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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의 및 결론

문서에서 동북아 역내 미 (페이지 29-35)

김정일의 사망을 애도하는 대열에 장성택이 대장 복장을 하고 참석했다는 것 은 의미있게 보아야 하며, 선군정치가 강조되는 한 군부의 위치가 주도적일 수 밖에 없고,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한 김정은의 첫 방문이 군부대였었다는 것은 남-북한의 모든 대화채널이 단절된 상태에서 행동 우선주의로 나올 가능성이 높 다는 것과 결부하여 한반도의 위기적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에 대해 원인이나 동기를 정황 분석 을 통해 살펴보는 것은 앞으로의 남-북 관계를 예측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2009년 5월의 핵실험으로 UN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았 고 따라서 국제적으로 고립된 상태에 있었다. 내부적으로도 식량을 비롯한 경제 적 어려움, 권력 승계 문제 등으로 복잡한 상황에 있었던 북한에게 한국의 미국 과의 군사적 관계의 강화,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의 위상 부각 등의 모습은 불안감 을 더욱 고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2010년 2월, 미 국방부가 발표한 바에 의하면 한국은 미국이 제시해 왔던 미사일 방어 능력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는데 여기에는 지상-해상 발사체계, 조기 경보체계, C&C 체계 등을 포함한 것으로 이것은 북한의 미사일 공격 위협 에 대한 방어에서의 협력을 위한 것으로 밝혀졌다.

탄도미사일방어(BMD) 체계를 위한 한-미 간의 논의가 2010년 가을로 예정되

어 있었고, 2012년까지 2억 1,000만 달러의 비용으로 미사일 방어체계가 구체화 될 것으로 외신에 발표되었다.

테런스 로리그(Terence Roehrig)는 이러한 한-미 간의 긴밀한 군사전략에서의 협력이 목적하는 바는 특히 북한의 WMD에 대한 대응과 관련된 전략에서 억지 (Deterrence)가 주요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다.62)

또 다른 요인으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은 2010년 3월 8일부터 18일까지 있었던 한-미 연합군사훈련으로 이것은 키 리졸브 훈련(Key Resolve/ Foal Eagle)으로 명명된 연례적으로 개최되어 오는 것이지만 키 리졸브(Key Resolve)는 2008년부 터 사용되기 시작한 훈련이며 2010년에는 총 38,000명의 한-미군이 참가한 가장 대규모의 훈련이었다. 미 제7공군과 일본에 있는 미 해병 4개 비행 중대까지 참여하였고 이뿐 아니라 3척의 이지스급 함정이 참가하였는데 이 중 9,000t급 순양함 샤일로함은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SM-3를 갖춘 대형함으로 처음 으로 3월 17일 목포항에 입항하였다.

또한 2010년 7월에는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미국의 국무, 국방 장관들이 판문점을 방문하면서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의미를 더욱 강조하였다.

한-미의 관계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2010년 10월 워싱톤 에서 열렸던 한-미 안보협의회에서 양국 간에 포괄적인 전략동맹의 구축을 확인 한 것이었다. 이것은 더 이상 북한의 도발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공동의 의지를 표현하면서 한-미 연합군의 방위능력의 증강을 합의하였고 또 북한을 대상으로 한 PSI 연습을 한국이 주도하는 문제 그리고 한-미 안보 정책구상 협의를 계속할 것 등이 확인되었다.

특히 공동합의문에는 한-미 간 국방협력 지침의 승인, 전략기획지침(SPG) 등 을 통해 위기 상황에서의 공동의 효과적 대응을 보장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고, 또한 핵 우산의 제공과 더불어 억제 능력을 높이기 위한 확장억제정책위원회 (Extended Detterence Policy Committee)를 설치할 것을 제의하였다.

62) http://olv.moazine.com/rviewer/index.asp.

또한 북한의 연평도 포격이 있기 직전인 11월 초, 북한은 시그프리드 헤커 (Siegfried S. Hecker) 스탠포드대학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에게 우라늄 농축장 치인 원심분리기 가동 현장을 보여 주어 핵폭탄의 제조 가능성을 실증함으로써 미국은 11월 21일 보스워스(Stephen Warren Bosworth)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서 울 등지에 급파하였고 일본, 중국과 논의하게 하였는데 당시의 뉴스는 그 상황이 북한이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위한 강수를 둔 것으로 보면서 한반도 정세가 위기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것이다.63)

