perak) 등지를 답사하였다. 여
행 도중 스코틀랜드에 있는 여동생 Henrietta (Hen- rietta Amelia Bird, 1834~1880년)에게 여행지의 인 상을 편지로 써 보냈고, 1883년 이 편지들을 엮어
『황금 반도와 그쪽으로 가는 길(The Golden Cher- sonese and the Way Thither)』이라는 제목의 단행 본으로 출간하였다.
이 책은 Bishop이 1856년부터 1899년까지 출간한 총 10권의 여행기 가운데 다섯 번째에 해당하는 것으 로, Bishop 자신이 여행지의 인상을 “머릿속에서 그려 볼 수 있도록” 묘사하였다고 강조할 정도로 매우 사실 적인 기술이 특징적이다(Royal Geographical Society with IBH; 유병선 역, 2017, 8). 따라서 19세기 후반 당시로는 외부 세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말레이 반도와 그 주변의 해협식민지(Straits Settlements)에 대한 영국의 통치 상황뿐만 아니라 영국인 여행자의 눈으로 목격한 다문화 사회에서 각 민족별 삶의 모습 과 열대밀림의 생태계, 그리고 여행 중 전개된 에피소 드 등을 직접 목도하듯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책의 출간 후5) 다수의 서평이 발표되었고 Bishop 의 미지 탐험에 대한 열정과 탁월한 필력에 대한 호 평이 잇달았다(The Academy, 1883; The Specta- tor, 1883). 다만 『황금 반도』 출간 2년 후 말레이 반 도에 관한 또 다른 책이 발표되었는데, 이 책은 말레 이 반도에서 영국의 식민지 경영과 열대에서의 삶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것이었다. 랑앗(Langat)의 지방행 정관이며 치안판사였던 James Innes의 배우자로서 1876년부터 5년 간 슬랑오르와 페락에서 체류했었던 Emily Innes(1843~1927년)는 『도금이 벗겨진 황금 반도(The Chersonese with Gilding off)』라는 제목 의 책에서 식민지에서의 삶, 그리고 남편 James와 식 민 관료들 간의 갈등을 중심으로 기술하였다(Innes, 1885, 2; Doran, 1998, 175). Emily Innes는 Bishop 의 탐험과 뛰어난 필치를 칭찬하면서도 열대밀림이 Bishop의 책에 묘사된 바와 달리 인간 거주에 적합 하지 않은, “끔찍한 곳”이라고 언급하였다(류제선 역, 2008, 282). 그녀는 자신이 관료의 아내로서 식민 행 정부의 일부이지만 어떠한 권한도 없었고 여성이었 던 탓에 말레이인들에게 독립적인 권위와 위상을 인 정받지 못했지만 Bishop은 영국 식민 당국의 주선으
로 관료들과 동행했기 때문에 여행지에서 정중한 대 접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식민지에서의 삶을 왜곡하 여 묘사하였다고 주장하였다.6)
국내에서 Bishop은 19세기 말 한반도 여행기 『조 선과 그 이웃 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rs)』
로 잘 알려져 있다. 1894년 제물포를 통해 입국한 후 총 4회에 걸쳐 조선을 여행하며 서울, 남한강 유역, 고양, 개성, 평양, 덕천, 금강산, 원산 등지와 블라디 보스토크, 그리고 만주의 조선인 이주지역을 돌아보 았다. 1898년 출간된 조선 여행기가 널리 소개되면 서 Bishop은 ‘19세기 서양인의 눈에 비친 조선’이라 는 주제와 관련하여 국내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인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역사학, 문화인류학, 문학, 한국학 등의 분야에서 이루어진 Bishop의 조선 여행 기에 대한 연구들은 대부분 그의 시선에 제국주의적 가치관과 ‘자아와 타자,’ ‘서양과 동양’으로 구분된 오 리엔탈리즘이 내재되어 있음을 비판하였다. 나아가 Bishop은 조선의 문명화·근대화 방안을 서술하면 서 일본의 식민주의적 개입의 정당성을 암시하였다 는 점에서 비난받았고(김희영, 2007; 2008; 홍준화, 2014), 조선인뿐만 아니라 일본인·중국인도 서양인 과 동등한 관점으로 바라보지 않았다는 문제점 역시 지적되었다(Dittrich, 2013, 25-26).
이렇듯 국내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Bishop 의 제국주의적 시선에 많은 비판이 제기되었지만 동 아시아 이외의 지역에 대한 서술에서 Bishop이 어떤 관점과 태도를 보였는지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7) 그런 점에서 그의 제국주의적 시선이 동아시아에 한 정된 것인지 확인해 볼 필요성이 제기된다. 특히 『황 금 반도』에 묘사된 홍콩, 광저우, 싱가포르, 그리고 말레이 반도의 술탄왕국은 19세기 말 영국의 식민지 였다는 점에서 이 책을 통해 Bishop의 시선을 영국의 제국주의 팽창 시대의 맥락 속에서 바라볼 기회를 얻 을 수 있다.
한편 빅토리아 시대의 페미니즘에 관한 연구들이 제시한 바와 같이 19세기 유럽의 제국주의 담론은 근 본적으로 남성 중심적이지만 영국 여성들도 식민지 에서 “본국의 제국주의 정책과 여론형성에 다양한 방 법으로 관여했다”는 주장은 검토해 볼 만한다(이성
숙, 2005, 228).8) 제국주의 시대에 전개된 페미니즘 에 대한 연구들은 본국에서 “젠더 차별”로 불이익을 당했던 영국 여성들이 식민지에서는 글쓰기, 그림 그 리기, 교육 등을 통해 친 제국주의 태도를 드러냈다 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이성숙, 2005, 228). 여성의 평등권을 얻기 위한 투쟁에 앞장섰다고 말할 수 없으 나 Bishop은 빅토리아 시대 폐쇄적이었던 영국 학계 에서 여성 차별을 극복한 지식인으로 평가되어왔다.
