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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분석 10주: 윤리학 II: 가치론과 규범윤리학.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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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철학적 분석

제 10 주: 윤리학 II: 가치론(Axiology)과 규범윤리학(Normative Ethics)

(2)

가치있는 것들: 예술, 음식, 우정, 놀이 등

어떤 대상들 혹은 사건들이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상식적이다: 도스또옙스키의 죄와 벌은 감동적이다. 점심 때 후식으로 먹은 배스킨 라빈스 아이스크림은 환상적이었다. 우리 부대원들은 정말 가족같은 전우애로 똘똘 뭉쳐 산다! 등산이 최고야. 천왕봉에 올라서 내려다보는 지리산의 풍경은 정말 장관이거든. 또한 이런 대상들 혹은 사건들의 가치는 우리들의 행위와 관련해 중요한 도덕적 함의를 가지는 듯하다. 그것들의 가치로 인해서, 그런 대상들 혹은 사건들을 만들고/일으키고 획득하고/즐기는 것 (이하: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3)

내재적 가치와 외재적 가치

하지만 일반적으로 가치있는 모든 대상들이나 사건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늘 추구할만한 것은 아니다. 첫째, 두 대상들 혹은 사건들이 각각 가치를 지니지만 그것들을 모두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경우들이 있다: 너가 발레리나가 된다면 수학자의 꿈은 포기해야할 거야. 놀러가려면 산에 가든지 물에 가든지 하나를 골라야지, 하루 뿐인 공휴일에 둘다 갈 수는 없어. 하지만 위 경우들에서는 최소한 각각의 사건이나 대상이 그 가치를 계속 지니지만 단지 또다른 사건이나 대상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불가능할뿐이다.

(4)

내재적 가치와 외재적 가치 (계속)

그런데, 둘째, 어떤 경우에는 특정한 대상이나 사건이 가지는 가치 자체가 외적 조건에 의존적이다. A: 핵전쟁이 터졌지만 최소한 우리 집 금고에는 수십톤의 금괴들이 있어. B: 정신차려! 그걸 먹을 수 있니 입을 수가 있니? 이처럼 어떤 외적 조건이 성립하여야만 가치를 지니는 대상들/ 사건들은 외재적 가치를 지녔다고 말하며, 반면 그 가치가 외적 조건에 의존하지 않는 대상들/사건들은 내재적 가치를 띤다고 말한다.

(5)

쾌락과 고통

외재적 가치만지니는 대표적인 사물은 돈이다. 지폐는 그 자체로는 이러저러한 문양이 인쇄된 종이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내재적 가치를 지니는 사건에는 무엇이 있을까? 한 가지 예로서 쾌락을 들 수 있다. 백조의 호수에서 오데뜨의 춤 부분이 주는 감동은 정말 최고야. 우리는 정말 속궁합이 잘 맞는 것 같아. 이런 쾌락은 그 자체로 가치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쾌락이 언제나 추구할만한 것은 아니다. 백조의 호수 공연이 있을 때마다 보러갔더니 돈이 떨어져서 춥고 배고파. 우리 커플 속궁합은 잘 맞았지만 성격 탓에 결국 깨졌어. 너무 괴로워. 즉 어떤 종류의 쾌락은, 내재적으로 가치있을지는 모르지만,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에 추구할만 하지 않다.

(6)

행복에 대한

잠정적 정의

앞 슬라이드에서 언급한 사실들은 행복을 쾌락과도, 고통의 부재와도 동일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사실 행복에 대한 그럴 듯한 정의가 얻어지려면, 쾌락과 고통 두 요인을 다 언급해야할 것이다. s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주체라고 해보자. 그러면 s의 행복=(s의 쾌락)-(s의 고통) 그런데 이 정의는 다음과 같은 가정들에 의존하는 것으로 보인다. 가정1. s가 누리는 행복은 s가 겪는 쾌락과 고통만 감안하여 계산하는 것이 가능하다. 가정2. (a) s가 누리는 쾌락은 수량화할 수 있다 (b) s가 누리는 고통은 수량화할 수 있다. (c) s가 겪는 쾌락과 고통 사이에 덧뺄셈이 가능하다.

