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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변화와 농업·농촌의 미래

1. 문제 제기

세계는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거대한 사회변동은 세계 자본주의 체 제의 변화와 한국의 발전 모델의 재편이라는 두 가지 구조의 변화가 만나면서 진행되고 있다. 20세기를 지배하던 발전 프로젝트가 1990년대 이후에는 세계 화 프로젝트로 전환되었다는 평가가 많은 전문가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Arrighi, 1994; McMichael, 2004). 2차 대전 이후 세계를 지배했던 근대화 이 론에 크게 영향을 받았던 발전 프로젝트는 미국에 의해 관리되는 세계질서로 서, 국민 국가 단위의 개발과 국가 단위의 통치를 특징으로 했다.

이러한 세계체계 속에서 한국은 국가주도형 산업화 전략을 통해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세계자본주의의 위기는 이러한 국민국가 단위의 조절과 경제성장 체계를 빠르게 해체시켜왔다. 소위 세계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세계화 프로젝트는 초국적 자본과 초국적 기구들에 의 한 조절을 특징으로 한다. 이에 따라 국민국가 단위의 경제 질서와 국가 구성 원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빠르게 와해되고 있다. 사회적인 것(the social)들이 시장 메커니즘에 의해 흡수되고, 표준화된 세계 시장이 보편적 규범으로 강요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러한 자본주의 체계의 구조 변동 속에서 한국경제도 심각한 도전에 직면

해 있다. 기존의 국가주도형 경제발전 모델은 새로운 환경 속에서 효용성을 상 실한 지 오래다. 글로벌화된 기업들을 중심으로 경제성장을 추진하지만, 세계 경제 환경은 녹녹치 않다. 설혹 기업활동이 활성화되더라도 그것이 한국이라 는 국민국가 내부의 성장 및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지 않는다. 1970년대와 80 년대에 누렸던 고도성장을 회복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1997년 외환위기는 한국경제를 둘러싼 자본주의 체계의 구조적 전환이 어떤 특징을 지닌 것인가 를 확실하게 학습하도록 했다. 사회학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97년 외환위기가 한국사회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앗아갔다는 점이다. 고도 성장기에 한국인들 이 공유했던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고, 내일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세대의 삶의 질이 우리 세대의 그것보다 악화될 수 있다는 가슴 아픈 현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 위기의 시대에 미래를 전망하는 작업은 꼭 필요한 일이지만, 또 쉬운 일 은 아니다. 이 연구는 메가트렌드라는 큰 틀 속에서 2050년의 농촌사회를 전 망해보는 기획의 일부이다. 이 글은 거시역사적 접근을 통해 한국사회와 농 업․농촌 변화의 주요 요인들을 도출해내고, 변화의 궤적을 기술함으로써 과 거와 현재의 연속으로서 미래를 전망할 것이다. 그리고 미리 지적하지만, 그리 고 대부분 동의하겠지만 과거와 현재의 연속선 상에서 바라보는 한국 농촌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그러나 역사는 구조(structure)에 의해 지속되지만 행위 자(agency)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희망을 놓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구조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희망의 징후들을 발견해내고, 이 것들의 가능성을 다소 과장되게 평가할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 농촌의 미래가 열려 있음을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이 설득력을 얻도록 하기 위 해 문제의식의 출발점을 좀 더 소급할 것을 제안한다. 즉 현재 한국 농촌과 농 업이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한국사회를 지배해왔던 사회 발전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한국은 전환기에 서있다. 그동안 국가주도형 산업화를 토대로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뤄왔지만, 이제 성장의 한계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고도 성장은 공업과 수출만을 강조하며 진행된 파행적인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농업은 급격하게 쇠락했으며, 한국 경제구조는 극도로 대외 의존적인 것으로 재편되었다. 지금, 우리는 간단하면서도 심각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한국 사회는 지속가능한가?