무엇보다도 1892~1893년 Bishop과 22명의 여성들 이 영국 왕립지리학회에 입회할 때 남성 회원들의 반 대에 직면하였고 결국 입회가 허용되면서 남성 중심 의 학회에서 여성 지식인의 위상을 고양시키는 데 이 바지하였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Middleton, 1973;
Bell and McEwan, 1996).9) 그런 점에서 19세기 말 영국의 동남아시아 해협식민지에서 이루어진 Bishop 의 여정에서 젠더, 권력, 계급, 인종 등의 복잡한 요소 들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제국주의적 관점이 어 떻게 표출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Bishop의 말레이 반도와 그 주변 식민지에 대한 여행기는 1883년 런던의 John Murray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는데, 본고에서는 기본적으로 2017년 국내 에서 발간된 유병선의 번역서를 분석 텍스트로 삼았 다. 원문(Bird, 1883)은 구체적인 문장·문맥의 표현 과 어감 등을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 한하여 참조 하였다. 번역서에는 동남아시아사를 전공한 역자의 1 차적 검증을 통해 작성된 상세한 역주가 포함되어 있 어 생경한 지명과 인물, 지역의 역사문화적 배경 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참조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먼저 1878~1879년 Bishop의 여정을 중심으로 『황금 반 도』의 내용 구성을 검토한 후 Bishop의 시선을 통해 표상화된 식민통치와 열대에서의 삶의 모습을 살펴 보았다. 이와 함께 빅토리아 시대 여성 여행가로서 보 여준 여행 담론의 특징도 알아보았다.
2. Bishop의 여정과 『황금 반도』의 구성
『황금 반도』는 Bishop이 동생 Henrietta에게 보낸
총 23편의 편지와 방문지의 지리적 특성을 소개하는 4편의 설명문으로 구성되어 있다.10) 각 장의 분량은 원문을 기준으로 최소 4페이지(Letter 19)에서 최대 62페이지(Letter 20)에 이르기까지 일정하지 않다. 분 량이 긴 편지는 20번째 편지에서처럼 한 지역에서 수 차례에 걸쳐 이어 쓴 글을 엮은 것이다.
표 1과 같이 편지의 작성일, 작성지, 그리고 글의 주제를 살펴보면, 서간문 형식이지만, 첫째, 이동경 로, 이동수단, 동반자, 방문지·체류지 등의 여행정보, 둘째, 지역의 자연환경, 역사, 경관, 민족 등에 대한 지리적 정보, 셋째, 영국 식민 관료들의 통치 방식, 현 지인과 백인들 간의 갈등 등에 관한 식민지 통치 정보 가 생생하게 기술되어 있다. Bishop 자신이 경험하고 목격한 바를 실제 전개된 에피소드로 연결시켜 내러 티브를 구성하였기 때문에 여행에 직접 참여한 듯 로 컬의 장소감을 생동감 있게 전달받을 수 있다.
이에 비해 황금 반도의 지리적 개관인 ‘서론’과 편
지들 사이에 포함된, 19세기 말 영국의 보호령이었던 숭에이 우종(Sungei Ujoing), 슬랑오르(Selangor), 페락(Perak)에 대한 소개문11)은 자연 및 인문 지리에 대한 설명으로 이루어져 있다(그림 1). 이 장들은 백 과사전과 같은 설명문 형식을 띠고 있으며, 상대적으 로 건조한 문체로 해당 지역의 기후, 지형, 동·식물, 역사, 제도와 전통, 주민 등을 소개하고 있다(표 1).
『황금 반도』의 서문에서 Bishop은 여행지에서 부 친 편지들을 일부 보완하고 오류를 수정하였으나 가 능한 원문 그대로 포함시켰다고 언급하였다. 또한 각 지역의 자연·인문 환경의 특성을 소개하는 글은 식 민 관료들이 작성한 각종 보고서와 공식 문서를 참고 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지리적 개관에 해당하는 지역 소개문 작성 시 지도제작자이며 슬랑오르의 공공사 업 감독관이었던 Dominic Daniel Daly(1843~1889 년)의 『말레이 반도의 술탄국에 관한 조사와 탐사 (Surveys and Explorations in the Native States of the Malayan Peninsula, 1875-1882)』, 왕립아시아 학회 해협지부 회보에 실린 해협식민지 식민부 차관 Frank Swettenham(1850~1946년)이 작성한 말레 이 술탄국에 대한 보고서, 그리고 해협식민지 법무장 관 Sir Peter Benson Maxwell(1843~1878년)의 『영 국의 말레이 정복사(‘The English conquest in the Malayan Archipelago)』, 동인도회사의 군인이자 탐 험가였던 Thomas John Newbold(1807~1850년) 의 『말라카 해협의 영국 식민지에 관한 정치적·통 계적 고찰(Political and Statistical Account of the British Settlements in the Straits of Malacca, viz.
Pinang, Malacca, and Singapore, with a History of the Malayan States on the Peninsula of Malacca, Vol.II)』를 참조하였다고 기록하였다(유병선 역, 2017, 393; 395; 421).
특히 Bishop이 “말레이 술탄국들에 관한 식민지 정 부의 외교 자료를 독파해야 했기에 잠시도 쉴 틈이 없 었다”(유병선 역, 2017, 306)라고 기술할 정도로 영국 정부의 식민지 조사 자료를 여행 중 꼼꼼히 읽고 확인 하였으며 이 자료들이 『황금 반도』의 근간이 되었다 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전술한 바와 같이 Bishop이 이동 시 고위 관료들의 인도와 호위를 그림 1. 19세기 말 말레이 반도의 술탄왕국
주: 밑줄 친 지명이 말레이 술탄왕국을 나타내며, 샴(Siam)에 포함된 술탄왕국은 제외하였음.
출처: British Malaya를 기준으로 필자 작성.
표 1. 『황금 반도』의 구성과 세부 주제
장의 제목 작성일 작성지 주제*
서론 - 황금 반도에 관한
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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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반도-말라카 정복-해협식민지-반도의 지형-미지의 땅-계절풍-반도의 산물-거 대한 흡혈귀-짐승과 파충류-해충과 익충-뭍과 물의 새들-말레이 이민의 역사-원시 부족과 문명인-카피르족-사망족과 오랑우탕-자쿤족의 특징-바바와 신커-말레이인 의 얼굴-언어와 문학-말레이 시와 음악-말레이 천문학-교육과 법-말레이 스포츠-집 안 풍습-무기-노예제와 채무노예-식민지 정부-“아는 게 없다”
편지 1 1878.
12. 24.
일본 요코하마에서 홍콩 증기선 ‘볼가 호’
증기선 볼가 호-어둠 속의 항해-홍콩의 첫인상-불타는 홍콩-이재민의 무표정-화재 재발-움츠러든 활력
편지 2 1878.
12. 29. 빅토리아 주교궁 상쾌한 날씨-돌에 갇힌 열병 세균-‘피진’ 잉글리시-홍콩 항-홍콩의 번영-날뛰는 범죄 집단-주위를 둘러보라!
편지 3 1878.
12. 30.
미국 선적 증기 여객선
‘킨키앙 호’
증기선 킨키앙 호-광저우의 첫인상-샤미엔 섬-광저우의 영어-만주인의 도시-배수구 와 바리케이드-광저우의 밤-그림 같은 도시-섬뜩한 선물-동양의 매력-재판정
편지 4 1879.