(7)

행복의 총량에 대한

잠정적 정의

나아가서 s1, . . . , sn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n명의 주체들이라고 해보자. 그러면 s1, . . . , sn의 쾌락의 총량=(s1의 쾌락)+. . . +(sn의 쾌락) s1, . . . , sn의 고통의 총량=(s1의 고통)+. . . +(sn의 고통) s1, . . . , sn의 행복의 총량=(s1, . . . , sn의 쾌락의 총량)-(s1, . . . , sn의 고통의 총량) 이 정의는, 가정1과 가정2에 더하여, 다음 가정에 의존하는 것으로 보인다: 가정3. (a) si가 겪는 쾌락은 si 6=j가 겪는 쾌락과 덧뺄셈이 가능하다. (b) si가 겪는 고통은 si 6=j가 겪는 고통과 덧뺄셈이 가능하다. (c) s1, . . . , sn이 겪는 쾌락과 고통 사이에 덧뺄셈이 가능하다.

(8)

이기주의

윤리적 이기주의(egoism)는 다음과 같은 형태를 취할 것이다: (E ) 시점 t에 행위주체 s의 행위 a는 도덕적으로 올바른 행위다 IFF (i) s는 t에 a1, . . . , an중 하나를 행할 수 있고, (ii) a1, . . . , an의 결과들 가운데 a의 결과가 s 자신에게 최선이다. s가 t에 실제로 행하는 행위는 s가 t에 행할 수 있는 행위이기도 하기 때문에, 어떤 k ∈ {1, . . . , n}에 대하여 a = ak라는 점에 유의하라. Q. 조건 (ii)를 s의 행복에 의거하여 정의한다면?

(9)

이기주의에 대한 오해

흔히 이기주의자는 목적 달성을 위해서 거짓말하고 속이고 죽여도 된다고 생각할 것이라고지레짐작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기주의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지뢰밭 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 순간에 불구가 되거나 죽을 수 있다. 당신이 다른 사람을 정직하게 대하지 않으면 그들도 당신을 정직하게 대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친구나 가족에게 무관심하면 그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에도 그들은 당신에게 무관심할 것이다.

(10)

일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다면?

만일 당신이 무사히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속이고 훔치고 죽이겠는가? 플라톤의 대화편 국가에 등장하는 이기주의자 트라시마코스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한다. 당신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것이 다른 사람의 이익을 짓밟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도 당신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정치권력을 추구하고 성취하는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가 군대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순간 다른 사람들은 그의 명령에 복종할 것이고, 그 대가로 부와 권력을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한다.

(11)

정말 빠져나가진 못한다!

하지만 플라톤은 그것으로 그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독재자는 누가 자기 편인지 전혀 알 길이 없고 자기편이 과연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는 자기네 가운데 누가 자기를 살해하거나 내쫓으려고 음모를 꾸미는지 전혀 모른다. 그는 누가 자기를 몰아내거나 살해하기 위해 다른 사람과 협력할까봐 결코 안심하지 못한다. 플라톤은 “광포한 이기주의”의 이런저런 사례를 인용하면서 그 같은 삶은 결국 불행과 좌절로 이어질 뿐이라고 결론지었다.

(12)

정말로 자신에게 좋은 것은?