마지막으로 지적되어야 할 것은 발표문에는 북한의 “불안정 사태(instability)”라 는 문구를 명시하면서, 이에 대한 양국의 효과적 대응을 할 준비가 갖추어져 있 다는 보고를 샤프(W. Sharp) 한-미 연합사령관으로부터 받았다는 사실이 표현되 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의 권력승계 문제에서부터 경제적 문제를 포함한 내부적 불안정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Willard의 지적에 의하면 이것이 북한의 연평도 포격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의 세계적 고립이라는 사실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은 2010년 11월 11 일부터 12일까지 세계적 불경기에 대처하기 위한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면서 의장국으로 행사를 이끌어 나갔다는 것은 또 하나의 도발 요인으로 제시될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의 신년사설을 분석해 보면 가장 특징적인 사항으로 주한미군의 철군이 다시 언급되었고, 이와 관련하여 북한이 한반도평화 보장의 근본문제로 북-미 간의 적대관계의 종식 그리고 평화체제의 문제를 먼저 제시한 후 비핵화의 문제 를 거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2009년 북한의 핵 실험 이전의 논리로 복귀한 것으로 보이며, 미국과 의 관계 중시의 태도는 6자회담과는 다른 채널에서 다루고자 하는 데서 볼 수 있다. 6자회담 문제를 단지 중국과의 우호관계의 표현으로만 나타낼 뿐 중요한 미국과의 회담이나 합의는 항상 6자회담 밖 -예를 들면 제네바회의와 같이- 에서

63) 동아일보, 2010년 11월 22일.

이루어졌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샘 베틀먼(Sam Bateman)은 동아시아 해역에서의 잠수함의 확산이 가져오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하여 예방외교적 측면에서 이 해역에서의 안정성을 확보하 기 위한 국제적 논의를 제의하고 있다.

스테이시 페드로조(Stacy Pedrozo) 함장도 미국 의회에서의 증언에서 지역적 불안정이 가져올 전략적 사고로 이어질 오해와 위험을 줄이기 위해 미국, 중국, 기타 국가가 참여하는 아시아-태평양 해역에서의 구체적 조치를 취할 필요를 강 조하고 있고, 단순한 대화만이 아니라 다양한 요구의 다각적이고, 평화적인 해결 을 가져오고 국제 해양에서의 항해의 자유 원칙과 같은 것에 집단적 인정을 표현 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2011, 01, 24, 112차 의회). 이와 같은 취지 의 발언이 로를리어(Locklear) 미 해군 제독, 푸틴(Putin)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있었다.64)

한국 해군으로서도 스텔스 기능의 해안 침투함, 무인 잠수정 개발, 170여 기의 스텔스 순항미사일의 도입 등을 통해 대비를 하고 있으나,65) 천안함 등에 대한 보복적 차원에서보다는 <표 1>에서 보듯이 북한의 비대칭적 전력에 대한 신중 한 접근과 철저한 대응을 모색하는 것이 무엇보다 긴요하다. 중국의 북해 함대에 대한 억지력(Deterrence)의 차원에서 현대적 해상함의 확보 수준을 결정할 필요 가 있다.

서해에서의 군사적 상황을 안정적인 협력의 차원으로 안정시키는 노력은 해 군력의 확보 이외에 외교에 의한 노력도 더욱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서해에서 관련 당사국들 -대체적으로 서해에 관한 한 미, 중, 남, 북한 등을 대상으로 좁힐 필요가 있음- 의 정기적인 대화를 통해 구체적인 조치 로 이 해역에서의 안정성을 군사적, 경제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일 수 있다.

64) Loclear, Chinese Defense Mashup, July 4, 2012, Interview, Putin; Reuters.com Wed., June 6, 2012.

65) 매일경제신문, 2011년 12월 17일; 코리아타임즈, 2011년 12월 6일; 중앙일보, 2011년 12월 1일.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 미국과의 동맹관계 등에 관하여 한국의 입장이 딜레마 에 빠져 있다고 보기보다는 취할 단계별로 입장을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군사적 측면에서 한국은 미국과 동맹관계 그리고 북한은 중국과 동맹관계에 있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기본적 관계를 넘어서서 서해를 대상으로 하는 4국 관련 회의를 구성하여 이 해역에서의 긴장 완화, 군비의 제한, 또는 위기 해결의 절차와 방법을 논의하도록 하는 것은 더 나아가 군축이나 신뢰 의 구축을 협의해 나가는 방법으로 확대시킬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미국은 지난 9월 리언 파네타(Leon Panetta) 국방장관을 통해 2014년 림팩 (RIMPAC) 훈련에 중국 해군을 초청하는 등 신뢰구축 단계를 시도하고 있으나 중국이 군축의 단계에 동의할지는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러한 정황은 중국이 2005년에 발표한 “군비통제백서”에서 독자적인 평화외교정책을 추구할 것이며, 특정 지역의 평화와 안보를 위해 불안정한 요소를 도입하거나 어느 한 나라의 정당한 안보이익을 침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체제는 남북한 간의 긴장완화와 이를 넘어서서 남북 간의 평화적 통합으로 의 이행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며 그러나 남북 당사자 간에는 이와는 별도의 채널로 남북 간의 합의의 결합을 추구 및 확대시키는 것이 필요할 것이 다. 북한은 2011년 11월 15일 6.15공동선언 집행위원회의 북측 당사자를 통해

“서해를 평화의 바다”로 바꾸는 방법을 논의하기 위한 포럼을 제의했고 한국 측 당사자도 제의 자체를 긍정적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한 만큼 4국 회의 형태는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많다.66)

“서해를 평화의 바다”로 바꾸는 방법을 논의하기 위한 포럼을 제의했고 한국 측 당사자도 제의 자체를 긍정적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한 만큼 4국 회의 형태는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많다.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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