1. 6.
광저우, B. C. 헨리 목사 의 집
죽음도 불사하는 믿음-‘서양 귀신’-정크와 보트-중국인의 사치품-물 위에 떠 있는 광저 우-야외에서의 점심-빛과 색-평범한 실망-거리의 풍경과 소리-거리의 의상-음식과 식당-혼례-사원과 예배-전족
편지 5 1879.
1. 10. 홍콩 난하이 현 감옥-칼을 쓰는 형벌-범죄와 비참함-생일 잔치-수감자와 포로-감옥의 사 망률-잔인함과 사악함-지현 아문의 현관
편지 6 1879. 1. 중국 해상 증기선 ‘신드 호’
메콩 강-사이공의 야망-프랑스 식민지의 대도시-사이공에서 유럽인의 일상-인도차이 나의 중국인 마을-초퀴안에서 ‘애프터눈 티’-베트남인의 의복-베트남인의 강위의 삶- 뭍과 물을 오가며 사는 사람들-성공하지 못한 식민지-교지-기독교를 박해한 세 황제- 사이공
편지 7 1879.
1. 19. 싱가포르
열대의 아름다움-싱가포르의 환대-적도 위의 대도시-의미 없는 존재들-싱가포르의 성장-징세청부제-대화의 소재-번쩍거리는 ‘야만의 황금’-다중언어사회-평범한 사람 들-아시아의 신비-그림 같은 동양-싱가포르의 변화
편지 8 1879.
1. 20.
말라카, 증기선 ‘레인보 우 호’
세인트 앤드루 성당-싱가포르 항의 전경-중국인의 식민지-말라카의 첫인상-‘메말라 가는’ 도시
편지 9
1879.
1. 21.
~23.
말라카, 스타듀이스
말라카 총독-단란한 가정-낡은 스타듀이스-장엄한 건축물-끝없는 낮잠-열대의 꿈- 중국인 가옥-중국인의 부와 지배력-아편 징세청부제-말라카의 정글-무슬림의 묘지- 말레이 촌락-말레이인의 특성-복장과 장식-종교적 완고함과 메카 순례-말레이 물소
편지 10 1879.
1. 23. 말라카, 스타듀이스
중세에 머물러 있는 말라카-호랑이 이야기-중국인의 축제-황금과 보석-광채의 무게- 새해맞이-시에드 압둘라흐만-술타나-황폐한 도시-프란시스 하비에르-쇠뿔도 단김 에-여행 계획
숭에이 우종
에 관하여 - - 말레이 반도의 수수께끼-숭에이 우종-말레이 연방-시에드 압둘라흐만-숭에이 우종의 재정수입-풍경과 산물-새로운 다투 클라나-이중 지배
편지 11 1879.
1. 24.
말레이 반도, 숭에이 우 종 다투 클라나의 영지, 슴팡 경찰서(로보 체나 강과 링기 강이 합류하 는 지점에서)
맹그로브 습지-정글에 사는 사람들-슴팡 경찰서-악어 사냥-링기 강-침울한 표정의 군중-퍼르마탕 파시르에서의 교착-엄청난 장애
편지 12 1879.
1. 26.
숭에이 우종, 세람방 영 국 주재관저
한 위대한 예언자의 무덤-종신형-병약한 여행자-우리의 작은 배-정글의 밤-한밤의 경이-1월의 페락 정글-정글의 찬란함-역동과 고요-불편한 밤-약소한 식사-빈랑 씹 기-참담한 실망감-라사의 경찰서
편지 13 1879.
1. 30. 숭에이 우종 주재관저
문명의 부속물-집사 바부-캡틴 머레이의 성격-구현된 정부-중국이 주석 광산-중국 인 도박장-카피탄 차이나-춘절 축제-형평법-법정-스람방 감옥-플랜테이션 힐-거대 한 모닥불-개미의 세계-개미의 장례-플랜테이션 힐의 밤-로이드의 피살-중국인의 용 춤-말레이 왕자의 궁-다투 반다르의 거소-거대한 유혹-귀로-추모의 글
장의 제목 작성일 작성지 주제*
슬랑오르에
관하여 - - 슬랑오르-슬랑오르의 역량-천연자원-슬랑오르의 무법 상태-영국의 슬랑오르 개입-
희망적 전망
편지 14 1879.
2. 1.
• 편지 14-1 말라카, 증 기선 ‘레인보우 호’
• 편지 14- 2 술탄의 요 트 ‘압둘사맛 호,’ 슬랑 오르의 랑앗 강
• 편지 14-1 증기선 레인보우 호-말라카의 황혼-밤바다-클랑의 주재관저-인간의 ‘친 척’-클랑의 쇠퇴-탁월한 중국인의 지도자 압아로이-장대한 중국식 야외국-‘외톨이 코끼리’의 행패-“코브라다! 코브라!”
• 편지 14-2 요트 위에서 본 말라카 해협-열대의 꿈-라자 무다-호랑이 이야기-흥분-
“이 크리스, 사람 먹었서”-술탄궁-국가위원회-술탄의 수행원들-‘하렘의 빛’-술탄의 선물
편지 15 1879.
2. 7. 클랑의 주재관저 외줄모기-성가신 곤충들-어떤 하지의 운명-말레이의 관습-맹세와 거짓말-가짜 경보
편지 16 1879.
2. 7.~8.
• 증기 보트 ‘압둘사맛 호
• 슬랑오르의 버르남 강
요트 여행-슬랑오르의 파괴-개흙 위의 생물들-장독-낙후된 지역-‘끝내주는’ 아침-부 랑자들-치안 책임자
편지 17 1879.
2. 9.-10.
페낭, 호텔 들류로프, 조 지타운
딘딩 제도-팡코르 섬의 비극-열대의 일출-로빈슨 총독의 이임-일사병-클링 미인-질 문과 답변-조지타운의 시장-중국인의 일취월장-페낭의 산물-후추 농사
페락에
관하여 - -
페락의 경계와 하천-주석 광산-과일과 야채-사탕야자-페락의 교역-커피의 미래- 희망적 전망-중국인의 곤경-라룻의 중국인 분쟁-팡코르 조약-‘작은 전쟁’-페락의 안 정-주재관과 부주재관
편지 18 1879.