플라톤이 공격하는 것은 이기주의 자체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기주의를 추구하는 방법이다. 그들은 자신의 처신이 장기적인 자기 이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무엇이 지신에게 행복이나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주는가라는 중대한 문제를 놓고 끊임없이 잘못된 계산을 한다. 행복해지고 싶지만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13)

정말로 자신에게 좋은 것은? (계속)

이 문제를 좀 더 현대적인 말로 설명해 보자. 사람들은 대부분 고속도로를 운전 할 때 일정한 “교통 규칙”이 있어야 한다는데 동의한다. 이를테면 다른 차량을 추월할 때를 제외하고는 차선을 지켜야 한다, 야간 운전을 할 때 라이트를 켜야 한다, 등등. 나는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다른 운전지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기를 원하는데, 교통 규칙을 무시하면 교통사고에 말려들 가능성이높기 때문에, 교통규칙을지키는것이 자기 이익에 도움이 된다. 결국 윤리적 이기주의자라고 해도 살인과 절도 등을 일삼지는 않는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게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14)

이타주의

윤리적 이타주의(altruism)는 다음 형태를 취할 수 있다: (A) 시점 t에 행위주체 s의 행위 a는 도덕적으로 올바른 행위다 IFF (i) s는 t에 a1, . . . , an중 하나를 행할 수 있고, (ii) a1, . . . , an의 결과들 가운데 a의 결과가 s 이외의 다른 행위주체들 s1, . . . , sn에게 최선이다. Q. 조건 (ii)를 s1, . . . , sn의 행복의 총량에 의거하여 정의한다면?

(15)

순수한 이타주의

다른 사람의 행복에만 관심을 가지는 이타주의는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을 가지는 이기주의의 반대이다. 순수한 이타주의자는 자신에게 무엇이 좋은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다른 이들에게 무엇이 좋은지만을 고려한다. 그녀가 (a) (자신을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하는 것처럼) 자신에게 커다란 이득이 되는 행위, 그리고 (b) (오늘 밤에 그를 콘서트에 갈 수 있게 하는 것 처럼) 자신에게는 전혀 이득이 없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이득이 되는 행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면 그녀는 (b)를 선택해야 한다. 그녀는 자신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이기심 없는 (selfless) 사람이어야 한다. 그녀는 다른 사람을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무릅써야 한다. 그녀는 오로지 다른 사람을 섬길 뿐 자신의 이익은 완전히 포기한다.

(16)

순수한 이타주의의 문제점: 이타주의자는 생존불가능하다

순수한 이타주의자는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먹고 마시고 잠을 자야 하는데, 자기 자신이 음식을 먹지 않음으로써 다른 사람이 음 식을 먹을 수 있다면 그들은 음식을 먹지 말아야 한다—그들은 조만간 굶어 죽게 된다. 사실상 이타주의자만 있는 세상은 불가능할 것이다. 한 사람이 음식을 받으면, 그 사람은 “아니다, 당신이 먹어라”라고 말해야 한다. 그 다음에 다른 누군가에게 음식을 주면 그 사람 역시 이타주의자로서 “아니다, 당신이 먹어라”라고 말해야 한다. 음식을 받는 모든 사람이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말해야 한다. 이타주의가 살아남아서 내일도 이타주의자가 되려면 제 자신의 필요를 아주 조금이라도 중요한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

(17)

온건한 이타주의: 네 이웃을 사랑하라

예수는 그의 유명한 가르침에서 네 자신의 필요를 완전히 무시하라고 말하지 않으 며, 네 자신만 사랑하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는 대신 네 자신을 사랑하는 것만큼 네 이웃을 사랑하라 고 말한다.

(18)

온건한 이타주의: 누가 내 이웃인가?

그런데 누가 나의 이웃인가? 한 가지 가능한 대답은 존재하는 모든 인간이 나의 이웃이라는 것이다. 이 대답이 맞다면, 그리고 예수의 가르침을 받아들인다면, 나는세상 모든 사람을 나 자신만큼 사랑하여야 한다. Q. 이것은 어떤 측면에서 온건한 이타주의인가?)

