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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음말

문서에서 선비의 공부와 인격 (페이지 43-50)

국가․사회적 책임의 문제를 놓고 볼 때, 그들의 앎과 삶은 하나하나가 선비의 길, 선비정신의 좌표를 묻는 근본적인 논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 다. 글 아는 사람으로, 선비의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적당히 구차하게 영악을 떨면서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삶의 특징, 그 단호한 기개와 정신은 특별한 구호나 가치를 지향점으로 내세우지 않았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의 실천은 지금-여기의 일상생활에서 도 덕적 실천의 동력을 찾으려했던 자기 수양과 인격 실천의 과정이었다. 하지 만 500년 역사의 조선왕조가 선비를 기른 유교 국가였음에도 평시 유교 지 식인들의 거룩한 가르침이나 드높은 목청에 비하면 그들의 인격과 그에 따 른 삶의 궤적은 그 형편을 제대로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

500년 역사의 조선왕조는 1910년 8월 29일에 패망에 이르렀다. 학계 일각 에서는 1910년의 망국과 관련하여 친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한국인은 그리 많지 않으며, 망국의 원인을 몇몇 친일파에게 돌리는 것은 망국이라고 하는 거대 담론을 희석시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한국현대사에서의 친일 논쟁은 ‘먼저 태어난 자의 아픔’과 ‘늦게 태어난 자의 축복’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116) 하지만 이러한 접근법과 시각으로는 응당 물어야 할 선비의 앎과 삶의 세계, 유교

116) 신복룡, 「1910년, 대한제국의 망국을 바라보는 한 인문학자의 시선」, 뺷한국민족운동사 연구뺸 82, 2015, 261~307쪽.

지식인의 국가․사회적 책임을 묻고 따지는 작업의 의미를 약화시킬 수도 있다.

유교 지식인, 선비의 국가․사회적 책임과 관련하여 그 정체성과 논의의 핵심을 포착하기 위한 중심 주제는 조선왕조의 망국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고려가 망하던 때에는 그래도 비분을 삼켰던 두문동 72현이 있었지만, 조선 이 망하던 때에는 76명의 양반이 나라를 팔아넘긴 대가로 합방공로작을 수 여받고 거액의 은사금을 받아 챙겼다. 죽어 마땅한 그들은 결코 팔아서는 안 될 나라를 팔았고, 죽어 마땅한 그들은 결코 누려서는 안 될 온갖 호사를 누렸다.

한국근현대사 속의 일본의 침략만행․전쟁범죄에 눈감은 채 한국교육의 핵심과 본질을 문명론․근대화론에서 찾으면서 탈정치화․탈민족화를 도 모했던 그 안이한 인식과 대응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식민권력의 작동 공 간에서 한국 근대교육의 주체성과 주인의식을 말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 고 어불성설이다. 그 언어도단과 어불성설의 시공간에서 유교사상 또한 왜 곡․굴절되었으며, 그것은 천(天)의 종교성 부각, 인(仁)의 본령 강조, 중용 (中庸)-시중(時中)의 오용, 실학(實學)의 식민적 조립 등의 과정을 거치면 서 유교 지식인―선비의 앎과 삶의 세계 그 본연에 대한 논의체계는 길을 잃고 말았다. 친일유림, 전시체제형유림으로 분류되는 거짓 유교 지식인과 는 변별되는 참된 선비의 앎과 삶의 세계에 대한 천착과 논의를 통해 유교-선비-공부의 본연을 제대로 말할 수 있는 논점을 확보하는 일은 아직도 진 행형 과제로 우리 앞에 놓여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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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Gongbu and Saramdaum of Seonbi

Discussion on the national and social responsibilities of Confucian Intellectuals

-117)Park, Kyoon-seop*

To understand Seonbi's world of knowledge and life, we need to discuss and interpret the nature of Confucian thought. This is because Confucianism has a mental coordinate of Seonbi's gongbu, its category and orientation. Confucianism was able to firmly present the categories and prospects of teaching and learning as the Confucian theoretical system was installed in the world view of Confucius and Mencius. During the 500 years of the Choseon Dynasty, Confucianism showed a gongbu theory based on Dohak, Yihak, Seonghak, and Shimhak that governed the daily life of Seonbi. It was also a strong suggestion of a reflective discussion on what is the mission and responsibility of intellectuals in Choseon, the country where cultivated scholars. In order to read the dynamics of seonbi in Confucianism, it is necessary to pay attention to not only the teaching and learning in daily life, but also the struggle for national and social crises and difficulties. We can understand the essence of the gongbu of seonbi more deeply by examining the life of Jeong Yak-Yong, Choi Ik-Hyeon, and Hwang Hyeon.

Key Words : Seonbi, Jeong Yak-Yong, Choi Ik-Hyeon, Hwang Hyeon, national and social responsibilities

*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필자소개>

이름: 박균섭

소속: 경북대학교 교육학과 전자우편: kspark@knu.ac.kr 논문투고일: 2020년 2월 4일 심사완료일: 2020년 2월 24일 게재확정일: 2020년 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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