2. 11. 라룻의 영국 주재관저
프로빈스 웨즐리-물소-찬란한 밤-페락의 관리들-우중충한 습지-길들여진 코끼리- 간결한 표현법-타이핑의 주재관 사무소-술탄 압둘라의 어린 왕자들-중국인의 주석 광 산촌-무장 경찰-악어의 희생자-스윈번 소령-라룻에서의 만찬-아침의 찬가 편지 19 - 라룻의 부주재관저 라룻의 중국인-벌레잡이통풀-중국인의 환대-시크교도 미인
편지 20 - 1, 2, 3
1879.
2. 16.
쿠알라 캉사르의 주재관 저
• 편지 20-1 새로운 환경-흥분시키는 정글-여름, 여름, 여름 그리고 여름-신경초-캄퐁 마탕의 연꽃 호수-코끼리의 추악함-말레이인 마후트-새로운 경험-가축-말레이인의 환대-땅 위의 거머리들-두려운 즐거움-첫 코끼리 타기와 그 결말-쿠알라 캉사르
• 편지 20-2 어리둥절-기이한 만찬-마흐무드와 에블리스-재미와 재롱-마흐무드의 익 살-시적인 열대의 삶-촌락의 일상-이슬람 사원의 관리들-어떤 무슬림의 장례식-술 탄의 코끼리-페락 강에서의 수영-캄퐁 코토라마-해적의 소굴-라자 드리스
• 편지 20-3 유쾌한 환영식-통렬한 굴욕-영국인 주재관-일상의 방문자들-라자 드리 스-술 취한 유인원-결혼식-결혼식 피로연-말레이인 아이들-라자 무다 유스프-쓸쓸 한 장례식-매혹적인 친교-코코넛 따는 원숭이-큰푸른목도리꿩-아편 폐인-코뿔소의 뿔-코끼리 길들이기-이슬람의 영향-쇠약해지는 인종
편지 21 1879.
2. 20. 쿠알라 캉사르 말레이 반도의 내륙-말레이의 허수아비들-벼농사-우울한 풍경-사악한 주술-경보- 위기의 가능성-인내와 친절-사내들의 수다
편지 22 1879.
2. 21. 타이핑의 부주재관저
유쾌한 조랑말 타기-아침의 찬가-부킷 버라핏 협로-또 다시 ‘가식의 세계’로!-악령-말 레이의 귀신 이야기-아목 광란-아목 광란자의 질주-아목의 기원-페락 정글의 공터- 채무노예제-달아난 세 노예의 운명-무슬림의 기도-거머리 같은 삶-말레이 속담-만인 산
편지 23
1879.
2. 24.
~25.
• 페낭 섬의 피크, 배석 판사 우즈의 저택
• 증기선 ‘말와 호’; - 스 리랑카 행
살인 갱단-말레이인의 별명 붙이기-박해받은 아기-황금반도를 떠나며
*주: Bishop이 명기한 각 편지의 세부 주제임(유병선 역, 2017).
표 1. 계속
제공받으며 관저에 체류하였다는 사실 역시 Bishop 의 시선 자체에 영국 식민정부의 통치관이 그대로 투 영되어 있었음을 더욱 부각시킨다. Innes(1885)가 언 급했던 바처럼 Bishop은 현지인과의 대화나 교류에 서 독립된 여행가라기보다는 동행한 본국 출신의 백 인 남성 식민 관료들과 거의 동등한 지위와 권위를 가 진 공식적 빈객으로서 대우받았다. 물론 『황금 반도』
에 기술된 내용을 모두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시선 으로 일반화시킬 수는 없으나 식민 정부의 관점과 시 선이 『황금 반도』에 상당히 반영되었다는 점은 분명 하다.
책에 기술된 여정에 의하면, Bishop은 1878년 12 월 24일 일본 요코하마 항에서 증기선 ‘볼가 호’를 타 고 홍콩으로 들어가 답사한 후 광저우에서 다시 홍 콩으로, 그리고 사이공, 싱가포르, 말라카, 다음으 로는 말레이 반도의 숭에이 우종, 슬랑오르의 클랑 (Klang), 페낭(Penang), 라룻(Larut), 쿠알라 캉사르 (Kuala Kangsar), 타이핑(Taiping), 페낭(Penang)으 로 이동하였고, 1879년 2월 25일 페낭에서 스리랑카 콜롬보로 이동하기 위해 벵골 만으로 향하는 증기선
‘말와 호’에 탑승하는 것으로 여행기는 마무리된다(표 1). 방문지가 말레이 반도의 西岸뿐이고 동부와 내륙 지대에 대한 기술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황금 반 도’라는 책 제목에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Bishop 자 신이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다. 총 23편의 편지 가운 데 편지 1~7은 홍콩, 광저우, 사이공, 싱가포르에 대 해, 편지 8~23은 말레이 반도에 대해 기술한 것이다.
각 편지의 하위 주제를 살펴보면, 방문지의 경관, 역사적 배경, 제도와 관습, 식생, 영국의 식민 통치 방 식 등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다. 이 내용들은 말 레이인 마을을 직접 방문하여 현지인의 가정을 엿보 고 경험한 바와 같이 Bishop이 직접 답사를 통해 얻은 정보, 현지 식민 관료들로부터 수집한 정보, 식민 정 부 보고서로부터 얻은 정보, 特記하지 않은 정보원12) 으로부터 얻은 정보 등에 의거한 것이다. “1881년에 실시된 싱가포르 인구센서스는 이 섬이 지닌 중요성 을 한눈에 보여준다. 이 센서스의 조사원 434명 가운 데 유럽인은 단 7명이다! 이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싱 가포르 섬의 주택은 20,462채, 총 인구는 139,208명
이다. 전체 인구에서 남성이 105,423명이고 여성은 33,785명에 불과하다”(유병선 역, 2017, 409; 411)에 서와 같이 가능한 영국의 해협식민지 인구센서스나 식민지 보고서의 구체적인 통계치를 인용하여 자료 의 신뢰성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방문지에 대한 소개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열대 우림의 경관 묘사인데, 다양한 수종의 특징을 상세하 게 묘사함으로써 Bishop 자신의 풍부한 지식을 드러 낼 뿐만 아니라 기술 내용이 정확하다는 점을 과시하 고자 하였다. 가령 쿠알라 캉사르(Kuala Kangsar)의 주재관저에 체류하며 관찰한 식생에 대해 “오늘 하루 내가 본 것만 해도 교목과 관목을 합쳐 나무 126종, 덩굴식물 53종, 착생식물 17종, 양치류 28종에 달한 다”(유병선 역, 2017, 313)라는 기술에서처럼 식물 종 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갖추고 있으며 자신이 직접 꼼 꼼하게 관찰하고 기록하였음을 강조하였다. 또한 말 라카의 열대림에 대한 묘사에서와 같이 화려한 문학 적 수사를 곁들였는데 상세한 열대림에 대한 묘사는 일종의 열대의 이국적 경관과 지역성을 설명하는 기 제(mechanism)로 작용했다고 할 정도로 단순한 경 관 묘사 이상의 의미를 전달한다.