(19)

온건한 이타주의: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은 나에게 무엇을 하라는 명령인가? 그것은 나 자신과 내 가족에게 가지는 애정을 내 이웃—즉 모든 사람들—에게 가지라는 명령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심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마 그 명령이 요구하는 바는 느낌보다 행위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내 가족을 사랑 하는 것과 똑같은 강도로 먼 곳에 사는 부족을 사랑할 수는 없어도, 마치 내가 내 가족에 가지는 관심과 동등한 관심을 그들에게 가진 것처럼 행위할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행위는 어떤 행위일까? 내 자신과 내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먼 곳에 사는 부족의 행복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일까? 그것 역시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느끼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20)

온건한 이타주의의 문제점: 잘못된 결과가 산출될 수 있다

“네 자신을 사랑하는 것만큼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을 위에서처럼 해석하여 얻을 이론을 “온건한 이타주의”라고 부르자. 결국 온건한 이타주의는 다음과 같은 이론이 된다: 시점 t에 행위주체 s의 행위 a는 도덕적으로 올바른 행위다 IFF a는 만일 내가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나 자신만큼 사랑했더라면 취했을 행동이다. 위 조건대로 행동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생각에는 잠재적 문제점이 있다. 그런 행위는 정말로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일까? 이타주의자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기 자식을 자신만큼 (혹은 자신보다 더) 사랑하며 그에 따라 행동한다. 하지만, 때때로 자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에서 나온 행위가 그 자식을 망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21)

황금률

황금률(golden rule)은 남에게 대우받으려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우하라 고 말한다. 당신은 당신이 대우받고 싶은 그대로 행해야 한다. I 당신이 곤경에 빠져 있을 때 남이 당신을 도와주기 원한다면 당신도 남이 곤경에 빠져 있을 때 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I 남이 당신을 인정해주기 원한다면 당신도 그들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I 남이 당신에게 진실을 말하기 원한다면 당신도 남에게 진실을 말해야 한다.

(22)

황금률과 관련된 논란들

그러나 이 도덕원칙은 몇 가지 논란을 야기한다. 첫째는, 해석 상의 논란이다. (1) 당신이 남들에게 정직해야 하는 이유는 당신이 그들에게 정직하기를 그들이 원하기 때문인가? (2) 아니면 당신이 그들에게 정직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당신을 정직하게 대하기를 당신이 원하기 때문인가? 둘째는, 보다 심각한 논란인데, 황금률을 어느 쪽으로 해석하건, 단지 x가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행동하기를 y 가 원하기 때문에 x가 (또는 y 가)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은 반직관적이다. (1)의 해석을 채택해 보자. 즉 남들이 나에게 원하는 방식대로 나는 행동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동일한 방식으로 대우받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친절한 대접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무관심한 대접을 원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 사람에게 무관심해야 하는가? 반대로 (2)의 해석을 채택해도 비슷한 문제가 생긴다. 내가 학대받기를 즐긴다고 하자. 그렇다면 나는 남들을 학대해야 하는가?

(23)

보편화가능성과 윤리적의무

임마누엘 칸트는 부분적으로는 방금 제시한 이유들 때문에 황금률에 만족하지 못했다. 주체 s의 행위 a가 올바른지 여부는 s가 a를 행하기를 특정한 사람이 의지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a를 행하라”라는 준칙에 따라 행하기를 모든 사람들이 의지할 수 있는지가 문제다.* 예를 들어, “거짓말하라”라는 준칙이 보편법칙이 된다고 상상해 보자. 그 경우 누구 말도 믿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거짓말은 신뢰에 의거한 의사소통을 전제하기 때문에, 그런 세상에서는 역설적으로 거짓말이 불가능해진다. 즉, 그런 세상에서는 한편으로 모든 사람들이 거짓말해야 되지만 또한편으로 누구도 거짓말을 할 수없게 된다. 이것은 모순이기 때문에, 그 준칙은 보편화 가능하지 않다. *독일어 “wollen”은 원한다는 뜻과 더불어, 말하자면, 의지한다는 뜻을 함께 가지고 있다.

(24)

보편화가능성과 윤리적의무 (계속)

이것은 이른바 칸트주의라는 도덕이론으로 우리를 이끈다: (K ) 시점 t에 행위주체 s의 행위 a는 도덕적으로 올바른 행위다 IFF

(i) 그 행위 a는 어떤 준칙(maxim) m에 부합하며

(ii) m은 보편화가능(universalizable)하다.