이와 관련 일본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을 것이 적지 않다. 한국보다 한 세대 먼저 산업화와 고도성장을 경험했던 일본은 현재 심각한 사회경제적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일본 코베대학 명예교수이자 농업경제학자인 야스다 시게루 교 수는 최근 한 강연에서 일본 경제의 근본적 위기를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야 스다, 2010). 야스다 교수에 따르면, 일본 경제의 성장은 급속한 공업의 팽창, 농업 포기, 그리고 경제적 가치를 인생의 목표로 삼은 세대라는 세 가지 조건 에 의해 추동된 것이었다. 일본은 이러한 구조 속에서 대부분의 식량은 공산품 을 수출해서 벌어들인 외화로 외국에서 수입해 먹는 체계를 만들어왔다.

야스다 교수는 일본이 ‘성숙사회’에 진입하면서 이러한 체계는 심각한 위기 에 빠지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성숙사회에서는 경제 인프라가 완비되고, 포드 주의적 내구재에 대한 수요도 한계에 도달해서 경제적 팽창이 한계에 도달한 다. 결국 탈출구는 성숙사회에 진입하지 않은 개발도상국으로의 수출인데, 이 는 치열한 경쟁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1970년대까지 일본이 누리던 성장을 되 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소득이 줄어들고, 일자리 역시 감소한다.

이미 농업이 쇠퇴하고, 식량의 해외의존도가 높아진 일본은 가장 기본적인 식 량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것이 야스다 교수의 예측이다.

한국 역시 일본과 마찬가지로 성숙사회로 진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도로 와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이 투자될 수 있는 여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더 이 상 토목사업으로 경제성장을 추진하는 것은 한계를 지닌다. 아파트를 비롯한 건설이 1990년대 경제성장의 중요한 요소였다면, 이 역시 한계에 도달했다. 또 한 1980년대와 90년대 중산층 증가에 따라 확장되던 내구재를 비롯한 포드주 의적 소비의 급증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실질소득의 감소, 일자리 축소, 노동시장의 불안정성 등은 한국 경제의 미래를 낙관할 수 없게 한다. 여러 가 지 면에서 한국의 경제개발 방식은 일본의 그것과 유사하다. 공업과 도시를

우위에 두고, 수출을 지향하며, 농업과 농민을 산업화의 자원으로 활용 희생시 키며 이루어진 개발이었다. 그리고 최근의 세계화 전략과 통상국가론은 이러 한 모델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시 묻거니와 과연 이런 경 제성장 모델이 지속가능할 것인가?

기존의 발전 모델의 지속불가능성을 고려할 때, 인식의 전환 혹은 새로운 패 러다임모색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 글은 두 가지의 중첩되지만 구별되는 문제 의식을 배경으로 해서 우리나라 농촌의 미래를 가늠해 볼 것이다. 첫째는 수출 과 공업을 중심에 둔 발전 모델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 는 위기의 농업과 농촌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희망은 1차적으 로는 농촌사회의 부활을 위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한국사회 전체의 희망 을 농촌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강조할 것이다. 2050의 농촌사회 에 대한 전망은, 보다 공격적인 한국사회 발전 모델에 대한 문제제기와 ‘농’을 중심에 둔 새로운 발전 패러다임 제안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하 제2장에서는 먼저 시대의 큰 흐름인 몇 가지 메가트렌드들에 대해 검 토하고, 이것들이 한국 농촌의 미래와 관련해서 가지는 의미를 평가한다. 3장 에서는 한국 농촌의 미래를 현재까지의 사회변동 속에서 누적된 ‘절망’의 요소 를 통해 전망해 본다. 특히 농촌위기의 역사적 과정, 농업의 쇠퇴, 고령화, 먹 거리 위기 등을 검토함으로써 어떻게 한국의 농촌이 오늘날과 같은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는지를 분석한다. 이를 통해 예견되는 2050년은 암울하다. 농촌 자 체의 근본적 와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4장에서는 위기의 구조 속에서 발견되 는 몇 가지 희망의 징후들을 검토하고, 이것들이 가지는 가능성에 대해 주목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다문화가족의 증가, 귀농․귀촌의 확산, 대안 먹거리 운 동의 활성화 등을 통해 희망의 미래 농촌을 조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