Bishop의 여행 기록은 19세기 말 제국주의·식민 주의 맥락 안에서 말레이 반도에서 말레이인, 중국인, 유럽인, 인도인 등의 다양한 삶의 방식을 설명하고 이 해하고자 기술한 地理志인 동시에 文化記述誌(eth- nography)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열대밀림에 대한 문학적 수사의 미학이 드러나는 뛰어난 글쓰기의 본 보기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책에 제국주의적 태도와 시선이 반영되어있다는 점은 분명하며 독자들에게도 제국주의 관점에서 현시한 영국의 해협식민지에 대 한 인식을 재생산하는 데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다 음 장에서는 그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본다.
3. 제국주의 시선과 분열
Bishop은 대부분의 여정에서 영국 관료들로부터 초대장이나 소개장을 받고 지역 정보를 얻어 여행하
였다. 영국 관료들이 안전과 길안내 등을 제공했기 때 문에 방문 장소들에는 식민 관료의 현장 순시처럼 수 형 시설, 재판정, 사형장, 의료 시설, 주재관 사무소, 경찰서, 주석 광산촌 등 공공기관과 시설이 포함되어 있다. 이와 같은 방문 장소들은 Bishop의 문화적 호 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곳이기도 했으나 비공식적 순 시와 같은 성격을 띠고 있어 이 장소들에 대한 묘사는 영국 식민통치관의 시찰 보고서와 같은 문체와 내용 을 나타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숭에이 우종에서 말 라카 치안 책임자(헌병 지휘관) Hayward와 함께 중 국인 도박장과 법원을 방문하면서 “나와 헤이워드는 통역자와 함께 분위기나 살필 요량으로 중국인 도박 장 중 한 곳을 찾았다”(유병선 역, 2017, 210)라고 밝 힌 것처럼 實地의 사정을 의도적으로 살피고자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영국이 식민지를 확보하는 방법과 과정도 일련의 에피소드를 통해 잘 드러난다. 그 대표적인 예는 숭에 이 우종의 링기 강(Linggi River)에서 말레이인 뱃사 공들이 야간에 물살이 빠른 상류로 이동하는 것을 꺼 리자 말라카 치안 책임자 Hayward가 이 문제를 손 쉽게 해결한 방법을 묘사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13) Hayward가 링기 강 상류로 이동하는 것을 거부한 뱃사공 가운데 한 명에게 다른 뱃사공들과 상의해 보 라고 하였고 이로 인해 뱃사공들 사이에 갈등이 빚어 지자 말레이인 순경을 보내 뱃사공들이 스스로 보트 를 젓게 했다는 이야기가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역자 유병선은 영국이 Hayward와 같은 방식으로 말레이 반도의 술탄국들 간의 갈등을 조장한 후 문제를 해결 한다는 명분으로 이 지역을 보호령으로 만들었으며, 더 나아가 반도 전체를 자국 식민지로 만들었음을 지 적하고 있다(유병선 역, 2017, 187; 450).14)
말레이 반도에서 영국의 식민 지배가 공식화된 것 은 페락 주의 술탄과 팡코르 협약(Pangkor Treaty) 이 맺어진 1874년이었는데, 영국은 이 협약에 종교 와 관습에 관한 사항을 제외하고 본국에서 파견한 주 재관(Resident)의 조언을 얻게 하는 간접지배 방식 을 명시하였다(소병국, 2003, 115). 그러나 조약과 달리 영국은 술탄국에 대한 지배를 점차 강화시켜갔 다. Bishop이 말레이 반도를 방문했던 1879년은 바
로 영국이 술탄국에서 세력을 강화시키고 있던 때였 는데 이를 촉발시킨 것은 Bishop의 방문 4년 전 해 협식민지 초대 주재관 James Wheeler Woodford Birch(1826~1875년)가 영제국의 내정개입에 반발하 는 말레이 술탄들에 의해 살해된 사건이었다. 이 사 건 후 영국은 술탄에 대한 재정적 후원과 함께 각별한 예우를 통해 갈등을 막고자 하였다(유병선 역, 2017, 289).
Bishop이 영국의 식민통치를 묘사한 텍스트에는 대체로 본국의 통치 방향과 지침에 동의하면서도 현 지인들이 겪는 고초에 동정과 연민을 표하고, 식민 통 치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하는 비일관적 태도가 곳 곳에 나타난다. 그러나 영국의 식민 통치 자체를 부 정하거나 영국인의 철수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Bishop은 “말레이인이 페락의 주재관 버치를 암살하 자, 영국이 ‘작은 전쟁’을 통해 가혹하게 응징”한 바 있다면서 자신의 의견으로는 지역의 언어와 정치사 회적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 “어설픈 조언이나 의욕만 앞선 계획”이 문제를 일으키므로 이를 시정할 필요가 있고 내정 개입이 해결되지 않으면 식민지와 영국 모 두에 대한 피해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술하였다(유병 선 역, 2017, 232; 290). Bishop은 이렇게 식민통치 방식과 관련된 문제점과 본국에서 파견된 관료 및 말 레이 술탄들의 역량과 과오를 예리하게 포착하여 기 술하였으나 이는 근본적으로 영국의 통치를 용이하 게 하고 국익을 증대시키기 위한 방안의 일부로 제안 된 것들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Bishop은 열악한 수형 시설에 수감 되어 있는 죄수,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노예 등에 대해 측은함과 동정심을 드러내었다. 자신의 감정을 스스 럼없이 표현함으로써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고 있 는 구절은 여러 편지에서 확인된다. 또한 말레이인의 예절바름과 정중함, 그리고 ‘높은 문명의 수준’을 극 찬하면서도 말레이 토착민과 영국인 간의 상호 시선 에서 나타나는 불신의 문제를 공유하고 있었고 이로 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15) “말레이인은 독실하면서도, 상당 부분 무지하고 광적인 무슬림이다. 내가 확신하 는바 매우 신뢰받는 영국인이라고 해도 말레이인으
로부터 “이슬람을 믿지 않는 개”라는 평가를 약간 면 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와 같이 Bishop 자신이 전 해들은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였다(유병선 역, 2017, 157). 또한 “분명 말레이인은 토착 군주들에게 착취 당하는 것보다 영국의 지배 아래에서 세금이 공평하 게 부과되고, 안전이 보장되는 것을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영국인은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며, 그 들도 영국인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쩌다 이슬람을 믿 게 된 이곳에서 말레이인이 영국에 우호적이라는 사 실만으로 말레이인을 향한 영국인의 경멸과 혐오의 깊은 골이 메워질 수는 없다”라며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 깊은 상호 불신과 심리적 간극을 기술하였다(유병 선 역, 2017, 158).