여기서 보편화가능하다는 것은 다음처럼 정의될 수있을 것이다: (U) 준칙 m은 보편화가능하다 IFF m이 모든 사람들이 따라야하는 보편법칙이 된다고 하더라도 모순이 없다.

(25)

칸트주의의 문제점 1: 복수의 보편법칙들

하지만 U를 채택했을 때 K 에는 두 가지 문제점들이 발생한다. 첫째, U는 상당히 약한 조건이기 때문에, 둘 이상의 상충하는 준칙들이 각각 보편화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m1) 비늘없는 물고기를 먹지말라, (m2) 비늘없는 물고기만 먹어라, 이 두 준칙들을 생각해 보자. m1이 보편법칙이 되는 것은 모순없이 상상가능하며, 이는 m2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오늘 아침 오징어물회를 먹은 나의 행위는 올바른가 그렇지 않은가?

(26)

칸트주의의 문제점 2: 바람직하지 못한 보편법칙들

둘째, 준칙의 보편화가 모순에 빠지지는 않지만 지극히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I 모든 사람이 자살했다면 인류는 없어졌을 것이다. 여기에는 아무런 모순도 없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상태가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할것이다 I 또는 곤경에 처한 다른 사람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고 해서 여기에 무슨 모순이 생기는 것은 아니겠지만 (각자 자기 지신 이외에 어느 누구도 돕지 않는다) 우리는 아마 (모든 사람이 동의하지는 않겠지만) 지극히 바람직하지 않은사태에 직면할 것 같다. 즉, 그 경우, 우리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할 경우에도 도움을 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U의 정의에 의하면 “자살하라”나 “남을 돕지 말라”는 준칙들은 보편화가능하기 때문에, K 에 따르면 자살이나 도움의 거절은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되어버린다.

(27)

공리주의

하지만 왜 특정한 준칙들이 보편화되기를 원하는가?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답변은 특정한 행동규칙들이 실천되면사회가 더 좋아질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더 좋아진다는 말인가? 가장 일상적인 답변은 그 사회에 속하는 개인들이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공리주의에 따르면, 우리가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가능한 한 최대의 행복을—그것이 누구의 행복이건—성취하는 것이다. 이때 어떤 행위가 올바른지 결정하는데 있어서 모든 사람들의 행복은 동등하게중시된다. 따라서 그런 결정에 있어서, 당신의 행복이 더 중시되지도, 다른 사람들의 행복이 더 중시되지도 않는다.

(28)

공리주의 (계속)

이것을 형식적으로 다듬으면 다음 판본의 공리주의가 얻어진다: (U) 시점 t에 행위주체 s의 행위 a는 도덕적으로 올바른 행위다 IFF (i) s는 t에 a1, . . . , an중 하나를 행할 수 있고, (ii) 모든 k ∈ {1, . . . , n}에 대해서 ak가 모든 사람들 s1, . . . , sn에게 초래하는 행복의 총량보다 a가 s1, . . . , sn에게 초래하는 행복의 총량이 더 크거나 최소한 같다. 대략적으로 말해서, 어떤 행위주체에게 가능한 행위들 가운데—그것이 누구의 행복이건—최대의 행복을 증진하는 행위가 올바른 행위이다.

(29)

공리주의의 문제점 1: 어떤 행동이 행복을 최대화하는가?

U의 뜻에서 가능한 한 최대의 행복을 증진하도록 행위해야 한다고 하자. 하지만 어떤 행위가 최대의 행복을 성취할 것인지 알기는 어려우며 심지어는 종종 불가능하다. 많은 행위들과 관련해서는 그 결과가 광범위하고,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I 당신이 그녀를 자동차에 태워 집까지 바래다 줌으로써 호의를 베푼다고 생각하지만 음주 운전자가 당신의 자동차를 들이받아 두 사람 다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 I 특정 시간까지 사무실에 있겠다는 고 용주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당신은 자신의 데이트가 훨씬 더 중요하다거나 고용주가 괜히 사무실에 있으라고 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그 시간 까지 사무실에 있는 것이 전체 사업 계획에 매우 중요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30)

공리주의의 문제점 2: 실천가능성

공리주의를 실천하는 데에는 아주 많은 것들이 요구된다. 공리주의에 따를 때, 당신이 몇 달러를 기부함으로써 수천 마일 떨어진 어떤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당신은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당신에게 그 돈은 아주 사소한 것일지 모르지만 수혜자가 받는 혜택은 엄청난 것, 즉 생사의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은 똑같은 이유로 또 다시 기부해야 하지 않겠는가? 굶어 죽기 직전 상태에 있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당신은 결코 그들 모두를 도울 수는없다. 당신의 돈은 곧 바닥날 것이고, 당신이 돈 벌기 위해 수년간 했던 일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순수한 이타주의가 그러했던 것처럼, 충족하는 것이 불가능한 도덕이론이다.

(31)

공리주의의 문제점 3: 총량인가 평균인가?

공리주의에는 실천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론 자체의 애매성 문제도 있다. 당신이 인류를 위한 두 가지 정책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고 해보자. 정책1. 사람들이 아이를 더 많이 낳도록 장려한다. 이 경우 조만간 인구과밀 현상이 나타나고 인구가 늘어날수록 식량이 부족하게 되어 영양실조에 걸리는 사람이 생길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 인구가 두 배로 늘고 각자의 행복이 지금 누리는 행복의 절반을 조금만 넘는다면, 각자의 행복을 모두 합한 양은 지금보다 커질 것이다. 정책2. 인구를 제한하려고 한다. 이 경우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의 수는 줄지만 일인당 행복의 양은 더 늘어날 것이 거의 확실하다. 공리주의자의 관점에서는 어느 정책을 채택하는 것이 올바른 일일까?

(32)

공리주의의 문제점 3: 총량인가 평균인가? (계속)

U에 의거하면 답은 올바른 정책은 정책1이다. 만일, s1, . . . , sn이 a 가 실천되었을 때 존재할 사람들이라고 할 때, (행위 a 로 인한 행복의 총량) = (a로 인한 s1의 행복) + . . . + (a로 인한 sn의 행복) 으로 계산한다면 정책1이 정책2보다 더 큰 행복의 총량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반직관적이다. 때문에 U를 수정하여 행복의 총량보다는 (아래와 같이 계산되는) 행복의 평균을 최대화는 행동을 선택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보는 입장이 가능하다. (행위 a 로 인한 행복의 평균) =  a로 인한 s1의 행복  +...+a로 인한 sn의 행복  n 이런 입장에 의거하면, 정책2가 올바른 정책이 될 것이다. Q. 왜 그런가?

(33)

요약

I 우리 주변의 어떤 대상들이나 사건들이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I 그런데 그것들중 어떤 것들은 외적조건에 의존하여 가치를 지니는 반면, 다른 것들은 그런 조건으로부터 독립적 가치를 지닌다. 후자는 내재적 가치를, 전자는 외재적 가치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I 많은 윤리학자들은 쾌락이 내재적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쾌락이 언제나 추구할만한 것은 아닌데, 왜냐하면 지나친 쾌락은 고통을 동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I 어떤 윤리학자들은 행복을, 대략적으로 말해서, (쾌락-고통)과 동일시한다. 이것은 행복, 쾌락, 고통을 덧뺄셈이 가능하도록 수량화할 수 있다는 가정에 기반한 생각이다. I 나아가서, 한 사람의 행복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 심지어 모든 사람들의 행복의 총량을 계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서로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덧뺄셈이 가능하도록 수량화할 수 있으며, 고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는 가정에 기반한 생각이다.