말레이인과 영국인 간의 상호 불신은 인종, 종교, 관습, 전통, 제도 등에 대한 무지와 편견, 그리고 오해 에서 유발된 것일 뿐만 아니라 말레이 반도에서 포르 투갈, 네덜란드, 영국으로 이어진 식민지 지배의 역사 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주목해 볼 부분은 현지인에 대 한 부정적 이미지화가 영국으로 하여금 적극적인 세 력 확장과 개입을 가지고 올 수 있었다는 점이다.16)
『황금 반도』에서 공식적인 제국의 입장을 반복하고 있는 듯한 표현들을 확인해 보면, “주재관의 보고서 는 토지 문제에서 말레이의 관습법과 영국의 개입을 둘러싼 갈등 등 영국과 말레이 수장의 ‘이중 통치’ 방 식에 따른 끔찍한 곤경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하지만 독립을 유지하려는 숭에이 우종 등 다른 영국의 보호 령은 영국의 군사적 우위를 충분히 알고 있는 상황이 어서 안전과 정의를 보장해 주는 지금의 주재관 제도 를 파기하려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와 같이 ‘안 전과 정의’를 보장하고 있다는 식민 정부의 입장을 그 대로 기술하였다(유병선 역, 2017, 177).17)
Bishop은 이렇게 영국의 식민 통치와 군대의 주둔 에 따른 ‘안전’을 특히 강조하였다. 페낭의 조지타운 (George Town)에서도 중국인, 버마인, 자바인, 아랍 인, 말레이인, 시크교도, 마드라스인, 클링인, 출리아, 파시교도 등의 다인종 사회를 이루고 있는 것에 대해
“페낭의 아시아계 이주민들은 영국의 지배 아래 생 명과 재산을 확실하게 보장받으며, 영국의 식민지 법 정에서 공정한 재판을 받는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는 뜻이다. 아울러 이들 아시아계 이주민들에게 ‘영 국 군대의 북소리’와 영국 함대는, 영국에서 효율적인 경찰이 상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안전을 보장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기술하였다(유병선 역, 2017, 274-275). Bishop은 영국인이 말레이인에 의 해 위해를 당했을 경우 위해자를 처형하고 말레이인 마을을 불태우는 등 과도한 보복을 가하는 문제를 언 급하기도 하였으나 영국의 식민통치가 진정한 ‘안전’
과 ‘정의’ 구현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믿고 있었음을 텍스트 곳곳에 드러내었다.
식민 통치에 대한 영국의 국가적 자부심 역시 그 대로 투영되어 말레이 반도를 먼저 통치했던 네덜란 드와 포르투갈에 대한 강한 부정적 묘사도 나타난다.
“나는 해적 같은 포르투갈인과 떠돌이 장사치 같은 네덜란드인이 모두 물러나게 된 것을 말리카는 다행 으로 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국은 말라카를 1795 년에 점유하였다가 1818년 네덜란드에 되돌려줬다.
1824년 영국-네덜란드 조약을 통해 영국은 수마트라 의 영국 식민지 벤쿨렌(Bencoolen)을 네덜란드에 내 주는 대신 말라카를 얻었다”(유병선 역, 2017, 168- 169)라며 유럽 국가들 간 식민지 점령 경쟁을 언급하 고 영국의 우월성을 직접적으로 피력하였다.
또한 영국의 ‘역할분리 통치전략 정책’에 따른 민족 간 분열은 특히 말레이 반도의 주요 광물 자원인 주 석 광산 개발에서 가장 두드러졌다(임은진, 2016). 영 국이 인도로부터 말레이 반도로 식민통치를 확장하 게 만들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인 주석에 대한 묘사는 광산의 분포, 광석의 매장량과 채굴 방법, 중국인 광 산 노동자 실태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 가운데 주석 을 채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중국인에 대해 서는 여러 측면에서 그 가치와 효용성, 문제점을 언 급하였다. “1828년 중국인 노동자들은 말레이인에 의 해 대량 학살되는 비극을 겪기도 했지만 지금은 영 국의 보호 아래 그럴 걱정을 덜었다”며 영국이 안전 과 질서, 정의를 위해 개입하였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였다(유병선 역, 2017, 206). 실제 주석을 놓고 말 레이인, 중국인, 영국인 간의 갈등은 텍스트에 기술 된 것보다 훨씬 심각했고 장기간 지속되었다(소병국, 2003). Bishop은 주석에 대한 네덜란드와 영국의 식
민지 쟁탈 과정, 주석 광산 개발권을 놓고 벌어진 중 국인들 간의 유혈 사태, 그리고 말레이 술탄의 개입에 의한 내전 등을 상세하게 기술하며 자원이 외세 개입 의 원인임을 그대로 보여주었으나 자국의 자원 수탈 의 문제점은 직접적으로 비판하지 않았다.