(34)

요약 (계속)

I 이기주의는, 대략적으로 말해서, 어떤 행위자 s에게 올바른 행위는 s에게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줄 행위라는 이론이다. I 이기주의에 대한 널리 퍼진 생각은, 이기주의자들은 자신을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아고 행위할 것이라는 관점이다. I 하지만 이것은 오해이다. 사실 s가 늘 그렇게 행위한다면 그는 얼마 못가 체포되거나 처형될 확률이 크다. I 만일 이기주의자가 그가 속한 사회의 권력을 잡는다면, 노골적으로 자신만을 위한 행위를 행하면서도 상기한 위험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 I 하지만 그런 독재자는 늘 모반의 가능성에 신경을 곤두세워야할 것이고, 그를 진정으로 신뢰하거나 좋아하는 사람, 즉 친구나 연인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I 결국 합리적인 이기주의자는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건전한 시민들과 그리 달라보이지 않을 것이다.

(35)

요약 (계속)

I 이타주의는, 어떤 행위자 s에게 올바른 행위는 s이외의 모든 사람들에게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줄 행위라는 이론이다. I 언뜻 이것은 이상적 도덕이론처럼 보이지만, 사실 순수한 이타주의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 순수한 이타주의자는 오랫동안 생존할 수 없다. (왜 그런가?) I 예수의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온건한 형태의 이타주의를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가르침은 모든 사람을 대할 때 그들 각각을 나 자신과 동등하게 사랑했더라면 대했을 것과 마찬가지로 행위하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것은 나에게 느끼는 것과 동등한 사랑을 모든 사람들에게 실제로 느낄 것을 요구하지도, 나의 행복을 도외시하과 남들의 행복을 위해서만 행동할 것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I 온건한 형태의 이타주의는 순수한 형태보다 현실적이다. 하지만—어느 형태건—이타주의가 말하는 대로 행위하는 것이, 나 자신은 제쳐놓고 남들을 위해서라도 과연 최선의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확신하기 어렵다.

(36)

요약 (계속)

I 황금률은 “남에게 대우받으려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우하라”라는 도덕적 원칙이다. I 하지만 이런 원칙은 궁극적으로 x가 y 로 하여금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행동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x는 (또는 y 는) 저러이러한 방식으로 행동하여야한다는 형태를 띤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바람직한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당신 주변의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무관심하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그 사람에게 무관심해야 하는가? 피학성 성애자가 자신을 학대해 주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그(녀)를 학대해야 하는가? I 칸트는 이런 이유로 인하여 “원함”에 기반하는 어떤 도덕이론도 반대했다. 대안적 도덕이론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보편화가능성의 개념이 필요하다: 어떤 준칙이 보편화될 수 있다는 것은 그 준칙이 모든 사람들이 따라야 하는 보편적 도덕률이 되더라도 모순이 없다는 것이다. I 칸트에 의하면, 어떤 행위가 도덕적으로 올바르기 위해서는 그 행위가 어떤 보편화가능한 준칙에 부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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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계속)

I 그러나 이런 칸트주의 이론도 문제점들을 지닌다. 첫째, 보편화될 수 있는 준칙들이 둘 이상 존재할 수 있다. 둘째, 보편화가능한 준칙이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 I 이런 한계점으로 인하여, 과연 어떤 식으로 행위하는 게 바람직할지에 대해서 기준이 필요해진다. I 한 가지 인기있는 기준은, 모든 사람들의 행복의 총량을 최대화하는 행위가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 이론을 공리주의라고 한다. I 공리주의는 매우 인기있는 이론이다. 만일 흔히 생각되는 대로 행복이 내재적으로 좋은 것이라면, 왜 그것을 최대화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없다. I 하지만 공리주의에도 잠재적 문제점들이 있다. I 첫째, 순수한 이타주의와 유사하게, 공리주의는 실천에 옮기기에 매우 힘든 이론이다. I 둘째, 인구 조절 정책 등의 경우에는, 행복의 총량보다는 행복의 평균치를 최대화하는 이론이 더 그럴 듯해 보인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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