4. 여성 여행자로서의 정체성과 글쓰기
박지향(2000)은 여성과 남성이 쓴 여행기에 나타 난 담론에 차이가 있다는 주장에 문제가 있음을 지 적하였다. 일반적으로 남성과 여성 간 차이로서 첫 째, 남성이 식민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중심 주제로 두 고 여행지를 잠재적 식민 통치 공간으로서 기술하는 경향, 둘째, 남성이 자신을 ‘국민’이나 ‘인종’을 대표 하는 것으로 묘사하는 경향, 셋째, 남성이 자신이 처 한 어려운 형편·처지, 또는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이미 지를 형성할 수 있는 사실이나 관점을 서술하지 않 는 경향, 넷째, 여성이 두려움·혐오감 등 자신의 감정 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경향, 다섯째, 여성이 지역주민 의 용모·의상 등을 상세히 묘사하는 경향 등이 언급 되기도 한다(박지향, 2000, 152-153). 그러나 여행기 에 표출된 남성과 여성의 관점과 기술 방식의 차이라 는 것이 젠더에 따른 가치관과 정체성으로부터 유래 한 특수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역사적 시대의 정 치적, 사회적, 문화적 특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고 해석해야 할 필요성이 강조된다(Clark, 1999, 22- 23; 박지향, 2000, 159에서 재인용). 이미 감상적 표 상이나 정서적 체험의 강조가 여성의 텍스트에만 나 타나는 특징은 아니라는 사실들이 제시된 바 있다(박 지향, 2000, 157). 여행가의 시선이나 글쓰기 특성 이 성별로 동일하거나 일관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앞 서 언급한 Innes(1885)의 『도금이 벗겨진 황금 반도 (The Chersonese with Gilding off)』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같은 지역, 같은 대상에 대해서도 사회문화 적 위치성·정체성에 따라 서로 다른 태도와 관점을 보일 수 있는 것이다.18)
그러므로 Bishop이 성차별과 백인우월주의, 제국
주의가 특징적이었던 빅토리아 시대의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그가 고된 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인 종, 계급, 젠더에 따른 정체성을 어떻게 표출하였는 지, 그리고 이들 각 요소가 어떠한 갈등을 일으켰는 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Bishop은 종종 안전의 문 제를 걱정하기도 하였으나 여행 과정에서 여성으로 서의 나약함을 드러내거나 여성이라는 점에서 특별 한 대우를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체와 정신의 강 인함을 드러내는 상황들을 다수 묘사하였다.19) 이를 테면 Bishop은 말라카 증기선 ‘레인보우 호’의 탑승 객 가운데 유일한 백인 여성이었을 때나 숭에이 우 종의 정글 속 링기 강에서 뜨거운 열기와 급류, 그리 고 물살을 따라 떠내려 오는 거대한 통나무를 피하 며 46.7km의 물길을 이동하면서도 동승자들과 달 리 태평한 모습을 보였음을 사실적으로 기술하였다.
Bishop은 자신이 여행을 통해 갖은 고초를 겪었기 때 문에 덤덤해졌다고 표현하며 섬약한 여성의 모습을 내비치지 않았다(유병선 역, 2017, 190).
그러나 무슬림 사회를 여행하면서 백인 여성으 로서의 정체성이 갈등을 겪었던 경우는 여러 곳에 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Bishop은 종교, 젠 더, 권력의 요소들이 서로 충돌하는 상황으로서 네덜 란드 말라카 총독 집무실이자 관저였던 스타듀이스 (Stadthuys)에서 체류하는 동안 일어난 에피소드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내가 미처 잠자리를 벗어나기도 전에 네 인종(말 레이인, 중국인, 포르투갈인, 마드라스 출신의 인도 인)의 남자 시종이 내 방을 찾은 것이다! 여느 중국 인 노동자들처럼 갈색의 무명 셔츠와 바지를 입고 내 방에 수시로 드나드는 중국인 시종은 시중드는 솜씨가 형편없는 것도 모자라 나를 아주 성가시게 한다. 내 방문이 제대로 잠기지 않는 탓도 있겠지 만, 그는 내가 잠옷 바람으로 글을 쓰는 아침에 소 리도 없이 들어와서는 침대를 정리하고 모기를 잡 는다. 그리고는 옷장에서 가운을 하나하나 가리키 며 나를 빤히 쳐다본다. 내가 눈짓으로 어느 하나 를 고르면 그것을 집어 들고 가져온다. 내가 문을 가리키며 ”나가!“라고 큰 소리를 지른다고 해도 그
를 쫓아낼 수 없다.”(유병선 역, 2017, 169)
말레이인 남성으로부터 시중을 받는 것은 인종, 종 교, 계급, 젠더의 요소들 간 마찰을 발생시키는 것이 었다. 식민지 본국에서 파견된 총독의 정식 초청을 받 은 방문객이었던 Bishop의 경우, 총독과 동급의 지위 와 백인이라는 인종적 특권이 무슬림 사회에서 여성 으로서의 취약함을 상쇄시켰다고 할 수 있다. 다인종 사회에서 백인의 우월성, 특히 식민제국 출신의 백인 으로서의 지위 역시 중요하게 작용하였다고 해석할 수도 있으나 Innes(1885)20)가 영국 출신의 백인 여성 이었지만 공식 직함이 없었던 탓에 현지인들 사이에 서 겪었던 고충들을 고려해 볼 때 더 중요하게 작용한 것은 총독의 공식적 빈객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Bishop이 여성으로서 겪은 여러 가지 에피소 드에는 로컬에서의 여성의 낮은 지위나 부정적 인식 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 배가 도착하자 지붕을 씌운 부두에는 한 무리의 무슬림이 운집했다. (중략) 그들 은 얼굴을 베일로 가리지 않은 백인 여성들을 조용히 지켜볼 뿐이었지만 필경 우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표정에서 알 수 있었다”(유병선 역, 2017, 183- 184), 또는 “여자들을 위해서 일하지는 않을 것”(유병 선 역, 2017, 185)이라고 단언한 말레이 순경에 대한 묘사에서와 같이 서로 다른 종교, 젠더, 계급에서 나 타나는 복잡한 상하 관계가 전개되었던 것이다. 무슬 림 사회에서 여성이 베일(Tudong in Malay)을 쓰지 않는다거나 남성이 여성에게 복종하는 것 등은 인정 될 수 없었던 것으로서 종교적 관습과 규율이 인종과 계급이라는 요소와 충돌하는 경우였다. Bishop은 자 신이 “상호 응시(reciprocal gazing)”의 대상이 되거 나 계급적 특권이 작용하지 않는 모순적 상황들을 직 면하기도 하였으나 대부분 이와 같은 문제들을 크게 괘념치 않았고, 심각한 상황은 말라카 치안 책임자와 같은 백인 남성 관료들의 문제 해결로 마무리되었다 (박지향 2000, 149).
Bishop은 영국인 남성 관료들의 호기로움과 의례 적 대화에 대해 비판적으로 묘사하기도 하였으나 여 성의 동등한 권리나 성차별에 대한 부당성 등을 강조 하지 않았다. 이는 Bishop이 식민 관료인 백인 남성
들과의 동등한 지위를 상정하고 있었으며 단기 여행 자로서 관찰자의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개인이나 집단의 상이한 관점과 정서가 충 돌하는 상황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으려 했을 수 도 있다. 분명한 것은 Bishop이 자신의 정신적 강인 함으로 여행 중에 조우한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려 고 노력하면서도 식민 관료들의 호위와 안내를 기꺼 이 따랐다는 점이다.
한편 『황금 반도』에 나타난 열대우림의 수종과 경 관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이국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 으키는 여성적 글쓰기 방식이라기보다는 유럽 제국 들의 근대 과학적 지식의 힘과 위상의 과시라는 측면 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페락 강변(Perak River)을 따라 열대 숲을 탐험하면서 “이따금씩 거대한 나무들 이 쓰러지면서 생긴 밀림 속의 공터가 있는데, 거기로 찬란한 열대의 햇빛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거대한 꽃 나무 위로, 난초의 순백색 꽃잎 위로 리아나 덩굴의 노란색 꽃 무더기 위로 쏟아지는 그 햇빛 속에서 태 양새의 깃은 무지갯빛으로 빛났다”(유병선 역, 2017, 332)라거나 쿠알라 캉사르에서 타이핑(Taiping)으로 오는 여정에서 “거대한 나무고사리, 기품 있는 와링 한나무의 가지 위에 뿌리를 내린 여린 풀고사리, 빵 나무의 볼품없는 줄기를 아름답게 장식하는 실고사 리, 그리고 생강과 참마 등 덩굴식물과 착생식물의 잎 위에도 햇살이 깃든다. 키 큰 나무의 꼭대기까지 타 고 오르는 거대한 리아나 덩굴은 오렌지색과 분홍색 의 꽃과 열매로 거대한 꽃줄을 연출하며, 나무들 사 이를 가로질러 숲을 그물처럼 엮는다. 부처손, 린드사 야(Lindsayas), 좀처녀이끼, 트리코마네스 라디칸스 (trichomanes radicans) 등 양치류와 구분이 어려운 이끼류가 녹색의 깃꼴 잎으로 바위를 장식한다”(유병 선 역, 2017, 374)에서와 같이 Bishop의 식생 경관에 대한, 언어를 통한 이미지화는 탁월하다.
Bishop은 자연 경관의 순수함과 미적 가치를 찬양 하였고, 각종 식물 종의 학명과 생태에 대한 지식에 의거하여 열대우림을 묘사하였으나 19세기 당시 생 태적 지식의 한계이면서도 외부자로서의 관점에서 나타나는 한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말라카를 떠나 로 보체나 강(Loboh-Chena River)과 링기 강이 합류하
는 지점에서 관찰한 맹그로브 숲에 대한 묘사는 그 대 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우리 배가 정박한 곳은 코코스야자나무와 바나 나, 관목들이 밀림을 이룬 작은 섬의 곶이었다. 곶 양쪽의 개천을 따라 맹그로브가 무성했다. 맹그로 브 숲을 이렇게 가까이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말레이어로 망이-망이(mangi-mangi)인 맹그로 브나무(학명-Rhizophera mangil)의 겉모습은 전 혀 아름답지 않다. 맹그로브 숲은 조수에 따라 바 닷물이 드나드는 해안에 수 킬로미터에 걸쳐 빽빽 하게 두꺼운 띠를 이룬다. (중략) 맹그로브 나무의 열매는 가지에 매달려 있는 상태에서 뿌리가 씨껍 질을 뚫고 빠르게 아래로 자라난다. 그 열매가 아 래로 떨어지면, 곧바로 개흙 속으로 뿌리를 뻗게 된다. 목재로서는 아무 쓸모도 없는 맹그로브의 번식을 위해 자연은 너무 많은 수고를 하고 셈이 다. 그런데 괴이쩍게도 맹그로브나무의 열매는 달 고 맛있다. 과즙은 술을 담글 수도 있다. 그러나 내 게 맹그로브 숲은 그저 사악한 불가사의에 지나지 않는다.”(유병선 역, 2017, 178)
맹그로브가 연안 환경에서 침식을 막고, 생물 다 양성을 유지하며, 지역민에게 임산물과 해산물을 제 공하는 등의 중요한 가치를 알고 있지 못했음이 드 러난다(유병선 역, 2017, 415; 한국환경산업기술원, 2015).21) 오늘날과 같이 지속가능한 지역개발에서 맹 그로브가 나타내는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 당 연한 것일 수 있으나 지역민의 입장에서 맹그로브가 어떤 역할과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않 았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식물 종에 대한 일종의 강박적 묘사는 근본 적으로 과학적 지식의 힘과 우월성을 나타내는 것일 수 있는데 16~19세기 유럽에서 식물 종을 명명하고 전 지구적 식물 분포도를 제작하는 일은 “상업적으로 가치 있는 원료, 시장, 그리고 식민지화할 땅에 대한 탐구”와 직결되는 것이었다(김남혁 역, 2015, 65; 원 정현, 2014, 248). 즉 Linné의 분류체계는 유럽인들 이 식민지 영토의 자원을 이해하고 전유하는 데 효율
적으로 이용되었고, 지구상의 생명체들은 유럽인들 이 만든 지구적 질서, 즉 “보편적 분류체계”에 꿰맞춰 져야 했다(원정현, 2014, 248). Bishop의 열대 식물 에 대한 관찰과 묘사는 이러한 유럽의 근대 제국주의 와 식물분류학의 배경 하에서 이해될 수 있다. 나아가 Bishop의 묘사는 자신이 방문한 곳의 이국적 풍경과 지역성을 지시하는 문학적 장치(mechanism)와 같은 역할도 수행하였는데, “하늘하늘한 기생꽃과, 뾰족하 게 진홍색을 내미는 이끼와 보일 듯 말 듯 피어 은은 하게 향을 흩날리는 앵초와, 자줏빛 황무지에 무더기 로 피는 헤더22)가 정말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집에 있 는 너(여동생 Henrietta)를 떠올리게 하는 소박하고 향긋하고 수수한 모든 꽃들이 말이다!”와 같이 스코 틀랜드의 식생 경관을 들어 고향에 대한 향수를 표하 기도 하였다.
따라서 무슬림 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 또는 백인 남성 관료들과의 사이에서 나타나는 성차별적인 요 소들에 대한 비판이 언급되지는 않았으나 1880년대 영국에서 여성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풍부한 지 식과 식견을 통해 전문적인 여행기를 기술했다는 점 에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꿔놓는데 일조했 다는 점은 분명하다. Bishop의 여행 내러티브에서 나 타나는 특성들은 여성이라는 정체성으로부터 유래한 특수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역사적 특수성과 보 다 더 관련되어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박지향, 2000; Mills, 2010).
5. 결론
본고에서는 1878년 12월 말에서 1879년 2월 말까 지 2개월간 말레이 반도와 주변 열대지역을 여행했던 Isabella Bird Bishop이 저술한 『황금 반도』에 나타 난 Bishop의 여정과 글의 주제를 살펴보았으며 텍스 트에 반영된 제국주의의 요소와 무슬림 사회에서의 여성 여행자이며 식민통치국 출신의 백인으로서 겪 은 정체성의 충돌을 검토하였다. 일반적으로 여행기 는 저자가 경험을 통해 포착한 장소성·지역성을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